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 미래 교육이 요구하는 인재는 어떤 모습일까? 배운 것을 모조리 암기해 시험을 잘 보기만 하는 학생은 아닐 것이다. 경기 양곡고의 디퍼러닝 대회는 복합적인 사회 변화를 이해하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미래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다. 교과서에서 배운 지식에만 머물지 않고 스스로 주제를 선정하고 탐구해 문제 해결과 실천 활동까지 포함하는 장기 프로젝트다. 참가 팀들은 의제 선정의 창의성, 자료 수집의 적절성, 해법과 대안 제시, 실천 활동의 효과성, 프레젠테이션 능력등 총 5가지의 채점 기준으로 우열을 가렸고 총 3개 팀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들이 발견한 문제점과 해결 방안이 무엇이었는지, 길었던 프로젝트 과정 속으로 들어가보자.
취재 박민아 리포터 minapark@naeil.com 사진·자료 경기 양곡고등학교
약 8개월에 걸친 양곡고의 프로젝트 활동 디퍼러닝 대회의 최종 발표회가 지난 11월에 열렸다. 디퍼 러닝이란 자신의 주변이나 지역 사회, 국가 전체에서 발생하는 문제점(관심사)을 찾아 ▶ 의제(주제) 선정 ▶ 관련 자료 수집 ▶ 해법과 대안 제시 ▶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 활동 순으로 진행하는 장기 프로젝트 활동이다.
3년 차를 맞은 양곡고 디퍼러닝 대회는 지난 4월 설명회를 시작으로 5월 연구 계획서 제출과 함께 참가 신청을 받았으며, 7월 1차 발표회를 거쳐 지난 11월 최종 발표회를 열었다. 연구 계획서에는 어떤 주제를 연구할 지와 주제 선정 이유, 연구 계획 등을 담았으며, 연구 주제에 따라 학교는 관련 과목 교사를 지도 교사로 배치했다. 1차 발표를 마친 팀에게는 관련 논문을 찾아볼 수 있도록 논문 사이트의 학교 아이디를 제공하고, 연구 관련 물품 구입을 위해 5만 원 정도의 연구 활동비를 지급했다.
최종 발표에 참여한 1학년 10개 팀, 2학년 17개 팀 중 ‘YG환경보호단’이 영예의 1위를 차지했으며, ‘하굣길 어벤저스’ 팀이 2위, ‘김박송’ 팀이 3위로 최종 선정됐다. 8개월에 걸친 수상 팀들의 긴 여정을 팀원들과 함께 되돌아봤다.
버려지는 소중한 자원-폐분필 by YG환경보호단(박윤정, 백승우, 신사랑, 임진욱)
작지만 큰 실천!
YG환경보호단은 학급에서 칠판 담당을 맡고 있는 팀원으로부터 분필들이 잘 부러지고 작아지면 쓸 수 없어 상당히 많은 양이 버려지고 있음을 알게 됐다. 폐분필 재활용으로 주제를 정한 후 분필 성분을 조사하고 일주일 간격으로 각 교실을 방문해 쓰레기 통에 버려지는 분필을 수거했다.
학교 아이디로 ‘dbpia’라는 논문 사이트를 검색해 석회가루가 인 성분의 물을 중화시킨 다는 논문을 찾았고, 수거한 분필을 이용해 실험을 한 후 분필로 수질 오염 개선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또 색분필로 석고 방향제를 제작해 학교 화장실 곳곳에 비치하고, 분필 재활용을 위한 수거함과 알림판을 만들어 교내 게시판에 설치, 학생들 스스로 색을 분리해 수거함에 넣을 수 있도록 했다.
“제가 학급 칠판 관리 담당이었어요. 칠판을 정리하다 보니 쓰다 버려지는 분필이 생각보다 너무 많은 거예요. 플라스틱이나 비닐 등의 재활용은 범세계적인 환경운동으로 자리 잡았는데 분필은 재활용 방법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이디어를 냈죠.”_2학년 백승우 학생
“우선 행정실로 가서 우리 학교 분필의 성분을 알아봤어요. 단순 석회가루로 이루어져 유해한 성분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재활용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지요. 이후 분필의 석회 성분이 오염된 물을 정화시킬 수 있는지 직접 실험을 해보기도 하고, 석회가루가 산성화된 토양의 비료로 쓰여 중화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된 후 직접 밭에 가서 뿌려보기도 했죠.”_2학년 임진욱 학생
“색분필을 하천이나 토양에 재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석고 방향제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어요. 각 반에서 일부러 방향제를 구입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비용도 줄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분필을 직접 빻아서 물과 오일을 섞고 틀에 넣어 굳혔더니 향기도 잘 나고, 또 색소 없이 색을 조합해 여러 색을 만들어내는 재미도 있어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어요.”_2학년 신사랑 학생
안전하고 밝은 하굣길 만들기 by 하굣길 어벤저스(임지예, 김예지, 황은정, 임유진)
늦게 집에 가도 걱정 없어요!
지역 사회의 문제점을 찾고 그에 대해 직접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디퍼러닝’ 대회의 본질에 집중한 하굣길 어벤져스는 야간자율학습을 마친 학생들과 학교 운동장을 산책하는 지역 주민들이 불빛이 어두워 불편을 겪는 것을 확인하고 안전한 하굣길 만들기를 주제로 정했다.
설문조사를 통해 문제점을 파악한 다음, 타 지역의 모범 사례를 조사했다. 교감 선생님 과의 인터뷰를 통해 학생들이 느끼는 문제점을 전달하고 학교에 도움을 요청했다. 셉테드 기법을 이용해 학교 내 가로등을 노란색 페인트로 칠하고, 교내 어두운 곳에 바닥등을 설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반사 테이프를 운동장 계단에 부착했다. 활동을 마친 후 개선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학생들로부터 교내 구석구석이 더 밝아진 것 같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
“설문조사, 선행 사례 연구,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우리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어두운 하굣길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과 가로등 개선에 대한 의견을 조사해 수치화하고, 바닥등 선행 사례를 조사해 양곡고에 적용할 수 있는지 알아봤어요. 또 교감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하굣길에 학생들이 느끼는 불안감과 가로등의 문제점을 전달하고 학교 차원에서의 개선을 약속 받았죠.”_2학년 임지예 학생
“타 지역의 모범 사례를 조사하다 골목에 매립형 바닥 조명등을 설치해 주민들의 퇴근길 불안감을 개선한 동대문구의 사례를 찾았어요. 동대문구의 사례는 바닥 매립형으로 공사 과정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저희는 직접 설치할 수 있는 조립형 매립 조명등을 구입, 제작해 가로등이 없는 미술실 앞 화단 앞쪽에 설치했어요. 또 추가로 알아본 반사 테이프를 학교 운동장 계단에 부착해 안전사고를 예방하고자 했어요.”_2학년 황은정 학생
“처음엔 가로등으로 뭘 사용할지 찾아봤어요. 태양광으로 하려고 했는데 어두운 곳은 그늘이 많이 져 햇빛을 잘 받을수 없을 것 같아 걱정됐죠. 가로등 말고도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셉테드 기법을 알게 됐어요. 선행 사례를 찾아봤고 하굣길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 교감 선생님에게 허락을 구한 후 시범적으로 가로등두 개를 칠했어요. 가로등을 페인트칠하면 좀 더 밝아지는 효과가 날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친구들의 반응이 좋아서 기뻤어요!”_2학년 임유진 학생
✚ 셉테드 기법(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범죄예방환경설계도시 환경을 바꿔 범죄를 방지하고 주민의 불안감을 줄이는 기법. 주요 방법으로는 인적이 드문 공원이나 지하주차장에 주민 동의를 얻어 감시카메라 설치, 가로등은 침침한 수은등이나 나트륨등을 밝은 할로겐등으로 교체, 밝은 계통으로 거리 도색 등이 있다.
엄민용 교사의 한마디~
학생들이 가르쳐준 정작 소중한 것은 …
“학교에 수십 개의 대회가 있어요. 학생부 종합 전형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지요. 대회 최종 발표가 나면 학생들이 서로 껴안고 울고 웃어요. 자기 이름이 수상자 명단에 있으면 소리를 지르고 웃고 울어요. 상을 못 받은 학생은 또 울어요. 지난 과정이 떠오르거든요. 자신이 쏟아부은 시간과 열정, 그 과정에서 함께한 팀 구성원들이 생각난다고 해요. 우리 학생들은 그러면서 성장하는 것 같아요.
정시 비중이 늘어나면서 ‘이 대회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제가 대학 입시를 위해 이 대회를 만들었는데, 정작 학생들은 입시와 상관없이 이 대회 속에서 성장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고마워요. 대입 생각으로 머릿속 절반 이상이 차 있는 교사에게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었으니까요.”
내일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