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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希望) 민주주의’, ‘요구(要求)하는 민주주의’ 우리사회 고찰
- 그럼, 무엇이, ‘원하는 민주주의’이고 ‘요구하는 민주주의’인가?
- ‘요구하는 민주주의’무엇이며, 우리와 어떤 관계선상에 놓여 있는가?
- 그럼 ‘요구(要求)’하는 민주주의의 경향성(倾向性)은 무엇인가?
- 글을 맺도록 하자!
우리가 길을 걷다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두 사람이 앞서서 대화를 하면서 간다. 뒤에서 일정한 속도로 따라가다 보면 소리는 있는데 무슨 소리인지 잘 알아들을 수가 없다.
헌데 우연찮게 두 사람이 뒤로 쳐지고 그들 앞으로 바뀐 위치에서 걸어가는데 어떻게나 두 사람의 대화 내용들이 명확하게 들려오는지? 저절로 귀가 기울려진다는 점이다.
이것이 ‘원하는 민주주의’, ‘요구하는 민주주의’라는 의미를 설명하면서 우리사회에 동기부여를 하는 이야기로 제시하고 싶다. 즉, 오늘은 이 같은 문제로 이야기를 다루어보고 싶은 것이다.
원하는 민주주의는 뒤에 가는 나라의 입장(立場)이라면, 요구하는 민주주의는 앞서가는 나라의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재미있는 비유라고 생각된다.
본인은 무슨 민주주의 이론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얼마든지 이론을 제시할 수도 있겠지만 어쭙잖게 전개하고 싶지는 않고, 너무 통속적으로 제시되는 기존 원리들도 식상하고, 다만 우리사회 현실과 관련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엮어서 실제적으로 말 해 보기를 원한다.
그럼, 무엇이, ‘원하는 민주주의’이고 ‘요구하는 민주주의’인가?
앞서가는 사람들은 세계열강이나 선진국들의 위치에 대칭해서 설명하고 싶다. 이들을 ‘요구하는 민주주의’ 그룹들이라고 하자!
뒤따라가는 사람들은 턱걸이 선진국에 머무르거나 중도 그룹에 속하고 개발도상국에 속한 그룹들로 ‘원하는 민주주의’라고 비유할 수 있다.
정말 재미있는 기발한 비유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가는 자들은,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제시한대로 소수의 그룹에 속한 자들이다. 힘을 가지고 앞에서 자신들끼리 어떻게 세계를 관리할 것인지 온갖 형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뒤 따라가는 선진국의 아웃사이드나 중도 그룹들은 도무지 무슨 말들을 나누는지 알지 못한다.
반면에 이들은 앞에서 자신들끼리 명확한 정보를 주고받고 나누면서 ‘요구하는 민주주의’ 기반을 굳히기 위해서 뒤 따라오는 후발 그룹들에 대해서는 비밀을 요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들의 앞서가는 위치는 자기들끼리 정보와 유리한 위치를 공유할 뿐만 아니라 뒤 따라오는 후발 그룹들의 동태와 정보 등, 모든 것에 대해서조차 명확하게 파악을 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후발 그룹들에 대해서 강요할 수 있는 지구의 현대적 패권주의 형태라 할 수 있다. 이것은 후발 그룹들에게 ‘요구하는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해 가는 앞서가는 그룹들의 바운다리(경계(境界))로써 울타리라 할 수 있다.
‘요구하는 민주주의’는 무엇이며, 우리와 어떤 관계선상에 놓여 있는가?
‘요구(要求)하는 민주주의’란, 목적을 지향하는 세계관에 의해서 재조명 되어 적용되는 ‘생리적(生理的) 민주주의 원리’를 말함이다. 즉, 다른 나라에 적용되는 원시적 민주주의 원리가 변형 된 형태라 할 수 있다.
오늘 세계적 특징이 그렇다.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 불규칙 동사가 주도하는 세상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원칙, 클래식, 규격 등의 의미보다는 혼돈의 물리(物理)가 지배하는 구조 놓기가 인위적으로 이루어지는 시대이기에 생리적 민주주의가 되는 것이다.
우리사회가 이를 빠르게 간파해내지 못하면, 실제로 우리사회는 아시아에서 중국, 일본과는 다르게 적응력이 뒤처지고 있다. 이유는 이 두 나라보다 자주적 색깔을 너무 많이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다시 본론으로 이어가자면, ‘생리적 민주주의’는 전 세계에 이미 거대한 힘이 되어 있고, 수용되고 있는 민주주의의 체제적 힘을 목적에 활용하는 생동적(生動的)이고 통제적(統制的)인 작용원리로써 실용화(實用化)되는 파괴적 에너지와 직결되는 원리이다. 우리사회 혼란도 우리의 것이 파괴되는 과도기적 현상를 말하는 것이다.
반면에 민주주의의 근본, 즉 원시적 민주주의 원리는 ‘원하는 민주주의’ 기반과 맞는 순수성(純粹性)을 기조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리적 민주주의(요구하는 민주주의)’는 어떤 거대한 힘이 이것을 무기(武器)로 삼아서 어떤 방향으로 몰아가는 배경으로써 변형(變形) 된 원리이다.
즉, 먼저 원리(原理)화 된 원시적 성격을 기계적(機械的)이고 통제적인 구조를 위해서 강제성(强制性)을 가미(加味)시키고 철저한 복종을 기조로 하는 지구적 목적의 실용화 과정에서 ‘요구되는 민주주의 원리’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앞서가는 그룹들, 즉 미일(美日)이 주도하는 ‘요구하는 민주주의’ 환경인 것이다. 이때의 ‘요구(要求)’ 는 반드시 상대가 원하는 대로 따라야 하는 것이다. 반면에 ‘원하다(希望)’는 자신들의 뜻에 따라 희망의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힘의 원동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요구하는 민주주의’는 ‘원하는 민주주의’를 철저하게 부서 버리면서 시민들을 속이는 파괴를 지향하는 힘의 원천인 것이다.
우리사회는 이 ‘요구(要求)’하는 민주주의가 주도되어 온 것이다. ‘요구(要求)’하는 민주주의가 우리 앞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게 비밀의 지대를 형성하면서 반드시 우리로 하여금 무언가 이루어 가는 사회가 되도록 요구를 해 온 민주주의로 나아온 것이다. 이것이 우리사회 혼란의 이유이고, 지금의 사태로 이어진 근본 원인인 것이다.
이 같이 ‘요구(要求)’하는 민주주의가 우리가 원하고 희망하는 민주주의 사회를 갖지 못하도록 누르고, 없애고, 결핍(缺乏)되도록 사회를 조절해 온 것이다. 이를 가리켜서 좋게 표현하자면 맞춤형의 사회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조작의 사회적 성질이 지배하는 구조를 말함이다.
왜, 사회가 자기 힘이 생성되지 않는가? 이에 대한 답이 지금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문제들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자기본위(自己本位) 결핍(缺乏)사회라 할 수 있다.
결핍이란 불신, 대립, 분열이란 파괴적 성질이 주도되는 사회를 말함이다. 만일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 방향으로 나아왔다면 결코 이 같은 사회 현상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요구(要求)’하는 민주주의가 우리사회를 주도했기 때문에 지금의 이 지경까지 도달하게 된 것이다. 진정한 보수가 없어져 버린 사회, 그래서 나라 위기에 팔짱을 끼고 관망하는 보수가 되고, 이를 보고 보수 진영이 절망을 하는 사회가 지금 우리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럼 ‘요구(要求)’하는 민주주의의 경향성(倾向性)은 무엇인가?
화려한 민주주의 이론으로 정신을 빼 놓는 것을 말함이다. 이를 우리는 ‘문화적 길들이기’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인류의 사상체계로써 인류사회의 금자탑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의 결정체이자 지상 낙원을 지향하는 배경에서 나온 원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해에는 다른 이견(異見)이 있을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민주주의 원리가 나오게 된 동기를 충분히 습득해 볼 필요가 있다. 지구상에 마지막 원리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민주주의 이론은 유대인들의 머리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이 유대 민족은 어떤 부류들인가? 성경은 이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유일신 신앙의 기조에서 비롯된 민족임을 소개한다. 헌데 이들은 하나님께 반역함으로 나라를 잃고 거의 2천년 이상을 전 세계 유리방황하며 떠돌이 생활을 한 민족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환경은 이들 유대인들에게는 세계에 대한 깨달음과 결단의 배경이 되도록 한 배경을 갖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의 연속이 이들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나라 없이 2천년 이상을 세계를 떠돌다보니 세상 어딘가에 자신들이 살 수 있는 신세계가 있을 것이란 꿈을 꾸면서 이행성의 삶을 추구하는 세계적 배경을 갖게 되었다는 아이러니이다.
다시 말해서 신대륙을 찾아서 이동하는 모험의 민족들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이들은 언제부터인가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유대인들과 세계라는 ‘일대일’, 즉 ‘세계를 하나의 법이 지배하는 공간으로!’라는 슬로건을 갖도록 했다는 의미이다.
세계 모든 나라들은 자기 국가라는 땅덩어리 안에서 맴도는 역사를 가졌는데, 유대인들은 세계와 일대일의 배경에서 세계를 자신들의 국토로 삼고자 하는 꿈을 갖는 무대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생철학의 중심적 사상과 울타리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세계화의 배경을 위해서 도마뱀 꼬리 자르기 등의 생존법칙이 강하게 형성되었고, 여기서 경제기반의 원리와 정치적 배경들이 나왔던 것이다.
이 같은 유대적 세계사적 배경이 모든 세계나라로 하여금 유대인 생활 법칙을 추구하는 지구적 공감대가 형성 되는 결과가 주어졌을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세계를 주도하는 유일한 민족으로 등장을 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바탕에 의거해서 근대와 현대로 이어지는 어간의 유렵의 온갖 전쟁 과정은 심지어 나폴레옹의 10년 전쟁까지도 말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이데올로기 사상, 즉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란 양대 이론이 파생 되도록 했고, 이를 통해서 세계를 양분하는 이데올로기로 몰아 왔던 것이다.
지금은 제3의 물결시대로 이데올로기적 지적 재산이 무기로 활용되는, 이것이 바로 ‘요구하는 민주주의’로 통제를 지향하는 변천의 원리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생리적 민주주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요구하는 민주주의는 바로 이 같은 배경과 연관되어서 통제를 지향하는 변형 된 민주주의 시대가 열려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클린턴과 블레어 총리가 선언했던 제3의 물결시대에 맞추어지는 새로운 민주주의, 그래서 신자유주의 등의 개념들이 우리사회에까지 나오게 되었던 배경들이라 할 수 있다.
변형 된 민주주의, 즉 요구되는 민주주의는 우리사회를 제도적, 인적, 그리고 문화적으로 길들이기를 해 온 것이다. 우리의 희망의 민주주주의가 안 되고, 목적을 향해서 나아가는 사회체제로써 통제를 지향해온 그래서 요구되는 민주주의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요구하는 민주주의’ 끊임없이 진화되어 이제는 우리 사회를 몰이사회로 몰아가는 본격적인 혼란을 조성하는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이를 사냥몰이와 동의적인 사회몰이인 것이다.
그 동안 충분한 시간을 갖고 우리 온 사회 구조는 물론 국민들까지 전 사회를 겨냥해서 인식의 변화를 도모하였고, ‘요구하는 민주주의’에 잘 순응하는 길들이기가 마쳐진 것이다.
반드시 말을 잘 들어야 하는 사회, 그렇지 않으면 ‘레짐 체인지’ 정치로 바꿔버리는 실력행사를 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사회 몰이를 하는 요구하는 민주주의 과도기로 들어선 것이다.
사냥꾼들이나 옛 시대 왕이나 군주들이 사냥을 할 때 멧돼지나 산양, 늑대, 곰 등을 몰아갈 때 요란 법석을 떨면서 잡고자 하는 짐승들의 혼을 쭉 빼 놓듯이, 우리사회를 그렇게 몰아가는 군중 몰이나 여론 몰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전에 당연히 먼저 정치 지대를 제압해 놓은 것이다. 어떻게 해 놓은 것인가? 저급하고 하수의 정치판이 주도하도록, 국민들을 우매하게 만들어가는 정치지대가 되도록 해 놓은 것이다.
요구되는 민주주의 정치적 힘은 우리사회 내부 자신들끼리 싸워서 지리멸렬하도록 권력 투쟁으로 내모는 것이다. 피투성이 정치마당을 만들도록 적절한 대상들을 키우고 힘을 주고 금력, 권력을 손에 쥐어줘서 오로지 ‘적과적’이란 환경이 조성되도록 조절하는 것이다.
우리사회 정치인들을 보면, 하나 같이 이러한 마인드로 정치를 하지 않는가? 그 어느 누구하나 결합을 지향하는 큰 인물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져 있는 정치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요구하는 민주주의는 우리의 희망이 되는 원하는 민주주의 기반을 갖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우리사이를 모략으로 불신을 조장하고 거짓과 속임수의 연기(煙氣)를 끊임없이 여론의 역할을 통해서 피워대는 것이다.
이것이 거대한 힘이 우리 앞에서 움직이며 우리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목적을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요구를 여러 가지 장치를 함으로써 우리가 따르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하도록 몰아가는 사회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글을 맺도록 하자!
참으로 슬픈 현실이다. 우리가 원하는 희망의 민주주의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지 못하고, 쇠사슬에 묶인 것 같은 요구되는 민주주의가 우리사회를 휘몰아치는 회오리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나라는 이 같은 외부의 힘이 요구하는 민주주의로 인해서 오히려 자기사회를 공격하는 민주주의 형태로 드러나고 있음에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길들여져 있는 사회가 아닌가?
지구상에 그 어느 나라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자국을 혼란으로 내몰고 있는 나라가 있는가? 바로 ‘요구하는 민주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희망의 민주주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강한 힘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적을 위해서 우리에게 강요(要求)하는 민주주의, 우리의 주권과 국권을 유린하고 정치와 국민사이를 이간질 시키는 요구하는 민주주의로써 우리사회 파괴를 지향하는 것이다.
오늘날 목적을 추구하는 변형 된 생리적 민주주의에 눈이 감기어 버리고 감각을 잃어버린 뒤틀러진 민주주의 사회로부터 일어나는 자기사회 혼란을 추구하는 비정상 사회를 말하는 것이다.
대통령 박근혜를 지키고 보호하자는 차원이 아니다. 오직 목적을 추구하는 제3의 물결시대에 맞는 변형된 민주주의의 생물학적 통제시대로 몰아가는 힘이 우리의 대통령 직까지 흔들어 대면서 나라를 혼란으로 내 몰고, 그 틈을 타서 어떤 목적들을 추구해가는 이런 배경들을 바로 보고 바로 잡자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앞에서 우리의 정보와 전 사회를 유린해가면서 자신들의 목적을 추구하는 통제의 형태로 드러나고 있는 ‘요구하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그것은 현재 사냥하듯이 우리사회를 몰아가는 생리적 민주주의 사냥 몰이임을 역설하고자 한 것이다.
즉, ‘요구하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통해서 지금의 우리사회 사태를 고찰(考察)해 보고 우리가 ‘희망하는 민주주의’ 사회를 지향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재미있게 구성해서 소개를 하고자 해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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