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의 유래와 역사
사포딜라(Manikara zapota)나무
오래전부터 인기가 있었던 껌은 단물 빼고 버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잴은 어렸을 때 한번 씹고난 껌은 벽에 붙였다 다음날 다시 씹어도 씹는 재미는 여전했던 음식아닌 음식?으로 사랑 받았습니다.
껌이 처음 미국에서 유행되었을 때 “저속한 유행이”, “추한 습관”이라고 치부했지만 의약품으로도 성장했다고 합니다.
1. Thank You, Mexico / 껌의 유래
“사포딜라”(일명 Manilkara zapota )나무
껌의 유래는 기록상 AD 2세기경 멕시코 마야족 동굴 벽화에 무엇인가를 씹는 모습이 있으며 이 후 마야족의 멸망으로 일부 아메리칸 인디언들에 의해 나무의 수액으로 껌과 비슷한 것을 만드는 방법이 전해져 왔습니다.
씹는 껌은 1866 년 발명가 토마스 아담스에 의해 미국에 소개되었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있는 껌처럼 아무것도 없습니다.
치클은 “사포딜라”(일명 Manilkara zapota )나무에서 치클을 얻거나, “고무나무”껍질을 벗겼을 때 나무에서 수액을 수집하여 자연 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1890년 천연 라텍스는 과자 (달콤한) 껌을 만들기 위해 많은 양의에서 미국으로 수입되고 있었습니다.
2. 현대의 껌 발명.
오늘날의 츄잉껌과 같은 제품은 1880년대 미국의 토마스 아담스에 의해 상품화되었는데...
그는 자연 껌을 보자마자, 즉시 이 좋은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일을했습니다. 그리고 실험 후, 그는 그것이 씹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빵 반죽 같이 부드러울 때까지 투자하여, 치클을 삶고 말려서 냉각 및 포장했습니다. 이때까지 어떤 향을 첨가하지 않았고 순전히 턱을 바쁘게 유지하는 단순 제품이었습니다.
아담스는 사탕 상점에 가서 사탕의 구입하면 껌을 무료로 배부 할 것을 제의했고 다음날부터 아이들은 즉시 껌을 위해 사탕을 구매하기 시작해 상점이 분주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3. 맛 껌의 등장
토마스 아담스의 자연 껌이 정말 잘 팔려 나갔지만, 그는 더 큰 껌 시장을 만들기위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1871년에, 그는 맛 껌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사용하는 첫 번째 맛은 감초 향, 그리고 이는 ‘블랙잭’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또한 자신의 입 맛에 맞는 여러가지 과일 맛이 나는 향을 추가하면서 함께 최초의 껌 자동 판매기를 설치했습니다.
그는 멕시코에서 발견되는 천연 제품을 가지고 주요 제과로도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입안의 달콤한 맛을 만족 시켰으며 1800년대 말, 자신의 번영과 함께 또 다른 껌 업체가 생겨났습니다. 그들의 광고는 신문을 공략하고, 바야흐로 경쟁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4. 여성의 나쁜 습관
이로 인하여 어린이들이 껌을 씹는 것도 많았지만 많은 여성들도 껍을 씹는 습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소 거만한 남자의 눈에서, 여자가 껌 씹는 것이 남자의 담배에 해당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상류 지각있는 자들에 의해 불쾌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1903년 한 남성은 껌 씹는 아내에 대해서 “여자가 껌을 씹어야하는 경우는 지하실에서나 보자”고 선언하기도 했을 정도였습니다.
5. 윌리엄 리글리 주니어
껌의 종류
1891년, 윌리엄 리글리 주니어는 기본 가정 용품을 판매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는 껌을 그가 판매하는 베이킹 소다에 무료로 스틱 껌을 시식케 하여 즉시 많은 사람들이 껌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껌 사업으로 도약하기로 결정 후 방법을 살펴 보았습니다.
리글리는 달콤한 열여섯 오렌지와 그의 상징적인 스피아민트 껌 등 다양한 맛으로 많은양을 생산하기 시작하여 목표로 어린이와 여성을 목표로 판매 전략을 이익의 대부분을 광고에 투자하여 소비자들로부터 ‘위그리 츄잉껌’을 인식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판매전략 덕분에 오늘날까지도 위그리는 전세계 껌시장을 석권하고 있습니다.
이로서 남성들의 고정관념을 깰 수가 있었습니다.
6. 츄잉껌 파티
1904년, 새로운 유행어가 탄생할 정도였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큰 도시에서 츄잉껌을 씹고 파티에 참석한다.”
당시 파티에 참석하는 젊은이들은 각자 씹을 껌을 가지고 입장하고 그것을 씹어 부드러워 질 때까지 껌을 씹으며 파티를 즐겼습니다.
7. 껌 목걸이
사진의 메달은 빅토리아 시대에 매우 인기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가까움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목 주위에 사진을 걸고 다니는 것입니다.
1889년, 한 신사가 아이디어를 내놓았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목 주위에 자신의 씹을 껌을 찰 수 있게 껌 목걸이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갑자기 트렌디 한 아이템이 되기까지 이 껌 목걸이는 1913까지는 그다지 인기는 없었습니다.
8. Fay Tincher
Fay Tincher - 무성영화 시대의 미국 희극 배우
무성 영화시대을 맞이하고, Fay Tincher가 껌의 여왕이 되기 전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이지 않았습니다.
1916년 그녀는 “껌턱이라 불리는 소녀”로 사람들로하여 불리워졌고 그녀를 부러워하면서도 “생계를 위해 껌을 씹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Tincher는 코미디언, 배우, 감독이면서 이쁜 얼굴의 배역을 맡았는데 화면에 그녀의 가장 인기 있는 역할 중 하나에, 그녀는 에델역을 맡았습니다. 에델은 단순한 존재의 인물로 화면에서 일하는 여성의 모습을 강조하면서 껌 씹는 악마였습니다.
껌과 Fay Tincher가 오버랩되면서 껌은 유명세를 탑니다.
9. 걱정의 가장 큰 원수
1916년, 껌은 “걱정의 가장 큰 적”이라면서 씹는 껌이 미국의 모든 심리적 혜택을 주기도 하면서 빈곤층의 추한 모습을 잊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불면증과 우울증에 도움을 준다고 주장했습니다.
시카고의 도덕 법원의 주치의는 “껌을 씹는 것이 개인에 있서 걱정거리와 우울증에 대해 잊게해 준다.”고 주장하고 자신의 턱이 상하 방식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동안 사람들은 걱정하지 않을 수있는 상태가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의사들도 우울증이나 나쁜 신경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환자에게 껌을 처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의사는 껌이 “의료용”으로 만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10. 미국화
미국이 천천히 껌 씹는 것이 유행을 탈 때 다른 나라에 자신들이 씹는 껌을 수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나라의 사람들은 씹는 껌이 주는 즐거움을 밖으로 표현하면서 자연스럽게 유행을 받아 들였습니다.
한편 영국에서는, 껌을 씹는 것을 경찰이 “금지 정책”에 대해 반발 소동이 있었습니다. 서덜랜드의 공작 부인이 “왜 하나님의 이름으로 껌을 씹는 것에 대하여 우리의 경찰이 금지시키는가?”라고 말하며 소동에 합류했습니다. 이것은 영국 상류층의 일부가 국가의 미국화에 대해 반란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껌을 씹는 것은 미국화의 추세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껌을 씹으면 뇌를 자극해 집중력이 높아진다고합니다.
무설탕 껌을 10분정도 씹어주는 것이 턱과 치아 건강에 좋다고도합니다.
그러나 껌을 씹을 때는 소리나지 않게 주변 분들께 피해가 없도록 ... 대한민국에서는 주한미군의 주둔 이후 껌에 대한 폭 넓은 수요가 일어났으며, 1956년 순수 국내기술로 해태제과에서 『해태 풍선껌』을 제조한 것이 우리나라 츄잉껌의 시초라 할 수 있겠습니다. 껌을 만들기 위한 껌베이스 또한 1986년부터 완전 국산화가 이루어져, 현재에는 모든 해태 츄잉껌에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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