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 냈다가 떨어지면 챙피해서 어쩌죠?
도전하는 자가 아름다우니..
일단 글을 올립니다. 문장이나 맞춤법까지도 좀 봐주세요..깨비쌤!
붉은 일반에 대해 더 넣었음 하는 것도 있음
당근 말씀 해 주시구요...
31일까지니깐 내일까지 의견을 받아서 수정하겠슴다!
날이 더운데 잘 지내시고..
나의 첫 당 활동
다시, 함께 갈 수 있을까, 이 길을!
나는 운동권의 가부장성에 치를 떨며 이 길에서 오래 전에 도망쳤었다.
한 때, 운동이라는 거대담론 속에 소외되어 있는 일상에서의 성별권력관계를 그린 소설을 써서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문학상이란 것도 타고 글이 밥이 되었던 적도 있다. 좀 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여성노동자의 시선으로 사랑과 투쟁을 그린 노동소설을 세상에 내 놓은 적도 있긴 하다.
조선일보를 보든 한겨레를 보든, 주사파든 맑스파든 이 땅의 남성이라면 제 먹은 밥 그릇 하나 닦지 못하고, 애 똥 기저귀 한 번 빨아본 적 없는 가부장의 화신들이라고 한껏 비웃고 경멸했던 내가 이 길에 무슨 이유로 다시 돌아온 걸까. 운동이 내 삶에 드리워왔던 짙은 그늘로 하여 냉소와 조롱으로 일상의 공포를 가로지르고 있을 만한데 이 길 위에 다시 선 연유는 무엇인가. 나의 지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운동권이야말로 우리나라 가부장적 모순의 집약체라고 단언을 하다시피 하는 이곳에.
그녀를 보았다. 찬란한 청춘의 한 시절 나의 친구였던, 진보적 남성들의 아킬레스건인 가부장적 태도에 누구보다도 분노하던 그녀는, 이제 의원 사모님으로 등극하여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집권여당의 잘 나가는 국회의원이 된, 그도 한 때 나의 친구였던, 그녀의 남편에게 진심으로 우정을 담아 축원을 해 주었다. 남들이 다 그러더라도, 너만은 고급 룸싸롱에 가서 여자 끼고 술 마시지 말아라.
소위 여성 386세대라고 명명되는, 우리는, 나는 모두 어디로 꼭꼭 숨어 들어가 버린 거지? 남편들이, 남자들이 화려하게 정치경력을 쌓는 동안 우리는, 나는, 돈 벌어 살림 하고, 애 낳아 키우고, 시댁 치다꺼리까지 하느라 신문 한 줄 읽질 못해 휙휙 돌아가는 세상을 더 이상 따라 잡아 갈 수가 없었지. 친구야, 네가 동네 목욕탕에서 등을 미는 수고까지 하며 남편의 표를 읍소치는 안했다 하더라도 난 너를 온전히 축하해 줄 수가 없단다. 누가 뭐래도 나는 이제 내 자신의 삶을 살기로 했거든. 티브이 앞에 앉아 총선 결과를 밤을 패가며 지켜보며 난 조금 울었다.
또 다른 그녀들이 있다. 내가 활동하는 한 여성주의 싸이트에서 민주노동당만이 진정으로 이 시대의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유일한 정당이라고 말을 걸어오는 언니들이 있었다. 그들 또한 운동권의 성별 권력관계에서 상처를 받은, 내 안의 나인 그들이 민주노동당에 우리의 남은 희망을 걸어 보자고 낮은 목소리로 오랫동안 속삭이고 있었다. 총선결과를 지켜보며 난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나는 또 하나의 그녀인, 나 자신을 보았다. 민주노동당의 국회 입성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나를 물끄러미 지켜보며 그 옛날 활활 타올랐던 내 심장의 불꽃은 아직까지도 꺼지지 않은 불씨하나 남겨 놓았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왜 민주노동당원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대한민국 땅에서 이혼녀로, 밥이 되지 않는 글을 쓰는 작가로, 어린 딸과 둘이서 살아 내겠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내 자신이 바로 철저한 약자와 소수자였다.
나의 당원으로서의 첫 활동은 ‘붉은 이반’을 지지, 연대하는 ‘붉은 일반’에서 이루어졌다.
내가 아직 요조숙녀컴플렉스 속에 살던 시절, 티브이에서 이반의 모습들을 희화화하는 개그가 나올 때마다 박수치며 깔깔 거렸던, 용기 있게 커밍아웃을 한 홍석천씨를 색안경을 쓰고 보았던 스스로를 참회하는 심정으로 난 회원이 되었다. 누군가를 향한 가슴앓이로 불면의 밤을 통과해 본 적이 있다면, 뒤척이며 왜 꼭 그 사람이어야 하는지 자문해 본 적이 있다면 사람이 사람을 사랑 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는 것을, 그 존재자체가 벼락같은 의미와 축복이라는 걸.......하여, 사랑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며, 그 권리를 위해 나는 내 안의, 당신 안의 포비아를 찾아내 산산조각 내기로 작정했던 터였다. 왜 꼭 박살내야 하느냐고 누군가 물으신다면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당신이 자유롭지 못하면 나 또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무슨 회원가입 하나 하려면 나오는, 미혼입니까? 기혼입니까? 하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 적이 혼란스럽다. 난, 미혼인거야? 기혼인거야? 유리한 정도에 따라 미혼에도 동그라미를 쳤다 기혼에도 동그라미를 치기도 한다. 흑과 백, 낮과 밤, 음과 양으로만 세상을 일도양단 할 수 없는데도 사람들은 제 안의 우물에 갇혀, 세상의 모습이 얼마나 다양하고 다채로운지 보려 하지 않는다.
사회적 편견은 엄마와 아빠와 자녀들로 구성된 ‘건강가정’만을 모범답안 삼아 그렇지 않은 다양한 가족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바로 이 지점이 붉은 일반에서 내가 활동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노동당 내에서 만이라도 난 호구조사를 강요당하고 싶지 않고, 내 딸이 모임에 나가, 아빠는 안 왔니? 하는 어른들의 무심한 질문으로 가슴이 아려오지 않길 바라고, 또한 한부모가정에 대한 과도한 호기심으로 광채를 발휘하는 눈빛과 조우하고 싶지 않다.
‘제 5회 퀴어문화축제 무지개 2004, 모두를 위한 자유와 평등’ 에 나와 내 딸은 민주노동당, 붉은 일반의 피켓을 들고 쏟아지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나게 춤을 추며 종로 거리를 행진했다. 존재하지만 드러낼 수 없는, 고개를 돌릴 때마다, 허공에서 눈길이 마주칠 때마다 그 부서지던 눈동자들을 가슴에 안으며.......
<민주노동당 성소수자 위원회>준비위원회 결성및 중앙위 인준을 위한 지지성명을 붉은 일반의 공동대표가 제안하자, 이 위원회의 결성이 소수자에 대한 연대와 진보를 표방하는, 민주노동당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나는 최선을 다해 당원들에게 서명을 독려하였고, 이 위원회는 중앙위 인준을 거쳐 <민주노동당 성소수자 위원회>(준)로 나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아니 나보다 훨씬 더했을, 삶의 상처와 참담함을 거친 이 땅의 성적소수자들에게 우리 민주노동당만이 희망의 증거가 될 수 있다고 감히 말하기엔 아직도
이 위원회가 나아갈 길이 험난하기만 하다.
돌이켜보면 어떤 의미에서 내 삶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던, 미쳐버리고 싶지만 미쳐지지도 않던, 그 순간이 지금에 와서는 내 안에 내가 둘렀던 경계를 직시하고 뛰어 넘을 수 있는 용기가 되어 주었음에 감사드리고 있다. 그 지옥의 시절이 없었다면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약자와 소수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알지도 못했을 터이고 끝간데없는 허비한 욕망의 질주를 지금도 벌이고 있을 터였다.
얼마 전 파병반대, 김선일씨 추모집회를 정리하면서 민주노동당 깃발을 자랑스럽게 휘날리며 행진하는 당원들을 넋이 나간 듯 바라보고 있었다. 딸과 둘이서 이런 저런 이름의 촛불집회에 갈 때마다 깃발 아래에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깃발 아래에 모여 구호와 노래를 함께 하며 때로는 집회 문화의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측면을 토로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말동무를 그간 얼마나 찾아 헤매었던가.
민주노동당의 현실을 조금씩 알아가며, 돌아버리겠다고 한탄할 때도 없지는 않지만 나는 접어 버렸던 내 소통의 의지를 이곳에서 다시 한 번 펼치고 있는 중이다. 거기, 당원인 당신, 내 말을 들어주세요! 저도 귀 기울여 당신의 말을 듣겠습니다!
이건 저의 마지막 말인데 귀와 손을 제 편으로 좀 더 가까이 가져와 주시겠어요?
사랑해요! 민주노동당!
함께해요! 우리!
본인이 소수자이며 소수자이어서 세상의 모든 소수자에게 연대와 애정을 갖게 되는 과정이 잘 그려진거 같아요. 무척 설득력 있는 글로 우리 붉은 일반의 진정성이 잘 전달되리라 생각됩니다. 이거 입상 안되면 항의해야 될거 같은데요. 그리고 밤을 패가며가 아니라 새가며, 맞추법 틀린 것은 그것 밖에 못봤어요. 화이링!
음~ 저를 돌아 보게 하는 글입니다 특히 "조선일보를 보든 한겨레를 보든, 주사파든 맑스파든 이 땅의 남성이라면 제 먹은 밥 그릇 하나 닦지 못하고, 애 똥 기저귀 한 번 빨아본 적 없는 가부장의 화신들" 이라고 쓴글을 읽으면서 저 자신을 반성합니다. 직장이 안산이라 설에서 출근하는 아들에게 밥한술 먹이려는 어머니
다시 읽으면서 코끝이 시끈거리구 눈물두 나구...야 ~ 씨! 우리 이렇게 힘들게 모인 사람들이면... 이 판을 정말 잘 만들어야자나...!!! 난 전에 당 한참 힘들 때...당 상근자들 등짝만 봐도 눈믈이 주르르 흘렀었어..그리구 어느 날은 중앙당 책상에서 당에서 받은 상처루 하루종일 눈물콧물 다 흘리며 울어댔었구...
첫댓글 찔레님, 글은 이리 감동적인데 왜 제목은 항상 이리도 조그만지요?^^
아~~ 눈물나라~~ 당락에 관계없이, 이렇게 진솔한 우리 각자의 삶이 어떻게 당과 만나고 있는지를 쓴다면 새내기 당원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당원교육은 없을 거 같네요. 저도 마감일이 지나기 전에 글쓰기를 서둘러야겠습니다. 이홍님을 비롯한 다른 분들도 서둘러주세요.^^
본인이 소수자이며 소수자이어서 세상의 모든 소수자에게 연대와 애정을 갖게 되는 과정이 잘 그려진거 같아요. 무척 설득력 있는 글로 우리 붉은 일반의 진정성이 잘 전달되리라 생각됩니다. 이거 입상 안되면 항의해야 될거 같은데요. 그리고 밤을 패가며가 아니라 새가며, 맞추법 틀린 것은 그것 밖에 못봤어요. 화이링!
음~ 저를 돌아 보게 하는 글입니다 특히 "조선일보를 보든 한겨레를 보든, 주사파든 맑스파든 이 땅의 남성이라면 제 먹은 밥 그릇 하나 닦지 못하고, 애 똥 기저귀 한 번 빨아본 적 없는 가부장의 화신들" 이라고 쓴글을 읽으면서 저 자신을 반성합니다. 직장이 안산이라 설에서 출근하는 아들에게 밥한술 먹이려는 어머니
한테 가끔식 밥투정을 부렸던 점을 반성하고 지먹은 밥그릇 덩그란이 남기고 작업한다고 컴터앞으로 달려갔던 저 자신 반성 반성합니다. 이글 꼭 당첨되리라 밑고요 당첨되면 붉은일반 번개하자구요..^^ 가자! 해방공단을 향해서...
내 기억이 잘못되었나 하고 찾아 봤더니 '밤을 패다'는 밤을 새다의 이북표현이었슴다!
밤을 패다....는 문학적으로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구요, 제가 발견한 건 <읍소치는 안했다 하더라도 --읍소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인 거 같은데요?^^
머 그건.. 문어체와 구어체의 차이로 봄이 어떨까 싶습니다만.^^
땡스, 깨비!
삐질라^^...삐딱선 님의 고견도 캄사!
근데 패다, 라고 하면 세 명중에 두 명은 맞춤법이 틀린거 아니야? 할 거 같은데, 머 통일조국의 맞춤법이라는 목적의식성을 갖고 간다면야 제가 어쩔것도 아니구요. 근데 내가 요즘 소설은 안 읽기는 안 읽나보네요. 모국어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찔레의 글은 마음을 좇아가게 해주어서 넘 좋아. 읽는 사람을 행복하구 착하게 해주는 글...우린 이런 글에 목말라이쓴거야~~~
현숙님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구요...요즘 안 나타나셔서 휴가를 갔나 어디 아프시나 걱정했었더랬어요. 제가 생에 처음으로 문학상이란 걸 탔을 때 제 글을 지지해 주셨던 심사위원이시던 존경하던 소설가 선배님이 한 말을 늘 기억하며 글을 쓰려고 합니다.
글을 잘 쓰는 것도 애국이다. 이런 허접한 글로라도 제가 당에 기여할 수 있다면 기꺼이 할 생각이구요!
찔레님~~어느 소설가가 무슨 말을 해주었는지 알구 싶다~~ 나 소설가 되구 싶었구...이 청준을 가장 좋아했거든...40초에 한바탕 매달렸다가..난 다른 방법으로 애국^^하는게 효과적이라구 생각하구...글 미련 탈탈 털어냈어요...내 글쓰기가..날 잡아먹더라구....
윤흥길 선생님이요! 일면식도 없는 이 분이 제 글을 응원해주셔셔...평생의 은인 중 한 분이죠!
다시 읽으면서 코끝이 시끈거리구 눈물두 나구...야 ~ 씨! 우리 이렇게 힘들게 모인 사람들이면... 이 판을 정말 잘 만들어야자나...!!! 난 전에 당 한참 힘들 때...당 상근자들 등짝만 봐도 눈믈이 주르르 흘렀었어..그리구 어느 날은 중앙당 책상에서 당에서 받은 상처루 하루종일 눈물콧물 다 흘리며 울어댔었구...
종일 울고 나니까 더 미워지지는 않더라...뭐랑 싸워야 할지는 보이구... 우리 그렇게 들어왔고... 남았고....다시 또 이렇게 모였는데...정말 잘하자!!! 근데...지금두 다시 그 눈물이 줄줄 나오네.... 찔레 땜에 나 바보되나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