한의사로서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평강식물원을 연 계기가 궁금합니다.
누구에게나 고향에 대한 향수가 있지요. 내 고향은 충남 서산시 운산면입니다.
피난민이 모여 살던 동네였어요. 세 살 때 6 25 참전 용사이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어럽게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어린 내게 보리농사부터
가르치셨는데, 여름 내내 농사일하다 보면 얼굴이 까맣게 탔어요. 친구들이
'깜둥이' 라고 불렀죠. 고생하면서도 행복했습니다. 사계절 풍성한 꽃과 나무,
산새들이 친구가 되어 주었거든요. 한대 '개발' 이란 미명아래 고향 마을은
본래의 모습을 잃었어요. 나중에 꼭 꽃과 새를 벗 삼아 뛰놀던 고향의
뒷동산을 다시 만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식물원을 열며 힘들었던 때도 많았지요?
1999년 '우물목' 이라 불리던 이 땅을 운 좋게 구입하고, 제주도에 사는
식물 전문가 김봉찬 소장과 조경 전문가 남기채 부장을 영임해 식물원
토대를 닦았습니다. 뜻이 잘맞아, 일사천리로 식물원을 만들어 갔어요.
그 무렵 포천시에 허가를 받기 위해 서류를 제출했는데, 공무원들이 찾아와
허가 없이 조성한 것을 모두 원상대로 복구하려고 했지요. 서울 사는 한의사가
별장이나 지어 놓고 땅값 오르면 떠날 거라 오해한 거예요. 낙실할 때 100여년
만의 자연재해까지 닥쳤어요. 안타까운 마음에 피해 상황을 포천시에
신고했는데, 공무원들이 살려보러 왔다가 비로소 안 거예요. 고향 마을을 복원하고
싶은 내 진심을요.
평강식물원은 직원들의 피와 땀, 노력의 결과물이네요.
제주도 살며 자연주의 식물원에 대한 그림을 가진 김봉찬 소장, 꽃 가꾸는 데
천재적인 남기채 부장의 공이 커요. 남기채 부장은 암 투병하며 마지막 열정을
평강식물원에 쏟았어요. 식물원은 18만 평 규모로, 들꽃 정원, 암석원, 습지원,
잔디 광장 등 열두 개의 테마로 이루어졌어요. 그중 잔디 광장과 암석원에 남기채
부장의 얼이 서려 있죠. 드라마 < 내마음이 둘리니> 마지막 장면에 잔디 광장이
나오잖아요. 거기에 '남기채 부장 나무' 가 있어요. 큰 비에 뽑힌 나무를 잔디
광장에 옮겨 심고 지극 정성으로 돌본 결과 기적적으로 살아났죠. 습자원에도 스토리가
있어요. 길이가 250 미터에 달했는데, 2006년 문을 열기 전 겨울에 직원들이
얼음을 망치로 깨면서 만들었지요. 눈물나게 고마워요. 식물원 여는 걸 극심하게
반대하다가, 지금은 가장 큰 조력자가 되어 주는 아내도 고맙고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방문객이 있다면요.
고 (故) 노무현 대통령을 잊을 수 없죠. 2006년 가을에 권양숙 여사와 함께
오셨어요. 암석원 입구에 있는 백리향을 가리키며 "쓰다담은 향이 백 리까지
갑니다." 하니, 몸소 쓰다듬으며 향기를 맡으셨어요. 점심 식사로 약선 산채 정식을
대접했는데, 콩잎 장아찌를 먹으면서 " 이것 참 맛있네." 하며 영부인의 밥 위에
올려 주시는 거에요. 다정한 모습에 잠시 숙연해졌죠. 식물원을 다 둘려보고 난 뒤에
내게 그리셨어요. "나는 이렇게 큰 식물원을 만들지 못하지만, 나중에 고향에
돌아가면 작게나마 정원을 가꾸고 싶어요." 그러고는 방명록 이렇게 쓰시더라고요.
"새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보았습니다. 사람사는 세상. 2006 11.5. 대통령 노무현."
숱한 어려 속에 평강식물원이 자리를 잡았는데요 이황용 원장님 삶도
어려움의 연속이었다고요.
어려움이란,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다지며 넘어서야 하는 것임을 살아오며 배웠습니다.
고 2 때 교통사고를 당해 6개월간 입원했어요. 아픈 몸을 고치기 위해 지압을
배우다 한의사의 꿈을 품었지요. 한의대에 가기 위해 아홉번이나 재수했는데 절망하지
않았어요. 돈이 없어 독서실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고, 노량진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지압해 드리며 용돈을 벌어 근근히 살았지요. 군 생활 중에도 영어 사전을 끼고 다니며
몰래 공부했고, 휴가를 내 학력고사를 차렸죠. 꿈을 포기하지 않으니까 이루어지더라고요.
9년 만에 한의대생이 되었잖아요. 지금의 한의원을 있게 한 느릅나무 껍질도 발견했고요.
느릅나무 껍질이 원가요.
재수 시절 노량진에서 '학생 의사'로 통했지요. 달랑 좌판 하나 깔고 찬바람
맞으며 장사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그냥 지나갈 수 없어 지압해 드렸거든요. 하루는
한복집 할머니가 나를 부르셔서 가 보니 "학생, 이게 코나무 껍질인데 구할 수 없을까,
콧병에 효험이 있는데" 하시는 거예요. 약령 시장에서 코나무 껍질을 구해 와 끓여
드렸더니, 할머니 콧병이 정말 나왔어요. 코나무가 바로 느릅나무에요. 세월이 흘러
한의대 졸업 후 한의원을 열었지만, 늘 적자였고 은행 대출 이자를 내기에
급급했어요. 그때 콧병을 깊이 연구했고, 느릅나무와 여러 약제를 사용한 한약덕분에
한의원이 자리 잡은 거죠. 평강식물원을 세운 이유 중 하나는, 나무가지로
인해 복을 받았으니, 자연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어서예요.
측은지심은 나무에게도 미쳐, 죽어가는 나무도 그냥 두지 않으신다고요.
하루는 들꽃 정원 가는 길에 나무 한 그루가 쓰러졌어요. 땅 밑으로 계곡물이
흘러 나무가 지탱하지 못하고 누워 버린 거죠. 우리 식물원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그냥 베지 않습니다. 땅 밑에 수로를 만들고 ,누은 나무를 지탱해 줄
튼튼한 나무를 심어, 끝내 살려냈어요. 식물원에 '원장 나무 라고 불리는 소나무가
있어요. 바람에 몇 차례 쓰러졌고, 한 겨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뒤틀어져
반으로 갈라졌어요, 꼴치인생, 8전 9기의 인생과 닮았다고 해서 직원들이 '원장
나무'라고 이름 붙인 거지요. 황토로 틈새를 메우고 링거를 꽂아도 살아나지 모했는데
그 옆에 다레 나무를 심어 타고 올라가게 했더니 서로 의지하며 잘 자라요. 사람들에게
끈질긴 생명력,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전하면서요.
친환경과 자생을 실천하는 셈이네요.
하루는 식물원 연못 정원 옆에 개구리 알이 꽤 많이 쌓였어요. 누군가 수생 식물들이
자라지 못할까 봐 걷어 낸 거였어요. 나는 그 알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라고
말했서요. 이 땅의 주인은 개구리 , 풀벌레, 야생 동물이잖아요. 생태계를
해치면서까지 식물원을 운영하고 싶지 않아요. 또 한번은 고라니와 멧돼지가
꽃대를 꺽어버리고, 이끼류와 양치식물이 자라는 이끼원을 헤집었어요, 어떤
사람은 수렵꾼을 불러 잡으라고 했지만 내 고향 마을 재현하겠다고, 그들의
고향을 빼앗을 수 없잖아요. 결국 고라니의 먹이가 되는 나무와 꽃을 더 많이
심고, 멧돼지는 먹이를 따로 주는 것으로 결론 내렸죠. 평강식물원은 식물과
사람만이 아니라, 동물도 평화롭게 어울려 사는 곳입니다. '평강' 의 뜻이 뭔가요.
몸과 마음이 평화롭고 건강한 상태잖아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때, 나는
항상 극복과 평강을 기준으로 합니다.
____글_ 박헤나 기자 _____
( 강헌 선집 13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