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피우다
정 끝 별
오랜만에 만난 후배는 기공을 한다 했다.
몸을 여는 일이라 했다
몸에 힘을 빼면
몸에 살이 풀리고
막힘과 맺힘 뚫어내고 비워내
바람이 들고 나는 몸
바람둥이와 수도사와 예술가의 몸이 가장 열려 있다고 했다
닿지 않는 곳에서 닿지 않는 곳으로
몸속 꽃눈을 끌어 올리고
다물지 못한 구멍에서 다문 구멍으로
몸속 잎눈을 끓어 올리고
가락을 타며 들이마시고 내쉬고
그렇다면 바람둥이와 수도사와 예술가들이 하는 일이란
바람을 부리고
바람을 내보냄으로써
저기 다른 몸 위에
제 몸을 열어
온몸에 꽃을 피워내는
그러니까 바람을 피우는 일 아닌가!
***************************************************
1. 시를 이해하기 위한 정끝별 시인의 의식세계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선 작자의 시의식 세계에 대한 조망이 필요합니다. 정끝별 시의 의식세계는 모름지기 <욕망에 대한 자의식>에 대한 번뇌로 채워져 있을 법합니다. 왜냐하면 그 번뇌로부터 탈출을 위해 시를 쓰는 것이라고 고백한 인터뷰기사를 접한 바가 있어서 드는 생각입니다. 그러한 정시인의 욕망과 자의식은 그녀의 자작시 행간에서 자주 <욕망>을 규정하는 시어로서의 <몸>과 자의식의 탈출구로서의 <구멍>이라는 시어가 자주 환유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몸>과 <구멍>의 메타포적 함의
한 예로 《희망》이라는 시에서 그녀는 /구멍에 빠져 본 사람은/ 구멍을 몸속에 넣고 다닌다 / 라고 심경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구멍>은 자신의 욕망의 함정이요 그 함정도 결국 자기 자신이 만들어서 <몸>속에 간직 할 뿐이라고 토로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녀의 시세계는 결국 욕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모태적 한계로서의 자의식을 가두고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몸>일 뿐이라는 의식에 그의 시는 대부분의 방점을 찍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실례는 정시인의 《사랑》이란 시에서도
몸의 꽃이 만든
몸의 가시가 만든
<중략>
들어가는 문은 있어도 나오는 문이 없는
에서와 같이 <몸>과 <문=구멍> 은 사랑이라는 자아적 욕망에 대한 자기고백을 여실히 드러내어주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시 의식 세계를 절절하게 투영시키고 있는 정끝별 시인의 대다수 시편 중 대표적인 시가 바로 오늘의 시인 <바람을 피우다> 일 것입니다
3. <바람>과 <기공>의 메타포적 함의
그녀의 여느 시풍과 다름없이 이 시도 연구분 없이 전체19행의 행간이 창조 해 내는 광활한 의식세계는 여백속에 섬세하게 말을 감추고 그 뜻을 숨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핵심 소재로 간택한 <바람과 기공>은 이 시에서도 어떠한 메타포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우선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다음에 생뚱맞게도 상호 이질적인 <바람둥이와 수도사와 예술가>를 병치(倂置)하여 과감한 인용을 시도한 시작의도를 간파해 냄으로써 <바람>이 형상화되는 시적 함의를 짚어 볼 수 있게 합니다. 그만큼 이 서정시는 격조 높은 인생론적 시로서 우리의 본능적 감성을 쓰다듬어 주고 있습니다.
또한 <기공>의 사전적 의미는 "생명의 근원인 <기>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공>을 들임으로써 <몸=욕망>을 비워내는 수련쯤으로 이해 해보면 어떨까합니다. 여기서 시적 화자는 <기공>을 통해 <육체>와 <정신>과 <영혼>을 관통 해 주는 출구가 만들어지는 <구멍>을 욕망에 대한 자의식의 탈출구로 환유시키고 있습니다. 즉, 그러한 <구멍>은 기공을 통해 /몸에 힘이 빠지고/살이 풀리고/ 막힘과 맺힘이 뚫어내고 비워냄/으로써 비로소 몸(욕망)속으로 바람(구멍)이 들락거리게 만들 수 있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시인은 참으로 이질적인 소재인용을 시도하여 그러한 <기공>의 달인들은 바람둥이(육체)와 수도사(정신),예술가(영혼)라는 것을 절묘하게 환치시키고 있습니다.
4. 이질적 소재인용의 역설적인 시적 형상화의 조화
결국 이러한 환치된 이질적 인용들이 오히려 시적 형상화에 대한 극적인 조화를 역설적으로 완성시키고 있는 것은 <육체>와 <정신>과 <영혼> 이 / 바람을 부리고 바람을 내보냄으로써/ 다른 몸 위에 /제 몸을 열어/ 온 몸에 꽃을 피워내는 /작업공정이 서로 닮아 있다는 것으로써 다소 육감적이지만 <바람둥이>는 기공을 통한 그 <기>를 모아 배꼽 아래로만 <바람의 꽃>을 피워내려 할것이고, 수도사는 해탈을 위한 정신적인 가슴으로, 그리고 예술가는 머리 끝까지 영혼의 꽂을 피워내려 할 것이라고 화자는 독자들에게 넌지시 속삭여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있어서 <육체>와 <정신>과 <영혼>이 지배하는 이 정신적 가치로서의 <바람>은 /닿지 않는 곳에서 / 닿지 않는 곳/ 다물지 못한 구멍에서/다문 구멍으로/ 부리고 내보내며 바람 을 피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결국 내가 바람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이 삼라만상의 우주만물이 바람을 피움으로써 생성되는 욕망이라는 자의식의 탈출구로서의 <구멍>이요 <기공>이 아닐까 합니다. 굳이 시의 유익성 측면의 가치를 논하자면 자기관조나 자기성찰의 좋은 계기를 부여 해 줄 것이라는 점을 붙이고 싶습니다.<悳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