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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을 나오면 설국이 나타나고, 밤의 밑바닥은 하얗게 된다. 하얗게 희미해지는 이미지는 독자를 비현실의 세계로 이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일은 현실의 것이 아니다. 설국에 가는 시마무라는 생산적인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한량이다. 설국에서 만나는 인물들도 고마코나 요코 외에 뚜렷한 인물이 없다. 고마코나 요코조차도 일상생활의 분위기를 풍기지 않는다. 설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우리가 속한 현실 세계의 일이 아니므로 더욱 쉽게 받아들이고 아름답다고 느끼게 된다.
‘설국’의 주요 등장인물은 시마무라, 고마코, 요코에 불과하다. 시마무라는 산행 후 우연히 들른 온천장에서 고마코를 만나고 그녀를 보러 다시 돌아오지만 적극성은 없다. 요코가 ‘고마짱을 잘 돌봐 주세요’해도 ‘나로서는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어’라고 말하고 만다. 그녀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고마코는 어떤 상황에서도 진지하게 살아가고 자기 나름대로의 보람을 찾으려는 인물이다. 일기를 쓰고 샤미센을 연습하고 스승 아들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게이샤가 되고. 시마무라를 사랑하는 그녀의 행위에는 불순함이 없다. 요코는 고마코의 약혼자로 알려진 스승의 아들을 간호하고 그가 죽은 뒤에도 매일 산소에 찾아간다. 찌르는 듯한 시선과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요코는 그녀의 헌신적인 간호와 더불어 순수함의 절정으로 묘사된다. 고마코와 요코의 삶은 매우 달라 보이지만 시마무라의 삶과 비교해 보면 건강하게 보인다. 그러나 작품의 끝에서 요코가 죽게 되는 것은 지극히 순수하기만한 것이 현실의 삶에서 버티기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 준다.
시마무라는 ‘헛수고’라는 말을 자주 한다. 자신이 하릴없이 지내면서도 고마코가 하는 일들을 너무도 쉽게 헛수고라 평가해 버린다. 고마코가 그동안 읽었던 소설에 대해 일일이 기록하는 것, 자신에게 품고 있는 사랑 같은 것까지도 헛수고라 말하지만 사실은 그것들을 열심히 해내는 고마코에게서 순수함을 발견한다. 시마무라가 고마코의 삶을 헛수고라 폄하해도 그녀는 쉽게 긍정한다. 네가 그렇게 여기든 말든 상관 않겠다는 의지보다는 그저 나는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 노력이 헛되지만 거듭된다는 점에서 허무함을 느끼게 한다. 시마무라는 고마코가 삶을 열심히 꾸려가는 것과 자신을 비교하며 허무를 즐기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헛수고라는 점에서 보면 요코의 삶은 고마코보다 한 수 위다. 요코는 다른 여자의 약혼자로 알려진 남자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쳐 희생하고 결국 죽음으로 끝나는 것처럼 헛수고에 진지하다. 이런 비현실성은 현실의 세계에서는 존재하기 어렵다. 어려운 만큼 갈망도 커지므로 독자는 이런 허무의 세계에 몰입하게 돼 시마무라와 같이 설국을 헤매게 된다.
‘설국’을 읽다 보면 묘하게 기운이 빠진다. 이는 가와바타가 일관되게 보여준 허무함과 몽환적 분위기가 주는 아련함도 있지만 시간의 일정한 흐름도 없이 순간의 감성에 충실한 상징들이 많기 때문이다. 시가 지닌 특성과 매우 닮아 있다. 잦은 줄 바꾸기를 통해 시의 행과 같은 연상을 자아낸다. 독자는 이런 호흡 조절을 통해 문장 사이에 숨어 있는 감정을 읽는 노력을 하게 된다. ‘왜 이런 느낌을 갖게 되었을까, 왜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를 생각하며 읽게 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책을 읽은 독자는 등장인물의 감정에 더 몰입하게 되고 읽은 후에도 그 여운을 오래 간직하게 된다.
‘설국’은 어느 한 부분을 떼어 읽더라도 그 자체로 눈 고장의 분위기를 진하게 갖고 있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중 한 문장을 고르고 이것들을 이어 붙이기만 해도 또 하나의 작품이 완성될 정도로 문장 하나하나에 공을 들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을 읽을 때는 시간을 따라가는 줄거리에 주목하기보다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을 찾아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음미하는 방법으로 읽으며 문장이 주는 여운을 즐기는 것이 좋다.
이 작품에서 가와바타는 설국이라는 비현실 세계를 구축하고 그 세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물들을 그려내었다. 인간이란 무심히 순수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지만 현실에서 약한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읽고 나면 온통 눈과 겨울의 나라만 남는다. 그래서 시마무라가 온천장을 세 차례 방문한 것 중 단 한 번만이 겨울이었다는 것을 깜빡하고 만다. 성애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도 없지만 에로틱하다. 동화 같기도 하고 서정시 같기도 하다. 참으로 묘한 소설이다.
최영주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雪國을 스토리 삼아 떠나는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가 다카한(高半) 료칸이다. 800여년전 현재 위치에서 온천을 처음 발견한 다카하시 한로쿠(高橋半六)의 두 글자를 따 지은 이름이다.
현재 주인은 다카하시 한로쿠의 36대손이며, 그의 아들이자 국회의원인 37대 손이 가끔 료칸에 내려와 업무를 볼 때도 있다.
1930년대 다카한 료칸의 전경이다. 산기슭 언덕 위에 위치, 에치고 유자와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1930년대 당시에는 3층짜리였고,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2층의 가스미노마(霞の間, 노을이 지는 방)에 머물며 설국을 집필했다.
그런데 나무로 지어진 이 건물은 화재로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지금과 같은 6층짜리 현대식 건물이 들어섰다.(아래사진 오른쪽)
왼쪽 사진은 1968년 가와바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 소설의 영문 번역자와 함께 다카한 료칸을 찾아 찍은 사진이다. 맨 오른쪽은 당시 영화 제작사의 관계자인 것으로 추정된다.
다카한 료칸 2층의 설국문학자료관에는 가와바타가 소설을 썼던 다다미방 가스미노마를 그대로 재현해놓은 방이 있다. 가와바타는 1935년부터 1937년까지 다카한 료칸에서 머물며 설국을 집필했다. 하지만 결말 부분을 여러번 고쳐 썼기 때문에 최종본이 완성된 것은 1949년쯤이었다.
가와바타가 다카한 료칸을 찾아 소설을 쓴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 료칸 주인의 아버지가 가와바타의 도쿄대 문학부 선배였기 때문에 편하게 머무를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 촬영 중에 가스미노마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설국 영화 제작 관계자들.
설국은 노벨상 수상 이후 여러차례 영화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위의 두 사진은 다카한 료칸의 영화 제작 현장을 찾은 가와바타와 소설 번역자가 연회를 하는 장면이다. 아래 사진 왼쪽에서 두번째, 세번째 배우가 소설 속 주인공인 시마무라와 고마코 역을 맡은 배우다.
소설 속 고마코의 실제 모델인 게이샤 마쓰에의 18세 때 모습. 실제 이름이 고다카였던 그녀는 스무살 때 가와바타를 만나 아침마다 방에 불을 넣고 목욕물을 데웠다고 전해진다.
유자와에는 설국과 관련된 전시관이 하나 더 있는데, 역사민속자료관을 겸하고 있는 '설국관'이다. 다카한 료칸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이 기념관은 게이샤 마쓰에가 살았던 곳이다.
사실 다카한 료칸은 스토리 때문에 명맥을 잇고 있는 료칸이다. 객실을 비롯한 시설이나 음식 맛은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철구 대표는 "주인에게 식사를 고급스럽게 하라고 아무리 요구해도 개선되지 않는다"고 헛웃음을 지었다. 결국 디테일이 강한 이 대표가 한국서 공수한 김치와 김, 젓갈류로 손님들의 입맛을 맞출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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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치고 유자와역 상점가
사케를 잔 술로 맛 볼 수 있는 에치고유자와역 체험 코너
90가지 종류의 소금도 맛 볼 수 있다
오백엔을 내면 코인 다섯개로 바꿔준다
코인 하나로 한잔 씩 맛 볼 수 있다
과음을 하면 저 인형처럼 된다~ㅋ
주먹만큼 커다란 주먹밥도 맛 볼 수 있다
토끼로 만든 장식품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자료를 전시한 '설국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영화로 만나는 '설국'
여주인공 고마코와 함께 있던 방에 앉아 풍경을 대하면 여름밤에 번지는 '설국'의 여운이 진하게 다가온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雪國)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얗게 되었다.” 설국하면 떠오르는 이 문장은 소설의 시작이자 몽환적인 눈 세상을 애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다카한 료칸의 설국관
다카한 료칸 앞에선 야스나리(맨왼쪽)
설국의 무대인 다카한 료칸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집필하던 방을 그대로 재현해 놓고 있다
여주인공 고마코가 입었던 옷도 풍경을 더한다
다카한 료칸에서 바라 본 풍경
겨울이면 스마트폰의 풍경이 된다
설국관이 잘 보존되어 있는 다카한 료칸
다카한 료칸의 가이세키 요리
에치고쓰마리 대지의 예술제의 무대인 마쓰다이역
주민들과 함께 작품을 완성한 마쓰다이 노부타이 입구의 작품
노부타이 농가 레스토랑
니가타쌀을 형상화한 작품
쿠사마야요이의 '꽃피는 에치고' 앞에 선 학생들의 표정이 풋풋하다
비료를 보관하는 곳을 재미있게 표현했다
버려진 고민가를 조각칼로 교수와 학생들이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작품으로 만들어 낸 탈피의 집
2년에 걸쳐 마침표를 찍은 탈피의 집
탈피의 집에서 숙박도 가능하다
마쓰다이 호시도우게 타나다(계단식 논) 계단식논마다 새로운 주인을 연결해서 농사 체험도 할 수 있다
에치고쓰마리 사토야마 현대미술관 예술제가 시작되면 이 공간에 새로운 작품이 전시된다
지역주민들의 생활용품으로 만든 작품. 역사를 보존하는 기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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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일본 설국 낭만여행 사진 에세이 <2>|작성자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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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구로산 입구에서 스패츠를 하고 아이젠을 차는 등 준비를 합니다.
찰칵! ^^ 즐길 준비 되셨나요?
수백년된 고목들이 시작부터 우리를 마중나와 있습니다.
세 가족이 함께 하신 우거지님과 헤라님, 그리고 따님 밀크스킨님.
요기 두분은 모자지간. ^^
케이트님은 3연속 개근이십니다. ^^
눈을 이고 사는데는 도가 튼 것 같은 석등입니다. 2년 전에도 저런 모습이었는데 말이지요.^^
아, 드디어 1천년된 할아버지 삼나무와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오중탑이 눈에 보입니다.
탑은 기본적으로 불교문화의 산물입니다. 이 오중탑은, 최초에는 통일신라 말인 헤이안시대 10세기 초중반에 세워진 것으로 고려말에 해당되는 무로마치 시대에 재건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기본적인 건축양식도 헤이안
총 높이 29m의 탑으로 다포 방식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사용하지 않던 하앙을 걸어 처마를 바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목조건축물의 특성상 100~400년에 한번씩은 완전 해체수리를 해야 하는데, 언제 했는지는 알수가 없네요.
19세기 중반의 메이지유신 당시 불교와 신도를 떼어 놓은 신불분리령으로 인해 폐불훼석이라는 어마어마한 불교 문화재의 훼손이 있었는데, 이 탑은 비교적 오지에 자리한 탓에 화를 면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하구로산 위쪽에는 산앙신앙으로 유명한 데와삼산(하구로산, 갓산, 유도노산)의 신을 모두 권청하여 모신 초대형 신사가 자리합니다.
즉, 아래에 불교 탑이 있고, 위에 신사가 자리하는 전형적인 신불습합의 장소인 셈이지요. 위로 올라가면서 그런 모습을 더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목조탑이 남아 있다는 것이 매우 부럽습니다. 우리나라는 1626년에 만들어진 법주사 팔상전 정도가 오래된 목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천년 삼나무의 위용... ^^
일본의 서까래도 처음에는 우리처럼 동그랬는데요. 무로마치 시대 이후로 가공하기가 편한 사각으로 점차 바뀌었다고 합니다. 책에서나 보던 하앙방식의 공포를 보게 되어 저 개인적으로는 의미 있었습니다.
도라지님도 이 길을 참 좋아하셨어요.
정말 올려다보게 되지요? ^^
동경 출장 중에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아키타에서 합류하신 하늘앞뜨락님. 이번 여행을 너무너무 좋아하셨어요. ^^
참으로 어마무시합니다. ^^
언제 이런 경험을 또 해볼까요. ^^
길 양쪽에 작은 신사가 있는데요. 왼쪽의 신사의 퇴보(앞으로 튀어나온 보) 머리 문양을 보세요. 사자입니다. 아래 사진이 오른쪽 퇴보 사진입니다.
오른쪽의 신사 양쪽으로 뻗어나간 창방보의 머리를 보면 코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사자와 코끼리를 상징으로 하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양쪽에서 협시한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지요. 이를 또 자세히보면 코끼리의 입부분이 왼쪽은 다물고 있고, 오른쪽은 살짝 열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불교나 신도 등 동양의 종교 형상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후기에도 다시 나오지만, 이는 입을 벌리고 내는 소리인 산스크리트어의 첫자 '아'를 본따고, 입을 다물고 소리내는 산스크리트어(범어)의 마지막자 '훔'을 뜻하는 것으로 우주 만물의 생성원리인 음양의 이치를 나타낸답니다.
이는 꼭 일본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느슨한 규범입니다.
왼쪽의 사자상을 클로즈업한 것인데, 여기서도 왼쪽은 다물고, 오른쪽은 벌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지요. 퇴보 위쪽에 조각된 학을 탄 신선의 조각이 참 멋지네요. 1천년 전에 조초라는 일본의 위대한 목조각가가 발전시킨 요세기 쯔구리라는 방식의 붙이기 조각 기법으로 일본의 목조각은 아주 섬세하답니다.
왼쪽이 동북지방에서 가장 크다는 하구로산 신사입니다. 신 세 분을 함께 모신 것이어서 이름이 삼신합제전인가 그럴겁니다. 데와삼산이기에 세 개의 산에 각각 모셔져야할 신들을 겨울에도 참배가 가능한 이곳으로 모시고 온 것이랍니다. 이렇게 신을 모시고 오는 것을 '권청'한다고 합니다. 즉, 이곳 하구로산으로 갓산의 신과, 유도노 산의 신을 '권청'해서 모신 것이지요. 이쪽으로 권청했다고 하여 그쪽 산의 신이 없어진 것은 아니고요. 일종의 '복사'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듯해요. 그래서 아주 유명한 신사는 권청해간 부속신사가 3만개나 되기도 하지요. 대표적인 것이 기업번창을 기원하는 후시미이나리신사로 교토에 있으며 3만개 정도의 프렌차이즈(?)신사가 있습니다. 발도행에서 두번이나 간 규슈의 다자이후덴만궁은 공부의 신을 모신 곳으로 3천개의 권청신사를 가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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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지도 일본사진들 / 아름다운 사진들 케논 550d
2016.01.22. 08:52
http://blog.naver.com/aaahaye/2206050514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