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의 겨울은 청명하고 고즈넉하다. 태안사로 가는 오솔길에서 자연의 겸허한 풍경을 만난다. 마음을 흔들던 나뭇잎은 가을비에 떨어지고, 오롯이 빈 몸으로 남은 나목과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만 텅 빈 숲을 지킨다. 조태일 시인의 정신과 삶이 담긴 기념관을 돌아보고, 태안사까지 이어지는 숲길에는 겨울 정취가 그윽하다. 질곡의 세월을 보낸 태안사와 시인을 만나러 가는 길, 《땅의 노래》와 사색의 겨울 숲을 지난다.
태안사로 가는 길
산속 갤러리에서 일곱 가지 보물을 만나다
태안사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조태일시문학기념관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는 것, 태안사까지 차를 타고 가서 연못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것이다. 태안사의 첫 번째 보물을 만나고 싶다면 걸어가야 한다. 태안사에 이르는 1.8km 계곡 길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계절이나 포기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숲이 울창하지 않고 계곡 물소리도 여름만 못하지만, 소복소복 낙엽 쌓인 길이 폭신하고 텅 빈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넉넉하다.
계곡을 건너는 다리, 능파각
산책하듯 쉬엄쉬엄 걷다 보면 저만치 계곡 위로 산뜻한 능파각(전남 유형문화재 82호)의 자태가 눈에 띈다. 동리산에서 흐르는 계곡을 건너는 능파각은 계곡 양쪽에 있는 자연 암반을 이용해 나지막이 돌을 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운 정면 1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다리 건물이다. 통나무에 침목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올려, 기둥 사이 침목에 앉아 계곡 아래 풍광을 즐길 수 있다. 풍류와 배려의 지혜 덕분에 두 번째 보물이 더욱 빛난다.
태안사 일주문 [왼쪽/오른쪽]광자대사 부도/적인선사 부도 부도와 부도비가 모여 있는 부도 밭
능파각에서 돌계단을 따라 200m 남짓 가다 보면 화려한 단청과 기둥 상부 용머리 장식이 인상적인 일주문(전남 유형문화재 83호)을 만난다. 어찌 이리 곱고 솜씨 좋게 만들었는지 매력적인 일주문에 반해 넋을 놓았다가 안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부도 밭이 보인다. 태안사의 세 번째 보물이 전시된 야외 갤러리라고 할까. 태안사를 중창한 광자대사 윤다의 부도(보물 274호)와 부도비(보물 275호)를 비롯해 주인을 알 수 없는 석종형 부도 3기, 팔각 원당형 부도 2기가 있다. 부도 밭 여기저기에 무심한 듯 놓인 부도와 부도비는 섬세한 세부 조각에서 풍부한 예술적 기운이 느껴진다.
부도 밭 앞쪽에 새로 만든 연못 중앙에는 삼층석탑(전남 문화재자료 170호)이 보인다. 본래 모습보다 덧대어 고친 부분이 많다지만, 고려 초기 석탑의 특징인 균형감을 살려 조형미가 돋보인다. 삼층석탑 덕분에 인공적으로 꾸민 연못도 보물처럼 느껴진다. 네 번째 보물을 뒤로하고 대웅전으로 향한다. 태안사에 전해지는 유물은 바라(보물 956호)와 동종(보물 1349호)이 있다.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종의 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다섯 번째 보물이다.
[왼쪽/가운데/오른쪽]삼층석탑이 있는 연못/적인선사 부도비 앞에서 내려다보는 태안사/눈길 두는 곳마다 그림 같은 산사의 풍경
태안사의 가장 높은 터에 있는 적인선사 부도(보물 273호)와 부도비를 만나기 위해 오르는 돌계단의 정취가 은은하다. 넓은 기단 위에 세워진 적인선사 부도는 의외로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단아한 아름다움과 안정감이 있다. 여섯 번째 보물을 보고 고개를 돌리면 태안사의 드라마틱한 풍광이 산자락과 함께 펼쳐진다.
동리산파의 개산조인 혜철은 풍수적인 안목이 뛰어났다고 한다. 적인선사 부도비에 태안사를 “수많은 봉우리와 맑은 물줄기가 그윽하고 깊으며, 길은 멀리 아득하여 세속의 무리가 오는 경우가 드물어 승려들이 머물기에 고요하다”고 표현했다. 일곱 번째 보물은 태안사를 보듬은 넉넉한 자연이다. 나무와 돌과 하늘과 풀과 계곡 물소리,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태안사의 민족시인을 만나다, 조태일시문학기념관
태안사를 보고 내려오면 시인이 사랑한 태안사와 그의 시가 좀더 친밀하게 다가온다. 조태일시문학기념관은 태안사 주지의 아들로 태어나 이곳에서 유년기를 보낸 시인의 출생과 성장, 문학 세계까지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조태일은 말한다. “나의 시는 내가 태어난 전남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의 동리산 품에 안긴 태안사에서 출발한다. 그곳에서 겪은 체험은 원초적 생명력을 형성하여 내 시의 골격을 이룬다.”
조태일은 1970~1980년대 압정의 제도적 현실에 맞서 저항 정신을 시로 승화시킨 민족시인이다. 1964년 등단해서 199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침 선박》 《국토》 《자유가 시인더러》 《풀꽃은 꺾이지 않는다》 등 시집 8권을 냈다. 편운문학상과 상옥문학상을 수상했다.
[왼쪽/오른쪽]조태일시문학기념관의 실내/조태일 시인의 시가 실린 문예지 [왼쪽/오른쪽]시집 3000여 권이 있는 시집전시관/조태일시문학기념관의 외관
기념관에는 유품 2000여 점과 활동 기록이 있고, 시인의 작업실도 그대로 옮겨놓았다. 우리나라 시 문단의 흐름이 보이는 시인들의 연대표와 활동상, 육필 원고 등도 꼼꼼하게 전시한다. 기념관은 조태일시문학기념관과 시집전시관으로 나뉜다. 전시실 외에 세미나실과 창작실을 운영 중인데, 문인을 위한 창작 공간도 꾸몄다. 시집전시관은 해방 이후 발간된 최남선의 《백팔번뇌》, 김억의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등 희귀본을 비롯해 시집 3000여 권이 있다.
섬진강의 특별한 만찬을 만나다, 참게탕과 은어튀김
섬진강과 보성강이 만나는 압록의 별미는 참게탕과 은어다. 압록유원지에 있는 통나무집은 강이 내려다보이는 장소에 자리 잡았다. 투박한 뚝배기에 나오는 참게탕은 된장과 통고추를 갈아서 만든 양념에 시래기, 참게를 넣고 끓인다. 들깨를 갈아서 체에 거른 국물만 넣는데, 그 과정이 수고스러워도 참게탕의 깔끔하고 고소한 맛을 내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고소한 들깨 국물도 환상이지만, 부드럽고 구수한 시래기가 입에 착착 붙는다. 수박 향이 난다는 은어는 겨울이면 뼈가 억세서 튀김으로 먹는다. 섬진강의 특별한 만찬을 기대한다면, 구수하고 감칠맛 나는 참게탕과 담백한 은어튀김이 최고다.
[왼쪽/가운데/오른쪽]참게탕과 은어튀김 상차림/부드러운 시래기와 고소한 들깨 국물의 만남, 참게탕/바삭하게 튀겨 고소한 맛이 일품인 은어튀김
여행정보
- 주소 :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태안로 622-215
- 문의 : 061-363-4441
조태일시문학기념관
- 주소 :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태안로 622-38
- 문의 : 061-362-5868
첫댓글 역시나 산사가 고즉하고 좋네요
아름답고,소중한 인연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