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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조선,부여,발해 등 고대사토론방 <정백리127호분<일명 왕광묘>의 낙랑태수 목인장은 가치를 인정받을수 있는가?>
역사님 추천 0 조회 473 09.12.29 20:26 댓글 1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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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12.29 22:22

    첫댓글 역사님의 견해를 그대로 인정? 한다고 전제하고, 두가지만 질의 드리겠습니다.

    1.왕광이 한나라사람일까요. 아니면 그냥 기원후 1세기경 평양일대에 있던 지배자인가요?

    2. 위글에서 목곽분을 언급하고 있는데 역사님이 언급하고 있는 이전 기원전 7-5세기경 요동에서 비파형동검문화와 함께 출현한다고 하였는데 왕광묘가 요동의 기원전7-5세기와 계통적으로 연결될수 있을까요? 나무로 곽을 짜서 목관을 놓은 무덤이라고 다 같은 목곽분이 아니거든요. 어떤 이유로 요동목곽분과 정백리에 있는 왕광묘와 연관지울만한 것이 있는지 그 근거를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목곽분이라는 명칭이외에 계통을 연결할만한 근거 !!!

  • 09.12.29 22:27

    1번 질문 관련하여 왕광의 인장과 함께 묘의 출토유물을 함께 검토해주심이 어떨까 합니다. 그 유물들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알려주길 바랍니다. 너무나 통설과 달리 마구 질주하시니(특히 고고자료 인용에 있어) 이 왕광묘에서 출토된 유물, 칠기류 목기류 동제품 옥제품 철제품등을 함께 이전시기와 비교하여 어떤 계통으로 보아야 하는지 알려주길 바랍니다. 역사님이 왜 이리 생각하는지 이유를 알고자 함이니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인장이외에도 많은 유물과 유구의 특성이 있으니 함께 검토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 작성자 09.12.30 16:50

    통설과 다른게 아니라 일제학자 이후 고조선 전문가라는 이후 보수 지지자들이 제대로된 연구없이 재생산한 결과 일뿐입니다. 분명한 오류는 정확히 인정하고 가야 현재의 고조선위치와 한사군 문제가 풀립니다.정백리 127호분이 일명 왕광묘로 불리운 계기와 나아가 이 서북한 일대를 낙랑군 태수가 다스린 다는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이 다름 아닌 이 고분에서 나온 양면 목도장의 낙랑태수연왕광지인'(樂浪太守椽王光之印), '신광'(臣光) 이라는 2개의 목인장중 하나입니다. 물론 이들 보수지지자들이야 자신들의 기존 주장에 결정적 증거인냥 하니 제대로 연구를 했겠습니까? 한나라때의 인장은 임둔 봉니처럼 전서체를

  • 작성자 09.12.30 17:02

    기본으로 합니다. 전서체는 저 임둔 봉니처럼 현대인들이 아는 한자형태가 아니라 거의 갑골문에 가까운 원시적 형태이며 태수등의 -현대의 국무총리령도 아무개 국무총리로 찍어 나오지 않듯이-직함이 나오지 이름까지 새기는 형태는 없습니다. 또한 재질 역시 엄격히 구분하고 있구요. 군의 태수 정도이며 상당한 지위입니다. 로마의 총독처럼 거의 상당한 규모의 왕국을 다스리는 왕과 같은 직책입니다. 그리고 앞서도 언급했지만 위만 조선 집권기인 기원전 3-2세기경의 요녕과 한반도의 연화보 세죽리 고조선계 철기문명과 서북한일대는 서로 화폐유적등에서도 그렇고 이질적 공간이 아니라 서북한 일대가 영향을 받으면서 교류하는 곳임을

  • 작성자 09.12.30 16:58

    말했으며 기원전7-5세기의 요녕 정가와자유적은 지금까지 발견된 비파형시기에 이른 형태의 목곽묘 출현을 말한것이고 윤가촌 유적의 하층과 상부 문화층에는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경으로 연차적으로 목곽묘가 출현 출토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쓰다 보니 내용이 길어 지는군요 따로 올립니다.

  • 09.12.30 18:14

    질의한 내용에 일체 답변없이 위 본글에 있는 애기를 반복하고 있군요.
    정확이 답변바랍니다.
    질의 1: 왕광묘의 피장자가 한나라사람일까요 아니면 평양일대의 동이족인가요 아니면 고조선의 지배자인가요
    왕광묘 출토유물이 고조선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지요!!!설마 왕광묘에서 출토된 다른 유물은 보지 못한것은 아닌가요? 칠기류나 목기류 철기류 동제품등 모르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요??? 동반출토품이나 유구의 구조를 가지고 이전 고조선이나 동이족의 전통계승이 있는지 답변바랍니다

    질의 2: 왕광묘의 목곽분이라는 것이 기원전7-5세기경 바파형동검과 같이 등장하는 목곽분과 어떤 근거로 계통이 연관된다는 것인가요

  • 09.12.30 18:40

    질의 하나를 추가하겠습니다. 왕광묘에 나온 명문이 있는 동경 두점이 있습니다. 이것이 고조선이나 동이의 전통을 계승한 동경인가요 아니면 한경인가요? 이것에 대하여도 답변해 주길 바랍니다. 두점 모두에 명문이 있으니 참고가 될것입니다.

  • 09.12.30 18:03

    글쎄요. 관인도 아니고 사인임에 분명한 인장의 양식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고 보입니다. 하나는 대놓고 사인이라 쓰고 있고, 나머지 하나도 사인으로 보이는데요? 세상에 어떤 관리가 관인을 자기 무덤에 부장품으로 묻습니까?? 무덤에서 관인이 나오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인 것 같습니다만. 무덤에서 관인이 나온 예가 있나요? 제가 고고학에는 문외한인지라 그런 예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반박을 하시려면 저것이 관인인지 사인인지를 먼저 논하고 사인이라면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를 함께 논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반박의 핀트가 잘못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 09.12.30 18:17

    야스페르츠님 고고학 문외한이라 하지 마시고 일제시대에 출간된 고적조사보고 2호 낙랑왕광묘를 메타검색등으로 확인하시면 됩니다. 사진이나 도판만 봐도 어느정도 감이 온답니다. 설사 관인이 어쩌구를 떠나도 왕광묘의 유구구조나 출토유물울 본다면 판단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 09.12.30 18:18

    혹 필요하시다면 다운받은 왕광묘 자료를 메일로 보내드릴수 있습니다.

  • 작성자 09.12.30 20:00

    야스페르츠님. 글 내용을 좀 보길 바랍니다. 양면 목도장은 관인성격으로 나머지 하나는 사인이라는 '왕광사인'(王光私印)는 문구가 안보이는가요? 그리고 설령 둘다 사인이라고 해도 이게 한반도 낙랑국의 태수 사인이나 기타 고조선 토착 정치체의 지배사인인지와 한나라 사인인지에 대한 구별을 짓게 하는 유물이 못됩니다.

  • 09.12.30 20:01

    그런 문구는 없습니다만?

    "1점은 양면도장으로 앞뒷면에 각기 '낙랑태수연왕광지인'(樂浪太守椽王光之印), '신광'(臣光)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여기 어디에 관인이라는 말이 있습니까? 그리고, 북한의 반박이라고 역사님이 인용한 내용에는 이 유물이 관인일 경우에나 유효한 반박일 뿐, 관인이 아닌 사인이라고 판단한다면 1번 정도나 적용될까 나머지 반박은 그냥 무용지물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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