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장 증언(證言)
만일 우리 인간이 편견을 배척하고 저자 자신의 생활과 저술을 스스로 판단할 수만 있다면, 저자 자신의 성격이나 문헌상의 공적에 대하여 다른 사람의 견해를 인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베이에르 박사가 에팅거 감독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지극히 정당하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스베덴보리의 경우 `최상의 신적인 보증과 모든 인간상태에 가장 잘 적응한 보증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즉 그의 원리는 건전한 이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그의 저작을 애호하는 자는 그 저작에 의해서 그토록 많은 의혹과 모순, 건전한 이성에 반하는 그토록 많은 교의로부터 깨끗이 해방되는 것을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에 대한 편견이 너무도 심하기 때문에 그를 변호하기 위하여 그의 고결한 인격과 학문과 그를 전반적으로 신뢰할 만한 것에 관해서 기술된 그는 같은 시대의 사람들의 증언과, 또한 그가 가르친 진리의 가치에 대한 그와 같은 시대, 또는 그 시대 이후의 사람들의 증언을 인용하는 것은 불필요할 것이다.
먼저 그의 인품에 대하여 알아 보기로 하자. 그의 가르침에 호의를 보이건 그렇지 않건간에 그를 생전에 알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단 한 마디 말밖에, 즉 무조건 그를 칭찬하는 말밖에 없다. 가장 마음이 좁은 비평가들조차도 `스베덴보리가 (알려져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이건 상쾌한 기억이 남아 있는데 그의 마음 속에는 열광, 분노, 증오 같은 것은 없었으며 냉소나 경멸도 초조함도 없었다. ... 그는 질투심으로부터는 완전히 해방당한 사람 같다. 그의 모든 책에서 악의에 차 있거나 명예를 원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얻기 위해서 양심에 벗어나는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상의) 주목이나 칭찬을 받기 위한 기교나 임기응변적인 행동은 그에게는 불가능한 일어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인으로서 그만큼 진실된 평을 받은 인물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스베덴보리가 살아 있을때 스톡홀름에 살고 있던 쉬르에르 교수는 `그는 탁월한 성격으로 인해서 거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증언하고 있고, 또한 그 견해를 지지하고 있는 자들도 많다. 스베덴보리의 사후 그의 인격에 대해서 일반 사람들이 품고 있던 의견은 산데르스 참여관이 스톡홀름의 왕립과학아카데미의 이름으로 귀족원에서 한 송사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이런 송사는 과장될 염려가 있다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산데르스는 스베덴보리의 신학상의 견해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으며, 또한 그가 언급하고 있는 인물을 부당하게 치켜 올리려는 의도도 조금도 갖고 있지 않았음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스베덴보리를 `우리 협회의 가장 오랜 회원의 한 사람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고 덕과 지식으로 널리 알려진 고귀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의 생애의 아름다운 그림은 세심하게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산데르스는 또 스베덴보리가 청년시절에 광산국의 감사관으로 임명된 것에 언급해서 `그는 그때에도 문학 전반과 과학상의 넓은 지식와 고귀한 행동거지로 국내외에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순수하고 선량한 성질`에 대해서 언급하여 `그는 덕과 조물주에 대한 신앙의 마음의 모범이라고 할만합니다. 그것은 그의 마음 속에는 어떤 종류의 두 가지 마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라고 언명하고 있다. 그는 덧붙여서 이렇게도 말하고 있다. `우리는 그에게서 교만, 성급, 또는 남을 속이려는 마음 같은 것을 추호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페르네티 수도원장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스베덴보리는 매우 온화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솔직하고 진실을 배반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 그리고 그는 그가 가르친 도덕을 항상 그대로 행했다`.
헤프겐 백작은 1773년 4월 21일 탁센 장군에게 편지를 보내고, 그 속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스베덴보리는 확실히 성실, 덕, 경건함에 있어서 모범이었으며, 동시에 내 생각으로는 이 왕국의 최대의 학자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그를 (그 정직한 신사)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