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예수님은
요20;19-29
본문은 예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 잡혀있는
제자들을 부활하신 예수께서 찾아오신 장면입니다.
여기의‘문들을 닫았더니’라는 구체적인 상황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부활체의 신비로운
몸으로 제자들을 찾아오셨음을 강조하기 위한 구절입니다.
의심하는 제자들을 향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자국과
창에 찔린 자국을 보여주심으로 부활을 확증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찾아오신 예수로 말미암아
비로소 불신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온전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슬픔과 공포를 물리치고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본문의 저자 요한은
제자들의 연약한 신앙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끝까지 제자들을
사랑하셨으며 그들에게 특별한 권세를 부여한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교회의 사도적 신앙이 계승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두려워하며 불안해할 때 부활하신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오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첫째로;부활하신 예수님은 평강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지 않고 살아 계시며,이 분이 바로 그분이심에 틀림없다.’
그래서 저는 그 분의 발아래 엎드려 어느 곳에서도 맛보지 못했던 놀라운
평안을 받았습니다.
제가 그처럼 원하던 평강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경험한 선 다싱은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이 일로 집에서 쫓겨나 추위와 굶주림,모욕과 핍박을 받았지만
그는 예수를 부인하지 않고 세계를 다니며 예수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본문19절입니다. “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여기의‘평강이 있을지어다’는 원어로‘에이레네’인데‘
세상의 평안이 아니라 예수만이 주시는 평안’을 의미합니다.
특히 반복해서 평강이 있으라고 언급하심은
기독교의 특징이 평강에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두려움 가운데 있는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평안이었습니다.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우리들이 화평을 누리게 됨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았습니다.
그리고 신약 서신서들의 대부분이 그리스도로 인한
평강이 있기를 기원하며 시작한다는 면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강조합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지금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 분의 살아계심을 깨닫게 하심으로 더욱 주님을 의지하게 만드십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오심으로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강의 역사가 임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부활하신 예수님은 보냄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에게서 찾아 볼 수 있는 세 가지 신비가 있습니다.
첫째는,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고
둘째는,예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전도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믿고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우리가 그 예수를 전하지 않으면
부활하신 예수는 그냥 묻혀버리고 맙니다.그
러므로 서둘러 최선을 다해 기회 있을 때마다
예수를 전해야 하고 부활의 예수를 믿게 해야 합니다.
본문21절입니다. “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여기의‘너희를 보내노라’는 원어로‘펨포 휘마스’인데‘
예수로 말미암아 보냄을 받았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것 같이
부활하신 예수도 역시 제자들을 보내신다는 것이 예수의 원칙입니다.
하나님에 의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처럼
제자들 역시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제자들이 지켜야 할 원칙이었습니다.
부활의 예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는 목적은
그들을 통해 당신의 삶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진리의 삶,생명의 삶,사랑의 삶을
제자들을 통해 확인시켜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
나도 너희를 보낸다’는 말씀은
부활의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입니다.
예수의 구원과 생명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보내진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오습은 불신자들에게 조롱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구원을 완성하심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시 위함입니다.
셋째로;부활하신 예수님은 성령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처럼 살 수 있을까?
거룩해지는 길은 예수처럼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예수가 오셔서 사는 것이다.
성령은 그리스도 중심의 영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위하여 필요한 것은 바로 성령입니다.
날마다 끊임없이 예수께 나아가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다.
그때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계시하시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실 것입니다.”
성령충만 받은 사람은 예수 사랑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성령 충만으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변화되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여 예수의 성품으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본문22절입니다. “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여기의‘성령을 받으라’는 원어로‘라베테 퓨뉴마 하기온’인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성령 안에 거하다’는 의미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성령이 주시는 능력을 얻고 그 성령 안에 거함으로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결코 이룰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제자된 우리들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주시는 성령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 그리스도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부활에 감격하고 기뻐하는 것에 그쳐서는 결코 안 됩니다.
반드시 사명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성령을 주심은 제자들에게 사명을 위임하여 보내시면서
성령 안에 거할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사명은 심부름사 목숨명자로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승리하는 사역에 꼭 필요한 영적 파트너입니다.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소망이 없었습니다.
오직 슬픔이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께서 오사 기쁨이 그들을 지배했습니다.
평강이 심령에 넘쳤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인생과 그렇지 못한 인생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를 찾아오시는 부활의 예수를 만나는 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이 자리에 오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변화되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불의와 타협하지 마십시오.
죄를 멀리하십시오.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십시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면 부활의 은총 속에 사는 자가 됩니다.
매년 부활절에만 누리는 부활의 은총이 아니라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누리는 부활의 은총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으로;
다같이‘살아계신 주’를 찬양합니다. “
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날 위하여 오시었네
내 모든 죄 다 사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나의 구세주
살아 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 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살아 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부디 우리에게 오시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세상이 줄 수 없는 부활의 평강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보냄의 은총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명을 감당케 하는 성령을 받음으로 날마다 부활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