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는 마늘 초분이 있다
여행쟁이
초분이라는 장례 풍습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바로 묻지도 않고, 화장도 안 하고, 그 몸 그대로 땅 위에 안치하는 방식이다. 냉동도 없고, 태우지도 않는다. 죽은 몸을 일정한 형식을 갖춘 일종의 ‘대’ 위에 올려놓고, 그 위에 짚가리를 덮는다. 짚이 없으면, 억새나 갈대 줄기를 엮어 덮는다. 그러면 그 모양이 마치 오래된 초가집 같다.
시체는 그 안에서 썩으며, 육탈한다. 살이 다 빠져 나가는 1-3년쯤이면, 살 없는 몸이 된다. 그 때 뼈를 추려 땅에 묻는다. 그것이 초분이라는 장례 풍습이다. 나는 이런 초분을 여수와 고흥에서 보았다.
그런데 사람만이 초분에 드는 것은 아니다. 제주에는 식물도 초분에 묻힌다. 뿌리가 뽑혔으니, 이미 시체인 몸이 초분에 갇히는 것이다. 주인공은 마늘이다. 제주에는 마늘 초분이 있다. 햇볕에 말린 마늘을 초분에 묻는다. 그렇게 하면 마늘이 썩지 않고 골고루 잘 마른다. 제주 사람들은 마늘을 마농이라 한다. 그러므로 마농초분인 셈이다.
마늘 초분에 갔다 온 마늘은 썩거나 싹이 나지 않는다. 초분 덕분이다. 수분을 잘 빼고 온 마늘이 상품으로써의 가치가 높다. 바람 많은 곳에 마늘 초분이 있다. 햇살 좋은 곳에 마늘 초분이 있다. 마늘이 잘 건조되는 곳은 명당이다.
평대, 월정, 함덕을 지나면서 마늘의 초분을 많이 보았다. 이런 것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나는 아직 제주를 몰라.’다. 마늘이 마늘 초분에서 습기를 내어주는 모습을 생각하니, 사람의 초분과 여러 가지 점에서 일치한다. 어차피 빌려온 가죽이니 돌려주어야 할 것이다. 오늘은 마늘로 온 자여, 다음 생에서는 네가 나를 수확할 것이다.
마늘의 초분. 이전 사람들의 온갖 지혜가 들어있을 것이다. 사람의 장례 풍습과 다르지 않다. 마늘이 말라가지만, 썩지 않고 마른다. 꼬들꼬들하다. 다 초분 덕이다. 밭에서 뿌리 뽑힐 때 이미 반은 죽은 목숨이었던 것들이, 오래도록 무덤 속에 있다. 그러다 몇은 다시 목숨을 얻어 씨앗이 되고, 더 많은 자들은 먹이가 된다. 이것이 자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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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는 '눌'이라고 합니다. 단으로 묶은 곡식이나, 보리짚, 촐 등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다음, 비바람을 이겨낼 수 있도록 마무리를 한 것으로, 표준어로는 '가리'라고 하던가요?
'눌'이라는 말이 재미 있네요. 표준어로는 적당한 말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 고향에서는 '베늘'이라 했습니다. 그걸 과도수정하면, '벼늘'이라는 말이 있어야 하는데, 사전에는 없고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