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물론 캐락 앞에서 보두앵 4세가 등장하면서 그 뒤에 보무도 당당히 진군하는 십자군들은 이 영화의 백미
6. 하틴 전투 장면이 '두' 장면이라길래 전투 장면이 둘일줄 알았건만 전후 장면 둘이더군요. 이런 어이없는... 하틴 시작할때 기대했단 말입니다;;
7. 예루살렘에 지는 석양 너머로, 저기 보이는 무슬림 기병 한 기. 그리고 그 뒤의 수만의 대군. 멋졌습니다.
8. 나프타. 죽이더군요;;;
9. 공성탑을 진짜 그런식으로 관광 보내는게 가능할까?
10.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살라딘과 발리앙의 대화중,
살라딘이 '앗 살라무 알라이쿰' 이라고 하자 발리앙이 '신의 평화를'.. 나중에 발리앙과 살라딘 부관 사이에서는 부관이 '신의 가호가 있기를' 이라고 하자 발리앙이 '와 알라이쿠뭇 살람'..
글로 표현하니 좀 아니지만 정말 맘에 들었던 장면이었습니다.
11. 땅에 떨어진 황금 십자가를 단상 위에 올려놓고 나가는 살라흐 앗딘 이븐 유수프 아이유브.
글쎄요...과연 공산주의와 이슬람이 비교 대상이 될른지 모르겠네요. 이슬람의 경우 그다기 감상적이라는 느낌은 없는데요? 되려 기독교보다 현실주의 적이라 할 수 있지요. 거의 모든 종교를 용납하고 (물론 그 대상의 지위변동은 있지만) 종교적 교의는 다른 종교와 그다지 다를 바 없는데요...
이슬람 원리주의나 기독교 근본주의나 똑같이 잔혹하고 비타협적인 것을 본다면 종교적 특성이지 이슬람적 특성은 아니지요. 이슬람에 대한 편견은 기독교의 편견에 의한 전파 (현실적으로 기독교 국가들의 영향력이 더 크기 때문에)에 의한 것이고 지금 일어나는 이슬람의 이름을 빌린 각종 사건사고는 이슬람의 문제가
십자군을 앞에 놓고 이슬람을 "이상주의적"이라고 하는 것은 코메디죠. -_-; 서구적 합리주의가 싹튼 것은 불과 100년이 안되었다는 것을 상기하시길. 그 이전부터 자본주의다 합리적이다 하는데, 서구권에서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한 것도 20세기 중반 가까이입니다. 그나마 중반까지도 인정하지 않은 나라들도 수두룩해요.
지금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들이 당연해지기 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터지게 싸워야 했나도 잊으면 안되겠죠. 그런 사상적 투쟁의 기저에 사회주의가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구요. 공산주의에 대한 입장을 미리 정해놓고 거기에 맞춰 현상을 해석하시는 것이 아닌지.. 하는
무슬림들이 겪은 역사적 변천, 그리고 그들이 현재 상황에 놓이기 까지 겪어야 했던 일들을 쑥 빼놓고 중동국가들 사이의 문제를 종교적인 것으로만 파악 할 수는 없죠. 그것은 마치, 조선왕조가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 이유가 순전히 성리학에 있다고 얘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자유와 평등이 조금씩 넓혀졌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과연 그런지는 집요한 역사적 눈으로 바라봐야겠죠. 프랑스 혁명의 역사가 어떤 문제들을 프랑스에 낳았고, 그것이 어떤 과정을 통해 극복되었는지는 근대 서구사회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명백히, 프랑스 혁명을 했다는 것 만으로 자동적으로 자유, 평등, 박애가 세상에 퍼뜨려진 것도 아니고, 프랑스 혁명 자체도 이미 특정 계층과 특정 계급의 이익을 위해서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자유와 평등이 확대되기 위한 과정 자체가 이미 사상적 투쟁의 장입니다. '빨간색이냐 파랑색이냐'의 문제가
이미 형이상학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인간적 삶의 여부와 직결되었던 시대의 유산이 아직도 세상에 이어져내려온 것이고요. 궁극적으로는, 아무리 듣기좋은 소리를 한다고 해도 왜 김구의 한반도에 대한 통합론적인식이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했는가.. 와 아주 동일한 문제라는 얘기죠.
세계적 추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그렇게나 특별한겁니까? 마치 그것이 뭔가 큰 비결인만양 떠들어대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70년대 이후로 등장한 통화론자들의 주장,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발전해온 최근 한 세대 동안의 자본주의적 경향은 19세기말 경제논리의 재탕에 불과합니다.
현재 세계적 추세는 새로운 것도 아니고, 굉장히 단순하게 얘기해서 50년대에서 70년대 사이의 수정자본주의에서 다시 19세기적 시장논리로 회귀한겁니다. 일정 수준의 복지를 확충시키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대는 것 보다, 기업의 소유주들의 이윤유지가 더 중요하다는 판정을 내려버린 것이죠. 작금의 현상이 뭔가
이전의 이념적인 시대와 근본적으로 다르고, 어떤 뚜렷한 이데올로기나 사상이 존재할 이유도 없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동화 만큼이나 비현실적이고 듣기좋은 달콤한 소리에 불과하죠. 현실적 필요와 욕구에 따라 변화가 찾아온다는 것은 실로 옳은 말이지만, 그 과정에서 그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누구에게 있고, 누구의 의사에 따라 변화의 정도가 조절되며, 시대와 상황이 변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변하지 않는 집단은(그 시대 그 상황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사람들) 누구인가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소들입니다. 변화를 일으키는 힘은 그 자체로 인격이 있어서 만민의 소망을 균등한 선에서 해결해주는 자동적인
초월적 의지가 아닙니다. 변화는, 그 변화에 이해가 걸려있는 집단들의 상호투쟁과 대립 속에서 그 수위와 수준이 결정되는 것일 뿐이에요. 쉽게 말해서, 국가의 위기에서도 단결안하는 국회의원들이 자기이익에 어긋나는 법률이 들어설 상황이면 무조건 초당파적으로 단결하여 비토를 거는 것을 상상하면 되겠죠.
즉, 뭔가 변화시키는 힘은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더 큰 힘을 지닌 사람들이 있고, 그 힘을 지닌 사람들의 의사가 발휘되는 것이 "변화"의 실체인 이상, 어떤 식으로 시대가 그 자신을 재정의하던간에 근본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간극이 존재하는 이상 저항과 대항의
물론, 어느 하나의 주장이나 사상이 사회를 움직이지는 않지요. 하지만 대극에 서있는 두 세력이라고 해서 그 둘이 똑같은 조건에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무리입니다. 최근 15년 정도의 기간동안의 변화에 노동운동이 적응을 하지 못하고 계속 전략적실수와 뻘타를 날리는 것도 사실이고, 그 내부의 비리가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도 사실입니다. 참고삼아 말하자면, 운동 내부에서의 폭력성, 가부장성, 비인격화/비인간화, 무리수, 위계체제 등등에 대해서는 양식있는 사람들이 오래부터 개혁을 통해 없애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던 것들이죠. 하지만, 객관적인 힘의 균형을 생각해보세요. 노조간부는 비리가 드러나면 바로 잡혀갑니다.
재벌총수는 누가 잡혀가나요? 그 기업을 사유화하면서 가장 많은 이익을 얻고, 가장 많은 비리를 벌이고, 그릇된 경영으로 회사가 도산하고 파산해도 그의 돈에서는 한푼도 안나갑니다. 회사가 망하고 노동자는 길거리에 나앉아도, 총수는 보유한 주식들이 휴지가 될지언정 그동안 벌어들인 실질적 재산은 고스란히 안고 손
을 떼면 그만이죠. 정치인들은 숱한 비리사실에도 불구하고 방탄국회 등 방식으로 오만가지 방식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고, 한번 잡혀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이 끝없이 재등장하여 재선출되고 다른 직함으로 일을 합니다. 언제 한번 좌파계열 정부가 서서 좌파계열 정책을 실현한 적도 없고, 노조의 정치세력화도 아직도
명실공히 불법으로 되어있고, 나라의 전면에 나서서 책임질만한 어떤 지위도 얻지 못했던 것이 노동자들임을 감안하다면, 최근 20여년간 국정과 경제를 손에쥐고 운영한 것은 전적으로 보수정치인들과 경제인들이죠. 이들 중 누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기에 대해 어떤 식으로 책임을 지고 어떤 대안을 내고 있는지에 대해
말씀을 해주세요. 노동과 자본은 분명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립이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식을 공유한다면 분명히 문책여부와 문제해결의 책임이 양자 모두에게 돌아가야 함에도 그것이 아직도, 일방적으로 한 쪽에 전가되고 있습니다. IMF 이후 기업도산이나 파산에
임박하여 국가는 막대한 돈을 받아 쳐들여 이 기업을 살렸습니다. 기업을 하면, 마땅히 망해야 할 위기에도 불구하고 항상 누군가가 돈을 대줘서 그 위기로부터 탈출을 시켜주나봅니다. 그런데, 그 위기를 타개한다고 벌인 일련의 정책들은 결국 누구를 구제하고 누구를 희생시킨겁니까?
노동운동권이 변해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운동을 하는 쪽에서는 생존의 문제에 임박하여 이러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해야 하는 처지에 있으나, 그 반대편의 사람들에겐 한없이 탈출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돈이 쏟아져 들어오고, 인사정책도 마음대로고, 복지정책도 축소하여
비용절감하면 그만입니다. 이들에겐, 국가환란이든 국가경제위기이든간에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왜 변화가 어느 한쪽에만 강요되는 것인가? 그것이 진정 '대세'라서? 그럴리가 있나요. 변화를 강제할 수 있는 힘이 어느 한 쪽에 쏠려있기 때문이죠. 노무현 정권을 보며 일부 보수우익에서 좌파라고 개탄을 하지만
공산주의와 이슬람교는 이상주의적이고 감상주의적이란 점에서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그럼 기독교는 어떻죠?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같은 신을 믿고 같은 경전에서 출발했는데 그렇다면 공산주의와 기독교는 이상주의적이고 감상주의적이란 점에서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라고 교회 신자들 앞에서 말하면 봉변나요.
그리고 이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공산주의와 이슬람은 도저히 양립할 수가 없어요. 공산주의는 철저한 무신론이고 모든 종교를 부정하지만, 이슬람은 철두철미한 일신교 신앙입니다. 무신론과 유신론이 비슷한 점이 많다니, 이런 소리는 처음 듣습니다. 차라리 공산주의는 신 없는 종교, 종교가 아닌 종교다... 라고 하는 게
물론 시위를 벌이는 데 폭력을 쓰는 것은 옳지 않으나, 그렇게까지 상황을 몰고 가고 시위=폭력이라는 등식으로 부정적으로 매도하려는 방식은 더 옳지 못합니다. 자유 민주주의는 국민이 정치에 직접 참가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옛날 봉건 시대처럼, 무슨 자비로운 왕이 불쌍한 신민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정치가 아니란
첫댓글 보면서 엘시드랑 너무 비교가 되더군요...엘시드 영화 시작할때가 압권이죠..이슬람군대의 대장이 이슬람문인, 수학자, 역사학자등등을 불러놓고 "책과 음악, 문화따위는 집어던지고 칼을 갈아라. 우린 위대한 알라의 부하들이다." 대충 이런식으로 이슬람인들을 문화따위는 모르는 피에 굶주린 짐승들로 매도한다는....
그나저나 역시 에드워드 노턴의 오우라는 대단했습니다. 자신의 얼굴이 안보여짐에도 불구하고 보면서 정말 표정이 보이는것 같았죠.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가 생각나는군요 ㅎㅎ
으아아아~~~보고 싶어~!~!
다스 베이다 ..... 네 중세의 다스 베이다죠 거친 숨소리 적절한 비유 브라보~~!!
진정한 다스베이더는 발리언 아버지인데요. "내가 니 애비다" ^.^;
그리고 리처드,,, 역시 이 영화에 내가 들어갈 곳은 없다.
공성 둘쨋날인가에 이슬람 성직자를 보고 있자니 소련의 정치장교가 생각나더군요.. -_-
'알라후 아크바르~알라후 아크바르~알라후 아크바르~알라후 아크바르~알라후 아크바르~'.. ;;;;;; 3번 하다 그칠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글쎄요...과연 공산주의와 이슬람이 비교 대상이 될른지 모르겠네요. 이슬람의 경우 그다기 감상적이라는 느낌은 없는데요? 되려 기독교보다 현실주의 적이라 할 수 있지요. 거의 모든 종교를 용납하고 (물론 그 대상의 지위변동은 있지만) 종교적 교의는 다른 종교와 그다지 다를 바 없는데요...
이슬람 원리주의나 기독교 근본주의나 똑같이 잔혹하고 비타협적인 것을 본다면 종교적 특성이지 이슬람적 특성은 아니지요. 이슬람에 대한 편견은 기독교의 편견에 의한 전파 (현실적으로 기독교 국가들의 영향력이 더 크기 때문에)에 의한 것이고 지금 일어나는 이슬람의 이름을 빌린 각종 사건사고는 이슬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대 국가의 힘의 대결일 뿐이라고 봅니다.
십자군을 앞에 놓고 이슬람을 "이상주의적"이라고 하는 것은 코메디죠. -_-; 서구적 합리주의가 싹튼 것은 불과 100년이 안되었다는 것을 상기하시길. 그 이전부터 자본주의다 합리적이다 하는데, 서구권에서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한 것도 20세기 중반 가까이입니다. 그나마 중반까지도 인정하지 않은 나라들도 수두룩해요.
지금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들이 당연해지기 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터지게 싸워야 했나도 잊으면 안되겠죠. 그런 사상적 투쟁의 기저에 사회주의가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구요. 공산주의에 대한 입장을 미리 정해놓고 거기에 맞춰 현상을 해석하시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Subotai님 글을 읽을 때 마다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저에게도 그리 느껴지는건 왜일까요..
외람되지만 KWEASSA 님의 의견에 손을 올려 드리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무슬림들이 겪은 역사적 변천, 그리고 그들이 현재 상황에 놓이기 까지 겪어야 했던 일들을 쑥 빼놓고 중동국가들 사이의 문제를 종교적인 것으로만 파악 할 수는 없죠. 그것은 마치, 조선왕조가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 이유가 순전히 성리학에 있다고 얘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자유와 평등이 조금씩 넓혀졌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과연 그런지는 집요한 역사적 눈으로 바라봐야겠죠. 프랑스 혁명의 역사가 어떤 문제들을 프랑스에 낳았고, 그것이 어떤 과정을 통해 극복되었는지는 근대 서구사회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명백히, 프랑스 혁명을 했다는 것 만으로 자동적으로 자유, 평등, 박애가 세상에 퍼뜨려진 것도 아니고, 프랑스 혁명 자체도 이미 특정 계층과 특정 계급의 이익을 위해서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자유와 평등이 확대되기 위한 과정 자체가 이미 사상적 투쟁의 장입니다. '빨간색이냐 파랑색이냐'의 문제가
이미 형이상학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인간적 삶의 여부와 직결되었던 시대의 유산이 아직도 세상에 이어져내려온 것이고요. 궁극적으로는, 아무리 듣기좋은 소리를 한다고 해도 왜 김구의 한반도에 대한 통합론적인식이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했는가.. 와 아주 동일한 문제라는 얘기죠.
세계적 추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그렇게나 특별한겁니까? 마치 그것이 뭔가 큰 비결인만양 떠들어대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70년대 이후로 등장한 통화론자들의 주장,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발전해온 최근 한 세대 동안의 자본주의적 경향은 19세기말 경제논리의 재탕에 불과합니다.
현재 세계적 추세는 새로운 것도 아니고, 굉장히 단순하게 얘기해서 50년대에서 70년대 사이의 수정자본주의에서 다시 19세기적 시장논리로 회귀한겁니다. 일정 수준의 복지를 확충시키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대는 것 보다, 기업의 소유주들의 이윤유지가 더 중요하다는 판정을 내려버린 것이죠. 작금의 현상이 뭔가
이전의 이념적인 시대와 근본적으로 다르고, 어떤 뚜렷한 이데올로기나 사상이 존재할 이유도 없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동화 만큼이나 비현실적이고 듣기좋은 달콤한 소리에 불과하죠. 현실적 필요와 욕구에 따라 변화가 찾아온다는 것은 실로 옳은 말이지만, 그 과정에서 그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누구에게 있고, 누구의 의사에 따라 변화의 정도가 조절되며, 시대와 상황이 변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변하지 않는 집단은(그 시대 그 상황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사람들) 누구인가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소들입니다. 변화를 일으키는 힘은 그 자체로 인격이 있어서 만민의 소망을 균등한 선에서 해결해주는 자동적인
초월적 의지가 아닙니다. 변화는, 그 변화에 이해가 걸려있는 집단들의 상호투쟁과 대립 속에서 그 수위와 수준이 결정되는 것일 뿐이에요. 쉽게 말해서, 국가의 위기에서도 단결안하는 국회의원들이 자기이익에 어긋나는 법률이 들어설 상황이면 무조건 초당파적으로 단결하여 비토를 거는 것을 상상하면 되겠죠.
즉, 뭔가 변화시키는 힘은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더 큰 힘을 지닌 사람들이 있고, 그 힘을 지닌 사람들의 의사가 발휘되는 것이 "변화"의 실체인 이상, 어떤 식으로 시대가 그 자신을 재정의하던간에 근본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간극이 존재하는 이상 저항과 대항의
구심으로써 어떤 이념들이 존재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현실이에요. 이념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라고 외쳐봤자, 이미 그 시대 자체가 반대편 이념에 매몰된 상황에서는 설득력이 없죠. 마치, 지금의 세상이 어느 쪽에도 매몰되지 않은 중립인양 생각할 수는 명백히 없으니까요.
물론, 어느 하나의 주장이나 사상이 사회를 움직이지는 않지요. 하지만 대극에 서있는 두 세력이라고 해서 그 둘이 똑같은 조건에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무리입니다. 최근 15년 정도의 기간동안의 변화에 노동운동이 적응을 하지 못하고 계속 전략적실수와 뻘타를 날리는 것도 사실이고, 그 내부의 비리가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도 사실입니다. 참고삼아 말하자면, 운동 내부에서의 폭력성, 가부장성, 비인격화/비인간화, 무리수, 위계체제 등등에 대해서는 양식있는 사람들이 오래부터 개혁을 통해 없애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던 것들이죠. 하지만, 객관적인 힘의 균형을 생각해보세요. 노조간부는 비리가 드러나면 바로 잡혀갑니다.
재벌총수는 누가 잡혀가나요? 그 기업을 사유화하면서 가장 많은 이익을 얻고, 가장 많은 비리를 벌이고, 그릇된 경영으로 회사가 도산하고 파산해도 그의 돈에서는 한푼도 안나갑니다. 회사가 망하고 노동자는 길거리에 나앉아도, 총수는 보유한 주식들이 휴지가 될지언정 그동안 벌어들인 실질적 재산은 고스란히 안고 손
을 떼면 그만이죠. 정치인들은 숱한 비리사실에도 불구하고 방탄국회 등 방식으로 오만가지 방식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고, 한번 잡혀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이 끝없이 재등장하여 재선출되고 다른 직함으로 일을 합니다. 언제 한번 좌파계열 정부가 서서 좌파계열 정책을 실현한 적도 없고, 노조의 정치세력화도 아직도
명실공히 불법으로 되어있고, 나라의 전면에 나서서 책임질만한 어떤 지위도 얻지 못했던 것이 노동자들임을 감안하다면, 최근 20여년간 국정과 경제를 손에쥐고 운영한 것은 전적으로 보수정치인들과 경제인들이죠. 이들 중 누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기에 대해 어떤 식으로 책임을 지고 어떤 대안을 내고 있는지에 대해
말씀을 해주세요. 노동과 자본은 분명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립이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식을 공유한다면 분명히 문책여부와 문제해결의 책임이 양자 모두에게 돌아가야 함에도 그것이 아직도, 일방적으로 한 쪽에 전가되고 있습니다. IMF 이후 기업도산이나 파산에
임박하여 국가는 막대한 돈을 받아 쳐들여 이 기업을 살렸습니다. 기업을 하면, 마땅히 망해야 할 위기에도 불구하고 항상 누군가가 돈을 대줘서 그 위기로부터 탈출을 시켜주나봅니다. 그런데, 그 위기를 타개한다고 벌인 일련의 정책들은 결국 누구를 구제하고 누구를 희생시킨겁니까?
노동운동권이 변해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운동을 하는 쪽에서는 생존의 문제에 임박하여 이러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해야 하는 처지에 있으나, 그 반대편의 사람들에겐 한없이 탈출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돈이 쏟아져 들어오고, 인사정책도 마음대로고, 복지정책도 축소하여
비용절감하면 그만입니다. 이들에겐, 국가환란이든 국가경제위기이든간에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왜 변화가 어느 한쪽에만 강요되는 것인가? 그것이 진정 '대세'라서? 그럴리가 있나요. 변화를 강제할 수 있는 힘이 어느 한 쪽에 쏠려있기 때문이죠. 노무현 정권을 보며 일부 보수우익에서 좌파라고 개탄을 하지만
국제레벨에서 보면 한반도의 정치적 지평의 눈금은 아직도 한참, 오른쪽으로 홱 쏠려있을 뿐이에요. 지난 50년 동안 있던 그 곳에 여전히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공산주의와 이슬람교는 이상주의적이고 감상주의적이란 점에서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그럼 기독교는 어떻죠?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같은 신을 믿고 같은 경전에서 출발했는데 그렇다면 공산주의와 기독교는 이상주의적이고 감상주의적이란 점에서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라고 교회 신자들 앞에서 말하면 봉변나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공산주의 미워하는 집단이 바로 기독교 계통인걸요...
이상주의적이고 감상주의적이란 점에서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라고요? 아니, 그럼 세상에 어떤 종교가 이상주의적이고 감상주의적이지 않은 겁니까? 이상과 감상이 없으면 그게 종교입니까?
그리고 이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공산주의와 이슬람은 도저히 양립할 수가 없어요. 공산주의는 철저한 무신론이고 모든 종교를 부정하지만, 이슬람은 철두철미한 일신교 신앙입니다. 무신론과 유신론이 비슷한 점이 많다니, 이런 소리는 처음 듣습니다. 차라리 공산주의는 신 없는 종교, 종교가 아닌 종교다... 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이 아니었을까요? 수보타이님께서 무슨 이유로 극렬 반공주의에 빠지셨는지는 모르지만, 보면서 참 안타깝습니다.
폭력적인 데모로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시위는 모두 폭력적인 데모입니까? 시위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당연한 권리일 뿐입니다. 가만히 아무 소리 안 하고 있으면 누가 자기 입에 밥을 넣어 줍니까?
전국민적인 공감대 형성이 중요할뿐/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겁니까? 거리로 나와서 자기 목소리를 외치지 않으면 누가 신경이나 써줄까요?
물론 시위를 벌이는 데 폭력을 쓰는 것은 옳지 않으나, 그렇게까지 상황을 몰고 가고 시위=폭력이라는 등식으로 부정적으로 매도하려는 방식은 더 옳지 못합니다. 자유 민주주의는 국민이 정치에 직접 참가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옛날 봉건 시대처럼, 무슨 자비로운 왕이 불쌍한 신민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정치가 아니란
말입니다. 공산주의의 반대말이 자유 민주주의는 아닙니다. 국민들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려고 하면 폭도라고 찍어누르고, 빨갱이라는 빨간칠을 덕덕 칠하려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의 적이 아닐까요?
민주주의는 피와 폭력으로 쟁취된 겁니다. 제왕, 귀족들과 대화하고 타협해서 얻어낸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권위적인 폭력은 폭력으로 맞설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그들이 민중이 무섭다고 느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