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째
참 부지런들 하다. 아침밤을 먹기 전에 도야호수 주변을 산책해야 한단다
사진도 찍어야 한단다. 모자와 선글라스는 필수. 으흐. 얼마전까지 나는
선글라스를 끼고 모자를 쓰고 사진 찍는 일을 얼마나 싫어했던가.
나이 먹은 아줌마들의 공통 가면? 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는데
이제는 아니다. 유별나게 많은 내 눈가에 주름을 가릴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므로 으흐!
양쪽 손과 발을 힘차게 뻗은 역동적인 친구의 모습을 보라. 해당화가 피어있는 호수가 바위에 앉아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정갈한 친구의 모습을 보라. 친구들과 손에 손을 잡고 날아오를 듯한
자세로 활짝 웃는 모습을 보라. 호수를 바라보며 손을 높이 쳐든 활기찬 모습을 보라.
날씨가 흐린 탓으로 오히려 먼 산과 긴 띠 모양의 회색구름과 잔잔한 호수의 수면이 어우러진
한 폭의 동양화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 아름다운 추억이다.
어제 저녁 걱정은 기우였다. 아침밥은 신선한 야채와 과일 계란후라이와 요플레 우유
밥 된장국. 만족스레 아침식사를 끝내고 유람선을 타러 출발!
도야호수 유람선
직경 약 10㎞의 원형에 가까운 칼데라 호. 아름다운 호수를 둘러싸고 전망이 일품인
료칸들이 모여있다. 2007년 G8(주요 8개국) 정상 회담이 개최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속초에서 유람선을 타고 설악산과 동해를 바라보던 느낌은 얼마나 웅대하고 드넓었던가
거기에 비하면 도야호수는 물웅덩에서 돛단배를 탄 느낌. 맑지 않은 물은 잔잔했지만
보이는 풍경은 밋밋했다. 행복이건 슬픔이건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들의 품성처럼.
북해도를 여행하는 내내 느낀 것이지만, 호수 주변 산을 파헤친 흔적이 전혀 없다는 것.
자연을 자연 그대로 잘 보존해 놓았다는 것. 북해도는 청정지역이 분명했다.
과자를 던지는 사람들과 과자를 향해 날아오는 갈매기떼 마져 없었다면 얼마나 지루한 유람선인가.
뱃전에 부서지는 물살과 날아다니는 갈매기와 화려한 스카프를 날리며 화사하게 웃는 혜림과
관순과 경희를 향해 셔터를 누르는 기쁨이 없다면 이 유람선은 또한 무미건조했을 것이다.
얼굴이 이쁜 여자는 표정도 이쁘다. 이뻐 이뻐 이뻐!!
후키다시 약수
요테이산 산 기슭에 위치한 후키시다약수공원은 요테이산의 만년설이 녹아 스며들었다가
자연적으로 생성돼 하루 약 8만톤의 맛있는 약수가 폭포수처럼 끊임없이 솟아 나오는
용수지역일대를 조성한 공원이다.
이 약수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고 한다.
물부터 한 바가지씩 마셨다. 청량하다. 만년설이 녹아 스며들었던 물이라니. 일년내내 폭포처럼
쏟아져내리다니. 다 약수라니! 놀랍다. 이 물을 마시면 백년을 산다하는데, 믿어도 될 것 같다.
조금 걸어올라가니 너른 잔디밭이 있고 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동영상을 찍겠다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라나? 혜림은 재차 우리에게 주문하였다.
우리는 손을 잡고 깔깔거리며 빙빙돌 뿐 아무도 그 주문을 따라하지 못하였다.
네 명 친구들 모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목자들. 온유하고 맑고 교만하지 않은 착한 목자들
식사때마다 성호를 긋고는 '성당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하겠다' 며 깔깔거리는 친구들,
참 정답다.
영화 러브레터의 고장 오타루로 이동
러브레터
히로코가 죽은 연인인 남자 이츠키에게 보낸 편지가 연인과 동명의 학교 동창생에게 전달되고
그녀가 답장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이 감성적으로 그려져 있다.
오겡키데스까? 잘지내시나요?
오타루운하
여행하기 전 사진으로 본 오타루 운하는 얼마나 소박하면서 운치있고 아름답고 낭만적이던가.
특히 눈이 쌓인 겨울사진은 당장 달려가고 싶어질 만큼이었다. 사진이 실제보다 월등히 우월하다는
사실이야 알고 있었지만 차이가 나도 너무 심하다. 화장을 한 여자를 조명등 아래서 보는 것과
맨 얼굴의 여자를 낮에 보는 차이도 이만큼은 아닐 터. 혹 배를 타나 했더니 옆눈으로 슬쩍
보여주는 정도로 마무리. 서둘러 오르골 전시장으로 직행. 시간이 되는 사람은 운하를 걸어보란다.
운하는 밤 야경이 멋지다는데? 시간도 짧고 밤까지 이곳에 머물 계획도 아닌 것 같구.
일본 여행은 개인적으로 와서 천천히 구경해야 제 맛이 날 것 같다.
오르골전시장
오르골은 기계적 작동으로 소리를 내는 장난감 악기를 말한다.일본 최대 규모라고 하는
오타루 오르골당은 이곳의 명물로, 아기자기한 열쇠고리 오르골부터 스위스제 고급 오르골까지
다양한 오르골을 취급하고 있다. 3층을 가득 채운 오르골들.수천가지는 될듯한 다양함이 놀랍다.
아닌게 아니라 동물이면 동물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이면 물건등 세상의 모든 것들의
형체를 빌어 오르골을 만들어 놓았다. 음악소리가 나면서 한 소녀가 빙빙 돌아가며
춤추는 것에서부터 피아노는 물론 개구리는 물론이고 오징어 오르골도 있다.
오타루 시내를 걸었다.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가게들이 즐비하다. 키 작은 해바라기가 나란히
화분에 심어진 곳에서, 꽃들로 치장된 골목길에서 우산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비가 내리는
도시의 골목길을 사람들에 섞여 친구들과 걷는 일은 낭만적이고 운치가 있다. 혜림이
쫒아다니면서 열심히 사진을 찍어준 덕분에 그곳 풍경과 그날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겨졌다.
아이스크림도 먹었다.비 냄새와 아이스크림 향기와 친구들의 걸어가는 다정한 뒷모습과
맘껏 소리내어 웃는 웃음소리까지, 두고두고 그리워지겠다.
죠잔케이 그랜드 호텔로 이동
온천을 하고 저녁밥을 먹었다. 점점 적응되어가는지 배가 부르게 먹었다.
휴식을 취해야 할 밤. 다섯명이므로 세명 두명으로 나뉘어 방 하나씩을 이용하였다.
이 밤을 그냥 보내면 안된다나? 빨리 놀러오란다. 다섯이 함께 모이니 시끌시끌
웃음이 끊이지를 않는다. 준비해 온 노래 하나씩을 불러보란다. 피곤해서인지 내
목소리가 쉬고 탁한 소리를 낸다. 노래는 불가능. 나는 지난번에 카톡에 올린
에델바이스로 대신 해 줘잉.
적극적인 관순이는 빼지 않고 참으로 열심히 노래를 부른다. 목소리는 거칠지만 잘해보려는
마음가짐이 갸륵하다. 혜림이는 한번 정도 빼더니 기록까지 해 온 봄날은 간다 를 부른다.
분명 남편 앞에서 꽤 여러번 연습을 하며 깔깔거렸을 것이다. 준비성이 가상하다.
경희는 용감하다. 알지 못하는 길도 당황하지 않고 잘 찾아가 듯 그 의젓한 품성이
노래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사가 생각나지 않아도 얼굴색이 변하지 않고 옆사람이 일러주는대로
더듬거리면서도 끝까지 불러낸다.
그날의 주인공은 단연 분홍이다. 노래를 못 부른다고? 노래 해 본 적이 없다고?
빼고 빼고 빼더니 웬걸. 비목을 부르는데 우리 모두 입을 쫙 벌리고 들었다. 타고난 가수 체질이다.
가늘고 맑고 아름다운 소리가 목구멍 저 안쪽으로부터 마치 기름에 바른 반지르르한 가래떡인양
미끄러지듯 나온다. 감탄에 감탄! 뭐야 뭐야 못한다더니 뭐야 뭐야.
연달아 노래를 네 곡 불렀다. 난 잘 못 부르는데! 분홍이가 또 그렇게 말하는 바람에 우리 기가
한번 더 팍 죽었다. 깔깔깔. 하도 웃어서 내 쉰 목소리가 아예 나오지 않는 밤.
한밤중에 잠시 깨어나 서너번의 기침을 한 내가 행여 깰까봐, 이른 아침 조심조심 소리가 안나게
온천에 갈 준비중이던 분홍이. 그 조용한 배려심에 울컥. 참 행복한 아침.
첫댓글 이보다 더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을까??
우산속의 꽃보다 더 아름다운 여인들의 웃음 보게나~~~
그러게
거리에서 찍은 사진이 어느 사진보다 으뜸이야
살아 숨쉬는 사진이잖아 니 덕분이지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