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민(보컬, 기타), 김동원(드럼), 전성희(피아노)로 구성된 3인조 모던 록 밴드 이상의날개의 첫 EP 앨범이다. 이들은 그동안 Detuned Radio라는 팀으로 활동해오다 2009년 5월 이상의날개로 팀명을 개명했고. 작년 말, 프로젝트 그룹의 형태에서 그룹의 형태로 전열을 정비했다고 전해진다. 제일 먼저 재킷이 눈에 들어온다. 황량한 벌판에 선 앙상한 나무, 그리고 정면으로 나무를 바라본 채 시선을 던지는 한 사내의 모습. 톤은 어두우며 체감온도는 칼날처럼 스산하다. 멤버들에 따르면 시집 같은 느낌을 구현하고 싶었다고 하는데, 현시대의 키워드를 두 단어의 축약으로 제시한 타이틀과 버무려지니 과연 그런 인상도 받는 게 사실이다.
상실의 시대. 그것을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방법론이 있을 것이고, 은유와 응축을 통해 전달하는 전법도 있을 것이다. 시집의 변형이라는 말에 동의하면서, 나는 이상의 날개가 후자의 기술을 채택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문자 그대로 그러난 메시지보다, 말과 말 사이의 틈에 방점이 찍힌다. 그것은 제목도 마찬가지다. 메멘토-섬-끝-향기. 심드렁하게 뿌려진 이름들. 포장과 채움을 중시하는 현대식 패러다임과는 다소 맞지 않는 설정. 무언가 비어 있는 듯 허전하고, 사운드와 곁들여 곱씹어 봐도 공복감은 가시질 않는다. 그러니 시간단축과 명쾌함을 좋아하는 걸음 빠른 사람이라면 대화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부지런히 걷다가도 슬쩍, 숲길을 내려다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혹, 교감의 끈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전반적으로 활력보다는 침잠이 지배하는 음악이다. 물론 슈게이징이나 드림 팝의 공식과는 차별화된다. 록과 팝을 기둥으로 삼되, 특이하게도 네오 포크(우리에게 익숙한 잭 존슨(Jack Johnson)류 말고, 유럽 아방가르드 씬에서 1990년대부터 유행했던 장르를 말함)의 바람도 잠깐 맡을 수 있다.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추기도 전에 낙하를 시도하는 '메멘토'를 들으면 끄덕이게 된다. 더 수줍은 표정의 '섬'에서 하강기류는 더 강해진다. 1980년대 풍의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구사하는 '끝'도 다르지 않다. 뿅뿅거리는 전자오락실 사운드가 들뜬 표정 같지만, 묘한 애수가 동전의 뒷면에 담겨 있다. 아마, 7분에 달하는 '상실의 시대'가 밴드의 엡블렘과도 같은 곡이 아닐까 한다. 두 단어로 압축하면 멍든 서정이라고 하고 싶다. 처연하게 내면을 파고드는 피아노와 뒤이어 중첩을 시도하는 기타. "결국 나는 나를 잃어버리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향해 걸어가네"라는 가사를 읽다 다시 보랏빛의 사진을 본다. 모든 게 적절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제법 공감 가는 내러티브와 그에 어울리는 표지가 아닐 수 없다.
홈페이지를 탐방하다 이들의 이름이 이상의 날개가 아니라, 이상의날개라는 것을 알았다. 스페이스가 소멸되면서 응당 시인과 그의 작품이거나, 미래를 향해 투사된 희망의 상징일 것이라는 예측은 틀린 것이 되어버렸다. 세계를 떠받치던 공백과 여백이 사라지고, 쓸데없는 잡담과 왜곡된 호기심, 과장된 제스처가 난무하는 시대. 스페이스가 없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타이틀에 밑줄을 그어본다. 상실의 시대. 솔직한 고백 속에서 감동의 흔적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