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시각장애인들 “동료의 죽음, 사회적 타살” 울분“비현실적 활동지원 제도, 강압적 행정 때문”‧‧국회 앞 추모대회
장애인활동지원법 개정, 민·관협의체 구성 등 재발방지 대책 촉구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와 대한안마사협회는 24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고 장성일 열사 추모 및 시각장애인 생존권 쟁취 결의대회’를 개최했다.©에이블뉴스
전국 천여 명의 시각장애인들이 국회 앞에 모여 활동지원 부정수급자로 내몰려 극단적 선택을 한 고 장성일 안마사를 애도하며, 시각장애인의 생존권과 자립생활을 위해 제도를 개선하라고 목소리 높였다.
이날 고인을 애도하기 위해 모인 시각장애인들의 목소리에는 울분이 가득했다. 고 장성일 안마사의 죽음은 불합리하고 비현실적 제도와 강압적 행정으로 인한 사회적 살인이라는 이유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이하 한시련)와 대한안마사협회는 24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고 장성일 열사 추모 및 시각장애인 생존권 쟁취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지난 4일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안마원을 운영하던 장성일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른이 넘어 중도에 시각장애인이 된 장 씨는 자립을 위해 6년간 의정부와 서울을 오가며 안마기술을 익혔으며 2019년 직접 안마원을 개원했다. 장 씨는 홀로 안마원을 운영하며 일부 잡무에 대해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왔다.
그런데 지난달 의정부시가 장 씨의 안마원에 안마바우처와 관련한 지도점검을 다녀간 이후 담당 공무원이 장 씨의 활동지원사를 목격하고 담당부서에 민원을 넣었고 이후 시청 측은 활동지원 부정수급에 대한 대면조사를 한 후 ‘활동지원사가 생업을 도와주는 것은 위법‘이라며 활동지원급여 약 2억 원을 환수 조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고 장성일 안마사를 추모하기 위한 임시 분향소.©에이블뉴스
현재 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수급자의 생업을 지원할 수 없다. 하지만 장 씨는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으며, 사전 안내나 교육조차 없었다며 억울함을 담은 유서를 남겼다.
이에 한시련과 대한안마사협회는 12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일 서울역 광장에 추모 분향소를 설치하며 고 장성일 씨를 애도하고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장 씨의 누나 장선애 씨는 “이렇게 많은 분이 동생의 죽음 앞에 와주셔서 감사하다. 동생은 너무 바르고 긍정적으로 살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갑자기 생기니 지금도 믿기지가 않는다. 잘못된 제도가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아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잠시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던 장선애 씨는 “그동안 몰랐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불합리한 제도 속에 힘들게 견뎌왔는지 알게 됐다. 앞으로 동생과 같은 비극적인 일이 더 이상 생기지 않게 법을 개정할 수 있도록 다 같이 힘을 모아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24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개최된 ‘고 장성일 열사 추모 및 시각장애인 생존권 쟁취 결의대회’에서 추모사를 하는 대한안마사협회 최의호 중앙회장. ©에이블뉴스
대한안마사협회 최의호 중앙회장은 “중도에 장애가 발생하면 삶을 비관하고 방황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특히 고인처럼 30세가 넘어 발생된 시각장애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배우고 경험해야 하기 때문에 오랜 기간 힘든 역경을 이겨내야만 재활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제 기억으로는 고 장성일 씨는 중도 시각장애인이었지만 밝고 본인이 만든 안마원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자부심이 그 누구보다 뛰어난 자랑스러운 안마사였다. 그렇기에 더욱 비통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5년 동안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며 살아왔던 그에게 돌아온 것은 부정수급자로 내몰리고 2억 원의 환수금까지 감수해야 된다는 통보였다”면서 “이는 불합리한 제도와 강압적인 공권력으로 무참하게 짓밟혀버린 우리 사회가 만든 살인”이라고 규탄했다.
24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개최된 ‘고 장성일 열사 추모 및 시각장애인 생존권 쟁취 결의대회’에서 대회사를 하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김영일 회장. ©에이블뉴스
한시련 김영일 회장은 “시각장애인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인간의 존엄과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현행 장애인활동지원 제도는 시각장애인들의 요구와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채 시각장애인의 자립과 사회참여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신체활동, 가사활동 및 이동보조로 국한된 활동보조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실제적인 활동지원 내용과 상관없이 직장에서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하도록 무조건 제한하고 있는 현행 조항을 반드시 삭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정부와 국회는 우리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마라. 안되면 될 때까지 두드리고 두드릴 것이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힘을 합치고 목소리를 낼 것이고 작은 물결이 큰 울림이 될 때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끝까지 함께 손잡고 모두가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자”고 외쳤다.
이들 단체는 ▲‘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한 법률’ 제16조 활동지원급여의 종류 등 즉각 개정 ▲불합리한 제도와 고압적인 행정으로 세상을 떠난 고인과 유가족에 대한 사과 ▲‘장애인활동지원제도 개선을 위한 민·관협의체’ 구성 ▲지자체별로 제각각인 안마바우처사업을 표준사업으로 분리 ▲안마사파견사업 참여 안마사들의 근로환경 개선 등을 요구했다.
24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개최된 ‘고 장성일 열사 추모 및 시각장애인 생존권 쟁취 결의대회’에서 발언하는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 서미화 의원,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에이블뉴스
시각장애인 당사자인 국회의원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을 비롯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도 이날 추모대회에 참석해 이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주었다.
박주민 의원은 “오랜기간 활동지원제도의 기준이 모호하고 사각지대가 있다는 문제제기가 있었고 지금까지 제대로 개선되지 못했던 것 같다. 불합리한 제도로 인해 유명을 달리하신 고인에 대한 명복을 빈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관련된 제도가 개선돼 유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서미화 의원은 “공무원이 장애인을 범죄자 취급하면서 제대로된 조사나 절차 없이 통으로 2억 원을 추징하겠다고 경고하는 일이 벌어졌다. 고인이 5년 동안 활동지원사에게 일상생활 지원이 아닌 근로지원만 받았겠는가. 언제부터 공무원이 이러헥 국민을 강압적이고 고압적으로 대하게 됐는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보건복지부와 의정부시는 이 사안에 대해 명확하게 고인과 유가족, 시각장애인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저 또한 국회에서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김예지 의원은 “참담하고 무거운 마음이다. 늘 여러분의 힘이 되려고 한다고 말씀드렸고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안타깝다”면서 “오늘 이 자리에서 법률의 개정을 많이 외쳐주셨다. 여러분의 ‘개정하라’는 외침을 가지고 이 목소리가 국회에 전달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