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세형야. 우리 이대로도 괜찮은 걸까?"
"응?"
그녀가 내게 그녀의 큰눈을 위로 올리고 물었다.
그녀의 왼손은 코트의 깃을 뭔가 꼭 잡고 있었고 오른손은 내 손과 깍지를 끼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왼손에 깍지껴진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내 손에 그녀가 느끼는 불안감이 전해졌다.
나는 웃었다. 억지로라도 웃었다. 그녀가 더이상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평소보다 훨씬, 훨씬 더 크게 웃었다.
"괜찮을거야."
동성애가 보편화된 이 세상, 그리고 이 세상에서 이성으로서 만난 우리, 우리는 과연 비정상일까?
우리가 만난 것은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최소한 내 인생 안에서는 오래전이다.
그녀는 내가 내 두 아버지 이외에 만난 첫번째로 만난 사람이었다.
"넌 몇살이야?"
"여섯살."
"우와! 나이 같네!"
처음엔 그렇게 시작했었다. 하지만 그 때는 우리 둘 다 서로를 특별히 여기지 않았다.
나에게 그녀는 유치원 같은 반의 수많은 여자아이들 중 하나였고 그녀 역시 그런 눈치였다.
그러나 나와 그녀의 연은 여기서 끊기지 않는다.
"너는..."
"...."
우리는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 때까지 함께 공부했다.
내 학군의 중학교 개수만 해도 8개, 고등학교는 12개나 되는 데 그 엄청난 확률을 뚫고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서로 만나고 말하고 걷고, 하는 동안에 어느 순간 나는 이런 생각 까지 하게 되었다.
내가 혹시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일까?
"야, 무슨생각 해?"
"응?"
"너 수업 시작하고나서 부터 끝까지 계속 멍하게 있었다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런 생각이 날 때마다 머리를 흔들고 눈을 씻었다.
말도 안돼, 그럴리 없어. 내가...그런...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은 곧 사회로의 이탈을 의미했다.
아마 누군가는 나를 동정의 시선으로 하지만 거의 대다수는 역겨운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 뻔했다.
"최세형,너 어디 붙었냐?"
"한양대."
"뭐? 진짜? 우와 부럽다. 난 강원대인데."
결국 그 질긴 인연은 수능이 끝나고 나서야 끊어졌다. 처음에는 아쉽기도 했다.
좋아하는지 아닌지의 여부를 떠나서 13년동안 들 정은 모두 들었으니까.
"너 나중에 거기 가서도 연락할거지?"
"어. 연락할게."
그렇지만 한동안 내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 그렇게 큰 미련은 남지 않았다.
그렇게 7년이 흘렀다.
"야, 세형이. 너 요즘 뭐하냐?"
"뭐하긴. 방에서 뒹굴고 있지. 젠장할."
"너 이번주, 일요일 동창회 하는 거 야냐?"
"뭐? 동창회?"
나는 순간 망설여졌다. 동창회라면 분명 그녀도 오겠지.
강원대 졸업하고 나서 서울에있는 회사에 취직했다 했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과연 다시 그녀를 보고나서도 내 이성을 따를 수 있을까?
그녀를 보자마자 그토록 억눌러왔던 감정들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한참을 생각했다가 나는 결정을 내렸다.
"알지. 꼭 갈게. 끊어."
그래. 어차피 이렇게 계속 피해나니는 건 힘들어. 결국 언젠가는 만나게 될거야.
그리고 끊어졌뎐 줄은 다시 이어졌다.
"야, 너 왜 그동안 연락 안한거냐?"
"말하기는 힘들어. 하지만 이유가 없진 않아."
"쳇, 핑계는..."
우리는 살짝 취해 서울의 밤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약간은 쌀쌀한 가을 밤바람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내 이성까지 취하게 만들고 그 아래에 있던 감정들을 수면위로 올렸다.
"저, 세희야."
"응?"
"사실 나, 너 좋아했어. 그리고...지금도 마찬가지야."
순간 그녀는 혼이 빠져나간 듯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움직이던 다리도 점점 느려지더니 곧 멈춰섰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나는 어떤 말을 듣게 될까.
이왕이면 시원하게 욕해줬으면 좋겠다.
기분 더럽다고. 성적 취향을 존중한다는 그런 말 따위는 목구멍 안에 고이 모셔뒀으면 좋겠다.
그러나 내가 그녀를 좋아하게 된 것처럼 세상일은 내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나도야. 나도 너 좋아했어. 그저 사람들 눈 신경쓰여서 말하지 못했을 뿐이야."
"뭐?"
"아쉽네. 미리 말했더라면...아니, 말했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옆에 있던 벤치위에 털썩 앉아 허탈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빌어먹을 별들이 우리를 비웃듯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세희는 무거운 한숨을 한번 토해내더니 내개 말했다.
"세형아. 담배 한대만 줄래?"
나는 내 담배에 불을 붙여다 그녀에게 주었고 그녀는 그것을 한 모금 빨고는 다시 뱉었다.
그 연기에선 그녀가 느끼는 불안함과 슬픔이 함께 밀려올라왔다.
"야, 너 뭔생각해?"
"어....응?"
"정말이지, 고등학교 때랑 변한게 없다니까."
그녀는 그말을 하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이성결혼을 금하는 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결혼이라는 것에 이성결혼 혹은 동성결혼이라는 것에 대한 구분이 없을 뿐.
결국은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건데 문제는 동성애를 지지하는(사실 이성애를 경멸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지만) 보수단체가 이러한 해석을 결사적으로 막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이성애는 사랑의 한 종류가 아닌 정신병의 일환이다.
그나마 지금은 좀 더 나아지긴했다. 최소한 이성애자들을 잡아다가 수용소에 가둔다던가 동성애자로 만들기 위해 이상한 약물을 투약하지는 않으니까.
"뭐야 저사람들?"
"남녀가 손을 잡고다니네. 이성애자인가?"
"젠장.거 참 오늘 재수없어."
그렇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은 따갑다.
물론 우리의 인권을 보호하겠다고 나서는 몇몇 단체들은 있지만 그들의 활동은 정말 경미한 수준이다.
세상이 바뀌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까? 그것도 0.5%의 사람들이 나머지 99.5%를 바꾸려면.
"저, 세형아."
"왜?"
"우리 말씀드려야 하지 않을까? 계속 이렇게 감추고 살수는 없잖아."
"뭘, 누구한테?"
솔직히 알고 있다. 무엇을 누구한테 말해야 할지.
"부모님께, 우리 사귀는 거."
그래. 어차피 이렇게 계속 피해나니는 건 힘들어. 결국 언젠가는 알게 될거야.
"너...방금 뭐라했냐."
"저, 여자를 좋아합니다."
1아버지의 손이 부들거리는 것이 보였다. 2아버지는 그의 손목을 잡고 땅에 접지시켜 놓고 있었다.
아마 저 손이 떨어지면 저 스킨병이 내 머리위로 날아오겠지.
"그럼 아이는..."
"자연 수정 할겁니다."
"자연 수정이라고? 너 그아이가 제대로 자라날 수 있을 거 같애? 자연 수정이라면 분명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아이보다 허약할 것이 뻔해.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지. 분명히 그아이는 그 사실 만으로 따돌림을 받고 자라나게 될거야. 그런데도 자연 수정을 강행하겠다면 너는 이미 부모로써 실격이야."
"그럼 아이 낳지 안겠습니다. 저도 아이한테 짐을 지어주긴 싫으니까요."
그 말에 1아버지의 목에 핏대가 서면서 손의 떨림이 한층 더 격화되었다. 한편 그것을 잡고 있는 2아버지의 손역시 필사적이었다.
이쯤 했으면 두분 모두 충분히 알아들었겠지. 더 말해봤자 화만 들쑤시는 꼴이다.
나는 일어서서 방문의 문손잡이를 돌렸다. 그 때 무언가가 날아와 내 머리에 꽃혔다.
"세형아!"
"응? 왜?"
"머리가..."
"아, 알아."
그 때 내 머리에는 아버지가 던진 빗 때문에 뒷머리에 검붉은 선지가 감겨 있었다. 휴지로 지혈하니 지금은 어느정도 멎었지만 확실히 보기 흉하긴 하다.
"어때, 반응은?"
미안, 별로 좋지 않아. 그말을 꺼내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그말을 꺼내려고 하면 즉시 혓바닥이 딱딱하게 굳고 목구멍이 판막으로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나는 끝내 말은 못하고 고개만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은 축 쳐지더니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처럼 변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머리를 내 품안으로 끌어 묻었다.
아마 그녀도 알고 있었겠지. 완전히 실패했다는 거. 집문을 나왔을 때부터 알고 있었을 거야.
하지만 그럼에도 물어봤던것은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놓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는 그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끊어졌던 우리 인연이 다시 이어졌던 것처럼, 이 사회도 언젠가 바뀌길 기도하면서.
확실히 우리는 윤리를 거스른 존재들이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비록 윤리는 거슬렀더라도 도덕만큼은 거스르지 않았다고.
윤리는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도덕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대한다. 언젠간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면 사회도 우리를 인정하게 될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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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재밌습니다
재밌어요~~ 장편으로 보고싶네요
잘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참신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