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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8. 31. 큐티
느헤미야 8:1 ~ 12
여호와의 성일 – 여호와로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관찰 :
1) 에스라가 율법책을 회중에게 봉독하다
- 1절.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a. 에스라 10장 이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에스라가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 에스라의 지도력은 느헤미야 이상이었습니다. 그런 에스라가 14년 만에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
b. 에스라가 만일 예루살렘에 있었다면 유대인들의 영적 타락이 그렇게까지 심각했을까 싶습니다. 많은 성경 학자들이 그렇기 때문에 느헤미야가 총독 직분을 감당하다가 페르시아에 다시 갔다 오는 것과 같이, 에스라도 예루살렘에서의 개혁을 마무리하고 상당한 시간 동안 페르시아에 다녀왔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심각한 부패의 자리에 나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c. 이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성전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것보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지 않았던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고 등한시 했던 것이었습니다.
d. “수문 앞 광장”은 에스라 10장의 하나님의 전 앞 광장“과 동일한 장소입니다. 이곳은 기혼 샘과 연결된 곳이었습니다. 이곳에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 그리고 주변에서도 모여서 말씀을 봉독한다는 소식을 들은 모든 백성들이 몰려와서 섰습니다. 거기에 학사 에스라가 페르시아에서 도착했기에 이것을 계기로 백성들이 모여들게 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들에게도 학사 에스라의 존재는 존귀했고, 무엇보다 말씀에 대한 기갈이 이들이 이렇듯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청하게 된 것입니다. 에스라는 특별히 모세 오경 연구의 탁월한 존재였습니다.
- 2절.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a. 여기서의 “일곱째 달”은 종교력으로서의 일곱째 달입니다. 민간력으로는 일월이고, 태양력으로는 구월 혹은 시월입니다. 초막절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느헤미야는 의도적으로 이 시기를 종교력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b. 에스라는 백성들의 요청에 두루마리 성경을 가지고 회중 앞에 섰습니다. 아주 어린 아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백성들 앞에서 말씀을 봉독하기 시작했습니다.
- 3절.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a. “새벽부터 정오까지”는 오전 6시부터 12시까지의 대략 6시간 정도의 시간을 가리킵니다.
b. 이날의 성회가 선포되고, 아이나 어른이나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이 말씀을 듣기 위해서 새벽부터 모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 자체가 가난한 마음을 보여주고 있고, 그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 4절. “그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고 그의 곁 오른쪽에 선 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요 그의 왼쪽에 선 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라”
a. 말씀을 듣고자 모인 무리의 수가 많았기 때문에 에스라는 높은 단 위에 섰습니다. 이것은 이날의 집회가 준비된 집회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다시 오게 되는 것을 기점으로 이 집회가 준비되었고, 상당한 사람들이 모여들게 될 것을 예측한 주최측이 높은 단을 설치해서 멀리서도 에스라를 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던 것입니다.
b. 에스라의 좌우에 있던 이들은 제사장들로서 에스라와 함께 율법책을 읽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에스라가 키워낸 그의 제자들일 가능성도 높습니다.
- 5절.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a. 모든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로 일어서서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b. 6시간에 이르는 시간 동안 그들은 마음을 겸손하게 낮추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남자, 여자, 애, 어른을 무론하고 모두가 일어서서 말씀을 경청한 것입니다.
- 6절.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a.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기에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기 때문에 회당으로 모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이 예배를 드릴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강독하는 것이 그들 예배의 핵심이었습니다.
b. 이 때도 먼저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는 것이 언제나 우선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예배를 시작하면서 찬양으로 나아가는 것의 전통이 된 것입니다. 이렇듯 에스라는 포로시대 기간에 세워진 새로운 전통에 따라서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고, 그리고 백성들은 손을 들어 “아멘, 아멘”으로 화답하면서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는 경배의 자세로 여호와를 경배했습니다.
2) 낭독한 율법책을 백성들에게 깨닫게 하다
- 7절.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은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
a. 에스라와 그 일행이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하면 회중들의 중간 중간에 끼어있던 레위인들이 그 주변의 백성들에게 다시 낭독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b. 마이크 시스템이 없었던 상황에서 수만의 사람들이 모였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었습니다.
- 8절.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a. “해석하여”라는 의미는 히브리어로 읽은 말씀을 아람어로 구술해서 번역했다는 의미입니다.
b. 당시의 사람들은 히브리어보다는 아람어를 주로 사용했고,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입니다.
3) 슬퍼하는 백성들에 대한 위로
- 9절.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a. 백성들은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울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눈물은 회개의 눈물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산 것에 대한 회개의 눈물이었습니다.
b. 이곳에서는 느헤미야와 에스라가 동시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들이 서로 연합하여 유대의 영적 각성을 일으키는 일에 지금 사용되었다는 것을 느헤미야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c. 느헤미야는 총독으로서의 지도력을 구사했고, 에스라는 제사장으로서의 지도력을 구사한 것입니다. 이러한 연합 사역의 결과가 유다의 영적 부흥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된 것이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일정한 패턴대로 하나님의 사람과 하나님의 사람이 연합하여 한 뜻을 이루게 하시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d. 이들이 모여서 성회를 갖고 있는 때는 “나팔절”이었습니다. 나팔절은 그 성격상으로로 기뻐하며 즐거워해야 하는 절기였습니다.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유다 백성들이 울고 회개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차원에서 여호와로 기뻐하는 그 중심을 회복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 10절.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a. 나팔절의 성일에 좋은 것들을 먹고 마시는 것은 축제를 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준비하지 못한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도 이 축제를 함께 동참하게 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근심에서 벗어나 여호와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는 것이 이날의 목적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b. 느헤미야는 이와 같이 놀라운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성일에 맛난 것을 함께 나누고,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도 나눠줄 것을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성일에는 모든 일들이 근심하지 말고 기뻐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하고 소망스러운 말씀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는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이것도 성령의 감동으로 우리에게도 주신 소망의 말씀입니다.
c. 여기서 “힘”(מָֽעֻזְּכֶֽם, 마예쯔켐)은 ‘산 꼭대기’ 혹은 ‘방파제’라는 의미입니다. 백성들이 통회해야 하는 죄를 갖고 있을 지라도 계속 죄로 인한 죄의식에 빠져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를 하고 여호와를 의지한 자들은 방파제가 되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정죄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온전히 성취되는 은혜를 의미합니다.
- 11절.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하게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니”
a. 당시에 스피커 시스템이 없기에 이렇게 레위인들을 통해서 중재 설교가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또 마땅한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그곳에 모인 회중들은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 12절.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a. 모든 백성들은 에스라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b. 율법이 낭독되고 설명됨에 따라 그들은 슬퍼 눈물을 흘렸습니다. 조상들의 죄와 자신들의 죄로 인해서 지존하신 하나님 앞에서 몸둘 바를 모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c. 그러나 은혜가 임했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함으로 하나님이 방파제가 되어 죄악의 저주, 죄의 고리로부터 그들을 끊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참된 은혜 가운데로 나아가는 길이 열렸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무리들은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회복의 은혜를 맛보게 되고, 그 기쁨으로 크게 즐거워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가르침 :
1) 하나님의 말씀을 경히 여겨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지 않았던 이스라엘이 이제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모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극히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거들떠 보지 않았던 말씀에 대하여 이제는 지극히 경외심을 가지고 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을 이룬 데에는 학사 에스라와 총독 느헤미야의 동역이 빛을 발한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라도 느헤미야도 자신들을 전혀 내세우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당연한 듯이 온전히 말씀에 순종하고 있을 뿐입니다.
2) 에스라가 낭독하고 레위인들이 중간 중간에서 다시 읽고 아람어로 번역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번역되는 것을 통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깨닫게 되자, 성령의 은혜로, 굳어진 사람들의 마음이 녹아져서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조상들의 죄를 깨닫게 되었고, 자신들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못한지가 깨달아지게 된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임하는 성경 말씀의 능력입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동일하게 일어나는 역사입니다.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지면 가장 먼저 일어나는 현상이 죄로 굳어진 존재가 그 굳어진 것이 녹아지고, 자신의 죄악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선명히 보게 하는 능력을 가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복을 얻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주의하고 경계해야 하는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3) 성령의 은혜로 말씀이 깨달아져서 회개한 심령들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주십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 곧 회개함으로 말미암아 주님 앞에 나아가는 자를 의미합니다. 그런 자는 여호와를 힘으로 얻게 됩니다. 즉, 죄의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해 주심으로 얻는 평화와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복음이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죄 사함의 기쁨을 여호와의 성일에 누리게 되고, 그로 말미암는 기쁨을 얻는 장면이 오늘 본문의 장면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주일 예배를 통해서 회복해야 하는 것도 이 부분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지극히 경배하고, 말씀의 은혜가 임하여 죄가 깨달아지고, 그 죄악으로 인해서 통회 자복하는 가운데, 그 죄악을 우리 주님께서 처리해 주심으로 말미암는 참된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의 예배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회복이 되어야 하는 요소입니다.
4) 이 기쁨을 몇몇이 누리고 끝난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들이 함께 누리게 되었습니다. 위대한 은혜이고,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크고 놀라운 역사가 이렇게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 날의 기쁨은 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기쁨이었고, 앞으로 그들의 남은 인생과 다음 세대들에게 두고두고 전수해야 하는 예배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예배도 이런 위대한 예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적용 :
1) 오늘 이 시대의 예배는 어떤 예배가 되어야 하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의 은혜가 임해서 우리의 예배에 대한 태도가 변화되어 온전히 주님을 경외하는 심령으로 채워지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머리를 굽혀 땅에 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태도와 자세는 하나님께만 머리를 숙이고, 낮아지는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예배에 자신의 죄를 깨달아 통회하는 일이 은혜로 주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 대해서 주님께 회개한 자의 기쁨, 죄책을 모두 주님께 맡긴 자의 즐거움을 회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예배는 영광입니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임하시면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즐거움과 기쁨이 예배를 통해서 발생될 수 있습니다.
3) 회중이 하나되는 데에는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지도력이 주요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런 공로의식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냥 하나님께 드려지고 쓰임받는 존재에 불과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나를 낮추고, 주님만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할 것인데.... 주님, 긍휼을 부으시고, 주님의 은혜에 자리에 언제나 이 죄인이 서게 인도하옵소서.
4) 사랑하는 합신 18기 동기 분들과 1박 2일의 수양회를 갖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