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읽는 우리
문화 유산 이야기 (36)
조선시대 수도 한양의 하루를 책임지던 종루(鐘樓)
- 보신각(普信閣)
오늘날 크게 고쳐 지어진 종루
(보신각)의 야경
한 해가 오고 가는 가운데
사람들이 항상 모여 묵은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곳이 있다.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종소리를 들으며 각자 저마다의 소원을 갈망해 보기도 한다.
한 해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종이 있는 자리, 그곳은 바로 조선시대 한양의 하루 일과를 책임지던 곳인 종루,
보신각이다.
조선시대 한양의 하루 일과를
책임지던 종루가 오늘날에는 오고가는 한해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곳으로 바뀌어
이용되고 있다.
흔히 종루라기 보다 종각으로
더 잘 알려진 보신각, 이번 회에서는 그 보신각 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시대 도성 한양의
파수꾼 - 종루(鍾樓)
앞서 잠깐 이야기한 바 있듯이
종루, 즉 보신각은 조선시대 한양 도성의 하루 일과의 시작과 끝을 알리던 곳이다.
하루가 시작되면 파루를
쳐서 하루의 시작을 알리게 되고, 하루가 마무리 되면 인정을 쳐서 하루의 끝을 알리던
그런 곳이다.
따라서 조선시대 수도 한양의
하루는 바로 이 종루에서 울려 퍼지는 파루 소리로 시작되고, 인정 소리로 마무리
되었다. 특히 지방에서 볼 일을 보고자 한양으로 올라오는사람들은 특히 이 종소리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정도로 종루는
조선시대의 수도 한양의 하루 일과를 책임지는 파수꾼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종루가 처음 지어진 것은
태조때의 일인데, 태조가 조선을 처음 세우고 한양으로 도읍을 옮겨 오면서 고려의
옛 제도에 따라 태조 5년이던 1396년에 청운교 서쪽(지금의 인사동 입구)에 누각을 짓고 종을 걸어 종소리에 따라 각 성문을 열고 닫게 하였다.
이 가운데 새벽종은 앞서
이야기 한 바 대로 파루라 하여 오전 4시경에 33천(天)을
뜻하는 33 회를 쳤고 저녁종은 인정(人定, 속칭 인경)이라 하여 28수(宿)을 뜻하는
28번을 치도록 했으며 또 도성 안에 큰 불이 났을때에도 종을 쳐서
성안에 사는 주민에게 알렸다.
태조때 처음 지어진 종루(鐘樓)는 2층 5칸이었으며,
이렇다 할 이름 없이 그저 종루라 불리우게 되었다.
이후 태종 13년인 1413년에 인사동
부근에 있던 종루를 다시 종묘 남쪽의 길가에 5칸의 층루를 지어 옮겼는데, 이 종루는
광통교의 북쪽인 중부 운종가(지금의 종로 네거리)로 옮겼다. 따라서 지금 있는 종루의
위치는 바로 이 태종때 옮겨 온 자리인 셈이다.
그 후 세종
22년이던 1440 년에 태종때 세웠던 종루를 헐고 다시 고쳐 지었는데, 정확하게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종각의 규모를 크게 넓힌 것으로 짐작된다. 이
때의 규모는 동서 5칸, 남북 4칸으로 위층에는 종을 달고 누 아래로는 사람, 말,
수레가 다니도록 하였다.
하지만 전란이라고 해서
이 종루 역시 온전하게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1592년이던 선조 25년의
임진왜란으로 종루는 불에 타게 되었고, 종루에 걸려 있던 종 또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러나 종루는 원래대로 짓지 못하고 소박하게 지어 단지 종을 걸어 놓고
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본래의 종을 찾지 못해 원각사 옛 터 (지금의 탑골공원 자리)에
있던 종으로 종루에 걸고 파루와 인정을 치도록 하였다.
그러다 광해군
11년이던 1619년 4월에 누각을 새로 고쳐 짓고 숙종 12년이던 1686년 1월에 큰 불로
다시 건립하였다.
고종 6년이던 1869년,
종루가 자리하고 있던 지금의 종로 1가 일대에 대화재가 발생하여 포전(布廛), 지전(紙廛), 동상전(東床廛) 등과 함께 소실되어 10월에 다시 건립하였으며 고종
32년(1895) 3월 15일 고종이 사액을 내려 ‘보신각(普信閣)’이란 현판을 건 뒤부터 보신각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보신각이라
불리는 것은 바로 고종때의 일이었으며 고종 이전까지는 그저 종루라 불리워 왔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선조 이래로 사용되어
오던 종도 낡고 오래되어 더 이상 소리를 낼 수 없게 되자 1988년에 교체되고 옛
종은 현재 국립 중앙 박물관 뒤 편에 건립된 각 속에 보존되고 있다.
조선 말기 단층일 때의 보신각
- 이 때에는 당연히 종각이라고 표현해야 한다.
오늘날 크게 고쳐 지어진 종루
- 보신각 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어 너무도 복잡하게 한다. 과연 어떻게 불러야 할지..
종각인가? 종루인가?
어느 표현이 옳은 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 가운데 하나가 종로이다.
그 종로는 예전에 운종가라
하여 바로 종루 부근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각종 물건을 사고 팔던 대표적인 상가
밀집지역이 있었던 까닭에 그렇게 불리우게 된 것이며, 현재 종로라는 명칭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헌데, 그 종로의 중심지
종루는 오늘날 2층 건물임에도 사람들은 그저 종각이라 부르고 있다. 왜란 이후 단층으로
재건되면서, 그리고 고종에 의해 보신각이라는 이름이 붙여지면서 종각이라 불리우는
것은 이해할 만하지만 오늘날 크게 지어진 2층 건물을 새삼스레 종각이라 부르는
것은 무척 어색해 보인다. 차라리 종루라 불렀다면 그나마 덜 어색할텐데..
참고로 이야기 하자면 건물의
성격과 용도에 따라서 그 건물에는 일정한 명칭이 붙게 된는데, '전-당-합-각-재-헌-누-정'
순서의 명칭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명칭의 구체적인 용도는
생략하지만, 중층의 건물인 경우에는 대개 누가 붙는데, 오늘날 중층으로 지어진
그것은 종각이 아니라 마땅히 종루라 불려야 하며, 단층으로 지어진 작은 집은 으레
종각이라 불려야 옳은 표현이다. 단층으로 지어져 있다면 종각이라 불러도
무방하겠지만, 중층이 된 이상 더 이상 종각으로 불릴 수 없기 때문이다. 위에 필자가
올린 두 개의 사진을 놓고 보면 왜 종루가 되어야 하는 지 그 이유는 좀 더 분명해
질 것으로믿는다.
비록 생각 없는 사람들에
의해 그렇게 불려져서 종각이라는 어색한 이름을 달고 다녔지만 이제부터라도 종루라는
표현을 써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너무도 당연하고 또 앞서 이야기 했기에 더이상
말할 것이 못된다. 그래도 꼭, 굳이 이유를 찾으라면 경복궁의 경회루가
경회각이라는 이름이 될 수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2층의 누 건물이 각으로
둔갑할 수는 없으니까..
허나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보신각의 명칭 이다. 확장이 되었던 까닭에 종루라는 이름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으나
막상 고쳐놓고 보면 보신각이라는 명칭 또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 또한 애매하므로
보다 많은 사람들의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쉽게 부른다면 종루가 되겠지만, 정식
명칭인 보신각 문제가 애매하기에.. 하여간 이야기를 해 놓고 보니 또 복잡해 진다..
어찌되었거나 오늘날 와서
다시 크게 지어진 까닭에 그렇게 큰 볼 맛은 나지 않지만, 그 큰 규모의 건물을 보노라면
물건을 사고 팔기 위해 분주히 오가던 옛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리던
종루, 그 종루는 세월의 끝 없는 흐름 속에 이제는 한 해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장소로
변하였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시간의 흐름을 알리는 파수꾼 역할을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