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할리우드 영화의 새로운 경향 중의 하나는, 시리즈물로 제작되는 대작영화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영화가 극장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일회적으로 소비되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미디어와 수용자와의 거리감이 거의 없는 TV의 경우, 일일 드라마가 있고 주간 단위로 방송하는 주간 드라마가 있지만, 영화에서의 시리즈물은 그 단절된 기간이 오래될 수 밖에 없으므로 TV와는 본질적으로 많은 차이를 갖는다.
그런데도 [스타워즈] 시리즈나, [배트맨] 시리즈를 비롯해서 최근에는 [해리포터] 시리즈, [매트릭스] 3부작, [반지의 제왕] 3부작 같은 시리즈물이 영화시장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예전에도 시리즈물은 존재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리즈물이라기 보다는 속편의 개념이었다. 전편의 흥행 성공이, 영화 투자에 대한 제작자들을 안심시키며 속편을 만들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일부 대작 영화들은 처음 제작 단계부터 시리즈물로 기획되고 있다. 상업적 자신감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절대 이런 형식으로 영화가 개봉될 수 없다. 그 극단적 예가 퀜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빌]이다.
피빛 복수극 [킬빌]은 애초에 한 편의 영화로 기획되었다. 그러나 완성된 영화를 본 미라맥스의 사장은, 총 3시간에 이르는 이 영화를 반으로 쪼개어 1,2부로 나누어서 개봉하기로 결정한다. 역시 상업적 자신감, 흥행 성공에 대한 대단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 결정을 뒷받침 하기라도 해주듯, 미국과 일본에서 [킬빌]은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국내 시장에서는 지난주 3위로 데뷔했다.
6개월의 시차를 두고 1,2부로 쪼개어서 개봉되는 [킬빌]은 애초의 영화적 구조를 많이 훼손당한 채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왜냐하면 타란티노의 영화문법은 선형적 시간구조를 따라 전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타란티노 감독의 가장 큰 특징은 수직적, 선형적으로 전개되는 기독교적 시간을 따르지 않고, 일상적 시간구조를 분절시키고 파편화 시키며 해체한 뒤 그것을 재조립하여 독특한 시공간을 창출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전체 이야기를 반으로 토막내는 현재의 시스템은, 타란티노만의 영화미학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이야기의 시간적 흐름을 따라 전개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오히려 대중들에게는 더욱 친절하게 전달될 수 있다. 영악한 영화사 사장이 그것을 계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개봉된 [킬빌 Volumme.1]은, 심지어 원래구조에서 이야기의 순서가 뒤바뀐 흔적까지 보인다. 타란티노라면 충분히 비선형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갔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선형적 구조로 되돌려 놓으면서 부분적인 무리수가 따르고 있다.
영화의 핵심사건은 5년 전에 일어난 결혼식 참사다. 임신한 상태에서 다른 남자와 결혼식을 올리려던 더 브라이드(우마 서머 분)는 같은 조직 보스 빌에 의해 무참히 습격당한다. 피로 물든 결혼식 대참사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더 브라이드는, 5년동안의 코마 상태에서 깨어나 보스 빌을 비롯한 5명의 조직원들에게 차례로 복수한다
타렌티노 감독의 [킬빌]은 향후 그의 영화문법이 더 많은 대중성을 띄도록 방향 전환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타렌티노가 작가주의 영화 운운하면서 폼을 잡았던 적은 없다. 그는 항상 싸구려 B급 무비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영화 역시 그렇게 유쾌한 농담과 시시껄렁한 음담패설로 관객들을 기쁘게 할 수 있기를 바랐다.
오렌 이시와의 대결을 그리고 있는 [킬빌.1] 후반부의 핏빛 액션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할리우드의 액션 전통에서 벗어나 타란티노 감독은 홍콩 무협 영화와 일본 사무라이 영화에서 자신의 영화적 계보를 발견한다. 동양 사상에 경도된 타란티노가 서구문명을 지탱시켜 준 기독교적인 시간의 원형적 구조, 즉 천지창조에서 최후의 만찬에 이르는 선형적 흐름을 벗어나서, 쪼개지고 파편화 된 흐름으로 관객들의 역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 구조를 만든 것은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킬빌]은 피로 넘쳐난다. 예리한 검으로 잘려진 신체부위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뿜어 나오고 폭포처럼 쏟아진다. 그러나 당황하지 말자. [킬빌]의 피를 누구도 현실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지화 된 하나의 양식이다. 오히려 그렇게 엄청난 피를 쏟아붓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의 억압에서 벗어나 일탈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선형적 흐름을 거부하고 파편화 된 양식을 갖고 있는 영화들이, 오히려 시간차를 두고 순서 있게 개봉하는 시리즈물로 선택된 이 모순이 놀랍지 않은가? 마치 시리즈로 개봉되는 영화들은, 우리가 지금 발딛고 있는 이 세계가 질서있게 전개된다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한 증거물처럼 보이려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과도기의 제스처에 불과하다. 이미 우리 사회는 토대부터 파편화되고 있다. 사이버 세계라는 또 다른 세상이 우리 현실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며, 삶은 선형적 흐름으로 파악할 수 없는 광활한 영역으로 확장된다. 변화하는 삶은 결국 그것에 토대를 둔 문화예술 매체의 양식도 변화시킨다.
[킬빌]은 그러므로 형식적 측면에 있어서 모순에 가득찬 영화이다. 극장의 상업적 시스템 아래서 선형적 서사구조와 타협한 타렌티노가 얻은 것은 상업성이며 대중들의 갈채지만, 잃은 것은 자신의 독특한 영화미학이다. 그는 비선형 질서의 특징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물리적 시간의 흐름을 따라 전개되는 이야기 구조는 타란티노 미학의 개성을 약화시킨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판단을 최종적으로 내려서는 안된다. [킬빌 volumme.2]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그는 어쩌면 몇 겁을 두고 원형적으로 반복되는 새로운 시간구조로 들어설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