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고속버스터미널은 정말 작다.
전국의 모든 지역을 돌아다녀도 춘천만큼 작은 고속터미널을 가진 곳은 없을 것이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정식 건물에서 영업을 해본 적이 없는,
기구하기 짝이 없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춘천고속버스터미널은 공지천변 온의동 길가에 조그마한 컨테이너에서 출발했다.
1989년부터 2007년까지 시의 정식 허가 없이 영업을 했다가,
2007년에 시외버스터미널 뒤편에 조그만 임시 터미널을 만들어 지금에 이른다.
하지만 중간에 시외버스터미널과 하나로 합쳐질 기회가 있었다.
2002년에 시외버스터미널이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을 때,
둘을 통합하여 종합터미널로 영업을 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대구행이 중복되는 이유로 서로 간의 알력다툼이 발생해,
시외버스 회사들의 압력에 못 이겨 통합이 무산되었다.
터미널 소유주의 노선 포기, 보유 노선 2개.
아무리 봐도 위태로운 터미널이 지금까지 살아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이 남겨둔 메시지를 찾고 싶다.

춘천고속버스터미널은 찾아가기 매우 까다로운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자동차가 자주 다니는 대로변과 멀찌감치 떨어진 골목길에 있기 때문이다.
시외버스터미널 또는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찾아가려면,
이마트 주차장 쪽으로 들어온 후 직진하여 골목길을 헤집어야 한다.

주택가 한복판을 걷다 보면 왼편에 조그만 오솔길이 나타나는데,
오솔길을 걷는 도중 오른 편에 녹이 슨 철계단이 나온다.
바로 그 계단을 밟으면 춘천고속버스터미널로 갈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잘 눈에 띄지 않는 좁은 길이 터미널 정문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오솔길을 걷다 보면 왼편으로는 커다란 이마트 건물과 함께 수많은 버스가 주차된 모습이 보인다.
저곳이 바로 춘천시외버스터미널 하차장 및 주차장으로,
이마트까지 포함한 거대한 터미널 부지가 바로 옆에 있다.

걸어온 곳을 뒤돌아보면 이러한 모습이 펼쳐진다.
개발이 제대로 되지 않은 시내 끄트머리에,
춘천고속터미널 간판을 단 조그만 임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말해주지 않으면 길을 잃기 딱 좋은 위치에 전혀 터미널 같지 않은 건물을 가지고 있으니,
외지인들은 물론 지역 주민조차도 춘천에 고속터미널이 따로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처음 건물이 지어졌을 때보단 개발이 다소 이루어져,
주변이 온통 밭이었던 10년 전과는 달리 지금은 빌라촌이 들어서 황량한 느낌은 조금 덜하다.

이곳을 처음 찾은 건 꼭 10년 전이었을 것이다.
생각도 못 했던 광경에 잠시 충격을 받고 넋이 나간 게 기억이 난다.
그때나 지금이나 건물은 그대로지만,
그새 녹이 벌겋게 슨 기둥과 쩍쩍 갈라진 승차장을 보니 세월이 흘렀음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건물이 지어진 시기가 2007년 7월이었고, 처음 기록을 남겼을 때가 2008년 12월이었으니,
이곳이 그동안 바뀌었기를 기대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똑같은 물건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예컨대 TV나 에어컨과 같은 물건은, 지금은 찾기 힘든 고물이지만 여기선 버젓이 사용되고 있다.
새로운 신기술이 낡은 물건이 되는 건 한순간이라는 사실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첫 방문 당시 이곳은 개장한지 2년이 채 안 된 따끈따끈한 건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낡디낡은 간이 터미널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터미널 기행을 다닌 지 오래되긴 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면서,
지금은 비판받는 오랜 건물들도 예전에는 각광받는 최신식 시설이었을 거라는 생각에
세월의 무상함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춘천고속터미널 노선은 단 두 개뿐으로, 첫 개장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사실이다.
다만 10년 전 그리고 7년 반 전의 시간표와 비교해보면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동대구행이 11회에서 9회로 우등 2회가 감소했으며 광주행이 전 차량 우등으로 바뀌었다.
또한 요금이 24,200원(대구 우등) / 16,300원(대구 일반) / 32,300원(광주 우등)
→ 25,500 / 17,200 / 34,100 → 26,600 / 18,000 / 35,500원으로 올랐다.
2019년 3월부터 요금이 다시 올랐으니 지금은 더 비싼 값을 주고 표를 사야 할 것이다.
심지어 인상폭이 높아서 2008년 → 2018년 차이만큼의 요금이 한 번에 올라간다.

심지어 변화가 없을 것 같은 소요시간도 다소 바뀌었다.
동대구까지는 3시간 40분 → 50분으로, 광주까지는 4시간 50분 → 30분으로 바뀌었다.
소요시간이 실제와 달라서 많은 민원이 들어와 바꾸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노선이 광주와 대구 단 두 개가 전부이고 그나마도 횟수가 많지 않아서,
첫 방문 당시에는 조만간 사라지지 않을까 우려를 했었다.
물론 중간(2010년)에 동부고속이 대원고속(KD그룹)으로 노선을 넘기는 사태가 벌어졌고,
진짜로 터미널이 폐쇄된다는 소문이 돌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고속터미널은 꿋꿋이 유지되고 있다.
심지어 대구행은 시외버스와 겹치고, 시외버스의 접근성 및 횟수가 더 좋음에도 그렇다.

또한 당시엔 고속도로 개통 이후 서울행이 생길 수도 있다는 기대를 얼핏 했으나,
이미 존재하는 강남행의 존재 및 시외버스 업체의 견제로 지금까지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지방 노선 두 개에 의존하는 춘천고속터미널이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위태롭게 보이는 임시 터미널이 지금까지 살아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고정 수요가 탄탄하다는 점 말고는 그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아직 찾기 못한, 터미널이 남겨둔 또다른 메시지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그 메시지가 무엇일까, 앞으로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한번쯤 파헤쳐보고 싶은 호기심이 들게 하는 의미 있는 공간인 것 같다.
첫댓글 순천행이 개통 초기에 고속버스터미널을 이용했다죠ㅎㅎ
시외버스터미널로 옮긴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Maximum 당시 운수회사간 협의가 안 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제는 고속터미널이 시외터미널과 통합했으면 좋겠어요 고속터미널이 너무작고 외진데 있다보니 찾는사람들이 어려움이 있을거같애요
동의합니다. 찾기 너무 불편하고 노선도 별로 없는데 굳이 지금처럼 운영해야 할까 싶어요.
강원고속과의 이해관계 때문에 통합이 어렵습니다
맥시멈님 글을 애독하면서 시외버스 터미널을 노상정류소 같다고 한 적은 있었는데 고속터미널을 그렇게 표현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당장 시외터미널과 통합이 이루어져도 이상할게 없어보이는데 업체들 간의 알력다툼이라는게 참 무섭긴 무섭습니다. 저 노선들을 시외터미널로 옮겨도 고속 노선이 시외 노선들에 해를 입힐 수준은 아니라 보이는데, 업자들 입장은 또 다른게 있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노선이 유지되는 걸 보면 고정승객이 최소한 존재한다는 뜻으로도 받아들여지는데 수요는 어느 정도인지도 궁금합니다. 저렇게 터미널에 버스가 안 보이는 곳도 드물지 싶은데 그럼에도 영업을 계속하는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알력다툼이 없었다면 애초에 지금의 고속터미널이 생기지 않고 통합으로 운영되었겠지요. 통합에 반발한 시외업체 및 두 노선에 투입된 회사가 각각 3~4개씩이니 이해관계를 맞추는게 어려웠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하루 평균 이용객이 100~400명 정도라더군요. 기관마다 말이 달라서 넣지는 않았습니다.
1991년경에
춘천고속터미널에 3개노선이 있었던걸로 기억됩니다광주.부산.대구
그런데 부산은 시외터미널로 이전했군요
이전한 것이 아니라 폐선되었죠. 당시 중앙고속과 천일고속이 이 노선에 참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부산 노선은 아주 오래전에 폐선되었나 보군요. 있었다면 경쟁 체제가 아주 재밌게 돌아갔겠습니다 ㅎㅎ
@소망의 바다 그렇군여
혹시 폐선한 이유가 있나요?
@소망의 바다 동부고속도 운행한걸로 기억합니다.
맞아요
경춘국도 중부고속도로 통해서
부산노선이 운행했던걸로 기억합니다
천일고속 한번 탔던적이..
그때는
컨테이너 터미널이전에
고속터미널 이 또 있었죠
위치는 현재 이마트~오일뱅크주유소
그쯤 이었어요
@천둥 중앙고속도로 개통 전이라면 6시간 30분은 족히 걸렸겠네요~
@이박사 죄송하게도 거기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소망의 바다 네알겠습니다^^
90년도 초반에 군생활하면서 이용할때는
나름 군인들 수요가 부산.광주.대구노선 다 괜찮았던거같았었습니다
@천둥 맞습니다. 상세루트는 46번 경춘국도~45번 국도~팔당댐~경안IC~중부고속도로 순으로 운행했었습니다.
일요일 오후 노선은 경춘국도의 정체를 그대로;;;느끼며(?) 다녔었습니다.
고속터미널이 따로 있었군요ᆢ
양구로 가면서 갈아탔었는데
가보고 싶지는 않군요~~^^
양구에서 군생활을 하셨나보군요 ㅎㅎ
춘천 출발 대구로 가는 경우에는 고속버스가 경쟁력이 있는 상태입니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시외버스도 춘천에서 출발해서 무정차로 대구 북부와 대구 서부로 갔지만 현재는 홍천, 횡성, 원주를 거쳐서 가다보니 시외버스는 요금도 비싸고 소요시간도 거의 1시간 가까이 더 걸려서 시외버스는 홍천까지 거의 빈 차로 가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홍천 횡성 원주 경유로 바뀐 이유가 있을까요?
@Maximum 이전에는 시외버스는 대구행만 춘천-(무정차)-북대구, 홍천-횡성-원주-북대구로 운행하였는데 차량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려고 두 계통을 통합한 셈인데 정작 춘천 출발 및 도착은 중간 경유가 많아지게 되어서 고속버스에 비해 불리해져 버렸죠.
@일인승무 상세히 말씀해주시니 이제서야 정확히 기억이 납니다. ^^ 춘천 / 홍천-횡성-원주 계통을 합친 걸로 몇 번 얘기가 오갔었죠. 운행사 입장에서는 관리가 수월하겠지만, 가뜩이나 동대구로 수요가 쏠리는 추세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겠네요.
대구에서 춘천갈때마다 시외보다는 고속을 이용했습니다 중앙고속도로 개통전에는 정말 힘들었네요 ㅜ.ㅜ 컨테이너에서 발권하고 길가에서 타던게 생각납니다.
중앙고속도로 개통 전 경로를 들으니 고속도로 개통이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