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30. 주일 큐티
요한일서 5:6 ~ 13
영생이 있음을 알라
1) 증언하는 이 셋
- 6절.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a. 여기서의 “물”은 예수께서 받으신 세례 요한의 물 세례를 의미합니다.
b. 여기서의 “피”는 십자가의 대속의 보혈을 의미합니다.
c. 당시의 영지주의자들은 천상의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을 때 예수에게 임하셨다가 십자가에 달리기 직전에 떠났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했습니다.
d. 사도 요한은 그들의 주장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고 오셔서 세례 요한에게 물 세례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피흘리신 것을 분명하게 증거함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동시에 육체를 가지셨던 인간이셨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e.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를 문자 그대로 직역하면, ‘예수께서는 물과 피를 통하여 임하셨을 뿐만 아니라 물 안에서 그리고 피 안에서 임하신 자이다’라는 의미입니다.
- 7절.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a. 증인은 둘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셋은 완전한 증인의 자격을 갖추게 되는 숫자입니다.
- 8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a. 여기에서 물과 피를 무엇으로 보느냐가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해석하는 열쇠가 됩니다.
b. 물과 피는 세례와 성찬이라는 두 가지의 성례로 보고, 이 두 가지의 성례전에 성령께서 역사하여 증거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보수주의적인 입장입니다.
c. 또한 다른 보수주의적 입장에서는 이것을 6절과 연관하여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를 상징하고, 피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수난의 피를 상징하는 것이며, 성령은 예수께서 세례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 위로 강림하신 것으로 보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사 그의 사역을 다 이루셔서 영광을 받으신 후에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자기 자신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기도 합니다.
d. 모두 성령과 물과 피가 다 함께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시는 속죄자로서의 자격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입장입니다.
2) 하나님의 증거
- 9절.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a. 율법에 의하면 두 세 사람의 증인이 증거하는 일은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신 19:15). 죄악되고 부패한 본성을 가지는 죄인으로서의 인간의 증거라 할지라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면 완전하시고 크신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당연히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b. 하나님의 증거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 속에 선포되는 것이고, 물과 피를 통하여 역사속에 선포되어진 것으로 그 모든 증거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된 것입니다.
- 10절.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a. 앞의 9절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증거를 받아들이는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들은 성령께서 그 믿는 자 안에서 내주하심으로 내적 증거를 부여해 주시게 됩니다.
b.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내적 증거는 또한 ‘물과 피’를 통하여 외적 증거를 획득하게 이끌게 됩니다.
c.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는 자들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가 물과 피로 임하신 인간이심을 부인하는 자들이 됩니다. 그들은 성령과 물과 피의 증거 모두를 부인하게 되는 자들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내몰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사도 요한은 강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 11절.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a. 또 부여해 주시는 증거는 영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영생”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이 생명은 본래 하나님과 함께 있던 것입니다(1:2).
b. 이러한 영생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리스도이실 뿐만 아니라 성육신하신 인간임을 증언하시는 하나님의 증거를 받아들일 때에라야만 주어지는 결과입니다. 이 생명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구분되어 존재하는 것이 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c.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임을 이미 알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요 14:6). 그러나 그 생명이 예수라고 말하지 않고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을 완전히 물리치기 위해 사도 요한이 강조하는 것입니다.
- 12절.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a. 위의 논점 속에서 12절의 결론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만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생명도 없습니다.
b. 예수님 없는 복음은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구제와 공의를 세우는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예수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뿐입니다.
3)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
- 13절.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a. 사도 요한이 이 요한일서를 쓰는 목적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기록 목적은 요한복음의 기록목적과 이어지는 것입니다. 요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b. 사도 요한은 어찌하던지 간에 모든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게 하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생명이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듣고, 만지면서 교제한 사도의 핵심 메시지인 것입니다.
가르침 :
1) 성령과 물과 피. 사도 요한은 인간의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증거를 들어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리스도로서 우리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에 합당하신 자격을 가지신 분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대의 영지주의나 오늘날의 구원파나 신천지나 어떤 이단, 사이비의 주장이 모두 잘못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잘못된 가르침을 베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의 시금석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에게 순복함이 모든 믿음의 시작이요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안에 거하는 자에게는 필연적으로 영생이 주어지게 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살기에 세상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늘의 것에 소망을 두는 삶을 살아낼 수 있게 됩니다. 그러한 소망을 소유하고 누리고 있던 사도 요한은 자신의 상태를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누리도록 하기 위해 요한일서를 기록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향후에 요한복음도 바로 그 목적을 위해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기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예수님 외에는 영생이 없다면 우리가 날마다 예수가 드러나야만 영생을 소유하고 있음이 증거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이라는 하루 하루 속에서 참되게 예수를 닮고, 또 증거하는 내용이 실천적으로 채워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적용 :
1) 성령과 물과 피. 그것이 주님을 증거하는 것일뿐만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증거해 주시는 은혜의 방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증거해 주시는 성령님의 특별하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2) 영생이 있는 존재는 삶의 모습이 달라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사는 제한된 삶의 모습과 동일하다면 그것이 어떻게 영생을 소유한 사람의 삶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영생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선포도고 적용되고 복종되는 역사가 있게 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내 생각과 내 혈기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영이 나를 통하여 드러나게 되는 복됨이 있도록 나를 죽이고 성령의 소욕을 드러내는 태도와 자세를 갖추고 지낼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