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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배달사상과 동양사상의 기원 (보급판) 우리민족의 고유사상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윤리교육과 ·우리민족은 원래 고유철학과 고유종교가 없었던가? ·불교의 교주 석가모니는 원래 인도 사람인가? 한국 사람인가? ·도교의 삼황내문, 불교의 대승경, 유교의 주역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원래 도교·불교·유교의 발상지는 어디인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 세계의 중심이며, 동양사상의 발상지라는 사실을 아는가? ·인도에 우리민족의 언어와 문자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머 리 말 우리나라는 서구도 아니고 인도도 아니다. 그러나 거리마다 서구의 교회당이며, 골짜기마다 인도의 사찰이다. 그밖에도 일본계·지나계·아랍계 등 외래종교 신자가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다. 이는 곧 우리민족의 절반 이상이 다른 민족의 민족신과 교조를 섬기면서도 제 민족의 하나님과 국조를 섬기지 아니하고, 남의 나라의 종교와 사상을 배우고 믿으면서도 제 민족의 종교와 사상에는 관심마저 없다는 것이 아닌가? 완전히 신앙과 종교교육에 있어 주객이 전도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외래종교와 외래사상을 가르치는 신학대학과 철학과(서양철학과)는 수없이 많아도 제 민족의 종교와 사상을 가르치는 한국학대학과 한국철학과는 찾아보기 어렵다. 기독교의 신학박사와 서양철학박사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아도 한국철학 박사는 4천 5백만 인구 중에 겨우 한 두 사람에 불과하다.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아도 한국철학 강좌를 한번도 수강해 보지 못한 채 졸업하게 되는 학생이 전체의 95% 이상이다.
이러한 한국사회의 종교적 교육적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한국 사람에게 한국혼이 없다는 것이 아닌가? 곧 한국 사람에게는 주인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시청에도 주인이 없고, 도청에도 주인이 없으며, 그밖에 정부의 어느 부처에도 주인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정부패가 만연할 수 밖에 없고, 윤리도덕이 타락될 수 밖에 더 있는가? 여기에서 잃어버린 고유사상을 탐색하고 재정립을 위해 노력하게 된 동기가 있다. 그 결과 천만 뜻밖에도 우리민족에게는 배달국 시대에 이미 한웅천황이 설한 너무나 위대한 사상이 있음을 발견하고 놀랐다. 그 사상은 불변적 진리인 천도(天道)를 발생원리로 하는 배달사상 곧 신선도였다. 노자의 도교·석가의 불교·공자의 유교·우리민족의 동학이 모두 그 원류는 배달사상 곧 신선도였다. 도교의 삼황내문·불교의 대승경·유교의 주역이 모두 신선도의 경전이었다. 심지어 지나인들이 지상선경이라 선망하는 해중(海中)의 삼신산(三神山)과 산의 조종이라는 신비의 곤륜산(崑崙山) 그리고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라는 설산(雪山)이 모두 같은 산으로써 우리나라의 백두산이었다. 그와 같이 이 책에 실려있는 내용은 모두 새로운 내용들이다. 필자 자신도 처음 그러한 사실을 발견했을 때, 당황하고 믿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내용을 처음 접촉하는 독자들은 너무나 어리둥절한 나머지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읽어보면 근거가 분명하고 우리민족의 배달사상이 위대함을 경탄하게 될 것이다. 21세기 태평양 시대에는 한국사상이 세계인류를 지도하게 될 것이라는 게오르규의 예언이 적중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하간 배달사상은 발생학적 원리와 배경부터 현대사상과는 전혀 다른 원융무애한 세계주의사상이다. 서양에도 동양에도 없는 새로운 사상이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듣지 못했던 새로운 사상임을 밝혀둔다. 끝으로 이 책은 {잃어버린 배달사상과 동양사상의 기원}을 요약정리한 보급판임을 밝혀둔다. 원문도 없고 각주도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좀더 자세한 내용과 전거를 알고자 하는 독자는 원본을 참고해 주기 바란다. 독자들의 냉철한 판단과 비판을 기대한다. 연락처는 본서 뒤에 밝혔다. 개천 5894(서기 1997). 1. 15. 저자 안 창 범(安 昶 範) 삼가 씀 《서 평》 우리민족의 위대한 경륜서 한국뿌리찾기연합회장 철학박사 이 항 녕 우리나라의 고유종교인 신선도가 유교·불교·도교를 다 포용하고 있다는 것은 최치원의 난랑비서에 분명히 밝히고 있지만 그 신선도를 자세하게 기록한 {선사}라는 책이 지금 전하지 않아 신선도의 실체를 알기가 어렵게 되어있다. 그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안교수의 본서이다. 안교수는 먼저 여러가지 문헌을 섭렵하고 증거를 제시하면서 天地人 三神一體인 신선도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불교의 기원문제에 들어가 석가세존이 인도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인 것과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가 인도의 부다가야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며, 초전법륜지가 인도의 사르나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제주도의 한라산이고, 대승경이 인도에서 출현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신선도의 경전이며, 대승경에 쓰여 있는 범어가 인도어가 아니라 상고시대 우리민족의 언어임을 밝혀냈다. 유교의 기원문제에 들어가 중국문화의 발상지라는 곤륜산(崑崙山)이 중국 대륙 서쪽에 있는 어떤 산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백두산인 것과 중국유교의 시조인 복희·신농·황제의 삼황과 그 다음의 요·순과 유학을 집대성(集大成)한 공자가 모두 지나족이 아니라 동이족이고, 동이족은 곧 우리민족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유교의 중심사상인 仁사상과 행동훈인 五倫이 원래 신선도의 덕목임을 밝혀냈다. 다음에 도교의 기원문제에 들어가 도교인의 이상향인 (三神山)이 백두산이며, 도교의 시조인 황제가 도(道)를 물었다는 광성자(廣成子)도 동이족이요 도덕경을 저술한 老子도 동방 사람인 것을 밝혀냈다. 그러므로 불교와 유교와 도교가 근본적으로 신선도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안교수는 더 나아가 동학을 고찰하고, 동학의 발생지라는 용담은 경주에 있는 용담정이 아니라 백두산 정상의 용왕담 곧 천지이고, 신선도가 최치원 선생을 거쳐 최재우 선생에게 전승되고, 신선도와 동학의 발생원리가 근본적으로 동일함을 밝혀냈다. 그래서 동학의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은 신선도를 재현한 것으로 동학과 신선도는 동일하다고 하였다. 우리민족은 지금 한반도의 좁은 지역에 자리하고 있지만 상고시대에는 광활한 만주벌판과 중원대륙에서 뛰놀던 민족이다. 우리민족의 고유신앙은 지금 저속한 무속으로 타락하여 제대로 종교구실을 못하여 외래종교가 판을 치고 있지만 우리민족의 고유신앙은 유교·불교·도교를 원래부터 포함한 동양사상의 원류이다. 오랫동안의 사대주의와 식민사관 바람에 우리 민족은 스스로의 정체를 모르고 자기비하와 열등감에 젖어있는 지금 이 책은 민족의 부흥을 선도하는 위대한 경륜서(經綸書)이다. 일찍이 고려시대에 몽고의 침략에 시달려 국민들이 갈바를 모르고 있을 때 일연 선사(一然 禪師)가 {삼국유사}를 지어 우리의 위대한 국조 단군왕검을 선양함으로써 민족에게 희망을 주었다. 지금 내우외환 바람에 갈길을 모르고 헤매이고 있는 우리민족에게 이 책은 하나의 등불이 될 것이 틀림없다. 안교수의 노고를 진심으로 감사하는 바이다. 《추 천 사》 우리 조상의 깊은 지혜 해동철학회장 철학박사 최 민 홍 이 책의 저자 안창범 교수는 최근 몇년 동안에 {민족사상의 원류}, {한민족의 신선도와 불교}, {하나님 사상과 불교의 기원} 등의 출간에 이어 금번에는 {잃어버린 배달사상과 동양사상의 기원}이라는 좋은 책을 펴내어 한국 고대사상과 동양사상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알 수 있게 하였다. 그 열의와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격변하는 국내외의 정세 속에서 한민족은 모든 분야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시급한 것이 세계사관 수립문제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보편타당성을 내포한 세계사관을 세우기 위해서는 그 내용이 충실하고 공정해야 한다. 이 같은 요구에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이 책은 한민족의 세계사관 연구에 좋은 참고서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21세기를 지도할 평화사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일부 학자들은 이 땅에 태어나서 자기나라의 사상을 연구발전시키지 않고, 다른 나라의 사상을 가져다가 대리연구하여 사상적으로 남의 나라에 예속되어 있는 것을 본다. 우리나라의 대학에는 자기 나라의 사상과 철학을 연구하는 한국철학과는 없고 외래사상과 외래철학을 연구하는 철학과(서양철학과)는 거의 모두 있다. 한국철학 박사는 그리 없고 서양철학 박사와 외래종교 박사는 수만명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아도 한국사상 강좌를 한번도 수강해보지 못한 채 졸업하게 되는 학생이 전체의 95%이상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의 것을 남의 것이라고 한다. 중국 {예기} 18장에 의하면 공자가 말하기를 소련과 대련이 부모의 상을 잘 치려 삼일동안 게을리 하지 않고 석달동안 상복을 벗지 않으며 초하루 보름과 제사 날이면 슬퍼하면서 삼년동안 근심 걱정을 하니 동이의 아들이다(禮記, 十八章 : 孔子曰 少連 大連 善居喪 三日不怠 三月不解 期悲哀 三年憂 東夷之子也)라고 하였다. 현재 우리가 말하는 효는 공자의 말대로 하면 우리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에서 온 것이라고 하는 것은 근본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여기서 東夷라 함은 한민족의 조상을 두고 한 말이다. 없는 것도 있다고 하는 세상에 있는 것을 없다고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외국 대학에서 우리의 고유한 한철학을 강의하는 과정에서 그 발상경위와 역사적 유구성을 문헌으로 설명하여 청강자로 하여금 감탄케 하는 때가 많았다. 이 책을 읽는 도중에 그러한 현상을 보게 되는데 우리 사상에 관한 자랑으로 생각된다. 어느 폐이지를 펼쳐도 우리 조상들의 깊은 지혜와 슬기로운 로고스가 담겨 있어서 오늘을 살아가는데 좋은 정신생활의 샘터가 되므로 각계 각층의 모든 분들에게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본 연구의 부정에 대한 부정 본서의 내용과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이 서로 상반되고 있다. 즉, 본서는 상고시대부터 우리민족사회에 고유종교와 고유철학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는 반면,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현장에서는 우리민족은 원래부터 고유종교와 고유철학이 없었고, 외래사상만을 수용했던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 본서는 불교·유교·도교 등 동양사상의 발원지가 우리나라임을 밝히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교육현장에서는 불교의 발원지를 인도로, 유교와 도교의 발원지를 지나라 가르치고 있다. 이상과 같음으로써 외래사상에 물든 사람들은 본서를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라 일축하고 무조건 반대하기 쉽다. 이제 그 부당성을 간략히 비판한다. 첫째, 외래종교 신자들은 교당에 나가면 다른 민족의 신에게 절을 하고 다른 민족의 교조를 성인이라 숭배하며 다른 민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가르치고 배운다. 그러면서도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치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으며 제 민족의 국조에게 절도 않는다. 그럼으로써 외래종교 신자들은 무조건 본 연구를 부정하기 쉽다. 여기에서 생각해 보자. 신앙이 중요한가? 아니면 민족이 중요한가? 어느 종교이든 우리나라에 전래될 때는 우리민족을 위해 전래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외래종교 신자라 하더라도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연구하고 배워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부정하거나 거부하고 있으니, 그것은 외래종교의 최초 전래목적에 위배되고 반민족적 반국가적 행위가 아닌가? 둘째, 본 연구에서의 주장은 거룩한 도사(道士)나 조사(祖師) 또는 일류대학의 유명한 학자의 주장이 아니라 지방대학 평범한 종교 사학자의 주장이라 하여 무조건 반대하기 쉽다.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도교·불교·유교는 노자·석가·공자의 독창도 아니고 중국이나 인도의 고대사상에 연원을 두고 있는 것도 아니라, 우리민족의 신선도에 그 연원을 두고 있었다. 그렇다면 도교·불교·유교에 박식한 조사나 일류대학의 유명한 학자라 하더라도 우리민족의 신선도를 모르면 이들 사상의 원류를 밝힐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지방대학의 평범한 종교 사학자의 연구라 하더라도 무조건 부정함은 논리상 모순임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셋째, 본 연구는 너무나 충격적이고 새로운 학설로서 우리민족의 사상사는 물론 세계사를 뒤엎는 문제라 하여 반대하기 쉽다. 예컨대, 중세까지만 해도 천동설(天動說)이 통설이었으나 현재는 지동설(地動說)이 통설이다. 그와 같이 세계문화는 철석같이 믿던 통설이 무너지고 새로운 학설이 등장하면서 발전되어 왔다. 만약 본 연구를 민족의 사상사와 세계사를 뒤엎는 학설이라 하여 부정하면 그것은 새로운 연구를 봉쇄하는 결과가 되어 진리탐구의 정신에 위배되며, 민족문화나 세계문화의 발전에 역행하는 처사임을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넷째, 예컨대 불교의 유적과 유물이 인도에 있는데 불교가 우리나라에서 기원되었다함은 어불성설이 아니냐 하는 문제이다. 인도의 유물과 유적은 석가세존의 종교활동을 상징하는 것이며, 불교가 반드시 인도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어느 사람이 거주했던 집이 어느 곳에 있다하여 그곳을 그 사람의 출생지라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격이다. 다섯째, 고고학적 실증이 있느냐 하고 반대하기 쉽다. 고고학은 18∼19세기부터 일부 학자들에 의하여 시작되었으나,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불과한 학문이다. 그러므로 고고학에 근거할 경우 하나를 인정하고 열을 부정하게 되며, 근세사를 인정하고 고대사를 부정하게 된다. 그래서 과거의 영국·일본·독일·불란서·스페인·미국 등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의 역사를 말살시킬 목적으로 이용하던 학문이다. 그러므로 고고학적 실증을 이유로 무조건 부정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여섯째, 본 연구에서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불교·유교·도교 신자들의 신앙심이 흔들릴 것이 아니냐 하고 반대하기 쉽다. 예컨대, 불교를 신앙한다는 것은 석가세존의 인격과 그 가르침을 믿는 것이며, 인도를 믿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본 연구는 석가세존의 인격과 가르침을 훼손시키는 것이 아니라, 왜곡되었던 불교의 역사를 바로 잡고, 잃어버렸던 부처님을 찾아오는 것으로써 일그러진 민족혼에 생기를 불어넣는 작업이다. 따라서 불자들의 신앙에 아무런 장애가 될 수 없고, 오히려 애국 애족심과 더불어 더욱 진실한 신앙심을 심어주게 되리라 믿는다. 이상과 같이 볼 때, 본 연구에서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부정함은 하나의 기우에 불과한 것이며, 반대로 본 연구의 주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민족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이 달라지고, 세계의 석학들이 우리나라로 몰려들게 되리라 믿는다. 이에 따라 민족적으로 긍지와 자부심이 생기고 희망찬 민족사가 전개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민족은 세계무대에 위대한 민족으로 등장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불교·유교·도교 신자들은 본 연구에서의 주장을 부정하기에 앞서 그 부족한 점을 자진하여 연구하고 보완하여야 할 것이며, 그 홍보에 적극 노력하는 것이 민족과 국가를 위한 국민으로서의 사명이라 생각한다. 적극적인 협조와 동참을 기대한다. 차 례 머 리 말 2 《서 평》우리민족의 위대한 경륜서 한국뿌리찾기 연합회장 철학박사 이 항 녕 4 《추천사》우리 조상의 깊은 지혜 해동철학회장 철학박사 최 민 홍 6 본 연구의 부정에 대한 부정 8 제1편 신선도는 참종교이다 Ⅰ. 신선도의 유래 19 1. 환국시대의 신선도 20 2. 한웅천황의 개천입교(開天立敎)와 개천절 23 3. 단군조선 시대의 신선도 26 4. 삼국시대의 신선도 28 5. 신화론자들의 저의와 오류 30 Ⅱ. 신선도의 사상 36 1. 도(道)·불(佛)·유(儒) 삼교일체(三敎一體) 사상 36 2. 삼교일체의 사상적 성격 39 3. 문제점의 논의 41 Ⅲ. 신선도의 성립배경 43 1. 天一·地一·人一 삼신일체(三神一體)의 원의 43 2. 삼신일체와 3원적 품부와 삼교일체 사상의 성립 46 3. 삼신일체와 3대인종과 삼교일체 사상의 성립 51 4. 삼신일체와 음양오행 사상의 성립 55 Ⅳ. 신선도의 성립계기 56 1. 우리나라의 기온과 민족성과 신선도의 성립 56 2. 우리민족의 식생활과 민족성과 신선도의 성립 60 3. 산삼과 수도생활과 신선도의 성립 62 Ⅴ. 백두산과 한웅천황과 신선도의 성립 69 1. {삼국유사}의 태백산에 대한 이설(異說) 69 2. 태백산의 보편성과 특수성 73 3. {삼국유사}의 태백산과 우리나라 백두산의 동일성 75 4. 한웅천황의 백두산 고행과 신선도의 성립 78 Ⅵ. 삼신일체의 사상적 접근 83 1. 종교사상 84 2. 정치사상 91 Ⅶ. 서구종교와 신선도와 세계주의 96 1. 신선도와 서구종교의 비교 96 2. 신선도는 세계주의사상이다 110 Ⅷ. 신선도의 숭배대상과 종교의식 113 1. 숭배의 대상과 삼신하나님 113 2. 소도제천의식 118 Ⅸ. 신선도의 실재적 근거 125 1. 신선도의 유적이 있다 125 2. 샤마니즘과 돌무덤은 신선도의 유풍유속이다 130 Ⅸ. 결 론 135 제2편 불교의 발상지는 우리나라이다 Ⅰ. 서 론 140 Ⅱ. 석가세존은 한국사람이다 141 1. 석가세존의 탄생지는 가비라이다 141 2. 가비라는 네팔의 타라이가 아니다 143 3. 가비라는 우리나라의 백두산 남쪽기슭이다 146 4. 석가세존의 씨족적 근원은 단군족이다 147 Ⅲ. 석가세존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에서 고행성도하였다 150 1.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는 설산이다 150 2. 설산은 어떤 산인가? 152 3. 인도북부의 히말라야 산맥에는 설산이 없다 153 4. 인도의 부다가야는 설산이 아니다 154 5. 설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156 Ⅳ. 석가세존의 최초 설법지는 제주도 한라산이다 159 1. 석가세존의 최초 설법지는 파라날 녹야원이다 159 2. 파라날 녹야원은 인도의 사르나드가 아니다 161 3. 파라날 녹야원은 제주도 한라산이다 164 Ⅴ. 석가세존의 고조선 행적과 유적 168 Ⅵ. 대승경은 우리나라에서 기원되었다 170 1. 대승경의 출처는 바다이다 171 2. 바다는 수미세계이다 173 3. 수미세계는 환국과 고조선을 의미한다 175 4. 대승경의 출천인 수미세계는 고조선이다 176 5. 지나에 대승경을 전한 월지국(月支國)은 고조선의 수도이다 178 Ⅶ. 대승경의 범서는 우리민족의 범서이다 180 1. 범어(梵語)는 어떤 언어인가? 181 2. 범어는 인도어(語)도 북셈계어(語)도 아니다 182 3. 상고시대의 우리나라에 범서(梵書)가 있었다 183 4. 범어는 우리민족의 언어와 동일하다 184 Ⅷ. 인도에 우리민족의 문자와 언어가 있다 187 1. 상고시대의 우리나라에 한글이 있었다 187 2. 한글은 세종대왕의 창제가 아니다 188 3. 인도에 우리민족의 한글이 있다 189 4. 남인도에 우리민족의 언어가 있다 190 Ⅸ. 불교는 신선도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191 1. 기본사상이 동일하다 191 2. 고유명사와 전문용어가 동일하다 194 3. 신선도의 천산(天山)과 불교의 수미산(須彌山)이 동일하다 197 Ⅹ. 결 론 199 제3편 유교의 발상지는 우리나라이다 Ⅰ. 서 론 203 Ⅱ. 유교는 우리나라에서 기원되었다 204 1. 지나문화의 발상지인 곤륜산(곤륜산)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204 2. 유교의 창시자는 우리민족이다 208 3. 한자의 창제는 우리민족에서 비롯되었다 210 Ⅲ. 유교사상과 우리민족의 신선도 216 1. 주역(周易)은 신선도의 경전이다 216 2. 홍범구주(洪範九疇)는 우리민족의 사상이다 219 3. 인사상(仁思想)은 우리민족의 사상이다 200 4. 제례(祭禮)의 기원은 우리민족에 있다 221 Ⅳ. 오륜(五倫)은 원래 신선도의 덕목이다 222 1. 오륜은 지나족의 창작이 아니다 223 2. 오륜의 발상지는 배달국이다 225 3. 오륜은 신선도와 불가분의 연관성을 지닌다 226 Ⅴ. 결 론 230 제4편 도교의 발상지는 우리나라이다 Ⅰ. 서 론 236 Ⅱ. 도교인의 이상향인 삼신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237 1. 도교인의 이상향은 삼신산이다 237 2. 삼신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238 Ⅲ. 우리민족의 신선도서(神仙道書)가 지나로 전승되었다 241 Ⅳ. 도교의 시조는 동이족이다 243 1. 광성자(廣成子)와 동이족 243 2. 노자(老子)와 동이족 245 Ⅴ. 도교와 신선도의 동일성 246 1. 기본사상의 동일성 246 2. 전문용어의 동일성 249 Ⅵ. 결 론 250 제5편 동학은 신선도의 재현이다 Ⅰ. 문제의 제기 254 Ⅱ. 동학의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 255 Ⅲ. 동학의 신선도 전승 258 1. 백두산 정상의 용왕담(龍王潭)과 동학의 연원 258 2. 한웅천황과 최고운(崔孤雲)과 동학의 신선도 전승 259 Ⅳ. 신선도와 동학의 동일성 261 1. 발생원리의 동일성 261 2. 기본사상의 동일성 263 Ⅴ. 결 론 266 【부록】 우리민족의 종교교육 비판 1. 종교교육의 기능 268 2. 민족총화와 종교교육 270 3. 우리민족의 종교교육과 그 폐단 272 4. 우리민족의 종교교육과 식민지 교육 281 5. 종교교육의 신토불이(身土不二) 284 저자소개 제1편 신선도는 참 종교이다 배달사상은 세계주의 사상이다 Ⅰ. 신선도의 유래 진정으로 우리민족은 원시적 무속신앙과 외래의 도·불·유(道·佛·儒) 밖에 없는 민족인가?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면서 고유철학도 고유종교도 없었단 말인가? 그러나 {주역} 풍지관에 따르면 "한늘(하늘)의 신비한 법도를 보니 사시(四時)의 운행이 어김없는지라, 이에 성인이 신비한 법도로서 종교를 세우니 천하가 복종하더라"하여 {주역}이 상고시대부터 천도(天道)에 바탕을 둔 종교가 있었음을 밝혀주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천도에 바탕을 둔 심오한 {주역}이 있다는 것 자체가 태고시대부터 종교가 있었다는 증거가 아닌가? 또한 신도(神道)·신교(神敎)·신선도·신선교 등이 있었다는 기록도 있고, 신교가 전승되면서 삼한(고조선)에서는 천신교(天神敎), 부여에서는 대천교(代天敎), 고구려에서는 경천교(敬天敎), 신라에서는 숭천교(崇天敎), 발해에서는 진종교(眞倧敎), 요(遼)와 금(金)에서는 배천교(拜天敎), 만주에서는 주신교(主神敎) 등으로 불렸다는 기록도 있다. 최남선도 "조선에는 예로부터 고유신앙이 있었고 이 민족교는 유교·불교에 앞서 있었으며, 유교·불교가 들어온 뒤에도 그대로 나란히 존재하였다"고 주장한다. 김교헌은 단군신교의 일파가 지나로 전포하여 선교(仙敎)라 칭하였다 하고, 신채호 역시 우리민족의 삼신오제교(三神五帝敎)가 지나에 전포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상·계율·의식·목적·내세관·숭배의 대상·경전 그리고 발생원리와 발생학적 배경 등 종교적 구성요건에 따라 체계적으로 주장하는 학자가 한 사람도 없으니 그것이 문제이다. 본서에서도 그러한 것 모두를 다루기가 너무나 번잡하여 중요한 내용만을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내용은 본서의 원본을 참고해 주기 바란다. 1. 환국시대의 신선도 신선도에 대한 근본문제를 다루기 전에 우리민족의 태고사를 간단히 일별해 보기로 한다. 그러나 우리민족의 태고사는 지금까지 연구의 범위에서 제외되어왔고, 사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는 무슨 소리를 하느냐 하고 비웃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는 것처럼 학문하는 풍토 역시 바뀌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한다. {한단고기(桓檀古記)}는 {삼성밀기(三聖密記)}를 전거로 들면서 우리민족의 태고사를 밝혀주고 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옛날 파내류산(波柰留山) 아래에 한인씨의 나라가 있었으니 천해(天海) 동쪽의 땅을 파내류국이라 한다. 그 땅의 넓이는 남북이 5만여리요 동서가 2만여리니 합하여 한국(桓國)이라 하고 나누면 12개 나라이다. 천해는 지금의 북해(北海)다" 하였다. 또한 {조대기}를 인용하여 "옛날에 환국(桓國)이 있었다. 백성은 부유하고 또한 건실했다. 처음에 한인이 천산(天山)에 살면서 도(道)를 터득하여 오래 살고 몸을 닦아 병이 없었다. 한늘을 대신하여 사람을 교화하니 병란이 없고 사람들이 모두 일하기에 힘써 부지런하므로 스스로 굶거나 추위에 떠는 일이 없었다.혁서한인·고시리한인·주우양한인·석제임한인·구을리한인·지위리한인에 이르렀는데 혹 단인이라고도 하며 7세를 전하고 역년은 3301년 혹은 63182년이라 하였다". 이상과 같이 지금부터 약 1만년에서 6천년 어간의 중앙 아시아에 환국이 있었음을 {한단고기}는 밝혀주고 있다. 그런데 인간이 집단을 이루면 거기에는 반드시 교육이 따르게 마련이며 교육을 좀더 체계화시키고 구체화시킨 것이 종교교육이다. {태백일사}를 보면 "삼신(三神)은 한늘을 생성하고(生天) 만물을 가꾸시며(造物) 한인은 사람을 가르쳐 의(義)를 세우니 이로부터 자손이 서로 의(義)와 교(敎)를 전하고, 현묘한 법도를 깨달아 광명이세(光明理世)하였다. 이에 천지인(天地人) 삼극(三極)은 대원일(大圓一)하는 서물(庶物)의 원의인 즉, 천하구환(天下九桓)의 예락이 곧 삼신고제(三神古祭)의 풍속이 아니고 무엇이리요, 전하는 바에 의하면 삼신의 뒤를 환국이라 하고, 환국은 천제가 사는 나라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지금부터 약 9천 1백여년 전, 아니면 6만 9천여년 전, 중앙 아시아의 천산을 중심으로 광활한 환국이 있었고, 그 나라에 일곱 분의 득도한 한인천제가 있었으며, 천지인 삼신일체에 바탕을 둔 종교가 있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단고기}가 밝혀주고 있는 환국시대의 종교교육(신앙)을 간략히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환국에 삼신신앙(三神信仰)이 있었다. 삼신은 신선도의 숭배대상임과 동시에 발생원리이며 사상으로서 가장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뒤에 자세히 설명한다. 2) 한인천제는 신앙의 최정상에서 삼신에게 제사지내는 일을 주관하고 무위이화(無爲而化)하였다. 무위이화란 종교적 자연주의 교육을 의미한다. 3) 환국에 오훈(五訓)이 있었다. 오훈은 ? 성신불위(誠信不僞), ? 경근불태(敬勤不怠), ? 효순불위(孝順不違), ? 염의불음(廉義不淫), ? 겸화불투(謙和不鬪)이다. 4) 환국에 오사(五事)가 있었다. 오사는 ? 우가(牛加)의 주곡(主穀), ? 마가(馬加)의 주명(主命), ? 구가(狗加)의 주형(主刑), ? 저가(猪加)의 주병(主病), ? 양가(羊加) 또는 계가(鷄加)의 주선악(主善惡)이다. 5) 매일 조석으로 일출일몰(日出日沒)시에 의식이 있었다. 6) 신선도의 경전으로서 천부경(天符經)이 있었다. 이상은 태고시대의 환국과 그 종교교육(신앙)에 대한 기록을 약술한 것이다. 이는 서구적 사고방식에 의하면 원시시대의 신앙에 관한 기록이다. 그러므로 이를 부정하는 학자도 있을 것이며, 긍정하는 학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타당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타당한 근거없이 기록 그대로 믿는다면 그것은 과학적 사고와 판단을 결여한 맹목적 신앙이라 할 수 있고, 반대로 무조건 부정하면 이 역시 서구학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비과학적 비주체적 사고의 폐단이라 할 수 있다. 우주에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고, 년중에 춘하추동(春夏秋冬)과 하루에도 조주석야(朝晝夕夜)가 있어 돌아가듯, 인류의 문화에도 생성소멸(生成消滅)이 있어 그것이 돌아간다는 자연법칙을 이해할 것이다. 이를 이해하면 현재나 과거나 마찬가지로 어느 한쪽에 고도로 발전된 문명사회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는 미개한 원시사회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것이다. 개인에 천재가 있고 조숙한 사람이 있듯, 민족에도 천재적 민족이 있고 조숙한 민족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시의 개념을 모든 민족에게 일률적으로 적용시킴은 부당한 억지라 아니할 수 없고, 환국사회에 어느 정도 개화된 문명이 있었다고 할 때, 이를 무조건 부정함은 논리상 모순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최근에 소련의 고고학자 비탈리라리체프가 {시베리아 구석기문화}에서 1975년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시베리아 중부 노보시비로크산(Novosibirok山)및 아바칸(Abakan) 산맥의 계곡에서 3만 5천년 전의 구석기 유물이 발굴되었다고 하였다. 말라이아뉘아 구석기 유물로 알려진 이 자료는 우리의 것과 매우 유사하여 주목을 끌고 있다. 이 유물들 가운데는 탁월한 예술적 가치를 지닌 것도 있어서 종래의 서양학자들이 설정하여 놓은 원시인의 개념을 완전히 뒤엎고 있다. 특이한 것은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은 듯한 아무런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 아바칸 산맥은 중앙 아시아의 바이칼 호수와 매우 가까운 곳으로 한인왕조가 7대 3301년 간 통치할 때의 중심지로 알려져왔는데, 아바칸 산맥의 계곡에서 발견된 유물이 우리의 것과 매우 유사하고 탁월한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때, 그 때보다도 몇만년 이후인 환국시대의 문화는 상당히 더 발전됐다고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한인의 환국시대가 비록 태고시대라 하더라도 선사시대(원시시대)라 할 수 없고 그 시대의 종교교육(신앙)을 함부로 부정할 수 없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2. 한웅천황의 개천입교(開天立敎)와 개천절 다음은 배달국과 그 종교교육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고조선기에 의하면 한웅천황은 한인의 서자로서 한늘에서 풍백·우사·운사 등 3천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 밑에 내려와 곡(穀)·명(命)·병(病)·형(刑)·선악(善惡) 등 인간의 3백 60여사를 주관하여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신화같이 풀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실은 우리민족의 상대비사(上代秘史)이며 신선도의 비기(秘記)로서 한웅천황이 중앙 아시아의 천산(天山)에서 우리나라의 백두산으로 이동하여 득도하고 배달국을 세워 홍익인간 재세이화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신시역대기}에 의하면 배달은 한웅이 정한 호니 그가 도읍한 곳은 신시요, 뒤에 청구국(靑邱國)으로 옮겨 18세를 전하고 역년은 1565년이었다 하고, 이어서 18세 한웅의 명호와 재위기간 및 생존한 년세를 하나 하나 모두 밝혀주고 있다. 또한 {한단고기} 삼성기전 하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고 있다. "환국의 말에 안파견(安巴堅)이 삼위산과 태백산을 내려다 보고 모두가 홍익인간할 만하므로 누구를 보낼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오가첨이 말하기를 서자부(庶子部)에 한웅(桓雄)이 있는데 용기에 겸하여 어질고 지혜가 있습니다. 일찍이 홍익인간으로 세상을 개혁할 뜻이 있으므로 태백산에 보내어 다스리게 함이 좋을 듯 합니다 했다. 이에 천부인(天符印) 삼종(三種)을 주고 조칙(詔勅)하여 이르기를 '이제 군(君)은 수고로움을 아끼지 말고, 교도 3천을 이끌고 가서 천도를 깨치어 종교를 세우고 재세이화하여 만세홍범이 되게 하라'하였다.‥‥이에 한웅이 3천의 교도를 거느리고 태백산 정상의 신단수(神檀樹) 밑에 내려오니 이곳을 신시(神市)라 하고, 이 분을 한웅천황이라 하였다. 풍백·우사·운사를 거느리고, 주곡·주명·주형·주병·주선악하고 무릇 인간의 3백 60여사를 주관하여 재세이화하고 홍익인간 하였다. 이 때에 일웅(一熊)과 일호(一虎)가 이웃에 함께 살았는데 일찍이 신단수에 빌어 신계(神戒)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므로 한웅이 주술(呪術)로서 신이 되어 깨우친 다음 신령한 쑥 한 심지와 마늘 20개를 주고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희들은 그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의 형상을 얻을 것이다' 하였다. 웅호이족(熊虎二族)은 그것을 받아먹고, 삼칠일(三七日) 동안 웅은 능히 배고품과 추위를 참고 계율을 지키어 의용을 얻었으나, 호는 방만하여 선업(善業)을 얻지 못하였다.‥‥한웅천황이 천도를 크게 깨치어 교화를 베풀 때, 천경을 연(演)하고 신고를 강(講)하여 크게 무리를 가르쳤다.‥‥때에 구환(九桓)이 모두 하나같이 삼신을 조상으로 하였다. 소도를 주관하고 관경을 주관하여 무리와 의론하여 하나로 화백(和白)하고 아울러 지(智)와 생(生)을 모두 닦아 천궁(天宮)에서 살았다". 위의 기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한웅천황의 원주지는 중앙아시아 천산(天山) 환국(桓國) 서자부(庶子部)였다. 2) 한웅천황이 태백산에 이르러 "천도를 깨치어 삼신으로 종교를 세우고(開天以三神立敎)" 권선징악하는 법을 세웠다. 3) 한웅천황이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강설하였다. 4) 한웅천황이 소도를 주관하고 무리와 의론하여 하나로 화백하였다. 5) 한웅천황이 주곡·주명·주형·주병·주선악 등 5사와 그밖에 3백 60여사를 주관하여 홍익인간 재세이화하였다. 이를 종합해 말하면 한웅천황이 백두산에서 천일·지일·인일 삼신일체의 천도를 크게 깨치어 도교·불교·유교 삼교일체의 신선도를 설파하고 홍익인간 재세이화하였다는 것이다. 즉 세계인류가 원시의 미몽에서 깨기 전 우리민족은 합리적인 종교를 창설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믿기 어려운 사건이다. 그래서 이것을 믿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민족은 그 기념행사를 해마다 치르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부정할 것인가? 단군세기에 의하면 단군왕검이 개천(開天) 1565년 음력 10월 3일에 이르러 백두산 단목 밑에서 삼신(三神)에게 제사를 올리고 구환(九桓)의 추대를 받아 조선국을 세웠다고 하였다. 금년은 단기 4330년이다. 따라서 한웅천황이 백두산 천지 신단수 밑에서 개천입교(開天立敎:천도를 깨치어 종교를 세우다)한 때는 지금으로부터 5894년 전 음력 10월 3일인 것이다. 즉, 4330+1565-1=5894년 음력 10월 3일인 것이다. 또한 단군왕검이 조선국을 건국한 때는 지금부터 4329년 전 음력 10월 3일이 된다. 따라서 우리민족이 해마다 치르는 개천절 행사는 첫째, 한웅천황이 백두산 천지 신단수 밑에서 천도를 크게 깨치어(開天) 지금부터 5894년 전 음력 10월 3일에 신선도를 베푼데 대한 기념행사이며. 둘째, 단군왕검이 지금부터 4329년 전 음력 10월 3일, 백두산 신시 단목하에서 조선국을 건국한 데에 대한 기념행사이다. 이는 마치 오늘날 8월 15일이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우리민족이 해방되고,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선포했다는 두 가지 뜻을 지니는 것과 같은 격이다. 우리민족에게 있어서 음력 10월 3일의 개천절 행사는 민족혼의 탄생과 국가의 탄생이라는 두 가지의 뜻을 기념하는 행사로써 최대 최고의 명절이며 기념행사인 것이다. 그래서 음력 10월은 년중 상달(上달;최고의 달)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개천절이야 말로 한웅천황이 개천입교(開天立敎)하여 신선도를 설파했다는 살아있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잃어버린 민족혼을 반은 찾은 기분이다. 민족적 주체의식도 되살아나고, 칠흑같은 광야에 먼동이 떠오르듯 민족의 전도가 밝아오는 기분이다. 참으로 통쾌하기 그지없다. 3. 단군조선 시대의 신선도 다음은 단군조선 시대의 종교교육(신앙)이다. {한단고기}에 의하면 단군조선은 초대 단군왕검(한검단군)으로부터 시작하여 단군 고열가제까지 47세 2096년 간 계속된다. {신단실기} 교화원류편을 보면 단군왕검도 신인으로서 풍백·우사·운사 등 신관을 거느리고, 종교를 세워 주곡·주병·주형·주선악 및 의복·음식·궁실·편발(編髮) 등 인간의 366사로서 흑수(黑水)에서 한남(漢南)에 이르는 구족(九族)을 다스렸다 하고, {단군세기}에는 단군왕검이 삼신에게 제사하고 조선국을 세운 후 신시의 옛 규범을 부활하여 천범팔조(天範八條)를 설했다고 했다. 제11세 단군 도해제조를 보면 좀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그해 10월에 대시전(大始殿)을 세우도록 명령하고 매우 장려하였다. 천제 한웅유상(桓雄遺像)을 봉안했는데 두상에는 태양처럼 광채가 섬섬하였다. 둥근 빛은 온 우주를 비추고 단수 아래 환화의 위에 앉아 계시니 하나의 살아있는 신이 둥근 원의 가운데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천부인(天符印)을 가지고, 대원일(大圓一)의 그림을 누전에 걸었으니 이를 일러 거발한(居發桓)이라 하였다. 사흘동안 재계(齋戒)하시고 이레 동안 그 뜻을 말씀하시니 위풍이 사해(四海)를 움직이는 듯 했다.‥‥3월에 남산에서 삼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술과 선물을 바치고 나서 치사를 한 후에 술을 따랐다. 이 날밤 술을 특사하여 국인과 더불어 환음하고, 백희(百戱)를 보았다. 누전에 올라 경(經)을 논(論)하고 고(誥)를 연(演)하였다. 오가(五加)에게 이르기를 이후부터는 죽이는 것을 금하고 방생하며 옥을 풀어 밥을 먹이고 사형을 없애라고 하였다. 내외의 사람들이 듣고 기뻐하였다. 이상을 보면 고조선 시대의 신앙은 오늘날 불교사찰의 본당인 대웅전에 불상을 모시고 불교행사를 치르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고조선 시대는 신선도가 극히 융성했다고 볼 수 있다. 4. 삼국시대의 신선도 또한 {청학집(靑鶴集)}을 보면 한인은 동방선파(東方仙派)의 조종(祖宗)으로서 그 신선사상이 한웅천황과 단군왕검을 거쳐 문박씨(文朴氏)를 매개로 신라의 영랑(永郞)에게 전승되고 있는데, 이능화의 {조선도교사}를 보면 한인의 신선사상이 문박씨를 거쳐 을밀(乙密)·영랑(永郞)·안유(晏留)·보덕(普德)·성여(聖女) 등 고구려·백제·신라의 선인들에게 전해졌다고 하였다. 그런데 신선도가 신라에 와서도 대행하여 고려 의종 23년 3월 무자일에 내린 신령(新令)을 보면 "선풍을 숭상하라. 옛날 신라에 선풍이 대행하여 그로 말미암아 용천(龍天:임금)이 환열하고 민물(民物:백성)이 안녕하였다"고 했는가 하면, 신라의 사선(四仙)이 놀던 유적으로 고성의 삼일포(三日浦), 통천의 사선봉(四仙峰)과 총석정(叢石亭), 간성의 선유담(仙遊潭)과 영랑호(永郞湖), 금강산의 영랑봉(永郞峰), 장연의 아랑포(阿郞浦)와 강릉의 한송정(寒松亭) 등이 있다. 이상과 같이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신선사상이 대행하였고, 고려 때에도 왕검교(王儉敎)니 재가승(在家僧)이니 하여 다소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원나라 몽고군이 약 백년에 걸쳐 고려를 지배할 때, 그 탄압에 못이겨 신선도는 완전히 불교 속으로 은닉하게 되었다. 또한 근세조선 때에는 송나라의 주자학 일변도 정책으로 다른 사상을 거론하면 그러한 사람을 사문난적(斯門亂賊)이라 하여 타도의 대상으로 하였고, 일제시대 또한 식민정책에 의해 고유사상을 근거없는 미신 또는 사이비종교로 취급하여 타도의 대상으로 하였다. 이로 인해 신선도는 우리민족의 기억에서 거의 사라져 "삼신상제·삼신제왕·삼신할머니·삼신풀이"니 하는 이름으로 겨우 그 뿌리만이 민속에 남아있을 정도이고, 그 사상이나 계율이 무엇인지 오리무중이다. 따라서 신선도의 발생원리가 천도(天道)라 하나, 원시시대에 천도란 있을 수 있느냐 하고 무시하게 되며, 그 사상이나 계율의 존재도 부정하게 된다. 그래서 신선도의 모든 것을 외래적인 관점에서 보게 되고, 그에 대한 기록이나 서적을 왜곡하거나 위서로 보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합리적 성립종교인 신선도는 원시적인 무교(巫敎)로, 신선도를 설한 한인·한웅·한검(단군왕검)의 삼성(三聖)은 신화적인 존재로,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찬란하였던 민족문화는 근거없는 것으로, 동방예의지국이니 군자지국이니 하는 것도 국수주의자들의 과장된 표현으로 보게 되고, 민족문화의 원류는 중국이나 인도 아니면 시베리아나 서구로 보게 된다. 그래서 우리민족은 세계사의 무대에서 하잘것 없고, 외국문화만을 받아들인 미개민족으로 자학하게 되는가 하면, 신선도를 부활시키고 이를 계승한 대종교·단군교·천도교·수운교·증산도 등 자생적 민족종교의 전통적 고유사상도 이를 부정하여 모두 외래사상을 흡수·종합·재구성한 짬뽕종교(sinclynitism)라고 매도한다. 곧 민족주체사상을 잃어버림으로써 학자들마저 민족혼을 상실하여 제 민족의 사상을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주체의식과 동포의식이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제 민족의 자생종교를 그렇게 매도하고 학대할 수 있단 말인가? 깊이 반성할 문제인 것이다. 5. 신화론자들의 저의와 오류 1) 신화론자들의 저의 이상과 같이 기록사적으로 보거나 실증사학적으로 볼 때 우리민족에게는 환국과 배달국이 있었고, 한인·한웅·한검도 신화적인 존재가 아니라 역사적 실재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들에 의하여 도·불·유 삼교일체의 신선도가 베풀어졌고, 오늘날 우리민족이 해마다 치르는 개천절 행사는 한웅천황이 천도를 깨치어 신선도를 베푼데 대한 기념행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 민족인 지나족·몽고족·만주족·일본족 및 그 추종자들인 근세조선의 광신적 주자학자들과 일제의 친일사학자 그리고 최근에 와서는 친 서구적 기독교 신자들도 우리민족의 상고사와 개천절을 신화로 취급한다. 그러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대로 인정하면 그것은 이웃 민족이 우리민족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첫째, 우리민족의 역사는 9193년 전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단기 4330년 현재). 그것은 세계에서 어느 민족의 역사보다도 가장 오래됨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는 고고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하여 인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웅천황의 배달국과 신선도 설파는 이를 부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민족의 역사는 적어도 5894년 전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그것은 지나의 황하문명 이전에 우리민족의 문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둘째, 지나족과 몽고족과 만주족 그리고 러시아가 점유하고 있는 북경 이북과 몽고 및 만주대륙 일대와 러시아의 연해주가 원래 그들 민족만의 영토가 아니라 우리민족과 공동소유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셋째, 도교·불교·유교 삼교일체의 신선도가 합리적 성립종교임을 인정하는 것으로써 노자의 도교·석가의 불교·공자의 유교 등 동양사상이 모두 우리민족에서 연원함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곧 지나족·인도족·일본족·몽고족·만주족이 모두 우리민족의 문화와 사상밑에서 자란 하찮은 민족임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넷째, 한인천제와 한웅천황과 한검단군(단군왕검)은 신화적인 존재가 아니라 신선도를 설파한 부처님이며 성인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즉 우리민족은 부처님과 성인을 탄생하여 그 교화를 받은 민족이며, 우리나라는 부처님과 성인이 세운 나라로서 원래 군자국이었고 신선지국이었으며 예의지국이었고 천축국(天竺國)이었으며 월지국(月支國)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다섯째, 우리민족은 세계인류가 원시의 미몽에서 깨기전에 종교를 설파한 민족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조숙한 민족이며 영리하고 훌륭한 민족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여섯째, 우리민족은 종손민족이라는 이론이 성립되고, 이웃 민족인 지나족·몽고족·만주족·일본족은 우리민족을 우러러 받들어야 한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우리민족의 상대역사를 사실대로 인정할 경우, 이상과 같은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된다. 그것은 이웃 민족의 자존심에 허락되지 않는 문제들일 뿐만 아니라, 굴욕감을 느끼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웃 강대민족은 우리민족의 상대역사를 절대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반대로 우리민족의 상대역사와 개천절을 왜곡하여 신화로 풀이할 경우, 다음과 같이 우리민족에게 불리하고 이웃 민족들에게 유리하게 된다. 첫째, 우리민족의 역사는 극히 짧아지고 상대역사는 신화속에 파묻히게 된다. 둘째, 우리민족의 강토는 한반도에 국한되어 지나족·몽고족·만주족·일본족이 우리민족과 영토분쟁을 하지 않게 된다. 셋째, 한인천제와 한웅천황과 한검단군은 신화속의 인물로 추락되어 우리민족의 구심점은 무너지게 된다. 넷째, 우리민족은 고유종교와 고유철학이 없는 하찮은 민족으로 전락된다. 이에 따라 국가기강이 해이되고 민족혼이 흐려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웃 강대민족이 우리민족을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게 된다. 다섯째, 지나족은 유교와 도교를, 인도족은 불교를 창설한 민족같이 되고, 일본족·몽고족·만주족도 사상적으로 우리민족에게 눌리지 않게 된다. 우리민족의 상대역사와 개천절을 신화로 풀이하는 경우 이상과 같이 이웃 민족들에게 유리하고 우리민족에게 불리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민족의 상대역사를 신화로 풀이하는 것은 원래 외세인 이웃 민족이 우리민족을 제 민족보다 하위로 떨어뜨리고 지배하기 위한 저의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민족의 국서고(國書庫)가 이웃 강대민족들에 의해 불태워졌고 사서(史書)가 모두 멸실됐던 것이며, 상대역사가 이들 민족에 의해 왜곡되었고, 우리민족에게 유리하게 기술된 사서는 모두 위서(僞書)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독·왜독·양독 등 외래사상에 물든 일부 외래종교 신자와 학자들도 이웃 민족들의 그러한 저의를 깨닫지 못하고, 제 민족의 상대역사를 마치 남의 일같이 신화로 해석한다. 참으로 얼빠진 사고방식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사계의 저명한 학자들도 대단히 용기 있고 양심적이며 애국 애족심이 투철한 학자가 아니면 본 학설을 인정하려 아니할 것이다. 왜냐하면 본 학설을 인정할 경우, 자신의 연구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1) 본 연구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자신이 진행해 온 연구와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것이 된다. 2) 본 연구와 관련된 자신의 업적이 지금부터 무효화되어도 좋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3) 지금까지 수행해온 자신의 연구가 솔직하고 진실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4) 본의는 아니라 하더라도 민족을 속이고 명예를 누려왔다는 죄책감을 지니게 된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사계의 대다수 학자들은 본 학설을 인정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본 학설을 발표한지 근 10년이 되어도 극소수의 학자를 제외하면 긍정하는 학자도 없고 부정하는 학자도 없다. 대체로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학자들도 본 학설을 쾌히 수용하려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본 학설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자기 나라에 이익될 일이 그리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깊이 반성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명예가 더 중요한가? 민족의 명예가 더 중요한가? 나아가서 온 인류의 명예가 더 중요한가?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를 깊이 생각해 봅시다. 지금은 과거처럼 민족과 국가를 팔아 개인이 호의호식할 수 있는 어리석은 시대가 아니다. 어느 강대국의 이익을 위해 약소국이 무조건 희생당하는 그러한 시대는 지나갔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이익이나 명예보다도 민족의 이익이나 명예가 더 중요하고, 강대국의 이익이나 명예보다도 온 인류의 이익과 명예가 더 중요하다. 또한 그러한 시대가 올 것이다. 아울러 우리민족도 다른 나라의 식민지였다는 치욕스런 오명을 벗고, 그 지혜와 능력과 홍익인간 정신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본 학설도 자연히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되리라 믿는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학자들의 아집과 아만이 아무리 심하다 하더라도 그때가 되면 어쩔 수 없이 본 학설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애족심과 애국심이 있는 학자라면 그때가 되기 전이라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냉정히 본 학설을 비판하고 수용하리라 믿는다. 만사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기 때문이다. 2) 신화론자들의 오류 끝으로 신화론자들에게 묻겠다. 첫째, 현재 자신의 신앙이 잘못되고 있거나, 과거 자신이 받은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사실 우리민족의 절반 이상이 외래종교 신자이므로 외래종교의 교회당이나 법당 ,도관에서 다른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치고 배우면서도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배울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근세조선 시대에는 지나의 사기(史記)·한서(漢書)·후한서(後漢書) 등 삼사(三史)와 논어·맹자·대학·중용·시경·서경·주역·예기·춘추 등 사서오경(四書五經)과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 등을 배우느라 자기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배우지 못하였고,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는 일본의 식민정책 때문에, 1945년 해방 이후에는 서구의 사상과 과학기술을 배우느라 자기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다. 여건이 그러하므로 자기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모를 수 밖에 없었고, 자기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모르므로 자기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부정할 수 밖에 더 있겠는가? 상대역사의 신화론자들은 이 점을 깊이 깨달아야 하고, 정부당국에서도 깊이 반성하여야 할 문제인 것이다. 둘째, 재판하려면 누구보다도 법을 많이 알고 응용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을 보고 평가하려면 인생에 대한 갖가지의 경험과 깊은 수양을 많이 쌓아야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상고시대의 문화와 사상을 평가하려면 그에 대한 선행연구가 상당히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에 대하여 얼마나 연구하고 고심하였기에 상대역사를 함부로 부정하고 단군관계 역사를 신화로 매도하려는가? 자신의 연구경력을 반성하여 보아야 할 것이다. 셋째, 상대역사를 확고히 고증하기에 아직도 고고학적 실증사학적 증거가 다소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그것은 유적이나 유물 또는 그밖의 자료가 많이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보관이나 관리소홀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러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자책하여 본 경험이 있는가? 이 나라의 주인은 누구인가? 역사학자만이 주인인가? 넷째, 우리민족의 고도로 발전된 상대문화를 서구적 원시개념이나 사회발전론에 근거하여 부정한다면, 서구적 원시개념이나 사회발전론을 우리가 꼭 믿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불변적 진리인가? 그것이 불변적 진리로 대우받아야 할 불변적 근거가 있는가? 다섯째, 한인·한웅·한검은 우리민족의 국조이시고 시조이시다. 그런데 만약 이들을 신화적인 존재로 취급한다면, 우리민족은 어디에서 나왔다는 말인가? 그전에는 지구상에 사람이 없었다는 말인가? 과학이 밝힌 바에 의하면 지구상에 인간이 생존한지 약 250만년이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Ⅱ. 신선도의 사상 1.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 그러면 한인·한웅·한검이 신화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들에 의하여 천도에 바탕을 둔 신선도가 베풀어졌다면 그 기본사상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가 지금까지 왜곡되어 밝혀지지 않음으로써 합리적인 신선도가 무교로 추락되었고, 우리민족은 고유종교도 고유철학도 없는 미개민족같이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최치원 난랑비서"에 의하면 신선도는 현묘지도(玄妙之道)로서 모든 종교의 원천이며, 도·불·유(道·佛·儒) 삼교일체(三敎一體)의 사상을 근본적으로 자체 내에 지닌 합리적인 종교이다. 최치원 난랑비서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崔致遠鸞郞碑序 曰 國有玄妙之道 曰 風流 設敎之源 備詳仙史 實 최치원난랑비서 왈 국유현묘지도 왈 풍류 설교지원 비상선사 실 乃包含三敎 接化群生, 且如入則孝於家 出則忠於國 魯司寇之旨也 내포함삼교 접화군생, 차여입즉효어가 출즉충어국 노사구지지야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 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 주주사지종야, 제악막작 제선봉행 축건 太子之化也 태자지화야 다음은 위의 원문에 대한 필자의 국역이다. 최치원난랑비서에 이르기를 나라에 현묘한 도(道)가 있으니 풍류라 한다. 이는 종교를 일으킨 원천으로써 신선도의 사서에 상세히 실려 있거니와 근본적으로 (도·불·유)3교의 사상을 이미 자체 내에 지니어 모든 생명을 가까이 하면 저절로 감화한다. 이를테면 집에 들어온 즉 효도하고 나아간 즉 나라에 충성함은 노나라 사구(공자의 벼슬)의 교지와 같고, 하염없는 일에 머무르고 말없이 가르침을 실행함은 주나라 주사(노자의 벼슬)의 종지와 같으며, 모든 악한 일을 짓지 않고 모든 선한 일을 받들어 실행함은 축건태자(가비라국 정반왕의 태자)의 교화와 같다. 이상이 최치원 난랑비서의 내용이다. 우선 본문에 표현된 개념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밝히면 난랑 즉 화랑도·현묘지도·풍류도·신선도는 등식관계로써 실내포함삼교(實乃包含三敎)한 종교라는 것이다. 실내포함삼교란 근본적으로 도(道)·불(佛)·유(儒) 삼교일체(三敎一體)의 사상을 이미 자체 내에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즉, 신선도나 화랑도 그리고 풍류도는 모두 동계사상이며 현묘지도로서 모든 종교의 원천이며, 도·불·유 삼교일체의 사상을 근본적으로 자체 내에 지닌 종교라는 뜻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미궁에 빠졌던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이다. 고유사상이 사대주의자들에 의해 외래사상으로 왜곡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신선도는 비합리적 미신이 아니라 사상과 철학을 가진 어엿한 성립종교라는 사실이 제1차로 드러난 셈이다. 그러면 그러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고 본다. 첫째, 우리민족은 태고시대부터 합리적인 사상과 종교를 가진 문화민족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둘째, 우리민족은 세계의 어느 민족보다도 영리한 민족이며, 조숙한 민족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셋째, 우리민족은 세계의 중심민족이며 종손민족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추정할 수 있다. 독자들은 지금부터 서서히 그러한 자부심을 가져도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불원간 신선도가 과거에도 현재에도 들어보지 못한 참종교라는 사실이 증명될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1천년 동안 우리민족은 사상적으로 핍박을 받았으니 거기에서 해방될 때가 된 것이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다. 이어서 삼교일체의 의미를 부연 해설해보자. 그것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그것은 일물삼면(一物三面)적인 체일용삼(體一用三)·집일함삼(執一含三)·회삼귀일(會三歸一)사상이란 뜻이다. 즉 신선도를 나누면 도·불·유가 되고, 도·불·유를 귀일하면 신선도가 되어 신선도는 도·불·유의 본체가 되고, 도·불·유는 신선도의 쓰임인 지류가 된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그 사상을 비교하여 보면, 신선도는 노자의 도교나 석가의 불교 및 공자의 유교 등 이들 종교의 본체가 되고, 이들 종교는 신선도의 쓰임인 지류가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신선도는 이들 종교의 개별적인 측면에서 보면 고도교(古道敎)·고불교(古佛敎)·고유교(古儒敎)가 되며, 신선도를 설한 한인·한웅·한검은 고선(古仙)·고불(古佛)·고성(古聖)이 되고, 동시에 삼선(三仙)·삼불(三佛)·삼성(三聖)이 된다. 즉, 한인·한웅·한검은 신화적인 존재가 아니라 역사적 실존인물로서 부처님이었고 성인이었다는 사실이 논증됐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인도(印度)를 남천축(南天竺)이라 하면 배달국과 고조선은 부처님이 세운 나라로서 북천축(北天竺)이라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할 수 있고, 동시에 신선지국(神仙之國)이었으며, 군자지국(君子之國)이었고,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었으며, 수미세계(須彌世界)였고,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의 말대로 아득한 옛날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났던 등불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은 중국이나 인도의 문화만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문화를 중국이나 인도로 수출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2. 삼교일체의 사상적 성격 신선도가 도·불·유 삼교일체의 사상임을 최치원난랑비서에 의하여 확인하였다. 본항에서는 도·불·유 삼교일체의 사상을 분석적으로 고찰하여 신선도의 사상적 성격을 밝히고자 한다. 첫째, 신선도는 체일용삼(體一用三) 사상이다. 신선도는 도·불·유 사상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는 신선도를 분석하면 거기에서 도·불·유 사상을 도출하여 낼 수 있고, 반대로 이들 도·불·유 사상을 모이면 신선도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선도는 이를 나누면 셋이나 모이면 하나인 三敎一體 사상으로서 신선도가 본체라면 도·불·유는 쓰임이 된다. 그래서 신선도는 體一用三 사상이다. 둘째, 신선도의 三敎一體 사상은 이를 바로 인식치 못하고 오인할 경우, 외래사상으로 곡해되기 쉽다. 학자들은 흔히 자기의 전공에 열중하다 보면, 그것이 일종의 신앙같이 되고 객관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신선도에 내포되고 있는 도교적인 요소는 노장의 도교사상 같이 보일 수도 있고, 불교적인 요소는 석가의 불교사상 같이 보일 수도 있으며, 유교적인 요소는 공맹의 유교사상 같이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신선도의 다른 표현인 화랑들의 신선같은 생활태도를 보면, 화랑도가 중국 도교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이 보여 그렇게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는가 하면, 신선도의 오계(世俗五戒)도 불교학자가 보면 석가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이 보여 그렇게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고, 유교학자가 보면 공맹유교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이 보여 그렇게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그밖에 어떤 학자는 석가의 불교와 공맹의 유교사상을 절충적으로 수용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신선도는 지금까지 많은 오해를 받아 그 주체사상인 도·불·유 사상은 외래사상으로 곡해되어왔는가 하면, 한편 외래사상 속에 흡수되었고, 그 지엽사상(枝葉思想)들은 무교로 취급되어 지금까지 합리적 성립종교인 신선도가 근 1천년 동안이나 매장되어 왔던 것이다. 셋째, 신선도는 세계의 어느 종교보다도 가장 광범한 사상을 지닌 종교이다. 신선도는 하나이면서 도·불·유 3대종교 사상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므로 노장의 도교보다도, 석가의 불교보다도, 공맹의 유교보다도, 나아가서 세계의 어느 종교보다도 가장 광범한 사상을 지닌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넷째, 신선도는 이상과 중용과 현실을 넘나드는 현묘지도이다. 신선도는 현실적인 유교사상과 이상적인 도교사상을 지님으로써 어느 한쪽에 치우치려면, 중도적인 불교사상에 의하여 조화와 통일을 이루어 중용을 지키게 되고, 중용에만 고집하려면 현실적인 유교사상과 이상적인 도교사상에 의하여 현실과 중용과 이상을 넘나들게 된다. 즉, 신선도는 이상과 중용과 현실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현묘지도이다. 그와 같이 우리민족의 성격도 중용에만 고집하지 않고 이상과 현실을 넘나든다. 그것은 우리민족의 생활습속에 지금도 신선도의 유풍·유속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잘못 이해하면 우리민족을 이상주의적이라 또는 현실주의적이라 또는 안일주의적이라 오해할 수도 있다. 다섯째, 신선도는 원융무애사상이다. 신선도는 형이상학적인 도교사상과 형이하학적인 유교사상 그리고 그 중도적인 불교사상을 지님으로써 형이상학적인 문제는 도교사상에 의해서, 형이하학적인 문제는 유교사상에 의해서, 그리고 그 중도적인 문제는 불교사상에 의해서 풀리게 된다. 즉, 신선도는 시공을 초월해서 형이상하(形而上下)의 어떠한 문제도 풀 수 있고, 어느 누구와도 화목할 수 있으므로 신선도는 원융무애사상이다. 사상은 민족성의 반영이라 할 때, 신선도가 이상과 같이 심오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우리민족의 성격과 지혜가 심오하고 창의적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한가지 사실로만 보아도 장차 우리민족은 세계에 중심민족으로 부상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3. 문제점의 논의 화랑도가 신선도와 동계사상으로서 하나의 합리적 성립종교이며, 상고시대부터 있었다고 할 경우, 제기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한 논의이다. 첫째,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37년에 화랑을 처음으로 받들었다는 기록을 어떻게 해명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만약, 이 기록을 믿는다면 그 보다 14년 전 진흥왕 23년 9월에 가야가 배반하자 이사부(異斯夫)와 함께 출정하였던 사다함(斯多含)을 화랑이라 하였으니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진흥왕 37년이라는 연도문제는 신빙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삼국유사}에는 진흥왕이 즉위하자(원년) 민가의 어진 자녀 가운데 아름다운 자를 뽑아서 원화(原花)로 받들었다 하여 진흥왕 37년도 이전에 화랑제도가 있었음을 말하고 있고, 더욱이 {태백일사}를 보면 삼한고속(三韓古俗)에도 여랑(女郞)을 원화(源花)라, 남랑(男郞)을 화랑(花郞) 또는 천왕랑(天王郞)이라 칭하여 삼한시대(고조선시대)부터 화랑제도가 있었다. 따라서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37년에 처음으로 화랑을 받들었다는 연도는 모순임을 알 수 있다. 이래서 {삼국사기}의 기록을 어느 면에서 불신하게 된다. 둘째, 최치원 선생이 사학에 대해서 박학한지 의문이고 후대인이 기록한 선대의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 하는 반론이다. 최치원 선생보다 박학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신라가 낳은 유일한 대문호이며 대사상가이고 도인이다. 그러한 사람의 기록을 믿을 수 없다면 어느 누구의 기록도 믿을 수 없다. 그리고 난랑비서가 후대인의 기록이라 하더라도 "풍류설교지원 비상선사(風流設敎之源 備詳仙史)"라 하여 {선사(仙史)}라는 고서를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사가들의 사서가 모두 저자보다 전대에 관한 기록들이지만 전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격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가들의 사서를 믿어야 한다면 당연히 난랑비서의 기록도 믿어야 하고, 더욱이 한국사상을 말하는 사람치고 최치원 난랑비서를 언급하지 않는 사람이 없음을 생각하면 난랑비서의 기록을 믿지 않을 수 없다. 셋째, 도·불·유는 老·釋·孔에 의해서 집대성(集大成)되었고 창안된 종교인데, 이들 종교보다 신선도나 화랑도가 선행종교라면 어떻게 선대의 사상이 후대의 사상을 지닐 수 있느냐 하는 반론이다. 이 문제가 지금까지 규명되지 않음으로써 우리민족은 철학도 종교도 없는 미개민족같이 자학하여 왔고, 금석지문(金石之文)인 최치원난랑비서가 고의적으로 곡해되고 있는가 하면, 선대의 고도한 문화사상도 부정하게 되고 그에 대한 기록도 위서로 몰리게 되었다고 본다. 도·불·유 사상은 대자연의 운행원리인 천도에 바탕을 두고 설하여진 사상이다. 어느 누구에 의해서 조작되거나 창안될 수 있는 사상도 아니며, 중국이나 인도에만 국한해서 존재할 수 있는 사상도 아니다. 그러므로 본 문제는 도·불·유 사상이 신선도의 지류로서 대자연의 운행원리인 천도에 의해서 발원되었고 역수입됐음을 증명하면 풀리게 된다. 이 문제만 풀리면 기타의 사소한 문제는 모두 풀리게 됨으로 본 문제의 논의는 여기에서 그친다. 다음의 항목부터 더욱 유의하여 주기 바란다. Ⅲ. 신선도의 성립배경 1. 天一·地一·人一 삼신일체의 원의 전술한 바, 한웅천황이 천도를 대각하여 三神으로 종교를 세웠다고 하였다. 우리의 민속에도 三神상제·三神제왕·三神할머니·三神풀이니 하는 三神신앙이 있다. 그러면 三神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단고기}는 '고려팔관기(高麗八觀記)'의 三神說을 인용하여 그 뜻을 자세히 밝혀주고 있는데, 요약하면 三神이란 天一·地一·太一(人一의 강조)이라 하고, 天一은 조화의 작용을, 地一은 교화의 작용을, 太一은 치화의 작용을 주관한다고 하였다. 또한 삼신을 쓰임(用), 그 본체(體)를 하나님(一上帝)이라 하였다. 즉 삼라만상의 생성소멸과 동정변화가 우주의 天一·地一·人一 곧 三神一體의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을 비롯하여 만유를 낳고 양육하며 교육시키고 가꾸며 다스리고 벌을 주기도 하는 기능 곧 풀 한 포기가 나고 자라고 죽는 것도 모두 삼신일체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신일체는 시대적 사회적 배경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조작된 사상이 아니라 우주운행의 근본원리 또는 만유가 생성소멸하는 원인으로써 우주의 진여이법(眞如理法) 곧 천도(天道)인 것이다. 다음은 三神一體의 구체적 의미이다. 첫째, [一]의 뜻이다. 자전에 의하면 [一]은 "하나일·온통일"자로서 하나에서 전체를 의미한다. 또 [一]은 神과 氣의 의미도 포용한다. 따라서 天一·地一·人一할 때의 [一]은 天地人의 작용과 역할의 변화에 따라 무궁무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둘째, [氣]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氣는 유와 무, 양과 음을 초월한 원초적 단위로서 동학에 의하면 만물이 그리로 나고 그리로 돌아가는 天地의 뿌리이며 만물의 어머니이고 생명에너지이다. 셋째, 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天은 천계(天界)·상계·천국·우주·한늘·태양·태양계를 의미하고, 사람에 있어서는 아버지·남편·남성을 의미한다. 역학적으로 天은 건방(乾方;서북방)·건계(乾季;한겨울)·한대·양성 등을 의미한다. 따라서 天에 "一·氣·神"을 더한 天一·天神·天氣는 천계의 신비적인 성격과 작용과 이법을 의미하게 된다. 넷째, 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地는 天과 반대의 뜻으로 지계(地界)·지옥(地獄)·하계(下界)·우주의 땅세계·지구·지구계(地球系;지구와 달)를 의미하고, 사람에 있어서는 어머니·아내·여성을 의미한다. 역학적으로 地는 곤방(坤方;서남방)·곤계(坤季;한여름)·열대·음성 등을 의미하고, 地에 "一·神·氣"를 더한 地一·地神·地氣는 지계(地界)의 신비적인 성격과 작용과 이법을 의미하게 된다. 다섯째, 人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人은 天一의 조화작용과 地一의 교화작용에 의하여 태어나고 양육되는 것으로 생명체·생명계·인체·인체계를 의미하고, 사람에 있어서는 자녀·어린이·중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人은 仁자와 같은 뜻도 지니므로 역학적으로 木에 해당되어 동방·봄·온대 등을 의미한다. 또한 人에 "一·氣·神"을 더한 人一·人神·人氣는 생명계와 인간계 및 인체계의 신비한 성격과 작용과 이법을 의미하게 된다. 이래서 天一·地一·人一의 삼신일체는 어디에나 없는 데 없고 무엇이나 이루지 못함이 없는 우주운행의 원리 내지 만유가 생성소멸하는 원인으로써 天道를 의미하고, 종교적으로는 삼신하나님·삼신상제·삼신제석·삼신제왕·삼신할머니라 하여 숭배의 대상이 된다. 이에 대해서는 신선도의 숭배대상에서 상설된다. 2. 삼신일체와 3원적 품부(稟賦)와 삼교일체 사상의 성립 시대적 이데올로기는 역사적 경험을 발생학적 배경으로 한다. 그것이 곧 현대사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위대한 사상은 인간의 보편적 의지와 이성적 욕구에 바탕을 두게 마련이며, 그것은 인간이 타고난 천부적 품부(稟賦)에 기인되기 마련이다. 그러면 天一·地一·人一의 삼신일체는 인간이 타고난 천부적인 품부와 어떠한 관계에 있고, 거기에서 어떻게 도·불·유 삼교일체사상이 발원되는가의 문제이다. 이 문제는 가장 중요하고, 또한 그 이론전개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문제이다. 그래서 이 문제가 풀리지 않음으로써 신선도가 하잘것 없는 미신같이 취급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여기에서부터 정신을 가다듬고 단어 하나 하나를 음미하면서 정독해 주기 바란다. 서양철학이나 서양종교에서는 우주의 구성계기를 정신과 물질 또는 선신(善神)과 악신(惡神)의 2원적 계기로 본다. 동양의 성리학에서도 우주의 구성계기를 이(理)와 기(氣)의 2원적 계기로 본다. 그래서 인체계의 구성도 영과 육의 2원적 계기로 본다. 이것이 우주와 인간에 대한 현대철학의 일반적 시각이다. 이와 달리 신선도에서는 三神一體의 논리에 따라 하나의 완성된 체계나 생명체를 3원적 계기(契機)로 본다. 즉 이 우주의 구성을 天一·地一·人一의 3원적 계기로 보고, 만물에도 3원적 계기가 그대로 나타나 인체계의 구성도 호흡·감정·감각(息感觸)의 삼문(三門)과 원기·마음씨·몸짓(氣心身)의 삼방(三房)과 목숨·성품·정력(命性精)의 삼진(三眞) 등 3원적 계기로 본다. 그런데 天一은 호흡·원기·목숨(息氣命)과 불가분적인 연관성을 지니고, 地一은 감정·마음씨·성품(感心性)과 불가분적인 연관성을 지니며, 人一은 감각·몸짓·정력(觸身精)과 불가분의 연관성을 지닌다. 그런데 호흡·원기·목숨을 닦고 수련하는 것이 도교이고, 감정·마음씨·성품을 닦고 수련하는 것이 불교이며, 감각·몸짓·정력을 닦고 수련하는 것이 유교이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一]은 氣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天一은 天氣로 표현될 수도 있는데, 天氣는 햇볕과 공기를 의미하고, 햇볕과 공기는 인체계의 호흡(息)·원기(氣)·목숨(命)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곧 인간을 비롯하여 만유는 일순간도 숨을 쉬지 않으면 살 수 없고, 햇볕을 쬐지 않으면 원기가 떨어져 죽게 된다. 이와 같이 天氣는 인간의 호흡(息)·원기(氣)·목숨(命)과 직결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목숨은 한늘에 있다(人命在天)고 말한다. 그런데 숨을 고르게 쉬고(調息), 원기를 길러서(養氣) 불로장수 즉 장명(長命)하여 신선이 되자(成仙)는 사상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도교이다. 地一은 地氣로 표현될 수 있는데, 地氣는 땅에서 나는 물(水)과 곡물(穀物)을 의미한다. 우리인간은 물과 곡물을 먹지 않으면 한 순간도 살 수 없는데, 물과 곡물이 인체에 섭취되면 체질을 형성하고, 체질은 감정(感)·마음씨(心)·성품(性)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그런데 모든 감정을 끊어버리고(止感), 마음을 밝게 하여(明心), 본래의 성품을 깨달아(見性) 성불(成佛)하자는 사상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불교이다. 人一은 人氣로 표현될 수 있는데, 人氣는 부모와 조상의 정기를 의미한다. 우리인간은 부모와 조상의 정기 없이는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없다. 부모와 조상의 정기는 감각(觸)·몸짓(身)·정력(精)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그런데 감각 즉 관능적인 욕구를 억제하고(禁觸), 몸가짐을 닦아(修身), 정성(精誠)스런 성인이 되자(作聖)는 사상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유교이다. 그런가 하면 삼신일체란 모든 생명체와 완성된 개체는 비록 하나일지라도 그것이 이루어지는 데는 천일·지일·인일의 삼신이 하나가 되어 작용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목숨(命)도 햇볕·공기·물·곡식·부모의 유전 등 三神의 작용과 불가분적 연관성을 지니고, 성품(性)도, 정력(精)도 三神의 작용과 불가분적 연관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즉 명·성·정(命性精) 각각의 형성에 삼신(三神)이 모두 작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교의 성립에도 天一·地一·人一의 三神一體가 작용하고, 불교의 성립에도, 유교의 성립에도 天一·地一·人一의 三神一體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장의 도가사상에도 석가의 불교적인 요소와 공맹의 유교적인 요소가 있고, 석가의 불교사상에도 노장의 도교적인 요소와 공맹의 유교적인 요소가 있으며, 공맹의 유교사상에도 노장의 도교적인 요소와 석가의 불교적인 요소가 있는 것이다. 이상을 도표화하면 도표(1)과 같다. 도표(1) 三神과 3원적 품부와 三敎의 연관표
다른 측면에서 三神一體와 三敎와의 관계를 설명하면, 天一은 조화, 地一은 교화, 人一은 치화의 작용을 의미한다. 그런데 도교는 조화, 불교는 교화, 유교는 치화작용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하나의 예를 들면 도교의 지상목표는 무위자연적 道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인데, {도덕경}에 "道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둘은 셋을, 셋은 만물을 났는다"고 하여 道의 주요작용은 낳음(生)이다. 낳음은 조화작용이다. 조화는 天一의 작용을 의미한다. 불교의 지상목표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으로서 그 주요작용은 교화이다. 교화는 地一의 작용을 의미한다. 유교의 지상목표는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로서 그 주요작용은 치화이다. 치화는 人一의 작용이다. 다시 말하면 도교는 천일의 조화작용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불교는 지일의 교화작용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며, 유교는 인일의 치화작용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이상과 같이 天一·地一·人一의 三神과 도·불·유 三敎는 불가분적인 연관성을 지니고, 三神思想에서 三敎思想이 발원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음과 같이 연역할 수 있다고 본다. 1) 삼신일체는 불변적 천도이며 진리임을 의미한다. 2) 최치원난랑비서의 내용이 조작된 내용이 아니라 사실임을 의미한다. 3) 신선도는 어느 개인의 역사적 경험이나 필요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조작된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천부적 이성적 욕구에 의해서 성립된 자연주의 사상임을 의미한다. 4) 도·불·유 사상은 인도나 중국에 국한해서 존재하였던 민족주의 사상이 아니라 어느 인간사회에도 항존하는 보편적 진리임을 의미한다. 이상과 같이 연역할 수 있고, 여기에서 신선도는 현대종교 이상의 참종교라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태고시대라 하더라도 우리민족사회는 미개사회가 아니라 정신적 사상적으로는 현대사회 이상의 고도한 사회라 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되고, 신선도를 설한 한웅천황은 성인 중 성인이시며, 부처 중 부처였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3. 삼신일체와 3대인종과 삼교일체 사상의 성립 위대한 사상은 세계인류를 발생학적 배경으로 성립되기 마련이다. 세계인류는 크게 한대인종(백인종)·열대인종(흑인종)·온대인종(황인종) 등 삼대인종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역학적으로 삼신일체의 天一은 한대인종을 의미하고, 地一은 열대인종을 의미하며, 人一은 온대인종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삼신일체는 한대·열대·온대 등 세계인류 전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한대인종은 육식을 주식으로 하고, 열대인종은 초식을 주식으로 하며, 온대인종은 육식과 초식의 혼식을 주식으로 한다. 그럼으로써 민족성도 그와 같이된다. 상설하면, 한대인종은 육식을 주식으로 함으로써 그 체력이 건장하고 강건하며 그 성격도 야성적이다. 야성적이므로 무서운 것 없이 적극적이고 활동적이며 진취적이다. 또한 동물은 잔인하여 그들의 사회는 약육강식의 사회인데, 한대인종도 때로 잔인하고 인간사회의 약육강식을 자기의 생존을 위한 당연한 수단으로 본다. 그래서 한대인종은 이기적이고 지배적이며 인간사회를 힘으로 다스리려 한다. 열대인종은 나무의 열매를 주식으로 한다. 그럼으로써 열대인종은 그 체력이 나약하고 그 성격도 초목을 닮아서 고정적이고 상향적이다. 고정적이고 상향적이므로 정적 수동적 소극적 무저항적 이상적이다. 또 초목은 혼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지 못하고 군생하며 서로 의지하여 지내는데, 열대인종도 인간사회를 호혜적 조화적으로 파악하고 윤리도덕으로 총섭하려 한다. 온대인종은 육식과 초식의 혼식을 한다. 그럼으로써 온대인종의 체력은 그렇게 강하지도 않고 나약하지도 않으며, 그 성격은 한대인종과 열대인종의 성격을 어느 정도 모두 겸하게 되어 활동적인가 하면 수동적이며, 투쟁적인가 하면 평화적이고, 이상적인가 하면 현실적이며, 개인주의적인가 하면 혼란스럽고 이기적이다. 이상과 같이 식생활은 인간의 체질을 형성하고 변화시키며, 체질은 또 성격을 결정한다. 그래서 A형 체질에 A형 성격이 깃들고, B형 체질에 B형 성격이 깃든다. 동물을 예로 들면 육식동물은 사납고, 초식동물은 온순한데, 민족성도 그와 같이 식생활에 따라 형성되고 결정된다는 것이다. 공자께서도 이르기를 "너그럽고 부드러움으로써 가르치고 무도한 자에게도 보복하지 않는 것은 남방의 강함이니 군자가 이에 처하느니라. 무기와 갑옷을 깔고서 죽어도 싫어하지 아니함은 북방의 강함이니 강폭한 자가 이에 처하느니라"고 하였다. 이는 남북의 기온 차이에서 오는 인종의 성격을 말한 것으로 남방의 열대지방 인종은 군자같이 너그럽고 부드러우며, 북방의 한대지방 인종은 마치 용감한 군인같아서 두려움이 없고 강폭하다는 것이다. 또 Hippokrates(B.C.460-375)는 온난한 기후는 주민으로 하여금 평화를 사랑하게 하고, Aristoteles(B.C.384-322)는 말하기를 한지민은 대담하고 난지민은 복종과 굴종에 만족한다고 했다. 이를 종합 음미해 보면 한대인종의 성격에 있어서 그 장점은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점이라 할 수 있으나, 그 단점은 이기적이고 포악한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열대인종의 성격에 있어서 그 장점은 이상적이고 너그러운 점이라 할 수 있으나, 그 단점은 소극적이고 사회적으로 차별대우를 받아도 저항할 줄 모르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온대인종의 성격에 있어서 그 장점은 활동적이고 평화적인 점이라 할 수 있으나, 그 단점은 가치관이 지나치게 다양하여 혼란에 빠지기 쉽고 이기주의적인 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도교는 무위자연주의를 기본사상으로 함으로써 한대인종의 성격상 장점인 활동성과 적극성을 살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린이 같이 소박한 심리상태로 돌아가기를 가르침으로 한대인종의 성격상 단점인 이기심과 포악성을 다스리는데 기여할 수 있다. 따라서 신선도가 한대인종의 교화에 맞게 적절히 변용된 사상이 곧 도교라 할 수 있다. 불교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을 가르쳐 열대인종의 훌륭한 성격인 이상과 관용성을 더욱 신장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적극성과 활동성을 고취시켜 소극적인 성격을 개혁할 수 있고, 개유불성(皆有佛性) 내지 생명평등사상(生命平等思想)을 가르침으로 그 사회의 차별대우를 타파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 그래서 신선도가 열대인종의 교화에 맞게 적절히 변용된 사상이 곧 불교라 할 수 있다. 유교는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를 가르쳐 온대인종의 성격상 장점인 평화지향성을 살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엄격한 생활덕목 예컨대 오계(五戒)와 오륜(五倫)을 가르침으로써 혼란한 가치관의 통일을 이루고 이기주의를 극복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그래서 신선도가 온대인종의 교화에 맞게 적절히 변용된 사상이 곧 유교라 할 수 있다. 또한 한대인종은 추위에 견디기 위해 육식을 해야 한다. 그런데 도교는 살생을 묵인한다. 열대인종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 육식을 아니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불교는 살생을 금지(不殺生)한다. 온대인종은 기온이 따뜻함으로 많은 육식이 필요치 않다. 그런데 유교는 살생을 가리도록(殺生有擇) 한다. 이를 도표화하면 도표(2)와 같다. 도 표(2) 3대인종과 三敎의 연관표
이상과 같이 도교는 한대인종, 불교는 열대인종, 유교는 온대인종과 불가분적 연관성을 지니어 이들 인종의 성격상 훌륭한 점을 더욱 신장시키고, 모순점을 극복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 따라서 신선도는 만민일체를 발생학적 배경으로 성립된 홍익인간 이화세계 사상이며, 현대종교를 능가하는 고등종교요 참종교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신선도를 설한 한인·한웅·한검은 신화적인 존재가 아니라 석가모니나 공자 그리고 노자보다도 더욱 위대한 성인이었고, 부처님이었다는 사실이 거의 증명됐다고 할 수 있다. 4. 삼신일체와 음양오행 사상의 성립 음양오행 사상은 도·불·유에 공통되는 사상이다. 그런데 天一·地一·人一의 삼신일체에서 음양오행 사상이 발원된다. 이를 약설하면 음양이란 밝은 것과 어두운 것, 한늘과 땅, 남성과 여성 같이 상대관계가 서로 경쟁관계가 아니라 상부상조의 불가분적 관계임을 의미하고, 이에는 태양(太陽)과 태음(太陰), 소양(少陽)과 소음(少陰)의 4상(四象)이 있다. 五行은 우주의 삼라만상이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의 다섯 가지로 동정변화 내지 생성소멸 등 순환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음양오행사상이 삼신일체의 천도에서 발원된다. 三神一體의 天一은 태양계, 地一은 지구계(지구와 달)를 의미하기도 한다. 태양계에서는 혹성이 해의 주위를 순환하고, 지구계에서는 달이 지구의 주위를 순환한다. 이는 해와 혹성, 지구와 달의 불가분적 상호 인력작용에 의하여 생긴다. 이를 음양에 비유하면 해와 혹성의 관계는 태양과 태음의 관계에 해당되고, 지구와 달의 관계는 소양과 소음의 관계에 해당된다. 왜냐하면, 해와 혹성, 지구와 달은 서로 끌고 당기며 순환하고 상부상조의 불가분적 양과 음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음양관계를 인체계에 부합시키면 인체에 天·地·人을 상징하는 머리·몸통·하반신이 있고, 팔·다리·손가락·발가락의 세 마디가 모두 천·지·인을 상징한다고 한다. 또 음양을 상징하는 두개의 눈, 두개의 귀, 두개의 콧구멍이 있고, 4상을 상징하는 4지(四肢)가 있으며, 그밖에 5장(五臟)과 6부(六腑)도 음양관계로 나뉘어진다. 이래서 음양사상은 삼신일체의 천도에서 발원된다. 오행사상도 삼신일체의 천도에서 발원된다.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공전함으로써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四季)가 생기고, 4계의 성격과 작용을 간략히 표현한 것이 木·火·金·水이다. 즉 봄이 되면 초목의 뿌리는 땅속으로 뻗고 줄기는 위로 올라가는데 이를 표현한 것이 木이고, 여름이 되면 몹시 더웁고 햇볕이 쨍쨍한데, 이를 표현한 것이 火이며, 가을이 되면 오곡이 누렇게 무르익어 딴딴한데, 이를 표현한 것이 金이고, 겨울이 되면 비가 몹시 내리고 눈보라가 내리치는데, 이를 표현한 것이 水이며, 그것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의해 생기므로 지구인 土가 중앙에 위치하여 木·火·土·金·水로 된다. 이것이 五行이다. 오행을 인체에 부합시키면 인체에 오행을 상징하는 5지(指)와 5장(臟)이 있고, 각 부위와 기관의 기능도 五行으로 나뉘어진다. 10천간과 12지지와 60갑자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Ⅳ. 신선도의 성립계기 1. 우리나라의 기온과 민족성과 신선도의 성립 사상은 민족성의 집약적 표현이며, 민족성은 정치·종교·교육 등 문화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고 바뀌어지기도 하지만, 기온(기후) 및 식생활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즉, 기온이 한대냐 열대냐 온대냐에 따라 민족성이 다르고, 민족성이 다르면 사상도 그에 따라 다르게 된다는 것이다. 식생활에 있어서도 주식(主食)이 육식이냐 초식이냐 혼식이냐에 따라 민족성이 다르고, 민족성이 다르면 사상도 그에 따라 다르게 된다는 것이다. 종합해 말하면 기온과 식생활과 문화의 공동작용이 민족성을 형성하고, 민족성은 사상형성의 밑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기온은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기온은 세계에서 유일무이하다. 다른 나라에도 일년에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대륙과 대양에 인접하여 대륙성 기후와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1년 4계의 기온 차이가 몹시 심하다. 다른 나라에 있어서 여름과 겨울의 평균 기온 차이는 섭씨 10℃ 안팎이라 하지만 우리나라에 있어서 여름과 겨울의 평균기온 차이는 섭씨 30℃ 이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중부 이북을 보면 여름의 삼복(三伏) 더위 때는 마치 열대지방의 기온과 같고, 겨울의 대소한(大小寒) 때는 마치 한대지방의 기온과 같으며, 봄과 가을의 춘분과 추분 때는 온대지방의 기온과 같다. 여기에서 우리나라의 기온과 우리민족의 성격을 연관시켜 보면 우리민족의 성격은 한대성·열대성·온대성의 3중 구조적 성격을 복합적으로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차디찬 겨울이 있다는 것은 용감한 군인같이 적극적이고 활동적이며 두려워하지 않는 용덕(勇德)을 지닌 민족성을 낳았다고 볼 수 있고, 무더운 여름이 있다는 것은 인자한 군자와 같이 포용적이고 이상적이며 부드러운 인덕(仁德)을 지닌 민족성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따뜻한 봄과 서늘한 가을이 있다는 것은 연예인이나 학자와 같이 평화적이고 낙천적이며 풍류적이고 사색적인 지덕(智德)을 지닌 민족성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겨울에는 삼한사온(三寒四溫)이 있다. 삼한사온이란 3일 춥고 4일 따뜻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7일을 두고 일기에도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의 일곱 가지 변화가 일어난다는 뜻이니, 우리민족의 성격도 이를 닮아서 희·노·애·구·애·오·욕의 7정(情)을 지녀 감정의 변화가 몹시 심하고 사고도 다각적이다. 그래서 우리민족은 너무나 다양한 가치관을 지니게 되는 결점도 있지만 풍부한 감수성과 천재적인 재능을 천부적으로 지니게 되어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능력을 지니게 된다. 즉, 한대인종이나 열대인종은 강경함이 아니면 온유함 어느 한쪽만을 지닌 편파적·일방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면, 우리민족은 보편적·포괄적인 성격을 지녀 강경함과 온유함, 엄격함과 관대함, 이상과 현실, 선과 악, 그리고 그 중간의 3중구조적 성격을 복합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민족은 백인종의 한대성·흑인종의 열대성·황인종의 온대성을 동시에 복합적 총체적으로 모두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우리민족은 영웅호걸형·성인군자형·문예인형을 동시에 포괄적으로 지니어 신비스러운가 하면, 멋지고 신나는 민족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중 구조의 성격을 三神一體에 대입시키면, 한대적 성격 즉 용덕은 아버지와 같은 성격으로서 天一에 해당되고, 열대적 성격 즉 인덕은 어머니와 같은 성격으로서 地一에 해당되며, 온대적 성격 즉 지덕은 어린이 같은 성격으로서 人一에 해당된다. 따라서 우리민족의 성격을 표현한 것이 天一·地一·人一의 三神一體이며, 도·불·유 三敎一體의 신선도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민족은 천부적으로 도·불·유 삼교일체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도·불·유 삼교일체의 신선도는 이 강토 이 민족에 한해서 잉태하거나 배태할 수 있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다른 풍토 다른 민족에게는 잉태하거나 배태할 수 없는 사상이란 것이다. 이상을 도표화하면 도표(3)와 같다. 도표(3) 우리민족의 성격과 신선도의 연관표
우리민족의 이러한 도·불·유 삼교일체적 성격이나 생활방식을 외부에서 전래된 도·불·유의 영향이라 할지 모르나 그렇지 아니하다. 왜냐하면, 외래의 도·불·유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이래 지금까지 어느 시대이든 전체 민족을 신앙적으로 지배하여 본 일도 없으며, 가령 어느 계층이 신앙하였다 하더라도 도·불·유 가운데 어느 하나를 신앙하였고, 도·불·유 삼교를 모두 신앙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민족의 도·불·유적 성격이나 생활방식은 외래 도·불·유의 영향이라 할 수 없고, 고유한 신선도의 유풍 유속과 풍토에서 오는 민족성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 강토에서 자라는 짐승들도 보면, 까마귀는 이를 효조(孝鳥)라 하는데 어미와 헤어지려면 그전에 어미에게 3개월 동안 공양하고 헤어진다 하며, 미개한 곤충인 벌도 제 어미인 여왕벌이 죽으면 몽상(蒙喪)을 입고, 수달피는 어미가 죽으면 장례식을 지내며, 승냥이는 어미가 죽으면 춘분과 추분에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백두산의 범·표범·곰·이리는 날쌔고 용맹하면서도 사람을 함부로 해치지 아니한다. 미개한 짐승들의 그러한 행동을 보아도 우리민족은 풍토적으로 도·불·유 삼교일체적인 성격과 생활방식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고, 도·불·유 삼교일체의 신선도는 우리민족이 아니면 잉태하거나 발원될 수 없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 2. 우리민족의 식생활과 민족성과 신선도의 성립 다음은 식생활에 따른 민족성과 민족사상은 어떠한가의 문제이다. 우리민족은 육식도 초식도 모두 하는 혼식민족이다. 혼식 민족이므로 우리민족의 성격은 원래 육식민족과 초식민족의 성격을 모두 겸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민족의 성격은 온유한가 하면 강인하고, 정적인가 하면 동적이며, 수동적인가 하면 능동적이고, 무저항적인가 하면 저항적이며, 현실적인가 하면 이상적이고, 이기적인가 하면 이타적이며, 개인주의적인가 하면 협동적이다. 그리고 그 중도적인 성격을 지니기도 한다. 민족성이 그러함으로 교육이 잘못되거나 정치·경제·사회·문화가 이기적으로 흘러 사회가 부패하게 되면, 거기에 저항하거나 반대로 타협하게 되고, 아니면 방관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사회에는 데모군중이 있는가 하면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방관자들도 있고, 심지어는 비리와 타협하는 모사꾼들도 있다. 반면에 평소에는 생업에 종사하면서 독서나 하던 사람이 국가민족이 환란을 당하여 위태롭게 되면 용감한 장수로 돌변하는가 하면, 탁월한 지략가가 되기도 하고, 열렬한 애국자가 되기도 한다. 이는 임진왜란 때와 조선조 말엽을 보면 이해될 것이다. 이와 같이 식생활에서 파악하여도 우리민족의 성격은 다양하여 그 장점만을 볼 경우 우리민족의 성격을 지·덕·체(智·德·體) 또는 지·정·의(知·情·意)로 보는 학자도 있으니 그러한 성격의 표현이 天一·地一·人一의 삼신일체이며, 도·불·유 삼교일체의 신선도라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민족은 혼식민족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쌀·보리·조·콩 등을 상식으로 하는 곡식민족이다. 그래서 우리민족의 성격은 한편 쌀을 닮게 마련이다. 쌀은 벼의 알맹이이며, 벼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인다. 우리민족도 나이를 먹을 수록 예의 바르고 겸손하며 남의 인격을 존중한다. 또한 쌀은 닦으면 하얗고 깨끗하나 똘똘하여 잘 뭉치지 못하는 결점을 지니고 있다. 그와 같이 우리민족도 수양을 쌓으면 청렴결백하고 솔직담백하나 야무지고 자존심이 강하며 개인주의적인 성격을 지니어 잘 뭉치지 못하는 결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쌀은 거기에 물을 붓고 끓이면 밥이 되어 백천만 개의 쌀이 한 덩어리가 된다. 그와 같이 우리민족도 그 정신에 얼을 불어넣는 애국교육 내지 민족교육을 잘시키면 전체 민족이 '하나'로 응집하고, 모든 사람을 '우리'라는 울타리 속으로 총섭하리라 확신한다. "하나 내지 우리"의식은 모든 상대관계를 일체관계로 보는 조화사상이며, 호혜사상으로써 지금도 보유하고 있는 우리민족의 고유의식이다. 이러한 민족성에서도 삼신일체 내지 삼교일체의 신선도를 잉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상의 소론을 요약해 말하면 우리 민족은 백·흑·황 등 3대인종의 성격인 한대성·열대성·온대성과 육식성·초식성·혼식성을 모두 지니고, 3대인종에게 필요한 사상인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을 근본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우리민족은 온 인류를 대표할 수 있는 자질을 천부적으로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둘째, 한국사상은 세계사상을 포용하고 대표할 수 있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따라서 어느 민족도 우리민족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고, 사상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여기에서 우리민족은 자연적으로 세계무대에 중심민족으로 부상될 것이 예상되고, 우리민족은 세계인류와 세계사상을 지도하여야 할 사명을 천부적으로 타고났다고 할 수 있다. 지금부터 독자들도 포부와 이상을 높게 가져 전쟁과 빈곤에서 시달리는 인류를 구제하고 홍익인간 광명이세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지니고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3. 산삼과 수도생활과 신선도의 성립 1) 산삼의 약리적 효능과 수도생활의 발생 우리민족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도·불·유 삼교일체적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성격이 체계화되어 하나의 합리적인 종교로 성립되려면 위대한 부처나 성인의 탄생없이 불가능하다. 부처나 성인은 언제 어디서나 탄생되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계기와 지기(地氣)에서 탄생된다. 계기란 성인이 탄생될 수 있는 어떤 자극 내지 동기를 의미하고, 지기란 땅의 정기로서 그 결정체를 토정(土精) 또는 지정(地精)이라 한다. 우리나라의 지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것으로 사람의 모양을 하고, 그 뿌리를 약용으로 쓰는 자연생 인삼 곧 산삼을 의미한다. 산삼은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반도·만주·러시아의 연해주 등 상고시대 고조선의 강토에서만 자생하는 불로초니 불사약이니 하는 식물이다. {부도지}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고 있다. 시(市)에 온 사람들은 영주(瀛洲) 대여산(垈輿山) 계곡에서 삼영근(三靈根)을 얻으니 곧 인삼이었다. 그것을 영주 해삼(海蔘)이라 하며, 능히 삼덕(三德)을 보전하고 돌아갈 수 있었다. 대개 인삼은 그 수격(數格)을 갖추어 자삭방(磁朔方)에 난 것은 반드시 장생하니 40세(歲)를 1기(期)로 휴면하고, 13기를 1삭(朔)으로 축정하며, 4삭을 경과하여 씨(子)를 맺어 화(化)하니 이러한 것은 부도(符都)의 지역이 아니고는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방삭초(方朔草)라 하니 세상에서 불사약(不死藥)이라 하는 것이 이것이다. 그 혹 작은 뿌리라도 부도의 지역에서 나는 것은 모두 영효가 있으므로 시(市)에 온 사람들은 반드시 그것을 구하였다. 대개 삼근영초(三根靈草)인 인삼과 오엽서실(五葉瑞實)의 잣과 칠색보옥(七色寶玉)의 부인(符印)은 진실로 불함삼역(不咸三域)의 특산이요, 사해제족(四海諸族)의 천혜(天惠)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불함삼역(不咸三域)의 불함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백두산이며, 삼역(三域)은 주(註)에 의하면 방장(方丈)·봉래(蓬萊)·영주(瀛洲)의 삼신산(三神山)을 가리킨다. 그러면 백두산에서 불사약인 환혼불로(還魂不老)의 인삼이 생산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자삭방에 난 산삼은 수격을 갖추어 장생하는데 40세를 1기로 휴면하고, 13기를 1삭으로 축정하고, 4삭(40×13×4=2080년)을 경과하여 씨를 맺는데, 중국의 진시황과 한무제가 방사들을 보내어 구하여 오게 하였던 불사약(不死藥)이 바로 이것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산삼의 약리적 효능은 어떠한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 의하면 주로 오장을 보호하고, 정신을 안정시키며, 혼백을 여일하게 하고, 경기를 멈추게 하며, 삿된 기운을 없애고, 어두웠던 눈을 밝게 하며, 마음을 열리게 하고, 지혜를 더하게 하며, 오래 먹으면 몸이 가볍고 장수하게 한다고 하였다. 이래서 산삼을 먹으면 세 사람의 힘이 나며, 불로장수와 함께 불치병은 물론 기사회생하는 영약으로 친다. 노인이 먹으면 흰 머리가 검어지고, 주름진 얼굴이 홍안이 되며, 무거웠던 몸도 어린아이 같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열리고, 지혜가 트이며, 어두웠던 눈이 밝게 되어 언제나 젊음을 누릴 수 있다고 믿어오고 있다. 그래서 산삼을 유일무이한 만병통치약이라 하고, 선초(仙草) 내지 신선초(神仙草)라 한다. 그러나 산삼은 보통 숲에 가리어 잘 보이지 아니하는데, 천수(天壽)를 다한 산삼은 좋은 심마니에게 텔레파시로 자기가 있는 곳을 알리고, 심마니(채삼업자)는 비몽사몽 간에 산신령의 계시를 받아 산삼을 채취하게 되는 것이 전체의 80% 이상이라고 한다. 더욱이 부정하면 산신령이 노하여 산삼을 주지 않고 독사나 맹수의 위해를 받는다고 믿어오고 있다. 여기에서 마음을 닦고 정신을 집중시키는 좌선과 수도생활이 발생된다. 현재 심마니들의 수도생활을 보아도 산에 들어가기 3일 내지 7일 전부터 부정한 사람과 접촉을 아니하고, 매일 목욕재계하며, 금욕생활·불육식은 물론 언행을 조심하고, 상주·관(棺)·동물의 시체를 보는 것조차 피하여 몸과 마음을 청결히 한다. 또한 심마니의 가족들도 위와 같은 수도생활을 한다. 2) 수도생활과 신선도의 성립 구체적으로 수도생활이란 어떠한 생활을 의미하는가? 평소에도 재계하는 것을 수도라 하고, 재계는 정제(整齊)와 지계(持戒)를 의미한다. 정제는 사물(邪物)을 막아 기욕(耆慾)을 끊는 것으로 귀로는 음악을 듣지 아니하고, 손으로 악기를 연주하지 않으며, 입으로 악업을 짓지 않고, 눈으로 나쁜 것을 보지 않으며, 마음으로 사특한 것을 생각치 않고, 행동을 구차하게 움직이지 않아 뜻을 산란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 지계는 일정한 계율을 지키는 것이다. 수도방법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신선도의 경전 {삼일신고}를 보면 수도방법이 소개되고 있다. "뭇 사람들은 선악(善惡)과 청탁(淸濁)과 후박(厚薄)을 서로 섞어서 가닥길을 따라 마음대로 달리다가 나고 자라고 늙고 병들어 죽는 괴로움에 빠지나 밝은이는 지감(止感)·조식(調息)·금촉(禁觸)하고, 한 뜻으로 되어가서 가닥길을 돌이켜 참으로 나아가면 크게 신기(神機)를 발하나니"하여 {삼일신고}는 수도의 요체를 지감·조식·금촉이라 설하고 있다. 즉, 수도방법에는 지감법·조식법·금촉법이 있다는 것이다. 지감법(止感法)은 주로 불가에서 행해지는 수양방법으로 모든 감정을 억제하고 마음을 닦아 견성성불하는 데에 목적을 둔다. 그 수양방법으로는 가장 기초적인 수양법으로 오정심관(五停心觀)인 부정관(不淨觀)·인연관(因緣觀)·자비관(慈悲觀)·수식관(數息觀)·불상관(佛像觀) 외에 사념처(四念處)· 정근(四正勤)·사신족(四神足)·오근(五根)·오력(五力)·칠각지(七覺支)·팔정도(八正道) 등 37도품(道品)이 있다. 조식법(調息法)은 주로 도가에서 행해지는 수양방법으로 숨쉬기를 일정하고 고요하게 함으로써 산란한 마음을 안정시키고 양기하여 무병장수하는 신선이 되는 데에 목적을 둔다. 그 수양방법으로는 중기단법(中氣丹法)·건곤단법(乾坤丹法)·원기단법(元氣丹法)·진기단법(眞氣丹法)·삼합단법(三合丹法)·조리단법(造理丹法)등이 있고, 그에 따른 3백 66개의 동작이 있다. 이는 현재 국선도(國仙道)에서 행해지고 있다. 금촉법(禁觸法)은 주로 유가에서 행해지는 수양방법으로 행실을 닦고 기개를 굳게 하여 불의와 타협치 않는 성인군자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 그 수양방법에는 삼륜·오계·오륜·팔조·구서·팔리훈(참전계) 등이 있고, 유교의 덕목이 모두 수신법인 것이다. 이상의 조식법·지감법·금촉법을 도교·불교·유교에서는 삼신일체가 되도록 통일적으로 하지 않고, 어느 하나만을 한다. 그것은 완전한 수도생활이라 할 수 없다. 노자·석가·공자 등 성인이 탄생한 이래 도교·불교·유교에서 대 성인이 탄생하지 못한 이유도 그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신선도에서는 그러한 수도를 하나씩 따로 따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추구한다. 곧 삼신일체가 되도록 한다.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에 "감(感)은 식(息)을 떠나지 아니하고, 식은 감을 떠나지 아니하며, 촉(觸)도 그 중에 존재한다"함이 이를 의미한다. 이러한 수도생활을 우리민족은 상고시대부터 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생각해보자. 지감·조식·금촉의 수도생활을 계속하면서, 눈을 밝게 하고, 마음을 열리게 하며, 지혜를 더하게 하는 신비의 산삼을 장복하였다고 할 경우, 어떻게 되겠는가? 바로 부처님이나 위대한 성인이 탄생되지 않겠는가? 따라서 한인천제와 한웅천황과 한검단군은 부처님이었으며 위대한 인이었다고 아니할 수 없고, 그들에 의하여 신선도가 베풀어졌다는데 대하여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된다. 곧 "신선도의 성립(성인의 탄생)=수도생활+산삼의 신비적인 효능"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그래서 산삼을 먹고 신통력을 얻었다는 야사도 있고 당(唐)나라 함통(咸通)시대의 박사 피일휴(皮日休)는 산삼에서 불로장수하는 신선사상이 나왔다고 하였는가 하면, {인삼사}에 당후 인나자(唐侯 姻蘿子)·여도사(女道士) 등이 특이한 인삼을 먹고 신선이 되었다는 고사도 있다. 그밖에도 산삼은 민족신앙의 대표적 식물이며, 산삼을 캐는 심마니들이나 산삼을 동경하는 사람들의 신앙이 그대로 민족신앙으로 표현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3) 산삼과 신선도와의 연관성 이상과 같이 신선도는 수도생활에서, 수도생활은 산삼에서 나왔다면, 산삼과 신선도는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하에서 밝히는 바와 같이 호칭·성격·기능·구조 등을 비교하여 보면 산삼과 신선도는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첫째, 산삼은 세 개의 가지에 중심 일경의 삼아일경초(三?一莖草)인데, 산삼을 먹으면 세 사람의 힘이 나며, 또한 나라를 다스리는데 있어서 대신 세 사람의 공과 맞먹는 성군과 비유된다고 한다. 그래서 산삼의 蔘은 원래 參자이다. 이는 天·地·人의 일체, 父·母·子의 일체, 君·師·父의 일체 등 三位一體를 뜻하는데, 신선도 역시 天一·地一·人一의 三神一體에서 발원된다. 또한 산삼은 세개의 가지에 잎이 다섯이 있는 삼아오엽초(三?五葉草)인데, 신선도의 계율은 三神五帝의 원리에서 발원된다. 그래서 신채호는 신선도를 삼신오제교(三神五帝敎)라고도 하였다. 이와 같이 산삼과 신선도의 구조가 모두 3·1 또는 3·5로서 서로 동일하다. 둘째, 산삼은 너무 건조하지도 않고 너무 축축하지도 않으며, 지나치게 양달도 아니고 지나치게 음달도 아닌 곳에서 잘 자란다. 이는 산삼의 성격이 중도적임을 말한다. 신선도 역시 이상적인 도교사상과 중용적인 불교사상 그리고 현실적인 유교사상을 지녀 서로 견제하고 조화하여 중도적 중용적이다. 이는 산삼과 신선도가 그 성격면에서 서로 일치함이다. 셋째, 산삼은 정신과 질환에는 물론 내과나 외과 질환에도 모두 유효하여 만병통치약이라 칭한다. 그러나 불량하고 불륜한 환자에게는 그리 효험이 없고, 선량하고 진실한 환자에게만 효력을 잘 발휘한다고 한다. 그래서 산삼을 신약(神藥) 또는 신초(神草)라 한다. 신선도 역시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으로서 한대·열대·온대 등 어느 민족도 가까이 하면 저절로 감화(接化群生)하고, 그 교육적 효능이 너무나 신비하므로 신도(神道) 또는 신교(神敎)라고도 한다. 이는 산삼과 신선도가 그 기능면에서 서로 일치함이다. 넷째, 산삼은 불로초니 불사약이니 하는 바와 같이 좀처럼 죽지 아니하여 십장생(十長生) 중의 하나이다. 신선 역시 지감·조식·금촉하여 불로장수한다고 한다. 이는 산삼과 신선이 수명에 있어서 서로 유사함이다. 이를 도표화하면 도표(4)와 같다. 도표(4) 산삼과 신선도의 연관표
이상과 같이 상고시대 고조선의 강토에 한해서 자생하는 산삼과 신선도가 서로 불가분의 연관성을 맺고 있다고 할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天一·地一·人一의 삼신일체는 인위적 조작적 개념이 아니라 자연적 절대적 천도임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도·불·유 사상 역시 인위적 조작적 사상이 아니라 불변적 천도임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天一·地一·人一의 삼신일체 원리는 이 강토 아니면 성립될 수 없는 사상이라 할 수 있고, 도·불·유 삼교일체의 신선도 역시 원래 이 강토가 아니면 성립되거나 발원될 수 없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 곧 중국이나 인도에서는 발원될 수 없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 도·불·유 사상이 동양사상의 근간이라 할 때, 이 강토는 동양사상의 발원지임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도·불·유 사상이 한대인종·열대인종·온대인종 등 세계인류의 성격과 자질을 배경으로 성립되었다면 이 강토는 세계의 축소판이며, 세계사상의 진원지라 할 수 있다. 성인의 탄생도 이 강토가 아니면 불가능하고, 한인·한웅·한검은 대성인이었고 부처님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이 강토는 지구의 정기가 서린 금수강산이며, 지구의 중심이며 정수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땅에 사는 우리민족은 한늘이 내려준 은혜를 받은 민족이라 할 수 있다. Ⅴ. 백두산과 한웅천황과 신선도의 성립 1. {삼국유사}의 태백산에 대한 이설(異說) {삼국유사}의 고조선기를 보면 한웅천황이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큰 뜻을 품고, 풍백·우사·운사의 신관과 3천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정상의 신단수 밑에 내려와 곡·명·병·형·선악 등 무릇 인간의 360여사를 주관해서 신시(神市)를 베풀었다 하고, 한웅천황의 아들인 단군왕검은 홍익인간의 뜻을 받들어 조선국을 세웠다고 하였다. {한단고기} 삼성기전 하편에는 좀더 자세히 기록되고 있는데, 한웅천황이 태백산 정상의 신단수 밑에서 삼신일체(三神一體)의 천도(天道)를 크게 깨치시고 종교를 베풀었다(桓雄開天以三神設敎)는 사실까지 밝혀주고 있다. 이를 생각하면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우리민족의 성산(聖山)으로서 지금의 백두산이다. 또한 그것이 현재의 통설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태백산에 대하여 최근 어떤 학자는 중앙 아시아(중국 신강성)의 천산(天山)이라 주장하고, 또 어떤 학자는 중국 감숙성(甘肅省) 돈황(敦煌)의 삼위산(三危山)이라 주장한다. 이에 따라 부득이 이들 주장의 오류에 대해 비판한다. 1) 중국 신강성의 천산설과 그 비판 어떤 학자는 "천산(天山)에서 동으로 뻗어내린 준령을 따라가면 삼위태백(三危太白)과 흑수(黑水)가 있고, 이어서 곤륜산맥(崑崙山脈)이 뻗어내렸다"고 주장하면서 {삼국유사}의 태백산(太白山)을 중국 신강성(新疆省)의 천산(天山)이라 주장한다. 심지어는 태백산·천산·곤륜산·설산·백두산이 모두 동일한 산이라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삼국유사}의 태백산과 우리민족이 신성시하는 백두산은 같은 산인데 중앙 아시아의 천산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무엇을 근거로 하고, 과연 옳은가 하는 문제이다. 세계지도를 펴고 보면 중앙 아시아(중국 신강성)에 천산산맥과 천산(天山)이 있고, 삼위산도 있다. 또한 중국대륙 서쪽에 곤륜산맥도 있다. 특히 {중국고금지명대사전(中國古今地名大辭典)}에 천산을 설산 또는 백산(태백산)이라 하고, 설산을 히마리아산(喜馬拉雅山)이라, 또한 곤륜산(崑崙山)을 히마리야산(喜馬拉耶山)이라 하였다. 또한 우리나라의 백두산을 태백산이라고도 한다. 곧 어느 측면에서 보면 태백산·천산·설산·곤륜산·백두산은 동일한 산을 지칭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만약 {삼국유사}의 태백산을 중앙 아시아의 천산이라 가정할 경우, 백두산이라는 호칭도 중앙 아시아의 천산을 지칭한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러면 그러한 주장이 과연 옳은 주장인가 하는 문제이다. 문제의 발단부터 알아보기로 한다. 첫째, 우리나라의 백두산이 태백산이라는 사실은 학계에 널리 알려지고 있으나, 동시에 천산이며 설산이고 곤륜산인데, 그러한 사실이 학계에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고, 둘째, 중국 대륙 서쪽에 곤륜산맥이 있음으로써 곤륜산도 중국에 무조건 있다고 믿는 지리지식의 부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 학설의 모순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근거로 제시한 문장을 보면 "천산(天山)에서 동으로 뻗어내린 준령을 따라가면 삼위태백(三危太白)이 있다"고 하여 천산과 삼위태백은 다른 산임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산으로 파악한 모순을 범하고 있다. 둘째, 天山에서 동으로 준령을 따라가면 三危太白이 있다고 했는데, 지도에 삼위산과 태백산은 있으나 삼위태백은 없다. 또한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도 삼위산과 태백산은 있으나 삼위태백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위태백이 있다고 한 근거는 어디에 있느냐 하는 점이다. 더욱이 {한단고기} 삼성기전 하편을 보면, {한단고기} 삼성기전 하편을 보면, 환국의 말에 천산에서 한웅천황 일행이 동으로 이동할 때, 한웅천황은 태백산으로 내려갔고, 반고(盤固)는 삼위산으로 내려갔다고 하여 태백산과 삼위산은 서로 다른 산이다. 그런데 삼위태백을 하나의 산으로 파악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 만약 삼위태백이 하나의 산이라면 그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태백산이란 이름은 이 지구상의 특정 산에만 붙여진 고유명사가 아니라, 여러 지역, 여러 개의 산에 붙여진 보통명사이다. 곧 태백산은 우리나라에도 있고, 일본에도 있으며, 중국에도 있다. 그래서 중앙 아시아의 천산과 우리나라의 백두산이 일명 태백산일 수 있다. 이 경우 {삼국유사}의 태백산이 오로지 중앙 아시아의 천산을 지칭하고, 우리나라의 백두산을 지칭하지 않는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는 점이다. 2) 중국 감숙성의 삼위산설과 그 비판 또 어떤 학자는 중국 감숙성(甘肅省) 돈황(敦煌)의 삼위산(三危山)을 {삼국유사}의 태백산이라 주장한다. 아울러 백두산이라는 호칭도 중국의 삼위산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비판하면, 첫째, {중국고금지명대사전} 태백산조를 보면, 중국 섬서성(陝西省) 미현(慟縣)에 대태백(大太白)·이태백(二太白)·삼태백(三太白)이 있고, 거기에 삼지(三池)가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를 근거로 태백산을 삼위태백(三危太白)이라 단정함은 지나친 비약이 아니냐 하는 것이다. 곧 삼지삼태백(三池三太白)이 삼위태백(三危太白)이라는 근거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또한 섬서성 미현의 삼지삼태백(三池三太白)이 삼위산(三危山)이라면 어째서 감숙성 돈황의 삼위산을 섬서성 미현의 삼지 삼태백에 가져다 붙이느냐 하는 문제이다. 둘째, 삼위태백은 하나의 산을 지칭하는 표현이 아니라 두 개의 산을 지칭한 표현이다. 그런데 삼위태백을 하나의 산으로 착각하고 있다. 만약 삼위태백이 하나의 산이라면 그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태백산이란 이름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이다. 따라서 중국 감숙성 돈황의 삼위산과 우리나라의 백두산이 모두 태백산일 수 있다. 그런데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오로지 중국의 삼위산을 지칭하고, 우리나라의 백두산을 지칭하지 않는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무조건 주장하는 점이 모순이라 할 수 있다. 2. 태백산의 보편성과 특수성 1) 태백산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이다. 우선 태백산이 어떤 산인가의 문제부터 밝힌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을 보면, 중국 길림성(吉林省)의 장백산(長白山) 곧 우리나라의 백두산을 태백산이라 지칭하고 있다. 그밖에 하남성(河南省) 절천현(浙川縣) 동남 80리에도 태백산이 있고, 절강성(浙江省) 승현(?縣) 서쪽 70리에도 태백산이 있으며, 섬서성(陝西省) 미현(慟縣) 남쪽 양현(洋縣) 경계에도 태백산이 있고, 감숙성(甘肅省) 경양현(慶陽縣) 북쪽 150리에도 태백산이 있다. 이와 같이 태백산이란 이름은 중국지역에만도 특정 산에만 붙여지고 있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여러 개의 산에 붙여지고 있는 보통명사이다. 또한 우리나라에도 태백산이란 이름은 백두산 외에 여러 개가 있다. 예컨대, 강원도 삼척군 장성읍과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경계 곧 황지에 태백산이 있고, 경남 진해 장복산 동쪽에도 있고, 경남 창령 성산면 정령리와 대합면 합리 경계에도 있으며, 경남 합천 대양면 백암리와 초계면 신촌리 경계에도 있고, 경북 영일 지행 읍내 동악산 아래에도 있으며, 충남 당진 당진읍 시곡리와 원당리에 걸쳐 있는 산도 태백산이라 한다(한글학회,{한국 땅이름 큰사전}, 태백산). 이처럼 태백산이란 이름은 어느 한 나라 특정 지역의 특정 산에만 붙여진 고유명사가 아니라 여러 나라 여러 곳의 여러 산에 붙여진 보통명사이다. 따라서 중국 신강성의 천산과 감숙성의 삼위산을 태백산이라 지칭한다는 기록이 있다 하더라도, 이들 산을 무조건 {삼국유사}의 태백산이라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2) {삼국유사} 태백산의 성립요건(특수성) 그러면 {삼국유사}의 태백산(한웅천황이 홍익인간 재세이화한 태백산)은 어느 산인가? 중국 신강성의 천산인가? 아니면 중국 감숙성의 삼위산인가? 아니면 우리나라의 백두산인가? 여기에서 태백산에 대한 판단기준이 요청된다. 곧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어떤 성립요건(특수성)을 지니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한웅천황이 태백산에서 천일·지일·인일 삼신일체(三神一體)의 천도를 깨치시고, 거기에 바탕을 둔 신선도를 베풀었고, 홍익인간 재세이화했다. 거기에서 단군왕검은 조선국을 세웠다. 이를 생각하면 {삼국유사}에서 말하는 태백산은 수도처이며, 天一·地一·人一의 三神사상을 반영하는 천산(天山)이고, 우리민족이 우러러 받드는 성산(聖山)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 천산을 설산 내지 백산(태백산)이라 하고, 설산을 히마리야산, 히마리야산을 곤륜산이라 하였다. 이를 종합하면 {삼국유사}에서 말하는 태백산의 성립요건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천산이다. ?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설산다. ?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곤륜산이다. ?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성산이다. ?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수도처이다. 어느 산이든 이상의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면 그 산을 {삼국유사}의 태백산이라 할 수 있고, 반대로 갖추고 있지 않다면 {삼국유사}의 태백산이라 할 수 없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이하에서 우리나라의 백두산이 {삼국유사}의 태백산임을 논증한다. 3. {삼국유사}의 태백산과 우리나라 백두산의 동일성 1)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천산인데, 우리나라의 백두산도 천산이다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천산이다. 천산은 세계의 중심 내지 지구의 중심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세계지리학회는 인공위성에서 지구를 촬영한 결과 우리나라의 백두산이 지구의 중심에 있다고 하였다(세계일보, 1992. 2. 22. 2면. 說往說來). 그리고 백두산 정상의 천지와 송화·압록·두만의 삼강일지(三江一池)는 강이 흐르는 방향으로 볼 때, 天一(乾方)·地一(坤方)·人一(仁方) 三神一體의 천도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이에 대해 후술함). 그밖에도 백두산이 3층으로 되고 있으며, 백두산을 삼신산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백두산은 천산(天山)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대종교의 {삼일철학 역해종경사부합편(三一哲學 譯解倧經四部合編)}을 보면 "천궁(天宮)은 오직 천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도 있으니 태백산(지금의 백두산) 남북종(南北宗)이 신국(神國)이요, 산상의 신강처(神降處)가 천궁(天宮)이니 태백산은 천산(天山)이며 지금의 백두산이다"고 하여 우리나라의 백두산이 곧 태백산이며 천산이라 하였다. 2)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설산 내지 곤륜산인데, 우리나라의 백두산도 설산 내지 곤륜산이다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설산 내지 곤륜산이다. 그런데 {석가방지(釋迦方志)}와 {석가씨보(釋迦氏譜)} 및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그밖에 여러 백과사전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우리나라의 백두산도 설산 내지 곤륜산이다. 이에 대해서는 본서 제2편과 제3편을 보아주기 바란다. 3)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성산인데, 우리나라의 백두산도 성산이다.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성산(聖山)이다. 성산이므로 거기의 초목과 금수는 모두 희다고 {괄지지}에 기록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백두산을 등반하여 보면 백두산 북쪽의 나무들은 거의 백양목이며 소나무 중에 백송(白松)도 있다. 가을이 되어 산상에서 북쪽의 산밑을 내려다 보면 하얗게 보일 정도이다. 그래서 그곳을 흐르는 강물 이름을 이도백하(二道白河)·두도백하(頭道白河) 등 백하(白河)라 부른다. 또한 백두산 밑에는 흰사슴·흰돼지·흰매들이 지금에도 서식하고 있다. 또한 태백산은 성산이므로 거기에 호랑이·표범·곰·이리가 있으나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사람들도 산에 올으면 더럽힐가 하여 오줌을 눕지 않는다고 {위서} 물길전에 기록되고 있다. 이러한 기록은 태백산이 이웃 민족들에게 지극한 성산(聖山)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몽고족과 만주족 그리고 우리민족은 각각 국가의 건국시원을 백두산에 둠으로써 백두산을 지극한 성산으로 모신다. 이상과 같이 태백산이 성산인데 백두산도 성산이다. 4)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수도처인데, 우리나라의 백두산도 수도처이다. 태백산에서 한웅천황이 천도를 깨치시고 신선도를 베풀었다. 따라서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수도처로서 거기에는 수도에 필요한 자연적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백두산은 수도에 필요한 자연적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상설되고 있다. 5)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천산·설산·곤륜산이다. 이상에서 밝힌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백두산도 천산·설산·곤륜산이었다. 따라서 {삼국유사}의 태백산은 곧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며, 우리나라의 백두산이 곧 {삼국유사}의 태백산이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편찬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태백산 조)에도 "산에 대한 구체적 묘사를 역사적 사실과 비교하면 단군신화에 나타난 태백산은 오늘날의 백두산(白頭山)을 지칭한 것이다"고 하여 {삼국유사}의 태백산이 백두산임을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 중국 신강성의 천산과 감숙성의 삼위산이 일명 태백산이고 수도처이며, 거기에 비록 천산·설산·곤륜산이라는 명칭이 붙고, 또한 거기에 하늘에 제사하는 제천단과 한웅천황을 모신 천황당 그리고 산의 정상에 천지(天池)가 있다 하더라도, 천산·설산·곤륜산 그리고 수도처로서의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지 않은 한 {삼국유사}의 태백산이라 할 수 없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곧 {삼국유사}의 태백산이 중국 신강성의 천산이라는 주장과 감숙성의 삼위산이라는 주장은 부정된다. 4. 한웅천황의 백두산 고행과 신선도의 성립 1) 한웅천황의 백두산 고행 이상과 같이 우리나라의 백두산이 한웅천황이 홍익인간 재세이화한 태백산임을 논증했다. 그러나 한웅천황이 백두산에 왔었다는데 대해 우리민족이 광명을 숭상하기 때문에 태양에 가까운 곳인 백두산 정상에 내려왔다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백두산은 험준하고 연중 눈이 내릴 때가 많기 때문에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 하여 한웅천황이 백두산에 왔었다는 사실을 신화라 하면서 아예 부정하여 버리는 견해가 있다. 전자의 견해이든 후자의 견해이든, 한웅천황 일행의 행동목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꿈속에서 일으키는 것과 같은 무의식적 행동을 제외하면 어떠한 행동이든 인간의 행동에는 유의적 목적이 있다. 그 목적과 행동이 일치되었을 때, 인간은 어떠한 난관이나 괴로움도 극복할 수 있다. 예컨대, 불교의 출가수도승들은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큰 뜻을 품고, 견성(見性)과 해탈(解脫)을 위해서 피나는 고행을 한다. 그들은 기름진 평야에서 농사를 지으며 수도하는 것이 아니라, 험준한 고산암벽 밑 눈보라와 싸워가면서 좌선을 한다. 그들은 진수성찬을 먹으면서 수도하는 것이 아니라, 벽곡(抗穀)을 하고 생식(生食)을 한다. 인간과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초목이나 금수와 대화한다. 그들에게는 여름도 없고 겨울도 없으며, 깨끗한 것도 없고 더러운 것도 없다. 기쁨도 없고 슬픔도 없으며, 행복도 없고 괴로움도 없다. 가진 것도 없고 없는 것도 없다. 한늘이 그들의 집이고 자연이 그들의 재산이다. 암벽의 동굴이 그들의 침실이고, 숲과 나무가 그들의 옷이다. 불교의 출가수도승들은 이와 같이 뼈를 깎고 살을 에는 지난한 고행을 하고, 이를 극복하여 드디어는 대자연과 일체가 되는 대각을 목적으로 한다. 한웅천황 일행이 백두거악에 온 것도 실은 그와 같은 수도고행을 위해서 였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재세이화(在世理化) 홍익인간(弘益人間)의 큰 뜻을 품고 물 좋고 산 좋은 백두거악에 온 것을 보면 그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한웅천황 일행의 백두거악에서의 생활은 폭풍우에 견디고 눈보라와 싸워 이를 극복하는 피나는 고행과 수도생활의 노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신단수 밑에서 천도를 대각하여 천부경과 삼일신고 등 신선도를 설하였으니 그 기념행사가 오늘날 음력 10월 3일의 개천절 행사인 것이다. 이는 마치 석가세존이 설산고행을 하고 보리수 밑에서 대각하여 처음으로 녹야원(鹿野園)에서 다섯 비구들에게 해탈을 설함으로써 불교를 일으켰던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2) 백두산의 수도생활 조건 그러나 이상의 소론을 누가 믿겠는가? 이를 증명하려면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연적 수도생활 조건이 백두산에 갖추어 있어야 한다. 수도생활에 필요한 자연조건이 갖춰 있지 않으면 장기간의 수도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적 수도생활 조건이란 예컨대 천기(天氣)와 지기(地氣)를 풍부히 잘 받을 수 있는 자연조건과 건강을 유지하고 지혜를 명석하게 할 수 있는 자연생 식품의 자생 그리고 겨울에도 목욕재계할 수 있는 온천의 분출, 또한 혹한과 혹서, 폭설과 폭우를 피할 수 있는 자연동굴 등이 있어야 한다. 첫째, 백두산 정상에는 수지영부(水之靈府)이며 무열뇌지(無熱惱池)인 천지(天池)가 있다. 천지는 바다와 같은 산상호수인데 그 북쪽 달문(達門)을 통하여 하루에도 수천만톤의 물이 넘쳐 흐르는 수지영부(水之靈府)로서 물이 파랗게 맑고 차며 백두산 정상에 앉아 천지를 내려다 보면 모든 고통과 번민, 오뇌와 신음이 사그러지는 듯 하니, 천지를 무열뇌지(無熱惱池)라고도 한다. 이러한 산상호수에 달이 비칠 때, 목욕재계하고 산의 정상에 앉아 천지를 눈앞에 보고 그리며 선정에 든다면 모든 번뇌 망상이 사라지고 절로 지혜가 솟아날듯 하니 천지는 수도처로서 그 이상의 적지가 없다고 본다. 둘째, 백두산은 신약 또는 불사약이라 불리는 산삼의 고장이다. {부도지}를 보면 백두산 천지 영주에서 삼근영초(三根靈草)인 산삼이 난다 하였고, 1961년 8월에 백두산 남쪽 산록에서 오래 묵은 산삼을 캤는데, 그 길이는 79.5cm였고, 그 무게는 아홉량 두돈으로 그것은 100여년 이래 최대의 산삼이었다고 한다. 또 백두산에는 산삼씨만 따먹고 사는 인삼조(人蔘鳥)가 있다. 이러한 기록이나 보고들은 명실공히 백두산이 산삼의 고장임을 말한다. 그밖에도 백두산에는 녹용(鹿茸)과 초피(貂皮)와 오엽서실(五葉瑞實)의 잣과 칠색보옥(七色寶玉)의 부인(符印)이 생산되었다. 이와 같이 백두산은 자연생 식품 겸 약품의 원산지이므로 수도처로서 최적지가 된다. 셋째, 백두산에는 겨울에도 목욕재계할 수 있는 백두산 온천과 위장병과 신장병 등 만성병에 효험이 있는 천연 약수천이 있다. 넷째, 백두산의 한 가닥인 묘향산에 단군굴이 있고, 백두산의 관면봉(冠冕峰) 아래에 신선이 수련한다는 얼음굴이 여러 개 있다. 이상과 같이 백두산이 수도처로서의 자연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백두산이 수도처로서의 최적지임을 증명하는 것이며, 둘째, 한웅천황 일행은 수도인으로서 백두산에서 고행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셋째, 백두산이 신선도의 발상지임을 간접적으로 증명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 백두산의 특수성과 삼신일체의 연관성 그렇다면 백두산의 특수성과 신선도는 어떠한 연관성을 지녀야 한다. 이는 마치 산삼과 신선도가 불가분적 연관성을 지니는 것과 같은 격이다. 첫째, 백두산의 삼강일지(三江一池)는 삼신일체(三神一體)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왜냐하면 백두산 정상에는 늘지도 줄지도 않는 약 20만 톤의 물에 바다와 같은 천지가 있고, 거기에서 송화·압록·두만의 3강이 발원하여 흐르는데, 송화강은 천일의 방향인 건방(乾方)으로, 압록강은 지일의 방향인 곤방(坤方)으로, 두만강은 인일의 방향인 인방(仁方)으로 흐르고, 또한 이들 3강은 모두 오른 쪽으로 돌아흘러 지구의 회전방향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둘째, 신선도는 삼신사상(三神思想)을 발생원리로 하는데, 백두산이 삼신산(三神山)이다. 봉래·방장·영주의 총칭을 삼신산이라 하고, 이들 산이 모두 백두산에 있으므로 백두산이 곧 삼신산이다. 또 {태백일사}에 옛날의 삼신산은 곧 태백산이며 지금의 백두산이라 하였다. 안호상 박사 역시 여러가지 전거를 들면서 삼신산을 백두산이라 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본서 제4편에서 상설된다. 셋째, 신선도는 3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백두산이 3층으로 되었다고 하였다. 실제 백두산을 답사하여 보거나 사진을 보아도 3층이다. 또 천지의 좌우에는 금선(金線)·옥장(玉漿)·은류(隱流) 등 세 개의 샘이 있다. 천지의 동북쪽에 인만(麟巒)·봉만(鳳巒)·벽라(碧螺) 등 세 개의 산이 있다. 이와 같이 백두산은 3수와 연관이 깊다. 이상과 같이 백두산의 지리적 특수성이 삼신일체를 그대로 반영하고, 삼신일체 사상에서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이 발원되었다고 할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연역할 수 있다. 1) 백두산은 그 원명이 삼신산 내지 천산(天山)이다. 2) 백두산은 삼신일체 사상의 발원지이다. 3) 백두산은 도·불·유 사상의 발원지이다. 4) 백두산은 한웅천황의 고행성도지이다. 5) 백두산은 산의 조종이며 세계의 중심이다. 그래서 {태백일사} 신시본기에 "한웅천황의 조강(肇降)이 이미 이 산(백두산)에서 있었으며, 또한 이 산은 신주흥왕(神州興王)의 영지(靈地)인 즉 소도제천(蘇塗祭天)의 고속(古俗)은 반드시 이 산에서 시작되었으며, 자고로 한족(桓族)의 숭경(崇敬) 또한 이 산에서 시작되었으니 심상한 것이 아닌 것이다"라고 하였다. 최근(6월 26일) 홍콩의 성도일보(星島日報) 역시 중국관영 신화통신(新華通信)을 인용하여 백두산에서 40기(基)의 고대제단(古代祭壇) 유적과 함께 각종 유물을 발견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이에 대하여 고고학계에서는 새로운 고대문화의 유적이라고 하였다. 이것 역시 백두산이 신선도의 발상지임을 증명하고 소도제천의 고속이 백두산에서 시작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생각하여 볼 때, 신선도가 비록 중앙 아시아의 천산에서 백두산으로 이동되었다 하더라도, 원래의 발상지는 백두산이 아니었던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또한 삼신사상이 우리민족의 민족성과 불가분의 연관성을 맺고 있다고 할 때, 인류역사상 신선사상을 최초로 체계화시킨 민족이 또한 우리민족이며, 우리민족은 상고시대 세계문화의 지도적 위치에 있었고, 동아문화의 창조자라는 안호상 박사의 주장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Ⅵ. 삼신일체의 사상적 접근 天一·地一·人一의 三神一體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느냐의 문제이다. 우선 三神一體를 국역하면 세 가지로 풀이할 수 있다. ? 三神一體는 천일·지일·인일을 하나로 모이면 하나의 개체 또는 생명체가 됨을 의미한다. 즉 삼신일체는 (천일)+(지일)+(인일)=(일체)라는 등식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만유가 天·地·人의 3단원 내지 3원적 계기로 구성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삼신일체을 "하나를 잡으면 셋이 들어있다(집일함삼:執一含三)"고 풀이함이 그 뜻이다. ? 三神一體란 주체는 하나이나 그 작용이 천일(조화)·지일(교화)·인일(치화) 등 셋이라는 뜻이다. 삼신일체을 "주체는 하나이나 그 쓰임이 셋이다(체일용삼;體一用三)"고 풀이함이 그 뜻이다. ? 三神一體는 天·地·人이 그 구조와 성격에 있어서 서로 같거나 비슷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태양계·지구계·인체계의 구조와 성격이 어느 측면에서 서로 비슷하다는 의미이다. 곧 인체계는 天地의 축소판이며 천지는 인체계의 확대임을 의미한다. 三神一體를 이렇게 풀이할 때, 그것은 천태만상의 무궁무진한 묘리를 나타내어 三神一體가 현묘지도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에 "三神一體는 서물(庶物)의 원리가 되어 높고도 크며 불가사의한 현묘한 이치라"하였다. 신채호 역시 "대단군왕검이 이미 三神五帝의 신설(神說)로써 우주의 조직을 설명하고, 그 신설에 의하여 인세 일반의 제도를 정하였다"고 하였다. 이 말은 태양계나 자연계 및 인체계의 구조도 삼신일체의 원리로 구성되어 있고, 상고시대 우리민족의 정치·종교·사회·문화·군사 등의 모든 제도 역시 삼신일체의 원리에 의해서 구성되었다는 뜻이다. 역설하면, 삼신일체의 원리에 의해서 태양계나 자연계 및 인체계 등 대우주의 운행법칙도 설명할 수 있고, 정치·종교·사회·문화·군사 등 상고시대 우리민족의 사회현상도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에 따라 본 항목에서는 삼신일체를 구체적으로 해석하여 신선도의 사상을 밝힌다. 1. 종교사상 첫째, 삼신일체는 만법귀일(萬法歸一)사상이다. 만법귀일이란 모든 현상이나 사물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면 결국 근본이 동일하다는 뜻이다. 삼신일체도 체일용삼(體一用三)사상으로서 하나는 셋으로, 셋은 아홉으로, 아홉은 만유로 파생되는데, 이를 역으로 헤아리면 삼신일체는 만법귀일사상이 된다. 만법귀일 사상을 예를 들어 좀더 자세히 설명하면, 도교·불교·유교·기독교·회교·힌두교 등 모든 종교는 발생연원을 추적해 그 원천으로 되돌아가면 근본이 동일하고, 황인종·백인종·흑인종도 이동경로를 따라 근본을 찾아 원천으로 되돌아가면 조상이 동일하여 같은 동포이며, 지나족·만주족·몽고족·일본족·우리민족도 씨족적 근본을 추적해 원천으로 되돌아가면 조상이 동일한 같은 형제임을 의미한다. 그와 같이 모든 현상이나 사물이 근본으로 되돌아가면 하나가 된다는 만법귀일 사상이 곧 한사상이며 삼신일체사상인 것이다. 들째, 삼신일체는 개벽사상(開闢思想)이다. 삼신일체는 天一·地一·人一의 일체이다. 이 경우 '一'을 인격의 의미로 보면, 삼신일체는 천즉인(天卽人), 인즉지(人卽地)의 의미로서 인간이 우주나 자연과 일체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미개한 인간을 한늘과 같은 신성한 경지와 땅과 같은 자애로운 성격으로 개조하고, 인간 사회를 천국과 같은 낙원으로 개조할 수 있다는 개벽사상이다. 풀어 말하면, 삼신일체는 의식·사상·기술·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인간개벽·민족개벽·사회개벽·세계개벽을 의미한다. 곧 인격완성에 의한 성인군자 양성과 견성성불울 의미하고, 지상선경 또는 불국토 내지 대동세계 건설을 의미한다. 셋째, 삼신일체는 신선사상이다. 삼신일체는 天一·地一·人一의 동일성을 의미하는데, '一'을 능력의 의미로 파악하면, 인간의 능력이 한늘이나 땅의 능력과 같이 될 수도 있고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배우고 닦고 수양하여 최고의 영각을 터득하여 한늘과 땅의 영기와 삼위일체가 되면, 한늘 같이 풍운조화를 일으킬 수도 있고, 땅과 같이 풀이나 나무의 싹을 손바닥에서 트게 하고 자라게 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즉 삼신일체는 인간능력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과 인간 능력의 무한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삼신일체는 신선사상이다. 이는 노자의 도교사상이나 석가의 불교사상과 일치된다. 이렇게 신선도를 이해할 때, 상대비사(세칭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는 바람귀신·비귀신·구름귀신이 아니라 바람과 비와 구름을 자유자재로 일으키고 조정하는 신관(神官)이라 할 수 있으며, 석가·예수·원효·서산·사명·수운·증산 등의 성인들과 도인들에 얽혀있는 여러가지 초인적인 이야기가 허무맹랑한 꾸민 이야기가 아니며, 축지(縮地)와 장풍(掌風)과 사물이동(事物移動)이 가능하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즉 신변자재(身變自在)하고 불로장수(不老長壽)하는 신선의 실재가 허무맹랑한 전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넷째, 삼신일체는 만물동근사상 내지 생명평등사상이다. 만물동근사상(萬物同根思想) 내지 생명평등사상이란 인간·동물·식물 그밖에 일체 만유의 근본을 들여다 보면, 모두가 한 뿌리에서 나와 근본이 같고 평등하다는 사상이다. 이는 노(老)·석(釋)·공(孔)의 도(道)·불(佛)·유(儒) 모두에 공통되는 사상이다. ? 天一·地一·人一의 '一'을 기(氣) 또는 신(神)의 의미로 보면 삼신일체는 인간·동물·식물이 모두 일기(一氣) 또는 일신(一神)의 조화로서 근본이 동일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삼신일체는 만물동근사상이다. ? '一'을 인격의 의미로 보면 삼신일체는 天·地·人이 상하(上下) 또는 존비(尊卑)의 관계가 아니라 수평관계로서 평등하다는 뜻이다. 즉 인간이나 동물 그리고 식물 등 일체 만유가 한늘이나 땅과 같이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삼신일체는 일체 만유의 차별상을 부정하고 존엄성을 긍정하는 생명평등사상이다. 이에 대하여 서구적 관점에서는 어째서 인간과 동물이 평등하느냐 하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인간에게도 동물과 같은 야성이 있고, 동물에게도 인간과 같은 지성이 있다. 즉 인간에게 영이 있고 마음이 있고 지혜가 있고 사랑이 있듯이, 동물에게도 영이 있고 마음이 있고 지혜가 있고 사랑이 있다. 이에 대하여 최근의 과학이 다소 입증하고 있지만 사람이 혹사당하면 괴로워하듯 동물도 혹사당하면 괴로워하고, 인간이 죽음에 임박하면 서러워하듯 동물도 죽음에 임박하면 서러워하며, 인간이 교육을 받으면 더욱 영리하여지듯 동물도 교육을 받으면 더욱 영리하여지고, 인간이 자식을 사랑하듯 동물도 자식을 사랑하며, 인간이 부모에게 효도하듯 동물도 부모에게 효도하는 동물이 있다. IQ가 80이 못되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IQ가 80을 넘는 동물이 있다. 제 자식과 제 부모를 죽이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사경에 이른 제 새끼와 제 어미를 살리는 동물이 있다. 이와 같이 인간과 동물 사이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고, 그 근본은 인간이나 동물이 동일하다. {삼일신고}에 "사람과 만물이 다 같이 세 가지 참함을 받나니, 이는 성품과 목숨과 정기라, 사람은 그것을 온전하게 받으나 만물은 치우치게 받느니라"함이 바로 그러한 이론을 뒷받침한다. 여기에서 생명평등사상 내지 만물동근사상이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성립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생 인류는 동물을 혹사하다가 도살하여 자기의 배를 채운다. 동물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은 폭군이고 전제군주인 것이다. 깊이 반성하여야 할 문제라 할 수 있다. 다섯째, 삼신일체는 유신론(有神論)과 무신론(無神論)을 다 포용하는 유무불이(有無不二)의 사상이다. 일반적으로 종교에서 창조주라 할 때, 창조주는 이 우주가 아닌 다른 세계에 있으면서 초인적 불가사의한 능력으로 인간은 물론 만유와 우주까지도 창조하시고 조화를 부리며 인간 위에 있으면서 인간에게 화와 복을 내리는 최상의 신(神)을 의미한다. 삼신일체의 논리에 의하면 그러한 의미의 신(神)이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삼신일체의 '신(神)'은 天一·地一·人一의 '一'로서 우주의 어디에나 있으면서 만유의 근본이고 만유를 포용하며 만유를 조화·교화·치화하는 신비적인 작용을 의미한다. 마치 서구종교의 창조주와 같은 작용을 한다. 그러나 별개의 세계에 있으면서 만유를 지배하고 창조하는 그러한 의미의 신이 아니다. ? 삼신일체는 天·地·人을 대립적 위계적으로 파악한 표현이 아니라, 일체적 수평적으로 파악한 표현이다. 즉 삼신일체는 신본위의 사상도 아니고, 인간본위의 사상도 아니다. 인간 위에 신이 없고, 인간 밑에 신이 없으며, 신 위에 인간 없고, 신 밑에 인간 없다는 의미이다. 인간이 곧 신이며, 신이 곧 인간이라는 의미이다. 삼신일체는 신인일체(神人一體)의 표현이다. 이와 같은 이유에 의하여 삼신일체의 논리는 절대자로서의 신, 창조자로서의 신, 지배자로서의 신을 부정한다. 즉 삼신일체는 무신론이다. 그러나 한편 삼신일체는 물활론(物活論) 내지 범신론(汎神論)적 일신론(一神論)으로서 유신론(有神論)이다. 물활론이란 일체의 만유에 의식과 생명이 있다는 사상이며, 범신론이란 물활론을 영적 신비적인 차원에서 파악한 사상으로서 태양이든 지구이든 일체의 만유에 영혼이 있다는 사상이다. 삼신일체는 그러한 의미의 물활론 내지 범신론적 일신론이다. 즉, 天一·地一·人一의 '一'을 생명의 의미로 파악하면 삼신일체는 만유에 생명이 있다는 뜻이며, '一'을 하나님의 의미로 파악하면 만유는 모두 하나님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며, 태양계와 지구계와 생명계가 모두 하나님의 이법에 따라 일체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삼신일체란 태양계와 지구계와 생명계가 따로 따로 독립된 생명체이면서 하나님의 이법에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하나의 생명체라는 뜻이다. 즉 전체우주가 거대한 하나의 생명체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인간의 육체를 구성하는 각 기관이 따로 따로 움직여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같이 보이나 중추신경의 지시에 따라 일체를 이루는 것과 같은 격이다. 따라서 삼신일체는 물활론 내지 범신론적 일신론으로서 유신론이다. 여기에서 위에서 밝힌 바를 아울러 생각하면 삼신일체는 유신론과 무신론을 다 포용하는 유무불이의 사상이다. 여섯째, 삼신일체는 순환론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순환론이란 봄·여름·가을·겨울이 돌아가 듯, 시작이 있는 듯 하면서 없고, 끝이 있는 듯 하면서 없으며, 세상만사가 돌고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天一·地一·人一의 '一'을 공간 또는 시간의 의미로 보면, 삼신일체는 천계(天界)·지계(地界)·인계(人界)의 삼계일체(三界一體)를 의미하며, 과거·현재·미래의 삼세일체(三世一體)를 의미한다. 즉 삼신일체는 시간과 공간을 미시적 분석적으로 파악하면 천계·지계·인계가 각각 다르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나, 거시적 통일적으로 파악하면 천계·지계·인계도 연결된 하나의 공간이며, 과거·현재·미래도 연결된 하나의 시간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삼신일체는 시간과 공간에 있어서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무선무후(無先無後) 무두무미(無頭無尾)의 일원사상(一圓思想)이다. {천부경}의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과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 및 만왕만래(萬往萬來)가 이를 의미한다. 이는 시작이 있는 듯 하면서 없고, 끝이 있는 듯 하면서 없으며, 세상만사가 가고 온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삼신일체사상은 불교의 윤회사상과 근본원리를 같이 하는 순환론이다. 이러한 사상을 하나의 형상으로 나타내면, 그것은 만(卍)자가 된다. 오늘날 만(卍)자가 불교의 표상같이 여기고 있으나, 그것은 원래 신선도의 표상이다. 일곱째, 삼신일체는 3원론적 1원론이다. 天一·地一·人一의 '一'을 단원의 의미로 보면, 삼신일체는 양성(天)·음성(地)·중성(人)의 3단원을 모으면 하나의 완성된 체계 내지 생명체가 되고, 이를 나누면 양성·음성·중성의 3단원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은하계·태양계·지구·인체(人體)·원자 등 우주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든 그것이 하나의 완성된 체계이거나 생명체라면, 양성·음성·중성의 3단원으로 구성되었다는 3원론적 1원론이 삼신일체이다. 예컨대, 인체는 머리·몸통·사지의 3단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손가락·발가락이 모두 세 마디로서 3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인체계를 보면 기(氣)·심(心)·신(身) 내지 명(命)·성(性)·정(精)의 3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구도 지각·맨틀·핵의 3단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원자도 양성자·중성자·전자의 3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덟째, 삼신일체는 호혜일체사상이다. 天一·地一·人一의 삼신일체는 3원론적 1원론으로서 어느 쌍방이 대립하게 되면 나머지 1방의 중재와 조정에 의해 화해를 이루게 된다. 따라서 삼신일체는 호혜일체사상이다. 예컨대, 삼신일체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인내천(人乃天)·성속일체(聖俗一體)·물심쌍전(物心雙全)·문무양전(文武兩全)·교정일체(敎政一體)·충효양전(忠孝兩全)·주객일체(主客一體)·자타일여(自他一如)·개전일체(個全一體)·사해동포주의(四海同胞主義)·우리의식(意識)·홍익인간(弘益人間)사상이며, 또한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홉째, 삼신일체는 삼달덕(三達德)을 의미한다. 삼신일체를 인성적인 측면에서 파악하면 천일은 한대적인 성격을, 지일은 열대적인 성격을, 인일은 온대적인 성격을 의미한다. 한대적인 성격은 용덕에 해당되고, 열대적인 성격은 인덕에 해당되며, 온대적인 성격은 지덕에 해당된다. 따라서 삼신일체는 용(勇)·인(仁)·지(智)의 삼달덕(三達德)의 일체를 의미한다. 즉 인간이든 국가이든 사회이든 어느 개체이거나 집단이 건전하려면 용인지의 삼달덕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설하면 삼달덕이 균형을 유지하지 못할 때 그 집단이나 개체는 불안하다는 것이다. 열째, 삼신일체는 무극대도(無極大道)이다. 무극대도란 가이없이 무한히 큰 진리란 뜻이니, 삼신일체의 이법을 고대사회에 적용하면, 그 당시의 정치·종교·교육의 원리를 알 수 있고, 광대무변한 우주의 현상에 적용하면 우주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신일체는 天一·地一·人一의 일체를 의미한다. 이는 태양계·지구계·인체계의 구조가 서로 동일하고, 양성·음성·중성의 3단원으로 구성되어있으며, 그 중심은 강력한 일기(一氣)의 집합체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논리를 확대부연하면 1단원도 다시 3단원으로 구성되어 태양계와 지구계와 인체계가 각각 9단원으로 구성되었음을 의미하고, 나아가서 이 우주도 거시적으로는 3중 구조이지만 미시적으로는 9중 구조로 되었음을 의미하며, 그 중심은 강력한 일기의 집합체임을 의미한다. 그래서 동양종교에서는 우주를 말할 때, 삼천세계(三天世界) 또는 구천세계(九天世界)라고 말한다. 그러한 이론을 아는 대로 실제에 적용시키면, 인체에 삼천세계(三天世界)의 정기를 받은 명(命)·성(性)·정(精) 삼진(三眞)이 있고, 구천세계(九天世界)의 정기를 받는 구규(九竅)와 구단(九丹)이 있다. 또한 지구도 지각·맨틀·핵의 3중 구조로 되고 있는가 하면, 지구상의 인류도 크게는 백인종·흑인종·황인종의 3대 인종으로 나뉘고, 고대의 우리민족은 인류를 구이(九夷)로, 지구의 온 땅을 구주(九州)로 나누기도 하였다. 또한 태양계에도 실제 9개의 혹성이 있다. 이와 같이 삼신일체의 이법(理法)이 너무나 오묘하여 과학적으로도 사실과 부합일치된다. 그래서 삼신일체는 무극대도(無極大道)인 것이다. 2. 정치사상 삼신일체의 정치학적 해석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상고시대는 교정일치(敎政一致) 내지 제정일치(祭政一致) 사회였다. 즉, 종교지도자가 정치지도자였고, 종교체제가 정치체제였으며, 종교행사가 정치행사였고, 종교원리가 정치원리였으며, 종교영역이 정치영역이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원칙에 의해서 삼신일체의 원리를 정치에 적용시켜 상고시대 우리민족사회의 정치적 성격과 형태를 알아보기로 한다. 첫째, 삼신일체는 만민일체 내지 세계동포주의 사상이다. 만민일체(萬民一體) 사상이란 백인종·흑인종·황인종의 차별이 없고 평등하며, 온 인류를 일체로 보는 사상이다. "제1편 Ⅲ의 1"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天은 건(乾), 地는 곤(坤), 人은 인(仁)의 뜻을 지니고 있으므로 [一]을 기온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하면 天一은 한대를, 地一은 열대를, 人一은 온대를 의미하고, [一]을 인종적인 측면에서 파악하면 天一은 한대인종을, 地一은 열대인종을, 人一은 온대인종을 의미한다. 즉, 天一·地一·人一의 삼신일체는 인종적인 측면에서는 백인종·흑인종·황인종의 일체 곧 만민일체를 의미한다. 또한 모든 생명체는 天一·地一·人一의 작용에 의해 태어난다. 그러므로 삼신은 만민의 조상이 되는 것이며, 만민은 동포관계이고 형제관계가 된다. 곧 삼신일체사상은 세계동포주의 내지 세계형제주의사상이기도 하다. 그러한 유습이 지금도 우리사회에 남아있으니 동성동본 끼리의 혼인을 금하고, 가급적 인연이 먼 타성 끼리의 혼인을 사회관습적으로 권장하는 것이나, 가까운 이웃 끼리 사돈을 맺음보다도 가급적 먼 거리와 사돈을 맺도록 권장하는 풍습이 바로 만민일체의 평등사상 내지 세계동포주의를 지향하였던 데서 나온 유습이 아니었던가 한다. 그러한 유습이 삼국시대 이후 많이 사라져 근세조선에 와서 유교의 영향에 의하여 다소 부활되었으나 삼국시대 이전 상고시대로 올라갈 수록 더욱 강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둘째, 삼신일체는 최대의 인권존중사상이다. 삼신일체는 天一·地一·人一의 일체이다. 이는 한늘과 땅과 사람이 일체라는 뜻으로 사람을 한늘과 같이 섬기고 땅과 같이 소중히 여기라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한늘은 아버지에, 땅은 어머니에 비유되기도 하므로 삼신일체는 사람 섬기기를 아버지 섬기듯 하고, 어머니 모시듯 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삼신일체는 최대의 인권존중사상이다. 셋째, 삼신일체는 인간평등사상이다. 天一·地一·人一의 '一'을 인격적인 측면에서 파악하면 삼신일체는 신분의 상(天)·중(人)·하(地)의 일체를 의미한다. 즉. 삼신일체는 신분의 상하·노사·귀천·장유·남녀의 차별이 없는 일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삼신일체는 인간평등사상이다. 그래서 삼국시대 초까지만 하여도 우리민족사회에는 여성을 극히 존중하였다고 한다. 이는 신라시대 선덕·진덕·진성 등 여성으로서 왕위에 오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넷째, 삼신일체는 국민전체의 합의제도(合意制度)이다. 天一·地一·人一의 '一'을 의견의 의미로 보면 삼신일체는 天·地·人의 의견일치를 의미한다. 즉, 上·中·下의 의견일치, 정부·국민·개인의 의견일치, 경제인·교육자·정치인의 의견일치 등 전체 국민의 의견일치를 의미한다. 다수결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 전원일치의 합의제도를 의미한다. {단군세기}를 보면 단군왕검이 천제(天帝)가 된 것도 구한(九桓:국민전체)의 추대에 의하여 되었으며, 고구려의 제가평의(諸加評議), 백제의 국상회의(國相會議), 신라의 화백제도(和白制度)가 모두 전원일치의 합의제도였다. 다섯째, 삼신일체는 상고시대 우리 민족의 정치체제가 3권분립 합의제도였음을 의미한다. 3권분립 합의제도란 입법·사법·행정이 독립적으로 업무를 집행하지만 업무의 결정은 3권의 합의에 의하여 결정함을 의미한다. 삼신일체를 기능적인 측면에서 파악하면 天一은 조화의 작용을, 地一은 교화의 작용을, 人一은 치화의 작용을 의미한다. 이를 정치나 법에 적용시키면, 조화는 제정 즉 입법에, 교화는 교도 즉 사법에, 치화는 정치 즉 행정에 해당된다. 일체(一體)는 의견의 일치를 의미한다. 따라서 삼신일체는 3권분립 합의제도가 된다. 이러한 제도는 현대의 3권분립제도 보다도 더욱 민주적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증거의 문제는 본서의 원본을 참고해 주기 바란다. 여섯째, 삼신일체는 상고시대 국토경영원리가 일국삼체제 연립공화정(一國三體制 聯立共和政)이었음을 의미한다. 일국삼체제 연립공화정이란 1국을 3분하여 주권·국민·영토의 독립을 인정하고, 거기에 수도와 통치자가 각각 따로 있어 정치함을 의미하나, 중대한 업무의 결정이나 시행은 3왕의 합의에 의하지만 중앙의 대왕이 중심이 되고, 좌우의 부왕은 보좌역이 되는 그러한 정치체제를 편의상 지칭함이다. 삼신일체는 그러한 의미의 정치체제를 뜻하기도 한다. 즉 한늘과 땅은 인간에게 은혜를 베풀고 인간은 그 은혜를 받는다. 그러므로 이 경우 인간은 주체가 되고, 한늘과 땅은 보좌역이 된다. 이를 정치에 적용시키면, 人一은 太一이 되어 대왕격이 되고, 天一과 地一은 부왕격이 된다. 그러므로 삼신일체는 일국삼체제 연립공화정이 된다. 신채호 역시 {조선상고사}에서 고조선의 국토경영원리가 일국삼체제였다고 한다. 즉 단군왕검이 이미 삼신오제(三神五帝)의 신설(神說)로써 우주의 조직을 설명하고, 그 신설에 의해서 인세 일반의 제도를 정하였으니, 신한과 말한과 불한의 3한(三韓)을 세워 대단군이 신한이 되니, 신한은 곧 대왕이요, 말한과 불한은 곧 좌우의 양부왕(兩副王)이니 신한을 협조하는 자더라. 한(韓)은 국명이 아니라 왕(王)이란 뜻이니, 삼한은 고조선을 분통한 3대왕이며, 고조선은 3한이 분통한 3대지방이라 하였다. 일곱째, 삼신일체는 상고시대 우리민족의 생활원리였다. 삼신일체는 한편 성속일체(聖俗一體) 사상이기도 하다. 성속일체는 종교와 세속의 일체를 의미한다. 종교인이 세속인이고 세속인이 종교인이며, 교당이 가정이고 가정이 교당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가정마다 삼성(三聖)을 모시는 선반(仙盤)이 있었고 제사를 올렸으며, 나아가 마을에서도, 관아에서도, 조정에서도 제사를 올렸다. 또한 삼신일체의 원리가 그대로 사회에 반영되어 인명도 성(姓)과 이름의 세 글자, 가족구조에 있어서 조부모·부모·자녀의 삼대동거가족구조(三代同居家族構造), 혼인에 있어서 신랑댁·신부댁·중매의 삼자합의제도(三者合意制度), 식사에 있어서 밥·국·찬의 불가분적 삼위일체(三位一體)관계, 일일삼식제도(一日三食制度), 제사 때의 3헌·3헌관·3배, 신분에 있어서 군·사·부 삼위일체(三位一體), 부· 모·자의 삼위일체(三位一體), 글을 쓸 때도 서론·본론·결론의 3단계, 오락을 즐길 때도 노래·춤·악기(북과 장구)의 삼위일체 등 이러한 것은 모두 삼신일체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삼신일체의 원리에서 음양오행사상이 발원되는데, 우리의 식사풍속에 오행을 상징하는 오곡밥과 오합주가 있고, 한약을 제조할 때도 음양오행의 원리에 의하며,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활용하는 역법도 일월화수목금토(日月火水木金土)의 음양오행으로 되어있다. 이를 보면 역법 역시 삼신일체의 원리에서 발원한 우리민족의 소산이라 추정할 수 있고, 중국이나 서구소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태백일사} 마한세가를 보아도 한웅조 시대의 자부선생이 칠회제신지역(七回祭神之曆)을 지었다 하였고, 한웅천황이 1년을 365일 5시간 48분 46초로 하여 역법을 만들었다 하고, 이것을 삼신일체의 상존지유법(上尊之遺法)이라 하였다. 이를 보면 역법 역시 우리민족에 의해서 창안된 신선도의 유법이라 추정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이론이 전개됨을 볼 때, 天一·地一·人一의 삼신일체는 서물(庶物)의 원리로서 크고도 넓고 깊어 그 진리를 모두 파헤치기 어렵다. 과거에도 진리요 현재에도 진리이며 미래에도 진리일 것임에 틀림없다. Ⅶ. 서구종교와 신선도와 세계주의 1. 신선도와 서구종교의 비교 인류사회에 정치·종교·교육이 있은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들 분야는 모두 인류의 복지와 평화를 위하여 봉사한다고 한다. 그러나 인류사회는 날이 갈 수록 더욱 이기적이고 호전적이며 포악해지고 있으니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인구의 증가와 사회의 조밀화 그리고 자원의 고갈과 정치에도 큰 원인이 있겠지만 그 보다도 근본적으로 종교에 더 큰 원인이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종교를 신앙과 교육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인간의 행동은 선행이든 악행이든 모두 의식과 사고의 지배를 받고, 의식과 사고는 신앙과 교육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행동은 종교가 지배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민족의 신선도와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세력을 갖고 있는 서구종교(기독교와 회교)의 기본사상을 비교하면서 사회악의 근본적 원인을 규명하고, 신선도가 참다운 평화사상임을 논증코자 한다. 이 문제는 다가오는 21세기의 세계평화를 위하여 가장 중요한 문제인 만큼 기독교 측과 회교 측은 널리 이해하여 주기 바란다. 첫째, 서구종교의 생명불평등사상에 의하면 약육강식(弱肉强食)이 당연지리(當然之理)라는 이론이 성립된다. 그러나 신선도의 생명평등사상에 의하면 만물이 공존공영하는 평화사상이 성립된다. 서구종교의 바이블 구약(기독교와 회교가 동일함)을 보면 제일 먼저 창세기가 나온다. 창세기는 서구종교의 기본사상인 창조론을 다루고 있다. 창조론이란 창조주 여호와(알라)에 의하여 인간과 동물과 식물 그밖에 만유가 창조되었다는 서구종교의 우주관이다. 그러므로 서구종교의 모든 사상은 창조론의 논리대로 전개되고 창조론이 바탕이 된다. 그러면 창조론은 어떠한 사상인가? 창조론에 의하면 제일 상위에 여호와(알라)가 있고, 그 하위에 인간이 있으며, 인간 밑에 동물이 있고, 동물 밑에 식물, 식물 밑에 광물과 토양이 있다. 그래서 창조론에 의하면 창조주 여호와(알라는 지금부터 생략함)와 피조물 인간과 동물 그리고 식물의 수직적 위계관계와 아울러 생명불평등이론이 성립된다. 그러한 생명불평등이론에 의하면, 창조주에 대한 인간의 복종, 동물에 대한 인간의 지배는 자연법칙이며 창조주의 섭리로서 조금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게 된다. 또한 그러한 이론을 확대 부연하면 약자에 대한 강자의 지배, 약한 민족에 대한 강한 민족의 지배, 미개민족에 대한 개화민족의 지배도 자연법칙이며, 창조주의 섭리라는 이론이 성립되고 당연한 처사로 받아들이게 된다. 즉 인간사회에서의 약육강식이 당연지사(當然之事)라는 패권주의이론(覇權主義理論)이 성립된다. 그래서 서구종교를 신봉하는 사회에서는 자연보호를 외치면서 자연을 예사로 파괴하고, 동물애호를 강조하면서 동물을 아무런 죄없이 도살하여 포식한다. 인권옹호를 외치면서 타민족의 인권을 무참히 유린하였고, 사해동포주의를 외치면서 타민족을 무력으로 식민지화하여 착취를 지능적으로 하여왔다. 그러고서도 창조주 여호와 앞에 조금도 죄책감을 느끼는 일이 없었다. 그러므로 창조론과 생명불평등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서구종교의 교리에 의하면 인간사회의 평화란 기대하기 어렵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이에 반하여 신선도는 그 발생학적 기본원리가 天一·地一·人一의 삼신일체로서 그것은 곧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 사이에 차별적 위계관계가 없는 만물평등사상이며 생명평등사상이다. 그러므로 동물을 무고히 죽인다든가, 약한 사람이나 약한 민족 또는 미개민족이라 하여 무고히 지배한다든가, 그 재산을 어떤 수단에 의하여 무고히 착취하였다면, 엄숙한 종교적 심판을 받게 된다. 다시 말하면 강자와 약자, 강한 민족과 약한 민족, 개화민족과 미개민족, 부국과 빈국 사이에 약육강식이나 지배복종의 논리가 성립되지 아니하고 일체관계가 성립된다. 따라서 신선도는 어떤 개인이나 어떤 민족과도 더불어 공존공영하는 평화사상이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둘째, 서구종교의 2원론이 대립적 투쟁적이라면, 신선도의 3원론적 1원론은 호혜적 "우리의식 또는 하나의식"으로서 평화적이다. 서구종교의 창조설에 의하면, 시작(처음)이 있고 끝(마침)이 있으므로, 새 것이 있고 묵은 것이 있어, 좋은 것과 나쁜 것, 선과 악, 영과 육의 2원적 구조로 사물을 파악하게 되고, 이들 관계를 2원적 상대적 대립관계로 파악하게 된다. 그래서 나와 너, 자민족과 타민족, 자국과 타국, 자종교와 타종교, 개인주의와 전체주의, 유신론과 무신론,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보수와 혁신의 관계를 대립적 경쟁적 투쟁관계로 파악하게 된다. 또한, 이들 사이의 대립이나 갈등을 자기의 생존을 위한 하나의 당연한 수단으로 본다. 즉, 2원론은 정·반·합(正·反·合)의 논리에 따라 이 사회를 경쟁과 투쟁과 합의의 반복순환으로 본다. 그래서 서구종교국가인 기독교국가와 회교국가들은 평화를 주장하면서 칼을 갈고, 화해를 주장하면서 음모를 꾸민다. 이와 반대로, 신선도는 3원론적 1원론이다. 3원론에 의하면 어느 쌍방이 대립하게 되면 나머지 일방이 조정하거나 중재하게 되는가 하면, 서로 견제하여 평화와 화목을 유지하게 된다. 예컨대, 가정은 아버지·어머니·자녀의 삼단원으로 구성되고 있다. 여기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불화는 자녀가 화해를 돕고, 아버지와 자녀 사이의 불화는 어머니가, 어머니와 자녀 사이의 불화는 아버지가 화해를 도와 가정의 평화와 화목을 유지하게 된다. 자연현상을 예로 들면, 사람의 인체계는 기(氣)·심(心)·신(身)의 삼방(三房)으로 되고 있는데, 기·심·신이 각각 제 기능을 다할 때, 인간은 건강을 유지하게 된다. 만약 기의 공급이 차단되거나 그 회전에 장애가 생긴다면, 인간은 질식하게 되거나 병을 앓게 되고, 마찬가지로 심(心)과 신(身) 가운데 어느 하나에 이상이 생긴다면 인간은 정신이상자가 되거나 식물인간이 되고, 아니면 병들어 죽게 된다. 하나의 예를 더 들면,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 그리고 전자의 3단원으로 구성되고 있는데, 전자의 회전에 의하여 양성자와 중성자가 핵을 이루어 안정을 유지하게 된다. 만약 전자가 분리된다면, 양성자와 중성자도 분리되어 원자는 파괴되고 만다. 마찬가지로 양성자와 중성자 가운데 어느 하나가 분리된다면 원자는 파괴되고 만다. 이와 같이 만유는 삼원적이고 각각 제 기능을 원만히 다할 때 일체관계를 이루게 된다. 그와 같이 정치·종교·교육도 삼단원으로 구성되고 각각 제 역할을 다할 때 일체가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치가 입법·사법·행정으로 분리독립되어 각각 제 역할을 원만히 수행하면서도 서로 유대를 이루어 일체가 되어야 하고, 교육도 지(智)·덕(德)·체(體) 또는 지(知)·정(情)·의(意)의 삼단원으로 나뉘어 각각 제 역할을 원만히 수행하면서도 서로 유대를 이루어 일체가 되어야 하며, 종교도 도(道)·불(佛)·유(儒) 삼교로 나뉘어 각각 제 역할을 원만히 수행하면서도 서로 유대를 이루어 일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 것이 네 것이고, 너희 고통이 내 고통이라는 자타일여(自他一如)·주객일체(主客一體)라는 "우리의식 내지 하나의식"이 형성되어 나와 너, 자민족과 타민족, 자국과 타국, 자종교와 타종교, 개인주의와 전체주의, 유신론과 무신론,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보수와 혁신의 관계를 대립적 경쟁적 투쟁관계가 아니라, 호혜적 일체관계로 파악하여 개인사회는 물론 민족사회와 인류사회의 분쟁을 해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인류사회의 보수와 혁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기독교와 회교, 구교와 신교, 백인과 흑인의 대립과 갈등을 해소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의 3원적 구조를 인정해야 하고 사회가 3원적 구조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셋째, 서구종교의 유일신 신앙이 종교분쟁 내지 국제분쟁의 원인이라면, 신선도의 유무불이(有無不二)의 신관은 평화적이다. 유일신 신앙이란 신이 하나만 있고 그 신만을 믿으라는 뜻이 아니라,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의 신만을 믿으라는 뜻이다. 서구종교에서 히브리어 Eloah를 번역하면 영어로는 God인데 우리 말로 하나님이라 국역함으로써 유일신 신앙이 하나님 신앙같이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에는 "하나님들"이라는 복수어가 없다. 그러나 Eloah(신)에는 Elohim(신들)이라는 복수어가 있고, God(신)에도 Gods(신들)라는 복수어가 있다. 또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6년 10월 23일 바티칸에서 "생명의 기원과 진화"를 주제로 총회를 열고 있던 평신도 단체 "교황청 과학아카데미"에 메시지를 보내어 "다원의 진화론이 단순한 가설 이상이라며, 진화론이 카톨릭 교의에 모순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이어서 "인간의 육체는 진화해도 영혼은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강조했다. 이는 신에 의한 인간육체의 창조를 부정하는 것으로 카톨릭측에서도 창조주의 존재를 반은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여호와께서 시나이산에서 모세에게 내렸다고 하는 10계명을 보아도 유일신 신앙이 하나님 신앙이 아님을 잘 알 수 있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 너는 나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한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하느님)인 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위의 내용을 검토해 보면 '너'라 함은 애굽땅의 종이 되었던 민족으로 유태민족을 가리키고, 여호와는 애굽땅에서 유태민족을 인도해 낸 신이다. '하나님'은 영어의 "God 또는 Gods", 히브리어의 "Elohim 또는 Eloah"의 우리말 번역이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은 유태민족의 민족신을 가리키고, 순수한 하나님을 의미하지 않는다. 곧 여호와 역시 피조물임을 의미한다. 또 "위로 한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이라 함은 여호와 외에 다른 신 또는 다른 민족의 신이 많음을 의미한다. 또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함은 신이 하나만 있고 그 신만을 섬기라는 뜻이 아니라 여러 신들 또는 다른 민족의 신들 가운데 유태민족은 유태민족의 여호와신 하나만을 섬기라는 뜻이다. 이상을 종합적으로 고찰하면 유태민족은 많은 신들과 많은 종교 가운데 유태민족의 신과 유태민족의 종교만을 믿고 다른 민족의 신과 다른 민족의 종교를 믿어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일신 신앙인 것이다. 그래서 유태민족은 다른 민족의 신과 다른 민족의 종교를 절대 신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 민족의 신인 여호와와 제 민족의 종교인 유태교만을 신앙한다. 이를 다른 민족의 입장에서 해석하면 어느 민족이든 제 민족의 신과 제 민족의 종교만을 신앙하고 다른 민족의 신과 다른 민족의 종교를 신앙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뜻이다. 예컨대, 우리민족은 우리민족의 신인 하나님과 한인·한웅·한검의 국조만을 숭배하고, 다른 민족의 신과 종교인, 여호와와 기독교, 석가와 불교, 공자와 유교, 노자와 도교, 천조대신과 천리교, 알라와 회교 등을 숭배함은 오히려 기독교의 10계명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목자들은 10계명에 대한 서구인들의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크나큰 과오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서구국가는 한때 제국주의 국가들로서 식민지를 지배하고 통치해야만 했다. 식민지를 용이하게 지배하고 통치하기 위해서는 그 민족의식을 해이시켜야 하며, 민족의식을 해이시키기 위해서는 그 주체사상을 말살시켜야 하고, 주체사상을 말살시키기 위해서는 그 민족의 신앙을 부정해야 하며, 신앙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그 민족의 신앙대상인 민족신을 부정해야 한다. 그런데 기독교의 10계명에 의하면 여호와신만을 인정하고 다른 민족의 신을 전적으로 부정하게 된다. 그래서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10계명을 고의적으로 제 민족의 입장에서 제 민족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여 식민지 지배수단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이 점을 한국의 목자들은 깊이 통찰하여 10계명을 한국인의 입장에서 새로이 해석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신명기 13장 6절에서 10절까지를 보면 "네 동복 형제나 네 자녀나 네 품의 아내나 너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가 가만히 너를 꾀어 이르기를 너와 네 열조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 곧 네 사방에 둘러 있는 민족 혹 네게서 가깝든지 네게서 멀든지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있는 민족의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할지라도 너는 그를 쫓지 말며 듣지 말며 궁휼리 보지 말며 애석히 여기지 말며 덮어 숨기지 말고 너는 용서없이 그를 죽이되 죽일 때에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 그는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너를 꾀어 떠나게 하려 한 자니 너는 돌로 쳐 죽이라"하여 다른 민족의 신을 믿자 할 때 사람까지 죽이라 하고 있다. 더욱이 자기의 아내와 자녀와 형제와 친구까지도 가혹하게 돌로 쳐서 죽이라 하고 있다. 이는 10계명의 유일신 신앙을 더욱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 유태민족은 다른 민족의 신과 종교를 절대 믿지 않고 총단합을 이루게 된다. 그러면 어째서 유태민족은 여호와신만을 믿고 유태교만을 믿으라 강요하고 있는가? 그 성립배경을 잠깐 살펴보기로 한다. 유태민족은 원래 샘계통의 히브리 민족으로 단일 민족이었으나 B.C. 17세기 이후 유태와 이스라엘로 갈리고, 신앙에 있어서도 여호와(JHVH 또는 YHVH)와 엘로힘(Elohim) 등 12 지파로 분열되어 동족상잔을 벌리게 되었다. 그 원인이 신앙의 분열에 있다고 파악한 모세는 몰록신·그모스신·네르갈신·아드람멜렉신과 아남멜렉신 등 많은 신들 가운데 교세가 가장 강한 여호와와 엘로힘을 하나로 묶어 오로지 여호와신만을 섬기도록 10계명에 정하고 그 밖의 다른 민족의 신을 섬기는 자에게 삼 사대까지 벌을 준다고 강력한 벌칙까지 규정하게 됐던 것이다. 즉, 본 계명은 이스라엘 민족의 분열을 방지하고 총단합을 위해 만들어진 계명으로 다른 민족의 신과 신앙을 절대 갖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규정인 것이다. 그래서 유태민족은 총단합하고 애족적 애국적이다. 그러나 10계명 제작의 근본정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문화풍토가 다른 이질사회 또는 다종교 사회에서 그러한 계명을 맹목적으로 실행에 옮길 경우 어떻게 되겠는가? 곧 다른 문화와 사상을 부정하게 되고 다른 종교와 마찰을 가져오게 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한 예로서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을 보면 그들은 자기 조상 섬기는 것도 우상숭배라 하여 배격하며, 다른 종교를 모함하고 공격한다. 또한 기독교와 회교는 서로 종교분쟁 내지 종교전쟁을 일으키고, 다른 민족의 문화와 역사까지 파괴했던 것이다. 따라서 서구종교는 기독교든 회교든 10계명의 근본정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표현 그대로 믿을 경우 단일종교 사회에서는 전체민족의 총단합을 위해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2개 또는 그 이상의 다종교 사회 또는 문화풍토가 다른 사회에서는 민족의 분열을 조장하고 평화의 장애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에 반하여 신선도는 유신론과 무신론을 모두 포용하는 유무불이(有無不二)의 사상이다. 이는 유와 무, 생과 사, 흑과 백, 선과 악을 초월하는 사상으로서 천당과 지옥을 초월하는가 하면, 내 종교와 남의 종교를 초월하고, 내 것과 남의 것을 초월하며, 소유와 무소유를 초월한다. 여기에 대립이나 갈등 및 전쟁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신선도는 평화사상인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민족이 타민족을 먼저 침략한 역사를 갖지 못하였고, 항상 타민족으로부터 침략만을 당한 것도 그러한 사상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넷째, 서구종교의 천당지옥설은 인간의 선행을 유도하는 계기도 되지만 사유를 제한하고 이기주의적인 인간을 만든다. 그러나 신선도의 삼신일체사상은 인간의 사유를 무한히 넓게 하고, 원만한 인격체를 만든다. 인간은 크게 보면 정신과 육체로 되고 있어 영원한 이상세계를 꿈꾸는가 하면, 무한한 관능적 욕구도 채우려 한다. 그러므로 서구종교에 있어서 사후 극락세계인 천당은 인간의 이상적 욕구의 산물이며, 지옥은 저주와 공포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육체를 저주하고 금욕생활을 하게 한다. 동시에 원죄의식을 심어주어 회개하게 하고, 자아를 비판하게 한다. 그러나 천당과 지옥을 체험한 사람도 없고 가 본 사람도 없으며 눈으로 본 사람도 없다. 실증사학적으로 볼 때, 비과학적 하나의 가설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소위 성직자라는 사람들이 마치 가본 듯이 맹목적 신앙을 강요하고, 공포심을 조장시킨다. 인간은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곧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고 사랑과 은혜를 받기 위함이다. 여기에서 진실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은 사유에 제한을 받게 되고 자기중심적 이기주의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된다. 더욱이 천당의 무한한 복락과 영광은 생시의 자그마한 선행에 대한 보답이며, 지옥의 혹독한 괴로움은 생시의 자그마한 잘못에 대한 응징이다. 이는 마치 자그마한 자본을 들여 큰 이익을 얻는 상행위와 같다. 그러므로 천당 지옥설은 인간으로 하여금 선행을 하게 하는 좋은 계기도 되지만, 타산적 이기주의적인 인간을 만든다는 모순을 지니고 이다. 신선도의 天一·地一·人一의 삼신일체는 천계(天界)·지계(地界)·인계(人界)의 삼계일체관(三界一體觀)이기도 하다. 삼계일체관은 천당과 지옥과 인간세상을 다르게 보지 않고 연결된 하나의 공간으로 본다. 따라서 이 세상이 잘 이화되면 그것이 곧 천국이고, 잘 못되면 지옥으로서 지상선경(지상천국) 건설을 목적으로 한다. 즉,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건설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에서 정치·종교·교육이 모두 성인군자 양성을 목적으로 하게 되고 그와 같이 교육하게 됨으로 사회는 자연히 안정되고 원만한 인격체를 만들게 된다. 다섯째, 서구종교의 신인차별관(神人差別觀)에 의하면 대철인이나 대성인이 출현될 수 없으나, 신선도의 신인일체관(神人一體觀)에 의하면 천인합일(天人合一)의 대철인이나 대성인이 출현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서구종교의 신관은 인간 위에 여호와(창조주)가 있고, 여호와 밑에 인간이 있다는 신인상하(神人上下)의 차별 사상으로서 숭배의 대상이 여호와이다. 즉, 인간은 여호와의 하위에 존재하고, 여호와에 예속되어 있는 존재이며, 여호와보다 하잘 것 없는 존재이다. 인간의 괴로움과 즐거움도, 잘되고 못됨도 오로지 여호와의 의사에 의하여 결정되며, 인간이 태어나고 자라고 수양하여 성인군자가 되는 것도 오로지 여호와의 은총에 의한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서구종교의 신관에 의하면 인간의 활동과 사유도 여호와가 부여한 일정한 범위(예컨대, 바이블)를 벗어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활동과 사유가 여호와와 대등하게 된다거나 여호와를 뛰어넘을 수 없다. 그것은 상상할 수도 없고 여호와에게 크나 큰 죄악이 된다. 따라서 서구종교의 신인차별관(神人差別觀)에 의하면 여호와와 대등한 천인합일의 대철인이나 대성인이 출현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반면에 신선도는 신인일체(神人一體) 사상으로서 숭배의 대상이 없다. 신본위 사상도 아니고 인간본위 사상도 아니다. 그렇다고 신과 인간이 대등한 1대1의 2원론적 상대론도 아니다. 신과 인간이 둘이 아닌 신즉인(神卽人) 인즉신(人卽神)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의 사유는 제한이 없고 무한히 광활하게 된다. 그러므로 신선도의 이론에 의하면 자신의 수양과 노력에 따라 우주와 하나가 되는 천인합일의 대철인이나 대성인이 출현될 수 있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여섯째, 서구종교는 발생학적 배경을 민족에 둠으로써 국지적이고 배타적이라면, 신선도는 발생학적 배경을 온 인류에 둠으로써 보편적이고 포용적이다. 예컨대, 기독교의 바이블 구약 창세기 제28장 13절을 보면,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희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하였고, 15절을 보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하였으며, 출애굽기 제3장 6절을 보면,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祖上)의 하나님이니 하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하였다. 또 출애굽기 제20장 2절과 3절을 보면, "나는 너를 애굽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이며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이고 야곱은 이삭의 둘째 아들이다. 그리고 너라 함은 이스라엘 민족을 말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숭배대상인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민족신이다. 또한 예레미야 44장 7절, 11절, 25절에도 분명히 "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여 여호와는 이스라엘 민족의 민족신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어디까지나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이스라엘의 민족종교이다. 기독교는 이스라엘 민족의 민족종교이므로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 또는 세계의 중심 민족이라 극찬하게 되고, 또한 10계명을 보면 같은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는 서로 인격을 존중하고 애국적이며 효성스럽다. 더욱이 살인·강도·절도·탐욕·간음과 거짓말도 못하게 한다. 그러나 여호와를 배신할 경우, 그것은 곧 이스라엘 민족을 배반하는 것이 됨으로써 누구든지 살육의 대상이 되며, 이스라엘 민족의 이익과 배치될 때 무엇이나 파괴와 투쟁의 대상이 된다. 예컨대, 신명기 2장 33절에서 36절을 보면, "야하스에서 싸울 때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우리에게 붙이시매 우리가 그와 그들과 그 모든 백성들을 쳤고 그 때에 우리가 그 모든 성읍을 취하고 그 각 성읍을 그 남녀와 유아와 함께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진멸하였고 오직 그 육축과 성읍에서 탈취한 것은 우리의 소유로 하였으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모든 땅을 우리에게 붙이심으로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과 골짜기 가운데 있는 성읍으로부터 길르앗에 까지 우리가 모든 높은 성읍을 취하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느니라"하여 인명을 살상하고 성읍과 육축과 재물과 땅까지 탈취한 이야기, 그밖에도 예컨대, 신명기 1장 4절, 3장 3절에서 4절, 6절에서 8절, 13장 6절에서 10절 등을 보면 살인행위들로 가득 차 있고, 민수기 31장 7절에서 11절, 여호수아 8장 1절에서 2절, 15절에서 19절, 22절에서 25절, 29절을 보면, 살인과 탈취행위들로 가득 하다. 이와 같이 기독교는 유태민족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파악하여 싫으면 이를 모두 악(惡)이라 하여 징계하고 있으니 기독교는 민족적 국지적 배타적 파괴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에 대하여 기독교 측은 구약은 그러하나 신약은 그렇지 않다고 변명할 것이다. 그러나 신약 역시 구약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현재에도 엄연히 신구약을 한책으로 묶어 신자들에게 가르치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신약성경} 누가복음 19장 27절에도 예수께서 "나의 왕됨을 원치 아니하면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이상과 같은 비판을 면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나 신선도는 한대민족·열대민족·온대민족 등 온 인류에 발생학적 배경을 둠으로써 어떤 민족도 다 포용하고, 어떠한 것도 다 사랑하여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신선도의 경전에는 일절 탈취·파괴·살인 등의 행위를 조장하는 내용이 없고, 심지어 그러한 행위를 할 경우,『참전계경』제306사에서 제320사를 보면 그만한 재앙을 받는다 하여 악행을 절대 금하고 있다. 또한 신선도의 경전에는 특정 국가의 국명이나 특정 인명도 일체 등장하지 아니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민족은 다른 민족을 먼저 침략하여 본 경험마저 없고 어떠한 민족과도 다 호혜적이다. 따라서 신선도는 포용적이고 평화적이라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서구종교와 신선도를 비교하여 볼 때, 서구종교는 교리적으로 사회문제의 해결은 커녕 오히려 가치관의 혼란을 초래하고, 인간을 이기적이고 사악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종교 사이의 갈등과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을 자체 내에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기독교와 회교로 인한 사회문제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와 회교가 개입되지 아니한 종교전쟁이 없을 정도이다. 반면에 신선도는 평화적이고 포용적이며 세계적이다. 따라서 프랑스의 세계적인 석학 게오르규가 "21세기의 태평양 시대에는 한국인이 낳은 홍익인간 사상이 세계평화를 주도할 것이다"고 예언하였던 것이 과연 옳다고 아니할 수 없다. 2. 신선도는 세계주의사상이다 1) 세계주의의 성립요건 세계주의 사상은 민족과 국가를 초월하여 만인이 공동으로 믿고 받아들여 참여할 수 있는 만민일체의 사상으로서 황인종·흑인종·백인종 등 온 인류의 성격과 욕구에 바탕을 두고 그 행복과 번영을 목적으로 하는 평화사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세계주의사상의 성립요건을 인출하면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세계주의사상은 불변적 자연법칙인 천도(天道)에 발생학적 배경을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시대적 사회적 배경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조작된 사상은 시대와 사회가 바뀌거나 민족이나 국가가 다르게 되면 거기에 부합될 수 없고, 자연법칙인 천도에 의해서 발원된 사상은 자연법칙이 불변적이고 어디에나 차별없이 베풀어지듯, 민족이나 국가를 초월하여 어느 시대, 어느 민족에게나 차별없이 그에 맞게 변용(變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세계주의사사은 그 숭배의 대상이 보편타당하여야 한다. 즉 지구상의 모든 민족이 공동으로 믿고 받아들여 참여할 수 있는 숭배대상이어야 한다. 따라서 어느 민족이 숭배하는 민족신과 성인이나 위인은 온 인류의 숭배대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셋째, 세계주의사상은 만민일체 사상이어야 한다. 즉 세계주의 사상은 황인종·흑인종·백인종을 일체로 포용해야 한다. 따라서 인종과 인종, 민족과 민족 사이에 우열을 두거나 차별을 하는 사상이나 종교는 세계주의 사상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넷째, 세계주의사상은 황인종·흑인종·백인종 등 온 인류의 사상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온 인류가 그 가르침을 믿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세계주의 사상은 민주주의 사상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 사상은 인류가 발견한 최상의 정치사상이며, 이권존중과 인간평등을 기본사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세계주의사상은 이상의 문제 외에 어떤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원융무애 사상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세계인류는 여러 인종과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인종과 민족에 따라 욕구와 사상이 다르다. 그러나 다양한 욕구와 사상을 받아들여 해결할 수 없다면 세계평화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상의 여섯 가지 기본요건을 모두 갖추었을 때 세계주의사상이라 하면, 그러한 요건을 모두 갖춘 사상이 바로 지금까지 탐구한 신선도임을 논증코자 한다. 2) 신선도와 세계주의의 동일성 첫째의 성립요건으로서 신선도가 천도에 발생학적 배경을 두고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신선도의 발생학적 기본원리는 天一·地一·人一의 三神一體이며, 그것은 곧 불변적 천도임을 앞에서 밝혔다. 둘째의 성립요건으로서 신선도의 숭배대상이 보편타당한가의 문제이다. 신선도의 숭배대상은 天神·地神·人神 三神一體의 하나님이다. 삼신일체의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만유는 이 세상에 태어날수도 없고 잠시도 생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삼신일체의 하나님은 보편타당한 존재로서 온 인류가 받들어야 할 숭배대상이 된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상설한다. 셋째의 성립요건으로서 신선도가 만민일체의 평등사상이냐 하는 문제이다. 세계인류는 크게 나누어 한대민족·열대민족·온대민족의 삼대인종으로 나뉜다. 그런데 신선도는 天一·地一·人一의 三神一體에서 발원되는데, 天一은 한대민족, 地一은 열대민족, 人一은 온대민족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신선도는 만민일체의 평등사상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에서 상설하였다. 넷째의 성립요건으로서 신선도가 세계사상을 대표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세계인류는 크게 한대민족·열대민족·온대민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신선도의 도교사상은 한대민족의 사상을 대표하고, 불교사상은 열대민족의 사상을 대표하며, 유교사상은 온대민족의 사상을 대표한다. 이에 대해서도 앞에서 상설하였다. 다섯째의 성립요건으로서 신선도가 민주주의 사상이냐 하는 문제이다. 앞에서 설명한 바, 신선도는 삼권분립 합의제도이며, 인권존중사상이고 인간편등사상이며 만민일체사상이었다. 따라서 신선도는 민주주의사상이다. 여섯째의 성립요건으로서 신선도가 원융무애사상이냐 하는 문제이다. 곧 신선도가 어떠한 문제도 풀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신선도의 도교사상은 이상적이면서 한대민족의 사상을 대표하고, 신선도의 불교사상은 중용적이면서 열대민족의 사상을 대표하며, 신선도의 유교사상은 현실적이면서 온대민족의 사상을 대표한다. 그러므로 이상적인 문제와 한대민족의 문제는 도교정신에 의해서 풀 수 있고, 중용적인 문제와 열대민족의 문제는 불교정신에 의해서 풀 수 있으며, 현실적인 문제와 온대민족의 문제는 유교정신에 의해서 풀 수 있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앞에서 상설했다. 이상과 같이 신선도는 세계주의의 성립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고, 여기에 모순이 없다면 신선도는 세계주의사상이라는 이론이 성립된다. Ⅷ. 신선도의 숭배대상과 종교의식 1. 숭배의 대상과 삼신하나님 1) 신선도에는 원래 숭배의 대상이 없다. 신선도는 삼신일체의 천도에서 발원된다. 삼신일체는 한늘·땅·사람이 평등하며 일체라는 뜻이다. 곧 인간이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인간이라는 뜻이다. 인간 위에 하나님 없고, 하나님 밑에 인간 없다는 뜻이다. 인간은 어느 무엇의 위에 존재하지도 아니하고 밑에 존재하지도 아니한다는 뜻이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은 곧 우주이며 우주인으로서 활연개오(豁然開悟)하면 대자연과 더불어 소요하고, 광대무변한 대우주와 일체가 된다는 뜻이다. 곧 인간이 활연개오하면 하나님이요 부처님이요 옥황상제라는 뜻이다. 따라서 신선도에는 원래 숭배의 대상이 존재할 수 없다. 2) 신선도는 하나님을 숭배의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인간을 비롯한 만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아니하면 이 세상에 태어날 수도 없고 존재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신선도에서는 하나님을 숭배의 대상으로 한다. 이에 대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은 삼신일체에 대한 경칭이다. 삼신일체는 天神(조화)·地神(교화)·人神(치화)의 일체를 의미한다. 天神·地神·人神의 일체는 "天神+地神+人神"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전체 우주의 "조화+교화+치화"작용의 총체에 대한 경칭인 것이다. 즉 하나님은 우주의 삼라만성이 동정변화하고 생성소멸하는 원리이며 원인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우주운행의 진여이법(眞如理法)에 대한 경칭인 것이다. 삼일신고 신훈에 "하나님은 위없는 첫 자리에 계시사 큰 덕과 큰 슬기와 큰 힘으로 우주를 조화하시고 수없는 누리를 주관하시며 만물을 가꾸시되 티끌만한 것도 빠뜨림이 없으시며 밝고도 밝아 신령하고 신령하시니 감히 이름지어 헤아릴 길이 없느니라" 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작용을 표현한 말이다. 또 삼일신고 천훈에 "한늘은 허울도 바탕도 없고, 시작도 끝도 없으며, 위 아래 사방도 없고, 텅텅 비고 비어 어디에나 없는 데 없으며, 무엇이나 싸지 않음이 없느니라"했다. 그것은 전지전능하며 무소부재한 하나님의 존재 양상을 표현한 말이다. 즉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 유와 무, 음과 양을 초월한 천지의 뿌리이며 만유의 근본인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만유의 숭배대상이 된다. 이를 인간에 국한해서 설명하면, 인간은 한늘의 공기와 햇볕이 아니면 이 세상에 잠시도 생존할 수 없는데, 天神은 바로 한늘의 그러한 작용을 의미한다. 또 인간은 땅에서 나는 물과 곡식을 먹지 않으면 이 세상에 잠시도 생존할 수 없는데, 地神은 땅의 그러한 작용을 의미한다. 또 인간은 조상과 부모의 정기가 아니면 이 세상에 태어날 수도 없고 양육받을 수도 없는데, 人神은 조상과 부모의 그러한 가호를 의미한다. 天神과 地神과 人神을 총칭한 것이 삼신일체이다. 여기에서 삼신일체를 삼신상제(上帝), 삼신제석(帝釋), 삼신제왕(帝王), 삼신할머니, 삼신하나님 또한 단순히 하나님 하고 숭배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삼신하나님은 우리 민족만의 숭배대상이 아니라 온 인류의 숭배대상이며, 인간만의 숭배대상이 아니라 만유의 숭배대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신선도의 특이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3) 하나님은 "한늘·한울·한얼"의 총체에 대한 경칭이다 한늘의 [한]은 한울·한얼의 [한]으로서 우주를 의미하고, [늘]은 "항상·언제나"의 뜻으로서 무한한 시간과 공간을 의미한다. 곧 한늘은 무한한 우주시간과 우주공간인 천계(天界)를 의미한다. 한울의 [울]은 "울타리·우리"의 뜻으로 한정된 공간을 의미한다. 곧 한울은 우주의 땅세계인 지계(地界)를 의미한다. 한얼의 [얼]은 "혼·넋"의 뜻으로 생명체의 얼을 의미한다. 곧 한얼은 우주의 생명계인 인계(人界)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한늘은 천계, 한울은 지계, 한얼은 인계를 의미한다. 또한 천계·지계·인계의 일체 곧 삼신일체에 대한 경칭이 하나님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한늘님도 아니고, 한울님도 아니며, 한얼님도 아니라, "한늘(님)+한울(님)+한얼(님)"의 총체에 대한 경칭인 것이다. 한늘님, 한울님, 한얼님은 하나님의 일부분인 것이다. 4) 하나님은 한인 한웅 한검의 총체에 대한 경칭이다. {신리대전}에 의하면 "하나님은 한인(桓因) 한웅(桓雄) 한검(桓儉)이시니, 한인은 조화의 지리에 계시고, 한웅은 교화의 자리에 계시며, 한검은 치화의 자리에 계시니라. 한늘에서는 그 보다 더 위에 계신 이가 없으시며, 만물에는 그 보다 먼저 비롯된 이가 없으시며, 사람에는 그 보다 먼저 된 이가 없느니라. 나누면 셋이요, 합하면 하나이니 셋과 하나로서 한얼님 자리가 정해지느니라(이상, 신위). 또한 한배검의 이치는 셋과 하나일 뿐이니, 하나만 있고 셋이 없으면 이는 쓰임(用)이 없음이요, 셋만 있고 하나가 없으면 이는 체(體)가 없음이라. 그러므로 하나는 셋의 체가 되고 셋은 하나의 쓰임이 되느니라(이상, 신교)"하였다. 이를 보면 하나님의 작용이 한인 한웅 한검인데, "한인+한웅+한검"의 총체에 대한 경칭이 하나님이다. 5) 天一·地一·人一과 한늘님·한울님·한얼님과 한인·한웅·한검은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이다. 이상 논한 바를 정리하면 한인은 조화의 위에 계시다 하여 천일과 같고, 한웅은 교화의 위에 계시다 하여 지일과 같으며, 한검은 치화의 위에 계시다 하여 인일과 같다. 그리고 천일은 한늘, 지일은 한울, 인일은 한얼임을 밝혔다. 따라서 천일과 한늘님과 한인, 지일과 한울님과 한웅, 인일과 한얼님과 한검은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도표화하면 도표 (5)과 같다. 도표 (5) 삼신의 상호 관련표
이상에서 말한 한인·한웅·한검은 하나님의 작용을 셋으로 나누어 신격화한 칭호이다. 그런데 그 칭호가 우리민족의 국조이신 삼성과 동일하다. 그뿐만 아니라 三神이라 할 경우, 우주의 진여이법인 천일·지일·인일을 의미하는 경우와 한인·한웅·한검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고, 그밖에 역사적 인물로서의 우리민족의 국조를 의미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이 점을 잘 구별해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6) 하나님은 여러가지의 현상으로 표현된다. 천일·지일·인일의 삼신일체를 존칭하여 하나님이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천일·지일·인일로 삼분하여 천일(한늘)을 연상하면 그것은 우선 해와 달과 별을 연상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하나님 신앙은 태양숭배(太陽崇拜)·일월신앙(日月信仰)·성신신앙(星辰信仰)·칠성신앙(七星信仰)으로 변모하게 되고, 또 지일(땅)을 연상하면 그것은 산과 들(野)과 바다를 연상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산신제·토신제·용왕제가 생겨나게 된다. 또 인일(사람)을 연상하면 우선 나를 낳아 키우고 교육시켜 준 조상과 부모의 은혜를 잊을 수 없는데, 여기에서 기일제사와 시제(時祭) 등 조상숭배사상이 생겨나게 되고, 또 한인·한웅·한검의 국조가 없으면 이 나라와 이 민족이 존재할 수 없는데, 여기에서 삼성사(三聖祠)가 생겨나게 된다. 그밖에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신명을 받친 충효열사(忠孝烈士)와 역대 제왕이 없으면 이 나라가 존재할 수 없는데, 여기에서 단사전묘(壇祠殿廟) 제도가 생겨나게 된다. 이를 생각하면 우리의 민속에 있는 여러가지의 신앙이 신선도의 유풍유속임을 추정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오늘날도 하나님 신앙을 여러가지로 세분하여 신앙하라는 것은 아니다. 2. 소도제천의식 1) 문제의 제기 불교와 기독교를 보면, 교주 탄신일이나 성도일 또는 부활절을 맞아 일정한 종교의식이 있다. 신선도에도 한웅천황이 개천시교(開天施敎)한 달을 상달이라 하여 매년 10월이면 三神하나님에게 제사하는 소도제천의식(蘇塗祭天儀式)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소도제천의식을 자연발생적 미신의 일종으로 여겨왔고, 거기에 별다른 의의를 부여하지 않았다. 부여하였다면 소도제천의식을 막연히 하나님을 섬기고 오곡의 풍작을 비는 경천의식(敬天儀式) 또는 풍년제(豊年祭)의 일종으로 생각하여 왔던 것이다. 생각컨대, 소도제천의식이 자연발생적인 것이라면 제천의 대상이 일정치 못하여 한늘·태양·달·별 그리고 산·바다·바위·큰 나무·사나운 짐승·소·말·돼지 등 여러가지 자연물이나 자연현상 가운데 각 집단의 취향에 따라 어느 하나 아니면 몇개를 택하여 숭배의 대상으로 할 수 있다. 제천의 시기와 횟수도 일정치 못하여 1년 12월 가운데 어느 달이든 한번만 아니라 몇번이든 편의에 따라 택할 수 있다. 제천의 절차나 방법에 있어서도 일정치 못하여 재계할 수도 있고 아니할 수도 있으며, 제물을 올릴 수도 있고 아니올릴 수도 있으며, 절을 할 수도 있고 아니할 수도 있다. 고개만 숙이는 묵념, 양손을 합장하여 주문을 외우는 기도만으로 끝낼 수도 있다. 즉, 모든 것이 각 집단이나 각 지방에 따라 각양각색일 수 있다. 그러나 소도제천의식에 있어서는 전체 민족이 숭배의 대상이나 시기에 있어서 일정하고 제천의 내용이 교육적이다. 이하에서는 소도제천의식의 유래·의의·내용·형식 등을 소개하고 이어서 신선도와의 연관성을 밝혀 소도제천의식이 자연발생적인 미신행위가 아니라 신선도의 종교의식이었음을 밝히려 한다. 2) 소도제천의식의 유래 {규원사화}의 기록을 보면 "대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조상에 보답하는 예식은 단군에서 비롯되었다. 후세의 역대 여러 나라들이 제사를 지내지 않는 나라가 없었으니, 부여·예·맥·마한·신라·고구려 등 제국은 10월로서 하고, 백제는 4중월로서 하되, 도천(禱天)·무천(舞天)·제천(祭天)·교천(郊天)·영고(迎鼓)·동맹(東盟)이라 한다" 하였다. 또 이르기를 "음력 10월에 제천하던 것이 만세의 풍속이 되었으니 이것이 동방 특유의 성대한 제전(祭典)이요,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하고, {신단실기}에도 이르기를 생각컨대 "단군이 제천단을 설치한 것은 무릇 백성으로 하여금 멀리 근본을 쫓아 보본케 하기 위한 의도이다. 그러므로 단군이 어천(御天) 후에 인민이 그 유교를 준수하여 태백에 보본단과 아사달에 삼성사(三聖祠)를 건립하고 역대 제왕의 단·사·전·묘(壇·祠·殿·廟)를 각각 세우니 그 시원(始原)은 하나님을 섬기는 예에 있는 것이다"고 하였다. {규원사화}와 {신단실기}에는 소도제천의식의 시원이 하나님에게 제사하는 데에 있고, 단군 때부터 비롯된 것 같이 기록되고 있으나, 다음의 기록을 보면 한인의 환국 때부터 비롯되었다. {태백일사}를 보면 "상고하건대 삼신(三神)은 한늘을 낳고(生天) 만물을 가꾸시며(造物) 한인은 사람을 가르쳐 의(義)를 세우니 이로부터 자손이 서로 의(義)와 교(敎)를 전하고, 현묘한 법도를 깨달아 광명이세(光明理世)하였다. 실로 천지인(天地人) 삼극(三極)은 대원일(大圓一)하는 서물(庶物)의 원의인 즉, 천하구환(天下九桓)의 예락이 곧 삼신고제(三神古祭)의 풍속이 아니고 무엇이리요 하였다. 여기에서 보면 소도제천의식은 단군왕검 이전 한인의 환국에서 天地人 三神一體의 하나님에게 보본하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다음 {한단고기} 삼성기전하편 배달국 시대를 보면, "한웅천황이 처음으로 개천(開天)하여 백성에게 교화를 베풀 때, 천경(천부경)을 연(演)하고 신고(三一神誥)를 강(講)하여 크게 무리를 가르쳤다. 이후로 치우천황이 토지를 개간하고 구리와 쇠를 캐서 병사를 단련하고 산업을 일으켰다. 소도(蘇塗)를 주관하고 무리와 의논하여 하나로 화백(和白)하고 아울러 지·생(知生)을 쌍수(雙修)하여 천궁에서 살았다"고 하였다. 즉 배달국 시대에도 소도제천의식이 있었다. {단군세기} 고조선 시대를 보면 개천 1565년(B.C. 2333년) 10월 3일에 이르러 신인(神人) 왕검이 오가(五加)의 우두머리가 되어 무리 800을 이끌고 단목의 밑에 와서 삼신에게 제사를 드렸다고 하였다. 또한 단군왕검 무오 51(B.C. 2283)년, 제(帝)가 운사(雲師) 배달신에게 명하여 혈구(穴口;지금의 강화)에 삼랑성(三郞城)을 쌓고 마리산(마니산)에 제천단을 쌓았다. 지금의 삼랑성이 그것이다 10월에 국중대회를 열고 하나님에게 제사를 지내니 백성들이 기뻐하며 즐겼다. 이로부터 황화(皇化)가 구역(九域)의 먼 곳에 까지 적시어 덕교(德敎)를 즐김이 점차 널리 퍼져 나갔다고 하였다. 또한 16세 단군 위나제조를 보면 무술 28년 구환(九桓)의 제한(諸汗)이 영고탑(寧古塔)에 모여 삼신하나님에 한인·한웅·치우 및 단군왕검을 배향하여 제사를 지내고 무리와 더불어 5일 대연을 베풀었다고 하였다. 이상의 기록을 보면 원래 10월의 소도제천의식은 한웅의 개천입교(開天立敎)를 기념하고, 천일·지일·인일의 삼신하나님에게 보본하기 위한 데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삼신하나님에 한인·한웅·한검(치우)을 배향하여 모신 것은 단군왕검 어천 이후의 일이다. 이것만을 보아도 소도제천의식은 신선도의 종교의식임을 알 수 있다. 3) 소도제천의식의 내용 소도제천의식이 신선도의 종교의식임을 논증하기 전에 그 내용을 먼저 알아보기로 한다. 첫째, 소도제천의식의 목적은 근본에 보답하는 데에 있었다. {신단실기}에 이르기를 "제천단을 설치한 것은 무릇 백성으로 하여금 멀리 근본을 쫓아 보본케 하기 위한 것이다. 태백에 보본단을 설치하고 아사달에 삼성사(三聖祠)를 건립하여 역대 제왕의 단·사·전·묘(壇·祠·殿·廟)를 각각 세우니 그 시원은 하나님을 섬기는 예에 있는 것이라 하였고,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을 보면 "무릇 제사하는 것은 반드시 선조가 살아있을 때를 본떠서 선조가 항상 살아있는 것처럼 지성을 드려야 한다. 신주를 세우고 설상(設床)하여 제물을 드리는 것은 곧 친히 뵙는 예의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나간 먼 일을 사모하여 조상에 보답하는 것은 지금의 삶이 거듭 이어지기를 바라는 후손에 대한 가르침인 것이다" 하여 소도제천의식이 삼신하나님과 역대 제왕과 선조의 은혜에 대한 보답임을 밝히고 있다. 둘째, 숭배의 대상이 삼신오제(三神五帝)이다. 즉 三神하나님과 五方의 五帝이다. 정인보는 {사기} 봉선서에 근거하여 五帝란 동·서·남·북·중앙의 오방신(五方神)이라 하고, 부여의 영고, 예와 맥의 무천, 마한의 천군 등 소도제천의식도 삼신제단(三神祭壇)을 설치하고 삼신오제에 제사를 지내는데 5방 고산(五方 高山)에서 지낸다고 하였다. 즉 숭배의 대상이 삼신오제라는 것이다. 셋째, 10월에 소도제천의식을 지냈다. {규원사화}를 보면 "제천하는데 부여·예·맥·마한·신라·고구려 등 제국은 10월로서 하고, 백제는 4중월로서 하되, 도천·무천·제천·교천·영고·동맹이라 한다"고 하였다. 즉 백제를 제외하면 전체 민족이 음력 10월에 소도제천의식을 지냈다는 것이다. 넷째, 모든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마한세가}(하)를 보면 "제천하는 예는 마땅히 국전에 있으니 지나침이 없도록 하라. 반드시 옛 사실을 징거하여 정성껏 공경하는데 이르러야 한다. 지금 제사를 지내고 맞이함에 있어 정제하고 신역(神域)을 샅샅이 청소하고, 희생을 깨끗이 준비하여 패백을 써서 삼신에게 보답하여야 한다. 이때 帝가 7일 재계하고 여원홍에게 향과 축을 내려주었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보면 삼신하나님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검소하면서도 정성과 공경을 다하여 7일 전부터 재계하고, 향과 축, 희생과 패백을 사용하는 등 모든 정성을 다하고 있다. 다섯째, 경(천부경)을 읽고, 덕(德)을 기리는 노래를 불렀다. {단군세기}를 보면 신시(神市) 이래로 국중대회를 열고 제천하는데, 덕(德)을 기리고 서로 화합하는 어아가(於阿歌)와 애환가(愛桓歌)를 불렀다. 또한 왕이 누전에 올라 경(經;천부경)을 논(論)하고 고(誥;삼일신고)를 연(演)하였다고 하였다. 여섯째, 살생을 금하고, 옥문을 열어 대사(大赦)하였다. {단군세기} 제11세 도해제조와 {삼국지} 위지 동이전 부여조를 보면 삼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살생을 금하고 방생하였으며, 옥을 풀어 밥을 먹이고 죄수를 풀어주었다고 하였다. 이를 보면 백제 법왕이 금살령(禁殺令)을 내린 것도 불교의 영향만이 아니라 상고시대부터 내려온 관행이라 할 수 있다. 일곱째, 삼륜구서(三倫九誓)의 훈(訓)을 행하였다. {마한세가}를 보면 제3세 가륵 원년에 소도를 세워 삼륜구서의 훈을 베푸니 치화가 크게 행하여졌다고 하였다. 여덟째, 경당(?堂)을 설치하여 각종의 교육을 실시하였다. {태백일사}를 보면 소도가 선 곳에는 충효신용인(忠孝信勇仁)의 오상(五常)의 도(道)가 있었다 하고, 소도의 옆에는 반드시 경당을 세워 미혼자제(未婚子弟)에게 사물을 강습케 하였는데, 대개 독서(讀書)·습사(習射)·치마(馳馬)·예절(禮節)·가락(歌樂)·권박(拳搏)겸 검술(劍術) 등의 육예(六藝)였다고 하였다. 신채호 역시 소도의 경기 내용으로 한맹(寒盟)·수박(手搏)·검술(劍術)·궁시(弓矢)·격구(擊球)·금환(金丸)·주마(走馬)·회엽(會獵)이라 하였다. 이상과 같은 목적과 절차 및 내용으로 볼 때, 소도제천의식은 자연발생적인 미신행위가 아니라 종교의식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4) 소도제천의식과 신선도와의 연관성 소도제천의식이 하나의 종교의식이라 할 때, 신선도와 어떠한 관계에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첫째, 한웅천황이 개천입교(開天立敎)한 것이 10월이며, 단군왕검이 조선국을 건국한 것도 10월이고, 소도제천의식도 10월이다. 따라서 10월은 년중 상달이 되는 것이며, 한웅천황의 개천입교와 단군왕검의 조선국 건국 및 소도제천의식은 서로 불가분적인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신선도의 발생원리인 삼신오제와 소도제천의식의 숭배대상이 동일하다. 신선도의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은 삼신일체 원리에서 발원되고, 충·효·신·용·인(忠·孝·信·勇·仁)의 오상(五常)의 도(道)는 오제사상(五帝思想)에서 발원된다. 즉, 신선도는 삼신오제(三神五帝)사상에서 발원된다. 그런데 소도제천의식에서는 오방(五方)의 명산(名山)에서 삼신오제(三神五帝)에게 제사를 지낸다. 이는 신선도의 발생원리를 신격화시켜 소도제천의식에서 숭배의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신선도와 소도제천의식은 그 유래를 함께 한다. 이상을 미루어 생각하면 소도제천의식이 신선도와 더불어 함께 발원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데, {태백일사}에 천하구환(天下九桓)의 예락(禮樂)이 삼신고제(三神古祭)의 풍속이 아니고 무엇이리요 하였는가 하면, {한단고기} 삼성기전 하편에는 한웅천황이 소도를 직접 주관하였다 하고, 이능화도 {조선무속고}에서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와 맥의 무천 등 소도제천의식이 단군신교의 유풍 유속이라 하였다. 이와 같이 소도제천의식의 유래도 태고시대의 신선도와 함께 시원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신선도와 소도제천의식이 서로 불가분적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소도제천의식의 내용도 어느 종교의식에 뒤짐이 없었다. 그러므로 소도제천의식은 신선도의 종교의식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고, 아울러 신선도는 합리적 성립종교라는 사실이 거의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다. Ⅸ. 신선도의 실재적 근거 상고시대부터 합리적 성립종교가 있었다면, 천재지변이 극히 심하여 유적이 모두 유실되고 없어졌다 하더라도 그 유적이 있던 자리 곧 유적지(遺跡址)는 없어질 수 없다. 그러나 고유신앙이 사라지게 되면서 민족적 주체의식도 사라져 사고방식도 외국화될 수 밖에 없었으니 여기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하면 까만 안경을 쓰고 보면 사물이 까맣게 보이고, 파란 안경을 쓰고 보면 사물이 파랗게 보이는 것과 같이, 남의 나라의 사상을 배우고 남의 나라의 신을 섬기다 보면 사고방식도 남의 나라 사람 같이 되어 자기 것도 남의 나라의 것으로 보이게 되니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점을 고려해서 본 항목을 읽어야 할 것이다. 첫째, 신선도의 제천처와 사당이 있다. 신선도의 숭배대상은 원래 천일·지일·인일의 삼신하나님이다. 곧 하나님을 숭배의 대상으로 한다. 그래서 신선도에서는 명산 대천에서 삼신하나님께 제사를 올리었다. 그러나 세계가 이기화되고 민족주의의식이 고취되면서 한인천제와 한웅천황과 치우천황의 삼성을 삼신하나님으로 섬겼는가 하면, 한인천제와 한웅천황과 단군왕검의 삼성을 삼신하나님으로 모시기도 하였다. 곧 인간이 신격화된 것이다. 오늘날 일본에서 자기나라의 군주를 천황이라 신격화시켜 하나님 같이 모시고, 불교에서 정반왕의 태자 석가모니를 신격화시켜 응신불(應身佛)로 모시고, 기독교에서 요셉의 아들 인간 예수를 신격화시켜 하느님(하나님)의 아들로 모시는 것과 같은 격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오늘날 각 종교에서 인간을 신격화시켜 모시는 것도 신선도의 유풍 유속이라 할 수 있다. 삼성 또는 삼신을 모셨던 유적으로 현재 남아있는 것은 한밝산의 보본단, 묘향산의 단군굴, 평양의 단군묘, 서울의 사직단(社稷壇)과 인왕산의 국사당(國師堂), 강화도 마니산의 제천단(참성단)과 정족산의 삼랑성(三郞城), 황해도 구월산의 삼성사(三聖祠)와 어천대(御天臺), 금강산의 천제단, 태백산의 천황단과 단군성전 및 황지, 서울 인왕산 활터인 황학정(黃鶴亭), 조선호텔 앞의 제천단인 원구단(圓丘壇), 전북 진안 솟도산인 마이산(馬耳山), 전남 해남읍의 천진전(天眞殿), 경북 김천 직지사를 비롯해서 사찰의 한쪽에 모셔있는 삼성각, 울진군 북면 나곡리의 성황당과 신목, 제주도 북제주군 송당리 만장굴 본향당 등을 들 수 있다. 둘째, 신선도의 절터가 있다. {삼국유사}가섭불연좌석편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옥룡집(玉龍集)과 자장전(慈藏傳) 및 제가전기(諸家傳記)에 다 이르기를 신라의 월성(月城) 동쪽 용궁(龍宮)의 남쪽에 가섭불의 연좌석이 있으니 그곳은 전불시절 가람의 터이다. 지금 황룡사의 지역은 일곱 절터 중의 하나이다. 국사(國史)에 의하면 진흥왕 즉위 14년인 개국(開國) 3년 계유(553) 2월에 월성 동쪽에 신궁(新宮)을 건축할 때에 그 지역에서 황룡이 나타나므로 왕이 의아히 생각하여 황룡사로 개조하였는데 연좌석은 불전 후면에 있었다. 전에 한번 참배한 바 돌의 높이는 5-6척 가량이며 그 둘레는 겨우 세발이다. 우뚝 섰는데 위는 편편하였다. 진흥왕이 절을 세운 뒤로 두번이나 화재를 겪어 돌에 갈라진 곳이 생겼으므로 절의 중이 쇠를 붙여 보호하였다". 위의 기록을 보면 옥룡집·자장전·제가전기 등 전거에 근거하여 황룡사의 터를 전불시절 일곱 절터 중의 하나라 하고 있다. 즉 전불교인 신선도의 절터가 신라의 고도 계림에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역사적 실재 인물인 신라 제24대 진흥왕이 전불시대의 가람의 터에 절을 지었다는 것과 가섭불의 연좌석에 참배하였다는 점, 화재를 만나 연좌석에 금이 난 것을 절의 스님이 쇠를 붙이고 잘 보호하였다는 점 등,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미루어 생각할 때, 위의 기록을 믿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삼국유사} 아도기라 편을 보면, 아도본비를 근거로 일곱 절터와 거기에 새로이 들어선 불교사찰의 명칭을 하나 하나 밝혀주고 있다. ? 금교(金橋) 동쪽 천경림(天鏡林 : 지금의 興輪寺址) ? 삼천기(三川岐; 지금의 永興寺址) ? 용궁(龍宮) 남쪽(지금의 黃龍寺址) ? 용궁(龍宮) 북쪽(지금의 芬皇寺址) ? 사천미(沙川尾 ; 지금의 靈妙寺址) ? 신유림(神遊林 ; 지금의 天王寺址) ? 서청전(斷請田 ; 지금의 曇嚴寺址) 이상 외에도 경기도 양주군 천보산 회암사의 터를 서천축(西天竺)의 지공선사(指空禪師)는 상세칠불(上世七佛)시절의 큰 절터라고 하였다. 이상과 같이 전불시절의 절터가 우리나라에 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나라에 신선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석가불교에 의하여 그 사고방식이 인도화된 일부 불교신자와 불교학자들은 무조건 위의 기록을 부정하려 할 것이다.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셋째, 만주 길림성 영안에 단군조선 시대의 영고탑(寧古塔)이 있었다. {단군세기}를 보면 제16세 단군 위나제(尉那帝) 무술 28년(B.C.1583) 구한(九桓)의 제한(諸汗)이 영고탑(寧古塔)에 모여 삼신상제께 배향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제20세 단군 고홀제(固忽帝) 병신 36년에 영고탑을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보면 단군조선 시대에 영고탑이 있었다. 또한 {국어대사전}을 보면 영고탑을 영안이라 하고 영안은 만주 길림성에 있는 역사적 고성(古城)이라 하였다. 이를 보면 영고탑은 만주 길림성 영안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넷째, 석가불교가 전래되기 이전 만주 요동에 불탑이 있었다.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소수림왕 2년 서기 372년이다. 그런데 {삼국유사} 요동성육왕탑 편을 보면 소수림왕 이전 성왕이 요동을 순행하다 보니 삼중토탑(三重土塔)이 있었다 하고, 또 성왕이 이로 인하여 신앙심이 생겨 칠중목탑(七重木塔)을 세웠는데, 그후에 불법이 들어왔다고 하였다. 즉 석가불교 전래 이전에 이미 우리나라에 불탑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섯째, 불교사찰 본당 대웅전은 신선도의 대웅전이다. 불교에서는 사찰본당에 비로자나불을 모셨으면 비로전, 미륵불을 모셨으면 미륵전, 아미타불을 모셨으면 (아)미타전, 약사여래를 모셨으면 약사전이라 한다. 그와 같이 석가불을 모셨으면 석가전이라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와 달리 불찰본당의 명칭을 대웅전이라 하였다. 대웅이란 불타의 십불호(十佛號)에도 없는 명호이다. 불교에서 대웅(大雄)이란 대자(大慈)·대비(大悲)·대혜(大慧)와 같이 어느 사람의 인격을 의미하는 말로서 석가세존만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그런데 대웅전이라 하였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태백일사}를 보면 "대웅전이란 승도(僧徒)들이 고사를 답습하여 잉칭한 것이며, 본래는 승가의 말이 아니라 하고, 또 말하기를 승도와 유생은 다 랑가(郞家)에 예속되었다. 이로써 가히 알 것이다"라고 하였다. 즉 불찰본당의 대웅전은 옛 사실을 답습한 것으로서 원래 불교의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우리말 '한'은 '대(大)'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한웅을 대웅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대웅전은 곧 한웅전으로서 신선도의 본당 명칭이라 할 수 밖에 없고, 그 안의 삼불(三佛)도 삼신(三神)에서 유래되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대웅전이란 간판의 존재는 석가불교 전래 이전 상고시대부터 우리나라에 고불교인 신선도가 있었고, 석가불교가 신선도를 계승하였다는 살아있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여섯째, 상고시대부터 한웅신상을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단군세기} 제11세 단군 도해(道奚) 조를 보면 "10월에 대시전(大始殿)을 세우고 장려하도록 명령하고 천제한웅의 유상(遺像)을 만들어 모시었는데, 그 머리 위에는 광채가 번쩍 번쩍하여 마치 큰 태양과 같았으며, 둥근 빛은 온 누리를 비추고 박달나무 밑 환화(桓花)의 위에 앉아 계시니 하나의 살아있는 신이 둥근 원의 가운데 앉아있는 것 같았다. 원심에 천부인표(天符印標)를 지닌 대원일지도(大圓一之圖)가 누전에 걸려 있었다. 호(號)를 거발한(居發桓)이라 한다"고 하였다. 거발한이란 천·지·인(天·地·人)삼신일체의 천도를 크게 깨달은 성인을 지칭함이다. 여기에서 보면 한웅유상을 모셨음이 불찰본당 대웅전의 중앙에 모셔있는 불타상과 꼭 같다. 누전에 대원일지도가 걸려있다는 것은 불타상의 후면벽에 걸려있는 일원상과 같고, 환화의 위에 한웅유상이 앉아 있다함은 연화대 위에 불타상이 앉아있는 것과 같다. 이를 보아도 불찰본당의 대웅전은 신선도의 고사를 답습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일곱째, 고고학적 근거가 있다. 1983-85년에 걸쳐 중국 요령성 눙원현 우하량 유적지를 발굴조사하였는데, 그 구릉상에서 제사유적과 신전 및 여자신상이 발견되었다. 이를 방사선 측정한 결과 기원전 3500년으로 나왔다. 중국 요령성은 옛날 청구(靑邱)라 불리웠던 곳이며, 청구는 고대의 우리나라를 말한다. 따라서 이번에 중국 요령성에서 발견된 제사유적과 신전 및 여자신상은 신선도의 실재성을 고고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덟째, 오늘날 10월 3일의 개천절행사가 한웅천황이 신선도를 설하고 신선도가 있었다는 또 하나의 살아있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앞에서 설명하였다. 2. 샤마니즘과 돌무덤은 신선도의 유풍·유속이다 1) 샤마니즘 샤마니즘(샤머니즘)은 우랄알타이어족을 주축으로 하여 아시아 일대와 나아가서는 전 세계에 널리 유포되고 있는 민간신앙의 한 형태이다. 주술과 제사와 예언을 통하여 기복과 재액을 목적으로 하는 자연종교의 한 형태로 여겨왔다. 한자의 살만(薩蔓)·찰만(札蠻)·철만(撤蠻)·산만(珊蠻)은 모두 샤만의 음역(音譯)이다. 우리말에서 샤만은 무당이라 불리는 것이 보통이고 중부 이남의 방언에서는 "당굴 또는 당골"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제 샤만의 연원이 신선도와 동일함을 밝힌다. 첫째, 샤만의 어원은 고조선의 삼한(三韓)이다. 샤만의 어원이 팔리어의 사마나(Samana), 대승불교의 사문(沙門), 페르샤어의 우상이나 사(祠)를 의미하는 세멘(Schemen)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설도 있으나, 팔리어(Pali語)를 쓰는 드라비다족(族)이나 페르샤어(Persia語)를 쓰는 아리안족(族)은 우랄알타이어족(族)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발음의 유사성만으로는 그 근거가 너무나 빈약하다. 또한 대승불교의 사문에서 샤마니즘이 나왔을 것이라는 주장 역시 샤만이 대승불교보다 후에 나왔다는 주장으로서 어불성설이다. 이에 반하여 벤자로프는 샤만의 어원을 만주어라 하였다. 만주는 과거의 우리나라 고조선의 영토로서 고대의 만주는 진(辰)·변(辨)·마(馬)의 삼한(三韓)이 웅거하던 곳이다. "삼한은 곧 三王이다". 삼왕은 교정일치(敎政一致) 시대의 통치자임과 동시에 제사장이며 주술자이고 예언가이다. 이들은 백성에게 복을 빌어주고 재앙을 면하게 하는 것을 통치의 목적으로 한다. 기능면에서 샤만과 삼한(삼왕)이 동일하다. 또한 발음도 삼한→삼안→샤만으로 자연스럽게 전음될 수 있어 샤만과 삼한은 원래 같은 음이다. 따라서 샤만의 어원은 벤자로프의 주장과 같이 만주어로서 고조선의 삼한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우주관 및 신관이 동일하다. 샤마니즘에서는 우주를 상계·중계·하계로 나누어 상계는 상제와 선신(善神)이 주관하고, 중계는 인간과 생물이 사는 곳이며, 하계는 악신이 있는 곳이라 한다. 신선도에서도 삼신일체의 원리에 따라 우주를 상계(천계)·중계(인계)·하계(지계)의 삼계(三界)로 나누고, 천신(天神)·인신(人神)·지신(地神)의 삼신(三神)으로 나누기도 한다. 이래서 샤마니즘과 신선도의 우주관이나 신관이 동일하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무속에서는 천신·지신·인신을 삼신제왕이라 하여 주신으로 섬기고, 무(巫)자도 파자하면 무(巫)의 상획은 하늘을 의미하고, 하획은 땅을 의미하는데, 두 사람이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는 형상이다. 즉 '무(巫)'자는 천·지·인(天·地·人) 삼신일체(三神一體)의 회의문자이다. 이를 보아도 샤마니즘과 신선도는 우주관과 신관 그리고 그 발생원리에 있어서 서로 동일함을 알 수 있다. 셋째, 인체계의 구성계기를 3원적 구조로 보는 것이 동일하다. 뿌리아트의 샤마니즘에서는 사람의 육체계를 ? Oyeye 즉 Material body : 육체. ? Amin 즉 약간 하등되는 영혼: 숨. ? Sunyesun 즉 사람만의 영혼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인체계의 구성계기를 육체·숨·영혼의 3원적 구조로 보고 있다. 신선도에서도 인체계의 구성계기를 숨(氣)·마음(心)·육체(身)의 3원적 구조로 본다. 이것 역시 샤마니즘과 신선도가 서로 동일하다. 넷째, 살생유택(殺生有擇)사상이 동일하다. 샤마니즘에서는 어느 동물 또는 식물과 자기 종족과의 사이에 혈연적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고 그것을 종족의 수호자로 숭배하여 그 살상(殺傷)·식용(食用)·남용(濫用)을 금하고, 일정한 경우에 한해서 의례적으로 살상·식용한다. 즉 샤마니즘에서는 때와 물건을 가리어 살생한다. 신선도의 오계(五戒)에도 때와 물건을 가리는 살생유택(殺生有擇)이 있다. 다섯째, 신선도가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인데, 샤마니즘에서도 도·불·유 삼교의 용어를 혼용한다. 위의 내용으로 보아서 샤마니즘은 자연종교가 아니라 원래 성립종교라 할 수 있는데, 샤마니즘의 경전을 보면, 어느 경을 보아도 거기에 도·불·유 삼교의 용어가 혼재하고 있다. {삼신태자경}을 예로 들면, 거기에 천황(天皇)·지황(地皇)·인황(人皇)과 유황유소·제곡도당·수인·여와·황제헌훤 등의 삼황오제(三皇五帝)가 나오고, 팔궤·삼신·삼십삼천·도솔천·도시왕·칠성님·지부대왕·서천서역·불전·옥황상제·세존님·108염주·관세음보살·아미타불·육자염불·임록·관록 등의 각종의 록, 옥경·12제국·백부왕 등등 도·불·유의 용어가 혼용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무당들의 푸닥거리를 보아도 도·불·유의 용어를 혼용한다. 이상과 같이 샤마니즘과 신선도의 근본이 동일하다. 그것은 무엇을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는가? 첫째, 샤마니즘과 신선도가 같은 데서 연원되었거나, 아니면 이능화의 주장과 같이 샤마니즘은 신선도의 유풍 유속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우리나라 중부 이남 지방에서 무당을 당굴 또는 당골이라 하는 것이나, 몽고어의 Tengri도 "단군"의 음(音)에서 유래된 것이라 할 수 있고, 셋째, 샤마니즘 현상은 서구보다도 아시아 일대에 특이한데 그것은 우리민족의 고대문화가 아시아 일대에 넓게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좁게는 신선도의 영향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배달사상 곧 신선도는 동방사상의 원류이며, 우리민족은 동아문화의 창조자라는 안호상 박사의 지론이 타당함을 알 수 있고, 한국의 무속은 신선도와 더불어 민족사상의 본산이며, 고대 한국은 세계무속의 진원지라 할 수 있다. 2) 돌무덤 동이민족의 시신매장 시설은 다른 민족과 달리 돌을 가지고 축조하였는데 그것을 돌무덤 또는 석묘(石墓)라 한다. 돌무덤 중에는 돌무지무덤(적석총), 돌널무덤(석관묘), 돌덧널무덤(석곽묘), 돌방무덤(석실묘), 고인돌무덤(지석묘) 등이 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무덤형식의 하나가 바로 돌널무덤이다. 이와 같은 돌무덤은 신석기 시대로부터 청동기 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만주와 한반도에서 크게 유행하였는데 남쪽으로는 일본의 구주지방과 유구열도에 이르기까지 분포되어 있고, 서쪽으로는 멀리 시베리아 지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돌무덤이 발견되었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 한반도의 돌무덤의 기원을 청동기시대에 시베리아로부터 내려왔다고 보는 경향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 토기가 시베리아에서 전래되었다고 믿었던 것처럼 한반도의 돌무덤도 북방에서 전래되었다는 북방전래설(서구전래설)이 주장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83-1985년에 걸쳐 중국 요령성 능원현 우하량 적석총 유적에서 15개의 돌널무덤이 발견되었다. 이들 돌널무덤의 안에서 빗살무늬 토기를 비롯하여 채색토기·옥기 등 전형적인 홍산문화유형의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그 연대는 기원전 4000-3000년 경에 해당된다. 시베리아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의 돌무덤의 연대는 기원전 2500-1200년 경으로 추산된다. 따라서 요령성 유역 돌널무덤의 축조년대는 시베리아보다 무려 2000년 이상이나 빠른 셈이다. 그러므로 동북아 돌널무덤의 기원을 발해연안으로 믿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고인돌 역시 돌무덤과 더불어 신석기 시대 후기 내지 청동기 시대(기원전 1500-200)에 한반도와 만주의 요동지방에서 유행한 대표적인 돌무덤 중의 한 형태이다. 고인돌은 지석(支石)을 표현한 말로써 일본어로는 "トルメン:도루멘", 영어로는 "Dolmen:돌멘"인데 이러한 말의 어원이 일본인들에게나 서구인들에게는 무슨 뜻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말로서 일본어도 아니고 영어도 아니다. 순수한 우리말 "돌멩이"인 것이다. 이를 보아도 돌무덤이나 고인돌의 기원이 우리나라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단기고사}에 의하면 원래 고인돌의 개석(蓋石)은 천일(天一)을, 지석(支石)은 지이(地二)를 상징하고 하늘에 제사지내는 제천단이라 하였다. 이를 보면 고인돌이 무덤으로 변하기 전에는 제천단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샤마니즘 현상이나 돌무덤이 신선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그것이 아시아 일대에 널리 펴져 있음은 신선도의 사상이 그만큼 세계적이고 보편적이며 실재하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Ⅹ. 결 론 지금까지 신선도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를 종교의 일반적 구성요건에 대입시키면, 첫째, 설주로서 한인천제·한웅천황·단군왕검의 삼성이 있다. 둘째, 숭배의 대상으로서 삼신하나님이 있다. 세째, 종교적 목적으로서 홍익인간 이화세계건설이 있다. 넷째, 사상으로서 도·불·유 삼교일체사상이 있다. 다섯째, 계율로서 삼륜·오계·오륜·팔조·구서 등이 있다. 여섯째, 의식으로서 소도제천의식과 가정에서의 제사의식이 있다(본서에서는 가정에서의 제사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였다). 일곱째, 경전으로서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이 있다(본서에서는 설명을 생략하였다). 또한 이상의 일반적인 종교적 구성요건 외에 신선도는 다음과 같은 특수성을 지닌다. 1) 서구종교의 숭배대상은 여호와 또는 알라로서 국지적 민족적인데 신선도의 숭배대상은 삼신하나님으로서 보편적 세계적이다. 2) 서구종교의 신앙목적은 신의 구원에 의한 사후의 천국탄생으로서 개인주의적인데, 신선도의 신앙목적은 신인일체(神人一體) 내지 천지인합일(天地人合一)의 인격완성을 통한 성인군자 내지 견성성불(見性成佛)의 지향과 홍익인간 이화세계 건설로서 개인주의적이면서 세계주의적이다. 3) 서구종교는 어느 개인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조작된 종교로서 거기에 발생원리도 없다. 그러나 신선도는 불변적 진리인 천도(天道) 곧 삼신일체를 발생원리로 한다. 4) 서구종교의 교리와 사상은 시대적 민족적 소산으로서 국지적 민족주의적인데, 신선도의 교리와 사상은 명·성·정(命·性·精) 삼진(三眞)의 수련과 백·흑·황의 삼대인종을 배경으로 성립되어 보편적 세계주의적이다. 5) 서구종교는 수양방법으로서 단지 기도와 독경과 자선행위 뿐인데, 신선도는 수양방법으로서 기도와 독경과 자선행위 외에 명(命)·성(性)·정(精)의 삼원적 품부를 수련하는 조식법(調息法)·지감법(止感法)·금촉법(禁觸法)이 있다. 6) 서구종교는 신인상하(神人上下)의 생명불평등사상인데, 신선도는 천지인(天地人) 일체의 생명평등사상이다. 7) 서구종교는 2원론으로서 대립과 투쟁을 자기의 생존을 위한 당연한 수단으로 보는데, 신선도는 3원론적 1원론으로서 조화사상이었다. 신선도는 이상과 같이 종교적 구성요건과 서구종교와 다른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신선도는 지금부터 근 6천년 전, 세계인류가 원시의 미몽에서 깨기 전에 성립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신선도는 시대적 국지적 민족주의 종교가 아니라 보편적 세계주의 종교임을 의미한다. ? 상고시대의 우리나라는 부처님이 세운 나라로서 천축국(天竺國)이 었으며, 예의지국이었고 군자지국이었으며 신선지국이었다는 기록이 사실임을 의미한다. ? 신선도를 설한 한인천제와 한웅천황과 단군왕검은 신화적인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석가모니·공자·노자·예수보다도 더욱 위대한 성인이시며 부처님이었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 우리민족은 상대문명의 주인공으로서 동방문화의 개척자요 세계문명의 지도자였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 우리민족은 다른 민족과 다른 특수한 사상과 문화를 일찍이 개척함으로써 이웃 민족들로부터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민족의 문화가 말살당하게 된 동기도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 노자의 도교·석가의 불교·공자의 유교 등 이들 종교의 원류는 신선도로서 현재 국내에 있는 도교·불교·유교는 역수입되었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이에 대해서는 제2부에서 상설한다. ? 신선도는 현대철학이나 현대종교 이전의 선행종교로서 동양사상의 원류요 세계사상의 원조이며 모체라는 이론이 성립된다. ? 서양 사람들이 설정하여 놓은 원시니 선진이니 하는 개념은 이제 수정되어야 하고, 문화에도 생성소멸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서구문화기원설·북방문화기원설·남방문화유입설·중국문화수입설·인도문화수입설 등 종래의 학설들은 당연히 수정돼야 한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이상과 같이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본 연구는 천수백년만에 처음으로 제기되는 문제이며 너무나 새롭고 의외의 문제로서 당장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배달사상에 대하여 백지이면서 안호상 박사께서 말한 바, 중독·왜독·양독 등 외래사상에 중독된 사람들은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람들은 사소한 결함을 빙자하여 내용을 깊이 연구하여 보지도 않고, 무조건 부정하려 할 것이다. 물론 본 연구는 새로운 연구요 자료도 얼마 없는 데서 이루어진 연구로서 여러가지로 보완하여야 할 곳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치 미운 사람을 대하듯 무조건 흠집만 찾아내고 부정하려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한 이들에게 직언하나니 부정하려면 반드시 반증을 제시하여야 한다. 반증없는 부정은 학자의 도리가 아니요, 무조건 자기의 학설이나 통설만을 고집하려는 안일주의자요, 민족이나 인류의 명예보다도 자기 개인의 명예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이기주의자라는 혹평을 면치 못할 것이다. 깊은 자성이 있기를 촉구한다. 오호라! 여기에서 다소나마 우리민족은 미개민족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는 것 같다. 칠흑같이 어두웠던 긴긴 밤에 먼동이 트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해돋이 땅 동방의 금수강산에 밝은 해가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해중선국(海中仙國) 군자지국(君子之國)에 반드시 대운이 열리리라 믿는다. 7천만 민족의 3천년 한이 풀리고, 세계에 참다운 평화가 오리라 믿는다. 독자들은 분발하라. 민족과 인류를 위하여 용기를 내라. 배달사상은 젊은 독자들의 적극적인 연구를 기다리고 있다. 배달사상이 21세기의 세계를 지도하게 될 것이다. 부족한 점을 보완 재정비하고, 세계에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 그것이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사명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곧 국가의 위신을 세우고 민족의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며, 세계평화를 위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제2편 불교의 발상지는 우리나라이다 홍익인간 광명이세 Ⅰ. 서 론 제1편에서 상고시대의 우리나라에 고불(古佛 : 한인·한웅·한검)이 있었고, 그 고불에 의하여 천일·지일·인일 삼신일체의 천도에 바탕을 둔 도·불·유 삼교일체의 신선도가 성립되어 외래종교가 전래되기 전에 상고시대부터 우리나라에 있었음을 밝혔다. 이에 근거하여 우선 석가불교의 유래를 추적하여 본 결과 석가불교는 근본적으로 인도종교가 아니라 우리민족의 고유종교였다. 즉, 석가세존(釋迦世尊)의 씨족적 근원은 인도의 원주민도 아니었고 드라비다계도 아니었으며 아리아계도 아니라 단군족이었고, 그 출생지인 가비라도 네팔의 타라이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백두산 남쪽 기슭으로서 석가세존은 근본적으로 우리민족이었다.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인 설산 염부주(閻浮洲) 역시 인도의 히말라야산맥 어느 곳도 아니고, 인도 중부의 부다가야도 아닌 우리나라의 백두산 천지였다. 초전법륜지(初轉法輪地)인 녹야원(鹿野園)도 인도 중부의 사르나드(Sarnath)가 아니라 제주도 한라산이었다. 또한 불경은 소승경과 대승경으로 나뉘어지는데, 소승경(4부아함경)은 석가세존이 직접 설하신 경전이지만 대승경은 우리나라 고조선에서 인도로 전승된 신선도의 경전이었다. 대승경을 기록한 범어(산스크리트어)도 인도어가 아니라 상고시대 우리민족의 글자와 언어였다. 불교의 사상과 의식과 고유명사 및 전문용어도 우리민족의 신선도와 일치되었다. 따라서 석가불교의 원류는 전적으로 우리나라의 신선도였다. 이러한 학설은 석가불교가 우리나라에 역수입(逆輸入)되어 1600여년 만에 처음 제기되는 문제로서 불교학자와 불자들에게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너무나 이색적이고 상식을 벗어나는 이설(異說)이라 할 수 있다. 이래서 본 연구를 주체적 애국적 대다수의 불자들에게는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북돋우는 일이라 하여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겠지만, 반면에 수도에만 전념하여 조국도 민족도 떠나야 한다는 극히 이상적인 불자들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흥미도 생기지 아니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불교를 지나치게 믿던 나머지 인도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로 동경하고, 인도민족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으로 극찬하면서도,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잘 모르고 제 민족에 대하여 관심이 그리 없는 극소수의 불자들에게는 석가세존이 우리민족이고 불교가 우리나라에서 나왔다고 할 경우, 무조건 거부반응이 생기고 불쾌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본 연구에서의 주장은 불교의 신앙사회를 교란시키는 처사라 하여 지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널리 이해하고 냉정한 마음으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본 연구를 정독해 오해가 있으면 그것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풀고 높으신 비판과 가르침이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Ⅱ. 석가세존은 한국사람이다. 1. 석가세존의 탄생지는 가비라이다. 석가세존이 한국 사람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부터 풀어나가기로 한다. 이 문제는 석가세존의 탄생지와 성장지는 어디이며, 씨족적 근원은 어디냐 하는 문제로 나눌 수 있다. 첫째의 문제, 즉 석가세존의 탄생지와 성장지는 어디냐 하는 문제이다. {장아함경} 대본경을 보면 "내 아버지는 정반(淨飯)이라 이름하는 찰제리의 왕족이요, 어머니의 이름은 대청정묘(大淸淨妙)이다. 왕이 다스리는 성은 가비라(迦毘羅)라 이름하였다. 부처님은 다시 계송으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는 찰제리, 이름은 정반, 어머니는 대청정묘, 땅은 넓고 백성은 풍족하였으니 나는 거기에서 태어났노라"하였다. 곧 석가세존은 가비라성에서 태어났음을 말하고 있다. 가비라성은 동서남북에 4개의 문이 있고 수십채의 궁전이 있는 자그마한 성읍국가로서 마갈타국에 속해 있었다. 이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일반상식이다. 그러면 가비라성은 어디에 있는 어떤 성인가? {석가씨보(釋迦氏譜)}에 의하면 가비라는 염부주 중의 한 지역으로 지구에서 가장 중심이라 하였고, 과거의 고불(古佛)이 모두 이곳에서 일어났다고 하였다. {중아함경} 유연경에는 "나(석가세존)를 위하여 여러 채의 궁전, 곧 봄 궁전과 여름 궁전과 겨울 궁전을 지었으니, 나를 잘 노닐게 하기 위해서 였다"고 하여 가비라에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가 있었고, 석가세존 혼자만을 위한 궁전도 세채임을 말하고 있다. {근본설 일체유부 비나야파승사(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破僧事)} 제5를 보면, "설산 남쪽 기슭 경가하(古伽河) 곁이 가비라 선인이 사는 곳이니 가비라성과 멀지 않다"하여 가비라성이 설산 남쪽 기슭에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석가세존께서도 가섭에게 말하기를 "까마득한 옛날 나는 설산선인(雪山仙人)으로서 설산에 살면서 보살행을 닦았다"고 했다. 이를 보면 석가세존의 탄생지 및 성장지인 가비라는 설산 남쪽 기슭에 있었던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근세조선 세조 수양대군의 저술인 {석보상절}에 따르면 석가세존이 입멸하여 화장하자, 여덟섬 너말(8만 4천개)의 사리(舍利)가 나왔는데 이를 제천(諸天)과 용왕(龍王)에게 나누어주니 모셔다가 7보탑을 세웠다 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명기하기를 "인간 세상에 큰 탑이 넷이니, 가비라국 부처가 나신 곳에 하나와 마갈제국 성도하신 곳에 하나와 파라날국 녹야원 전법하신 곳에 하나와 구시국 열반하신 곳에 하나가 있더라"고 하였다. 즉 석가세존이 입멸하자 탄생지인 가비라에 석가세존의 사리불탑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상의 기록에 근거하여 가비라성의 성립요건을 인출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가비라는 마갈타국에 속해 있는 성읍국가였다. 둘째, 가비라성은 설산 남쪽 기슭에 있었다. 셋째, 가비라는 지구(세계)의 중심에 있었다. 넷째, 과거의 고불이 모두 가비라에서 일어났다. 다섯째, 가비라에는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가 있다. 여섯째, 가비라성 내에는 동서남북에 4개의 성문이 있었다. 일곱째, 가비라성의 넓이는 수만평이라 추정된다. 여덟째, 가비라성에는 수십채의 건물부지가 있다고 추정된다. 아홉째, 가비라성에 석가세존의 사리불탑이 있다. 열째, 가비라성 곁을 경가하가 흐른다. 위의 요건은 가비라성의 특수요건임과 동시에 성립요건으로서 여기에 부합일치되면 가비라성이라 할 수 있고, 부합일치되지 않으면 가비라성이라 할 수 없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2. 가비라는 네팔의 타라이가 아니다 그러면 석가세존의 탄생지인 가비라성은 어디인가? 지금까지 석가세존의 탄생지 및 성장지를 네팔의 타라이라 생각해왔고, 그것이 통설로 되고 있다. 이제 그것이 사실인가 아닌가를 위에 제시한 가비라성의 성립요건에 대입하여 확인해 보기로 한다. 첫째, 가비라성은 마갈타국에 속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타라이가 마갈타국에 속했었느냐의 문제이다. 네팔(과거의 인도)은 과거 영국의 식민지로서 고대역사는 모두 말살되어 알 수 없다. 따라서 타라이가 마갈타국에 속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 이 문제는 논외로 한다. 둘째, 가비라성이 설산 남녘 기슭에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타라이가 설산 남녘 기슭에 있느냐의 문제이다. 타라이 북쪽에 히말라야산맥이 있다. 그래서 타라이를 가비라성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히말라야산맥 가운데 설산이 없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장에서 상설한다. 여기에서 근본적으로 타라이는 가비라성지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셋째, 가비라는 지구의 중심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타라이가 지구의 중심에 있느냐의 문제이다. 가비라성은 아시아의 중심이 아니라 지구의 중심에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타라이는 아시아의 중심에 있다고 볼 수는 있으나, 지구의 중심에 있다는 주장이나 기록을 본적이 없다. 육안으로 세계지도를 보아도 네팔이 지구의 중심에 속한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이 문제 역시 부정된다. 넷째, 가비라에서 과거의 고불이 모두 일어났다고 했다. 그런데 타라이에서 과거의 고불이 일어났다는 기록을 본 바 없다. 다섯째, 가비라에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타라이에는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가 없고 우기와 건기만이 있다. 여섯째, 가비라성에 4개의 성문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 타라이에 있는 가비라성지라는 그곳에 4개의 성문부지가 없었다. 현지답사 결과 동서에 두개의 성문부지 밖에 없었다. 곧 남북에는 성문부지가 없었다. 이 문제 역시 부정된다. 일곱째, 가비라성지의 넓이는 수만평에 이른다고 추정된다. 그러면 타라이에 있는 가비라성지라는 그 곳의 넓이가 수만평이 되느냐의 문제이다. 현지를 답사할 때, 목측에 의하면 동서의 길이 약 150m, 남북의 길이 약 80m로서 성의 넓이는 약 2천평 전후라 추정되었다. 수만평이란 생각할 수도 없는 문제였다. 이 문제 역시 부정된다. 여덟째, 가비라성 내에 수십채의 건물이 있었다고 추정된다. 그러면 타라이에 있는 가비라성지라는 그곳에 수십채의 건물부지가 있느냐의 문제이다. 석가세존이 거처하던 세 채의 부지와 부왕과 모후께서 거처하던 건물부지 그리고 신하들의 사무실과 시녀들의 숙소인 건물부지를 생각하면 가비라성지 내에 수십채의 건물부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타라이에 있는 가비라성지라는 그곳에는 다만 두 개의 건불부지만이 있었다. 따라서 이 문제 역시 부정된다. 아홉째, 가비라성 내에 석가세존의 사리불탑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 타라이에 있는 가비라성지라는 그곳에 석가세존의 사리불탑이 있었느냐의 문제이다. 현지를 답사할 때 안내원의 설명 가운데 사리불탑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혀 없었다. 마야 부인이 친정 고리국으로 가던 도중에 룸비니 동산에서 석가세존을 출산했는데 룸비니 동산이라는 거기에도 석가세존의 사리불탑이 없었다. 룸비니 동산이라는 그곳 역시 동산이 아니라 평지였다. 열째, 가비라성 곁을 강물이 흐른다고 했다. 그런데 타라이나 그 곁을 흐르는 강물이 없었다. 강이 있었다는 설명도 듣지 못했다. 이상과 같이 네팔 당국이 석가세존의 탄생지라고 주장하는 타라이는 어느 하나도 가비라성의 성립요건에 부합되지 않는다. 따라서 네팔의 타라이는 가비라성지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3. 가비라는 우리나라의 백두산 남쪽기슭이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백두산 남쪽 기슭이 가비라성의 성립요건에 부합되느냐의 문제이다. 첫째, 가비라성은 마갈타국에 속해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상고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백두산의 남쪽과 동쪽 그리고 북쪽에 걸쳐 말갈국이 있었고, 어느 사학자의 말에 의하면 가비라성도 우리나라의 상고사에 나온다고 한다. 석가세존의 어머니는 그 친정이 고리국(?離國)인데 우리나라의 상고사에도 고리국이 나온다. 따라서 백두산 남쪽 기슭은 가비라성의 성립요건과 제1차로 부합일치된다. 둘째, 가비라성이 설산 남쪽기슭에 있었다. 그런데 백두산이 설산이다. 이 문제는 다음 장에서 상설된다. 셋째, 가비라는 지구의 중심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백두산이 지구의 중심에 있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세계지도를 보면 일본열도는 좌청룡, 지나대륙은 우백호에 해당되며, 남북아메리카 대륙은 외청룡, 아프리카 대륙과 유럽대륙은 외백호에 해당되고, 시베리아 대륙은 현무, 오세아니아주는 주작에 해당되어 백두산이 비교적 지구에서 가장 중심인데, 세계지리학회에서 위성사진을 근거로 백두산을 지구의 중심이라 했다. 따라서 백두산 남쪽 기슭은 가비라성의 성립요건과 제3차로 부합일치된다. 넷째, 과거의 고불이 모두 가비라에서 일어났다고 했다. 그런데 백두산에서도 과거의 고불이 일어났다. 우리나라의 역사기록에 의하면 한웅·한검 등 과거의 고불이 모두 백두산에서 일어났다. 이에 대해서는 본서 제1편에서 밝혔다. 따라서 백두산 남쪽 기슭은 가비라성의 성립요건과 제4차로 부합일치된다. 다섯째, 가비라에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백두산에도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가 있다. 이는 가비라성의 성립요건과 제5차로 부합일치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밝힌 것 외에 나머지 성립요건은 확인할 수 없는 문제이므로 논외로 한다. 이상과 같이 백두산 남쪽 기슭과 석가세존의 탄생지라는 가비라성이 서로 부합일치된다. 다만 부수적인 문제만이 몇가지 확인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 따라서 석가세존의 탄생지인 가비라성이 설산 남쪽 기슭에 있었다는 불서의 기록이 틀림없다면 가비라성은 백두산 남쪽 기슭에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최문창후전집:崔文昌侯全集} 대숭복사비명병서(大嵩福寺碑銘?序)에도 "석가세존은 우이(?夷 : 해돋이땅)의 태양인데 서토(西土)에서 드러냈으나 동방에서 출생하였다"하여 석가세존의 탄생지는 인도가 아니라 동방 해돋이땅에서 태어났음을 말하고 있다. 해돋이땅이란 동이족이 사는 동방을 지칭하는데. 동이족이 사는 동방은 우리나라를 의미한다. 따라서 석가세존은 우리나라에서 태어났음을 {최문창후전집}이 확인해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석가불은 우리민족이라는 사실이 반은 증명됐다고 할 수 있다. 4. 석가세존의 씨족적 근원은 단군족이다. 석가세존의 탄생지인 가비라가 우리나라의 백두산 남쪽 기슭이라면 당연히 그 씨족적 근원도 단군족 곧 우리민족이라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불타의 三十二大人相을 보면, 불타는 전신이 황금색이라 하고, 불상을 보아도 전신이 황금색이며, 두상(頭上)에는 우리민족의 고대 풍속인 왕의 상투가 있다. 이를 보아도 석가세존은 우리민족이라 추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종래의 통속적인 관념에 의하여 무조건 석가세존은 인도 사람이며, 흑인종으로 생각해왔다. 왜냐하면 불체(佛體)의 황금색은 석가세존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종교적으로 미화하여 우리들 황인종의 심성에 맞게 도색한 것으로 생각하고, 머리의 상투는 새가 새끼를 까고 간 새의 둥우리라는 전설을 믿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이나 전설은 근거없는 독단이며, 기록을 보면 석가세존은 우리민족과 같은 단군족이었고 석가세존은 그 후예였다. 종남산(終南山) 도선(道宣)의 {석가씨보(釋迦氏譜)}에 의하면 부처님의 성씨를 구담(瞿曇)·감자(甘蔗)·석가(釋迦)·사이(舍夷)·일종(日種)이라 하였고, 승우(僧祐)의 {석가보(釋迦譜)}에는 좀더 자세히 밝혀 주고 있는데, 구담을 사이라 하고 사이는 외국의 귀성(貴姓)이라 하였다. 감자는 묘족(苗族)의 후예라 하고 석가는 단종 찰제리(檀種刹帝利)라 하였다. 사이의 이(夷)는 동이(東夷)·서이(西夷)의 이(夷)이며, 사이는 외국의 귀성이라 하였으므로 사이는 인도의 원주민도 아니고, 드라비다계(系)도, 아리아계(系)도 아니라 외국에서 인도로 이주한 동이(東夷)나 서이(西夷)의 일파로서 넓게는 알타이족(族)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석가세존은 알타이족이라 할 수 있다. 우리민족도 주지하는 바와 같이 알타이족이다. 여기에서 석가세존은 넓은 의미에서 우리민족과 같은 황인종이라 할 수 있다. 묘족은 사전에 의하면 옛 몽고계 인종이라 하였다. 영국의 인도 사학자 빈센트 스미스(Vincent Smith)도 석존을 몽고계 인종이라 주장하였다. 우리민족도 몽고계 인종이다. '몽고'을 서구식으로 발음하면 "몽골리아(Mongolia)"이고, 본토의 발음은 "?고려(Mongolia)"이다. 그 어원을 말하면 [?]은 말(馬)의 고어이며, 고려는 왕건태조가 세운 근세 우리나라의 국명이기도 하지만 상고시대부터 불러오던 우리나라 지역에 대한 이칭(異稱)이다. 즉 '?고려'는 '말고려'란 뜻으로 말을 잘 기르고, 잘 다루며, 잘 타는 고려족이란 뜻이다. 따라서 몽고족은 원래 우리민족의 지류이다. {단군세기}를 보아도 몽고족은 단군조선 제4세 단군 오사구(烏斯丘)의 동생 오사달(烏斯達)의 후손으로서 우리민족의 지류이다. 여기에서 석가세존이 몽고계 인종이라면 곧 우리민족이라 할 수 있다. 단종(檀種)도 단군종족이란 뜻으로서 직접 우리민족을 가리키고, 찰제리(刹帝利)도 {삼국유사}에 신라왕을 찰제리라 하였으므로 우리민족을 가리키며, 일종(日種)은 광명을 숭상하는 태양족이란 뜻인데 우리민족도 광명을 숭상하는 태양족으로서 일종 역시 우리민족을 가리킨다. 이와 같이 어느 측면에서 보아도 석가세존은 우리민족이다. 더욱이 석가세존의 초상화를 보면, 그 모습이 동양적인 이목구비(耳目口鼻)에 복장이 인도풍(印度風)이 아니라 우리민족 고유의 한복선이다. 이를 보아도 석가세존은 한국사람임에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고, 우리민족은 부처님을 낳은 민족이 된다. 그러나 그러한 기록이 문화인류학 또는 형질인류학 등의 과학적 이론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전설이나 추정에 의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위의 소론은 불교론사들의 저술인 {석가씨보} 및 {석가보}와 만인이 공인하는 사전에 의한 주장으로 함부로 부정될 수 없다고 본다. 이러한 사실로만 보아도 후대가 선대의 사상을 계승한다고 볼 때, 석가세존은 우리민족의 상대사상인 신선도를 수용할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일반상식으로는 석가세존이 우리민족이라면 무엇 때문에 머나먼 인도에까지 갔느냐 하고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신선도의 교리에 의하면 세계인류는 모두 삼신에 의해서 태어난 동포이며 한집안 식구이다. 따라서 인도인의 고민이 곧 우리민족의 고민이며 인도인의 행복이 곧 우리민족의 행복이다. 그런데 인도인은 지금도 브라만·찰제리·바이샤·수드라의 사성계급(四姓階級)으로 시달리고 있듯이 과거에는 더욱 시달렸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여기에 석가세존이 인도로 가게 된 동기가 있고, 인도에 불교가 보급되게 된 동기가 있는 것이다. Ⅲ. 석가세존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에서 고행성도하였다. 1.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는 설산이다. 석가세존이 단군족의 후예라면 당연히 고행성도지(苦行成道地) 역시 우리나라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석가세존은 보살 당시 설산(雪山) 염부주(閻浮洲)에서 6년동안 고행 끝에 그 남녘 기슭 니련선하(尼連禪河)에서 목욕하고 그 곁의 가야산(伽倻山 또는 가사산;伽寐山)에서 수도고행중 동방계명성(東方啓明星)의 밝은 별빛을 보고 도를 깨치었다고 한다. 그후 설산 총림방 중의 진귀조사(眞歸祖師)로부터 종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면 설산은 인도 북부 히말라야 산맥 가운데 있는 어느 산인가? 아니면 우리나라의 백두산인가? 더욱이 백두산에도 눈이 일년 내내 녹지 않으므로 백두산을 일명 설산이라 하며, 백두산을 우리민족의 순수한 고유어로 표현할 경우, 그것은 히머리산, 히마리산, 히마리야산이 되고, 히마리야산을 영어로 표기하면 "Himalya"산이 되며, 이를 발음하면 히말리야산이 되며, 히말리야가 전음되어 히말라야(Himalaya)산이 된다. 염부주도 신주(神州) 또는 진단(振旦)이라 하는데, 우리나라의 백두산 일대 또는 천지일대(天池一帶)도 거기에서 신선도가 베풀어졌고, 신선과 성인들이 살았으므로 신시(神市) 또는 신주(神州)라 하고, 그곳은 불사약인 자연생 인삼의 원산지여서 진단(震檀·振旦·震丹·眞丹)이라 불리웠던 것이 후에 우리나라의 이칭이 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인 설산 염부주가 인도 북부의 히말라야산맥 어디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나라의 백두산과 천지주변을 의미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러한 경우 흔히 아전인수격(我田引水格)으로 해석하여 자기에게 유리한 쪽을 택한다. 그것은 학문하는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 없다. 학문은 어디까지나 미확정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어떠한 판단기준에 의하여 확정하여야 한다. 이때 인용하는 방법이 가설검증법(test of hypothesis)이다. 가설검증법이란 어떠한 가설 즉 어떤 판단기준을 세우고 그 판단기준에 의하여 미확정적인 문제를 확정하는 방법이다. 이 경우 판단기준은 불서의 기록 밖에 달리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불서의 설산과 염부주가 우리나라 및 인도의 그것 가운데 어느 것과 일치하느냐에 따라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가 확정되게 된다. 2. 설산은 어떤 산인가? 그러면 석가세존이 고행성도한 설산과 염부주는 어떠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가? 우선 판단기준으로서 불서에 기록된 염부주와 설산의 특수요건을 요약정리한다. 참고서적은 장아함경·중아함경·석가씨보·석가방지 등이다. 우선 염부주의 성립요건이다. ? 염부주는 수미산 남쪽 해중(海中)에 있다. ? 염부주는 3변이 비등하나 북은 넓고 남은 좁아(北闊南狹) 인면상(人面像)이다. ? 염부주를 진단 또는 신주라 한다. ? 염부주 중에 한 개의 큰 못인 아뇩달지가 있고, 4방으로 4대하가 흐르는데 모두 오른쪽으로 돌아 흐른다. 다음은 설산의 성립요건이다. ? 설산은 지구의 중심에 있다. ? 설산은 3층이다. ? 설산은 하수의 원천으로서 수지영부(水之靈府)이다. ? 설산의 정상에 큰 못인 아뇩달지(阿?達池)가 있고, 이를 당(唐)에서는 무열뇌지(無熱惱池)라 하였다. ? 아뇩달지에서 북쪽으로 굉장한 폭포(謎羅川)가 흐른다. ? 아뇩달지의 둘레는 8백리이다. ? 아뇩달지에 용왕이 산다(龍王住處). ? 아뇩달지에서 4방으로 4대하가 흐르는데, 모두 오른쪽으로 돌아 흐른다. ? 아뇩달지의 4안(四岸)이 보물장식 같다. 아뇩달지의 정남과 동쪽에 대단한 평지가 있는데 동서로 경사를 이루고, 5천리에 이른다. 아뇩달지의 정남은 첨처(尖處)이며, 그 밑은 지옥이다. 이상은 석가세존이 6년간 고행성도한 염부주와 설산의 성립요건을 정리한 것이다. 따라서 어느 지역이나 어느 산이 위의 성립요건에 부합일치되면 그곳이 염부주 또는 설산이라 할 수 있고, 부합일치되지 않으면 염부주 또는 설산이라 할 수 없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3. 인도북부의 히말라야 산맥에는 설산이 없다 그러면 불자들이 성산으로 모시는 히말라야 산맥 가운데 어느 산이 위에 제시한 설산의 성립요건에 부합일치되느냐의 문제이다. 최소한 히말라야산맥 가운데 어느 산의 정상에 하수의 원천인 큰 못이 있느냐의 문제이다. 동아일보의 보도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산상호수는 페루와 볼리비아 국경에 있는 티티카호와 소련의 레닌그라드 근처에 있는 라도카호라 하여 인도 히말라야산맥의 어느 산의 정상에도 큰 못(호수)이 없음을 확인하여 주고 있다. 이는 곧 인도 북부 히말라야 산맥에는 석가세존이 고행성도한 설산이 없음을 확인하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뿐더러 현장(玄濱)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를 비롯하여 어느 불서를 보아도 석가세존이 히말라야 산맥의 어느 산에서 고행했다는 기록을 일절 찾아볼 수 없다. 더욱이 학자들의 불교사서를 보면 석가세존의 설산고행을 허무맹랑한 전설같이 흘려버리고 있다. 그것은 인도 지역에 불서에 기록된 그러한 설산이 없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인도 북부의 히말라야 산맥에는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인 설산이 없는 것이 분명한 것이다. 4. 인도의 부다가야는 설산이 아니다. 그러면 인도 중부의 부다가야가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인가? 현재 인도 당국은 부다가야를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라 하여 여러가지의 시설을 갖추어놓고 있으나 이제 기록과 현지를 비교하면서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비판한다. 첫째, 부다가야는 산악이 아니라 평지이다.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인 설산은 산악이다. 이는 불교신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일반상식이다. 그런데 인도 중부의 부다가야는 산악이 아니라 평지이다. 그밖에도 부다가야는 설산의 특수요건을 어느 하나도 갖추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해 인도를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 것이다. 그리고 부다가야는 인도 중부에 가까운 곳으로 인도 북부의 히말라야산맥 중의 어느 산을 설산이라 할 경우 거기에서 2천여리 이상 남쪽으로 떨어져 있다. 둘째, 부다가야의 네란자라강은 불서의 니련선하가 아니다. 석가세존은 6년 고행 마지막에 니련선하(尼連禪河)에서 목욕하고, 가야산(가사산 또는 고석산)의 보리수 밑에서 성도했다. 니련선하는 종교용어로서 강물이나 그 주변의 풍경을 나타낸 표현이다. 그 뜻으로 말하면 강바닥에 깔려 있는 모래가 보일 정도의 깨끗하고 맑은 물을 의미하며, 강변에 연이어 서 있는 병풍석은 마치 비구니가 줄지어 서서 기도하는 것 같은 선경을 의미한다. 인도의 부다가야 가까이에도 네란자라강이 흐른다. 네란자라강은 건기에는 말라 버리고 우기에만 흐르는 강으로서 맑지도 않고 강변은 흙과 모래로 된 얕은 언덕으로서 병풍석이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니련선하는 설산에서 동남해로 들어가는 항하의 지류로서 동쪽 아니면 동남쪽으로 흐르는 강이라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부다가야의 근교를 흐르는 네란자라강은 인도 중부의 데칸고원을 시발로 하여 남쪽에서 동북쪽으로 흐르는 강이다. 그러므로 부다가야의 네란자라강은 불서의 니련선하라 할 수 없다. 셋째, 부다가야에 석가세존의 불탑이 없다. 수양대군의 저술인 {석보상절}에 의하면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에 불탑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라는 부다가야에 석가세존의 불탑이 없다. 있다면 석가세존이 입멸하여 약 2백년 후에 아쇼카왕이 세웠다는 돌기둥과 정사와 그후에 만들어졌거나 다른 데서 옮겨온 승려들의 불탑만이 있을 뿐이다. 넷째, 부다가야는 조작되고 있다. 부다가야는 가야에 부다를 붙인 명칭으로써 가야보다 후에 조작된 명칭이라 할 수 있다. 즉 가야를 힌두교의 성지로 만들면서 어쩔 수 없이 붙인 명칭인 것이다. 그런데 부다가야의 불탑들은 다른 데서 옮겨온 것인가 하면, 정사의 작은 원판 자체가 근대의 위작이라는 학자(B.M.Barua)도 있으니, 부다가야의 유물과 유적들은 인도인의 긍지를 높이고 인도를 찾아오는 외국불자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하여 후대에 와서 조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이유에 근거하여 인도의 부다가야는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인도의 부다가야는 석가세존이 고행성도한 설산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다가야를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라고 믿는 우리나라의 승려들이나 불교학자들의 심리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 더욱이 부다가야에 막대한 금액을 드리면서 절까지 지으니, 신앙이란 그렇게도 맹목적인가? 맹목적 신앙으로 어떻게 견성성불할 수 있단 말인가? 참으로 통탄할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5. 설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인도 북부의 히말라야 산맥도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가 아니며, 인도 중부의 부다가야도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가 아니다. 그렇다면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는 어디인가? 자연히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라고 추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에 따라 염부주와 백두산의 천지(신시), 설산과 백두산을 비교한다. 먼저 염부주와 백두산의 천지를 비교한다. 참고문헌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학자의 논문들이다. 1) 염부주는 海中에 있다고 했는데, 고조선을 海中이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상설한다. 2) 염부주는 3변이 비등하며 북은 넓고 남은 좁아 인면상인데, 백두산의 천지 모형도 3변이 비등하며 북은 넓고 남은 좁아 인면상이다. 3) 염부주를 진단 또는 신주라 했는데, 백두산의 천지주변을 진단 또는 신주 또는 신시라 한다. 4) 염부주에 아뇩달지라는 못이 있어 거기에서 사방으로 4대하가 흐르는데, 백두산 정상에도 천지라는 못이 있고 거기에서도 사방으로 4대하가 흐른다. 이상과 같이 백두산 천지의 특수요건이 염부주의 성립요건에 부합일치된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염부주가 인도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백두산 천지 곧 신시임을 의미한다. 또한 {석가방지}를 보면 "염부주를 크게 3분하면 2분은 북쪽인데, 땅은 넓고 사람은 드물며, 흉노가 사는데, 도(道)에 힘쓰지 않는다. 1분은 남쪽인데 3면이 바다에 닿았고, 사람은 많으나 마음이 맑고 성인의 교화를 잘 받은 대성도(大聖都)라"고 하였다. 이를 보면 염부주는 한편 만주·러시아의 연해주·한반도를 포괄하는 상고시대의 고조선 강역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와 같이 볼 때, 염부주는 좁게는 백두산 천지 곧 신시를 의미하며, 넓게는 상고시대의 고조선 강역 전체를 의미한다. 다음은 설산과 백두산의 비교이다. 1) 설산을 히마리야산이라 하는데, 백두산도 우리민족의 순수한 고유어로 표현하면, 히마리야산이며, 한편 설산이라 한다. 2) 설산은 지구의 중심에 있다. 그런데 백두산이 지구의 중심에 있다고 세계지리학회에서 발표하였다. 3) 설산이 3층인데 백두산도 3층이다. 4) 설산은 하수의 원천으로서 수지영부인데, 백두산도 하수의 원천으로서 수지영부이다. 5) 설산의 정상에 아뇩달지라는 큰 못이 있고, 당나라에서는 그 못을 무열뇌지라 하였다. 그런데 백두산의 정상에도 천지라는 큰 못이 있고, 천지를 최남선은 무열뇌지라 하였다. 6) 아뇩달지는 3변이 비등하며 북은 넓고 남은 좁아 인면상인데, 백두산의 천지 모형도 3변이 비등하며 북은 넓고 남은 좁아 인면상이다. 7) 아뇩달지에서 사방으로 4대하가 흐르고, 그 하수는 오른쪽으로 돌아 흐르는데, 천지에서도 사방으로 4대하가 흐르고 그 하수 역시 오른쪽으로 돌아 흐른다. 8) 아뇩달지 북쪽에 굉장한 폭포(謎羅川)가 흐르는데, 천지의 북쪽에도 굉장한 폭포가 흐른다. 9) 아뇩달지 정남벽상에 첨처가 있고, 그 밑에 지옥이 있는데, 천지의 정남벽상에도 예각직암이 높이 솟아있고, 그 밑은 낭떠러지이다. 10) 아뇩달지의 남쪽과 동쪽에 5천리에 이르는 대단한 평지가 있다. 그런데 백두산 천지의 남쪽과 동쪽에도 약 4만km2의 대평지인 개마고원이 있다. 11) 아뇩달지의 못 둘레가 8백리라 한다. 그런데 천지의 못 둘레는 80리라 한다. 단위는 과거와 현재, 인도와 중국과 우리나라가 서로 다르므로 [8]이라는 숫자에 의의가 있는 것이다. 12) 아뇩달지의 4안이 보물장식 같다는데, 천지의 4위도 형형색색하여 보물장식 같다. 13) 아뇩달지는 용왕주처(龍王住處)인데, 백두산 천지를 용왕담(龍王潭) 또는 용담(龍潭)이라 한다. 이상을 도표화하면 도표(6)과 같다. 도 표(6) 설산과 백두산의 비교표
"A와 a, B와 b를 비교하시요" 이상과 같이 우리나라의 백두산의 특수성이 설산의 성립요건에 부합일치되고, 인도에는 그러한 설산이 없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연역할 수 있다고 본다. 1) 불서의 설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2) 염부주도 인도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백두산 천지이다. 3) 석가세존이 설산 염부주에서 6년 고행 끝에 그 남녘 기슭 가야산에서 성도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우리나라의 백두산 천지에서 6년 고행 끝에 그 남녘 기슭의 가야산(우리나라의 {신교총화;神敎總話}에도 나오는 산으로서 고유명사가 아니라 승려들이 수도하는 산)에서 성도하였음을 의미한다. 4) 석가세존에게 종지를 넘겨준 진귀조사 역시 인도 사람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다. 5 석가세존의 탄생지인 가비라성도 우리나라의 백두산 남녘 기슭에 있었다. 6) 석가세존은 근본적으로 우리민족이다. Ⅳ. 석가세존의 최초 설법지는 제주도 한라산이다 1. 석가세존의 최초 설법지는 파라날 녹야원이다. 석가세존은 원래 한국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의 백두산에서 고행성도하였다. 그렇다면 석가세존이 먼 인도에까지 가기 전에 먼저 우리나라에서 법을 설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석가세존의 최초 설법지를 중인도 베나레스시(Benares市)의 사르나드(Sarnath)라고 생각해 왔다. 여기에서 석가세존의 최초 설법지가 우리나라인가? 아니면 인도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그리고 그 판단기준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중아함경} 라마경을 보면, 석가세존이 성도한 후 파라날(波羅捺) 선인(仙人)이 사는 녹야원 가시도읍(加尸都邑)에서 교진녀(?陳女) 등 다섯 비구들을 제일 먼저 만나고 거기에서 사제(四諦)의 법을 설한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즉 석가세존의 최초 설법지(이를 흔히 初轉法輪地라 표현함)는 파라날(波羅捺) 녹야원(鹿野園)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녹야원에 대한 자세한 기록으로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娑論} 제183권을 보면 녹야원은 예로부터 선인이 사는 곳이라 하여 선인주처(仙人住處)라 하며, 예로부터 선인이 법을 설하던 곳이라 하여 선인논처(仙人論處)라 하고, 500 선인이 공중을 비행하던 중에 인연을 잃고 그곳에 떨어졌다 하여 선인타처(仙人墮處)라 하며, 뭇 사슴이 서식한다 하여 녹림(鹿林) 또는 녹원(鹿園)이라 하고, 보리수가 많다 하여 보리수처(菩提樹處)라 하였다. 또한 수양대군의 저술인 {석보상절}에 의하면 녹야원에 석가세존의 사리불탑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판단기준으로서 녹야원의 성립요건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 녹야원은 산악이다. ? 녹야원은 녹림 내지 녹원이다. ? 녹야원은 선인주처 내지 선인논처이다. ? 녹야원은 선인타처이다. ? 녹야원은 보리수처이다. ? 녹야원에 석가세존의 사리불탑이 있다. ? 녹야원에 가시도읍이 있다. 이상의 일곱 가지 요건이 녹야원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성립요건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위의 일곱 가지 요건을 충족시키면 그곳이 곧 녹야원으로서 석가세존의 최초 설법지라 할 수 있으며, 만약 충족시키지 못하면 그곳은 녹야원도 아니고 석가세존의 최초 설법지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2. 파라날 녹야원은 인도의 사르나드가 아니다. 그러면 인도 당국이 석가세존의 최초 설법지라고 주장하는 인도 중부의 사르나드가 녹야원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부터 먼저 따져 보기로 한다. {불교사전}의 기록을 보면 "바라날은 중인도 마갈타국의 서북쪽에 있는 나라로서 별명을 가시라 하고 지금의 오우드 지방, 베나레스시(Benares市)에 해당하며, 석가세존이 성도한지 三七日후에 이 나라의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법을 설하여 교진녀 등 다섯 비구를 제도하고, 그후 2백년이 지나서 아육왕(아쇼카왕)이 그 영지를 표시하기 위하여 두 개의 석주를 세웠다"고 하였다. 또한 다른 기록을 보면 "최초 설법의 땅은 현재 사르나드라고 불리며 베나레스시 북동쪽 약 7km되는 지점에 있다. 이는 '사랑가 나타(사슴의 왕)'를 생략한 말에서 유래한다. 이 지역은 경전에 '사슴동산이나 선인이 사는 곳' 등으로 기록되어 있는 곳이다"고 서술되어 있다. 이상의 기록과 현지답사를 근거로 인도의 사르나드를 녹야원의 성립요건에 대입시켜 보기로 한다. ? 녹야원은 산악인데, 인도의 사르나드는 약 2천평 정도의 평지였고 산악이 아니었다. ? 녹야원은 녹림 내지 녹원인데, 인도의 사르나드는 산악이 아닌 자그마한 들판으로서 사슴이 살만한 곳도 못되었고, 사르나드에 사슴이 살았다는 기록도 본 바 없다. ? 녹야원은 선인주처 내지 선인논처인데, 인도의 사르나드는 평지로서 근본적으로 선인주처 내지 선인논처가 될 수 없는 곳이었다. ? 녹야원은 거기에 500 선인이 떨어졌다는 선인타처인데, 인도의 사르나드에서 5백신선에 대한 어떠한 물증도 찾아볼 수 없었고, 그에 대한 전설도 기록도 본 바 없다. 따라서 인도의 사르나드는 선인타처가 아니었다. ? 녹야원은 보리수처인데, 인도의 사르나드는 보리수처가 아니었다. 보리수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동인도(東印度)에서 자라는 뽕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서 키가 30m쯤 되고, 잎은 염통꼴로 끝이 뾰족하며 가죽바탕으로 윤이 나고, 꽃은 은두화로 무화과와 같은 열매가 열린다. 이 나무를 인도에서 보리수라 한다. 또 하나는 보리수과에 속하는 나무로서 제주방언으로는 '볼레낭'이라 한다. 키는 3m 정도이고, 잎은 타원형이며, 흰 비늘이 덮이고 어긋나게 나는데 빨간 물렁 열매가 가을에 붉게 무르 익는데 그 열매를 먹는다. 이 나무는 줄기를 잘라버려도 좀처럼 죽지 않고 새싹이 돋아난다. 이를 평하면 전자는 뽕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서 원래의 이름은 보리수가 아닌 것이다. 단지 인도에서 보리수라 부르므로 보리수가 되고 있는 것이다. 후자는 보리수과에 속하고 끈질긴 생명력으로 볼 때 진짜 보리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후자의 보리수과에 속하는 나무 즉 제주 방언으로 볼레낭이라 불리우는 보리수는 인도의 사르나드에는 한 그루도 없었다. 따라서 인도의 사르나드는 보리수처가 아닌 것이다. ? 녹야원에 석가세존의 사리불탑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인도의 사르나드에 석가세존의 불탑이 없었다. 불탑은 거의 돌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사람이 고의적으로 없애버리지 않는 한 몇 천년이고 그대로 남을 수 있다. 그런데 인도의 사르나드에 석가세존이 입멸하자 조성하였다는 불탑이 없었고, 있었다는 기록도 본 바 없다. 아육왕이 그 영지를 표시하기 위하여 두 개의 석주를 세운 것도 석가세존이 초전법륜한 지 약 2백년 후라 하였다. 그밖에 스투파·불상·승원 등이 사르나드에 있으나 그것은 모두 B.C. 3세기 이후에 조성된 것들이었다. ? 녹야원에 가시도읍이 있었다. 그런데 인도의 사르나드에 가시도읍이 없었다. {중아함경}에 의하면 파라날에 녹야원이 있고, 녹야원에 가시도읍이 있다. 그런데 녹야원이라는 사르나드 자체가 약 2천평 정도로서 그 속에 가시라는 도읍지가 존재할 수 없었고, 베나레스시의 별명을 가시라 하여 불서의 기록과 맞지 않는다. 이상과 같이 인도의 사르나드는 판단기준인 녹야원의 성립요건에 어느 하나도 부합되지 않는다. 따라서 인도의 사르나드는 녹야원이라 할 수 없고, 석가세존의 초전법륜지라 할 수도 없다. 더욱이 대성자이시며 대각자인 부처님이 초전법륜한 곳을 입멸하여 2백년 후까지 그대로 방치하였다는 것이나, 1794년 베나레스왕의 대신이 사르나드의 유적을 파괴한 것도 이유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사르나드를 녹야원이라 한 것은 석가세존 당시 또는 입멸 후 비유적으로 불리던 것이 후세에 이르러 인도인의 긍지를 높이고 찾아오는 외국의 불자들에게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비유를 사실같이 조성시킨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3. 파라날 녹야원은 제주도 한라산이다. 글자의 뜻으로 볼 때 파라날은 물결치는 나라 곧 섬나라를 의미하는데, 제주도(濟州島)가 바로 물결치는 나라 곧 섬나라이며, 녹야원이란 사슴이 서식하는 산악을 의미하는데 제주도 한라산에 사슴이 살았고, 정상의 연못에서 흰사슴이 물을 먹었으므로 그 연못을 백록담(白鹿潭)이라 한다. 그 동쪽은 녹산장(鹿山場)으로서 사슴이 놀던 들판이다. 또한 제주도 한라산에는 우거진 숲도 많고 공기도 맑으며 생수도 많다. 이러한 것만 보아도 제주도 한라산이 녹야원이 아니었던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제 제주도 한라산이 녹야원인가 아닌가를 확인하기 위하여 녹야원의 성립요건에 대입시켜 보기로 한다. 첫째, 녹야원은 산악이다. 그런데 제주도 한라산도 산악이다. 제주도 한라산은 1950m의 한국 제2의 명산이다. 이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로서 설명이 필요없다고 본다. 둘째, 녹야원은 녹림 내지 녹원이다. 그런데 제주도 한라산도 녹림 내지 녹원이다. 한라산은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로서 선산(仙山)이다. 선산이란 선인이 거처하는 산을 의미하는데, 선인은 동물 중에서 그 품행이 고결하고 장생한다는 사슴과 벗을 한다. 조관빈의 {한라산기}를 보면 "한라산에 본시 사슴이 많았는데 매양 새벽과 저녁이면 사슴들이 백록담에 나와 물을 마신다. 어느 때 한 사냥꾼이 활을 들고 못가의 바위 뒤에 숨어앉아 기다리다가 문득보니 사슴의 떼가 몰려 나오는데 100인지 1000인지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중에 가장 큰 사슴의 몸 빛은 희고 광채가 났다. 어이한 백발 노옹이 그 등 위에 올라탔었다. 사냥꾼은 활을 들러 쏘기는 커녕 그만 놀라 어찌할 줄을 몰랐다. 이윽고 맨 끝으로 따라가는 작은 사슴 하나를 쏘았더니, 또 사슴을 타고 오는 신선이 있어 손가락으로 사슴을 헤아리는 듯하므로 엽사는 가슴을 두근거리다가 다시 문득 보니 그들은 간 곳이 없었다"하여 한라산에 신선과 함께 사슴이 살고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또한 한라산 동쪽 허리에 사슴이 논다는 녹산장(鹿山場)과 아울러 소록봉(小鹿峯)과 대록봉(大鹿峯)이 있다. 한라산 서남쪽 중문동에도 겨울이면 사슴이 내려와 서식한다는 녹하악(鹿下岳)이 있다. 이를 보면 제주도 한라산은 녹림 내지 녹원이었고, 동시에 선인녹원(仙人鹿園)이었다. 셋째, 녹야원은 선인주처 내지 선인논처이다. 그런데 제주도 한라산도 선인주처 내지 선인논처이다. 앞에서 한라산의 백록담에 신선이 나타났었다는 기록을 소개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정의·김녕·함덕에 신선이 많다 하였고, 한라산은 원산(圓山)이니 곧 바다 가운데 있다는 원교산(圓矯山)이고 그 동은 동무소협(東巫小峽)인데 신선이 사는 곳이라 하였다. {법주기}에도 박가범(薄伽梵) 부처 당시에 16존자의 한 사람인 발타라존자께서 한라산 영실(靈室)에 있었다고 하였다. 영실에서 수양한 사람의 말에 의하면 영실은 10평 전후의 신령스러운 자연동굴인데 거기에는 자연석으로 된 불상이 있고, 봄·여름·가을·겨울 언제나 온도의 변화가 없으며, 지금도 계절따라 선인들이 영실에 와서 수도한다고 한다. 따라서 제주도 한라산은 예로부터 신선이 살았다는 선인주처 내지 선인논처인 것이다. 넷째, 녹야원은 선인타처이다. 그런데 제주도 한라산도 선인타처이다. 선인타처란 신화적인 이야기이지만 녹야원에 500선인과 관련된 어떤 물증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한라산 서쪽 기슭에 부처님이 왔었다는 불래악(佛來嶽)이 있고, 불래악 맞은 편에 500개의 자연석이 우뚝 서 있다. 이 500개의 자연석이 마치 도(道)를 닦는 수도승 같아서 이를 500나한(羅漢)이라 부르고, 그 일대를 수행동(修行洞)이라 한다. 그러므로 한라산 불래악 수행동에 있는 500개의 자연석이 곧 500신선의 상징이라 할 수 있으니, 제주도 한라산은 선인타처인 것이다. 다섯째, 녹야원은 보리수처이다. 그런데 제주도 한라산도 보리수처이다. 인도에서는 뽕나무의 일종을 보리수라 부른다. 그러나 그것은 보리수과에 속하지 않으며 단지 인도인들이 보리수라 부를 따름이다. 그런데 제주도 한라산에는 부리수과에 속하는 볼래나무가 많다. 그러므로 제주도 한라산은 보리수처라 할 수 있다. 여섯째, 녹야원에 석가세존의 진신사리탑이 있다. 그런데 한라산 존자암의 터에 상고시대의 부도가 있다. 존자암(尊者庵)은 한라산 정상에서 서쪽 수행동(修行洞, 속칭 靈室) 불래악에 있는데, 김상헌의 {남사록}에 의하면 고량부(高梁夫) 삼성이 처음 일어날 때부터 (정의·대정·목안)삼읍(三邑)이 정립될 때까지 있었다고 하였다. 이는 존자암(尊者庵)이 탐라국 건국초부터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탐라국은 언제부터 있었는가? {한단고기} 마한세가(상)을 보면, 단군 을아(乙阿) 을유(B.C. 1596년)에 탐몰라인(탐라인)이 마한왕에게 말 30필을 바치었다고 하였다. 이는 탐라국이 B.C. 1596년 전부터 존재하였다는 것으로 존자암은 석가세존의 출생하기 이전부터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석가세존이 존자암에 올 수도 있었고, 석가세존이 왔었기에 존자암의 산등성이를 불래악(佛來嶽)이라 부르고, 영실에 석가세존의 석상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제주의 민담(民譚)이나 무가(巫歌)에도 부처가 바다에서 제주로 왔다는 설화도 있다. 바다란 수미세계 곧 고조선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존자암의 터에 그 조성년대를 알 수 없고,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부도(불탑)가 있다. 이론적으로 말하면 이 부도는 석가세존의 진신사리불탑(眞身舍利佛塔)이라 할 수 있다. 일곱째, 녹야원에 가시도읍이 있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제주도 한라산에 가시리(加尸里;加時里)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주목에 한라산 동쪽은 동무소협(東巫小峽)으로서 신선들이 살았다고 하였는데 그곳에 가시리가 있다. 가시리에 상가시리와 하가시리가 있고, 상가시리에는 노폭(路幅)이 7-8m되는 넓은 길이 있다. 이 길은 너무나 오래되어 그 길이 만들어진 년대를 알 수 없다고 한다. 이를 생각하면 가시리는 그 역사가 극히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고, 탐라국 시대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한다. 이상과 같이 제주도 한라산은 녹야원의 성립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볼 때, 파라날은 제주도를 의미하고, 제주도 한라산은 녹야원이며 석가세존의 초전법륜지라 할 수 있다. 만약 이를 부정하면 인도의 사르나드도 녹야원이 아니니 석가세존의 초전법륜지는 허무맹랑한 전설이 되고 만다. 증거가 부족하면 독자들이 협력해 주기 바란다. 협력도 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흠만 잡으려는 사람은 아마도 다른 나라 사람이 아닌지 자문자답해 보기 바란다. 이것이 또한 남의 일이 아님을 자각해 주기 바란다. Ⅴ. 석가세존의 고조선 행적과 유적 {삼국유사}를 보면 부처님이 우리나라에 왔었다는 기록들이 있다. 예컨대 어산불영(魚山佛影)편에 따르면 "대정 12년 경자(1180) 즉 명종 11년에 처음으로 만어사(萬魚寺)를 지었는데 동량보림(棟梁寶林)의 장주(狀奏)에 이르기를 이 산 중에 기이한 자취가 세 가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부처영상의 서북쪽에 반석이 있어 항상 물이 괴어 끊어지지 않는데 이곳은 부처가 가사를 빨던 곳이라"하여 부처가 우리나라 경상남도 밀양에 있는 만어산(萬魚山)에 이르러 거기에서 가사를 빨았다고 하였다. 또한 동편에 {관불삼매해경(觀佛三昧海經)} 제7권을 인용하여 "부처가 야건가락국 고선산에 이르렀다"고 하였는데, 고선산의 고선(古仙)은 한인·한웅·한검이라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곧 고선산은 삼신산을 의미한다. 삼신산은 백두산을 지칭하므로 부처가 고선산에 이르렀다 함은 곧 부처가 백두산에 왔었다는 것이다. 그밖에도 동서 황룡사장육(皇龍寺丈六) 편을 보면 황용사의 터는 석가불과 가섭불이 강연하던 곳이라 하였고, 그밖에도 경상남도 남해 금산 쌍홍문(雙紅門)의 안내간판에 석가세존이 그곳에 왔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기록들에 대하여 지금까지는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앞으로는 의미심장하게 숙고하여야 할 것으로 본다. 돌이켜 생각하면 석가세존은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 사람으로서 한국 땅에서 고행하고 성도한 후 만리 길도 멀다 않고 인도로 건너가 혹심한 빈곤과 차별대우에 시달리는 서민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구걸행각을 하면서 일생을 보냈다고 생각할 때, 인도 사람이라면 누구든 석가세존의 조국인 우리나라를 은인의 나라로 받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신앙의 조국으로 생각하고 무척이나 동경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는 통일교 외국신자들이 우리나라를 신앙의 조국 곧 아버지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격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삼국유사} 가락국기를 보면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가 바다 건너 우리나라에 와서 가락국의 김수로왕의 비(妃)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금관성 파사석탑기를 보면 금관성 호계사의 파사석탑(婆娑石塔)은 김수로왕의 비 아유타국의 공주가 서역 아유타국에서 싣고 온 것이라 하였다. 이와 같이 만여리가 넘는 인도에서 공주의 몸으로 우리나라에 왔었다는 것은 굳건한 신앙이 아니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고, 석탑을 싣고 온 것은 신앙의 조국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금불상 53구가 서역으로부터 바다 건너 한(漢)나라 평제 원시 4년(서기4년) 갑자에 금강산에 보내졌고, 이로 인하여 절(유점사)을 세웠다"고 하였다. 그때는 중국에도 석가불교가 전래되기 이전이므로 인도인들이 우리나라를 숭모하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보내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밖에도 {삼국유사} 황룡사장육 편을 보면 신라 진흥왕이 황룡사를 지으려 할 때, 서천축의 아육왕이 황철과 황금 및 일불이보살상(一佛二菩薩像)의 모형까지 보내와 장육존상(丈六尊像)을 주조하였다고 하였는데, 황룡사의 터는 석가불과 가섭불(迦葉佛)이 강연하던 곳으로 거룩한 인연이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상과 같이 교통수단도 발달하지 아니한 그 때에 만여리가 넘는 인도에서 바다 건너 우리나라로 공주가 오고 불상과 불탑까지 보내왔다는 것은 예사일이 아닌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를 신앙의 성지, 신앙의 조국, 부처님이 나신 나라로 믿는 굳건한 신앙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조선을 가리켜 아득한 옛날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는 등불이었다고 하였던 것이 아닌가? 이제야 그 시(詩)의 의미를 알게 된다. Ⅵ. 대승경은 우리나라에서 기원되었다. 본항에서는 대승경이 우리나라 고조선에서 인도로 전승되었다는 문제를 논증하려한다. 본 문제의 논증방법은 3단논법이다. 즉 A=B, B=C, 그러므로 A=C라는 논법이다. 이에 대하여 유의하기 바란다. 불교사상의 자료에는 경장(經藏)·율장(律藏)·논장(論藏)의 3장이 있다. 이 중에서 경장과 율장은 불타께서 직접 설하신 법을 의미하고, 논장은 논사들의 저술을 의미한다. 또한 불교경전은 소승경(북방불교에는 장아함·중아함·잡아함·증일아함 등 四部阿含經이 있고, 남방불교의 파리어 대장경에는 장아함·중아함·승육다아함·앙굴다아함·굴타가아함의 五阿含經이 있다)과 대승경(소승경을 제외한 팔만대장경)으로 크게 둘로 나뉘어지는데, 대소승 경전에 경율론(經律論) 3장이 따로 있고, 특히 소승경만이 석가세존이 35세에 성도해서 80세에 입멸할 때까지 45년 동안 직접 설하신 경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대승경에도 논사들의 저술인 논장이 따로 있고, 불타께서 직접 설하신 경장과 율장이 따로 있으니, 이는 누구의 설이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그래서 김동화는 "서기 565년 전에 탄강해서 그후 35년후에 성도하고 45년간의 설법이 원시경전(소승경)이고, 80세에 입멸하신 것으로 되어있으니, 도대체 이 대승의 경율 2장은 어느 때에 설하였단 말인가? 만약 시대적으로 본다면 소승논부(小乘論部) 이후의 설이라 하여야 정당한데, 사실상 모든 대승경전은 불설로 되어있으니, 이 모순을 어떻게 할 것인가?"하고 장탄식을 한다. 일반상식으로 생각해도 석가세존이 대성자이시고 부처님이라 해도 8만 대장경을 혼자서 모두 설할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 생기고, 또한 아난(阿難)의 기억력이 신통하였다 하더라도 8만 대장경을 모두 암송할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무조건 대승불교 측에서는 갖가지 이유를 대면서 대승경도 석가세존이 직접 설하신 경전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소승불교 측에서는 대승경을 마구니의 조작이니 조달(調達)의 조작이니 하면서 석가불설이 아니라고 공박한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어느 개인이 탁불(托佛)하여 대승경을 위작한 것 처럼 주장하는 고승도 있다. 이와 같이 대승경의 출처는 지금까지 오리무중에 빠져 그 동안 유명한 보살과 조사, 대덕(大德)과 대지(大智)에 의해서도 해결하지 못하고 내려오는 난해한 문제이다. 그러한 문제에 대하여 지금부터 하나 하나 풀어나가기로 한다. 1. 대승경의 출처는 바다이다. 그러면 대승경의 출처는 어디인가? {용수보살전}에 의하면, 용수(龍樹)는 출가후 입산하여 불탑(佛塔)에 이르렀던 바, 출가계(出家戒)를 받아 90일에 3장을 모두 암송하고 깊은 뜻을 통하여 다시 다른 경을 구하였으나 도무지 얻지 못하다가 설산(雪山) 중의 한 늙은 비구니로부터 마하연경(摩訶衍經)을 얻고 통리하지 못하여 여러 나라를 주류하면서 다른 경을 구하던 차에 수정방(水精房) 중의 대룡보살(大龍菩薩)을 만나 바다 속의 궁전에 들어가 칠보장(七寶藏)을 열어 위없는 묘법인 방등심오의 경전을 주니 그것을 받고 90일에 통해한 후 염부제(염부주) 중의 무량한 경전 가운데 한 상자를 얻고 남천축(南天竺 곧 인도)에 돌아가 불교를 크게 유포시킨 것으로 기록은 밝혀주고 있다. 용수는 대승불교를 일으킨 제1인자인데, 그에 의하여 대승경을 설산과 염부주 바다궁전에서 인도로 전하여 대승불교를 크게 유포시켰다는 것이다. 용수가 대승불교를 일으켰다는 것은 모든 학자들이 공인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설산과 염부주와 바다의 문제가 풀리지 않음으로써 대승경의 출처가 모호해지고 오리무중에 빠졌던 것이다. 과거를 되돌아 보면 옛날의 인도인들이 우리나라를 부처님이 탄생한 나라라 하여 우리나라로 시집을 오고, 불상과 불탑을 보내오듯, 지금 우리나라의 불자들이 인도만을 우러러 보고, 인도의 역사·철학·종교·사상을 연구하고 잘 알면서도, 제 나라의 역사·철학·종교·사상을 모르는 데서 천축 또는 염부주라면 무조건 인도로 착각하고, 설산이라면 무조건 인도 북부의 히말라야산맥 중의 어느 산으로 추정하며, 부처라면 무조건 석가세존으로 오인한 데서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우리나라의 국조인 한인·한웅·한검이 고불(古佛)임을 밝혔고, 설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며, 염부주도 좁게는 우리나라의 백두산 천지이고, 넓게는 고조선 강역 전체임을 밝혔다. 이것만 보아도 대승경의 출처가 상고시대의 우리나라 고조선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바다'가 어디를 가리키느냐의 문제가 남아있다. 이 문제가 지금까지 풀리지 않음으로써 '바다'라면 무조건 태평양이나 대서양 같은 짠물바다로 생각하는 데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 용(龍)이라면 무조건 비를 내리는 바다의 용으로, 용궁이라면 바다속의 궁전으로, 용왕이라면 바다 속의 용왕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용에 대한 개념이 없는 인도에서는 용같은 코브라로 용을 대신하는가 하면, 용과 같은 종류의 물고기로 변형되고 있다. 이래서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며 철학적인 불교가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허무맹랑한 미신같이 곡해되어 서구인들에게 불신당하고 있는가 하면, 대승경의 출처도 수천년 동안 안개 속에 가리워졌던 것이다. 2. 바다는 수미세계이다. 그러면 불교에서 바다는 어디를 가리키는가? 사해동포(四海同胞)라 할 때의 해(海)와 고해중생(苦海衆生)이라 할 때의 해(海)도 태평양·대서양·인도양 같은 짠물바다(소금물바다)를 가리키는가? 불교철학이 심오하다는 것을 누구나 다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에서의 바다를 무조건 짠물바다·소금물바다로만 수천년 동안 이해하여 왔으니 참으로 이상하다 아니할 수 없다. 먼저 바다의 의미부터 알아보자. 바다는 깊고 무한하여 전 대륙을 포용하고 있는가 하면, 생명의 원천이며, 지혜와 재화의 보고이고 무차별의 세계이다. 무섭기는 폭군 같기도 하고 인자하기는 어머니 같기도 하다. 곧 바다는 원융무애하고 대승적 성격을 지니어 크고 작은 것, 좋고 나쁜 것, 희고 검은 것 할 것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불교에서 바다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첫째, 불교에서 바다는 원융무애의 정신세계를 의미한다. 예컨대, 대원해(大願海) 여래공덕해(如來功德海)·무량삼매해(無量三昧海)·법문해(法門海)·생사해(生死海)·지혜해(智慧海)니 하는 경우 등이다. 이와 같이 불교에서의 바다는 태평양·인도양·대서양 같은 짠물바다·소금물바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원융무애의 정신세계를 의미한다. 둘째, 불교에서의 바다는 수미세계(須彌世界)를 의미한다. 불교의 세계설에 의하면 이 세상 중앙에 수미산이 높이 솟아 있고, 수미산 정상에는 제석천(帝釋天)이 살며 중턱에는 사천왕(四天王)이 산다. 금·은·유리·파리의 4보(四寶)로 이루어져 북쪽은 황금, 동쪽은 백은, 남쪽은 유리, 서쪽은 파리인데, 해와 달이 그 주위를 회전하면 보광을 발산하여 4방의 허공을 물들인다. 수미산 둘레에는 일곱 겹의 금산(金山)으로 둘러있고, 수미산과 금산, 금산과 금산 사이에는 7개의 바다(七海)가 있다. 마지막 금산 밖에는 짠물바다(鹹海)로 둘러있고, 짠물바다 건너에 철위산이 둘러있어 수미세계의 외곽을 이룬다고 하였다. 이를 보면 태평양·대서양·인도양 같은 진짜바다는 이를 짠물바다(鹹海)라 이르고, 바다는 수미산과 금산, 금산과 금산 사이의 수미세계를 의미하고 있다. 또한 "바다는 문명의 중심지, 종교적 메카라는 뜻의 비유로 쓰인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이와 같이 불교에서 말하는 바다는 수미세계를 의미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수미세계는 어떠한 세계를 의미하는가? 수미세계는 최상의 위치에 제석천과 같은 종교지도자가 있고, 중간에 사천왕과 같은 법왕이 있어 해와 달이 자연적으로 돌아가듯, 사회질서도 법이 있으나 없으나 순리대로 돌아가며, 사방에서 금·은·유리·파리의 4보가 보광을 발하듯, 사민(四民)의 기풍도 홍익인간 광명이세하여 태평가를 부르는 평화세계로서 종교의 메카, 종교의 발상지, 종교의 요람, 최고의 종교사회 곧 불국토 내지 신선지국을 의미한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경상남도에 김해(金海)·남해(南海) 등의 지역이 있으나 이들 지역이 바다가 아니라 과거에 종교의 요람이었던 것과 같은 격이다. 그러면 용수보살이 대승경을 가져갔다는 바다는 어디를 가리키는가? 태평양·인도양·대서양 같은 짠물바다인가? 대원해니 무량삼매해니 하는 원융무애한 정신세계인가? 아니면 종교의 요람인 수미세계인가? 바다에 궁전과 칠보장과 경전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서 이 경우의 바다는 원융무애의 정신세계도 아니고, 태평양·인도양·대서양 같은 짠물바다라고도 할 수 없으며, 종교의 요람인 수미세계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정신세계나 짠물바다 속에 실제의 궁전도, 칠보장도, 경전도 있을 수 없고, 수미세계에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용수보살이 대승경을 남천축으로 가져갔다는 바다는 수미세계인 것이다. 즉 대승경의 출처는 수미세계라는 것이다. 3. 수미세계는 환국과 고조선을 의미한다. 수미세계는 종교의 메카, 종교의 발상지, 종교의 요람, 불국토, 신선의 나라를 의미한다면 과거에 그러한 나라가 어디에 있었느냐 하는 문제이다. 첫째, 수미세계는 중앙아시아의 환국을 의미한다. 제1편에서 밝혔듯이 고불교인 신선도는 태고시대 중앙 아시아의 환국 즉 알타이 사회에서 비롯됐으니 고불인 한인이 천산에 살면서 득도하여 삼신하나님에게 제사하고 7세나 계승하면서 무위자연적 신교국가를 이룬다. 따라서 태고시대 중앙 아시아의 환국 즉 알타이 사회는 수미세계였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수미세계는 우리나라 고조선(古朝鮮)을 의미한다. 환국에 이어 한웅천황이 우리나라의 백두산 천지에서 천도를 크게 깨치고 지금으로부터 5894년 전 10월 3일 신선도를 설파하였으며, 그후 1565년이 지나 다시 단군성조에 의하여 고등종교로 발전되었다. 따라서 배달국과 고조선은 부처님이 세운 나라로서 수미세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상고시대의 우리나라를 가리켜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 군자지국(君子之國)이라 또는 신선지국(神仙之國)이라 하였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도 고조선을 가리켜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는 등불이라 하였다. 불교에 관한 기록에서 천독(天毒) 또는 천축(天竺)이라 함은 수미세계를 의미하는데, {산해경} 해내경에 조선을 천독이라 하였다. 이는 고조선이 수미세계임을 확인하여 주는 것이다. 또한 인도를 남천축(南天竺)이라 하고, "월지국(月支國)을 북천축(北天竺)이라" 하는데, 월지국은 고조선의 진왕이 직접 다스리던 수도를 지칭한다. 이래서 고조선은 수미세계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4. 대승경의 출처인 수미세계는 고조선이다. 그러면 대승경의 출처는 중앙 아시아의 환국인가? 아니면 우리나라 고조선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그러나 용수보살이 설산 염부주 바다궁전에서 대승경을 남천축 인도로 가져갔다고 했다. 그런데 설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을 가리키고, 염부주는 백두산 천지 또는 고조선 강역 전체를 가리킨다. 따라서 용수보살이 대승경을 인도로 가져갔다는 바다 곧 수미세계는 중앙 아시아의 환국이 아니라 우리나라 고조선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따라서 대승경의 출처는 고조선인 것이다. 다음은 우리나라를 바다로 표현한 실례를 직접 들어보기로 한다. 사마천의 {사기}에 보이는 "해중유삼신산(海中有三神山)"이나, "동지우해등환산(東至于海登丸山)"의 삼신산과 환산은 백두산을 의미하는데, 백두산은 우리나라에 있다. 그러므로 바다(海中)는 우리나라를 의미한다. 또한 학자들 역시 이 경우의 해(海)를 발해(渤海)로 해석한다. 발해는 흔히 대조영이 세운 국명으로 알고 있으나, 그 나라의 처음 이름은 대진국(大震國)이며, 발해는 대진국 건국 이전 춘추전국 시대의 저술인 {열자(列子)}에도 보이는 상고시대 우리나라의 이칭이다. {화엄경} 제보살주처품에도 "해중에 금강산이 있는데 예로부터 법기(法起)보살이 1200권속과 더불어 법을 설하였다"는 구절이 있는데, 금강산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산으로서 해중은 곧 우리나라를 의미한다. 그런데 중국의 청량국사의 소(疏)에도 해중을 우리나라로 해석하고 있다. 또한 {화엄경} 입법계품에 "마니산 기세계 해중 유불 출현(摩尼山 其世界 海中 有佛 出現)"이라 하였는데, 마니산은 인도나 중국에는 없고 우리나라 경기도 강화에 있는 산이다. 더욱이 부처님이 출현했다고 했으므로 해중 곧 바다는 우리나라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바다와 용궁"은 우리나라 고조선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이와 같이 바다는 짠물바다 외에 상고시대의 우리나라 고조선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다. 이상의 소론을 요약하면, 대승경의 출처는 설산 염부주 바다궁전인데, 설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을 의미하고, 염부주는 백두산의 천지주변 또는 고조선의 강역전체를 의미하며, 바다는 우리나라 고조선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승경의 출처는 우리나라 고조선으로서 대승경은 원래 우리민족의 경전이라는 사실이 이론적으로 성립된다. 즉 방대한 불교의 대승경이 인도소산이 아니고 원래 우리민족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불교는 원래부터 우리민족의 사상인데 지금까지 인도사상이라 오해하여 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잃어버린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을 거의 찾은 기분이 든다. 또한 원시 대승경이 용수보살에 의해서만 인도로 전승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도 전승되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석가세존이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우리나라에서 수도고행하였고, 백두산(설산) 총림방 중의 진귀조사로부터 종지를 받았다고 하였으므로 석가세존에 의하여 가장 기본적인 경전이 인도에 전승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대승경은 범어로 쓰여 있는데, 후술하는 바와 같이 범자는 지금부터 약 5200여년 전에 배달국 시대의 복희에 의하여 창제되었고, 지금부터 약 3500년 전에 성립되었다고 보여지는 인도의 리그베다(Rigveda)도 범자로 쓰여 있으므로 대승경은 리그베다 성립이전, 적어도 지금부터 3500년 전, 범어의 인도이입과 더불어 인도로 전승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래서 대승경은 용수보살 이전에 이미 인도로 전승되었다는 것이다. 5. 지나에 대승경을 전한 월지국은 고조선의 수도이다. 대승경이 고조선에서 먼 인도에까지 전승되었다면 인접한 지나에는 그보다 먼저 직접 전수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런데 대승경의 중국전승에 대한 기록을 보면, 주(周)나라 목왕(穆王) 때(B.C. 1001∼B.C. 947)에 문수와 목련이 서역에서 건너와 목왕을 교화하였다는 기록이 있는가 하면, 진시황 4년(B.C. 243)에 불경을 중국에 전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이에 대하여 일반적인 통설은 부정한다. 왜냐하면 주나라 목왕 때는 석가세존마저 세상에 태어나기 전이며, 진시황 때는 대승불교가 성립되기 전이다. 따라서 불교가 인도에서 발생하였다고 할 경우, 그때에 문수와 목련이 서역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목왕을 교화하였다거나 불경이 중국에 전래되었다 함은 있을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월지국(月支國) 아니면 안식국(安息國)에서 대승경이 중국으로 전승되었다고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고, 이들 국가를 인도 가까이에 있는 대월씨국(大月氏國)에 결부시키려 한다. 여기에서 안식국은 논외로 하고 월지국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을 보면, 한(韓)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마한(馬韓), 둘째는 진한(辰韓), 셋째는 변한(弁韓)인데, 진한을 옛 진국(辰國)이라 하고, 진왕(辰王)이 월지국을 통치하였다고 했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도 월지국은 진주(辰主)의 치소(治所)라 했다. 곧 월지국은 진국의 도읍지라는 것이다. 그외 신채호의 {조선사연구초} 전후삼한고(前後三韓考)와 최동(崔棟)의 {조선상고민족사}를 보아도 한결같이 월지국이 고대의 우리나라 고조선임을 밝히고 있다. 또한 {국어대사전}을 보아도 월지국을 목지국(目支國)이라 하고 목지국은 옛 진국의 한 부족국가라 하였다. 옛 진국이란 고조선을 지칭한다. 그러나 {불교사전}에 "월지(月支)는 월씨(月氏)라고도 하며, 서역에 있던 큰 왕국"이라 하여 월지국(月支國)을 서역에 있던 대월씨(大月氏)에 결부시키고 있다. 만약 불경이 터키계통의 대월씨국에서 중국에 전승되었다면, 대월씨국은 중국보다도 먼저 불교가 보급되었다는 것으로 지금쯤은 서구사회에 불교가 일반화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서구사회에는 이제야 겨우 불교가 발을 붙일까 말까 할 정도인 것을 보아도 중국에 불경을 전한 월지국은 대월씨국이 아닌 것이다. 근세에도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불경이 전승되었다는 연구보고가 있다. 경북대학교 허흥식(許興植) 교수는 "고려에 남긴 철산경(鐵山瓊)의 행적"에서 {고려국대장이안기(高麗國大藏移安記)}는 아직까지 국내 학계에 소개된 바 없는데, 거기에 중국 남송(南宋) 임제종(臨濟宗) 양지파(楊枝派)의 고승 철산경이 1304년 고려에 와서 3년 동안 머물다가 6천권의 대장경을 가지고 중국으로 돌아갔다고 주장한다. Ⅶ. 대승경의 범서는 우리민족의 범서이다. 원시 대승경의 출처가 우리나라 고조선이었다. 그렇다면 원시 대승경에 쓰여 있는 범서는 당연히 상고시대 우리민족의 언어와 문자여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논리적인 귀결이고 실재적 증명이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증명해야 할 것인가? 첫째, 범어는 어떠한 언어인가를 밝혀야 한다. 둘째, 범서가 인도 문자도 아니고 언어도 아님을 밝혀야 한다. 셋째, 상대의 우리나라에 범서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야 한다. 넷째, 우리민족의 범서가 대승경의 범서임을 증명해야 한다. 이상을 순서에 따라 밝혀 나가기로 한다. 1. 범어는 어떤 언어인가? 운허용하의 {불교사전}을 보면 범어는 B.C. 800년 경에 인도로 전래된 셈계통의 외래어라 하여 간략히 소개되고 있으나, 컬러판 {교육세계백과대사전}을 보면 {대영백과사전}의 기록을 인용하여 자세히 밝혀주고 있는데, 그 내용을 간추려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범어》범어는 산스크리트어(語)라고도 하는데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 인도에 쓰이는 고급 문장어이다. 산스크리트는 <완성된 언어>라는 뜻으로 속어에 대한 아어(雅語)를 의미한다. 범어라고 한 까닭은 이 언어를 범천소설(梵天所說)의 언어라고 믿는 데에 있다. 《특질》범어는 명사·대명사 및 형용사의 성·수·격(性·數·格)의 어미변화로 주어·목적어 등을 나타내며, 또한 인칭·수·시상·법·태(人稱·數·時相·法·態)를 주로 동사의 어미변화로 나타낸다. 《문자》범어의 서사 인쇄에 쓰이는 문자를 데바나가리(Devan?gar?)라 부른다. 이 문자는 47자의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지며, 자음은 33자로서 언제나 모음(a)를 동반한다. 이 문자의 기원은 멀리 북셈계(Sham系) 문자로서 가장 오래된 페니키아 문자에 있다. 오른쪽으로부터 왼쪽으로 쓰는 셈문자의 특징을 보존하고 있다. 둘 이상의 연속자음을 나타내려면 그 자음문자를 연합하여 하나의 결합문자를 만드는 따위가 이 문자의 특징이다. 《문법》문의 구조에 있어서 주어가 선두에 오고 동사가 끝에 오며, 수식어는 피수식어에 선행한다. 2. 범어는 인도어도 북셈계어도 아니다. 이상의 설명을 보면 산스크리트나 범어라는 어의에 인도나 그 민족을 나타내는 의미가 전혀 없다. 고급 문장어라 함은 고급문장에만 쓰이는 언어로서 생활어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수억이 되는 인도인 가운데 오늘날 범어를 쓰는 인구수는 겨우 1,000여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범어는 인도의 고유어가 아니라 외래어라는 사전의 기록이 틀림없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범어를 데바나가리라 하는데, '데바'는 천신(天神)이란 뜻이며, '나가'는 용(龍)이란 뜻으로서 데바나가리에도 인도를 상징하는 뜻이 전혀 없다. 더욱이 인도에는 천신이란 개념과 용이란 개념이 없으므로 천신 대신 제사를 뜻하는 브라흐만(Brahman), 또는 진아(眞我)를 뜻하는 아트만(Atman)을 종교적 최고의 개념으로 사용하고, 용 대신 뱀의 일종인 코브라 또는 물고기를 등장시킨다. 이를 보아도 범어는 원래 인도어가 아니라 외래어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범자는 북셈계의 페니키아 문자인가? 그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페니키아 문자의 자음이 22자인데" 범자는 자모가 47자, 자음이 33자로서 오히려 선대문자(先代文字)라고 하는 페니키아 문자보다 그 자모가 더 많다. 문자는 후대에 제작된 것일 수록 간소화되어 자모가 적은데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다는 것도 북셈계 페니키아 문자만이 아니라 우리민족의 고대 필순(筆順)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썼기 때문이다. {사전}에 대승경의 범자를 북셈계 페니키아 문자에서 기원되었다고 함은 서구인에 의한 서구중심적 발상을 그대로 기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3. 상고시대의 우리나라에 범서가 있었다. 다음은 우리민족에게도 범서가 있었느냐 하는 문제이다. 현재에도 원시사회가 있고 문명사회가 있듯이 상고시대에도 원시사회가 있는 반면, 문명사회가 있을 수 있다. 더욱이 그러한 사회에 합리적 성립종교가 있었고 경전이 있었다면, 당연히 문자가 있어야 한다. {태백일사}를 보면 "신시에 녹서(鹿書)가 있었고, 자부에 우서(雨書)가 있었으며, 치우에 화서(花書)가 있었다. 투전문속(鬪佃文束)은 그 남은 흔적이다. 복희에도 용서(龍書)가 있었고, 단군에 신전(神篆)이 있었다. 이런 종류의 글자와 글이 백산·흑수·청구 등 구려(九黎)에 널리 쓰여졌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상고시대의 우리나라에 문자와 글이 있었으며, 여기에 보이는 복희의 용서가 곧 범서인 것이다. 왜냐하면 범서는 이를 데바나가리라 하는데, 데바나가리는 용서(龍書)라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 복희의 용서는 곧 범서라 추정할 수 있고, 범서는 곧 복희의 용서라 추정할 수 있다. {삼국유사} 요동성육왕탑기에도 고구려 동명성왕이 요동을 순례하던 중에 삼중토탑(三重土塔)을 발견하였는데, 그 밑에 묻혀 있던 명(銘)에도 범서가 쓰여 있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명에 쓰인 범서를 일연 승은 그 해설에서 서역문자라 함으로써 그 범서가 상고시대의 우리나라 문자인가, 아니면 인도에서 전래된 문자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시켰다. 삼중토탑을 발견한 때는 고구려 동명성왕 때로서 B.C.1세기 후반이다. 그때는 인도와 가까운 중국에도 석가불교가 전래되기 전이며, 우리나라에도 전래되기 전이다. 더욱이 그때는 대승불교마저 성립되기 전이다. 그러므로 삼중토탑을 석가불교의 불탑이라 할 수 없고, 명에 쓰인 범서도 인도에서 전래된 문자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외에도 {단기고사} 제12세 단제 편에 "지금 황해도 구월산의 마한촌에 고대의 국문비 (國文碑) 한 개가 존재하니 범문과 비슷하다"고 하였다. 이는 범어를 모르는 사람이 범서를 보고 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보면 상고시대의 우리나라에 범서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원시 대승경이 상고시대의 우리나라에서 인도로 전승되었다고 할 경우, 원시 대승경에 쓰여진 범서는 당연히 우리민족의 범서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범어는 인도의 고유어가 아니라 외래어이고, 북셈계 문자도 아님을 생각하면 당연히 그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4. 범어는 우리민족의 언어와 동일하다. 그러나 실제적 증거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어의(語義)·어법(語法)·문자의 동일성 등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첫째, 범어의 어의가 우리말의 어의와 동일한 경우가 많다. 대승불교가 성립된 이래 대승경이 수차에 걸쳐 결집되면서 대승경에 쓰여진 범어의 용어가 인도어로 바뀌어 질 수도 있고, 우리민족의 어의도 2천여년 전부터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었고, 한문를 일상어에 병용하면서 변질에 변질을 거듭하였다. 그러므로 대승경 범서의 어의와 우리말의 동일성을 증명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단어의 동일성을 몇 개 지적하면 ? 석가세존의 열반지인 구시국(拘尸國)을 구시나라(拘尸那羅)라 하는데, '나라(那羅)'는 곧 국가를 의미한다. 우리말에서도 국가를 '나라'라고 한다. ? '차마(叉摩)'는 '참다(忍)'는 뜻인데 우리말의 '참다'와 같다. ? 파라사화(波羅奢華)는 '파란 잎'을, 파라니밀(波羅尼蜜)은 '파란 하늘'을 의미한다. 이를 보면 '파라'는 우리말의 '파랗다(靑)'와 같은 의미이다. 이와 같이 범어의 어의와 우리말의 어의가 동일하다. 이것 하나만을 보아도 대승경의 범어는 우리민족의 범어임을 추정할 수 있다. 둘째, 범어의 어법이 우리말의 어법과 동일하다. ? 범서는 그 문장구조에 있어서 감탄문을 제외하면 어떤 경우에도 주어가 선두에 오고 동사가 끝에 오며 수식어는 피수식어에 선행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우리말의 어법과 그대로 일치된다. ? 범서는 명사·대명사·형용사의 성·수·격이 그 어미 변화로 주어·목적어 등을 나타내며, 또한 인칭·수·시상·법·태를 주로 동사의 어미변화로 나타낸다. 우리의 언어도 범어와 같이 명사·대명사·형용사의 어미변화 즉 조사의 변화에 의해 주어·목적어 등을 나타내며(예컨대, 명사 또는 대명사에 "는·은·가·이"를 붙이면 주어가 되고, "을·를"를 붙이면 목적어가 된다), 또한 동사의 어미변화로 인칭·수·시상·법·태를 나타낸다(예컨대, 하였다·하다·할 것이다·하겠다·하라·하겠습니다·하자·합시다·하시오·되었다·되다·될 것이다·되겠다·되라·되겠습니다·되자·됩시다·되시오 등으로 변해서 인칭·수·시상·법·태를 나타낸다). 이 문제는 하나의 상식으로서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 범서는 자음마다 언제나 모음과 주로 (a)를 동반하는데, 우리의 언어를 표기하는 한글도 자음마다 언제나 모음을 동반한다. 그러나 모음 (葡)를 특별히 동반하지는 않는다. 이는 역사의 변천에 따른 음운의 변화 때문이라 할 수 있다. ? 고대의 범서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썼는데, 우리민족의 고대 필순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썼다. 이상과 같이 범서의 어법도 우리민족의 어법과 그대로 일치한다. 여기에서 더욱 대승경의 범서는 우리민족의 범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셋째, 대승경 범자의 자형이 우리민족의 범자와 유사하다고 추정된다. 일연 승은 우리민족의 범자를 서역문자라 하였다. 이는 우리민족의 범자의 자형이 대승경의 범자와 동일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민족의 범자를 용서라 하여 그 글자 모형이 용 같음을 추정할 수 있는데, 대승경의 범자가 일률적으로 용의 형상을 띠고 있다. 또한 "범자와 한글이 그 자형이나 자음에 있어서 서로 유사한 점이 많아 한글이 범자에서 기원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지금까지의 소론을 간략히 정리하면 ? 대승경의 범어(범서)는 인도의 고유어가 아니라 외래어였다. ? 대승경 범자의 기원이 북셈계 페니키아 문자와 무관하였다. ? 상고시대의 우리나라에 범서가 있었다. ? 대승경 범어의 어의가 우리말의 어의와 같은 경우가 많았다. ? 대승경 범어의 어법이 우리말의 어법과 그대로 일치되었다. ? 대승경 범자의 자형이 우리민족의 범자와 동일하다고 추정되었다. 이상과 같으므로 원시 대승경의 범서는 상고시대 우리민족의 범서라고 결론을 내려도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더욱이 범어는 이를 천축어(天竺語)라고도 한다. 그런데 석가세존 이전의 천축은 우리나라 고조선인 것이다. 이를 생각하면 범어는 당연히 상고시대 우리민족의 언어라 할 수 있다. Ⅷ. 인도에 우리민족의 문자와 언어가 있다. 1. 상고시대의 우리나라에 한글이 있었다. 종교란 위대한 성인이나 부처님이 불변적 진리에 입각해서 일반대중을 위하여 설하신 교육의 기본지침이요 인생이 나아갈 바를 제시한 것이다. 그것이 곧 경장과 율장으로써 난해한 문자와 용어로 쓰여 있게 마련이고, 이를 서민대중을 위하여 간이한 문자와 평상어로 누구나 알기 쉽게 해설한 것이 논장이다. 그래서 부처님이나 위대한 성인이 설하신 종교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함축적 의미의 종교문자와 간이한 상용문자가 있게 마련이다. 즉 한자나 범자와 같은 종교문자가 있는가 하면, 한글과 같은 상용문자가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상고시대에도 한글과 같이 간이한 문자가 있어야 한다. 신채호에 의하면 단군조선 시대에 국문(한글)이 있었다 하고, {단기고사}에도 제3세 단군 가륵 2년 봄에 박사 을보륵에게 명하여 국문정음(國文正音)을 정선하였다고 하였다. 앞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태백일사}에도 단군신전(檀君神篆)이 있었다 하고, {단군세기} 제3세 단군 가륵 2년조를 보면 고대 한글을 원형 그대로 밝혀주고 있다. 그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경자 2년(B.C.2181) 시속(時俗)이 같지 아니하고 방언이 달랐다. 상형표의(象形表意)의 진서(眞書;漢字)가 있었으나 10가(十家)의 고을에서도 말이 통하지 못하는 일이 많고 100리의 국가에서는 글자를 서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에 삼랑(三郞) 을보륵(乙普勒)에게 명을 내려 정음 38자를 만들게 하니 이를 가림토라 한다(그 글에는 현대 한글에 없는 문자가 있고, 또한 콤퓨터에 없기 때문에 실치못했음. {한단고기} 단군세기 제3세 단군 가륵제조와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 원문에 실려있으므로 참고하시기 바람). 이와 같이 단군조선 시대에 이미 한글과 같은 가림토가 있었다. 또한 가림토의 모어로 보이는 최고형의 문자가 최근 만주와 경상남도 산청군 단속사터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현재의 한글은 어떻게 된 것이냐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2. 한글은 세종대왕의 창제가 아니다. 세종어제훈민정음서문(世宗御製訓民正音序文)에 의하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28자를 신제(新製)하였다고 하였다. 신제란 구제(舊製)의 반대말로서 구제에 근거하여 새로 제작하였다는 뜻이다. 당시 집현전 학자 정인지의 훈민정음 서문에도 고전(古篆)을 모방하여 훈민정음을 만들었다 하였고, 최만리의 상소에도 언문은 본래 옛 문자로서 새로운 문자가 아니라고 하였다. 세종 23년 갑자에 반포한 {세종실록} 103권에도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본받아 되었고, 새 글자는 아니다. 언문은 전 조선시대에 있던 것을 빌어다 쓴 것이다"하였으며, 또 계해 25년 12월조에도 "10월 초 친히 말글 28자를 만드시니 그 글자는 옛 전자를 모방하였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세종실록}에도 한글은 고조선(전조선)시대의 문자를 모방했다고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신선도는 三神五帝의 원리 곧 天地人 三才와 木火土金水의 五行을 발생원리로 한다. 그런데 훈민정음도 天地人 三才와 木火土金水의 五行을 발생원리로 하여 제작되었다. 이와 같이 훈민정음도 신선도와 같은 원리에서 제작되었으므로 고조선의 가림토문자(단군신전)를 더욱 발전시킨 문자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세종대왕이 한글을 새로이 만들기 이전 단군조선 시대에 이미 한글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대승경이 우리나라에서 인도로 전승되었다면 인도에도 고대 한글이 있을 수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3. 인도에 우리민족의 한글이 있다. 그런데 남인도 구자라트주(州)의 간판에서 한글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신왕오천축국전(新往五天竺國傳)}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고 있다. 구자라트주의 간판에서 기이하게도 한글과 비슷한 글자를 발견하고 놀랐다.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글과 너무나 비슷하여 한글식대로 읽어나갈 수가 있었다. 독일의 어느 학자가 옛날에 한글이 인도의 드라비디안어와 닮은 데가 있다는 논문을 발표한 일이 있었는데, 드라비디안어(語)가 아니라 구자라트어(語)를 잘못 알고 쓴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구자라트어에 한글의 모양과 많이 닮은 것은 자음 가운데 ? 遁 ? ? ? 걁 둁 등이고, 모음은 葡 蒡 ? ? ? ? ? ? ? ?의 열자가 꼭 같았다. 종자음(終子音) 즉 받침까지도 비슷하게 쓰고 있다. 우리들은 구자라트에 있는 동안 소리를 내어 간판을 한글식으로 읽으며 다녔다. 이상과 같이 고조선 시대에 이미 한글이 있었고, 남인도 구자라트주에 한글과 비슷한 문자를 쓰고 있다니, 그 문자는 고조선 시대의 한글이라 할 수 밖에 없으며, 신선도의 경전이 남인도에 전해짐으로써 고대 한글도 전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인도 외에 일본에도 가림토문자가 전해져 신대문자(神代文字)인 아히루(阿比留) 문자가 되었는데, 이는 지금 일본 대마도(對馬島) 이즈하라(嚴原) 대마역사 민속자료관과 일본의 국조신인 천조대신을 모신 이세신궁(伊勢神宮) 등에 아직도 보관되어있다. 그 밖에도 2300년 전에 지은 스리랑카의 캔디시(市) 부근 패엽경사(貝葉經寺) 바위에도 사찰건립 당시에 쓴 것으로 보이는 가림토문자 같은 것이 새겨져 있으며, 남미의 볼리비아 글자도 가림토와 비슷하다고 한다. 4. 남인도에 우리민족의 언어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전이 남인도에 전하여졌다면, 경전은 곧 문자화된 언어로서 우리민족의 언어도 남인도에 전해질 수 있다. 프랑스의 선교사 달레(1874년, 조선교회사:朝鮮敎會史)와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1906년, 한국어와 드라비다 제어의 비교문법)는 한국어와 드라비다어가 동계임을 주장하면서 지금도 드라비다어 가운데 우리말과 같은 말이 1300여개나 된다고 하였다. 예컨대, 우리말의 아버지는 드라비다어로 아바지(appacchi), 엄마는 암마(amma), 도령은 도렌(toren), 얼(정신)은 얼(ul), 꽁지는 꼰티(konti), 눈은 눈이(nuni), 목은 막(mak), 남(他人)은 남(nam), 님은 님(nim), 골(谷)은 골리(kolli), 도랑은 두라이(turai), 나라는 날(nar), 바람은 발리(vali), 그물은 굼(kum), 풀은 풀(pul) 등이다. 미국의 언어학자 클리핀저(Clippinger)도 인도 고대어인 드라비다어종(語種) 속에서 한국어의 수 많은 단어들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하였다. 예컨대, 우리말의 쌀(米)은 드라비다어의 '살', 벼(禾)는 '비야', 풀(草)은 '풀', 알(粒)은 '아리' 등이다. 이런 유사한 단어들을 이 미국학자는 100개나 찾아내었다. 이는 조선일보의 보도내용이다. Ⅸ. 불교는 신선도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석가세존이 우리민족으로서 우리나라의 백두산에서 6년간 고행하고 성도한 후, 종지(宗旨)까지 받고 인도로 건너 갔다면, 그리고 불교의 대승경이 우리민족의 경전이라면, 석가불교의 원류는 전적으로 우리나라의 신선도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신선도와 석가불교에 있어서 그 기본사상이 서로 불가분적 동일성을 지녀야 하고, 그밖에 고유명사·전문용어·종교의식 등이 서로 같거나 유사하게 마련이다. 1. 기본사상이 동일하다. 우선 기본사상의 동일성을 지적한다. 첫째, 신선도와 불교는 다 같이 우주의 진여이법(眞如理法)을 숭배의 대상으로 한다. 즉, 신선도는 천일(한늘님)·지일(한울님)·인일(한얼님) 삼신일체(三神一體)의 하나님을 숭배의 대상으로 하고, 불교에서는 법신불·보신불·응신불의 삼불일체(三佛一體)를 숭배의 대상으로 한다. 이는 천일·지일·인일의 삼신일체에 해당하는 대우주의 진여이법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 응신불에 석가불을 대응시키고 있으나, 응신불 역시 원래는 진여이법의 한 쓰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선도와 불교는 다 같이 인간을 숭배의 대상으로 하지 않고, 우주운행의 근본원인 즉 진여이법을 숭배의 대상으로 한다. 둘째, 신선도와 불교는 다 같이 3원론적 1원론이다. 신선도의 기본사상은 천일·지일·인일의 삼신일체사상이며, 불교의 기본사상은 법신(法身)·보신(輔身)·응신(應身)의 삼불일체(三佛一體)사상이다. 곧 3원론적 1원론인 것이다. 셋째, 신선도와 불교는 다 같이 조화사상이다. 삼원론적 일원론은 일방의 중재에 의해 자타일여(自他一如)·물심불이(物心不二)·선악일체(善惡一體)·성속일체(聖俗一體)·개전일체(個全一體) 등 조화사상이 된다. 넷째, 신선도와 불교는 다 같이 순환론(윤회사상)이다. 윤회사상 역시 불교의 기본사상으로서 사계의 모든 학자들이 공인한다. 신선도의 삼신일체 사상도 공간과 시간에 있어서 시작도 끝도 없다는 순환론인데, {천부경}의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과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 및 만왕만래(萬往萬來)가 순환론으로써 신선도 역시 윤회사상인 것이다. 다섯째, 신선도는 곧 신선사상인데 불교 역시 신선사상이다. 신선이란 늙지 않고 오래 살며 자유자재로 몸을 변화시킬 수도 있는 특이한 사람을 지칭한다. 그런데 불교의 비바시불은 8만4천세, 시기불은 7만세, 비사부불은 6만세를 살았다 하여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신선이라 하고, 아미타불은 무량수(無量壽)라는 뜻으로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신선이라 하며, 불(佛)은 신선 가운데 최고라는 뜻으로 대선(大仙)을 지칭한다. 관세음보살은 세상을 교화함에 있어 신변자재하는데 33신(三十三身)이 있다고 한다. 지장보살은 천상에서 지옥까지 일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몸을 6도(六道)에 나타낸다고 한다. 이래서 불경에 신선이니 선인이니 하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고, 불교를 대선도(大仙道)라 칭한다. 이상과 같이 신선도와 불교는 사상적인 측면에서도 서로 일치한다. 더욱이 고대 인도의 정통사상과 불교사상을 비교하여 보면, 고대 인도의 정통사상은 다신론적 일신론(多神論的 一神論)으로서 창조론(創造論)인데, 불교는 범신론적 무신론이며 윤회사상이다. 불교와 인도 사람들의 사유를 비교하여 보아도 불교는 생명평등 내지 인간평등 사상인데, 인도 사람들은 바라문·찰제리·바이샤·수드라의 불평등한 4성계급(四姓階級)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불교는 원래 대승적이어서 관대하면서도 강경하고 온유하면서도 엄격하다. 그래서 정의에는 순응하고 불의에는 항거하는데, 인도 사람들은 대체로 만사에 순응하고 무저항적이다. 또한 불교가 인도 사람들의 사유나 성격적 욕구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어떤 위기에 부닥쳐 일시 쇠퇴하였다 하더라도 기회가 호전되면 다시 소생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슬람교의 침입에 의하여 불교와 힌두교가 다 같이 박해를 받고 멸망하게 되었지만 힌두교는 다시 부활되어 현재 인도 전체 인구의 태반(83%)을 신자로 하고 있는데, 불교는 인도 전역에서 거의 그 자취를 찾아볼 수가 없다. 외국 사람들이 근래에 이르러 세운 사찰만이 몇 곳에 있을 뿐이다. 이를 보아도 불교는 원래 인도사상이 아니며, 석가세존의 독창도 아니라, 우리민족의 신선도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진다. 예수의 기독교가 유태교에 바탕을 두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철학이 고대 그리스의 밀교인 orpheus교를 배경으로 하는 것과 같은 격이라는 것이다. 2. 고유명사와 전문용어가 동일하다. 대승경이 인도에 전승된 이래 몇 번에 걸쳐 결집되면서 경전의 용어가 인도화되었다 하더라도 어쩌면 산명(山名)과 지명(地名) 등 고유명사는 발음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다. 이러한 착안에 따라 불경에서 우리의 고유명사와 전문용어를 찾아보기로 한다. 그러나 필자의 고어지식(古語知識)의 부족으로 한계가 있고, 참고문헌은 {화엄경} 일부와 우리말 사전임을 밝혀둔다. 첫째, {화엄경}에서 발견된 우리의 고유명사를 예시하면, 단군조선 시대부터 천신제를 지내던 강화도의 마니산(摩尼山), 신라의 네 신선이 유오(遊娛)하던 강원도의 금강산, 인삼의 고장을 지칭하는 진단(震旦), 신라의 옛 이름인 시라(尸羅), 유리이사금 때에 지었다고 하는 도솔가의 도솔(兜率), 그밖에 오대산(五臺山)·우두산(牛頭山)·가야(伽倻) 등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본서의 소론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무시할 경우, 우리나라의 지명이나 산명이 불교가 전래된 이후 그 영향에 의하여 붙여진 이름이 아니냐 하고 반문할 수 있다. 불교가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에 전래되기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 서기 372년인데, 위의 산명과 지명들은 그 이전부터 있었거나, 아니면 자연적인 지형이나 지리적 조건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예컨대, 금강산은 개울에 사금(沙金)이 흐르고 멀리서 보면 금빛이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써 그 시원을 알 수 없고, 시라(尸羅)는 B.C. 57년 신라 건국초의 옛 이름이며, 가야는 {신교총화(神敎總話)}에도 나오는 것을 보면 승려들의 수도생활에서 유래된 이름으로써 김수로왕의 금관 가락국 건국 이전 즉 서기 42년 이전부터 있던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이름이다. 마니산은 경기도 강화에 있는 산으로서 '마니'는 산의 돌이 탄탄하여 그 빛을 멀리서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할마니·어마니·심마니·어인마니"의 마니로서 수호신 같은 의미를 지닌 우리민족의 고어이다. 진단은 한자로 震旦·震檀·震丹·振旦·眞丹 등 여러가지로 표기되는데, 인삼의 고장을 상징하는 우리나라의 이칭이다. 이렇게 볼 때, 상기의 산명과 지명이 불교의 영향에 의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볼 수 없다. 또한 산명이나 지명 등 고유명사는 어느 책이나 경전을 보아도 원래의 이름을 그대로 기재하고 임의로 번역하여 기재하지 아니한다. 더욱이 가야를 제외하면 그러한 산명이나 지명이 인도에 없으니 절대 불교의 영향이라 볼 수 없다. 둘째, 신선도에 한웅천황 이전 칠세(七世) 한인이 있었는데, 불교에도 석가불 이전 칠불(七佛)이 있었으며, 칠세 한인 가운데 한분의 명호가 석제임한인(釋提壬桓因)인데, 불교에서 33천의 주신을 석제한인(釋提桓因)이라 한다. {삼국유사} 황룡사장육편을 보면 우리나라에 가섭불(迦葉佛)이 있었는데, 불교에도 가섭불이 있다. 셋째, 신선도의 본당 명칭이 대웅전인데, 불교의 본당 명칭도 대웅전이다. 이에 대해서는 제1편에서 상설하였다. 넷째, 신선도는 단군조선에 와서 특히 발전되었으므로 단(檀)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런데 불교에서 신도를 단도(檀徒)라, 신도의 집을 단가(檀家)라, 시주(施主)를 단월(檀越) 또는 단나(檀那)라, 가장 큰 목향을 전단(?檀)이라 한다. 전단과 백단(白檀)으로 만든 불상을 단상(檀像)이라, 석가세존이 입산수도한 산을 단특산(檀特山)이라 한다. 이와 같이 불교용어에 단(檀)자를 많이 쓰고 있다. 다섯째, 신선도에 '三'수가 가장 기본수여서 '三'으로 된 전문용어가 많다. 예컨대, 삼신일체(三神一體)·삼극일체(三極一體)·회삼귀일(會三歸一)·집일함삼(執一含三)·삼일신고(三一神誥)·삼륜(三倫)·삼강(三綱)·삼진(三眞)·삼문(三門)·삼관(三關)·삼방(三房) 등이 있다. 불교에도 삼불일체(三佛一體)·삼승즉일승(三乘卽一乘)·회삼귀일(會三歸一)·집일함삼(執一含三)·삼계일체(三界一體)·삼각(三覺)·삼관(三觀)·삼론(三論)·삼보(三寶)·삼장(三藏)·삼혼(三魂) 등 많다. 이외에도 유사한 전문용어가 많으나 번잡하므로 생략한다. 여섯째, 불교에서 출가교도를 승(僧)이라 하는데, 신선도에서도 출가교도를 화랑(花郞) 또는 조의(?衣)라 하는 외에 승(僧)이라 한다. 일곱째, 대체로 고유명사와 전문용어의 발음을 보면, 우리의 발음이 지나족의 발음보다 원어(범어)에 더 가깝다. 예컨대, 석가모니(釋迦牟尼)를 예로 들면, 범어로 "샥까무니(Sakga-Muni)", 지나어로 "씨지아모우니(Shigia-Mouni)", 우리말로는 "석가모니"이다. 불타(佛陀)는 범어로 "붇다(Budda)", 지나어로 "호뚜오(Fotuo)", 우리말로는 "불타"이다. 이와 같이 우리민족의 발음이 원어(범어)에 더 가깝고, 지나족의 발음은 원어(범어)와 거리가 멀다. 그 이유를 지나족의 발음이 시대에 따라 변화한 때문이라 할지 모르나, 한자의 발음기호(반절음;反切音)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며, 고유명사와 전문용어의 발음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아니한다. 따라서 우리민족의 발음이 지나족의 발음보다 원어에 더 가깝다는 것은 대승경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이 아니라, 인도에서 우리나라로 직접 전래됐거나, 아니면 우리나라에서 인도로 직접 전승됐음을 의미한다. 이상과 같이 대승경의 고유명사와 전문용어가 우리민족의 그것과 동일하다. 그것 역시 불교의 원류가 신선도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 신선도의 천산과 불교의 수미산이 동일하다 신선도가 우리나라 백두산에서 한웅천황과 단군왕검에 의하여 설해지고 발전되었다 하더라도 그 시원을 찾아 올라가면 그 최초의 발상지는 중앙 아시아의 천산(天山)이다. 또한 석가불교는 이 세상 중앙에 높이 솟아있다고 하는 수미산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그런데 천산에 대한 중앙 아시아 칼마크인(Kalmuck人)의 전설과 수미산에 대한 불교의 전설을 비교해 보면 두 개의 산이 그 특수성에 있어서 서로 동일하다. ? 중앙 아시아 칼마크인의 전설에 천산이 물(淡水) 밑으로 8만 리그(league) 뻗어있고, 물 위로 8만 리그 솟아있다고 했다. 그런데 불교의 수미산 역시 물(바다) 밑으로 8만 유순 뻗어있고, 물 위로 8만 유순 솟아있다고 했다. 곧 천산과 수미산의 높이가 물의 밑과 위로 8만 유순(리그)이라 함이 동일하다. ? 칼마크인의 전설에 천산의 남면은 청(靑), 서면은 적(赤), 북면은 금(金), 동면은 은(銀)의 광채를 발산한다고 했다. 그런데 불교의 수미산 역시 사보(四寶)로 이루어져 남면은 유리, 서면은 파리, 북면은 황금, 동면은 백은으로 이루어져 해와 달이 그 주위를 회전하면 보광을 발산한다고 했다. 곧 천산과 수미산이 모두 그 동서남북에서 금은주옥의 보광을 발산한다는 점이 동일하다. ? 천산의 주위를 7개의 산이 둘러싸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불교의 수미산 역시 그 주위를 7개의 금산(金山)이 둘러싸고 있다고 했다. 즉 7개의 산이라는 점이 동일하다. ? 천산의 주위를 둘러싼 7개의 산 사이에 7개의 물(淡水)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불교의 수미산 역시 그 주위를 둘러싼 7개의 금산 사이에 7개의 물(바다)이 있다고 했다. 곧 천산과 수미산이 모두 7개의 물로 둘러 싸여있다는 점이 동일하다. ? 천산을 둘러싼 마지막 산맥 밖을 소금물 바다(大洋)이 둘러싸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불교의 수미산 역시 마지막 금산 밖을 짠물바다(鹹海)가 둘러싸고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천산과 수미산의 외곽이 모두 소금물바다 곧 짠물바다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 동일하다. ? 천산을 둘러싼 소금물 바다 주위를 철위산(鐵圍山)이 둘러싸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불교의 수미산 역시 짠물바다 밖을 철위산이 둘러싸고 있다고 했다. 곧 천산과 수미산의 짠물바다(대양) 밖을 모두 철위산이 둘러싸고 있다는 점이 동일하다. ? 천산의 4방에는 소금물 바다 위에 하나씩의 땅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불교의 수미산을 둘러싼 짠물바다 위에도 4대주가 있다고 했다. 곧 천산과 수미산의 주위에 4대주(四大州)가 있다는 점이 동일하다. 이상과 같이 천산과 수미산은 서로 동일하다. 이는 곧 천산이 수미산이고 수미산이 천산임을 의미한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신선도와 불교의 발상지가 동일함을 의미한다. 이를 보아도 불교는 신선도의 한 유파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 상해에서 간행된 {산해경} 해내경 원본을 보아도 여러 전거를 들면서 조선을 천독(天毒) 즉 천축(天竺)이라 하고, 불도(佛道)가 그 나라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Ⅹ. 결 론 이상 논한 본편의 소론을 요약 정리하면 1) 석가세존은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우리나라에서 고행성도한 단군족으로서 근본적으로 한국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석가세존은 인도 사람이 아니다. 2) 석가세존이 고행성도한 설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으로서 인도의 부다가야는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가 아니다. 3) 석가세존이 초전법륜지인 녹야원은 인도 중부의 사르나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제주도 한라산이다. 4) 대승경의 출처는 바다로서 우리나라 고조선이다. 5) 대승경의 범서는 인도의 문자도 언어도 아니라, 상고시대 우리나라의 글자와 언어이다. 6) 남인도에 우리나라의 고대 한글과 언어가 있다. 7) 신선도와 불교의 기본사상이 전적으로 일치되고, 의식도 유사하다. 그밖에 대승경에 있는 산명과 지명이 인도에 없고, 우리나라에는 있다. 8) 불교의 수미산과 신선도의 천산이 동일하다. 이상을 근거로 결론을 내리면 석가불교의 원류는 전적으로 상고시대 우리민족의 배달사상인 신선도라 할 수 있다. 이를 대소승불교로 나누어 말하면, 소승불교는 신선도를 바탕으로 성립된 신선도의 지류라 할 수 있고, 대승불교는 전적으로 우리나라의 신선도와 동일한 종교라 할 수 있다. 이를 생각하면 우리나라에 있는 대승불교는 비록 외래종교라 하더라도 역수입된 고유종교라 할 수 있고, 불교인들은 실재에 있어서 외래종교 신자가 아니라 고유종교 신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이란 백지에 글을 쓴 격이니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신심(信心)이 두터우면 두터울 수록 제 신앙만을 고집하고, 조국도 민족도 부모형제도 신앙 다음으로 친다. 냉정히 자신의 신심을 반성하여 보자. 석가모니는 따지고 보면 원래 우리나라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다른 나라 사람 곧 인도 사람이라 믿어왔다. 그런데 다른 나라 사람인 석가모니를 절의 가장 중앙 대웅전에 안치하여 조석으로 공양하면서도, 제 민족의 국조이시고 대성인이신 한인·한웅·한검을 모시고 있는 절도 얼마 없거니와 모시고 있다 하더라도 대웅전 밖 어느 한쪽 모퉁이에 방치하고 있다. 이는 주인을 내쫓고 손님을 안방에 안치한 격이며, 선배를 무시하고 후배를 높이는 격이 아닌가? 제 조상을 옆에 두고 남의 조상에게 의지하는 격이며, 제 부모를 박절하고 남의 부모에게 매달리는 격이 아닌가? 그것이 과연 윤리도덕에 부합되는 일인가? 애국적인 행동인가? 부처님의 가르침인가? 한국 사람이 한국 땅에서 한국에서 나는 곡식을 먹고 살면서 외국을 동경하고 외국종교를 믿고 외국 사람을 신봉하는 것이 과연 이치에 합당한 일인가? 그것이 주객전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요는 석가세존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석가세존이 단군족의 후예라는 사실과 불교가 원래부터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 제 민족의 국조이시고 성인이신 한인·한웅·한검을 대웅전에 석가세존과 함께 모시고 섬기라는 것이다. 깊이 자성하고 신심이 원시반본(原始返本)될 때, 비로소 외래종교 신자라는 허탈감에서 해방되어 참다운 신앙을 할 수 있게 되리라 믿는다. 참다운 신앙을 할 때, 자신과 가정에 기쁨과 행복이 오고, 견성성불할 수 있으며, 국가적으로는 1천 2백만 애국동포를 얻는 것이 된다. 또한 그리 될 때, 불교계도 자연적으로 의식개혁을 하게 되어 부처님의 자비가 내리고 7천만이 하나가 될 수 있고, 아울러 국토통일만이 아니라 사상통일까지 이루게 되어 민족의 전도가 밝게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불교계의 각성과 공식적인 수용을 촉구한다. 제3편 유교의 발상지는 우리나라이다 홍익인간 광명이세 Ⅰ. 서 론 본편에서는 지나족에게 뺏겼던 유학을 찾는 문제를 다루려한다. 그러므로 특히 주자학자들은 정신을 한층 가다듬고 본편을 읽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한국 사람인가? 아니면 지나족인가를 분명히 확인한 다음 본편을 읽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유교의 사서삼경(四書三經) 외에 제 민족의 역사서와 사상서를 몇권이나 읽었는지를 반성하고 본편을 읽어주기 바란다. 인간은 원래 객관적이 못된다. 곧 파란 안경을 쓰고 사물을 보면 사물이 파랗게 보이고, 빨간 안경을 쓰고 사물을 보면 사물이 빨갛게 보이며, 무색안경을 쓰고 사물을 보면 사물이 사실대로 보인다. 그와 같은 이치를 이해한다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반성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곧 주자학 제일주의와 지나중심주의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 그러한 입장에서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연구하고, 지나족의 역사와 사상을 연구하여 양자를 비교하여 보라. 그러면 지나의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우리민족의 지손(支孫)이요, 유교의 사서삼경(四書三經)도 신선도의 한 가닥에 불과함을 알게 될 것이다. 갑골문(甲骨文)이 우리민족에 의해서 비롯되었고, 한자(漢字)도 우리민족에 의해서 창제되기 시작하였다. {주역(周易)}이 우리민족에 의해서 비롯되었고, 음양오행사상(陰陽五行思想)을 비롯하여 홍범구주(洪範九疇)가 우리민족에서 지나로 전승되었다. 인(仁)사상은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이요, 오상오륜(五常五倫)은 원래 우리민족의 고유덕목이었다. 곧 유교의 원류가 우리나라의 신선도로서 유교 자체가 곧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이었다. 지나족의 이상세계이며 중국문화의 발상지라는 신비의 곤륜산(崑崙山), 산의 조종이라는 곤륜산도 우리나라의 백두산이었다. 이러한 학설은 근세조선 때라면 사문난적(斯門亂賊)이라 하여 타도의 대상이 될 것이며, 현재에도 제 나라의 역사와 사상에는 관심이 없고 지나를 우러러 받드는 일부 골수 주자학자들에게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라 하여 무시당할지 모른다. 그러나 제 나라의 역사와 사상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대다수 유학자들에게는 새로운 연구자료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는 초보적인 연구로서 완성된 것이 아니며, 앞으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객관적인 비판을 기다린다. Ⅱ. 유교는 우리나라에서 기원되었다 1. 지나문화의 발상지인 곤륜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1) 곤륜산은 어떤 산인가? 지나인들은 곤륜산(崑崙山)을 지나문화의 발상지, 지나인의 정신적 고향, 지상선경, 산의 조종으로 믿는다. 그러면서도 곤륜산맥이 지나대륙 서쪽에 있음으로써 곤륜산도 곤륜산맥의 어디에 있을 것이라 막연히 추정할뿐 그 위치가 신비속에 가려져 있다. 마치 불교에서 설산과 바다가 지금까지 신비속에 가려 있었듯이 곤륜산도 지금까지 신비속에 가려져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선 곤륜산은 어떤 산인가? 곤륜산의 성립요건부터 알아보기로 한다. 참고문헌은 학원출판공사의 {학원세계대백과사전}, 동아출판사의 {동아원색세계대백과사전}, 이희승의 {국어대사전}, 불교의 {석가방지} 등이다. 이들 서적에 의하면 곤륜산의 성립요건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곤륜산은 그 정상에 아름다운 못이 있다. 그 못을 당(唐)나라에서는 아나타답다라 하고, 불교 명칭으로는 아뇩달지라 한다. 2) 못의 3면이 비등한데 북은 넓고 남은 좁아 인면상(人面像)이다. 3) 곤륜산은 하수의 원천으로서 못의 북쪽에 큰 폭포가 있고, 4방으로 4대하가 흐른다. 4) 곤륜산은 3층으로 되어있다. 5) 곤륜산은 신선이 사는 곳이다. 6) 곤륜산은 불사약이 나는 곳이다. 7) 곤륜산은 아름다운 옥(玉)이 나는 곳이다. 8) 곤륜산에 서왕모(西王母)에 대한 전설이 있다. 9) 곤륜산은 지구의 중심에 있다. 곤륜산의 성립요건이 이상 외에도 많으나 대체로 생략하고 위에 제시한 요건에 한정해서 곤륜산이 어디에 있는 어떤 산인가를 확인해 보기로 한다. 2) 곤륜산은 지나대륙에 없다. 지나대륙의 서쪽에 곤륜산맥이 있는데 거기에 곤륜산이 있느냐의 문제이다. 다시 말하면 위에 제시한 요건을 갖춘 그러한 곤륜산이 곤륜산맥에 있느냐의 문제이다. 이 지구상에 같은 이름을 가진 산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 산을 모두 같은 산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곤륜산맥 가운데 어느 산의 정상에도 강하의 원천인 아름다운 못(호수)이 있다는 기록을 본바 없고, 동아일보의 보도에 의해도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산상호수는 페루와 볼리비아의 국경에 있는 티티카호(湖)와 소련의 레닌그라드 근처에 있는 라도카호(湖)라 하여 곤륜산맥 가운데 어느 산의 정상에도 큰 못(호수)이 없음을 확인하여 주고 있다. 이는 곧 지나 서쪽 곤륜산맥에 곤륜산이 없음을 확인하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함경도에 함경산맥이 있으나 거기에 함경산이 없는 것과 같은 격이며, 인도 부부에 히말라야 산맥이 있으나 거기에 히말라야산이 없는 것과 같은 격이다. 동아출판사의 {동아원색세계대백과사전}에도 곤륜산은 중국의 곤륜산맥과는 아무런 상관이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3) 곤륜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그러면 곤륜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라는 추정이 가능하게 된다. 왜냐하면 {석가방지}에 곤륜산을 곧 설산이라 했고, 설산이 백두산이라는 사실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백두산의 특수성을 곤륜산의 성립요건에 대입시켜 보기로 한다. 1) 곤륜산의 정상에 아름다운 못이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백두산의 정상에도 형형색색의 병풍석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못인 천지가 있다. 2) 곤륜산 정상의 못이 그 모형에 있어서 3면이 비등하나 북은 넓고 남은 좁아 인면상이다. 그런데 백두산 천지의 모형도 3면이 비등하고 북은 넓고 남은 좁아 인면상이다. 3) 곤륜산은 하수의 원천으로서 못의 북쪽으로 큰 폭포가 흐르고 4방으로 4대하가 흐른다. 그런데 백두산도 하수의 원천으로서 천지의 북쪽으로 큰 폭포인 천지폭포가 흐르고 4방으로 4대하가 흐른다. 4) 곤륜산이 3층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백두산도 3층으로 되어있고, 실제 답사하여 보거나 사진을 보아도 3층이다. 5) 곤륜산에 신선이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백두산에도 한웅·한검·자부선인 등 신선이 살았으므로 백두산 일대를 신시(神市) 또는 신주(神州)라 한다. 6) 곤륜산에서 불사약이 난다고 하였다. 그런데 {부도지}에 의하면 백두산에서도 삼근영초(三根靈草)인 산삼(山蔘)이 나고 이를 불사약이라 하였다. 7) 곤륜산에서 아름다운 옥이 난다고 하였다. 그런데 {부도지}에 의하면 백두산에서도 7색보옥(七色寶玉))이 생산되었다고 하였다. 8) 곤륜산에 서왕모에 대한 전설이 있다. 그런데 백두산에도 서왕모에 대한 전설이 있다. 9) 곤륜산은 지구의 중심에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백두산을 중심으로 세계지도를 보면 일본열도는 좌청룡, 지나대륙은 우백호에 해당되며, 남북아메리카 대륙은 외청룡, 아프리카 대륙과 유럽대륙은 외백호에 해당되고, 시베리아 대륙은 현무, 오세아니아주는 주작에 해당되어 백두산이 비교적 지구에서 가장 중심인데, 세계지리학회에서 위성사진을 근거로 백두산을 지구의 중심이라 하였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우리민족사 연구에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중심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가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백두산이 곤륜산의 성립요건과 부합일치된다. 이는 백두산이 곧 곤륜산이고, 곤륜산이 곧 백두산임을 의미한다. 백두산 토착민들도 백두산을 곤륜산이라 하였다. 청(淸)나라의 제4대 강희제(康熙帝)도 지나의 태산(泰山)은 물론 한국·지나·만주의 모든 산이 백두산에서 뻗어나간 지맥임을 주장했다. 즉 곤륜산이 모든 산의 조종인데, 백두산이 모든 산의 조종임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문화와 유교가 곤륜산에서 기원된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의 백두산에서 기원되었다는 이론이 성립되고, 공맹의 유교가 우리나라 신선도에서 기원되었다는 사실이 제1차적으로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유교의 창시자는 우리민족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중국문화의 개조(開祖)는 복희(伏羲)·신농(神農)·황제(黃帝)이다. 이들 삼황은 어느 민족에 속하는가? 주지하다시피 복희는 배달국 태우의한웅(太虞儀桓雄)의 막내아들로서 동이족이다. 복희가 동이족이라는 사실은 부사년(傅斯年) 등 중국학자들도 인정한다. 신농(神農)씨는 소전(少典)의 아들이다. 소전은 고시(高矢)씨의 방계(傍系) 후손이다. 고시씨는 농경을 맡은 단군왕검의 직속 신하이다. 그러므로 신농씨 역시 동이족인 것이다. 오늘날 강(姜)씨의 시조이기도 하다. 황제 헌원 역시 소전(少典)의 별파로서 동이족이다. 그래서 {초사:楚詞}에 "황제는 백민태생(白民胎生)이고 원래 동이족이라"고 하였다. 삼황 다음 유학은 누구에 의해서 전승되었는가? {중용}을 보면 "중니(仲尼:孔子의 字)는 요순(堯舜)의 도를 조술하고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법도를 헌장으로 하였다"고 했다. 또한 유학의 계통을 당(唐)나라 시대의 한자(韓子)는 {맹자집주} 서설에서 "요(堯)임금은 인의(仁義)의 도(道)를 순(舜)임금에게 전하고, 순임금은 이것을 하(夏)나라의 우(禹)임금에게 전하고, 우임금은 이것을 은(殷)나라의 탕(湯)임금에게 전하고, 탕임금은 이것을 주(周)나라의 문(文)·무(武)·주공(周公)에게 전하고, 문·무·주공은 공자에게 전하고, 공자는 맹가(맹자)에게 전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보면 복희·신농·황제 다음, 중국문화와 유학은 요임금과 순임금에 의하여 전승되고 있다. 이들은 어느 민족에 속하는가? {사기}에 의하면 요임금은 황제 헌원의 5세손으로 동이족이다. 요임금이 동이족이란 것은 안호상과 최동 등 여러 학자들이 여러 전거를 들면서 주장한다. 또한, {맹자}를 보면 순임금의 출생지·거주지·사망지가 모두 동이지방임을 밝히면서 순임금도 동이족임을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사계의 모든 학자들이 공인한다. 유학을 집대성한 공자는 어느 민족에 속하는가? 공자는 은(殷) 왕실과 송(宋) 왕실의 후손이다. 은왕실과 송왕실은 동이계이다. 그러므로 공자 역시 동이계이다. 이상과 같이 중국문화와 유학을 개창한 개조가 모두 동이족이다. 여기에서 우리민족은 동아문화의 개창자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히 드러났다고 할 수 있고, 공맹의 유교는 우리민족의 신선도에서 갈려나간 신선도의 지류라는 사실이 제2차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3. 한자의 창제는 우리민족에서 비롯되었다 한자의 전래와 더불어 유학이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다. 이는 한자가 지나족에 의하여 창제되었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이루어진 추정이다. 그러면 한자를 어느 민족이 먼저 창제하기 시작했는가? 다시 말하면 한문의 사용문제가 아니라 한자의 기원문제이다. 이는 마치 영어는 영국어이지만 영어를 표기하는 알파벳(Alphabet)의 기원은 영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페니키아문자 또는 그리스문자에 있다고 하듯, 한문은 지나어이지만 한문을 표기하는 문자 곧 한자의 기원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한자는 중국을 위시로 하여 한국·일본·동남아 등 아시아권 일원에서 거의 쓰여지고 있다. 그 제작도 동양 각국에서 이루어져 한자는 동방문자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자의 기원에 대한 기록을 보면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 "신시에 녹서(鹿書)가 있었고, 자부에 우서(雨書)가 있었으며, 치우에 화서(花書)가 있었다. 투전문속(鬪佃文束)은 그 남은 흔적이다. 복희에 용서(龍書)가 있었다. 단군에 신전(神篆)이 있었다. 이러한 글자와 글이 백산·흑수·청구 등 구려(九黎)의 지역에서 널리 쓰여졌다"고 하였다. 또 이어서 "부여인(扶餘人) 왕문(王文)은 처음에 전(篆)을 번거롭게 만들었으나 점점 그 획을 생략하여 새로이 부예(符隸;예서의 서체)를 만들어 그것을 썼다. 진(秦) 때에 정막(程邈)이 숙신(肅愼)에 봉사하여 한수(漢水)에서 왕문의 예법(隸法)을 얻었다. 또 그 획을 가지고 약간 바꾼 것이 지금의 팔분체(八分體)이다. 진(晉) 때에 왕차중(王次仲)이 또 해서(楷書)를 만들었는데 차중은 왕문의 원예(遠裔)이다. 지금 문자의 기원을 궁구하여 보면 다 신시의 유법이며 지금의 한자 역시 그 지류를 이은 것이 분명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단군세기} 제3세 단군 가륵(嘉勒) 2년조를 보아도 상형표의(象形表意)의 진서(眞書) 곧 한자(漢字)가 있었다 하고, 단군왕검이 처음으로 나라를 세울 때도 국호를 한자로 "조선(朝鮮)"이라 하였다. 이는 단군왕검 시대에도 한자를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학이 한자와 더불어 전래됐을 것이라는 추정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 사학계에서는 위의 기록을 믿으려 아니한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통설에 따라 한자의 유래를 따져보기로 한다. 그러면 한자의 창제설에 어떤 것이 있는가? 크게 두 가지 학설이 있다. 하나는 지금으로부터 약 3천 5백년 전 은(殷)나라의 한 때 도읍지였던 안양(安陽)에서 발견된 갑골문자가 한자로 발전되었을 것이라는 갑골문자 발달설이 있고, 다른 하나는 지금으로부터 약 5천년 전 창힐(蒼?) 등 어느 개인이 한자를 창제하였다는 학설이 있다. 1) 갑골문과 한자의 기원 갑골문이란 점을 치는데 사용됐던 문자로서 거북의 등딱지인 귀갑(龜甲)이나 소와 말의 어깨뼈에 새겨진 문자를 말한다. 이 문자는 1899년 왕의영(王懿榮)과 유악(劉?) 등에 의하여 발견된 후 많은 연구에 의하여 은(殷)나라의 것임이 밝혀졌고, 은나라는 B.C. 17세기 경에서 B.C. 11세기 중반까지 지나 황하유역에 존재하였던 나라이다. 그러면 은나라는 어떠한 나라인가? 은나라는 상(尙)나라라고도 한다. 상나라의 시조는 설(契)이다. 설의 아버지는 제곡고신(帝嘗高辛)이다. 제곡고신의 할아버지는 소호금천(少昊金天)이다. 소호금천은 황제 헌원의 맏아들이다. 황제 헌원은 동이족이다. 이래서 은민족은 우리민족과 같이 백의를 입었고, 천신제를 지냈으며, 수골에 의하여 점을 치고, 순장제도(殉葬制度)였으며, 시조의 탄생설이 난생설(卵生說)로서 은왕실과 은민족이 동이족이라는 것은 학계의 일반적인 정설이다. 즉 은민족은 우리민족과 동일계의 민족이라는 것이다. 또한 단군조선 시대에도 이미 한자가 있었다. 그렇다면 갑골문 역시 동이족의 본거지인 동부지방에서 서쪽으로 전승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지나에서 우리민족 사회로 전래됐을 것이라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2) 한자의 창제와 우리민족 한자의 창제설에 어느 개인을 두고 말할 때는 ?복희설 ?창힐설 ?주양설(朱襄說) ?저송(沮誦)·창힐설(蒼?說) ?범(梵)·거려(?廬)·창힐설(蒼?說) 등이 있다. 이 다섯 가지 설을 비교하여 보면 가장 공통적인 학설이 창힐설이다. 그래서 창힐을 한자의 최초 창제자로 꼽는다. 그러면 창힐(蒼?;倉?)은 어느 시대 사람이며 어느 민족에 속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학설이 있다. ? 창힐은 상고시대의 황제(黃帝)이다. ? 창힐은 황제(黃帝)의 사관(史官)이다. 이들 두 가지 설 가운데 어느 설이 정확한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창힐이 황제라 할 경우 황제는 동이족이므로 창힐은 동이족이다. 또한 황제의 사관이라 할 경우, 황제는 동이족이므로 창힐 역시 동이족일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태백일사} 신시본기에 "창힐과 고신(高辛) 역시 다 치우의 묘예(苗裔)다"하였는데 치우는 동이족이다. 그러므로 창힐은 어떻게 보든 동이족이다. 여기에서 한자의 지나족 창제설은 두번째로 부정된다. 3) 한자의 상형과 우리민족 이상과 같이 한자의 기원이 동이족 곧 우리민족에 있었다면 한자의 제작원리인 한자의 상형(象形) 역시 자연적인 현상 외에 우리민족의 생활과 그 습속을 나타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명지대학교의 진태하(陳泰夏)교수는 한자의 형성과정에 우리민족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자료를 제시하여 국내 언어학계에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진태하 교수가 제시하고 있는 근거를 몇가지 소개한다. 첫째, '집가(家)'자는 집면(?)자 안에 '사람인(人)'자가 들어가 있어야 당연한데 '돼지시(豕)'자가 들어가 있다. 따라서 집가(家)자는 집 안에 돼지를 키웠던 민족, 즉 한민족만이 만들 수 있는 글자라는 것이다. 둘째, '날일(日)'자는 해 모양을 상징한 문자이다. 그렇다면 해와 같이 둥글게 그리면 그만이다. 그런데 해 안에 까마귀 그림이 들어있다. 그러니까 이 문자를 만든 민족은 금까마귀 신화를 가진 민족이다. '날일(日)'자가 만들어지기 이전 수만년 전부터 그러한 신화를 전하여 오는 민족은 한민족 밖에 없다. 그러므로 '날일(日)'자 역시 우리민족만이 만들 수 있는 문자라는 것이다. 셋째, 지나에서는 종자를 나타낼 때 '씨(氏)'라고 쓰지 않는다. '씨(氏)'는 그런 의미도 아니다. 오직 성씨만을 '씨(氏)'라고 한다. 그런데도 성씨를 나타낼 때 쓰는 '씨(氏)'자는 씨앗에서 뿌리가 내리고 싹이 트는 모습에서 나왔다. 지나족이 이 문자를 만들었다면 종자를 '씨(氏)'라고 표현하는 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없다는 것이다. 우리말의 '씨(氏)'는 종자와 성씨 모두에 사용된다. 따라서 '씨(氏)'자 역시 한민족만이 만들 수 있는 문자라는 것이다. 진태하 교수는 이상과 같이 근거를 제시하면서 한자(漢字)라는 명칭은 옳지 않으며, 고대 한민족의 글이라는 "옛한글 혹은 동방문자(東方文字)"라고 불러야 옳다고 하였다. 진교수는 "젊은 세대들은 특히 한민족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하여야 할 시점이다. 한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표의문자도 만들었고, 가장 과학적인 표음문자도 만들었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이 일은 한민족의 큰 자랑이다"라고 강조한다. 4) 한자의 반절음은 우리민족 중심이다 한자는 자형(字形)·자음(字音)·자의(字義)의 3요소로 구성되어있다. 자음을 표기하는 발음부호를 반절음(反切音)이라 한다. 반절음은 한자(漢字)로써 한자의 자음(字音)을 표기한 일자일음(一字一音)의 발음부호로써 한자를 창제한 민족의 발음을 기준으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반절음과 일치되거나 가깝게 발음하는 민족이 한자의 창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지나족의 발음과 우리민족의 발음 가운데 어느 민족의 발음이 반절음과 일치되거나 가까운가를 알아보기로 한다. 백두산(白頭山)을 예로 들면, 백(白)의 반절음은 박맥절(薄陌切)로서 원음이 '백'이다. 지나족의 발음은 '바이(bai)'인데, 우리민족의 발음은 '백'이다. 두(頭)의 반절음은 도후절(徒侯切)로서 원음이 '두'이다. 지나족의 발음은 '또우(tou)'인데, 우리민족의 발음은 '두'이다. 산(山)의 반절음은 사한절(師閒切)로서 원음이 '산'이다. 지나족의 발음도 '산(shan)'인데, 우리민족의 발음도 '산'이다. 이와 같이 우리민족의 발음은 반절음과 일치하고, 지나족의 발음은 반절음과 틀리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한자의 발음은 원래 일자일음(一字一音)인데 지나족의 발음은 일자이음(一字二音)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임승국은 한자 53,525자의 발음부호인 반음절이 모두 우리말 기준으로 되어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동이계가 황하문명의 주인공임을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고 하였다. 이를 보아도 한자의 기원이 우리민족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한자의 발생기원을 탐색하여 보면 그것은 우리민족에서 먼저 발원되었다. 그러나 {단군세기}를 보면 "상형표의(象形表意)의 한자(眞書)가 있었으나 서로 뜻이 통하지 못하고, 국가 사이에도 서로 이해하기 어려움으로써 삼랑(三郞) 을보륵(乙普勒)에게 명하여 정음(正音) 38자를 만들게 하였다"는 기록으로 볼 때, 우리민족은 한자를 먼저 창제하였으나 그 난해성으로 인하여 고대에 이미 그 사용을 포기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반하여 지나는 전한(前漢)과 후한(後漢)에 걸쳐 한자문화가 크게 발전하여 글자 수가 늘어나면서 한자(漢字)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한자가 마치 지나족에 의하여 창제된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자와 더불어 유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은 부정되어야 할 것이다. Ⅲ. 유교사상과 우리민족의 신선도 1. 주역은 신선도의 경전이다 {주역}은 유교의 기본경전으로서 8괘(八卦)와 64괘(六十四卦) 그리고 이를 설명한 괘사(卦辭)와 효사(爻辭) 및 십익(十翼)으로 구성되어 있다. 8괘는 천지만물이 회통하는 이치 곧 천지인삼재지리(天地人三才之理)와 봄·여름·가을·겨울이 돌아가는 이치 곧 음양오행사상(陰陽五行思想)을 기본원리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고, 64괘는 8괘를 더욱 발전시켜 길흉화복(吉凶禍福)이 돌아가는 이치를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괘사는 괘의 총체적 뜻을 설명한 것이고, 효사는 육효(六爻)에 대한 설명인 것이다. 1) 역(易)은 동이족에서 비롯되었다. {소도경전본훈}을 보면 역(易)에는 환역(桓易)과 희역(羲易) 그리고 금역(今易)이 있다. 희역은 복희의 역을 의미한다. {태백일사} 신시본기를 보면, 복희가 어느날 꿈에 "삼신(三神)이 몸에 강령하여 만리를 통철하게 되고 인하여 삼신산에 가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천하(天河;지금의 송화강)에서 괘도를 얻었는데 삼절(三絶;┏陰爻) 삼연(三連;?陽爻)하여 위치를 바꾸면서 그 이치를 궁구하면 묘하게도 삼극(三極)을 품고 있어 변화가 무궁하였다"고 하였다. 즉 괘도를 복희가 천하에서 얻었다고 하였다. 이는 복희가 괘도를 처음으로 제작하였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전승되고 있던 것을 복희가 얻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삼성기전} 상편을 보면, "환국을 이어서 한웅씨가 일어나 괘(卦)를 그리어 미래를 알고 괘상을 잡아 신통력을 부렸다"고 하여 한웅천황에게서 역(易)이 비롯되고 있다. 신시본기에도 황제중경(黃帝中經)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의 근본은 신시(神市) 구정균전(邱井均田)의 유법이라 하여 {주역}의 근본원리인 음양오행사상이 신시에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상 {한단고기}의 기록에 의하면 역은 한웅천황에 의하여 기원되고 복희에 와서 좀더 구체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의 저작에 대하여 학설이 각각이다. 일반적인 학설을 소개하면 제1설로는 8괘와 64괘를 모두 복희씨가 저작하였다는 위(魏)의 왕필설(王弼說)이 있고, 제2설로는 8괘는 복희씨가 저작하고, 64괘와 괘효사(卦爻辭)는 문왕이 저작하였다는 사마천설(司馬遷說)이 있다. 여기에서 제2설이 통설로 되고 있다. 그 이유를 보면 복희씨는 전설적인 인물이고, 8괘 창안에 대한 역사적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앞에서 밝혔듯이 복희씨는 동이족이며 좁게는 우리민족이다. 우리민족은 3국시대 이후만하여도 931회의 외침을 당하였다고 한다. 외침을 당할 때마다 사료가 소실되었고 멸실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민족에게는 사료가 없을 수 밖에 없고, 사료가 없으니 상고시대의 인물이 전설적인 인물로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료가 없다거나 전설적인 인물이라 하여 복희씨의 64괘 창제설을 부정함은 모순인 것이다. 더욱이 위에서 밝혔듯이 복희씨에 의하여 괘도가 제작되었다는 기록 외에 한웅천황에 의하여 그려졌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므로 역은 한웅천황에 의하여 비롯되고 복희와 문왕에 의하여 더욱 발전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2) 주역과 신선도의 동일성 역(易)은 날일(日)자와 달월(月)자의 회의문자인 바꿀역(易)자이다. 곧 역이란 해와 달이 바뀌고 돌아감을 의미한다. 그런데 {주역} 계사상전 제11장을 보면 "역은 천지(天地)에 준거하여 만들어진 것이라"하였고, 계사상전 제2장에는 "육효(六爻)의 움직임은 천지인(天地人) 세 가지의 지극한 이치를 표현한 것이라"하였다. 또한 "그런 까닭에 역의 이치에는 태극이 있고, 태극이 하늘과 땅 두 현상을 낳고, 하늘과 땅은 태양·태음·소양·소음의 4상을 낳고, 그런 까닭에 법의 현상은 하늘과 땅보다 더 큰 것이 없고, 변하고 통하는 것은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절보다 더 큰 것이 없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주역과 신선도의 동일성을 지적하면, 첫째, 신선도의 일기(一氣)와 {주역}의 태극은 같은 뜻을 지닌다. 둘째, 신선도와 주역은 모두 천지인 삼재(天地人 三才)와 음양오행(陰陽五行) 사상을 발생원리로 한다. 셋째, 신선도의 숭배대상은 하나님인데, {주역}에서도 숭배의 대상이 하나님이다. 넷째, 신선도는 순환론인데, {주역} 역시 순환론이다. 이와 같이 {주역}과 신선도의 기본사상이 동일하다. 여기에 괘(卦)가 한웅천황과 복희에 의하여 기원되었다는 것을 아울러 생각하면 {주역}은 원래 동이족의 사상이며 신선도의 경전이라 할 수 있다. 2. 홍범구주는 우리민족의 사상이다 홍범구주(洪範九疇)란 첫째, 오행(五行). 둘째, 경용오사(敬用五事). 셋째, 농용팔정(農用八政). 넷째, 협용오기(協用五紀). 다섯째, 건용황극(建用皇極). 여섯째, 예용삼덕(乂用三德). 일곱째, 명용계의(明用稽疑). 여덟째, 염용서징(念用庶徵). 아홉째, 향용오복 위용육극(嚮用五福 威用六極)이다. 이를 부연한 것이 유교라 할 수도 있다. 그러면 홍범구주는 어디에서 유래되고 있는가? {태백일사} 신시본기에는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인 황제중경지서(黃帝中經之書)가 태자 부루(扶婁)에게서 나와서 우(虞)의 사공(우임금)에게 전하여지고 후에 다시 주왕(紂王)에게 기자(箕子)가 진술한 것이 홍범(洪範)이 되었으니 바로 그것이 황제중경(黃帝中經) 오행치수(五行治水)의 설(說)인 즉 대개 그 학문의 근원은 신시(神市) 구정균전(邱井均田)의 유법(遺法)인 것이다 라고 하였다. 즉 지나에 전승된 홍범구주(洪範九疇)는 신시(神市)에서 연원되었다는 것이다. 신채호 역시 여러 전거를 들면서 말하기를 {상서:尙書}에 "홍범(洪範)은 하우씨(夏禹氏)가 전하는 바라" 하였고, {오월춘추;吳越春秋}에 "하우씨가 치수(治水)할 때에 현토사자(玄?使者)로부터 중경(中經)을 받았다"고 하였으며, 고기(古記)에 "단군 태자 부루(扶婁)가 하우(夏禹)씨를 도산(塗山)에서 보았다"고 하였으므로 이 세 가지 사실을 고찰하여 볼 때, 기자(箕子)의 홍범(洪範)은 곧 부루의 중경(中經)을 강술한 것이라 하였다. 아울러 {한서(漢書)}에 거북이가 문자를 지고 낙수(洛水)에서 나오므로 우(禹)가 홍범을 연(演)하였다 하나, 그것은 망증(妄證)이라 하였다. 3. 인사상은 우리민족의 사상이다 인(仁)자는 사람인(人)변에 두이(二)자로서 천·지·인(天地人)의 회의문자(會意文字)이다. 그래서 인사상은 신선사상이라는 것을 곧 알 수 있고, 유학의 핵심사상을 이루어 사서(四書)의 하나인 {논어}에만도 인(仁)에 대한 말씀이 무려 50여회나 나타난다. 그러면 인사상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고 어디의 무엇에서 유래되고 있는가? 첫째, 고대에 있어서 인(仁)과 인(人)과 이(夷)는 같은 의미로 쓰였다. 즉 인(仁)은 동이족을 의미하였다. 중국의 학자 노간(勞幹)도 말하기를 "우리들이 동방 사람들을 동이(東夷)라고 부른다. 이(夷)자와 인(仁)자는 통용된다. 인(仁)자와 인(人)자는 또한 한 근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에 있어서 인(人)자를 일컫는 것은 그 근원이 동방에서 나왔으며, 만약 동이족이 문화적으로 선진이고, 먼저 '인(人)'을 사용하였다고 하면 후대에 와서 서방에서 기원한 부족들이 이를 빌어 전인류의 명사로 쓴 것이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사람인(人)자와 어질인(仁)자는 동이족에서 나온 동이족을 의미하였다는 것이다. {설문}에도 어질인(仁)자는 오랑캐이(夷)자의 고자(古字)라 하였다. 둘째, 인(仁)은 동이족의 성격을 의미한다. {후한서} 동이열전에 동방을 이(夷)라 한다. 말을 어질게 하고 인생을 즐기며, 만물이 땅에 근본하여 태어난다. 그러므로 천성이 유순하고 이치로써 다스리니 군자들이 사는 불사지국에 이르렀다 하고, {신이경;神異經} 동황경(東荒經)에도 동방 사람들은 항상 공손히 앉아 서로 거스르지 않으며 서로 칭찬은 하되 서로 헐뜯지 않고 남의 환란을 보면 몸을 던져 죽어도 구제하니 이를 일컬어 착함이라 하였다. 또한 중국 고서 {이아;爾雅}에 "구이는 동방에 사는데 동방은 해돋이 땅으로 태평스러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어질다. 땅의 정기가 그러한 때문이다고 하여 땅의 정기로 인하여 동이족은 원래 어질다고 하였다. 따라서 인(仁)은 동이족의 성격을 의미한다. 셋째, 인(仁)은 도·불·유 삼교의 근원사상이다. {최문창후전집} "지증화상비명병서"에 의하면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상(五常)을 방위에 따라 나누니 동방에 짝한 바가 仁이다. 인은 道·佛·儒 三敎를 일으켰으니 정역에 드러낸 이름이 불(佛)이다. 인심(仁心)이 곧 불(佛)이며, 불목(佛目)은 능인(能仁)의 법칙이라"하였다. 즉 인(仁)은 동방사상인데 인사상에서 도·불·유 삼교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사상은 신선사상이며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이다. 이에 대하여서는 제1편에서 상설하였다. 4. 제례의 기원은 우리민족에 있다 지나의 유교에 상제(上帝)와 조상신을 모시는 제례풍속이 있다. 이것은 언제 어디에서 유래되고 있는가? 이것 역시 지금까지 서술한 바에 의히면 당연히 우리나라에서 지나로 전승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제 그 유래를 간략히 알아보기로 하자. {서경} 우서를 보면 순(舜)임금이 제위(帝位)에 오르자 상제(上帝)와 육종(六宗)과 명산대천(名山大川)에 두루 제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규원사화}에 의하면 "음력 10월에 제천하던 것이 만세의 풍속이 되니, 그것이 동방 특유의 성대한 제전이요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순이 제위에 올랐을 때 상제께 제사를 올리고 육종(六宗)에 제사를 지내며 차례로 산천제신(山川諸神)에게 두루 제사하니 이는 일찍이 순(舜) 이전에는 없던 일로 이 역시 동방에서 제천보본하는 의식과 산악하천(山嶽河川)이나 해양소택(海洋沼澤)에 봉명하는 사상에 근원한 것이다"라고 하여 10월의 소도제천의식에서 제사풍속이 연원되었고, 지나의 제례풍속도 이에서 유래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에도 "천지인(天地人) 삼극(三極)이 모든 것을 하나로 규합하는 서물(庶物)의 원의(原義)인 즉, 천하구환(天下九桓)의 예락(禮樂)이 곧 삼신고제(三神古祭)의 풍속이 아니고 무엇이리요"하여 모든 예의법속이 삼신사상에서 유래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지나족의 제례풍속 역시 우리나라에서 지나족 사회로 전승되었다는 것이다. Ⅳ. 오륜은 원래 신선도의 덕목이다. 부자유친(父子有親)·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장유유서(長幼有序)·붕우유신(朋友有信)의 오륜사상(五倫思想)도 지나의 유교에 뺏겨 지나족에 의하여 창안된 외래사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제 그러한 인식을 떨쳐버리고 오륜사상이 원래부터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이며 신선도의 덕목임을 논증하려 한다. 그러한 논증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첫째, 오륜사상이 지나족에 의하여 창제되었다는 종래의 관념이 부정되어야 하며. 둘째, 오륜사상이 동이족에서, 좁게는 단군조선 또는 배달국 시대에 발원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져야 하고. 셋째, 오륜사상이 신선도의 덕목이었다는 사실이 증명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의 세 가지 사실이 밝혀진다면 오륜사상이 오늘날 공맹유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심덕목이라 하더라도 원래부터 우리민족의 사상이며 신선도의 덕목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하에서 위의 세 가지 문제를 순서대로 하나씩 밝혀나가기로 한다. 1. 오륜은 지나족의 창작이 아니다. {동몽선습}에 의하면 "하늘과 땅 사이의 만물 가운데 오직 사람이 가장 귀하니, 사람이 귀한 것은 오륜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맹자}에 이르기를(孟子曰) 부자유친(父子有親)하며 군신유의(君臣有義)하며 부부유별(夫婦有別)하며 장유유서(長幼有序)하며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 하시니 사람으로서 오상(五常)을 알지 못하면 금수에 가까워짐이 먼데 있지 않으니라" 하였다. 이 원문을 잘못 이해하면 마치 오륜사상이 맹자에 의해서 창작되고 가르쳐진 것처럼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맹자} 등문공장구(상)에 기록되기를 "사람의 도리에 있어서 배불리 먹고 따뜻이 입으며, 안일하게 지내면서 가르침이 없으면 금수에 가까워지기 쉽나니 성인(聖人)이 이를 근심하여 설(契)로 하여금 사도(司徒)를 삼아 인륜(人倫)을 가르치게 하였으니, 부자유친·군신유의·부부유별·장유유서·붕우유신이 그것이다"하였다. 이를 보면 {동문선습}에서 말하는 {맹자}는 사람이 아니라 책자이며, 오륜사상은 맹자에 의하여 성립된 것이 아니라 고대의 성인(聖人)과 설(契)로 올라간다. 그러면 그 성인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중국에서 성인이라면 공자를 가리킨다. 그러나 공자는 설(契)과 동시대의 인물이 아니라, 설 보다 약 1천 8백여년 뒤의 인물이다. 그러므로 공자가 유학을 집대성(集大成)한 성인이라 하더라도 {맹자}에서 말하는 성인이 될 수 없다. 그러면 "맹자}에서 말하는 성인은 누구인가? 공자께서 문왕과 무왕의 법도를 밝혔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문왕과 무왕이 {맹자}에서 말하는 성인인가? 문왕과 무왕도 설(契)과 동시대의 인물이 아닌 천여년이나 후대의 인물이라는 것은 사계의 학자들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들도 {맹자}에서 말하는 성인이라 할 수 없다. 또한 공자께서 요임금과 순임금의 사상을 조술하였다 했다. 그러면 이들이 설(契)과 동시대의 인물인가? 그렇다 그들이 바로 설(契)과 동시대의 인물이다. 그러면 {맹자}에서 말하는 성인은 요임금 아니면 순임금이라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서경} 요전(堯典)이나 {논어} 요왈편(堯曰篇) 등 기타 요임금에 대한 기록을 보면 어디에도 요임금이 설(契)과 더불어 오륜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없다. 따라서 {맹자}에서 말하는 성인은 요임금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서경} 우서 순전을 보면 거기에 {맹자}의 기록과 일치되는 대목이 있다. 즉 "임금(舜임금)이 말하기를 설(契)이여! 백성들이 화친하지 않으며 오품(五品)을 따르지 않고 있소. 그대를 사도(司徒)에 임명하니 오교(五敎)의 가르침을 삼가 펴서 너그럽게 하기 바라오" 하였고, 그 주(註)에 오품(五品)이란 부자(父子)·군신(君臣)·부부(夫婦)·장유(長幼)·붕우(朋友)의 다섯을 가리키는 위계적 등급이라 하였다. 오교(五敎)는 부자유친(父子有親)·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장유유서(長幼有序)·붕우유신(朋友有信)의 다섯임이 당연한 이치라 하였다. 그렇다면 {맹자}에서 말하는 성인은 순임금이 틀림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왜냐하면 도표(7)과 같이 {맹자}의 기록을 {서경}의 기록에 대입시킬 경우 서로 일치되기 때문이다. 도표(7) {맹자}와 {서경}의 기록 비교
2. 오륜의 발상지는 배달국이다. 순임금과 설(契)이 지나족이 아니라면 어느 민족에 속하는가 하는 문제부터 규명하여 보자. {맹자} 이루장구 하(離婁章句 下)에 순임금은 제풍(諸馮)에서 낳고, 부하(負夏)로 옮겼다가 명조(鳴條)에서 운명하였으니 동이인(東夷人)이라 하고, 그 주(註)에 제풍·부하·명조는 모두 지명일 뿐더러 동이족이 다스리던 곳이라 하였다. 즉 {맹자}에는 순임금의 출생지·거주지·사망지가 모두 동이지방이라는 증거를 들면서 순임금을 동이인이라 하였다. 그리고 사마천의 {사기}에도 순임금을 동이인이라 하였다. 또한 {단기고사}에 의해도 순임금은 단군왕검의 중신인 고시(高矢)의 형 고수(高未)의 아들이다. 그리고 안호상을 비롯하여 여러 학자들이 중국의 고서를 전거로 들면서 설(契) 역시 동이족임을 밝히고 있다. 이상과 같이 전거나 학자들의 고증에 의하면 지나족에게 처음으로 오륜사상을 보급한 순임금과 설(契)이 동이족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오륜사상의 성립연원이 동이족 사회라는 것을 말한다. 국내고서인 {단기고사}에 의해도 오륜사상이 단군조선 또는 그 이전 배달국에 이미 있었다. 즉 {단기고사} 제1세 단제 왕검편에 단군왕검께서 수두교를 창설하시고, 중신(重臣)인 신우(神佑)에게 명하여 백성에게 오륜을 가르치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오륜의 성립이 단군조선 시대에 있었고 신선도(수두교)와 함께 함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신선도는 단군왕검에 의해 성립된 것이 아니라 그 이전 한웅천황에 의하여 성립되었으므로 오륜의 성립은 한웅조인 배달국 시대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태백일사} 마한세가(상)에 유중유일(惟中惟一)의 도(道)는 아비가 되어서는 마땅히 효도하고, 임금이 되어서는 마땅히 충성하고, 부부가 되어서는 마땅히 서로 존경하고, 형제가 되어서는 마땅히 서로 사랑하고, 노소(老少)는 마땅히 차례가 있고, 벗은 마땅히 믿음이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의 고서에도 오륜사상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이를 보아도 오륜사상의 성립연원이 우리민족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3. 오륜은 신선도와 불가분의 연관성을 지닌다. 오륜사상이 단군조선 또는 배달국에서 성립된 우리 민족의 고유덕목이라면 신선도와 불가분의 연관성을 지녀야 한다. 즉 三倫이 三神사상에서, 五戒가 五帝사상에서 발원되었다면 오륜은 五行사상에서 발원되어야 한다. 우선 오륜과 오행의 공통점을 지적하면. 첫째, 오행이란 만유의 존재현상이 木·火·土·金·水의 다섯 가지로 동정변화하면서 돌아가는 자연법칙을 의미한다. 그런데 五倫의 倫은 사람인(人)자와 둥글륜(侖)자의 회의문자로서 오륜은 인간관계가 부자·부부·붕우·군신·장유로 돌아가는 예법을 의미한다. 즉 오행이 자연법칙이라면, 오륜은 인간관계의 법칙이다. 둘째, 오행은 지전(地轉)에서 생기고, 지전은 태양과 지구의 인력에서 생긴다. 즉, 오행은 태양과 지구의 쌍무관계에서 생긴다. 그런데 오륜의 부자유친은 부자자효(父慈子孝)로, 군신유의는 군인신충(君仁臣忠)으로, 부부유별은 부화부순(夫和婦順)으로, 장유유서는 장혜유순(長惠幼順)으로, 붕우유신은 상교이신(相交以信)으로 풀이 된다. 즉 오륜 역시 상부상조하는 쌍무관계이다. 이와 같은 공통점으로만 보아도 오륜사상이 신선도의 오행사상에서 나온 신선도의 고유덕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하에서 오행을 하나씩 설명하면서 오행과 오륜과의 연관성을 밝힌다. 이해의 편의상 일반적인 순서를 바꿔 설명한다. ① 土 : 토는 흙이다. 흙은 농토로 쓰면 농토가 되고, 집을 지으면 집터가 되며, 겨울이 되면 습토가 되고 여름이 되면 초토가 되어 때와 장소에 순응할 뿐이다. 그뿐인가? 모든 생물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흙은 생명의 보금자리이며 생활의 근본이다. 흙의 그러한 성격으로 토(土)는 방위로 말하면 동·서·남·북의 중앙으로서 사방(四方)에 모두 관련을 지니는가 하면, 계절로 말해도 장하(長夏)로서 사계(四季)의 중앙이다. 그 덕목으로 말하면 부자·부부·붕우·군신·장유는 물론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인간관계에 필요로 하는 덕목이 토에 해당한다. 그러한 덕목이 무엇인가? 그것은 오상(五常) 중 신(信)이며, 오륜 중 붕우유신(朋友有信)의 신(信)이다. 신은 진실(眞實)·불기(不欺)·무망(無妄)을 의미한다. 그래서 신은 토를 상징한다. ② 木 : 목은 물질로 볼 때 나무를 뜻한다. 나무는 습도와 온도 등 적절한 조건에 해당되는 시기가 되면 뿌리에서 줄기가 나오고 뻗어나간다. 이는 하나의 출발이다. 이를 계절에 비유하면 그것은 봄(春)이며, 방위에 비유하면 해가 처음으로 떠오르는 동방이다. 사업에 비유하면 시작이다. 인생에 비유하면 그것은 유년기에 해당되는데, 어린 자녀를 교육시키고 양육하는데 가장 필요한 기본덕목이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仁)과 친절(親)이다. 사랑과 친절은 오상(仁·義·禮·智·信) 중 인(仁)이며, 오륜 중 부자유친의 친(親)이다. 그래서 인(仁)과 친(親)은 오행(五行) 중 木에 해당된다. ③ 火 : 화는 木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불이다. 불은 빛과 열을 발산한다. 이는 계절로 말하면 여름(夏)에 해당되며, 방위로 말하면 남방에 해당된다. 사업으로 말하면 번성기이며 성장위주의 시기이다. 인생으로 말하면 한창 뻗어나가는 청년기로서 그 감정으로 볼 때는 가장 정열적이고 격정적인 시기이며, 태도로 볼 때는 의기양양하고 투쟁적이다. 이러한 시기의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기본적인 덕목이 무엇인가? 그것은 서로 남의 인격을 존중하는 예절이며, 남녀 간에는 분별이다. 이는 오상(五常) 중 예(禮)이며, 五倫 중 부부유별 또는 남녀유별의 별(別)이다. 이래서 예(禮)와 별(別)은 火에 해당된다. ④ 金 : 금은 쇠붙이로서 단단하면서도 빛난다. 그래서 금은 완성으로 접어든 단계를 상징한다. 火가 양적 성장기라면 금은 질적 성숙기이다. 이를 계절에 비유하면, 그것은 오곡이 무르익는 가을(秋)에 해당되며, 방위로 말하면 황혼이 깃든 서방에 해당된다. 사업으로 말하면 성장위주에서 공익사업으로 전환하는 시기이다. 인생으로 말하면 40∼50대의 장년기에 해당된다. 이 시기는 정치적 사회적 활동을 많이 하여야 하는 시기이다. 이러한 시기의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기본적인 덕목이 무엇인가? 어떠한 상량적 계산이나 불의(不義)와 타협하지 않는 확고부동한 의지와 투철한 가치관 그리고 인도주의 정신이 요청된다. 그러한 정신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것은 의로움(義)이다. 의로움은 五常 중 의(義)이며 오륜중 군신유의(君臣有義)의 의(義)이다. 이래서 의(義)는 오행 중 금에 해당된다. ⑤ 水 : 수는 물이다. 물은 생물의 생장과 발육에 필수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북방에서 찬바람과 함께 몰아닥치는 찬이슬과 눈보라는 생물을 말라 죽게 한다. 그런 때가 되면 웬만한 동물은 땅속에서 잠을 자게 되고, 씨앗이나 뿌리도 땅속에서 잠을 자며, 내년을 기다린다. 이는 계절로 볼 때 겨울(冬)이며 방위로는 북방에 해당된다. 즉 외형적으로는 소멸하였지만 내적으로는 다음 단계를 위하여 응고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는 인생으로 볼 때, 유년기·청년기·장년기를 거친 노년기에 해당된다. 노년기는 지나온 사회적 경험과 축적된 지혜를 정리하여 후예를 양성하고 사회에 은혜를 베풀어야 하는 시기이다. 이러한 시기에 가장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덕목이 무엇인가? 그것은 과거를 정리(序)하면서 지혜(智)를 구하는 것이다. 이는 五常 중 지(智)이며, 五倫 중 장유유서의 서(序)이다. 이래서 지(智)와 서(序)는 수(水)에 해당된다. 이상과 같이 오륜의 기본사상이 모두 신선도의 오행사상과 일치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오륜이 지나족에 의하여 체계화되었다거나 창제되었다는 기록도 없었고, 오히려 지나족에게 오륜사상을 전한 순임금과 설(契)이 모두 동이족이었고, 단군조선 사회에도 오륜사상이 있었다. 따라서 오륜이 오늘날 공맹유교의 중심덕목이라 하더라도 그 성립연원이 단군왕검 시대 또는 그 이전 한웅천황 시대로 볼 수 있고, 오륜사상은 원래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이며 신선도의 고유덕목이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Ⅴ. 결 론 이상에서 논한 바를 요약 정리하면 1) 지나인의 정신적 고향이며 지나문화의 발상지라는 신비의 곤륜산이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2) 유교가 공자에 의하여 집대성(集大成)되었다 하더라도 그 유래를 찾아 올라가면 복희·신농·황제·요임금·순임금으로 소급된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동이족이다. 3) 한자의 전래와 더불어 유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다. 그런데 한자의 창제기원 역시 동이족에 있었다. 4) 지나의 고대문화는 음양오행사상을 비롯해서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음양오행사상과 홍범구주는 단군조선에서 지나로 전승되었다. 5) 유교의 기본경전은 {주역}이다. {주역}은 여러 사람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그러나 {주역}은 동이족에 의해서 비로소 창제되기 시작하였다. 6) 유교의 기본사상은 인(仁)사상이다. 그런데 인은 원래 동이족과 그 성격 및 그 사상을 의미한다. 7) 유교의 기본덕목이 오륜인데, 오륜은 원래 신선도의 덕목이었다. 8) 기타 사상에 있어서 숭배의 대상·우주관·발생원리·제례의식·종교적 목적이 신선도와 동일하였다. 9) 유교사상을 지나족이 최초로 설파하였다는 기록도 없다. 이상을 종합적으로 생각하여 볼 때, 지나의 유교는 비록 공자에 의하여 집대성되고 체계화되었다 하더라도 그 원류는 우리나라의 신선도로서 그 유파라 아니할 수 없고, 이제 유교는 발상지인 조국으로 되돌아온 격이라 할 수 있다. 곧 유교는 원래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교는 송(宋)나라와 명(明)나라에 걸쳐 정이천(程伊川)·정명도(程明道)·주희(朱熹)에 의하여 지나족 중심의 주자학으로 변질되었다. 그러한 사상을 고려말엽에 수입한 이래, 근세조선은 5백년 동안 국시로 하여 정치·종교·교육의 기반으로 삼았다. 지금의 대학에 해당되는 성균관이나, 지금의 중등교육에 해당되는 향교에 나가면 한국 사람으로서 지나족인 공자·안자·증자·자사·맹자 등 5성과 공자의 제자 10철 및 72제자 그리고 송나라의 6현에게 절을 하여야 했고, 지나의 역사인 사기(史記)·한서(漢書)·후한서(後漢書) 등 삼사(三史)와 지나의 종교서적이며 사상서인 논어·맹자·대학·중용·시경·서경·주역·예기·춘추 등 사서오경(四書五經)과 그밖에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를 배워야 하였다. 사회적으로 관혼상제도 지나의 풍속을 따라야 하였다. 그러면서도 제 민족의 조상인 한인·한웅·한검의 삼성(三聖)을 모신 사당은 평양 구월산의 한쪽 구석에 방치하여 한 왕조에 한번 돌아볼까 말까 할 정도였고,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은 일체 가르치지 않았으며, 국가고시인 과거시험 과목에도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에 대한 과목이 없었다. 그럼으로써 근세조선 시대의 우리민족은 지나의 삼대(夏·殷·周) 역사는 이를 잘 알면서도 제 민족의 삼한(고조선의 마한·진한·변한) 역사는 전혀 몰랐다. 지나의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잘 알면서도 제 민족의 삼신오제(三神五帝)는 전혀 몰랐다. 또한 지나의 사서삼경(四書三經)은 줄줄 외우면서도 제 민족의 배달성전(삼화경)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러면서도 이를 부끄럽게 생각치도 않았다. 그러한 것이 근세조선의 사회적 풍토였다. 좀 가혹한 표현을 쓰면 근세조선 500년은 지나의 사상적 식민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곧 외래종교 신자인 주자학자들만이 이 나라의 주인이었고, 고유의 토속신앙을 지키는 서민들은 노예였고 하인이었다. 그래서 서민을 노예처럼 하인처럼 혹사하고 착취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수차에 걸쳐 민란이 일어났고, 드디어는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외세가 개입하면서 나라마저 송두리채 멸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떠한가? 근세조선 때의 지나풍 대신 오늘날은 미국 중심의 서구풍으로 바뀌었고, 주자학 대신 서양종교로 바뀌었을 뿐 근세조선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참으로 통탄할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여기에서 유교도와 더불어 반성하여야 할 문제점을 몇가지 꼬집고자 한다. 첫째, {주역}을 해설한 계사상전의 천존지비(天尊地卑) 이론과 이를 계승한 정주학의 이존기비(理尊氣卑) 이론이 과연 타당하고 합리적이냐의 문제, 그러한 이론을 국가에 적용시켜 다른 나라인 지나를 대국(大國)·부국(父國)·중국(中國)·중화(中華)라 받들고, 제 나라를 스스로 소국(小國)·자국(子國)·이적(夷狄)·소중화(小中華)라 천시하여 서민들에게 열등의식을 심어주었던 행위, 또한 이존기비이론을 자기민족에 적용시켜 관존민비(官尊民卑)·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을 만들어내어 서민을 천민으로, 나약한 여성을 비열한 인간으로 취급하여 혹사하고 착취를 예사로 하였던 행위가 과연 옳았던 일인가? 둘째, 우리민족은 지나족이 아니다. 지나족과 다른 역사와 사상을 가진 민족이다. 그러므로 지나족의 역사와 사상을 배우기 전에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먼저 배우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그런데 근세조선 시대에는 지나의 주자학을 국시로 함으로써 지나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가르쳤고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치지 않았다.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은 하찮은 것으로 묵살되었고, 오히려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치고 배우면 이를 사문난적이라 하여 매도하였다. 그러한 교육환경에서 어떻게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이 생기겠는가? 지금은 어떠한가? 성균관이나 향교에서 제 민족의 사상서인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을 가르치고 있는가? 정주학이 이 나라에 전래된 것이 누구를 위해서인가? 이 민족을 위해서 전래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유교의 사서오경과 더불어 제 민족의 성전도 함께 가르쳐야 옳은 일이 아닌가? 셋째, 주자학 교육기관인 성균관과 향교는 누구의 땅에 누구를 위하여 누가 세웠는가? 한국땅에 한민족을 위해서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의 노력과 재력으로 세운 것이 아닌가? 그런데 거기에 지금도 누구를 모시고 누가 누구에게 절을 하고 있는가? 지나족인 공자·맹자 등 五聖과 十哲과 七十二弟子 그리고 宋나라의 六賢을 모시고 거기에 한국 사람이 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들 지나인들은 한인·한웅·한검에 비유하면 까마득한 후배이며 손님이다. 그런데 주인과 선배를 물리치고 후배인 손님이 선배처럼 또 주인처럼 대우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제 할아버지와 제 할머니를 무시하고, 남의 할아버지와 남의 할머니에게 절을 하도록 시키면서 부모조상에게 효도하라는 격이 아닌가? 또 성균관이나 향교의 집례관인 주자학자들은 지나의 하수인격이 아닌가? 그것이 과연 공자와 맹자가 바라고 윤리도덕에 부합되는 일인가? 이는 주객전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참으로 상식 밖의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한 종교의식 아래서 어떻게 민족적 주체의식이 나오겠는가? 민족적 주체의식이 없는데 어떻게 애국애족심은 나오겠는가? 젊은 세대들의 가치관을 탓하기에 앞서 기성 종교인들의 가치관이 전도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 물이 맑아진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전체 민족이 깊이 반성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제4편 도교의 발상지는 홍익인간 광명이세 Ⅰ. 서 론 지나의 도교는 신선사상이며, 지나는 우리나라와 인접하여 있다. 지나문화의 시조인 삼황오제가 모두 동이족이었고, 이들은 우리민족의 시조인 한인과 한웅보다 후대의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지나에서 언제 누가 신선사상을 최초로 설파하였다는 기록도 없다. 우리나라에는 지금으로부터 약 6천년 전 한웅천황이 삼신산(三神山)인 백두산에서 삼신일체(三神一體)의 원리에 의하여 신선도를 설파했다는 전거가 있고 근거가 있다. 이를 생각하면 지나 도교의 원류는 당연히 우리민족의 신선도라 추정할 수 있고, 지나에서 도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 함은 역수입된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도교가 지나에서 발원되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믿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본 문제는 도교가 우리나라에 역수입된 이래 처음 제기되는 문제이며, 전체 민족의 대다수가 외래종교 신자이다. 외래종교 신자는 민족적 주체의식이 없거나 박약하다. 곧 도교신자는 지나를 정신적 고향, 신앙의 성지, 아버지 나라라고 믿는다. 자기를 낳고 키워준 제 나라는 그 다음으로 친다. 그럼으로써 좀더 구체적이고 명백한 증거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지나의 진시황(秦始皇)과 한무제(漢武帝)가 지상선경이라 동경하던 삼신산(三神山)이 어디에 있는 어떤 산인가의 문제, 언제 누구에 의하여 신선도의 경전이 우리나라에서 지나로 전승되었는가의 문제를 하나씩 밝혀 나가기로 한다. 끝으로 도교와 신선도의 동일성을 밝힌다. Ⅱ. 도교인의 이상향인 삼신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1. 도교인의 이상향은 삼신산이다 지나의 도교인들이 지상선경이라 동경하였던 삼신산은 어디에 있는 어떤 산인가? 그 어의로 말하면 삼신산이란 삼신과 연관성을 지니고, 삼신을 상징하는 산을 의미하며, 또한 세개의 神山 곧 仙山을 의미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삼신산이란 어떤 산인가? 사마천의 {사기}를 근거로 삼신산의 성립요건을 인출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삼신산은 삼신과 연관성을 지닌다. 둘째, 삼신산은 봉래·방장·영주의 총칭이다. 셋째, 삼신산은 발해 내지 바다에 있다. 넷째, 삼신산은 신선이 사는 곳이다. 다섯째, 삼신산은 불사약이 나는 곳이다. 여섯째, 삼신산의 초목과 금수는 모두 희다. 일곱째, 삼신산에는 황금과 백은으로 궁궐을 지었다. 이상의 성립요건을 충족시키면 그 산이 곧 삼신산이라 할 수 있고, 신선사상의 발원지라 할 수 있다. 그러면 그러한 산이 어디에 있느냐의 문제이다. 2. 삼신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삼신산은 발해에 있다고 하였다. 발해는 고대 우리나라이다. 그러므로 삼신산은 우선 우리나라에 있다고 추정할 수 있고, 백두산에서 한웅천황이 신선도를 베풀었으므로 백두산이 우선 삼신산이 아닌가 하고 추정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삼신산의 성립요건에 백두산의 특수성을 대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삼신산은 삼신과 연관성을 지닌다. 그런데 백두산도 삼신과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삼신이란 천일·지일·인일 또는 한인·한웅·한검을 의미하는데, 본서 제1편에서 천일·지일·인일의 삼신일체의 원리에 의하여 신선도가 백두산에서 베풀어졌음을 밝혔다. 또한 {삼국유사}에 의하면 한웅천황이 아버지 한인의 뜻에 따라 풍백·우사·운사 등 신관과 3천의 무리들을 거느리고 백두산정의 신단수 밑에 내려와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신시를 베풀었고, 한웅의 아들 한검(단군왕검)이 조선국을 세운 곳이다. 이래서 백두산은 삼신과 불가분의 연관성을 지닌다. 이 한 가지 사실만을 보더라도 백두산이 삼신산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삼신산은 봉래·방장·영주의 총칭이다. 그런데 백두산에 봉래·방장·영주의 삼신산이 있다. {부도지}에 '불함삼역(不咸三域)'이라는 말이 나온다. 불함은 백두산을 의미하며, '그 주(註)에 삼역'은 봉래·방장·영주를 지칭한다고 하였다. 즉 백두산 내에 삼신산이 있다는 것이다. {태백일사} 신시본기에도 백두산을 논하는 대목에서 봉래는 쑥이 무성하게 자라는 묵정밭 곧 천왕이 내려온 곳이며, 방장은 사방이 일장(一丈)인 각(閣) 즉 소도(蘇塗)가 있는 곳이며, 영주는 못이 섬을 둘러싼 모양 즉 천지(天池)가 나오는 곳이며, 이것들을 말하여 삼신산이라 한다고 하였다. 즉 백두산에 봉래·방장·영주의 삼신산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삼신산이란 봉래·방장·영주를 의미하고, 봉래는 금강산, 방장은 지리산, 영주는 한라산을 의미하는데, 이에 대하여 어떻게 해명할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인간의 신체에 상단전(上丹田)·중단전(中丹田)·하단전(下丹田)이 있다. 그와 같이 땅에도 상단전·중단전·하단전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백두산은 상단전, 한반도는 중단전, 각 지방은 하단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금강산·지리산·한라산은 중단전에 있는 삼신산이라 할 수 있고, 각 지방에도 봉래·방장·영주의 삼신산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금강산·지리산·한라산도 이들 하나 하나는 선산(仙山)이지만 이를 총칭해서 말하면 삼신산인 것이다. 셋째, 삼신산은 바다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바다는 우리나라 고조선을 의미한다. 바다는 태평양이나 대서양 같은 실제의 짠물바다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종교적으로는 종교의 발상지, 종교의 요람, 선인주처(仙人住處), 수미세계(須彌世界)를 의미하고, 그곳은 과거의 우리나라 고조선을 지칭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본서 제2부 제1편 Ⅵ에서 상설하였다. 넷째, 삼신산에 신선이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백두산에 신선이 살았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태백산(백두산)은 한웅천황이 풍백·우사·운사 등 선인(仙人)을 거느리고 내려온 곳이며, 단군왕검 선인이 조선국을 세운 곳이다. {태백일사} 신시본기에도 "백두거악(白頭巨嶽)은 대황중(大荒中)에 튼튼히 자리잡았으니 배달천국의 진산(鎭山)이요, 신인의 오르내림은 실로 이곳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백두산은 신선이 살았던 곳이다. 다섯째, 삼신산은 불사약이 나는 곳이다. 그런데 백두산도 불사약이 나는 곳이다. {부도지}에 의하면 불함산(백두산)의 영주 대여산 자삭방에서 인삼이 나는데, 이는 4삭(2080년)을 경과해야 꽃을 피는 삼근영초로서 이를 세상에서 불사약이라 한다고 하였다. 실제에 있어서도 백두산에는 산삼씨만 따먹고 사는 인삼조(人蔘鳥)가 있을 정도로 백두산은 산삼의 고장으로서 산삼을 백두산 삼보(三寶) 중의 하나로 친다. 여섯째, 삼신산의 초목과 금수가 희다고 했다. 그런데 백두산의 초목과 금수도 희다. {역대소사}에 의하면 백두산(태백산)의 초목과 금수가 모두 희다고 하였다. 그런데 백두산 북쪽 기슭에는 백양목이 많고, 흰사슴·흰돼지·흰매들이 지금에도 서식하고 있다.실재 백두산을 등반하여 보아도 백두산 북쪽의 나무들은 거의 백양목이고 소나무 중에 백송(白松)도 있다. 가을이 되어 산상에서 북쪽의 산밑을 내려다보면 하얗게 보일 정도이다. 그래서 그곳을 흐르는 강물 이름을 이도백하(二道白河)·두도백하(頭道白河) 등 백하(白河)라 부른다. 일곱째, 삼신산에 황금과 백은으로 궁궐을 지었다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너무나 과장된 나머지 비합리적이고 실제 있을 수 없는 문제이므로 논외로 한다. 이상 외에 백두산이 삼신산임을 반영하는 특수성을 지적하면 본서 제1편 Ⅳ의 4에서 밝힌 바와 같이 백두산이 3층으로 되어있다는 점, 삼강일지(三江一池)라는 점, 천지의 좌우에 금선(金線)·옥장(玉漿)·은류(隱流) 등 세 개의 온천과 천지의 동북쪽에 인만(麟巒)·봉만(鳳巒)·벽라(碧螺) 등 세 개의 특수한 산이 있다는 점 등 거의가 3수로 된 점 등이다. 이상과 같이 백두산은 삼신산의 성립요건을 모두 충족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밖에도 삼신사상을 반영하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고, 백두산에서 천일·지일·인일 삼신일체의 천도에 의하여 신선도가 설해졌다. 그러므로 백두산을 삼신산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태백일사} 신신본기에도 "옛날의 삼신산은 곧 태백산이다. 또한 지금의 백두산이다"라고 하였다. 그밖에도 백두산에 대한 기록이라면 거의 백두산이 곧 삼신산임을 밝히고 있다. 이래서 삼신산이 백두산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지나 도교의 원류는 우리나라의 신선도라는 증거가 제1차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Ⅲ. 우리민족의 신선도서가 지나로 전승되었다 우리나라의 신선도서(神仙道書)가 지나로 전승되었다는 문제이다. {도서전집;道書全集}·{음부경;陰符經}·{삼황옥결;三皇玉訣} 서문에 의하면 황제가 신선도서(神仙道書)인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대산(大山)의 천단(天壇)에서 받아갔다고 했다. 삼황내문은 모두 천상의 전서(篆書)로 쓰여졌고 삼백여자가 세권으로 나뉘어졌는데, 상권은 천황(天皇), 중권은 지황(地皇), 하권은 인황(人皇)이었다(이래서 이를 삼황내문이라 한다). 상권에는 신선과 우주론에 대한 것이 담겨 있고, 중권에는 부국안민(富國安民)의 법이 담겨 있으며, 하권에는 강병전승(强兵戰勝)의 술과 천지(天地)·음양(陰陽)·만물의 조화원리가 담겨 있으니, 치국(治國)·제가(齊家)·지신(持身)·불사(不死)의 도(道)는 모두 이 경에서 나온 것이다고 했다. 그런데 삼황내문을 황제가 대산의 천단에서 지나로 가져갔다고 했다. 그러면 대산은 어디에 있는 어떤 산인가? 대산은 큰산·일산(一山)·환산(桓山)·백산(白山)·백두산과 그 뜻이 통한다. 또 이 산이 있는 곳이 청주(靑州)라 하였는데 청주는 청구(靑邱)이다. 이렇게 본다면 황제가 신선도서인 삼황내문을 가져간 대산이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라 추정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신선도서인 삼황내문의 출처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라 추정된다는 것이다. 서기 4세기 경 중국의 갈홍(葛洪)이 지은 {포박자;抱朴子} 내편에 "옛적에 황제(黃帝)가 있었는데 동으로 청구(靑邱)에 이르러 풍산(風山)을 지나다가 자부선생(紫府先生)을 뵈옵고, 삼황내문을 받아 갔다"하고, {태백일사}에도 이르기를 "삼황내문을 자부선생(紫府先生)이 황제 헌원(黃帝 軒轅)에게 주어서 마음을 밝히고 의(義)로 돌아가게 하였다. 선생은 항상 삼청궁(三淸宮)에 계시니 그 궁은 청구국(靑邱國) 대풍산(大風山)의 양지(陽地)에 있다. 헌후(헌원)가 친히 치우(蚩尤)를 조현(朝見)하려고 가는 길에 명화(名華)가 있어 승문(承聞)한 것이다. 경전은 신시(神市)의 녹도(鹿圖)로서 그것을 기록하였다. 나누어 삼편(三篇)이 되었다. 후인(後人)이 추연(推演)하고 가주(加註)하여 별도로 신선음부지설(神仙陰符之說)이 되었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보면 지나인의 기록인 {포박자}의 기록과 우리민족의 기록인 {태백일사}의 기록이 서로 일치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 하등의 이의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청구(靑邱)는 어디를 가리키고, 풍산은 어디에 있는 어떤 산이며, 자부선생은 누구냐 하는 문제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청구는 지금의 만주 요령지방으로서 고대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지역이었다. 풍산(風山)은 백두산의 이칭이라고 안호상은 말한다. 자부선생은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 의하면 발귀리(發貴理)의 후예이며, 발귀리는 백두산 신시시대(神市時代)의 선인이다. 이렇게 볼 때, 황제가 삼황내문을 가져갔다는 대산과 풍산은 백두산이라 단정할 수 밖에 없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황제에 의하여 신선도서인 삼황내문이 우리나라에서 지나로 전승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도교를 황로교(黃老敎)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밖에 신선도서로서 {주역(周易)} 등이 우리나라에서 지나로 전승되었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본서 제3편에서 밝혔다. 여기에서 지나 도교의 원류는 우리나라의 신선도라는 증거가 제2차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Ⅳ. 도교의 시조는 동이족이다 1. 광성자와 동이족 황제가 공동산(空同山)에서 도를 물었다는 광성자(廣成子)는 누구인가의 문제이다. 흔히 광성자를 가공인물 또는 신화적인 인물로 취급한다. 그러나 광성자가 실존인물이라 할 경우, 그는 지나 도교의 창시자는 아니라 하더라도 시조라 할 수 있고, 지나의 도교에 있어서 중요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광성자는 실재인물이라 할 경우, 지나족인가 아니면 동이족인가의 문제이다. 위의 기록에는 광성자가 어느 민족인지에 대하여 일체의 언급이 없다. 그러나 광성자가 수도하였다는 공동산이 큰 근거가 된다. 즉 공동산이 지나지역에 있는가, 아니면 동이지역에 있는가에 따라 광성자의 민족적 소속을 추정할 수 있다. 이능화는 이수광(李?光)의 {지봉유설;芝峰類說}과 진자앙(陳子昻)의 시(詩)를 인용하여 말하기를 "공동산(空同山)이 계구(?丘)에 있다 하였는데, 계구가 역시 청구에 있고 요동에 가깝다. 요동은 예로부터 선적(仙跡)이 많은 곳이다" 라고 하였다. 즉 광성자가 수도하던 공동산이 요동에 가까운 곳, 청구에 있다는 것이다. 청구는 우리민족의 고토이다. 그러면 공동산은 고대 우리민족의 지역 내에 있는 산으로서 광성자는 당연히 우리와 같은 동이족이라 추정할 수 있다. 지나의 신화에 나오는 반고를 비롯해서 지나문화를 개척한 삼황오제가 모두 동이족인데 광성자만이 지나족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광성자는 지나족이라 절대 볼 수 없고, 동이족이라 강력히 추정된다. 광성자가 동이족이라 할 경우 지나 도교의 시원은 당연히 동이족에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근세조선 시대에 쓴 조여적의 {청학집}에 의하면 "한인진인(桓因眞人)은 명유(明由)에게서 수업하였고, 명유는 광성자에게서 수업하였는데 광성자는 상고의 선인(仙人)이다"하여 광성자는 한인보다 지위도 높고 선대의 인물로 취급되고 있다. 앞의 기록에 의하면 황제가 광성자에게 도를 물었다 하였고, 황제는 치우에게 조현하였다 하였으므로 광성자는 황제나 치우보다 선배라 하더라도 이들 세 사람은 동시대의 인물이다. 치우는 배달국의 제14세 자오지천황으로서 한웅보다 1000여년 이후의 인물이며, 한인보다 4300여년 이후의 인물이다. 따라서 광성자가 한인보다 선배라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문제이다. 이를 생각하면 {청학집}의 기록은 지나를 상국으로 받드는 근세조선 시대의 기록으로서 그 시대의 영향에 의하여 쓰여진 곡필이라 할 수 밖에 없고, 진실성이 결여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2. 노자와 동이족 도교에 있어서 황제(黃帝)와 노자(老子)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왜냐하면 황제는 신선도서인 삼황내문을 직접 지나로 수입한 인물이고, 노자(老子)는 {도덕경}을 저술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들은 어느 민족에 속하는가? 황제는 동이족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밝혔다. 문제는 노자가 어느 민족에 속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에 의하면 노자는 주(周)왕실 주사직(柱史職)을 지냈다. 그리고 노자의 후손은 지나에 있어도, 노자의 선조는 지나에 없다. 또한 노자(老子)를 노담(老聃) 또는 이이(李耳)라 하는데 성씨가 노(老)인지 이(李)인지, 아니면 그밖에 다른 성씨인지 하는 것도 확실치 않다. 그런데 {태백일사}에 의하면 노자 이이(李耳)는 그의 성(姓)이 한(韓)씨요, 동이족이다. 즉 "계미(B.C.518)에 노인(魯人) 공구(孔丘)가 주(周)에 가서 노자(老子) 이이(李耳)에게 예(禮)를 물었다. 이이의 아버지는 그 성(姓)이 한(韓)이고 이름은 건(乾)이며, 그 선조는 풍인(風人)인데 서쪽으로 관문(關門)을 나가 내몽고를 경유하여 아유타에 이르러 그 백성을 교화하였다"고 하였다. 이러한 기록을 보면 노자의 성은 원래 한(韓)씨로서 동이족이며, '이이(李耳)'의 '이(李)'는 '목(木)의 자(子)' 즉 동방의 아들이란 뜻이고, 노자(老子)는 늙은 학자라는 의미인 것이다. 여기에서 지나 도교의 원류는 우리나라의 신선도라고 거의 확정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본다. Ⅴ. 도교와 신선도의 동일성 지나 도교의 원류가 우리나라의 신선도라면 그 기본사상이나 숭배의 대상 및 전문용어 등에 있어서 서로 동일하거나 유사하여야 한다. 이하에서 그 유사성을 몇 가지 지적코자 한다. 1. 기본사상의 동일성 첫째, 신선도와 도교는 모두 하나님(옥황상제)을 숭배의 대상으로 한다. 신선도는 천일(한늘님)·지일(한울님)·인일(한얼님)의 삼신일체인 하나님을 숭배의 대상으로 한다. 도교 역시 천황씨(天皇氏)·지황씨(地皇氏)·인황씨(人皇氏) 즉 천보군(天寶君)·신보군(神寶君)·영보군(靈寶君)의 삼존신일체(三尊神一體)인 옥황상제(원시천존)를 숭배의 대상으로 한다. 옥황상제(玉皇上帝)는 곧 하나님을 의미한다. 이는 신선도의 삼신하나님과 그대로 일치한다. 부전자승격(父傳子承格)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신선도와 도교는 모두 '하나'를 만유의 본원으로 본다. 신선도에서는 {천부경}에 "하나에서 비롯하나 하나의 비롯은 없으니, 하나를 나누면 셋이 되어도 근본은 다함이 없느니라"하여 '하나(一)'를 만유의 본원으로 본다. 도교에서도 {도덕경} 제42장에 "도(道)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하여 만물이 생성소멸하는 근본원인을 도(道)와 하나(一)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제39장에는 "한늘은 하나(一)를 얻어서 맑아지고, 땅은 하나를 얻어서 편안하여지며, 신(神)은 하나를 얻어서 영묘하여지며, 골짜기는 하나를 얻어서 가득차게 되며, 만물은 하나를 얻어서 태어나게 되며, 임금은 하나를 얻어서 천하를 올바르게 다스린다. 그것을 그렇게 만드는 것은 하나인 것이다" 하여 도교는 도(道)와 마찬가지로 하나(一)를 만유의 본원으로 본다. 이와 같이 신선도와 도교는 '하나'를 만유의 본원으로 본다. 셋째, 신선도와 도교는 모두 만물동근 내지 만물일체사상이다. 신선도에서는 만유의 근본을 '하나'로 보는가 하면, '하나'는 한알→하날의 전음으로서 그 원의는 숫자적 의미의 '하나' 외에 한늘의 영기(생명 에너지)를 의미하는데, {태백일사}에 "하나의 기(一氣)가 능히 움직여 조·교·치(造·敎·治) 삼화(三化)의 신(神)이 된다" 하여 만유의 근본을 일기(一氣)로 본다. 즉 만유의 근본이 "하나 즉 기(氣)"로서 신선도는 만물동근사상이다. 또한 신선도는 천일·지일·인일의 일체사상으로서 만물일체사상이다. 도교의 경전인 {장자}에도 "사람의 생(生)은 기(氣)의 모임이니, 기가 모이면 생(生)이 되고, 흩어지면 사(死)가 된다. 이와 같이 생사는 같은 무리이니 내 또한 괴로워할 것이 무엇이리요, 그러므로 만물은 하나니라"하여 만유의 근본을 기로 보고 만유를 평등하게 보고 있다. 넷째, 신선도와 도교는 모두 순환론이다. {천부경}에 "만가지가 가고 만가지가 돌아온다(萬往萬來)"하였고, {참전계경} 제91사(조)에 "순환이라 함은 형상있는 한늘의 윤회이니, 형상있는 한늘은 윤회에 일정한 도수가 있어서 조금도 어김이 없느니라"하여 순환론을 말하고 있는가 하면, 제95사에는 "무극이라 함은 돌아서 처음으로 되돌아오는 원기이니 만약에 잠시라도 그침이 있으면 천리가 멸하느니라. 사람이 신의를 기름도 저 무극의 원기와 같으니 털끝만치라도 그침이 용납되면 인도(人道)는 폐하느니라"하여 사람의 도리에도 순환론이 적용됨을 말하고 있다. 즉 신선도는 순환론이다. {도덕경} 제25장을 보면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므로 그것을 도(道)라 이름지었고, 억지로 그것을 대(大)라 부르기로 하였다. 대라는 것은 끊임없이 변하여 간다. 끊임없이 변하는 것은 멀리 극도에 이른다. 멀리 극도에 다다르면 제자리로 돌아온다"하였고, 제16장에도 "마음을 극도로 허하게 하고 독실히 고요함을 지키면 만물이 아울러 생겨나고 그것들이 그 근원으로 돌아감을 본다. 만물이란 번성하고 번성하면 제 각기 그 근본으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도교 역시 순환론이다. 다섯째, 신선도와 도교는 음양오행사상을 기본사상으로 한다. 본서 제1편에서 천일·지일·인일의 삼신일체원리에서 음양오행사상이 발원됨을 밝혔다. 또한 제3편에서 음양오행사상이 우리나라에서 지나로 전승되었음을 밝혔다. 그런데 도교는 불로장수를 목적으로 함으로써 연단술(煉丹術)과 양생술(養生術)을 닦게 되고, 연단술과 양생술에서는 음양오행사상을 기본원리로 한다. 이와 같이 도교 역시 음양오행사상을 기본사상으로 한다. 이 역시 부전자승격(父傳子承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유교도 음양오행사상을 기본사상으로 한다. 이에 대하여 신선도를 모르는 유교학자들은 도교가 유교사상을 수용하였다고 주장할 수 있고, 도교학자들은 유교가 도교사상을 수용하였다고 주장할 수 있다. 신선도와 유교, 신선도와 도교는 부자관계격(父子關係格)이며, 유교와 도교는 동복형제격(同腹兄弟格)으로 서로 같은 사상을 동시에 지니게 마련이다. 그래서 도교와 유교는 신선도의 음양오행사상을 지니게 된다. 여섯째, 신선도와 도교는 모두 조화사상이다. 신선도는 삼극일체(三極一體) 사상으로서 개전일체(個全一體)·선악일체(善惡一體)·유무불이(有無不二)의 양극일체 내지 조화사상이다. 이에 대하여서는 제1편에서 상설하였다. 도교 역시 {도덕경} 제37장을 보면 "도는 언제나 무위하지만 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한 말이 도의 양극일체의 성격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제41장에서는 "도에 밝은 것은 어두운 듯이 보이고 도에 나아가는 것은 물러나는 듯이 보이며, 평탄한 도는 울퉁불퉁한 듯이 보이고, 훌륭한 덕은 속된 듯이 보인다. 크게 결백한 것은 욕된 듯이 보이고, 광대한 덕은 부족한 듯이 보이며, 튼튼한 덕은 간사한 듯이 보인다. 바탕이 참된 것은 더렵혀진 듯이 보이고, 크게 모난 것은 모퉁이가 없는 듯이 보인다"하고, 제45장에서도 "크게 곧은 것은 굽은 듯이 보이고, 크게 교묘한 것은 졸열한 듯이 보이고, 크게 말 잘하는 것은 말을 더듬는 듯이 보인다"고 하여 도교 역시 양극일체 내지 조화사상이다. 2. 전문용어의 동일성 신선도와 도교는 그 전문용어에 있어서도 서로 유사하다. 신선도에서는 삼수(三數)가 가장 기본수여서 삼수로 된 전문용어가 많다. 예컨대, 삼일신고(三一神誥)·삼화경(三化經)·삼극일체(三極一體)·삼신일체(三神一體)·삼교일체(三敎一體)·삼륜(三倫)·삼진(三眞)·삼방(三房)·삼관(三關)·삼문(三門)·삼도(三途)·삼강(三綱)·삼덕(三德)·천부삼인(天符三印)·삼천도(三千徒) 등이다. 도교에도 삼수로 된 용어가 많다. 이는 부전자승(父傳子承)하는 격이다. 예컨대, 삼존신(三尊神)·삼황(三皇)·삼황내문(三皇內文)·삼원(三元)·삼계(三界)·삼청(三淸)·삼기(三氣)·삼군(三君)·삼통(三洞)·삼태성(三台星)·삼천공(三千功)·삼화(三華)·삼목(三木)·삼요(三要) 등 삼수로 된 전문용어가 많다. Ⅵ. 결 론 이상에서 논한 바를 요약 정리하면 1) 우리나라에는 한웅천황이 신선도를 창설했다는 기록이 있다. 2) 지나사회에는 지나족이 도교를 창설했다는 기록이 없다. 3) 도교인들의 이상향인 삼신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4) 우리나라의 신선도서인 {주역}과 {삼황내문}이 지나로 전승되었다. 5) 지나 도교의 시조인 광성자는 동이족이라 추정되었고, 황제와 노자는 동이족이었다. 6) 도교와 신선도는 그 기본사상에 있어서 서로 동일하였다. 이상을 종합적으로 생각하면, 지나의 도교는 지나족에 의하여 종교화되었다 하더라도 그 사상적 원류는 우리나라의 신선도이며, 그 유파라고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도교는 원래 외래종교가 아니라 역수입된 고유종교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한국도교 신자는 외래종교 신자가 아니라 고유종교 신자라는 것이다. 곧 한국사람으로서 한국종교를 신앙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도교신자는 한민족을 위해 봉사해야 하고, 한민족의 주체성을 확립하고 강화하는데 적극적으로 기여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한국도교가 지나에서 발생한 외래종교라 하더라도 우리 나라에 처음 전래될 때는 우리민족을 위해 전래됐다. 그래서 그 도관이 한국땅에 한국사람의 재력과 노력에 의해 세워졌다. 그 소유권과 운영권이 지나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민족에 있다. 따라서 한국도교는 한민족을 위해 봉사해야 하고, 한민족의 주체의식을 확립하고 강화하는데 적극적으로 기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도교의 도관에 누구를 모시어 누가 누구에게 절을 하고 있는가? 도교가 우리민족을 위해 전래됐다면 우리민족의 국조인 한인·한웅·한검을 모시고 절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한국도교의 도관(道觀)에 자연신인 옥황상제(玉皇上帝)와 문창제군(文昌帝君)과 북두진군(北斗眞君) 외에 태상노군(太上老君)에 도덕경을 저술한 주(周)나라의 노자(老子는 실은 한국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를 믿지 않은 한 지나족인 것이다), 무재신(武財神)에 촉한(蜀漢)의 무장 관우(武將 關羽), 문재신(文財神)에 은(殷)나라 주왕(紂王)의 충신 비간(比干), 오현재신(五顯財神)에도 역시 은나라 주왕의 신하 조현단(趙玄壇)을 중심으로 한 다섯 신하, 당(唐)나라의 선인(仙人) 여조(呂祖), 복건성(福建省) 보전현(?田縣) 임씨(林氏)의 딸 마조(復祖), 곤륜산(崑崙山)의 서왕모(西王母), 지나의 오악(五岳) 중의 하나인 태산(泰山)을 신격화시킨 동악대제(東岳大帝) 등 지나의 민족신들에게 한국사람이 절을 하고 공양한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유컨대, 부모에 대한 효도를 강조하면서 제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해서는 돌아보지도 않고, 남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만을 모시고 섬기는 격이 아닌가? 그러한 종교의식으로 어떻게 민족적 주체의식이 확립되고 강화될 수 있겠는가? 또한 윤리도덕은 건전할 수 있겠는가? 깊이 반성할 문제인 것이다. 또한 한국도교의 도관에 나가면 무엇을 가르치는가? 지나족의 역사와 사상과 아울러 우리민족의 역사와 사상도 가르치는가? 아니면 지나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가르치는가? 곧 한국의 도관에 나가면 한국사람에게 도덕경·남화경·황정경·참동계 등 지나족의 도장경만을 가르치고 배운다.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에게 한민족의 경전을 가르치지 않고, 지나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이다. 곧 교육내용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교육대상과 불일치되고 있다. 비유컨대, 고가(高價)의 양약(良藥)이라 하더라도 그 약이 병의 증상이나 원인과 맞지 않는 격이다. 곧 잘못된 처방과 투약으로 병을 치유하자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도교의 신앙과 교육에 있어서 주객이 전도되고 있다. 곧 주인은 손님이 되고, 손님은 주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지나도교의 신앙과 교육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첫째, 지나를 신앙의 조국 또는 성지로, 지나족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이라 우러르고, 제 나라와 제 민족을 그 다음으로 보게 되며, 나아가서 무시하게 된다는 것. 둘째, 그럼으로써 민족적 긍지와 주체의식이 해이되고, 애국심과 애족심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 셋째, 애국심과 애족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윤리도덕을 가르쳐도 그 공효(功效)가 없게 된다는 것. 넷째, 사회는 결국 타락되고 이기주의 사회가 된다는 것. 다섯째, 궁극에 가서는 국가와 민족보다도 나 개인의 신앙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됨으로써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칠 사람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실례를 들면, 고구려는 그 말엽 도교가 극성하게 되었을 때, 도교국가인 당나라 군대의 침략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도교신자인 고구려 백성들은 거기에 대항하여 싸우지 않았다. 그래서 고구려는 한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당나라에게 망하게 되었다. 그와 같이 신앙에 빠지면 이기주의자가 되어 국가와 민족보다도 일신의 영화를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한국도교인들은 역사적 경험을 거울삼아 깊이 반성하고 뉘우쳐야 할 것이다. 제5편 동학은 신선도의 재현이다 홍익인간 광명이세 Ⅰ. 문제의 제기 동학은 근세조선 말엽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서기 1824-1864년) 선생에 의하여 설해졌다. 그때는 외래의 道·佛·儒가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천수백년이 지난 이후이며, 기독교(가톨릭)가 전래되어 근 백년이 경과한 이후이다. 그리고 현재도 배달국 시대의 한웅천황에 의하여 설해진 도·불·유 三敎一體의 신선도가 상고시대부터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사실을 일반 학계에서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한웅천황이라면 신화적인 존재로 인식한다. 그럼으로써 동학에 내포되고 있는 도·불·유 삼교일체의 사상을 동양의 전통적 외래사상의 수용 또는 종합 내지 재구성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는가 하면, 기독교의 선진적 요소까지 수용하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그것이 오늘날 사계 학자들의 일반적 견해이다. 그러나 동학발생의 시원을 찾아 올라가면 동학은 신화적 허구로 버림받고 있는 배달국 시대의 한웅천황에 의하여 설파된 신선도에 바탕을 두고, 신라(新羅) 말엽의 대문호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선생을 거쳐 그 25세손인 수운 최제우 선생에게 전수된다. 그래서 신선도와 동학은 다 같이 天一·地一·人一의 三神一體인 天道를 발생학적 본원으로 하고, 도·불·유 三敎一體를 기본사상으로 하며, 그밖에도 지기론(至氣論)·순환론·생명평등사상 내지 만물일체사상·민주주의사상 그리고 하나님을 숭배의 대상으로 하는 것이나, 포교의 목적을 포덕천하(布德天下) 광제창생(廣濟蒼生) 내지 홍익인간 광명이세에 두는 것 등 모든 사상이 동일하다. 따라서 동학의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은 동양의 전통적 외래사상을 수용한 것이 아니라 배달사상인 신선도의 전승이었다. 이러한 문제를 새롭게 밝혀 잃어버린 고유사상을 재발굴하고 재정립하는 데에 일조하고자 하는 것이 본연구의 목적이다. 다시 말하면 동학이 동양의 전통적 외래의 도·불·유 삼교사상을 수용하여 종합 내지 재구성하였다는 일반적 견해에 대한 반론인 것이다. 이에 따라 본고에서는 첫째, 동학이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임을 밝히고. 둘째, 동학이 신선도를 전승하였다는 전거를 제기할 것이며, 셋째, 신선도와 동학이 그 발생원리에 있어서 서로 동일하고, 그외의 사상도 동일함을 밝힌다. 그밖의 문제는 논외로 한다. 그러나 본고의 내용은 새로운 시도로써 거기에 대한 자료도 희귀할 뿐만 아니라 그밖에 보완하여야 할 점이 많을 것으로 본다. 널리 이해하여 주기 바란다. Ⅱ. 동학의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 본고에서 문제삼고 있는 동학사상이다. 동학사상(東學思想)은 수운 최제우 선생이 서기 1860년(단기 4193) 경신 4월 5일 득도(得道)함에서 드러난다. 그 사상은 도·불·유의 삼교일체 사상이다. 송월당(松月堂)이라는 노승(老僧)과의 문답내용을 보면 최제우 선생은 도·불·유를 하지는 않지만 좋아한다 하고, 비유하면 두 팔 가운데 어느 팔을 좋아하고 어느 팔을 싫어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천도는 없는 곳이 없고, 없는 곳이 없으므로 전체를 사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즉 동학사상은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최제우 선생께서 그 제자 해월 최시형(海月 崔時亨;초명은 崔慶翔)을 향하여 말하되 "우리 道는 원래 儒도 아니고 佛도 아니며 仙(道敎의 고전적 표현)도 아니니라. 그러나 우리 道는 유·불·선 합일이니라. 天道는 유·불·선이 아니로되, 유·불·선은 천도의 일부분이니라. 유의 윤리와 불의 각성(覺性)과 선(仙)의 양기(養氣)는 인성(人性)의 자연한 품부(稟賦)이며 천도의 고유한 부분이니, 우리 道는 그 무극대원(無極大源)을 잡은 자니라. 후에 道를 쓰는 자는 이를 오해하지 말도록 지도하라"하시었다. 즉 동학의 도·불·유 삼교사상은 인성의 자연한 품부를 수련하는 사상으로서 천도의 고유한 부분이니 따로 따로 전래되어 종합되거나 재구성될 수 없는 사상이란 것이다. 원래부터 동학은 도·불·유의 삼교일체 사상이란 것이다. 그래서 동학경전에 천령(天靈)·천주(天主)·폁?님(목판본)·하날님(동경대전 원본)·하늘님(수운교 경전)·한울님(천도교 {동경대전}근세판)·천명(天命)·천리(天理)·천도(天道)·천덕(天德)·천성(天性)·천지인 삼재(天地人 三才)·음양오행(陰陽五行)이라는 천도에 관한 용어와 사상이 나오고, 신선(神仙)·선풍도골(仙風道骨)·선약(仙藥)·불사약(不死藥)·불로불사(不老不死)·무위이화(無爲而化)·지상선경(地上仙境)이니 하는 도교적인 용어와 사상, 부처·팔도불전(八道佛前)·산신불공(山神佛供)·윤회(輪廻)·연화(蓮花)·삼십삼천(三十三天)·도솔천(兜率天)이니 하는 불교적인 용어와 사상, 그리고 상제(上帝)·도성덕립(道成德立)·삼강오륜(三綱五倫)·성인군자(聖人君子)·충효열사(忠孝烈士)·효자효부(孝子孝婦)하는 유교적인 용어와 사상이 나온다. 그밖에도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요(堯)임금과 순(舜)임금·공자(孔子)와 맹자(孟子)·제갈량(諸葛亮)·주렴계(周濂溪) 그리고 주역(周易)·대학(大學)·중용(中庸) 등이 거론된다. 그것은 학자들이 하나의 연구물을 발표할 때 기성의 연구물을 원용하는 것과 같은 격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동학경전을 보면 거기에 최제우 선생이 도·불·유 삼교일체의 사상을 창설하였다는 말도 없고, 동양의 전통적 도·불·유 사상을 수용하였다는 말도 없다. 오히려 "유교는 명절(名節)에 구애되어 아직 현묘의 역(域)에 이르지 못하였고, 불교는 적멸(寂滅)로 들어가 윤상(倫常)을 절(絶)하였으며, 선교(도교)는 자연에만 유적(悠適)하여 치평(治平)의 술(術)을 결(缺)하였다"하고, 이 세상은 요순(堯舜)의 정치로도 족(足)히 건지지 못할 것이요, 공·맹(孔·孟)의 도덕으로도 또한 다스리지 못하리라 하는가 하면, 유도(儒道)·불도(佛道) 누천년(累千年)에 운(運)이 또한 다하였도다 하여 동양의 전통적 도·불·유 사상을 혹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계의 일부 학자들은 동학의 도·불·유 사상을 동양의 전통적 도·불·유 사상을 수용하였다느니 종합하였다느니 재구성하였다고 주장한다. 이는 최제우 선생의 가르침을 안믿으려는 것으로서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에 대하여 반발하고 거역하는 것과 같은 격이라 할 수 있고, 어느 종교의 신자가 다른 종교의 교리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격이라 할 수 있으며, 스스로 제부모를 헐뜻는 것과 같은 격이라 할 수 있다. 실로 무례하기 그지없고 선인에 대한 모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의 학자가 한국사상을 대하는 태도요, 우리사회의 학문하는 풍토이다. Ⅲ. 동학의 신선도 전승 1. 백두산 정상의 용왕담과 동학의 연원 {동경대전} 절구와 {천도교창건사}를 보면, 최제우 선생이 그 제자 최시형에게 도통(道統)을 전수(傳授)하는 말 가운데 "용담(龍潭)에서 물이 흐르니 사해(四海)의 근원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는 용담에서 사방으로 강물이 흐르는 것을 의미하고, 이를 동학의 연원에 비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최시형 선생께서도 제자들에게 도통을 전수할 때 "산상(山上)에서 물이 흐르니 우리 교의 도통연원(道統淵源)이라. 이 현묘한 기틀과 참다운 이치를 깨달은 연후에야 개벽(開闢)의 운(運)과 무극(無極)의 도(道)를 알게 되리라. 오호라! 뿌리없는 나무가 없고 근원없는 물이 없으니 만사가 오직 그와 같으니라"하여 동학의 연원이 최제우 선생의 창작도 아니고 외래사상의 수용도 재구성도 종합도 아니라, 산상의 용담임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백두산 정상의 천지(天池)를 용담(龍潭) 또는 용왕담(龍王潭)이라 하고, 거기에서 압록·송화·소화·두만의 4대강하(四大江河)가 사방으로 흐르며, 한웅천황에 의하여 도·불·유 삼교일체의 신선도가 설파되었다. 따라서 최제우 선생이 말한 용담과 최시형 선생이 말한 산상의 물은 백두산 정상의 용담(천지)이라 할 수 있고, 그곳이 동학의 발원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흔히 최제우 선생의 고향인 경주의 가정리에 용담이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동경대전} 수덕문에 의하면 "난간이 못가에 다다르니 주렴계(周濂溪)의 뜻과 다름이 없고, 정자의 이름을 용담이라 하였으니 제갈양(諸葛亮)을 사모하는 마음이 아니겠는가"하여, 용담이 정자의 이름임을 말하고 있는데, {용담유사} 용담가에서도 "구미산하 일정각((龜尾山下 一亭閣)을 용담이라 이름하고"하여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용담은 물이 아니라 정자의 이름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 곳이 산의 정상도 아니고 거기에서 4방으로 물이 흐르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동학 발원지로서의 용담은 경주 가정리의 용담(정)이 아니라 백두산 정상의 용담이며, 그 곳이 동학의 발원지로서 동학의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은 동양의 전통적 노(老)·석(釋)·공(孔)의 외래사상을 수용하여 종합하거나 재구성한 것이 아니라, 상고시대부터 전래된 신선도의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을 전승하였다는 증거가 제1차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2. 한웅천황과 최고운(崔孤雲)과 동학의 신선도 전승 또한 {동경대전}을 보면 "산하대운(山河大運)이 모두 이 도(道)에 돌아오니 그 근원이 극히 깊고 그 이치가 심히 멀도다" 하여 동학의 근원이 극히 심오함을 말하고 있는데, {천도교창건사}를 보면 최시형 선생이 말씀하시기를 "오도(吾道)의 대운(大運)은 천황씨(天皇氏)의 근본원리를 회복한 무극지운(無極之運)이며, 천황씨는 선천개벽(先天開闢)의 시조를 의미한다"고 하였다. 의암 손병희(義菴 孫秉熙) 선생도 "우리 대선생(최제우 선생)께서 비로소 무극대도(無極大道)와 대덕(大德)의 근본원리와 접령강화(接靈降話)의 이치를 밝혔다고 하나, 개벽초(開闢初)의 천황씨로부터 처음 비롯된 운이라 하니 의심하지 말라"고 하였다. 선천개벽 또는 개벽초라 함은 우리나라 개국초의 개벽을 의미하고 개벽은 개천시교(開天施敎)를 의미하니, 천황씨는 우리나라 개국초에 도·불·유 삼교일체의 신선도를 베푼 한웅천황이라 할 수 밖에 없다. 한웅천황 외에 신선도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베푼 천황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동학의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은 동양의 전통적 노·석·공의 외래사상을 수용하여 종합하거나 재구성한 것이 아니라, 배달국 시대의 한웅천황에 의해 설해진 신선도의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을 전승하였다는 증거가 제2차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제1편 제Ⅱ장에서 밝힌 바, 최제우 선생의 제25세 선조이신 고운 최치원 선생의 난랑비서에 "우리나라에 현묘지도로서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을 근본적으로 자체 내에 지닌 신선도(화랑도)가 있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동경대전} 논학문을 보면 최제우 선생께서 "내 또한 동에서 나서 동에서 받았다"하고, 절구(絶句)를 보면 "평생에 받은 천명은 천년운수요, 성덕(聖德)은 우리 집에 내려오는 백세의 업(業)이라"하였다. 즉 동학사상은 최씨 집안에서 천년 동안이나 전승된 가업이었다는 것이다. 최치원 선생의 호를 고운(孤雲) 또는 해운(海雲)이라 하고, 최제우 선생의 호를 수운(水雲), 최시형 선생의 호를 해월(海月)이라 하여 조손(祖孫) 사이에 그 호가 일맥상통하는 것을 보아도 동학사상이 최씨 집안에서 대대로 전승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다시 동학의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은 동양의 전통적 노·석·공의 외래사상을 수용하여 종합하거나 재구성한 것이 아니라, 배달국 시대의 한웅천황에 의해 설해진 신선도의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을 전승하였다는 증거가 제3차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Ⅳ. 신선도와 동학의 동일성 지금까지 동학의 도·불·유 사상이 동양의 전통적 노·석·공의 외래사상을 수용한 것이 아니라 신선도의 사상을 전승한 것임을 밝혔다. 이는 곧 신선도와 동학이 근본적으로 동일함을 뜻한다. 그렇다면 신선도와 동학은 다 같이 그 발생원리와 그밖에 기본사상이 모두 동일하여야 한다. 사람에 비유하면 조손관계(祖孫關係)나 부자관계(父子關係)에 있어서 그 유전인자와 혈액형이 서로 같거나 불가분적 상관관계를 지니는 것과 같은 격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문제를 본항에서 규명하여 나가기로 한다. 1. 발생원리의 동일성 우리의 민속을 보면, 삼신상제(三神上帝)·삼신제왕(三神帝王)·삼신제석(三神帝釋)·삼신(三神)할머니 하는 삼신신앙(三神信仰)이 있고. 삼신사상을 발생원리로 도·불·유 삼교일체의 신선도가 한웅천황에 의하여 설파되었다. 삼신은 천일·지일·인일을 의미하고, 삼신이 사람에 있어서는 식(息)·감(感)·촉(觸)과 기(氣)·심(心)·신(身)과 명(命)·성(性)·정(精)이 된다. 여기에서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이 성립된다. 약설하면 숨을 고르게 쉬고(調息) 원기를 길러(養氣) 불로장수(長命)하는 신선을 추구하는 사상이 도교이고, 모든 느낌을 끊어 버리고(止感) 마음을 맑게 하여(明心) 본래의 성품을 깨달아(覺性) 성불을 추구하는 사상이 불교이며, 모든 육체적 감각(관능적인 욕구)을 극복하여(禁觸) 행실을 닦고(修身) 정기(정력)를 성실하게 함으로써(精誠) 성인군자를 추구하는 사상이 유교이다. 즉 인체계의 3원적 품부인 식·기·명에서 도교, 감·심·성에서 불교, 촉·신·정에서 유교가 발원되고 있는 것이다. 동학을 설파한 최제우 선생도 말하기를 "유·불·선(도교의 고전적인 표현)은 천도의 일부분이니 유의 윤리와 불의 각성과 선의 양기는 인성의 자연한 품부이며 천도의 고유한 부분이니 우리도는 그 무극대원(無極大源)을 잡은 자이다"고 하였다. 이를 음미하여 보면 유의 윤리는 몸을 닦는 것(修身)이며, 불의 각성은 마음을 맑게 함(明心)으로써 성취될 수 있고, 도(선)의 양기(養氣)는 원기를 기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원기(氣)와 마음(心)과 몸(身)을 닦고 기르는 것이 도·불·유라는 것이다. 신선도의 도·불·유 사상도 원기(氣)와 마음(心)과 몸(身)을 닦는데서 발원된다. 따라서 신선도와 동학은 다 같이 그 발생원리에 있어서 동일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신선도와 동학은 다같이 천일·지일·인일의 천도에서 발원되고 있는 것이다. 동학의 일파인 수운교의 경전 {동도전서}에도 "이 세가지를 나누어 말하면 유·불·선 삼가(三家)의 가르침이요, 합하여 말하면 하나의 천도라"하였다. 그러므로 동학의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도 신선도와 마찬가지로 천일·지일·인일 삼신일체의 천도에서 발원되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동학의 도·불·유 삼교일체사상은 신선도와 동일한 원리에서 발원되고 있다. 따라서 동학의 도·불·유 사상은 외래사상을 수용한 것이 아니라 고유사상인 신선도를 전승하였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2. 기본사상의 동일성 다음은 기본사상의 동일성이다. 첫째, 신선도와 동학은 다같이 지기론(至氣論)이다. {한단고기} 소도경전본훈에 의하면 "일기(一氣)가 곧 하늘(天)이요 공(空)이다. 그러나 스스로 중일(中一)의 신(神)이 있어 능히 삼(三)이 된다. 삼신(三神)은 곧 천일(天一)·지일(地一)·태일(太一)이다. 일기(一氣)가 스스로 동작하여 조(造)·교(敎)·치(治)의 삼화(三化)의 신(神)이 된다. 신(神)은 곧 기(氣)이다" 하여 지기론(至氣論)이 신선도의 가장 기본사상이다. 동학에서도 "기(氣)는 허령(虛靈)하고 창창하여 간섭하지 않는 것이 없고 명령하지 않는 것이 없어 형용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형상하기 어렵고, 들리는 것 같으면서도 보기 어려우니 이것은 또한 혼원한 일기(一氣)니라"하여 지기론이 동학의 기본사상을 이룬다. 이래서 신선도와 동학은 다같이 지기론을 기본사상으로 한다. 둘째, 신선도와 동학에서는 모두 하나님을 숭배의 대상으로 한다. 우리의 민속에 하나님 신앙이 있고, 하나님 사상에서 도·불·유 삼교일체의 신선도가 성립됐으며, 하나님이 아니면 만물이 이 세상에 태어날 수도 없고 존재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신선도에서는 하나님을 숭배대상으로 한다. 동학에서도 "그말 저말 다 던지고 하나님(하날님)을 공경하면 아동방(我東方) 삼년괴질(三年怪疾) 죽을 염려 있을소냐"하는가 하면, "성경이자(誠敬二字) 지어내어 하나님을 공경하면 자아시(自兒時)있던 신병(身病) 물약자효(勿藥自效)아닐런가"하였고, 동학의 기본주문인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至氣今至 願爲大降 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에도 천주(天主) 즉 하나님을 모셔야 한다고 강조하여 동학의 숭배대상 역시 하나님이다. 셋째, 신선도와 동학은 다같이 순환론이다. 신선도의 경전 {천부경}에 "만왕만래(萬往萬來)"라 하였고, {참전계경} 제91사에 신선도가 순환론임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동학에서도 {용담유사} 권학가에 "쇠운(衰運)이 지극하면 성운(盛運)이 오지마는 현숙한 모든 군자 동귀일체(同歸一體)하였던가"하고, 교훈가에 "부하고 귀한 사람 이전 시절 빈천(貧賤)이요, 빈하고 천한 사람 오는 시절 부귀로세, 천운이 순환하사 가고 아니 돌아옴이 없나니"하여 동학 역시 순환론이다. 넷째, 신선도와 동학은 다같이 생명평등사상 내지 만물동근사상이다. 신선도에서 천일·지일·인일의 삼신일체는 만물동근사상 내지 생명평등사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신선도의 경전 {삼일신고}에 "사람과 만물이 다같이 삼진(三眞)을 받았나니 이는 성(性)·명(命)·정(精)이라. 사람은 그것을 온전하게 받았으나 만물은 치우치게 받았나니라"하여 사람과 만물이 근본적으로 성·명·정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이는 불교에서 만물이 다같이 불성을 지니고 있다(皆有佛性)는 말과 같은 뜻이다. 따라서 신선도는 생명평등사상 내지 만물동근사상이다. 동학에서도 "천지(天地)·귀신(鬼神)·조화(造化)라는 것은 유일한 지기(至氣)로 생긴 것이며, 만물이 또한 지기로 생긴 것이니 이렇게 보면 하필 사람만이 천주를 모셨으랴. 천지만물이 하나님을 모시지 아니함이 없나니, 사람이 다른 물건을 먹음은 이는 곧 한늘이 한늘을 먹음이라"하여 모든 생명체가 하나님의 조화이고, 하나님을 모신 존재로서 존귀함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동학 역시 생명평등사상 내지 만물동근사상이다. 다섯째, 신선도와 동학은 모두 민주주의사상이다. 천일·지일·인일의 삼신일체는 천일합일(天人合一)사상으로서 한늘이 곧 인간이고 인간이 곧 한늘이라는 최대 최고의 인권존중사상이며, 상·중·하 일체의 인간평등사상이다. 그러므로 신선도는 곧 민주주의사상이다. 동학에 있어서 시천주(侍天主) 사상도 최시형 시대에 이르러서는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으로 발전되고, 손병희 시대에 이르러서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 발전된다. 인내천사상 역시 한늘이 곧 인간이고 인간이 곧 한늘이라는 뜻으로 최대 최고의 인권존중사상이며 인간평등사상이다. 박종홍(朴鍾鴻) 박사는 "현대사상에서도 천도교의 인내천(人乃天)만큼 보다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사상을 찾아볼 수 없다. 사람이 곧 한늘이라면 전통적인 기독교인은 깜짝 놀랄 일이다. 그보다 더 큰 죄악이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특색이 있다 인내천의 종지는 현대의 그 어느 민주주의보다도 철저하고 깊은 것이 아닐 수 없다"고 하여 인내천사상이 곧 민주주의사상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래서 신선도의 삼신일체사상과 동학의 인내천사상은 다같이 반상(班常)·적서(嫡庶)·노사(勞使)·남녀(男女)·노소(老少)·빈부(貧富)·귀천(貴賤)의 차별이 없는 인간평등사상이며 최대 최고의 인권존중사상으로서 민주주의사상인 것이다. Ⅴ. 결 론 이상에서 논한 바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민족의 신선도가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인데, 최제우 선생이 설한 동학에도 도·불·유 삼교사상이 일체를 이루고 있다. 둘째. 신선도가 백두산 정상의 용담(천지)에서 한웅천황에 의하여 비로소 설파되었는데, 동학이 산상의 용담과 개벽초의 천황씨에 발생연원을 두고 있다. 셋째. 신선도가 고운 최치원 선생의 난랑비서에 잘 나타나고 있는데, 그 25세손인 최제우 선생은 동학을 천년 동안이나 집안에서 전하여온 백세의 가업(家業)이라 하였다. 넷째. 동학의 발생원리가 신선도와 동일하였다. 다섯째. 그밖에도 지기론·숭배의 대상·순환론·생명평등사상 내지 만물일체사상·민주주의사상 등이 동일하였다. 그러므로 동학의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은 동양의 전통적 노·석·공의 외래사상을 수용하여 종합하거나 재구성한 것이 아니라, 배달국 시대부터 전승된 신선도의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을 계승하였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여기에서 동학은 배달사상인 신선도의 재현이며 부활이라 할 수 있고, 최제우 선생과 최시형 선생은 사라져가는 민족혼과 민족사상을 일깨우고 부활시킨 대종교가요 대학자요 대사상가요 대혁명가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와 같이 사계의 학자들도 외래사상과 아울러 고유사상에로, 또한 현세사상이나 근세사상과 아울러 고대사상에로 연구의 폭을 넓혀야 할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하면 자료가 많고 편의한 데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문제의 해결에 노력하여야 하고, 연구물의 평가도 자신의 견해와 종전의 통설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학설에도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세계문화는 철석같이 믿던 통설이 무너지면서 발전되어왔다는 사실을 상기하여 주기 바란다. 최시형 선생이 말한 바, "천황씨의 본심을 회복하지 아니하면 어떻게 보국안민(輔國安民)하리요"하였듯이 새로운 자세로 동학사상과 신선도를 재조명하여 민족혼을 일깨우는 데에 일조하여야 할 것으로 믿는다. 또한 동학이 곧 신선도요 신선도가 곧 동학으로서 세계주의사상이요, 만물일체사상이다. 다가오는 21세기에는 세계의 석학이 우리민족을 연구하고 신선도를 연구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부록】 우리민족의 종교교육 비판 1. 종교교육의 기능 어느 종교이든 그 교육을 보면 윤리도덕을 가르치고 인간의 정서를 순화시키며 남을 위해 사회에 봉사하게 하고 사회의 복지와 번영을 추구하며 지상낙원 건설을 목표로 한다. 또한 문화사업과 교육사업 그리고 구호사업을 직접 벌리면서 사회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그러므로 종교교육을 통해 가정이 화평케 되고 고매한 인격자가 배출되기도 하며, 어느 면에서 사회발전이 크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같은 종파의 종교인들 끼리는 공동체의식이 투철하여 서로 화합하고 단결하며 상부상조하고 동고동락한다. 그래서 어떤 민족은 종교교육을 통해 총화단결하고 부강하게 되는가 하면, 화합하고 예의바른 민족이라 칭찬을 받는다. 그러한 점에서 종교교육은 이를 나무랄데 없는 가장 이상적인 교육제도같이 보인다. 그러나 다(多)종교사회인 경우 문제는 다르다. 각 종교의 세부적인 측면을 들여다 보면, 역사적 사회적 발생동기·사상적 발생배경·발생민족·발생지·숭배의 대상·교조·경전·계율·의식과 관행이 각각 다르다. 그리고 각 종교마다 제 종교의 신앙대상을 전지전능하고 유일무이한 하나님(하느님)·주님·알라·부처님·옥황상제·천조대신이라 찬양하고, 제 종교의 교조를 가장 위대한 성인이라 추앙한다. 그리고 그 나라를 신앙의 성지라 하여 동경하고, 그 민족을 가장 거룩한 민족이라 찬양하면서 그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치고 배운다. 여기에서 어느 나라를 불구하고 다종교사회인 경우 종교교육에 있어서 크나큰 모순이 들어나게 된다. 첫째, 신자는 신앙이 독실할 수록 제 종교의 신앙대상을 절대적인 존재라 섬기고 거기에 사후의 운명까지 의탁한다. 따라서 어느 종교의 가르침이 객관적으로 볼 때 옳지 않다 하더라도 신자 자신은 그 가르침을 절대적인 진리라 믿고 따르게 된다. 이를 파브로프의 조건반사 원칙이라 한다. 그래서 신앙은 아편같다고도 하며, 신앙에 빠진 사람들은 아편중독자 같기도 하여 이들에게는 객관적인 비판력과 자제력도 없게 되고, 다른 종교를 유사종교·미개종교·미신신앙·우상숭배라 하여 무조건 멸시하거나 부정하게 된다. 즉 다종교사회에 있어서 각 종교는 다른 종교를 포용하는 것이 아니라 배척하여 사회불안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둘째, 각 종교마다 제 종교의 교조를 가장 위대한 성인이라 숭배한다. 그것은 제 종교의 교조보다 다른 종교의 교조와 성인은 하위에 있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웃 어른이나 선배라 하더라도 종교가 다르면 내심으로 하찮은 존재라 업신여기게 된다. 여기에서 다종교사회에 있어서의 종교교육은 윤리도덕을 가르치면서 윤리도덕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셋째, 각 종교마다 그 종교의 발생지를 신앙의 성지라, 그 민족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이라 찬양하면서 그 나라를 순방하고 그 발생지를 순례한다. 이를 성지순례라 한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기를 낳고 키워준 제 나라는 성지가 아니며 제 민족은 위대한 민족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여기에서 제 나라와 제 민족을 무시하고 다른 나라와 다른 민족을 동경하는 사대주의 의식이 싹트게 되며, 애국심과 애족심은 상처를 입게 된다. 넷째, 각 종교마다 그 민족의 위대성을 찬양하면서 주로 그 민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가르치고 배운다. 곧 외래종교인들은 주로 다른 민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가르치고 배운다. 이에 따라 자기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업신여기고 소홀리 하거나 가르치지 않게 된다. 그러한 풍조가 오래 계속될 경우, 제 민족의 문화는 낙후되고 외래화되기 마련이며, 민족의식은 사대주의에 빠지게 되고, 국가기강과 사회기강은 해이되기 마련이다. 다섯째, 신앙이 독실할 수록 종파를 중심으로 신도들은 똘똘 뭉치게 된다. 그것은 종파와 종파, 또는 종교와 종교 사이가 가깝지 않게 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체민족은 종교 또는 종파의 숫자만큼 분열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다종교사회에서는 단결이 잘 안될 뿐만 아니라 단결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다종교사회에 있어서의 종교교육은 개인적으로 정서를 순화시키고 인격을 도야시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민족정서를 파괴하고 분열시키는 부정적인 측면이 더욱 강하다. 그래서 종교가 많이 생기고 교회와 교당이 거리마다 늘어설수록 윤리도덕이 건전하기는 커녕 더욱 타락되고 사회는 이기화되기 마련이다. 그러면 우리사회의 종교교육은 어떻게 되고 있으며, 어떻게 종교교육을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가의 문제이다. 2. 민족총화와 종교교육 이상적인 종교교육이라 할 수는 없으나 민족총화를 위한 종교교육으로써 유대민족의 종교교육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유대민족은 수백만의 인구로서 수억의 아랍인구에 대항하리만큼 민족적 화합을 굳건히 하고 애족적 애국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종교 지도자는 유대민족을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 또는 세계의 중심민족이라 극찬하면서 유대민족을 본받으라고 한다. 첫째, 유대민족은 어려서부터 자기민족의 전통적 역사교육과 아울러 종교교육을 철저히 받고 문화유적을 탐방하면서 자기민족의 위대성을 배운다. 곧 유대민족의 교육은 어려서부터 인성개발과 아울러 애국자 양성에 중점을 둔다(교육방송, 주한 이스라엘대사 특별초대 강연중에서). 이래서 유대민족은 화합적이고 애국적 애족적이다. 둘째, 유대민족의 교회에서는 다른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절대 가르치지 않고,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바이블 속에 하나로 묶어 전체 민족에게 매주 가르치고 뉘우치게 한다(바이블 구약 참조). 여기에서 유대민족은 더욱 애국적 애족적인 민족이 되기 마련이다. 셋째, 유대민족은 여러 개의 신을 섬기지 않고 하나의 신만을 섬기며, 다른 민족의 신을 섬기지 않고 자기 민족의 신만을 섬긴다. 이를 유일신 신앙(唯一神 信仰)이라 한다. 그래서 유대민족은 자기민족의 여호와신 하나만을 섬기고, 유대교 하나만을 신앙한다. 다시 말하면 몰록신(구약 열왕기하 제23장 10절)·그모스신(구약 사사기 제11장 24절)·네르갈신(구약 에래미야 제39장 3절과 13절)·아드람멜렉신과 아남멜렉신(구약 열왕기하 제17장 31절) 등 많은 신들을 물리치고 교세가 가장 강한 여호와와 엘로힘을 하나로 묶어 여호와신(여호와 엘로힘) 하나만을 섬기고 다른 신을 절대 섬기지 못하도록 계명으로 정하고 있다(구약 출애굽기 20장 5절. 신명기 5장 9절). 심지어 다른 민족의 신을 믿자 할 때, 아내·자녀·형제·친구까지도 돌로 쳐서 죽이라고 가르치고 있다(신명기 13장 6절에서 10절). 이에 따라 유대민족 사회에는 여호와신을 섬기는 유대교 외에 다른 민족의 신을 섬기는 종교는 교리상 절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다만 근래에 이르러 여호와를 섬기고 유대교에 뿌리를 둔 기독교를 믿는 교파가 일부 있을 뿐이고, 다른 신을 믿는 이슬람파가 극소수 있으나 그것은 비밀조직으로써 타도의 대상이다. 곧 유대사회에서는 여호와를 섬기고 유대교(또는 기독교)를 신앙해야만이 유대인으로서의 자격을 인정받고, 다른 신을 섬기거나 다른 종교를 신앙하면 유대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와 같이 유대민족은 하나의 신만을 섬기고 하나의 종교만을 신앙함으로써 전체민족이 총화단결하여 똘똘 뭉치고 있는 것이다. 요약해 말하면, 유대민족이 동포의식과 공동체의식이 투철하고 전체민족이 총화단결하며 애국하고 애족하게 되는 이유는 제 민족의 역사교육과 사상교육을 철저히 받고 제 민족의 신만을 섬기며 제 민족의 종교만을 신앙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인 역시 거의 전체민족이 자기민족의 천조대신(天照大神)만을 섬기고, 자기민족의 신도(神道는 사실 우리민족의 신선도가 일본으로 전래된 종교임)와 이를 접목시킨 불교 곧 일본화된 불교만을 신앙한다. 그리고 신사(神社;法堂)에 나가면 자기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치면서 자기 조상들의 위대성을 찬양한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잘 단합하고 예의바른 민족이라 칭찬을 받는다. 이를 생각하면 어느 민족이든 전체민족이 총화단결하고 굳건한 국가기강의 확립을 위해서는 제 민족의 국조와 존현을 잘 섬기고, 제 민족의 종교를 신앙하며, 제 민족의 역사교육과 사상교육을 철저히 받고 회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 우리민족의 종교교육과 그 폐단 그러면 오늘날 우리민족의 종교교육은 어떠한가? 우리민족은 유대민족과 정반대의 종교교육을 받고 있다. 즉 유대민족은 제 민족의 종교교육만을 받고 다른 민족의 종교교육을 절대 받지 않는데, 우리민족의 절반정도(외래종교인)는 제 민족의 종교교육을 받지 않고, 다른 민족의 종교교육만을 받는다. 이를 세분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유대민족은 오로지 제 민족의 신과 교조에게만 절을 하고 다른 민족의 신과 교조에게는 절대 절을 않는데, 우리민족의 절반정도는 제 민족의 하나님과 국조에게 절을 않고, 다른 민족의 신과 교조에게 절을 한다. 이와 같이 우리민족은 숭배의 대상에 있어서 유대민족과 정반대의 신앙을 하고 있다. 더욱이 그러한 신앙풍토가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예컨대, 불교의 예식을 보면, 대웅전의 중앙 연화대 위에 부처님을 모시고 남무아미타불 아니면 석가모니불을 부른다. 남무아미타불은 우주의 진여이법(眞如理法)을 상징하는 假像佛이지만, 석가모니불은 인간으로서 따지고 보면 원래 우리민족이라 하더라도 지금까지 불교측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인도 사람이라 믿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을 섬기지 않고 다른 나라 사람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유교는 어떠한가? 그 교육기관인 성균관이나 향교에서의 예식을 보면, 대성전(大成殿)에 공자를 비롯한 안자·자사·증자·맹자 등 오성(五聖)과 공자의 제자 십철(十哲) 및 칠십이제자(七十二弟子) 그리고 송왕조육현(宋王朝六賢), 마지막에 우리나라의 주자학자 십팔현(十八賢) 등 대체로 지나족(종족 이름에는 支那로, 국명에는 중국으로 표기했다)의 위인들을 모시어 거기에 공양을 하고 절을 한다. 도교는 어떠한가? 도교에서도 자연신인 옥황상제와 미륵불 외에 대체로 지나족의 위인들을 모시어 공양하고 절을 한다. 예컨대 복희·신농·황제·노자·서왕모·마조·여조·유비·관우·장비·공명 등 지나의 위인들을 신격화시켜 거기에 공양하고 절을 한다. 기독교는 어떠한가? 기독교에서도 유대민족의 성인인 예수를 모시어 하나님의 아들이라 또 그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어 성모라 섬기고, 유대민족의 민족신인 여호와를 할렐루야 하고 찬양한다. 여기에서 생각해보자. 우리나라는 인도도 아니고 중국도 아니며 이스라엘도 아니라 한국이다. 또한 우리민족은 인도족도 아니고 지나족도 아니며 유태민족도 아니라 한국 사람이다. 곧 우리나라는 한국이며, 우리민족은 한국 사람이다. 그런데 한국사람이 한국땅에서 한국의 건물 중앙에 다른 민족의 민족신과 위인을 모시어 거기에 공양을 하고 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곧 내가 내집 안방에 내 조상을 모시지 않고 남의 조상을 모시어 공양을 하고 절을 하고 있는 격이다. 그러한 행동을 자주 반복할 때, 우리민족의 사유체계와 의식구조는 어떻게 되고, 국가관과 민족관은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는 신앙을 떠나 한국인의 입장에서 또 자연인의 입장에서 냉정히 생각해보자. 불교·유교·도교·기독교 등 외래종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될 때는 우리민족을 위해 전래됐다. 그것은 외래사상을 수입하여 민족사상의 모자란 점을 보완하고 민족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함이었다. 외래종교의 노예가 되고 외국의 사상적 식민지가 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래서 법당과 도관과 교당이 한국 사람의 노력과 재력에 의해 한국땅에 세워졌다. 그 소유권이 한국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외국사람의 소유가 아니며 외국사람을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 법당과 도관과 교당의 중앙에 다른 민족 곧 특정민족의 민족신과 성인을 안치하여 거기에 한국 사람이 공양을 하고 절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땅에 태어나서 한국의 의식(衣食)으로 살면서 다른 민족의 귀신을 섬기고 다른 민족의 종교를 신봉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불교·유교·도교·기독교 등의 예식을 보면 거기에 우리민족의 하나님과 국조를 모시지도 않고 섬기지도 않는다. 일부 불교사찰에서 우리민족의 국조인 한인·한웅·한검의 삼성을 모시고 있다 하더라도 대웅전 밖, 어느 한쪽 구석에 형식상 모시고 있을 뿐이다. 근세조선의 유교도들도 우리민족의 국조를 모시었다고 하나 평양의 구월산 한 모퉁이에 형식상 모시었을 뿐이다. 더욱이 기독교측에서는 형식상일망정 제 민족의 국조를 모시기는 커녕 이를 우상숭배라 배격하고 단군성전 건립을 방해한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은 손님을 모시기 위해 주인을 내쫓는 격이며, 남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남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셔다가 섬기면서 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박절하는 격이다. 이를 유추해석하면 자기의 이익과 부귀영화를 위해서는 국가사직도 무너뜨릴 수 있고, 부모형제라도 쫓아낼 수 있으며, 절친한 친구라도 용서없이 처단할 수 있다는 신앙인 것이다. 그것이 과연 애국적이고 윤리도덕에 부합되는 신앙인가? 석가·공자·노자·예수의 가르침인가? 신앙의 주객전도가 아니고 무엇이며, 정신나간 신앙이 아니고 무엇인가? 더욱이 사람은 돌맹이나 나무를 섬겨도 지성으로만 섬기면 거기에서 신비감을 느끼고 영적 감응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다른 민족의 민족신을 지성으로 섬기고 다른 민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열성으로 배울 경우, 민족의식은 어떻게 되겠는가? 다른 민족은 훌륭하게 느껴지는 반면, 제 민족은 고유종교와 고유철학도 없는 하찮은 민족이라고 스스로 제 민족을 멸시하게 될 것이 아닌가? 곧 우리민족의 사유체계와 의식구조는 자연히 외국화되어 국가기강이 해이해지고 민족의식이 무너지게 될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볼 때, 불교·유교·도교·기독교 등 외래종교측은 너무나 큰 과오를 범하고 있다고 아니할 수 없다. 둘째, 유대민족은 제 민족의 교조(위인)를 가장 위대한 성인이라 숭배한다. 그런데 우리민족의 절반정도는 다른 민족의 교조를 가장 위대한 성인이라 숭배한다. 그것은 제 민족의 국조인 한인·한웅·한검도 석가모니·공자·노자·예수 보다 하위에 있는 존재임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다. 곧 우리나라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위대한 성인이 없었고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제적으로 우리민족은 성인도 하나 배출하지 못하는 미개민족이라 멸시받게 되고, 민족적으로는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스스로 자기민족을 멸시하고 모함하며, 시기하고 질투하게 된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존현과 웃어른을 무시하고 자신만이 잘난체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을 널리 포용하지 못하고 파당을 짓게 된다. 셋째, 유대민족은 신앙의 성지가 곧 자기 나라로서 자기 민족을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이라 교육한다. 즉 유대민족은 종교교육을 통해 민족적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준다. 그래서 유대민족은 세계적인 위인과 유명한 학자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그러나 우리민족의 절반정도인 경우, 신앙의 성지가 다른 나라인 것이다. 곧 기독교인의 성지는 이스라엘(그러나 개신교는 미국에서 전래됐으므로 미국을, 성공회는 영국에서 전래됐으므로 영국을 예루살렘 다음의 성지로 친다)이며, 불교인의 성지는 인도와 네팔이고, 유교인과 도교인의 성지는 중국이다. 그래서 이들 외래종교인들은 이스라엘·미국·영국·인도·중국을 신앙의 성지 또는 신앙의 조국이라 하여 동경하고 선망하면서 그 나라를 순방하고 그 발생지를 순례한다. 그뿐만 아니라 거기에 대대적인 불찰 또는 교회당을 건립한다. 여기에서 우리나라는 신앙의 성지가 아니며 우리민족은 위대한 민족이 아니라는 열등의식을 갖게 되며, 사대주의 의식이 싹트게 된다. 넷째, 유대민족의 교회에서는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가르치고 다른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절대 가르치지 않는데, 우리민족의 불교·유교·도교·기독교 등 외래종교측에서는 다른 민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가르치고 우리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치지 않는다. 예컨대, 불교의 법당에 나가면 반야경·금강경·법화경·화엄경 등 팔만대장경(불경은 대승경과 소승경으로 나뉘어지고, 소승경은 석가세존께서 직접 설하신 법이지만 대승경은 용수보살에 의해 우리나라에서 인도로 전승된 경전이다. 그러나 불교계에서는 아직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만을 가르치고 배우며, 유교의 성균관이나 향교에 나가면 지나족의 삼사(三史; 한서·후한서·사기)와 사서오경(四書五經)과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만을 가르치고 배운다. 도교의 도관에 나가면 지나족의 도덕경·남화경·참동계·황정경 등 도장경만을 가르치고 배우며, 기독교의 예배당에 나가면 유대민족의 역사책인 구약과 신약 등 바이블만을 가르치고 배운다. 그러면서 우리민족의 역사와 사상에 대해서는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는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우리민족의 역사와 사상과 종교에 대해 마치 남의 것을 대하듯 하면서 우리민족의 상고사를 불합리한 신화같이 취급하고, 우리민족의 사상과 종교를 비과학적인 미신같이 멸시한다. 그러면서 신도들에게 사회에 봉사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고 충성하라고 가르친다. 곧 외래종교측에서는 그 교육내용이 교육목적과 불일치되고 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상적인 교육이라 생각하는가? 교육의 주객전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혼없는 교육이 아니고 무엇인가? 한국의 불자와 유생과 목자와 도인 등 성직자들은 정신이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더욱이 기독교의 목자들은 신도들에게 유대민족을 본받으라고 가르친다. 그러면서 유대민족과 정반대의 신앙을 유도하고 교육을 한다. 곧 외래종교측은 한가지 병에 의사마다 다른 처방을 내리고 다른 약을 쓰는 격이며, 고가(高價)의 양약이라 하더라도 그 처방이 병의 증상이나 원인과 맞지 않는 격이다. 그와 같이 우리나라의 불교·유교·도교·기독교 등 외래종교측과 그 성직자들은 국과 민족 앞에 너무나 큰 과오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 논한 바를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유태민족과 우리민족의 종교교육 비교표
그러나 유교·불교·도교·기독교 등 외래종교인들은 종교인이기 때문에 어쩔수 없지 않으냐 하고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그것은 종교지상주의적인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다. 종교인들도 원래 종교인이기에 앞서 하나의 자연인이었다. 자연인이므로 누구이든 민족적 혈통을 지니고 있다. 민족적 혈통은 이 세상에서 목숨이 다될 때까지 불변적이다. 그러나 신앙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곧 가변적이다. 가변적인 것보다 불변적인 것이 우선한다. 따라서 신앙에 앞서 민족이 우선한다. 민족이 우선하므로 다른 민족의 신앙보다도 제 민족의 민족사와 민족사상교육이 우선하고, 다른 민족의 신을 섬기기에 앞서 제 민족의 하나님과 국조를 먼저 섬겨야 한다. 한국의 기독교인을 예로들면, 유태인으로서 기독교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람으로서 기독교를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도 기독교 신앙에 앞서 제 민족의 민족사와 민족사상을 먼저 가르치고 배워야 하며, 여호와를 찬양하고 예수와 마리아를 섬기기에 앞서 제 민족의 하나님과 국조를 먼저 섬겨야 한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유태인으로서 기독교를 믿는다면 당연히 유태의 역사와 사상을 배우고 유태민족의 신인 여호와를 할렐루야 하고 찬양해야 하며, 예수와 마리아를 섬기고 그에세 공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기독교인은 유태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떠한 종교를 믿어도 한국인이라는 민족적 혈통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곧 자기의 주체를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눈박이(비정상인) 사회에 가면 두눈박이(정상인)는 병신취급받고 외눈박이가 정상인으로 대우받는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그와 같이 우리사회에서는 외래종교 세력이 막강함으로써 외래종교에 대한 역사교육과 사상교육은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자기민족에 대한 역사교육과 사상교육은 하찮은 것으로 멸시받고 있다. 그래서 현재의 우리사회에는 불교대학과 유교대학이 있고, 특히 기독교 대학은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 백개이지만(약 800개, 그중 인가대학은 226개, 1995년 현재, 종교신문) 당연히 있어야 할 한국학 대학은 하나도 없으며, 서양사상을 가르치는 철학과는 각 대학에 모두 있어도 한국사상을 가르치는 한국철학과는 성균관대를 제외하면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불교와 유교 박사가 있고, 특히 기독교의 신학박사와 서양철학 박사는 수만명이지만 한국철학 박사는 4천 5백만 인구중에 한 두 사람에 불과하다. 또한 대학 때부터 한국철학을 전공한 전문교수도 전혀 없다. 대학 4년 동안 자기민족의 사상이나 철학을 한 강좌도 수강하지 못한채 졸업하게 되는 학생이 전체의 95% 이상이다. 이에 따라 기독교의 바이블, 불교의 대장경, 유교의 사서오경, 도교의 도장경에 대해서는 잘 알면서도 제 민족의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은 있는 줄도 모른다. 지나의 공자·맹자·노자·관우·장비와 기독교의 12사도에 대해서는 잘 알면서도 환국의 7세 한인, 배달국의 18대 한웅, 단군조선의 47대 한검(단왕)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이러한 교육적 풍토밑에서 어떻게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민족문화를 발전시키며 국가기강과 사회기강을 바로 잡을 수 있겠는가? 더욱이 상대의 민족사와 사상사를 말하면 국수주의자 아니면 민족지상주의자라 푸대접하니 이러한 사회풍토속에서 어떻게 민족정서가 건전할 수 있겠는가? 다섯째, 유대민족은 학교에서는 세계 여러나라의 역사와 종교와 사상에 대해서 배운다. 그러나 교회에 나가면 하나의 신과 하나의 종교만을 신앙하고, 하나의 역사와 사상 곧 자기민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철저히 가르치고 배운다. 그런데 우리민족은 한국계·서구계·인도계·중국계·일본계·아랍계 등 수백개의 신과 종교를 신앙하고, 수십개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치고 배운다. 이는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 형과 누나의 가르침이 다른 격이다. 그러면 그 어린이는 어떻게 되겠는가? 무엇을 어떻게 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할 것이 아닌가? 그와 같이 우리민족은 방향을 못잡고 있는 것이다. 곧 정신분열 내지 철학없는 민족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철학이 없어 이해따라 이합집산하게 되고 교육자도 철학이 없어 조변석개하게 된다.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진리이며 무엇이 옳은 것인지 그 기준이 없는 것이다. 각자 자기의 주관대로, 편리한 대로, 좋은 대로 하면 그것이 정의이고 진리인 것이며, 서로 충돌이 생길 경우 힘쎄거나 다수 쪽이 이기게 된다. 그래서 각 개인은 유력한 우두머리(boss)와 이익집단을 중심으로, 또는 종파를 중심으로 단합할 수 밖에 없고, 개인주의 또는 집단이기주의로 흐를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우리민족은 단결이 잘 안되고 또 단결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사회의 불합리한 점은 모두 민족성 탓으로 돌린다.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단결이 잘 안되는 것도 민족성 탓이며, 시기 질투하고 모함하는 것도 민족성 탓으로 돌린다. 나쁜 것은 모두 민족성 탓으로 돌린다. 4. 우리민족의 종교교육과 식민지 교육 오늘날 우리민족의 교육은 어느 면에서 일제시대 식민지 교육의 연장이라 할 수 있고, 또한 종교교육은 식민지 지배전략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민족의 종교정책은 일제시대 조선총독부가 우리민족을 지배하기 위한 식민지 지배전략과 어떠한 유사성을 지닌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 점을 알아보기로 한다. 첫째, 조선총독부는 우리민족을 일본의 신사(神社)에 나가서 일본의 천조대신(天照大神)과 천황에게 배례하게 했다. 그와 같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외래종교측에서도 우리민족에게 다른 민족의 신과 교조에게 공양하게 하고 배례하게 한다. 둘째, 조선총독부는 우리민족의 역사교육과 사상교육을 탄압하고 일본의 역사교육과 사상교육만을 시켰다. 그와 같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외래종교측에서도 우리민족에게 우리민족의 역사교육과 사상교육을 시키지 않고 다른 민족의 역사교육과 사상교육만을 시키고 있다. 셋째, 조선총독부는 우리민족의 고유종교를 유사종교니 사이비종교니 멸시하면서 타파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와 같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어느 외래종교측에서도 우리민족의 고유종교를 미신숭배니 미개종교니 멸시하고, 불교사찰을 방화하는가 하면 불상을 파괴하고 훼손한다. 넷째, 조선총독부는 우리민족의 상고사를 신화라 부정하면서 단군왕검을 역사적 실재 인물로 인정하지 않고, 평양 구월산의 삼성사(三聖祠)를 헐어버렸다. 그와 같이 우리나라의 어느 외래종교측에서도 우리민족의 상고사를 신화라 부정하면서 단군왕검을 신화적인 인물로 취급하고 단군성전 건립을 방해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단군성전 건립을 못하고 있다. 다섯째, 조선총독부는 우리민족의 성씨를 가내무라·구니모도·야나가와·요시가와 등 일본식으로 개명하게 했다. 그와 같이 한국의 어느 외래종교측에서도 우리민족의 성명을 교명(敎名)이라 하여 마리아·요셉·안나·요왕·요안·요환·세레나데·베드로 등 서구식으로 개명하게 한다. 이상과 같이 우리나라의 외래종교 교육정책이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교육정책과 유사하다. 특히 어느 종교의 교육정책은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교육정책과 그대로 일치된다. 그러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연의 일치라 할 수 있으나 놀랍게도 다음과 같은 이론이 성립된다. 1) 우리나라의 외래종교 교육정책 특히 어느 종교의 교육정책은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교육정책과 일치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어느 외래종교 당국은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와 다름이 없으며, 그 종교지도자들은 일제시대 친일파와 다름이 없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2)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교육이 우리민족의 민족혼을 말살시키고 국가기강을 문란케 하기 위한 교육이었다면, 우리나라의 외래종교 교육도 우리민족의 민족혼을 말살시키고 국가기강을 문란케 할 수 있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그래서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우리나라의 외래종교인들이 일본군에 참가하면서도 독립군에 참가한 애국지사가 몇명이나 되었는가? 거의 없지 않는가? 이와 같이 외래종교 교육은 민족혼을 말살시키고 있는 것이다. 3)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교육이 우리민족에게 독립의욕을 말살시키고 사대주의 의식과 맹종적 노예근성을 심어주어 일본을 우러러 받들고 일본에 예속시키기 위한 교육이었다면, 오늘날 우리나라의 외래종교 교육도 우리민족에게 독립의욕을 말살시키고 사대주의 의식과 맹종적 노예근성을 심어주어 이스라엘·로마·미국·인도·중국 등 다른 나라를 우러러 받들고 다른 나라에 예속시키기 위한 교육이나 다름 없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민족이 남북으로 분단되어 반세기가 흘러도 적극적 통일의욕이 없지 않는가? 이와 같이 외래종교교육은 민족혼을 말살시키고 동포의식을 흐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어느 외래종교측의 과오는 너무나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논리대로 해석하면 어느 외래종교 지도자들은 우리나라가 서구국가 특히 미국의 종교적 식민지로 전락되기를 바라는 격이며, 미국의 하수인과 같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그래서 미국정부나 미국국민이 볼 때, 우리민족은 미국의 심부름꾼 같고 용병(傭兵) 같으며 미개민족 같이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민족은 외국인들에게 절대 좋게 보이지 않고 무시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민족이 국제적으로 무시를 당하고, 3년전 미국 LA교민들이 흑인들로부터 수난을 당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외래종교 교육은 우리나라를 다른 나라의 식민지로 오해받게 하고 국제적으로 망신시키는 교육인 것이다. 이와 같이 외래종교측은 많은 과오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5. 종교교육의 신토불이(身土不二) 그러면 궁극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공자께서 임금은 임금 닮아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 닮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 닮아야 하는 것이다.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 닮지 못하고, 이스라엘·미국·영국·로마(이태리)·인도·중국·일본 사람 닮은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즉 우리민족은 거의가 의식과 신앙에 있어서 외국 사람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람이 아닌 것이다. 한국혼이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유대민족이 유대교만을 믿고 유대의 역사와 사상을 철저히 가르치고 배우듯이 한국 사람은 한국의 종교를 믿고 한국의 역사와 사상을 철저히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역사는 지금부터 약 1만년전 한인의 환국(桓國)시대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그것은 근거가 부족하다 하여 부정하고, 그 이후 한웅의 배달국 시대를 우리나라 역사의 기점으로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역사는 약 6천년전부터 시작된다. 그때는 세계인류가 원시의 미몽에서 깨기 전이다. 그때에 이미 우리민족은 위대한 사상을 성립시켰다. 그 사상은 신선사상이다. 신선사상은 天一·地一·人一 三神一體의 천도를 발생원리로 한다. 그래서 한대민족·열대민족·온대민족 등 온 인류를 발생학적 배경으로 하는 홍익인간 사상이며, 인간의 지닌 기(氣)·심(心)·신(身)를 잘 닦아 모든 사람이 성인군자를 지향하게 하는 이화주의(理化主義) 사상이다. 신선사상은 현대사상의 모체이며 동양사상의 원류였다. 어느 사상에도 뒤지지 않는 가장 위대한 사상으로서 21세기를 지도할 사상이었다. 그러한 신선사상이 외래사상에 의해 지금까지 가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외래종교인들도 이제는 제 나라의 종교와 사상을 배우고 연구해야 할 때에 이른 것이다. 곧 농산물만이 신토불이(身土不二)가 아니라, 신앙이 신토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사상이 신토불이 되고, 사상이 신토불이 될 때 의식이 신토불이 되어 민족의식과 동포의식이 확립되고, 국가기강과 사회기강이 굳건히 되어 세계열강과 대등한 세계화도 이룰 수 있고, 나아가 세계의 지도적 중심국가로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상의 소론을 이해한다면 외래종교측은 다음의 사실을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첫째, 외래종교측은 한국인의 입장에서 외래종교를 받아들이고 신앙해야 한다. 둘째. 외래종교측은 제 종교가 손님종교임을 자각하여 민족종교에 대해 예의를 지키고 주인행세 말아야 한다. 셋째, 외래종교측은 외래종교가 우리 민족을 위해 전래됐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를 인정한다면 외래종교측도 우리 민족을 위해 진정으로 봉사해야 하고, 또 우리 민족을 위해 진정으로 봉사한다면 우리 민족의 역사와 사상과 종교를 받아들이고 연구해야 마땅하다. 따라서 외래종교측은 한인·한웅·한검의 역사 곧 환국사(桓國史)·배달국사·고조선사 그리고 그 사상인 신선사상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연구해야 마땅하다. 아울러 대종교(단군교)와 동학(천도교와 수운교)과 증산도(대순진리회와 태극도 등)와 원불교 등 자생종교를 주인종교로 예우해야 하고 연구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제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종교인의 자세라 생각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제 종교(외래종교)의 사상과 교리만을 연구하고 믿으면서 그것을 제일이라 선전한다면 그것은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과 종교를 무시하는 행위이며, 아울러 제 조상과 국조를 멸시하는 행위로서 반인륜적 반민족적 반국가적 행위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논리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사항을 건의한다. 첫째, 신선사상에서는 우주와 삼라만상의 이법을 간략히 天一·地一·人一의 三神一體(삼신일체)라 표현한다. 그것은 만물이 하늘이나 땅과 같이 존엄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만물의 근본은 같다는 뜻이기도 하며, 우주와 만물이 그러한 원리로 구성됐음을 의미한다. 또한 하늘·땅·사람은 모든 종교의 존경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에 대한 상징물을 제작하여 그것을 최상의 신앙대상으로 함이 마땅하다. 그것은 종교통일의 기초이기도 하다. 둘째, 모든 종교의 교조는 인류를 위해 공헌한 바 크다. 그러므로 각 종교집단은 만성당(萬聖堂)을 지어 모든 종교의 교조들을 모셔야 마땅하다. 그리고 우리민족의 국조인 한인·한웅·한검의 삼성을 제 종교의 교조와 함께 봉안하여 섬겨야 마땅하다. 더욱이 불교측부터 먼저 만성당을 지어 예수를 모시고 대웅전에 자기 민족의 국조를 석가와 더불어 모신다면 아무리 극악한 기독교인이라 하더라도 제 종교의 교조를 모시고 제 민족의 국조를 모신 사찰을 함부로 방화하거나 파괴하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그것은 기독교와 불교의 불화를 예방하는 길이기도 하다. 셋째, 외래종교측에서도 신도들에게 제 종교의 경전과 함께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 등 우리민족의 경전과 우리나라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쳐야 마땅하다. 더욱이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도교·불교·유교는 신선도의 지류로서 원래 우리민족의 고유종교였다. 기독교 역시 신선도의 유파라 추정된다. 즉 모든 종교의 근원은 하나로서 우리민족의 신선사상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그러므로 도교·불교·유교·기독교 등 모든 외래종교가 제 고향으로 돌아온 격이며, 제 고향으로 돌아왔으니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배우고 연구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곧 원시반본인 것이다. 넷째, 기독교대학(신학대학)·불교대학·유학대학 등 외래종교의 각 대학에 배달철학과(한국철학과)와 배달사학과를 설치하여 성직 희망생들에게 우리나라의 철학과 종교와 역사를 가르치고, 도교·불교·유교·기독교 등 외래종교와 배달사상과의 역사적 관계를 연구케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모든 종교가 원시반본되고 한국화될 것이며, 참다운 한국화는 곧 세계화와 동일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다섯째, 불교·기독교·유교·도교·천리교·이슬람교 등 외래종교측은 진정으로 제 나라와 제 민족을 위한다면 제 종교의 대학과 대학원 설립보다도 제 나라와 제 민족을 위한 한국의 역사·정치·종교·철학·교육·문학·음악·미술·체육 등 한국학 전반을 종합적으로 가르치는 한국학 대학교와 한국학 대학원을 세워야 마땅하다. 지금까지의 과오를 반성하는 뜻에서라도 한국학 대학교와 한국학 대학원을 하루 빨리 세워야 할 것이다. 더욱이 고유종교측에는 그러할만한 재력이 없고, 불교측과 기독교측은 남의 나라에까지 막대한 자본을 던지면서 불찰과 교당을 세울 정도이다. 이를 생각하면 자기 나라에서 제 민족을 위해 한국학 대학교와 한국학 대학원을 세우는 것은 너무나 손쉽고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생기면 골짜기마다 불찰만을 짓고, 골목마다 교회당만을 세우는가 하면 기껏해야 제 종교의 대학과 대학원만을 세우면서 제 민족을 위한 한국학 대학교와 한국학 대학원 설립을 싫어한다거나 꺼려한다면, 그것은 동포를 동포로 보지 않고 조국을 조국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곧 반국가적 반민족적 신앙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미워도 내 동포요 싫어도 내 조국이 아닌가? 깊이 깊이 생각해서 불교측과 기독교측부터 솔선하여 한국학 대학교와 한국학 대학원을 설립하시길 간절히 청원한다. 그러면 우선적으로 불교측과 기독교측 사이에 따뜻한 바람이 불고, 각 종교 사이에 이해와 협조의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외래종교측의 이해와 각성과 참여와 협조를 촉구한다. 저자소개 성명 : 안창범(安昶範). 서기 1933년생(호적상 1936년생), 제주도 태생. 학력 : 만학(晩學). 제주대학교 법학과졸(1972). 고려대학교 대학원 교육학과졸 (1978). 경력 : 자영. 제주교육대학 강사. 제주실업전문대학 강사. 제주시 교원단체 연합회 이사. 제주대학교 교수(현재). 상벌 : 제주대학교 학술상 수상(1989). 저서 : 민족사상의 원류(1988). 한민족의 신선도와 불교(1993). 하나님 사상과 불교의 기원(1994). (역술)배달성전(1995). 잃어버린 배달사상과 동양사상의 기원(1996) 논문 : 花郞道의 外來 道·佛·儒 三敎受容說 批判. 古神仙敎의 宗敎的 體系. 석가불교의 기원과 한국의 신선도. 中國儒學의 淵源과 東夷 등 20여편. 연락처(학교) :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윤리교육과 제주도 제주시 아라동 1번지. 학과 전화 (064)54-3260. 연구실 전화 (064)54-3262 (자택) : 제주도 제주시 일도2동 1045의 8 전화 (064)52-4906. 전송 (064)21-7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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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미있는 자료네요. 도서관에 가면 한번 찾아봐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