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님,
제주가 거대한 항공모함이 될 수는 없습니다!
다시 3월 7일 구럼비 발파의 날.
올해도 3월 7일이 다가오면서 다시 구럼비에 들어가겠다는 신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작년 같지 않습니다. 바로 헌병대장이 전화로 몇 사람이 들어갈 건지, 얼마나 머물 건지, 어떤 행사를 할 건지 신청서에 구체적으로 적어 달라며 만나자고 했습니다. 뜻밖에 연락이었습니다. 강정에 함께 계시는 분들에게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좋은지 물었습니다. 경험으로 알게 된 부정적인 부분과 긍정적인 부분들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다시 헌병대장과 두 번 정도 만나고 누가 들어 갈 것인지를 결정했었습니다. 그런데 3월 7일이 되는 5일 전에 헌병대장이 다시 만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코로나가 아직 진정국면이 아니어서 부대 안의 모든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될 뿐 아니라 부대 안에 있는 사병들도 외출이 금지되어 있다고 하면서 부대 안 수변 공원에 남아 있는 구럼비에 지금은 들어갈 수가 없게 되었다고, 부대 개방의 날을 조만간 만들 테니 그때 들어오라 합니다. 3월 7일이 특별한 날이어서 저희가 들어가려는 것이지 부대를 구경하려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렇게 3월 7일 구럼비에 들어가는 것은 거절되었지만 저희는 구럼비 기억 순례 시간을 가졌습니다.
3일간 집회신고를 하고 해군기지 앞에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깃발들과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코로나로 함께 한다는 것이 힘들 것 같아서 라이브 방송을 준비했을 뿐 많은 사람이 직접 방문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7일 기억 순례의 시간이 되자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모여 긴 행렬이 되었습니다. 철조망을 따라 구럼비와 함께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 갔습니다. 구럼비가 바다의 텃밭이었고, 구럼비가 꽃밭이었고, 구럼비가 놀이터였고, 구럼비의 할 망 물은 치료하는 물이었고, 구럼비는 신성한 기도처였던 것들을 다시 기억하며 그렇게 걸었습니다. 군인들도 휴일이었는데 비상령이 떨어져 중무장하고 저희을 향해 경계를 서며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함께 걸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과 함께 북 치고 장구 치고 꽹과리 치며 행렬을 하고 있는 저희가 위협적으로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 이런 경계 근무를 서야 하는지 의아해하며 군대가 뭐지? 라는 의문을 품었을 수도요. 아마도 대부분은 휴일 근무 때문에 엄청 짜증이 났겠지요…
제주도는 점점 군사기지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제주 강정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더니 여론조사에서 분명히 반대 의견으로 결론이 난 제 2공항을 계속해서 강행하겠다는 발표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축구장 152배나 되는 국가종합위성센터를 구좌읍 덕천리에 짓겠다고 합니다. 제주를 항공모함과 공군기지 그리고 레이더 기지를 갖춘 거대한 군사기지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제주가 어떤 곳입니까? 4.3 항쟁으로 군경에 의해 민간인 3만이 희생당한 곳입니다.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도 몰랐던 그 때의 일들을 진상규명과 함께 희생자 명에 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73년이 넘어 이제야 발의 되었습니다.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한 지역 안에서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고 묵인되었으며 희생에 대한 신음 소리도 낼 수 없었습니다. 제주에 왔을 때 처음 마을 어르신이 ‘까매기 모르는 식게’ 라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무슨 뜻인지 물었더니 제주도 방언으로 제사가 끝난 뒤 까마귀가 걸명(제사 끝에 잡귀에 주기 위해 음식을 조금씩 뗀 것)을 먹으러 오기도 전에 몰래 제사를 지낸다는 뜻이라고 하시면서 어렸을 때 집집마다 귀신도 모르는 제사를 지내셨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혹여나 잘못되어 연좌제로 남은 자식들에게까지 올무가 될까 봐 죽은 자도 마음 놓고 기억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한 아픔이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선언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평화의 섬에 대한 담론이 이런 역사의 피 흘림에서 출발했던 것입니다.
다른 길은 가능합니다.
대한민국은 현대전을 경험한 나라입니다. 민족상잔을 겪은 나라입니다. 전쟁이 두렵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전쟁을 끝낼 생각이 없습니다. 국방력을 키우는 것에는 수조 원을 들이지만 평화를 위한 노력에는 너무 인색합니다. 남미의 코스타리카라는 군대를 없앴습니다. 남미만큼 국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곳에서 군대를 없앴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전쟁을 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외교적인 노력과 그들의 비무장이 국제사회를 움직여서 위험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곳은 유엔 평화 대학이 들어섰고 감히 누구도 그곳을 무력으로 공격한다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유럽의 EU 국가들을 보십시요. 그 땅에서 수 백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전쟁이 있었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이런 나라 간에 전쟁이 있으리라 생각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길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무력이 아닌 다른 방법을 사용하여 안보를 지킨다는 것은 아마도 훨씬 더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힘으로 누르는 것을 포기하게 되면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 상대방의 행동반경을 이해해야 하고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의 수를 줄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려야 합니다. 그것은 품격을 높여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품격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보이는 행동에서 드러납니다.
우리나라가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있지만, 중국도 미국도 일본도 러시아도 이제 대한민국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런 힘이 우리에게 있는데도 게으르게 우리를 강대국의 패권 싸움에 이용당하도록 내어줄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제주를 군사기지화 하려는 것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선의 최전선에 제주를 세우려는 것이겠지요. 다시 제주를 희생양으로 내어 주려는 것입니까?
어느 날 엔가 전쟁도 전쟁을 연습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 이 제주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비무장으로 그 첫발을 내디뎠다고 그렇게 역사에 기록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한 염원을 오늘도 해군기지 앞에서 백배로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