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와사상>, 2016년 봄호.
비정규직 시대의 노동시
맹문재
1.
‘아사히글라스 하청 노조’1)를 키워드로 삼고 포털 사이트 다음(daum)에 검색해보니 총 74개의 뉴스 기사가 뜬다. 날짜는 2015년 6월 1일부터 2016년 1월 21일까지이다. 일본에 본사를 둔 아사히글라스는 경북 구미 4공단에 입주해 있는 세계적인 유리 제조업체이다. 이 회사의 하청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결성으로 인해 겪고 있는 상황은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아사이글라스 사내 하청 노조는 2015년 5월 29일에 결성되었다.2) 노조위원장은 차헌호 씨이고 참여한 노동자 수는 140여 명이다. 구미의 제조업 공장에서 처음 생긴 일이어서 다른 회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었다. 아사히글라스 사내 하청 노조가 결성된 이유는 최저 임금에 잦은 정리해고도 있었지만 사용자가 규정 위반을 들어 마음에 안 드는 하청 작업자에게 감시용 조끼를 입혀 모욕하는 등 비인간적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다른 작업자의 경조사에 하청 작업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1인당 1만원씩 급여에서 공제해 회사가 주는 것처럼 전달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 아사히글라스 하청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한 근본적인 이유는 임금이나 고용의 문제보다도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 싶어서였다. 차헌호 노조위원장은 4월 13일 회사 측에서 16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불러 권고사직을 요구했는데 거절하자 부당한 인사 발령을 내려 그에 맞서 노조를 만들었다고 구체적으로 밝혔다.3) 이와 같은 상황은 1970년대의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기에 놀라움을 준다. 가령 조세희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노동자들이 원하는 직장은 임금을 많이 주는 곳(8.4%)이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곳(19.1%)이 아니라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는 곳(71.6%)이었는데,4) 그와 같은 바람이 아사히글라스 사내 하청 노동자들에게도 여전한 것이다
6월 15일 아사히글라스 사내 하청 노조와 회사 쪽과 노사협상에 들어갔다.5) 차헌호 노조위원장은 비정규직은 입사 해수와 상관없이 최저 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리해고가 잦고 막말, 욕설, 모욕 등이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조와 회사는 3차례의 교섭을 했는데,6) 노조는 시급 8천 원과 호봉제 도입을 주장했다. 그동안 하청 노동자들은 평일 3교대와 주말 2교대로 일하고 상여금과 기타 수당을 합쳐 220만 원 정도를, 다시 말해 주당 70시간 이상 일하고 원청 노동자의 60% 수준의 월급을 받았으므로 노조의 주장이 과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회사는 노조의 요구 사항을 수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근로 계약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7) 계약 기간이 12월 말인데도 불구하고 7월 31일부로 작업 물량의 감소를 사유로 들고 계약을 해지한 것이다. 하청 노동자들은 노조를 설립한 지 1달 만에 실업자가 될 위기에 처해졌다. 차헌호 노조 위원장은 사내 하청업체 3곳 중 노조가 조직된 지티에스와의 도급 계약만 해지되었기 때문에 노조에 대한 원청의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7월 2일부터 회사 앞에서 천막 농성에 들어갔다.8) 그리고 7일 구미시청에서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9) 아사히글라스가 구미시로부터 50년간 토지 무상 임대와 5년간 관세, 법인세, 지방세 전액 면제 등 혜택을 받고 하청 노동자들의 최저 임금, 장시간 노동, 강도 높은 노동 등으로 연평균 매출 1조원과 7,200억 원의 사내 유보금을 보유하고 있는 사실을 알리고 하청 노동자의 해고가 부당함을 지적한 것이다.
아사히글라스 사내 하청 노조원들의 농성이 장기화되자 정치권이 나서기 시작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에 소속된 우원식, 이학영, 진선미, 장하나 의원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내 하청 업체의 노동자들에 대한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을 철회하라고 아사히글라스에 촉구했다.10) 상황이 이와 같이 확대되자 아사히글라스는 공장의 정문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해고 노동자들을 업무방해로 고소했다.11)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우원식 위원장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장하나 위원은 기자회견에 이어 해고 노동자들의 농성 현장을 방문했다.12) 아사히글라스 하청업체 도급 계약 파기는 불공정한 거래 행위라고 지적하고 구미시의 관계 공무원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또한 9월에 열리는 국정감사에 남유진 구미시장을 증인으로 불러 협약 내용대로 아사히글라스를 관리하고 고용을 확대하고 근로자의 처우를 개선하는 행정을 했는지 따지겠다고 했다. 국정감사장에 하라노 다케시 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해 외국 투자기업으로서 혜택을 누리면서 불법적으로 노동자를 대량으로 해고한 사항에 엄중히 묻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 후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사히글라스의 사내 하청 노동자들을 무단으로 계약 해지한 것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을 위반한 행위라며 국내연락사무소(NCP)에 진정을 제기했다.13) 또한 녹색당은 아사히글라스 사내 하청 노동자의 해고와 탄압 문제를 세계 녹색당 연합에 연대 요청을 했다.14)
이와 같은 정치권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구미시는 아사히글라스 사내 하청 노동자 해고는 권한 밖의 일이라고 소극적으로 대응했다.15) 아사히글라스와 체결한 협약서는 투자 유치를 할 때까지이므로 이후의 일들은 법률에 따른다고, 즉 아사히글라스와 하청업체인 지티에스(GTS)와의 문제이므로 구미시가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와 같은 구미시의 변명은 비정규직 지원 조례 제정과 기업의 인권 · 노동 책임을 강조한 국제기구인 UN글로벌콤팩트에 가입했으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모습이다. 행정 관청이 시민들의 문제를 외면하는 것 자체가 모순인 것이다. 그리하여 아사히글라스 사내 하청 노조와 시민사회단체는 사태 해결을 위한 범시민운동을 구미시에 맞서 전개하고 나섰다. 4만 명을 목표로 시민 서명 운동을 전개해 18일까지 1만 5천여 명의 동참을 이끌어낸 것이다.
아사히글라스 사내 하청 노동자 해고 문제는 8월 24일자 『경향신문』의 사설에도 등장했다. 고용노동부가 사용자의 편에 서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사이 노동법의 기본 질서가 무너지는 현실을 아사히글라스 사내 하청 노조의 해고를 비롯해 동양시멘트, 대만계 기업인 하이디스의 경우를 들어 비판한 것이다.
아사히글라스 사내 하청 노조원들은 9월 5일 ‘연대 한마당’을 열었다.16) 해고된 노조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전국의 사내 하청 노조원들이 모여 연대 문화제를 개최한 것이다. 하청 노동자들이 겪는 노동 착취와 임금 착취를 밝히고 해고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려는 행사였다. 아사히글라스 사내 하청 노조가 설립된 지 100일, 해고된 지 65일이 되는 날이었다.
10월 1일부터 아사히글라스 하청 노조에 관한 국정감사가 열렸다.17)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부산지방고용노동청 국정감사장에서 하라노 다케시 아사히글라스 대표, 김재근 아사히글라스 본부장, 차헌호 아사히글라스 사내 하청 노조 위원장 등을 증인으로 세우고 우원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이 위법 행위를 따졌다. 하라노 다케시 대표는 국정감사장에서 일방적인 계약 해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와는 다른 답변이어서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하라노 다케시 대표를 위증죄로 고발했다. 그렇지만 아사히글라스 사내 하청 노조원들의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이렇게 되자 아사히글라스 사내 하청 노조원들은 5일부터 구미시청 앞에서 천막농성에 들어갔다.18) 노조원들은 구미시가 아사히글라스에 특혜를 주었으므로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한 것이다. 이에 구미시 노사민정실무협회는 13일 아사히글라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간담회를 열었다.19) 한국노총 구미지부, 고용노동부 구미지청, 구미상공회의소, 구미시의회, 구미시민사회 등 총 10개의 단체에서 아사히글라스 본부장, 정재윤 지티에스(GTS) 사장, 차헌호 노조위원장을 차례로 불러 질문하는 방식이었다. 이미 알려진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수준이어서 실질적인 성과는 없었다.
그에 따라 아사히글라스 사내 하청 노조원들의 구미시청 앞 천막농성 또한 장기화되기 시작했다. 한 노동자는 남유진 구미시장에게 대화를 요구하다가 시장의 차량에 부딪혀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20) 구미시청은 노조원들이 천막농성장에 당겨쓰던 전기를 끊고 시설물을 철거하라고 요구했다.21) 1차 교섭에서 회사 측이 금전적인 보상을 제안했지만 노조는 고용 보장을 요구하며 거부하자 구미시청이 태도를 바꾼 것이다. 그리하여 아사히글라스 사내 하청 노조가 시청 앞에서 어깃장을 부리는 행동으로 인해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마련했다.22) 또한 시시티브(CCTV)로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아사히글라스 사내 하청 노조를 감시하기 시작했다.23) 구미시청은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장소여서 설치했다고 해명했지만 아사히글라스 사내 하청 노조를 표적 감시하기 위한 것이라는 혐의가 짙기만 하다.
아사히글라스 사내 하청 노동자들의 해고 문제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 회사는 지속적으로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탄압하고 있는데 구미시청은 형식적으로 관심을 보이다가 급기야 아사히글라스의 편을 들고 있다. 정치권 역시 야당만 다소 관여하다가 그만두었다. 언론사도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시인들이 아사히글라스 사내 하청 노동자들을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것이 지극히 필요한 상황이다.
2.
늦은 밤 집에 들어오니
아내가 우편물 한 묶음을
한심하다는 듯 내놓는다
종로경찰서 영등포경찰서 서초경찰서 남대문경찰서 서울중앙지법
골고루 다양한 곳에서 여섯 통의 소환장이
한날한시에 와 있다
담합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이럴 수가……
한 장은 기륭전자비정규직과 함께 을지로입구 사거리에서 붙었던 날
한 장은 쌍용차 해고자들과 대법원 앞에서 한번 붙었던 날
또 한 장은 LGU+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벗들과 함께 국회 앞에서 한판 하던 날
또 한 장은 두 명의 비정규노동자들이 명동 중앙우체국 앞 광고탑 고공농성에 돌입하던 날
또 한 장은 그 모든 이들과 함께 갔던 청와대 앞
또 한 장 중앙지법에서 온 것은 세월호 추모집회 관련 재판 소환
우리 기준으로는 기자회견에 추모제거나 문화제거나 측은지심이거나 양심과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연대……
저들 기준으로는 미신고집회 주최 집회시위에관한법률위반 해산불응 구호제창 피켓팅 기준소음초과 건조물침입 특수공무집행방해 일반도로교통방해……
빨리 간이 쫄아들어야 하는데
오랜만에 아이를 위해
쇠고기 장조림을 조리려고
메추리알을 잔뜩 사온 날이었다
장조림을 하느라
저토록 간절하게 나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편지들을 자세히 읽어줄 틈도 없다
이제 나를 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다는 이들은
대부분 경찰들과 판사들뿐이다
근래엔 18번을 이선희의 ‘인연’으로 바꿨다
얼마 전 희망버스 주동으로 1심에서 실행 2년을 선고받고
간신히 보석으로 살아나온 날이었다
가사가 참 맘에 들었다
“2년이라고 하죠. 거부할 수가 없죠������
그 다음 구절이 더 좋았다
“내 생애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다시 올 수 있을까요������
그 다음 구절은 또 어떠한가
“고달픈 삶의 길에 당신은 선물인 걸������
처음 시작도 참 좋다
“약속해요. 이 순간이 다 지나고 다시 보게 되는 그날
모든 걸 버리고 그대 곁에 서서 남은 길을 가리란 걸……������
그런다고
나를 향해 돌아선
아이의 마음이 돌아설까마는
짭짤하니 좋다
무엇이
장조림이?
내 인생이?
― 송경동,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전문24)
작품의 화자는 “한날한시”에 경찰서와 법원으로부터 온 “여섯 통의 소환장”을 보면서 자신이 참가한 날들을 떠올린다. “기륭전자 비정규직과 함께 을지로입구 사거리에서 붙”은 날, “쌍용차 해고자들과 대법원 앞에서” 맞선 날, “LGU+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벗들과 함께 국회 앞에서” 집회한 날, “두 명의 비정규노동자들이 명동 중앙우체국 앞 광고탑 고공농성에 돌입”해 함께한 날,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한 날 등을 되살리는 것이다.
화자가 소환된 사유는 “세월호 추모집회”와 관련해서 “중앙지법”이 소환한 것이 있기는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회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기자회견에 추모제거나 문화제거나 측은지심이거나 양심과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연대” 행동으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데, 경찰서와 법원은 “미신고집회 주최 집회시위에관한법률위반 해산불응 구호제창 피켓팅 기준소음초과 건조물침입 특수공무집행방해 일반도로교통방해” 등의 죄목으로 탄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화자는 주눅 들지 않는다. “오랜만에 아이를 위해/쇠고기 장조림을 조리려고/메추리알을 잔뜩 사온 날이”어서 “장조림을 하느라” “편지들을 자세히 읽어줄 틈도 없다”고 능청을 부린다. 그 이유는 “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다는 이들은/대부분 경찰들과 판사들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화자를 조사하면서 협박하거나 회유할 것이 뻔하다. 그리하여 화자는 굳이 두려워하거나 재바르게 찾아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근래에 바꾼 자신의 애창곡인 “이선희의 ‘인연’”을 흥얼거리며 요리에 정성을 쏟는다.
작품의 화자가 그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가사가 참 맘에 들”어서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는 자신의 삶은 결국 지배 계급이 만들어 놓은 법을 위반하게 되어 범법자가 되는 것이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기에 “거부할 수가 없죠”라든가 “내 생애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다시 올 수 있을까요”라고 따라 부르는 것이다. “고달픈 삶의 길에 당신은 선물인 걸”이라거나 “약속해요. 이 순간이 다 지나고 다시 보게 되는 그날/모든 걸 버리고 그대 곁에 서서 남은 길을 가리란 걸”이라는 가사도 따라 부른다. 결국 화자는 자신과 인연이 된 노동자들과 기꺼이 함께하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화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기에 화자 역시 그들을 사랑하는 존재가 되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화자의 연대의식은 노동조합의 활동이 제한받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노동자의 소외는 자본주의가 심화될수록 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따라서 아사히글라스에서 해고된 사내 하청 노조원들을 돕기 위해 다른 하청업체 해고 노동자들이 모여 연대 한마당을 개최한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자본주의 시대의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자들이 연대해야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OECD가 발표한 통계에서
회원국 중 우리는
자살률 1위, 산업재해 사망률 1위
가계부채 1위, 가장 낮은 최저임금 1위
저임금 노동자 비율 1위
이혼 증가율, 실업 증가 폭,
사교육비 지출, 근무 시간 많은 국가,
공교육비 민간 부담 등에서
모두 1위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몇 십 년 후에는
한민족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거라는데
7포 세대가 양산되는 지금
우리는 과연 희망이 없나?
희망 없음이란 반드시
공동체의 신진대사를 멈추게 하고
암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 할
음산한 것
지금 우리가 딛고 선 자리는
절망의 난간인가
희망의 구름다리인가 묻는다
나에게 너에게
희망이 없는 세상은 쓸쓸하다
통일하려고 노력하자
양극화를 없애자
희망의 촛불을 켜야 한다
부자에게 증세하고 복지를 늘리자
젊은이들을 중동으로 내몰지 말고
이 땅에서 일자리를 늘리자
아이들 혹사하는 교육 혁신하고
경제 민주화 정치 개혁 말만 하지 말고
제대로 한번 해보자
―문영규, 「희망의 촛불을 켜자」 전문25)
“OECD가 발표한 통계에서/회원국 중 우리는/자살률 1위” 뿐만 아니라 노동 분야에서도 매우 열악하다. “산업재해 사망률 1위”를 비롯해 “가장 낮은 최저임금” “저임금 노동자 비율” “실업 증가 폭” “근무 시간 많은 국가” 등의 분야에서 “모두 1위”인 것이다. 사실 “가계부채 1위”나 “이혼 증가율” 1위도 가정 경제와 깊은 관계가 있다. 가계 소득이 낮아질수록 상대적 박탈감이 높아지고 가계부채나 이혼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육비의 부담이 가중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사회의 노동자들이 처한 형편은 “7포 세대가 양산되”고 있듯이, 즉 연애, 결혼, 출산, 취업, 주택 구입, 인간관계, 희망을 포기한 세대가 늘어나고 있듯이 어렵기만 하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딛고 선 자리는/절망의 난간인가/희망의 구름다리인가”라는 자문은 고민이 되지 못한다. “희망 없음이란 반드시/공동체의 신진대사를 멈추게 하고/암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 할/음산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맥없이 절망하거나 포기할 수는 없다고 작품의 화자는 나선다. “희망이 없는 세상은 쓸쓸하”기에 “희망의 촛불을 켜”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양극화를 없애자” “부자에게 증세하고 복지를 늘리자”라고 주장한다. “젊은이들을 중동으로 내몰지 말고/이 땅에서 일자리를 늘리자”라는 제안도 한다. 결국 “경제 민주화 정치 개혁 말만 하지 말고/제대로 한번 해보자”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실제로 소외 받고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노동자들이 자신의 형편을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정치인이나 사용자의 구호에 기대는 것보다는 실천 행동이 필요하다. 노동자들이 노조의 활동에서부터 정치적인 행동에 이르기까지 연대의식을 가지고 나서야 하는 것이다.
3.
며칠이 지나도록
입금 소식이 없다
월말에 마감을 잡고
한 달 보름을 안고 가는 결재이지만
나는 하루 벌이로 사는 것과 같은데
공장세 전기세 각종 공과금 등
입을 벌리고 차례 기다리는
저 독촉의 아우성들
다급해진 마음에 전화를 하면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 한다
그 조금이 한 달을 넘어가고
하루 벌이의 한 달 그 입을 막으려면
가족 위해 계산된 것들은 자꾸 동강 나고
빚의 후유증에 지인들은 멀어만 가고
은행의 잔기침에 집까지 흔들거리는
처방전 없는 이 반복의 생리통
아직도 하늘은 노랗고
― 이규석, 「갑과 을 4- 결재」 전문26)
자본주의 사회는 철저히 “갑과 을”의 관계로 유지되고 있다. 함께 생산해서 나누는 공동체 사회를 이루지 못했기에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부익부빈익빈의 상황이 점점 심화되고 있는 데서 보듯이 “갑과 을”의 불평등한 관계는 사회 문제로 제기될 정도로 심각하다. 권력을 쥐고 있는 갑이 약자인 을에게 부당하게 권리를 행사는 이른바 ‘갑질’이 사회에서 끊이지 않는 데서 확인된다. 아사히글라스 원청이 사내 하청 노동자들에게 노동 착취와 임금 착취를 한 것은 물론 권고사직을 강요하고 말을 듣지 않자 부당하게 인사를 발령한 것이 그 구체적인 예이다. 그에 맞서 하청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자 일방적으로 근로 계약을 해지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갑질’의 횡포를 피하기란 쉽지 않다. 하청업자는 “며칠이 지나도록/입금 소식이 없”어 “다급해진 마음에 전화를 하면/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하는데 “그 조금이 한 달을 넘어가”도 어떤 요구를 할 수 없다. 그저 “공장세 전기세 각종 공과금 등/입을 벌리고 차례 기다리는/저 독촉의 아우성들”을 들을 수밖에 없고, “가족 위해 계산된 것들은 자꾸 동강 나고/빚의 후유증에 지인들은 멀어만 가고/은행의 잔기침에 집까지 흔들거리는” 고통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갑질이 횡행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사용자로부터 노동과 임금 착취를 받고 있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1970년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친 희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직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인간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아사히글라스가 임의로 정한 기준에서 벗어났다고 사내 하청 노동자들에게 감시용 조끼를 입혀 모욕을 주거나, 동의 없이 경조사비를 월급에서 떼어내거나, 질이 좋지 않은 작업복을 제공한 사실 등에서 여실히 볼 수 있다. 이렇듯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을 비롯한 제반 여건은 아직도 열악하기만 하다.
라인을 물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사각의 작업대 그 아래, 대량으로 빵을 삼키느라 악어처럼 입을 처벌린 불가마. 팔목들이 오븐 판에 자신의 손가락뼈를 정확히 내리꽂는 그 아래, 계란 물에서 빵으로 빵에서 계란 물로 동일한 색채를 반복하는 붓질 아래, 도화지 속 빵들이 칙칙폭폭 칙칙폭폭 끝없이 달려오고 눈 위에 눈이 내려 절대로 죽지 않는 히말라야 설경 그 지독한 유기체 아래
펄펄 끓는 주전자를 주세요. 흰색 유니폼을 녹이고 싶어요. 장애인이 토크 브란슈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염색체가 모자라는 우리는 일류 요리사의 모형들, 아무리 외쳐도 말할 줄 모르는 그림자. 오줌보 하나 터트리지 못하는 밥통들인데 제발 바지 내릴 시간을 주세요. 생식기 가득 찬 슬픔을 배출시켜야 해요. 도대체 얼마만큼 빚어야 32그램 반죽이 33그램이 되나요, 공장장님!
시간마다 천 개의 빵들이 살아나는 그 아래, 팥을 누르던 팔목들이 시커멓게 변질되는 그 아래, 빵을 뽑아내는 손가락에 물집이 번져 이제 몽당연필을 잡을 수 없을지도 몰라. 무릎까지 첩첩 밑단을 걷어 올린 바지. 자신의 이름이 삐뚤빼뚤 적힌, 고양이처럼 아름다운 자태로 한 번도 담장을 넘지 못한 그 아래, 유령 같은 실내화, 저 실내화들
― 조원, 「발목들」 전문27)
“라인을 물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사각의 작업대”에서 “빵”을 만들고 있는 장애인 노동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들은 “오줌보 하나 터트리지 못하는 밥통들인데 제발 바지 내릴 시간을 주세요. 생식기 가득 찬 슬픔을 배출시켜야 해요. 도대체 얼마만큼 빚어야 32그램 반죽이 33그램이 되나요, 공장장님!”이라고 하소연하는 데서 보듯이 노예와 같은 노동을 하고 있다. 정해진 작업량을 채우기 위해 소변조차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로 착취당하고 있는 것이다. 1970년대의 평화시장 노동자들이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한 채 하루 14시간 이상 노동을 한 상황과 다름없기에 실로 충격적이다. 그리하여 “펄펄 끓는 주전자를 주세요. 흰색 유니폼을 녹이고 싶어요.”라거나, “장애인이 토크 브란슈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염색체가 모자라는 우리는 일류 요리사의 모형들, 아무리 외쳐도 말할 줄 모르는 그림자.”라고 자학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그지없이 슬프고 아프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금융을 받은 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들 중의 한 가지는 비정규직 문제이다. 신자유주가 본격화되면서 구성원들 간의 경쟁이 격화되고 정보기술의 확대 등으로 사회가 급변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점점 사회의 구석으로 몰리고 있다. 한시적인 근로 계약으로 인해 신분이 불안하고, 장시간 노동과 강도 높은 노동으로 인해 지치고, 저임금과 비인격적인 대우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빈곤의 늪에서 탈출하기 어렵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사회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다. 9년 동안 최저 임금에 갖가지 모욕을 받으면서 기계처럼 일한 아사히글라스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그 여실한 예이다.
우리 사회의 발전과 통합을 위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에 비해 두 배나 높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호하는 대책이 우선적으로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규직의 미래가 비정규직이라는 자조적인 말도 있듯이 지금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정규직 노동자의 문제이다. 신자유주의가 우리의 사회를 지배할수록 비정규직의 상황이 일반적인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정규직의 문제가 전체 노동자의 문제라는 점을 자각하고 연대의식을 가지고 개선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맹문재(孟文在)
시론집으로 『한국 민중시 문학사』『패스카드 시대의 휴머니즘 시』『지식인 시의 대상애』『현대시의 성숙과 지향』『시학의 변주』『만인보의 시학』『여성시의 대문자』 등이, 편저로 『박인환 전집』『김명순 전집―시․희곡』『김남주 산문 전집』『김후란 시 전집』(공편) 등이 있다. 현재 안양대 국문과 교수이다.
1) 정확한 명칭은 ‘아사히글라스 구미공장 사내 하청업체 ㈜지티에스(GTS) 노동조합’이지만 편의상 줄여 부른 것이다.
2) 2015년 6월 1일자 『경향신문』(오민규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6월 24일자 『뉴스민』(천용길 기자).
3) 6월 17일자 『뉴스민』(천용길 기자), 6월 24일자 『노동과 세계』(홍미리 기자).
4) 조세희, 「기계도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문학과지성사, 1978, 199쪽.
5) 6월 15일자 『한겨레』(구대선 기자).
6) 6월 29일자 『민중의 소리』(허수영 기자).
7) 7월 1일자 『경향신문』(김지환 기자) ․『민중의 소리』(허수영 기자).
8) 7월 3일자 『뉴스민』(차용길 기자).
9) 7월 7일자 『매일일보』(이정수 기자) ․『매일노동뉴스』(구은희 기자) ․『신아일보』(도중구 기자).
10) 7월 20일자 『브레이크뉴스』(이성현 기자) ․『머니투데이』(김세관 기자) ․『민중의 소리』(강경훈 기자), 21일자 『매일노동뉴스』(양우람 기자).
11) 7월 23일자 『민중의 소리』(허수영 기자).
12) 7월 29일자 『매일일보』(이정수 기자), 7월 30일자 『매일신문』(정창구 기자), 8월 31일자 『아웃소싱타임스』(편슬기 기자).
13) 8월 4일자 『뉴스민』(박중엽 기자) ․『국제i저널』(김도희 기자) ․『경향신문』(박홍두 기자) ․『타임뉴스』(이승근 기자), 8월 5일자 『구미일보』(김창섭 기자) ․『매일노동뉴스』(윤성희 기자) ․『국제뉴스』(김용구 기자).
14) 9월 9일자 『뉴스민』(천용길 기자).
15) 8월 18일자 『뉴스민』(천용길 기자).
16) 8월 26일자 『경향신문』(최병승 현대자동차 노동자), 8월 31일자 『한겨레』(유명자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 9월 1일자 『사건의 내막』(이상호 기자) ․『프레시안』(허환주 기자) ․『경향신문』(김지환 기자) ․『한국일보』(변태섭 기자), 9월 5일자 『뉴스민』(김규현 기자) ․『오마이뉴스』(조정훈 기자), 9월 7일자 『울산저널』(용석록 기자), 9월 10일자 『프레시안』(차헌호 아사히사내하청노동조합 위원장) ․『지금 여기』(장영식 기자) ․『울산저널』(윤태우 기자).
17) 10월 1일자 『머니투데이』(김세관 기자) ․ 『뉴스민』(천용길 기자), 10월 2일자 『매일노동뉴스』(양우람 기자), 10월 5일자 『매일노동뉴스』(양우람 기자).
18) 10월 5일자 『뉴스민』(천용길 기자), 10월 6일자 『경북인터넷뉴스』, 10월 8일자 『뉴시스』(추종호 기자).
19) 10월 13일자 『뉴스민』(천용길 기자).
20) 10월 22일자 『뉴스민』(천용길 기자).
21) 10월 30일자 『뉴스민』(천용길 기자).
22) 12월 9일자 『대경일보』(남보수 기자).
23) 2016년 1월 21일 『뉴스민』(천용길 기자).
24) 『현대시학』, 2015년 4월호, 82~84쪽.
25) 『희망을 찾는다』(객토문학 동인 제12집), 갈무리, 2015, 62~63쪽. 문영규(1957~2015) 시인은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마창노련문학상을 수상하고 <객토문학> <일과시> 동인 활동을 했다. 시집으로 『눈 내리는 저녁』『나는 지금 외출 중』이 있다.
26) 『희망을 찾는다』, 갈무리, 2015, 108~109쪽.
27) 『다층』, 2015년 여름호, 34~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