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 박*현/진해용원고등학교
제목 : 기둥(산문)
시야가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수평선 너머로 해가 사라졌다. 해 너머로 소나기가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곧 해변가의 모래는 짙은 색으로 젖어 들어갔다. 할머니는 건물 아래에서 바다를 가만히 바라보고 계셨다. 축축한 공기가 물내를 머금고 코 아래에 머물렀다. 비가 바지를 진하게 물들이고, 웅덩이가 발을 적시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잘 정리된 우표들을 가지고 바다에 나간다. 아빠가 정리해둔 여러 장의 우표는 어린 아이들이 눈을 빛내며 사가곤 했다. 할머니는 집의 기둥이었던 아빠가 바다에서 나오지 못하게 된 뒤부터 일주일에 네 번은 바다에 나갔다.
“할머니 비 오는데 들어가요.” 할머니께서는 말이 없으셨다. 빗물이 떨어지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비를 맞고 싶지 않아 다리를 펴고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할머니는 한참 바다를 바라 보시다 바짓가랑이가 다 젖어 서야 집에 들어오셨다.
“할머니 저녁 드세요. 점심도 안드셨잖아요?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밥상을 차렸다. 할머니께서는 밥상에 앉아 느릿하게 희 밥만 푹푹 퍼다 씹어 삼켰다. 할머니가 저녁을 다 드시고 저녁상을 치웠다. 할머니는 작은 방에 들어가 낡은 서랍장에 다가섰다. 그녀는 첫 번째 서랍을 열어 색이 바래 노랗게 변한 사진 하나를 꺼냈다. 사진 속에는 배에 타 밝게 웃고있는 아빠가 남아있었다. 할머니는 사진을 한참 어루만지다 이부자리에 들었다. 그녀의 마음에 요동치는 파도가 넘실 흘러 할머니의 눈가를 촉촉히 적셨다.
할머니는 장남으로 태어난 아빠에게 해준 것이 많이 없다고 늘 미안해 하셨다. 아빠는 일찍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동생들을 돌보며 일찍 철이 들었다. 그런 아빠가 유일하게 즐긴 취미가 우표를 모으는 것이었다. 아빠는 온갖 희귀한 우표를 모으고는 했는데 그것을 잘 보관해 두었다.
그 날은 유독 하늘에 구름도 한 점 없이 맑았고, 바다의 모래알은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어김없이 아빠는 배를 타고 낚시를 하고 오겠다며 바다로 향했다. 우리 집의 기둥이었던 아빠는 그 날 폭풍우를 만나 우리 곁에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 기둥이 부서진 날이었다. 할머니는 그 뒤로 바다에 나가 아빠의 우표를 팔기 시작했다. 많던 우표가 하나 둘씩 줄어들면 아빠의 추억도 줄어가는 것같이 느껴졌다.
할머니는 오늘 아침 비가 그친 것을 확인 하셨다. 구름에 가려졌지만 해는 여실히 모습을 드러냈다. 어젯밤 내린 비가 마당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할머니는 서랍장에서 아빠의 사진을 꺼내 오랫동안 쳐다보며 마음에 치는 폭풍우를 잠잠하게 만들었다. 그러고는 일어나 바다로 향하셨다. 나는 할머니 뒤를 천천히 따라 걸었다.
“할머니 안 추우세요?” 할머니께서는 겉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으시고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계셨다. 챙겨온 겉옷을 할머니께 걸쳐드리고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의 눈 안에 바다가 파도를 치고 있었다. 할머니의 눈시울이 심해처럼 깊어졌다.
“느그 아부지 바다에서 잘 지내것제?” 할머니의 짠 눈물이 축축히 젖어있는 모래에 떨어졌다. 할머니는 기둥이 잠긴 바다를 눈에 담았다. 바다가 잔잔하게 파도를 만들어냈다. 잔잔한 파도에도 기둥은 잘게 부서져갔다. 할머니도 그 사실을 아는지 바다를 쳐다보기만 하셨다. 나의 기둥은 바다에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