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유기환 결혼 생활
처는 91살이다.
요즘 손이 점점 차가워진다. 노인이
몸이 차 질때 사망한다.
벌써 6년째 누워서 생활을 한다.
밥도 방에서 먹고 소 대변도 방에서하면 내가 화장실 붓는다.
그런 생활이 벌써 6년째
처가집은 가난해서 우리 집은 조금 잘살아 시집을 왔다.
시집 올 때 혼수도 없고 옛날 말로 쌓데려오는 것 옷감을 사주어 옷해 입혀서 데리고 왔다.
결혼식장에는 처갓집 식구도 시집시구도. 한 사람 오지않고 친구들과 결혼식을 전의 감교에서 했다.
그때 교회 청년 회장을 하고 미국에서 보내준 구호 물자를 배급 책임을 지고 해
. 아내의 집 가난해서. 선발 장모님이 배급를 타로 오면 내가 주기도 했다.
처가집은 모두 키가 큽니다.
저는 키가 작기 때문에 키 큰 여자를 아내로 두려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친구 중매로 결혼을 하게 되지요. 아내는 죄책감을 느끼고 시집사리 못하고 친정살이를 했습니다.
제가 23살 때 결혼 5월 17일 날 결혼식 하고 11월 2일 날 5개월 만에 논산 훈련소에 입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늘 신경이 써지고 군대 생활할 때 첫 딸을 낳았지요?
손녀를 낳았지만 시집식구들은 한 사람도. 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는 3년 농사 일 도와주고 형님 방아간 일을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형님은 돈을 십원도 주지 않아 쌀을 아버지 몰래 훔치러 갔다가 작대기로 허리를 세 번 얻어 터졌습니다.
아내가 있는 그 장소에서 허리를 맞았습니다.
3년쯤 형님 도와주다가 지금 돈으로 300만원 쌀 40키로를 가지고 서울로 무직업 무작정 상경했습니다.
부동산 삼표연탄 일꾼으로 써달라고 3일을 쫓아가 겨우 들어갈음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 해 모범 일꾼이 되었습니다.
3년간 짠돈이 생활을 해서. 자립해 연탄 장사를 하고 여름에는 무력가게 시세멘트 벽돌 구슬장 장사를핬습니다 회물.차도 없었습니다.
서울역 청랄리역 용산역에는 지개꾼과 리야군이 있었습니다.
리야가로 인천 수원까지 이삿짐을 따르던 시절이었습니다.
집차를 개조해 택시를 만들고 GMC 트럭을 개조해 시내 버스를 만들었습니다.
화물의 차는 없었습니다.
교통수단은 기차 밖에 없었음니다
그래서 서울에와 처음에 국수 작사을 했지만장사가 안돼 접고요
술 담배 커피 안 먹고 절약해서 부동산에 투자 해했다
50세 부동산 중개업25년 했습니다.
지금은 돈 걱정 없이 살고 있지만 친 손자가 없는 게 문제입니다.
외 손녀만 있습니다.
이제 대가 끊어졌습니다. 자손이 었습니다. 이제 돈 집 이제 자식에게 주지만 자식 은. 친척이나 국고로 가게 되지요
. 요즘 생각해 보니까 아내 몸은 점점 차가워지고 있습니다. 너무 안타깝고 또 귀가 들리잖아 대화도 못하고 TV그림만 보고 있습니다.
눈물이 나고 안타 깝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몸이 점점 차가워지다가 죽는다고 하는데 죽으면 어떻게 하나
매일 당신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해주고.
살아 있다고 고맙다고 큰절을 매일같이 하고 있습니다.
매일 찬송가 열곡부르고 주기도문 사도 신경을 암송 거실을 걷기기구 의지해 조금씩 조금씩 걷고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인가
행복한 결혼 생활 있었나 생각이 듭니다.
늘 근심 걱정과 고통 속어서 살았지. 행복 시절은 거의 없던 것 같습니다
날씨 경칩 개구리가 땅속에 있다 나온다는 경칩입니다.
봄이 왔습니다. 봄비가 솔솔 내리고 이제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가 피겠지요.
사람은 한 번 늙으면 병들어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
인생의 허망함을 느끼는 90세의 결혼 이야기를 한번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