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지 않을 때 뜻밖의 즐거움이 온다.
-'당당하게 늙고 싶다', 소노 아야코 지음 중에서
《나는 성악설로 세상을 판단해왔습니다.
가톨릭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비교적 어린 나이에 알게 되었습니다. 기독교는 성악설을 지지합니다. 인간을 그냥 놔두면 존엄을 잃어버리는 것은 한 순간이다, 하지만 신앙에 의해 또는 그의 영혼에 포함된 덕성에 의해 인간을 초월하는 위대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라고 배워온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인간은 본래 착하다, 라는 성선설을 좋아하지만 나처럼 성악설로 세상을 보고 사람을 사귄다면 감동받을 일이 아주 많습니다. 인간은 모두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했는데 작은 것이라도 진실을 이야기해주는 사람과 만나면 구원받는 기분이 듭니다. 인간을 거짓말쟁이로 치부하는 나의 비루함이 괴롭긴 해도 그 괴로움보다 더 큰 기쁨이 있습니다.
반대로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뿐이며 사회는 평화롭고 안전하고 올바르다고 굳게 믿었을 때는 어떻게 될까요. 한마디로 감사를 잊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됩니다.
나는 1987년부터 '해외일본인선교사 활동원조후원회'(통칭 JOMAS)라는 NGO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외국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신부님과 수녀님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인데 인간은 모두가 도둑이다, 라는 가치관을 신조로 출발했습니다.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대통령도, 장관도, 시장도, 군수도, 이장도, 의사도, 가톨릭주교도, 복지위원도, 교사도, 군인도, 경찰도, 가난한 사람들끼리도 도둑질을 합니다. 돈을 모금해 일본인 선교사에게 지원하는 것만으로는 안심할 수가 없었습니다. 즉 우리는 수녀님들마저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원금이 목적대로 사용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남미, 인도, 아프리카의 오지까지 날아갔습니다.
그동안 JOMAS의 모금액과 사용액이 얼마나 되는지를 한번 조사해보았습니다. 2007년 말을 기준으로 35년간 무려 14억 7431만 8000엔(註: 약 204.5억원)을 모금했습니다. 다행히도 모금액의 99.9퍼센트가 정확히 사용되었습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사람을 믿지 않았기에 가능한 성과입니다. 일본인 선교사는 물론이고 극소수 외국인 신부와 수녀를 대상으로도 돈의 사용처를 엄격하게 감독한 결과였습니다.
내가 보이스피싱에 걸릴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남편(註; 유명작가인 미우라 슈몬三浦朱門)은 심심하다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래도 지난번에 걸려온 전화가 재미있었던 모양입니다. 언젠가 우리 아들을 사칭한 사기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남편은 아들과 손자의 이름을 대며 "어느 쪽이야?"하고 물었고 사기꾼은 남편이 가르쳐준 손자의 이름을 말했습니다. 남편이 "지금 어디냐?"라고 묻자 그는 "회사야"라고 천연덕스레 대답했고 남편은 이에 질세라 "너 언제 취직했냐?"라고 반문했습니다. 다음에 또 전화가 오면 어떻게 놀려댈 것인지 혼자 궁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같은 세상에도 보이스피싱에 속아 넘어가는 노인이 많은데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된다, 죽을 때까지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라는 자기관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나는 국가도 믿지 않을 작정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연금제도 등은 철폐했으면 좋겠습니다. 각자 자기 사정에 맞춰 노후를 대비하는 편이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그대신 보험료도 내고 싶지 않습니다. 국민들 스스로 늙음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인 논리 같지만 사회보험청이 저지른 무책임한 실수를 보고 있노라면 그들에게 내 돈을 맡길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나라가 믿을 만한 국가가 아니라는 뜻은 아닙니다. 일본은 정부를 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세계 제일의 장수국가라는 것도 우리가 행복한 나라에 태어났다는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그러나 국가가 하지 못하는 일도 있습니다. 젊은이의 인구가 줄고 있는 마당에 수입이 없는 노인은 자꾸 증가합니다. 세수가 줄어드는 상황은 국가도 답이 없습니다. 잘린 소매는 흔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인간은 모두 죄인이고 하나님을 믿어야 사함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성악설의 종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원불교와 불교는 어떨까요?
모든 인간은 불성을 가지고 있으며 마음을 닦음으로써 자신의 불성을 깨쳐 부처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치는 불교는 성선설의 종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인간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는 불성을 가지고는 있으나 탐진치 삼독심에 물들어 부처가 되는 길을 잊고 살아가니 불교 역시 성악설에 바탕을 둔 종교라고 하여야 할까요?
저도 개인적으로는 성선설을 믿고 싶지만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면서 성악설 쪽으로 더 기울어진 것이 사실이고, 인간 영혼의 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모든 종교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구제를 필요로 하는 악한 존재라는 성악설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여러분들 생각은 어떠신지요?
또한, 인간이 모두 악하다는 생각을 하고 살면서 선한 사람을 만나 받게 되는 기쁨이, 반대로 모든 인간이 착하다고 믿었다가 그렇지 못한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받게 되는 실망보다 큰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기대하지 않았을 때 뜻밖에 찾아오는 즐거움'의 맛은 약간 씁쓸할 것 같군요.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한 존재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p.s.) 국가를 믿지 않겠다는 저자의 좀 과격한 듯 싶은 주장에도 공감합니다. 무책임한 각종 무상복지 포풀리즘 경쟁에 여념이 없는 여야 정치인들 꼴을 보면 그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정치인들 역시 모든 국민들은 무조건 공짜라면 표를 찍어주는 바보들이라고 믿는 성악설 신봉자들인 것 같습니다. 그런 정치인들이야말로 한 사람도 선한 사람은 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십니까?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무상복지로 망하는 나라,인기몰이 선거로 망하는 나라 역사는 증언한다.
그래서 6월24일 모든 선량한(악한)시민들이여 투표에 꼭 참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