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동차 부품은 가격은 쌀지 모르지만 품질과 기술에 있어서는 아직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에 올라오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최대의 자동차 부품업체인 덴소의 후카야 코이치(深谷紘一·59) 사장은 “한국의 자동차 부품 산업은 소기업 위주인 2, 3차 벤더의 품질이 떨어져 창원 등 한국 내 4개 공장에서 생산하는 부품의 품질이 기대했던 수준에 못 미친다”고 말했다.
후카야 사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9월29일 아이치(愛知)현 카리야(刈谷)시 덴소 본사 접견실에서 약 80분 동안 진행됐다.
도요타의 부품 사업부에서 1949년 독립법인으로 시작한 덴소는 현재 일본에선 최대, 세계에선 4위권의 대형 부품업체다. 한국에는 76년 진출했다. 후카야 사장은 37년간 덴소 한길을 걸어온 정통 덴소맨이다.
미국 공장 사장과 유럽 사업 담당 등을 거쳐 국제 감각이 풍부하다고 들었습니다. CEO로서 글로벌 경영철학은 무엇입니까(그는 일본 사장 중 특이하게도 명함에 조지(George)라는 영어 이름을 새겨넣고 다닌다).
“원칙에 충실하자는 생각입니다. 덴소의 성공에는 자동차 업체로부터 하청을 받아 생산하는 것보다는 필요한 제품을 먼저 개발해 제안(Desine In)하는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이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불량 없는 품질 수준을 지켜 나가겠습니다.
두번째는 고객만족입니다. 말뿐인 고객만족이 아니라 문제가 있을 경우 바로 현장에 쫓아가 해결하는 서비스 시스템을 운영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루 3만∼4만개를 생산하는 생산 부품의 안정적인 공급입니다.
납기가 지켜져야 고객도 안심할 뿐 아니라 재고 비용도 줄일 수 있습니다. 도요타의 간판(看板) 시스템이 바로 덴소처럼 정확한 납기를 준수하는 부품업체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는 한시간 거리인 덴소와 도요타 공장 사이를 매 시간 12∼14대의 트럭이 체인처럼 돌며 부품을 조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시간 덴소 공장과 도요타 켄터키 공장 사이 5시간 거리에 60대의 트럭이 항상 도로상에 있을 정도로 납품시스템은 일본과 차이가 없다는 것.
임기 중 경영 목표가 있다면.
“한창 투자가 진행 중인 유럽·중국의 공장에 대한 품질·기술 수준을 최소한 미국 덴소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도요타에만 안주하지 않았던 독립 경영이 오늘날의 덴소를 만들어낸 요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전임 사장과 마찬가지로 사업에선 독립성을 철저히 유지할 계획입니다. 도요타의 경쟁사인 혼다·닛산과 미국 빅3(GM·포드·크라이슬러)에 대한 매출이 증가하는 추세고 더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요타는 가장 큰 고객일 뿐 그 이상도 아닙니다. 도요타도 이젠 외부 영업을 장려합니다. 고객의 비밀보호를 위해 공동으로 연구한 제품은 적어도 1년 이상 다른 회사에 팔지 않습니다.”
그는 한 일화를 소개했다. 몇 년 전 혼다와 함께 신기술을 공동 개발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 이를 안 도요타 측에서 ‘왜 그런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따졌다고 한다. 덴소에선 ‘혼다는 덴소의 고객인데 왜 도요타에 알려줘야 하냐’고 되물었고 이후 그런 경우는 없어졌다고 한다.
한국의 덴소는 고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비즈니스를 더 키울 생각은 없는지요.
“한국 덴소는 아직 품질 수준에서 일본 덴소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2, 3차 벤더(납품업체)가 납품하는 제품의 품질이 문제가 있기 때문이죠. 덴소 기술이 좋아도 이를 뒷받침할 만한 2, 3차 벤더의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에 좋은 품질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일본에서 부품을 들여오면 비용이 올라가 가격이 맞지 않고요. 또 한 가지는 이들 납품업체들이 영세해 납기를 잘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같은 점만 해결되면 덴소코리아 사업을 더 키울 수 있습니다. 물론 현대차 그룹이 납품을 늘려주면 당연히 한국 사업도 커지고 덴소 역시 좋습니다(웃음).”
일본의 경우 2, 3차 벤더의 현장 근로자들은 덴소·도요타에 비해 임금 격차가 크지 않다. 많아야 10% 정도다. 한국처럼 2, 3차 벤더에게 일방적인 코스트 다운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들 업체들은 경영 안정과 기술력을 가질 수 있고 결국 덴소 품질의 바탕이 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노사 분규 끝에 근로자의 임금이 올라가면 상당 부분을 납품업체에 전가한다. 그래서 납품업체 근로자들의 임금이 자동차업체에 비해 50% 수준까지 떨어질 뿐 아니라 안정적인 경영이 어렵다.
한국 자동차와 부품산업의 품질 수준을 어떻게 하면 끌어올릴 수 있을까요.
“앞에서 얘기한 점이 우선 해결되야 합니다. 품질로 유명한 도요타의 생산 방식에 관한 수백권의 책이 있지만 결국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현장 근로자가 얼마나 정성을 들이는지, 불량이 있을 때 이를 정확히 체크하고 대체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 있는지, 경영자의 비전이 명확한지가 중요합니다.”
한국에도 IMF 전에는 덴소 같은 대형 부품업체인 만도가 있었습니다. 한국에 이같은 대형 업체가 있어야 자동차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만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는 대형 업체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동차업체는 글로벌 아웃소싱을 통해 부품 수준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대형 부품업체를 키워내는 것보다 전체적인 부품산업의 품질과 기술 수준을 올리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노조 문제가 큰 골칫거리입니다. 덴소의 경우는 어떤지요.
“49년 도요타에서 분사할 때 심각한 문제를 겪었습니다. 이후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적어도 덴소에선 노사의 꿈이 같습니다. 회사의 성공이죠. 한국에선 경영자와 노동자가 목적(꿈)을 공유하는 고리가 약한 것 같습니다. 노조는 좋은 품질을 유지하려 노력해야 하고 경영진은 고객을 만족시켜 회사를 키워내는 게 목적 아닙니까.”
후카야 코이치 덴소 사장
도쿄공대 기계공학과 卒
1966년 덴소 입사
95년 임원 승진, 미국 미시간주 공장 사장
99년 전무 승진, 전략기획과 생산기술 총괄
2003년 대표이사
덴소
도요타자동차의 부품사업부에서 분리독립한 덴소는 최근 도요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면서 세계 굴지의 자동차 부품업체로 성장했다. 여기에는 신기술 개발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사풍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1998년 이후 덴소는 탈(脫) 도요타자동차에 힘을 쏟아 지난해 처음으로 외부 회사에 대한 매출 비중이 50%를 넘었습니다. 이 같은 결실에는 매년 매출액의 8% 이상을 연구개발비에 투자한 기술력과 불량없는 품질이 뒷받침했습니다.”9월 초 세계 4위의 자동차 부품업체인 덴소 본사가 있는 아이치켄(愛知縣) 가리야(刈谷)시를 찾았다. 일본의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도요타의 기술과 품질을 알려면 먼저 덴소를 보라’고 주문한 이유를 알아 보기 위해서였다.
가리야시는 나고야(名古屋)에서 자동차로 40여 분, 도요타의 본사와 공장이 있는 도요타(豊田)시와는 한 시간 거리다. 도요타는 이 같은 거리적인 이점을 활용, 부품 재고를 비축하지 않고 당일 두 시간 이내에 부품을 조달(JIT ·저스트 인 타임)해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이날 회사 소개를 맡았던 야마다 모리오(山田森男) 홍보부장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기술력과 품질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다. 덴소는 지난해(2002년 4월~2003년 3월) 매출 2조3,700만엔(23조7,000억원)에 경상이익 2,335억엔으로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경상이익률은 10%로 세계 부품업체 가운데 최고다.
덴소의 매출액은 현대자동차와, 경상이익은 국내 최대 부품회사인 현대모비스의 매출액과 비슷한 수준이다. 덴소는 단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덴소의 일본 내 9개 공장과 해외 107개 지사 ·공장에서 8만9,000여 명의 종업원이 일한다. 매출액 중 에어컨 등 공조장치 부품이 35%, 동력전달장치가 21%, 내비게이션 등 전자장치가 12%를 차지한다. 도요타 차 한 대에는 덴소 부품이 10~30% 정도 들어가 있다. 일본자동차협회 관계자는 “혼다(本田) ·닛산(日産)에는 덴소같은 경쟁력 있는 대형 부품회사가 없다는 것이 도요타와 구별되는 한 요소”라고 말한다.
덴소의 이 같은 승승장구에는 98년 도요타의 색깔을 벗고 세계적인 부품업체로 거듭나기 위해 제시한 ‘중장기 2005년 비전’이 밑거름이 됐다. 바로 기술과 경영의 독립이다. 지분율만 따져 보면 30%를 갖고 있는 도요타자동차가 최대주주다.
도요타로부터의 독립은 96년 사장에 오른 오카베 히로무(岡部弘 ·66) 현 부회장이 주도했다. 그는 1960년 나고야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덴소에 입사, 40여 년간 한 우물을 판 정통 덴소 맨이다. 덴소가 세계 최고가 되려면 도요타의 경쟁 회사에도 납품해야 하는데 도요타 색이 짙을수록 판로 개척이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또 도요타 의존도를 줄이고 판로를 다양화해야 미래의 위험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오카베와 경영 연구 모임을 하고 있는 나고야 대학 국제개발대학원 조두섭 교수는 “오카베 체제 이후 덴소에서 도요타의 낙하산 인사를 찾아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야마다 부장은 “현재 임원 17명 중 도요타 출신은 2명에 불과할 정도”라며 “독립 경영을 바탕으로 도요타의 경쟁 회사에 대한 납품 비율이 매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덴소의 지난해 매출 중 도요타(다이하츠 ·히노 포함)가 차지하는 비중은 49.8%. 90년대 70% 이상이었던 것이 뚝 떨어졌다. 나머지 50.2%는 도요타의 경쟁사 납품 비율이다. 일본에선 혼다가 8.3%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빅3’에 대한 납품도 점점 늘고 있다. 다임러크라이슬러 4.4%, GM 2.7%, 포드 2.4%에 달한다.
그러나 이 같은 덴소의 독립 경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일본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델파이 ·비스테온이 모회사 부품 사업부에서 분리된 이후 GM ·포드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며 ”덴소의 경영 독립은 도요타의 경쟁사를 키워 도요타를 위험하게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덴소의 또 다른 강점은 막강한 73개의 자회사와 우량한 2 ·3차 벤더(납품업체)가 뒷받침한다는 데 있다. 덴소는 자회사들에 각각 30% 이상 지분을 출자, 안정적인 부품 확보와 불량률 제로를 추구하고 있다.
자회사는 회사의 간부 인력 수급에도 도움이 된다. 부 ·차장으로 정년을 하거나 임원을 한 후 관련 자회사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풍토상 55세가 넘은 고참 부장의 경우 월급이 동결되거나 깎여도 마다 않고 자회사로 옮긴다.
특히 이들 자회사와 2 ·3차 벤더의 현장 근로자들은 덴소 ·도요타와 비슷한 임금을 받는다. 또 한국처럼 2차 벤더에 일방적인 코스트 다운을 강요하지 않는다. 2차 벤더의 경영 안정과 기술력 향상에 노력하는 공생의 삶이 철저한 품질을 낳는 바탕이 되고 있다.
한국 자동차업계의 경우 임금이 올라가면 부담의 상당 부분을 납품업체에 전가한다. 그래서 납품업체들은 근로자들의 임금이 차 생산업체의 최저 절반에 불과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 속에 근무하고 있다. 덴소 관계자는 “한국 부품 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몇몇 중견 회사를 뺀 나머지 2 ·3차 벤더의 기술력과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한국업체에서 부품을 조달하고 싶어도 자격 미달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안정된 노사 관계도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다. 덴소에서는 대규모 흑자를 내도 임금협상 때 노사간 대립을 찾아 보기 어렵다. 노사 대립은 경쟁력을 떨어뜨릴 뿐이라는 사실을 노사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덴소는 막대한 흑자에도 불구하고 올해 임금(기본급)을 동결했다. 일부 성과급만 지급했을 뿐이다.
이런 점이 우리와 가장 다른 현실일지 모른다. 우리가 노사문제로 에너지를 소비하는 동안 덴소는 노사 협력을 바탕으로 생사가 달린 코스트 다운과 신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매년 매출의 8% 이상 투자해온 연구개발비와 3,000명이 넘는 개발 인력은 덴소 기술력의 원천이다. 최근에는 내비게이션 분야와 연계한 지능형 교통시스템(ITS)과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텔레매틱스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자동차에 무선 인터넷 사용이 가능한 컴퓨터를 달겠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운전을 편하게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전자장치와 관련 정보가 돈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수요가 급증하는 디젤 엔진의 커먼레일 인젝터(고압으로 연료를 분사시키는 방식)를 놓고 보쉬와 한판 싸움을 벌이고 있다. 트럭용 커먼레일은 벌써 보쉬를 앞서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환경자동차 개발에도 앞서 간다. 차세대 자동차인 연료전지 개발을 위해 산요(山陽) 등과 공동으로 가장 중요한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한국에서 붐인 모듈화의 경우 단순히 자동차 회사의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부품업체에서 대신 조립해가는 후진적인 개념이 아니라 신차 개발 단계부터 참여해 자동차 회사와 공동 개발하는 적극적인 방식을 이미 90년대 후반 도입했다. 덴소는 1949년 도요타의 부품 사업부에서 독립, 니혼덴소(日本電裝)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이후 53년 독일 보쉬사와 기술 제휴를 하면서 글로벌 기업의 걸음마를 시작했다. 87년엔 글로벌 전략에 맞게 ‘니혼’ 두 글자를 떼고 사명을 덴소로 바꿨다. 90년대 들어서부터는 본격적인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덴소가 도요타에 대한 부품 공급을 통해 사세를 키워 왔지만 글로벌화에 있어서는 도요타보다 10여 년 앞섰다. 이미 70년대 초반 개발도상국 등에 현지 공장을 설립하는 등 적극적인 해외 진출로 비용 절감을 추진해왔다. 도요타에만 안주하지 않았던 독립 경영이 오늘날의 최강 덴소를 만들어낸 것이다.
한국에선 만도기계가 외환위기 이전에 현대차라는 안정적인 납품처를 바탕으로 덴소와 비슷하게 성장했다. 그러나 다른 곳에 한눈을 팔다 한순간에 도산했다.
이후 덴소에 필적할 수 있는 부품업체를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현재 현대자동차 그룹의 현대모비스가 2001년부터 대형 부품업체로 변신을 꾀하고 있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덴소 공장을 둘러보고 문을 나서는 기자에겐 우리나라 자동차가 일본보다 10년 뒤떨어졌다고 가정했을 때 부품은 20여 년 이상 뒤떨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부품이 없고선 결코 우수한 자동차가 나올 수 없다. 하루 빨리 초우량 부품 회사를 키워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