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 힘들어지는 성묘길
어제는 부모님들 계신 산소엘 다녀 왔다
오늘 일기예보에 비가 내린다고도 하고 그래서 미리 갔다
너무 임박해서 가면 차도 많이 밀리고 주차도 쉽지 않다
경기도 광주군 매산리라는 곳에 있는 한남공원이다
거의 초창기인 1979년 3월에 아버님을 모셨다
한남공원 등록번호가 146번이다. 왕고참이시다.
그리고 17년 후인 1996년 초에 어머님도 가셨다
벌써 만으로 46년 6개월이 지났다
어머님 가신지도 벌써 29년이 지났다. 정말 빠르다
다행인 것은 일정기간이 지나면 나가라고 하지 않는 것
다른 곳은 어느 기간이 지나면 쫓겨난다고 들었다
46년동안 봄 가을로 다녔고 중간중간 또 가기도 했으니까
거의 100번 가까이 다녔지 않을까 싶다
초창기에는 현충원에서 집합해 관광버스를 타고 다녔고
이후에 1982년부터는 자동차가 생겨 편하게 다녔다
전에는 꽤 멀었는데 1989년 이사를 한 이후로는
거리가 대폭 가까워졌다. 네비로 보니 39km다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다
가는 길도 전에는 이천가는 산업도로를 타고 다녔는데
차들이 엄청 막혔다. 중간에 긴 터널이 하나 있는데
거기가 문제였다. 나중에 굴이 하나 더 뚫렸다
요즘은 여수대로라고 성남을 질러서 가는 대로가 뚫려서
예전에 비하면 직선코스로 거리가 많이 가까워졌고
소요시간도 대폭 줄어 들었다
그런데 갈 때나 올 때나 왜 그렇게 착각을 하는지
길을 잘못들어 온 성남시를 뺑뺑 돌아 다니고 그런다
전에 한번은 헌인로를 계속 달려 남한산성쪽으로 가는 바람에
전혀 엉뚱한 생판 모르는 코스로 돌아 가느라 애를 먹었다
어제도 돌아오는 길에 여수대로를 계속 탔어야 하는데
중간에 오른쪽으로 빠지는 바람에 성남시로 들어가게 되어
한참을 돌고 돌아 다시 여수대로를 타느라고 애를 먹었다
묘소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다
주차장에서 묘소까지 올라가는 길이 조금 가파르다
전에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오르내렸던 거 같은데
요즘은 그게 그렇지가 않다
올라가는 것도 그렇지만 내려올 때가 더 그렇다
시멘트 바닥이 깨져서 울퉁불퉁하고 곳곳이 미끄럽다
한 발자국 떼는데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게 아니다
어제는 처음으로 등산배낭을 지고 갔다
제수랑 그릇이랑 모두 담아 가지고 내가 짊어졌다
집사람은 깔판이랑, 파라솔, 조화 등을 챙겼다
커다란 전정가위도 어거지로 배낭에 우겨 넣었다
일단 올라가면 가져간 조화로 화병갈이를 하고난 후
산소 앞의 두 그루 향나무 전정부터 한다
나이가 들어 제법 커진 향나무가 삐죽삐죽 길게 자란다
장갑을 끼고 모자를 쓰고 열심히 잘라내야 한다
잘라내는대로 봉투에 바로바로 담아야 한다
안 그러면 바닥에 떨어지거나 나무 위에 쌓여서
잔디나 나무가 누렇게 죽게 된다
그렇게 커다란 봉투 한 개가 잘라낸 나뭇잎으로 수북하다
가져간 제수들을 차려놓고 술도 올리고 절을 한다
대충 간이제사가 끝나면 둘이 마주 앉아서 식사를 한다
어제는 가져간 송편과 과일로 배를 채웠다
마지막으로 묘소를 다시한번 둘러보고 다시 짐을 꾸린다
교체한 조화 쓰레기도 한 무더기나 된다
조심조심 잔 걸음으로 내려오는데 완전 새색씨 걸음이다
어제는 가져간 등산스틱을 짚으니 평소보다는 조금 나았다
다음 번엔 신발도 등산화를 신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환갑되시던 해에 돌아가신 아버님
어제 우연히 묘비석 옆에 새겨진 글자를 보게 됐다
1919년 8월20일 생, 1979년 2월21일 졸
정확히 환갑을 6개월 앞두고 돌아 가셨다
아버님 돌아가신게 환갑도 되시기 딱 반 년 전인데
내 나이가 벌써 74세가 됐다. 13년이나 더 살았다
어머님도 7순을 드시고 바로 돌아가셨는데
어머님보다도 3년을 더 살았다. 이제 여한은 없다
두 분 모두 너무 일찍 가셨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 내가 성묘를 더 다닐 수 있을까?
한 해 두 해 해가 갈수록 점점 더 힘이 든다
운전해서 왕복하는 것도 길이 예전같지 않다
새로운 길도 생기고, 건물들도 새로 들어서니 헷갈린다
자주 가는 길이 아니다 보니 앗차하면 길을 놓치기 일쑤다
일단 길을 놓치고 나면 한참을 헤매야 한다
산소를 오르내리는 것도 점점 더 힘이 든다
낙상할까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작년에 집사람이 낙상을 한 이후로 더욱 조심스럽다
장인어른 계시는 동화경모공원은 그리 가파르지 않다
이제는 슬슬 산소를 정리할 생각도 한다
이제 내가 가고나면 관리할 사람도 마땅치 않다
요즘 젊은애들은 성묘니 뭐니 그런데 관심도 없다
요즘 부쩍 웰다잉이란 화두에 꽂혀서
내가 가기 전에 이것저것 정리할 항목들을 생각한다
그 중 하나가 묘지를 잘 정리하는 것이다
언제쯤 어떤 식으로 정리를 해야할까? 생각이 많다
이러구 저러구 성묘다니는 일이 전과 같지 않다
전에 비해 힘이 많이 든다. 나만 그런가?
첫댓글 ㅌ66333
명절 앞두고 성묘 다녀오셨군요ㆍ
청솔님이나 저나 이나이쯤되면 가파른언덕길은 좀 힘들죠 ㅎ
우리세대들 가고나면 다음세대들이 조상묘 돌보는건 힘들다고 봐야죠ㆍ
저희 친정엄마가 올8월달에 99세하고 반년을 더사시고 응급실가신지 12시간만에 먼길 가셨답니다ㆍ
35년전 먼저가신 친정아버지는 화장하는걸싫어하셔서 충남선산에 매장했는데 오빠도 나이가 78세되시니 해마다벌초다니는것도 힘들고해서
엄마를 아버지곁에 모시지않고 화장해서 인천납골당에모시고
올해가 윤달든해라 아버지도 파묘해 화장해서 엄마랑 한곳에 모시니 홀가분 하다고 합니다ㆍ
하나박에없는 조카녀석에게 너거아버지랑 고모들 다 가거들랑 할아버지 할머니유골 없애라 고 했죠ㆍ
윗분들묘도 다 화장해서 산에 뿌리고 이렇게 올해 큰일했답니다 ㆍ
올해 윤달들어 조상묘 이장하는일이 많다더군요
그러셨군요
윤달 든 해에 한다고 하드라구요
저도 가부간에 결정을 해야할 듯합니다
해가 갈수록 예전같지 않습니다
묘까지 올라가는 길이 시멘트 포장길인데
약간 깨지고 부서지고 해서 미끄럽습니다
전에는 깨끗했는데 세월이 지나니
길도 많이 망가졌습니다
올해 큰일을 하셨네요
수고하셨습니다.
매년홀로400km운전에 벌초하고나면 피곤하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합니다.자녀들 안따러다닌지도 10년이나됐네요...
정말 힘들게 성묘를 다니시는군요
저희는 관리비를 내고 관리사무소에서 벌초해 줍니다
제가 하는 건 달랑 향나무 두 그루입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별 관심없습니다
이제 우리 세대가 가고나면
성묘문화는 사라질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저희는 뿔뿔이 흩어져 있던 조상님들 묘를
전부 이장해서
가족공동묘지에 모셨어요.
사촌들도 벌초 날 다 모여서 제 지내고
편해졌어요.
요즘 그러는 집들 많이 봤습니다
우리 부모님 양 옆에도 그렇게 바뀌었습니다
OO가족묘라고 비석을 세웠드라구요
커다란 석재 납골묘를 만들어서
전 가족을 다 모아 놓드라구요
설치비가 4500만원 정도 든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이고 어쩌면...공감 합니다
저도 어제(24일) 친정 형제들과 고향에 성묘를 다녀왔네요
4남2녀 6남매가 모두 서울에 사니 단합이 잘되는데 어제는 4남매만 출발했어요
작은오빠가 운전을 하니 남동생이 조수석에서 오며가며
오빠 졸리지않게 온갖 먹을거리 싸와서 입에 넣어주며 조수노릇 톡톡히 하고요.
저희 친정산은 다행 큰길에서 얼마 안올라가면 되는곳인데
역시 이젠 나이탓인지 원거리라 오가는 자체가 힘이들더라고요
주위 향나무를 쳐준다거나 조화를 갈아 주는등 풍경들은 대동소이하지요
청솔님은 비교적 가까운 곳이니 그나마 다행인듯 합니다
큰오빠가 조경을 하신관계로 산소주위를 잘 꾸며놓았는데
그러잖아도 이런성묘는 우리대까지일텐데 하고 걱정들 했어요
성묘를 마치고 산소 돌봐주는이와 다섯이서 문경 약돌한우식당에 들러
연한부위 골라담아 늦은점심 맛나게 먹고
입장료도없는 근년에 새로생긴 넓은. 벌개미취 만개한 "문희농원"에 들러
4남매가 원없이 서로 사진도찍어주고...
제가 운전 그만둔 이후론 친정부모님 산소에 가기가 점점 어려운데
다녀오니 얼마나 마음 개운한지요
조금 힘 들어도 우리가 살아있는동안은 열심히 다녀야지요.
어제 우중성묘를 다녀 오셨군요
먼 길 다녀 오시느라 애쓰셨습니다
저도 문경출신 친구들 몇 있습니다
문경도 있고 점촌도 있습니다
우리세대 지나면 끝일 것입니다
시대가 너무 빨리 앞서가네요
형제끼리 우애가 좋으셔서
함께 다녀오신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저는 언제 그랬는지 기억도 안 납니다
한때는 함께 성묘하고
근교 유명식당에 가서 함께 식사도 하고
그런 시절도 있었는데요
저도 성묘 다녀오면 마음이 개운합니다
종교를 가진 것도 아니고
돌아가신 부모님들 성묘하고 제사 지내는게
저에게는 종교나 마찬가지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열심히 하신다는 말씀
진심으로 공감합니다
긴 댓글 감사드립니다
고향진주를 떠난지 60여년.군제대하고 괴나리봇짐 달랑메고 무조건 상경하여 출세라는놈을 잡기위해 앞만보고 달려서 지금까지 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고항땅부모산소는 동생이돌보고 가끔 가보다가 이제는 가본지가 10년이 넘었네요.수구초심이라고 그래도 고향이 그립습니다
잠간 머물다가는 바람같은 인생일진데
나는 죽으면 화장하여 유골을 지금내가 거주하고있는 수원 광교산에 뿌리라고 유언했지요
진주가 고향이시로군요
진주 다녀온지가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첫 직장에서 영업사원할 적에
담당지역이 경남과 제주였습니다
자주 출장을 다녔던 곳입니다
성묘하신지가 꽤 되셨군요
그래도 마음만은 늘 고향이 그리우시겠지요
인생이 참으로 덧없습니다
저도 제 나이가 실감이 안 납니다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흘렀습니다
저도 몇 번 다녀온 수원 광교산입니다
수원에 큰아버님댁이 있어 자주 갔었지요
사촌동생이랑 팔달산, 광교산에도 올라 갔구요
큰아버님 활쏘시는 동장대인가? 연무대인가?
거기도 갔었던 기억이 납니다
누님과 막내도 지금 수원에서 삽니다
저도 수원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제 남동생도 수원에서 학교를 다녔구요
제가 수원 신풍동에서 출생하였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함께 하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개님 ^^*
@청솔 알고보니 절반은 고항분(수원) 이시군요.고향까마귀라고 암튼 반갑습니다.늘 건필하세요
@오개 네 어려서 방학때면 늘 큰아버님댁엘 갔었습니다
명절때랑 기제사때마다 제사지내러 다녔구요
북수동 성당 바로 옆에 사셨습니다
화홍문 아래 냇가에 가서 멱도 감고 그랬습니다
팔달산에도 맑은 내가 흘렀었지요
그 아래 도립병원도 있었습니다
큰아버님은 영동시장에서 포목점을 하셨습니다
사촌누나들은 수원여고, 매향여고를 다녔구요
사촌동생은 수원고를 다녔습니다
삼풍농원 고깃집이 제 고교동기가 하는 곳입니다
몇 번 다녀 왔지요
감사합니다. ^^*
저의 고향 문경 점촌얘기가 많이 나오고 제가 지금 사는곳 수원얘기가 많이 나오네요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고향산에 산소가 있기에 해마다 다녀오곤 한답니다
힘들어도 고향 다니는 재미는 있답니다
네 댓글에서 문경 다니시는 분이 있었구
오개님은 수원 사시는 걸 제가 잘 알구요
고향에 가시는 보람이 있으셔서 좋으시겠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자랐는데 갈 곳이 없습니다
부모님들은 모두 이북에서 오셨구요
나이들어가며 힘이 드네요
멀지도 않은데 그러니
문경 다녀오시려면 힘드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추석이 다가오니 벌초 하고 미리 성묘 들 하시느라고
바쁘시군요
저의 친정 부모님 묘소는 충남 공주 선산에
있었는데 세종시 개발로 없어지고,
시부모 님 파주 광탄 천주교 공원 묘지에
있었서 벌초 는 따로 안 합니다
성묘길 수고 하셨습니다.
묘지가 없어져 섭섭하시겠습니다
힘이 들어도 있는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공원묘지는 벌초를 해 주지요
저희도 그렇습니다
관리비만 내면 다 해 줍니다
감사합니다 아모르파티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