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미 대표가 직접 만든 고차수 보이생차인 ‘백년고차’
백 년 된 차나무는 백 년 된 찻잎의 맛을 주고 오백 년 된 차나무는 오백 년 된 찻잎의 맛을 줍니다. 나이가 오래될수록 혹시 차맛이 더 쓰거나 윤기가 없지 않을까? 오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보이차의 세계에서 나이와 차맛은 비례합니다. 고차수일수록 더 신선하고 더 감미롭고 더 윤기가 돕니다.
노자는 ‘도는 갓난아기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어려서 노자를 읽을 때에 이 말이 그리 마음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도덕경〉 첫 페이지에서 ‘도가도비상도’, ‘말로 설명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라는 형이상학적 선언으로 철학하는 사람들을 뒤흔들었던 노자가 뒤에 가서는 고작 도는 어린아기와 같다니요, 천진난만이 좋은 건 알겠는데, 숭고한 도의 모습 치고는 좀 맥빠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차인이 되고 보니 ‘도는 갓난아기와 같다’는 말이 ‘나이가 들수록 신선하다’는 말로 들리더군요. 과연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신선할 수 있겠는가? 나이가 들수록 더 아름답고 더 감미롭고 더 향기로울 수 있겠는가? 그래서 차나무는 사람의 선생님입니다.
차를 품평할 때에 품(品)이라는 글자는 참 재미있습니다. 세 개의 입(口)이 모여 차를 음미합니다. 차 한 잔을 세 번으로 나눠 음미한다는 뜻도 되고, 세 명 이상의 많은 사람이 모여 차를 품평한다는 뜻도 되겠습니다. 중국 시학에서는 시를 품평하는 것을 시품이라 하고 시품은 인품을 닮는다고 했습니다. 차를 만들고 우리다보면 차 한 편에도 시와 노래가 담기고 차를 만지는 사람의 성품이 녹아나는 것 같습니다. 차품(茶品), 시품(詩品), 인품(人品)은 서로를 닮아갑니다.
봄이면 윈난성 천연원시림 고차수 다원에 보이차를 만들러 갑니다. 찻잎을 선택하기 전에 빠지지 않고 꼭 하는 일이 있습니다. 차를 품평하는 것입니다. 고차수 다원마다 열 몇 개의 찻잔을 주욱 늘어놓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합니다. 막 만든 시음용 모차입니다. 모차를 품평하는 일은 그 해 보이차를 만들 때에 매우 중요한 과정이지요.
차는 색깔, 향기, 맛, 기운으로 품평을 합니다. 색이 맑고 영롱하면서 윤기로운지, 향기와 맛이 달고 신선하고 풍부한지, 차를 마신 후 몸으로 느끼는 기운이 살아있고 여운이 끝이 없는지 차를 음미하지요. 마지막으로는 자기가 품평한 대로 차의 순위를 매겨봅니다.
그러면 영락없습니다. 거의 차나무의 수령대로 맛이 비례합니다. 보이차는 차산 환경이 같고 차를 만드는 기술이 같다는 전제 하에,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90프로의 요소가 찻잎 원재료의 질입니다. 찻잎 원재료는 홍토 고원의 천연원시림 차산에서 잘 자란 고차수, 수령이 오래된 고차수의 찻잎이 최상품입니다.
고차수는 큰 찻잎에 영양소를 농축하여 사람을 살리지요. 사람만 살리나요, 곤충도 한 잎 같이 먹지요. 이렇게 만물을 먹여 살리는 차나무의 마음을 담아 정성스럽게 차를 만듭니다.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물을 마실 때에는 우물 판 사람의 공을 잊지 말아라.’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늘 차나무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수 백 년 동안 사람들이 찻잎을 따 가져가도 나무라지 않고 아낌없이 찻잎을 내어주는 차나무의 공덕에 감사합니다. 차나무를 길러 낸 푸른 하늘과 태양과 맑은 이슬과 붉은 토지에 감사합니다. 차나무를 자식처럼 아끼고 보살피는 차농들의 노고에 감사합니다.
찻잎은 이른 봄에 땁니다. 우리나라는 우전차라고 해서 곡우절 전에 딴 차가 좋은 차이지만 윈난은 아열대 지역이므로 곡우보다 한 절기 앞선 청명절 즈음이 되면 봄차 생산이 벌써 한창입니다. 또한 이른 봄에 처음 차싹이 솟아나올 때 만든 차를 첫물차라고 하는데 날씨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략 3월 중하순경에 만듭니다.
백년고차는 제가 직접 만든 고차수 보이생차입니다. 이른 봄에 차의 기운이 푸릇푸릇 활발발할 때에 1아 2엽의 고차수 새싹과 찻잎을 손으로 일일이 따서 첫물차를 만들었습니다. 찻잎을 따면 행여 시들세라 바로 운반을 하죠. 해발 1600~2000m의 천연원시림 고차수 다원은 찻길이 없습니다. 인가도 없습니다. 대광주리로 찻잎을 일일이 지고 내려옵니다. 찻잎을 덖을 때에도 무쇠솥에서 사람 손으로 찻잎의 고슬고슬한 정도를 감지해가며 살짝 덖습니다. 대형차창은 회전차통에 찻잎을 넣고 기계로 돌리지만 전통 수제차는 전 공정을 장인의 손으로 일일이 직접 만듭니다. 정성 없이 이루는 일이 어디 있으랴마는 백년고차 한 편에는 산과 바람과 나무와 꽃과 수많은 무정 유정의 정성들이 오케스트라처럼 모여 있습니다. 섬세하게, 정갈하게, 깐깐하게 예술작품처럼 만들어집니다.
천연원시림 고차수 차산에 가면 누구나 시인이 되나 봅니다. 차나무의 마음에 감동받고 차싹의 소근거림에 흠뻑 취하여 저도 모르게 시 한편을 짓게 되었습니다. 고차수 차나무가 내어준 한 잎 한 잎이 나의 차가 되니 차왕수의 마음을 전하는 차인이 되리라 다짐하면서요.
백년을 자라도 크지 않았네
십년이면 찻잎을 팔아대는 시장에서
이백년도 모자르다 하고
삼백년도 부족하다 하여
그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쏟아지는 햇살을 받는 일
조잘대는 바람을 듣는 일
삼만 육천 오백 날의 기도
칠만 삼천 하루의 기다림
꼭꼭 눌러 담아 삐져나올 때
사랑도 무게가 되어 줄기가 휠 때
비로소 찻잎 우릴 수 있는 차나무 되었네
높은 산속 천년 고차수
[출처] 박종미의 차(茶)와 사람을 잇다 5. 백년고차
[출처] 박종미의 차(茶)와 사람을 잇다 5. 백년고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