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를 캐며 / 김석환
아린 비린내가 난다
호미 끝에 찍혀 나오는 하얀 속살
노름쟁이 남편 몰래
사랑채 처마 끝 이엉 아래
페병쟁이 아내가 묻어두고 간
피 묻은 지전 동전 몇 닢과
뒤란 장독대에 엎어둔 시루 속에
밤톨 소복이 물어다 놓고
싹트도록 소식 없는 다람쥐 꼬리와
아내 뱃속에 첫아이 남겨두고
가서는 오지 않는 남편 뒤통수와
마당귀를 지키다 삭아버린 짚신과
부엌 바닥 서둘러 파고
씻나락이며 족보 묻어두고
얼어붙은 강을 건너던 종손 일가와
대숲 사이에 걸린 그믐달과
대궁을 당겨보면
줄줄이 딸려 나오는 단단한 음모들
꽃 피운 봄날 목이 잘린 채
어둠 속에 숨어 해와 달 발자국
소리 헤아리느라
깊어진 오목눈들
(『시문학』 2014년 7월호)
작품의 화자가 “호미 끝에 찍혀 나오는 하얀 속살”에서 “아린 비린내”를 맡는 것은 생명을 의식하는 모습이다. “뒤란 장독대에 엎어둔 시루 속에/밤톨 소복아 묻어다 놓고/싹트도록 소식 없는 다람쥐”며, “마당귀를 지키다 삭아버린 짚신”등을 품는 것이다.
“호미 끝에 찍혀 나오는 하얀 속살”에서 “아린 비린내”를 맡는 것은 역사 의식을 추구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노름쟁이 남편 몰래/사랑채 처마 끝 이엉 아래“에 ”피 묻은 지전 동전 몇 닢“을 묻고 세상을 뜬 ”페병쟁이 아내“며, ”아내 뱃속에 첫아이 남겨두고/ 가서는 오지 않는 남편“등을 품는 것이다.
대지는 생명과 역사를 품고 있다. 그러므로 대지가 존재하는 한 우주의 역사는 결코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부엌 바닥 서둘러 파고/씻나락이며 족보 묻어두고/얼어붙은 강을 건너면 종손 일가와/대숲 사이에 걸린 그믐달“ 등는 대지의 ”아린 냄새“를 맡고 있는 한 영원할 것이다.(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