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선 귀한 정혈요법을 체계화하여 만민에게 도움을 주신 저자 곽종국 先生님과 또한 기도중에 이런 섭리를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
나 자신이 수많은 체험을 한 것이 더더욱 하느님의 섭리로구나 생각이 들고 주변분들에게 물질은 주지 못해도 그분들 주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선물을 주게되니 무엇보다도 기쁘다
그래서“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신 것 같다. 왜냐하면 마음에 풍요로움이 이렇게 강퍅했던 자신을 변화시켜 주었으니 하는 말이다. 이기주의자에서 이타주의자가 아마도 쉽지는 않고 주변에서 극히 보기 어려운 현실일지도 모른다
2. 나는 1969년 서울에 있는 K대학의 법과 4년을 전공후 사법시험을 준비하다가 평범한 공무원 생활을 하였고, 그 당시부터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정통 침술 노하우를 익혔던차에 혹여나 공무원 생활하면서 침구사법 폐지된 것이 혹 부활되지 않겠나 생각이들어 많은 경륜과 경험있는 분을 접하게되어 그 분들로부터 개인적으로 사사를 받아왔었다.
주지의 사실로 우리나라에서 존속하던 침구사법 폐지지 결국 돈과 연결되는 한의사 협회에서 박정희 대통령 재임시절 1960년대초에 폐지가 된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것이다.
일단 우리나라의 고유의 선진들이 사용하던 정통 침술을 체계화 하다보면 기회가 오겠지 하며 온갖 좋은 장점을 받아들여 노-트 하기 시작하는 과정에서 청와대를 드나드시는 정영진 박사(동양에서 침구학박사 3명 중 한 분)를 만나 그분이 운영하던 방배동소재 기독한의원에서 3년간을 사사 받으면서 맥진법을 터득하였고 의학박사나 한의원들 약사등 아무런 도구없이 진맥을 잡아 고치는 내기도 한바 있는데 아무도 당해내는 이가 없음은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아무튼 나는 슈바이쳐는 못되지만 우리나라의 김성배 목사님 말없이 빛도없이 묵묵히 무료봉사하는 분들을 보아서인지 나도 여러 조건 여건 따지지 말고 현실에서 남에게 도움만 된다면 하는 우직한 뚝심으로 오늘까지 살아오다보니 그 노란 자리였던 공직생활에서도 속칭 바보처럼 생활해 온 것에 어느 때는(물질로 힘들 때, 특히 가족한테서 눈길을 받을때) 느낌을 갖는다.
깨끗한 돈을 벌 수는 없을까 하여 결국은 1983년도 3월경 공직생활을 접고 사업을 하다보니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아니했다
3. 우리집의 家訓은 “하면된다+나도할수 있다=하니까 되더라” 이기에 사업을 긍적적이며 적극적인 마인드로 계속 무리하며 신경을 써서 진행하다보니 건강에 疎忽했던 나는 그렇게 自負心과 자긍심 그리고 건강에 자신을 갖었던 나로서는 2004년 9월 초순경부터 신체에 이상한조짐이 즉 적색 불이 들어온 것을 직감했다
그 증상이 내가 나자신을 맥을 짚어봐도 心臟과 血液 순환기 계통이 이상있는 느낌이들어있던차에 매일 오전 출근시간이되면 (08:00~09:30사이)앞 가슴이 묵지근하며 은근히 조여
오며 사정없이 바늘로 찌르듯이 통증이오며 어지러워 自家運轉하는 나는 차를 한쪽으로 駐車해놓고 늘 소지하고 다니던 사혈침으로 노하우 經絡지점에 사혈침으로 수백 번 찌른 바, 온통 앞가슴이 피투성이가 되곤하여 10~20여분후면 괜찮아지는 현상을 겪으며 시술했지만 이것은 아니로구나 마치 김일성 주석이 이병으로 갔다고 하더니 이렇게 무서운 병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드라마에서도 허준의 스승도 이병으로 25분만 지나면 그중요한 역할을 하는 심장이 썩어져서 수술불가, 회생불가. 돈 있는 이들은 가슴을 절개하여 인공심장 이식 수술을 하지 아니하면 죽는다는 병인 것이었다
4. 나의 현실은 어떤가 인공심장 수술받을 입장이 되지못함을 누구보다 잘아는 나는 최선의 방책은 빨리 알아서 할려하니 부득이 사업장 근처인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소재 길병원을 찾아가 심장쎈터에 접수를 해놓고 전문의와 상담하니 협심증~ 심근경색 가능성이 있다하여
바로 입원조치하거나 풍선 시술방법을 하자는 것에 올것이 왔구나“병에 걸려 죽는다” 가족은 어떻하라고 이많은 사업은 어찌하라고 곰곰이 생각에 생각을 하여도 우선 살아야“꿈”을 이룰것이 아닌가!
이때서야 나 자신을 직시하게 되어 “세상에서 가장 所重한 나자신”을 돌이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병원 심혈관쎈타에 접수를 하여 담당교수가 연태진 박사가 되어 照影촬영 결과 상담하니 잘왔다 하면서 그런데 병실과 예약이 많아서 입원 수술하려면 상당수일을 기다려야 한다며 우선 설하제를 처방해주면서 심하면 헬리콥터라도 이용해야 한다며 30분 이내 도착 절개수술을 해야 生命을 건진다는 것이다
병원 근처에 방을 얻어 있기가 그렇고 해서 병원과 인천 사이의 거리는 결국 내 생명을 건질수 있는 거리는 아닌 것을 알면서 설하제 20여 알에 의존한체 집으로 올 수밖에 없는 처지를 지켜보던 연태진 교수는 안스러워하는 모습이 역역한 것을 보구 요즘세상에 저런 의사도 있구나 하며 집에 돌아와서 오후 3시경 과일 간식을 하는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심혈관쎈터 수간호사라며 빈방이 나왔다고 연태진교수 지시이니 입원절차를 속히 밟으라는 연락이 와서 2004년9월30일 입원, 모든 검사 마치고 2004년9월31일 시술을 받는 과정을 나 자신이 화면을 보며 심장에서 3가닥으로 가는 동맥이 막혀 스텐레스를 3개를 내 가슴속(동맥속)에 넣는 것을 지접 보았던 것이다.
발병증상 후 25분 이상이면 심장이 썩는다는 것은 이 체험을 한 사람만이 알 것이다. 그 유명했던 코메디언 김형곤씨의 죽음을 보구 얼마나 무서운 병인가. 그가 돈이 없었겠는가?
그런데 그는 그 시간대에 실기를 하여 결국 타계를 한 것을 보구 참 안됐다. 저런 사람이 왜 자연정혈요법을 몰랐을까 왜 몸의 체중만 빼려했을까
~ 중략 ~
그후 웬일일까 위에서 이야기 했듯이 2006초 나의 친분이 두터운 권상열씨라는분이 나의 公職生活과 正統鍼術을 배워 無料施術 봉사하는 것을 보아오던 분에 의하여 230여만명 되는 消費者 동아리 모임에서 信用度가 있는 분이며 敎會 성가대에서 봉사하는 분인데 자기한테 이상한 메일이 들어와보니 英語先生이 체계화시킨 자연정혈요법 이라고 하는데......
마치 성서와 관련된 문구등 믿음성이 보이니 한번 검토해 봐 달라는데 벌써 造物主께서는 예비하시고 섭리하신 듯이 자연정혈요법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다 나는 본 싸이트를 면밀히 검토해보니 우선 간단명료하다. 그리고 구김살이 없다.
經費가 그리 크게 들지 않고 實用的인 저자의 소탈하고 良心的인 소위 냄새가 직감적으로 풍기어 즉시 해당敎科書를 국민은행 입금계좌로 2006.3.10 입금 조치하고 궁금히여기던 교과서가 소포로 到着됨과 동시에 열심히 공부를 해들어가다보니 역시 先親으로부터 물려받았던 정통침술 노하우와 연결되는 部分이 많아 교과서대로 시술을 해보니 정혈요법 치료사례와 같이 적중한 몇가지중 소개하면
첫째, 나의 정통 자침질로도 해결되지 않았던 오십견이 해결되었고, 중부 윗부분(사혈부위)
둘째, 나의 손목 윗부분 관절 부분이 늘 컨디션이 안좋거나 날씨가 비올듯할 때 묵지근하며 뻐근한곳 즉 국소에 정통침 금침 은침을 놓아도 그리고 쑥뜸을 떠 보아도 해결 되지 않던 것이 자연정혈요법 교과서 대로 해당부위인 국소에 건부항을 걸어놓고(1~2분) 새까맣게 올라온 부위에 5일간격 3회정도 시술하니 3일정도 후 부터는 그 불쾌한 묵지근함 뻐근함 등이 현재는 재발되지 않고 완치가 된 것이다
셋째, 나는 허리 요통이 심한 것이 젊어 유도를 할때 다친 현상이 계속적으로 영 해결되지 아니하여 이 역시 몸건강 상태가 좋지 않으면 뻐근하며 타인이 보면 꾀병한다는 것이 바로 요통인 것을 당해보지 아니한 사람은 모를 것이다.
특수침인 금침과 은침을 계속 자침하여 시술하면 그때만 잠시 괞찮다가 또 재발하고 하여 골머리를 앓았는데 해당 국소에서 어혈을 교과서대로 뽑아내니 거짓말같이 치료되었다면 누가 믿을까? 체험자만이 알 뿐이며 시술받아 치유된 분만이 알 것이다.
내 나이 6학년 3반 저자 곽종국 선생님께서 이를 개발하고 체계화시켜 여러 회원 자격사 주변 분들에게 供給해 주심은 대단하고 위대한 업적이라고 나는 이야기하고 싶다. 나의 주변사람들에게 좋은 일하며 또한 그 사람들에게서 시너지효과를 얻을뿐만 아니라 인류의 生命 延長하는데 얼마나 공헌했는지를 훗날 證明되리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교과서대로 100%를 놓고 자기 나이 %가 어혈이다. 나는 결국 63%가 내 몸속에 있다는 것에 중시를 하고 수차례 자연정혈요법을 원칙대로 시술하니 주변 사람들이 나를 상당히 젊어졌다고들 한다.
넷째, 더욱 신기한 것은 2005년도 인천시 부평구 부평동소재 인광 神經外科에서 X-ray를 찍어본 한00(58세)라는 분이 꼽사가 되는 병이라고 진단하여 人生에 있어서 삶을 完全히 抛棄하고 실망함을 보고 X-ray가 잘못 될 수도 있으니 지방 의사보다는 대한민국에서 最高 權威가 있는 서울대학교 醫科大學 病院을 소개하여 정밀 검사를 류마치스과 담당 최효진 교수가 심하면 곱사도 될 수 있지만 꾸준히 투약하며 鬪病生活을 일생동안 하여야 한다고 했단다. 또한 약이 독하니 위장에 지장이 많이 온다고 하여 걱정하며 투병 생활을 한다 하기에 그러면 등뼈가 굳을 수 있으며 그 병명을 구지 붙인다면 “특발성 각하증”이라고 한단다.
그런 상황을 보고있던 나로서는 같은 교회의 信徒이기 때문에 慰勞를 하며 지금증세가 언제부터 있었느냐고 했더니 2004년 11월경 交通事故로 목뒤에 많은 통증이 있어 인천 구월동소재 길병원에서 물리 치료를 수없이 받아 괜찮았다가 그후 등뼈 즉 영대라는 혈 즉 대추(목 뒤 쑥 나온 뼈)에서 7번째 우측 옆으로 큰 돌덩어리가 매어 달린 듯 하고 상체 자체를 스트레칭도 할수 없는 狀況이었다.
따라서 내가 도움 줄 수 있는 것은 물질도 아니고 전문의도 아니고 하여 침은 정통침술을 배웠지만 현행법 즉 의료법에서는 불법 의료행위 돌팔이 신세 이지만 용기를 갖고 신앙심으로 慰勞를 하여 주면서 요즘 전국과 전세계 인류에게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자연정혈요법을 소개하며 시술권면에 들어가자.
나의 건강에 대하여 팔아픈 것 허리의 고통 오른쪽 손목 심장 시술 후 얼굴 좋아지고 요즘 그전 증상에 대하여 묻기에 다 해결됐다 하니 자연스럽게 자연정혈요법 치료에 시술 동의 하게 되어 먼저 신장혈에서 교과서대로 어혈을 뽑아보니 나도 시술을 받던 자매도 놀라울 정도의 어혈이 많이 나왔고 해당 국소에서도 역시 많은 어혈이 나왔다.
그후 5일정도 경과하여 시술할 때즘 전화통화를 하니 물론 또 시술하기로 했고 이제는 그 아프던 통증이 많이 없어지고 뒤로 일부 스트레칭이 된다는 것이다. 이 신기하고 오묘한 것에 감사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다.
인천부평구 소재 인강 신경외과나 그 유명한 대한민국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병원 류마치스과에서 진단내려 평생을 약과 투병생활한다는 것을 벗어난 장本人 및 시술 한 나로서는 그것도 근1년만에 완치가 된 것이다
이때가 내가 한참 自然精血療法에 심취해 있을 때의 일이고 나는 있는 그대로 그 머나먼 대구를 향하여 제1회자연정혈 요법 자격사 2급에 합격 됬을 때가 2006년 9월7일 시험일이다.
또한 수많은 나의 주변 분들이 특히 그 중에 혈압이 그 높던 분들이 위에서 이야기했던 “영대”라는 위치에 교과서대로 사혈하니 85%정도 치료되는 것을 수없이 본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집에 전자 혈압계로 測定하는데 220(최고)120(최저)되었던 분이 최저혈압 90 최고혈압 140 정도로 치료됨을 목격한 것이 수없이 많다.
그 후의 나의 삶은 앞서도 표현 했지만 이기주의 삶에서 이타주의 삶의 자세로 바뀐지 오래됨은 이 자연정혈요법을 만나게 된 동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날마다 내 주변 분들에게 명함을 製作하여 심장병 그리고 신장이 안좋은 분들에게 저의 친목 그룹과 동아리분들에게 소개와 싸이트를 열어 들어 가보라 권면한다. 오늘도 나의 每日目標 5명이상 에게 이 좋은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있다.
따라서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닥터 월랙 강연책자“죽은 의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권하며 자연정혈요법 교과서를 자긍심을 갖고 권하고 있다. 機會가 된다면 다른 有名한 資格사들이 발표한것처럼 어느硏修會에서 發表할 계기가 된다면 수많은 體驗과 사례들을 발표할 계획이며 (現在는 교회신앙 간증식으로 함) 自然精血療法을 廣告할 계획을 연중행사로 잡고 있는 것이다.
자연정혈요법 체험수기
참 빛 연 수 원
원 장 박 천 서
(010 - 9419 -6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