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인생 탐미적인 몽환으로 도피하고 싶다.
인생여행 68년째다. 옛날인생은 철학으로 살고 젊은 인생은 계산으로 산다.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요즘 알고리즘이란 단어가 유행이다. 오늘날 청년은 알고리즘인생을 살고 우리 같은 노년층은 아날로그인생을 산다. 앞길이 구만리인 청년은 새로운 정보를 열심히 찾는 반면 나이가 들어 갈수록 모험에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기존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산다. 한정된 시간을 알차게 이용하려는 심리 때문이다. 학생은 기숙사가 어울리고 노년은 양로원이 어울린다. 그렇잖아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마당에 복잡한 수학 문제 풀듯이 기술적 인생살이가 마뜩치 않다. 이 시대는 이세돌과 알파고를 보고 인생 골치 아픈 문제 등을 인공지능으로 유용하게 풀 수 있다고 눈치를 챈다. 계산적으로 살아가는 젊은이의 효율성과 유익성만을 놓고 볼 때는 합리적으로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기계와 달리 감성에 호소하기도 한다. 감정에 희비를 느끼고 호오(好惡)를 판단한다.
문화라는 것은 알고리즘으로 생산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물질문명의 소산인 인공지능이 문화의 영역으로 자리하기에는 요원하다. 우리 같은 인생여정 68년째는 한계수치에 다다르기에 요즘 유행하는 노화는 못 막아도 건강수명은 늘릴 수 있다는 꼬드김도 시큰둥하다. 우리는 오직 쓰라린 인생여정의 아픔과 과정의 곡절을 다독이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다. 요즘 같은 3월에 봄이 오면 어떤 이는 감성에 젖는다. 겨울바람에 얼어붙은 초목이 3월이 되면 시절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아름다운 꽃잎으로 자연에 보답한다. 꽃잎이 눈물을 뿌리고 이별을 한탄할 즈음엔 이글거리는 햇빛과 합방하며 한여름을 같이 산다. 구름을 타고 여러 부류의 비손님을 맞이하며 또 이별을 통곡한다. 시성 이백의 인생길 어려워라(行路難: 행로난-이백 )의 시 한편이 떠오른다.
아! 인생길 어려워라
황금 술잔, 좋은 술이 만 말이고
옥쟁반의 진기한 안주 만량이나 되어도
잔 멈추고 젓가락 던진 채 먹을 수가 없어
황하를 건너자니 얼음이 강을 막고
칼 뽑아 사방을 둘러보니 마음만 아득하여라
태항산에 오르자니 눈이 산에 가득하다
한가히 맑은 개울에 낚싯대 드리우고
홀연히 낚싯배 타고 염라대왕 곁에 가는 꿈꾸었다
갈 길이 어려워라, 갈 길이 어려워라
길림길이 많은데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거센 바람이 물결 가르는 그때가 오면
구름 돛을 높이 달고 큰 바다 건너가리라
[* 작자 두보는 日邊은 옥황상제나 염라대왕 가는 꿈이라 시상을 그렸지만 당시 독자들은 임금님 곁에 가는 것으로 해석했다.]
위의 시 끝 구절에 표현한 “거센 바람이 물결 가르는 그때가 오면 /구름 돛 달고 푸른 바다 헤치리라.” 라는 호기도 우리마음에는 살아있다. 위의 시는 인생여정의 감수성과 울림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전해진다. 수 천 년 세월을 초월하고 천만리 국경을 넘어서는 인간감성의 어깨동무 같은 친함을 느낀다. 이 감정이 요즘의 주어진 문제를 논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와 방법 명령어를 모아 수학문제 풀듯이 감수성을 감정을 알고리즘으로 펼칠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생여정의 나그네임을 절실히 다가올 때도 있다. 나그네를 떠나보내는 친구에게 “여보게! 술 한 잔을 그대에게 권하노니 인생 남은여정에 사대육신이 멀쩡하거들랑 다시 찾아와 권주가를 부름세.” 이 권주가는 인생 외로운 나그네의 간절하고 절절한 권주가다. 술이란 이백의 낭만과 두보의 현실을 넘나드는 구름이다. 나는 일산 집에서 부인과 막걸리를 자주한다. 요즘 서울장수막걸리도 두 종류다. 병마개가 푸른 것과 흰 것이 있다. 흰 것은 국산 쌀로 빚은 술이고 푸른색은 수입쌀이다. 우리부부는 흰 병마개 막걸리를 좋아한다. 음주 정도를 말하자면 한 달에 수 십 병이 된다. 우리부부는 이런 재미로 늙어간다. 당나라 시인 주선(酒仙:술에 관한 한 신선경지)인 이백(이태백)은 이와 같은 인생여정을 고해(苦海)라는 의미의 만고수(萬古愁)란 말을 많이 쓴다. 내가 이 단어에 공감되어 이백의 시 장진주(將進酒)를 좋아한다. 만고수는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맞부딪치는 시름이다. 달과 술의 힘을 빌려 현세의 구속에서 벗어나 초월하려는 이백의 마음이 드러난 시 장진주를 소개한다. 이 장진주사는 현대인들에겐 맛이 없는 시일 수도 있다. 이백이 참소를 당해 아량으로 유배되어 읊은 시다.
그대에게 술을 권하면서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황하의 물이 하늘에서 내려와, 세차게 흘러 바다에 이르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을/
그대는 보지 못 했는가/ 좋은 집에서 밝은 거울에 백발을 슬퍼하고/ 아침에는 푸른 실과 같더니/ 저녁엔 눈처럼 희어지는 것을/
인생이란 때를 만났을 때 즐거움을 다해야 하나니/ 금 술잔이 빈 채로 달을 맞이하게 해서는 안 될 일이지/
/중략/
예로부터 성현들 모두 사라졌지만/ 오로지 술 마시는 사람만 그 이름을 남겼다네/
다섯 가지 무늬 있는 말과 천금의 가죽옷을/ 아이 불러 좋은 술과 바꿔 오게 하시오/
그대들과 더불어 만년 묵은 시름 씻어버리도록”/
호쾌한 기상과 우울함이 번갈아 느껴지는 알쏭달쏭한 시다 이백이 세속에서 벗어나 이상세계를 꿈꾸었던 낭만 주의자였다면 두보는 안록산의 난으로 고초에 빠진 백성과 나라를 위한 마음을 시에 담은 현실주의였다. 기쁨이나 성취는 굳이 시로 표현하지 않아도 된다. 아쉬운 것이 목표가 된다. 그 슬픔을 곱씹어보며 마음을 정리하기도 한다. 목표의 상실보다는 사람의 이별이 상처가 컸다. 당시에는 전쟁 등으로 이별의 시가 유독 많이 등장한다. 당나라수도 장안의 파교(灞橋)라는 다리는 이별장소로 유명하다. 파교절류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당시(唐詩:당나라 시)가 슬픔정서에 치우쳤다는 의견도 있다. 이렇게 사람과의 이별은 통한으로 가슴을 쓰리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의 주인공 키팅 선생의 말마따나 시, 아름다움, 로맨스, 사랑, 우정, 여행, 이런 것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라고 말한다.
3월달! 우리들이 3월에 찾아오는 봄을 맞이하며 누구와 함께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를 찾아보는 기회를 만들면 어떨까요? 술자리도 좋고, 여행도 좋고, 부인과 술잔을 부딪치는 것도 좋고, 전국축제에 골라 구경하는 것도 좋고 오솔길을 걷는 것도 좋고, 이렇게 음미하듯 즐기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일산에 어제 밤부터 비가 오더니 아침에는 그치고 날이 갰다. 집사람이 깨어나면 메밀막국수, 수제비, 주꾸미, 잔치국수, 아니면 멀리 바다에 출렁이는 파도를 바라보고 영혼을 정갈하게 하고픈 여행을 골라서 가려고 한다. 다시 한 번 탐미적인 몽환으로 도피하고 싶다. 만물이 기지개 펴고 울렁이는 봄바람이 산야를 어루만지는 대자연을 감상하며 우리부부의 사랑은 변함없이 황홀하게 그리움이 녹아드는 서정으로 시골향기가 차창 곁으로 펼쳐간다. 아! 이것이 사는 이유다.
2018년 3월 8일 오전 11시에
율 천
첫댓글 정겨운 부부에 노후가 아름다워요
부부애가 돋보이십니다 남는게 가족뿐이라는 생각드네요
노후가 안정된다는 것은 인생을 자~알 사셨다는 겁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