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9. 1. 큐티
느헤미야 8:13 ~ 9:3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고 백성들이 자복하다
관찰 :
1) 지도자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다
- 13절. “그 이튿날 뭇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에게 모여서”
a. 여호와께 회개하는 것이 피난처에 들어가는 것임을 고백한 에스라와 유대 공동체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학사 에스라에게 묻고 있습니다.
b. 이들은 진작에 이렇게 했어야 했지만, 그래도 현재로서의 최선을 선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스라의 말씀 운동은 이제 그 영향력을 증대해 가게 되고 있습니다.
- 14절. “율법에 기록된 바를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일곱째 달 절기에 초막에서 거할지니라 하였고”
a. 에스라는 이렇게 모인 백성들에게 초막절의 절기를 지킬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사실 나팔절과 초막절 사이에는 대속죄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무리들이 그 때까지 계속 있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고, 또 돌아갔다가 대속죄일에 또 모이는 것도 현실적이지 못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b. 그래서 에스라는 초막절을 지킬 것을 제안하게 되고, 함께 말씀을 연구하는 이들이 그 말에 동의하고 순종하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2) 초막절의 시행
- 15절. “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가져다가 기록한 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한지라”
a. 에스라는 말씀대로 초막절을 지키고자 말씀에서 가르치고 있는 바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b. 율법책에 나온 재료들도 있지만 나오지 않은 재료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현실에 맞게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학사 에스라가 말씀을 몰라서 그런 실수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c. 학사 에스라는 누구보다 말씀에 정통한 사람이었고,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에스라와 같은 말씀에 능통한 학자를 찾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재료들을 언급하는 것은 말씀의 중심을 잡고 그 적용은 어느 정도 융통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d. 에스라는 주변에서 찾기 쉬운 재료들을 통해서 초막을 짓게 하고 있습니다. 재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중심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율법서에서 말하고 있는 핵심사상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16절. “백성이 이에 나가서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혹은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혹은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짓되”
a. 백성들은 그 말씀에 순종해서 초막을 지었습니다.
b.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주로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초막을 지었습니다. 또 멀리에서 온 사람들이거나 재정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수문 광장이나 에브라임 문 광장에 지었고, 제사장이나 또 열심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전 뜰에도 초막을 지었습니다.
- 17절.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중이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기뻐하며”
a. 초막절 행사가 여호수아 이후로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듯 모든 백성들이 감격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며, 초막절 절기가 제정된 근본정신을 되살리는 차원에서의 절기가 지켜진 것이 처음이었다는 의미입니다. 영적 각성이 일어나고 참된 부흥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b. 하나님의 말씀이 그 본래적 의미가 회복되어 성취되는 것이 참된 부흥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말씀입니다.
- 18절.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이레 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
a. 초막절 절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야 했습니다. 에스라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율법책을 이레 동안 낭독하고 무리들은 그 말씀을 경청하고 순종하고자 했습니다.
b. 백성들은 절기 도중에 불편한 초막에서 나와 원래의 거처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들도 함께 이 불편을 감수했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열정을 보였습니다.
c. 초막절 절기가 율법대로, 그리고 그 본질을 드러내는 것으로 지켜졌다는 것을 느헤미야는 감격하며 기록하고 있습니다.
4) 회개하는 백성들
- 9장 1절. “그 달 스무나흘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a. “스무나흘 날”은 초막절 절기가 마친 22일의 이틀 후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b. 성경 말씀을 읽은 이들이 초막절을 통해서 듣고 깨닫게 된 말씀으로 하나님 앞에 그들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음을 철저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회개의 시간이 부족했기에 에스라는 그들에게 그 시간을 연장해 주었고, 백성들이 보다 가난해진 마음으로 금식하고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뒤집어쓰는 최고의 슬픔을 드러냄으로 회개를 했습니다.
- 2절.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a. 이들의 회개가 진실하다는 것은 그들의 삶을 변화하고자 구체적으로 행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b. 그들은 이제껏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어쩌면 할 수 없이 정착하기 위해서 그 지역의 이방 사람들과 교류했던 부분들에 대해서도 회개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방 사람들과 혼인을 맺은 것에 대해서 회개를 하고 있습니다.
c. 그리고 자신들이 이방 여인과 혼인한 부분에 대해서 절교하는 결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자신들과 조상들의 죄를 모두 자신들의 죄로 여기고 자복했습니다. 이것은 다니엘과 에스겔, 그리고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회개하는 본을 따르는 회개의 모습이었습니다.
- 3절. “이 날에 낮 사분의 일은 그 제자리에 서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a. 고대의 유대인들은 낮과 밤의 시간을 각각 사등분씩 팔등분을 해서 구분을 했습니다.
b. “낮 사분의 일”은 오전 6시부터 9시까지의 시간을 의미합니. 그 시간동안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책을 낭독하고, 9시부터 12시까지는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다는 것입니다.
c. 에스라와 그의 제자들이 높은 단상에서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다시 레위인들이 아람어로 통역하는 일이 그렇게 세 시간 동안 이어지고, 그 말씀을 토대로 회개의 시간이 세 시간 동안 이어졌던 것입니다. 이들의 행위는 현대의 예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가르침 :
1) 말씀을 모르면 말씀에 바로 서 있는 이에게 물어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른 것이고 좋은 것입니다. 말씀을 모르는 바를 자기 스스로 억지로 푸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에 세워지는 것이고, 그것은 사도와 선지자의 전통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말씀하신 반석입니다. 에스라는 모세와 사무엘과 사무엘이 세운 라마 나욧 신학교 출신들의 전통을 따라 세워진 선지자들의 전통을 따라 요엘, 호세아, 아모스, 이사야 등의 신앙을 따른 자입니다. 그리고 예레미야와 그의 제자들인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 등이 바벨론과 페르시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할 수 있는 토대를 형성하여 사무엘이 세운 라마 나욧 신학교의 전통을 이어서 나타나게 된 인물이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통은 약대 털옷을 입었던 세례자 요한에게까지 이어지고, 결국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2) 초막절 절기를 성대하게 마치고,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참된 부흥이 있었던 곳의 반복되는 패턴입니다. 평양의 대부흥 때도 일주일의 사경회 이후에 그 은혜와 감동을 마칠 수가 없어서 자발적으로 일주일 더 사경회를 하고, 그리고 또 일주일, 또 일주일을 이어서 거의 한 달여를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는 시간을 갖고,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것은 아주사에서의 부흥에서도, 웨일즈에서의 부흥에서도 반복되어진 패턴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행사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일어나는 회개의 역사와, 하나님의 말씀이 삶에 적용되는 차원의 부흥인 것입니다.
3)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나뭇가지를 가지고 집을 짓고 그 불편함을 감수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애썼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만족한 것이 아니라 가장 애통하는 표현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자 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이들의 회개를 들으실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즉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가 되는, 그래서 ‘하나님이 져주시는 존재’가 되는 비결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회개의 열매를 기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뿌리에 놓은 도끼’가 상징하는 것은 회개의 임박성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회개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노아 홍수의 때와 마찬가지로 말세에는 회개하지 못하는 때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회개의 때에 하나님께 회개할 수 있음이 또한 은혜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4) 예루살렘 성벽 재건의 역사는 필연적으로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의 운동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민족적 정체성을 바르게 드러내는 것이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은 참된 은혜를 받고, 참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다면, 이렇듯 바른 회개의 모습이 드러나는 삶을 살아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적용 :
1) 말씀의 부흥을 꿈꾸는 것, 그것은 모든 사역자, 모든 성도, 모든 교회가 꿈꾸는 소망일 것입니다. 내가 먼저, 그리고 내가 만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부흥이 일어나서, 삶이 변하고, 참된 회개로 하나님께로 그 삶이 돌이켜지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2) 1994년에 합동신학교에 입학하여 합신 18기와의 만남이 시작되었고, 참 좋은 사람들과 함께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올 해도 함께 수양회를 하며 주님의 은혜를 나눌 수 있음에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