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알았습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가장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우리 삶의 위치를 스스로 느끼고 인정하도록 일깨워준 아름다운 세실리아 가족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3년 전 어느 날 부터 올망졸망 아이들을 데리고 가끔 창고를 들리셨던 자매님, 오실 때는 이름표가 붙은 저금통을 들고 오셔서는 '우리 아이들이 동전을 모아 놓은 것인데 소금창고에서 좋은 일을 하는데에 기금으로 써달라.' 하시며 들고 오신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지난해에는 소금창고가 별다른 수입도 없이 사회에서 소외되고 방치된 사람들에게 위로자로 다가가 희망을 주고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 가정, 불우한 호스피스환자들, 그리고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형제에게 사랑을 베푸는데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어서 죄송하다며 스스로 자신부터 매월 만 원씩 송금하겠다며 소금창고 후원회를 조직해 주었습니다. 그는 먼저 자신의 오빠 언니에게 매달 정기적으로 소금창고 후원회비를 내 달라며 창고지기 막달레나의 통장 계좌번호를 돌렸답니다. 사실 그 당시 창고의 재정은 열악하기 그지없었죠. 맞은 편 동네가 재개발공사로 모두 이주했었고 지금은 아파트공사가 한창입니다. 사람들이 없으니 수요가 없는 것은 당연하고, 계속 창고로 기증되어 들어오는 의류는 넘쳐나고, 때문에 많은 물량을 국내 어려운 공동체에 보내어 나눔을 하였습니다. 그래도 공급과잉으로 남아서 넘치는 옷가지들을 선별해 동남아지역 어려운 나라에 보내주게도 되었습니다. 활동영역이 넓혀져 이런저런 경비지출이 늘어나 자연히 자금은 부족할 때 선한 마음으로 세실리아 자매님이 만들어 준 후원기금이 작기는 하지만 저희에게는 당시 큰 보탬이 되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사연을 주변 가까운 지인들에게 얘기했더니 대자, 대녀들도 동참하고 창고봉사자들도 정기회원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제는 뜻을 함께하는 고객들까지 합세하여 지난해 말에 결산해 보니 십시일반이라고 그 금액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회원 수도 마흔 한 명으로 늘어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소금창고는 수입이 별반 없는 가운데서도 가게 월세를 밀리지 아니하고 지불하며 잘 버티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셈입니다. 새해가 밝아 왔습니다. 우리들은 도와주신 은인들과 봉사자들을 위한 송년미사를 어느 마음 따뜻한 분의 경비지원을 받아 제주도 성이시돌 피정의 집에서 봉헌했습니다. 3박4일 피정을 마치는 날 새벽에는 피정의 집에서 가까운 성클라라 봉쇄수도원에서 파견미사가 있었는데 그 때에도 마찬가지로 저희들 소금창고에 알게 모르게 선행을 베풀어 주신 후원자를 위한 미사로 봉헌하고 서울로 올라 왔었습니다.
손님의 발길도 뚝 끊긴 어제 오후, 기도중 불현듯이 소금창고 재정자립도를 충족시켜 주는데에 그 시금석이 되어 주고, 후원회의 첫 돌이 되어준 세실리아 자매와 그 아이들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더구나 년말 감사카드를 보내려 주소를 물어봤을 때, 그는 지난 11월달에 부천쪽으로 이사왔다며 새 주소를 알려 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에 웬지 편치 않은 내적기운이 감돈 것은 주소 말미에 괄호하고 '지하실 방'이라고 적혀 있는 내용이 자꾸 마음에 걸렸던 것입니다. 같이 봉사하는 창고지기 막달레나에게 이 마음을 얘기 했더니 그도 생각이 같았습니다. 막달레나도 우리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스스로 후원회를 만들어 우릴 도와 준 세실리아가 서울에서 아이들 학교를 보내다가 왜?지방으로 이사 갔을까? 무언지 모르게 마음이 짠했다며 걱정스럽게 말했습니다. 남들은 도리어 지방에 거주하다가도 아이들 교육때문에 서울로 옮겨오는 판인데~~, 뭔가 측은한 맘과 애잔함이 가슴에 맺혀 동시에 의기투합? '그래 궁금해 할 것이 아니라 지금 가자!' 하고는 즉시 창고문을 닫아 걸고 길을 나섰습니다.
고마움을 선물해 준 은인을 방문하는데 그냥 갈 수 없지 않는가! 마침 창고에는 어느 분이 오래 전 저에게 선물해주셨던 고급 와인이 한 병 있었습니다. 백화점 포장지에 싸여 뜯어보지도 않은 것입니다. 맞아 그 집 신랑이 술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으니 잘 되었습니다. 또 마침 어제 양평 양동면에서 수도자적 삶으로 거룩한 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테파노형제와 박소화데레사 부부가 자신들이 농사지어 만든 것이라며 고추짱아치 세 통을 주고 간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도 한 통 넣고, 단장님이 년말에 가져오신 샴푸 린스등 생활용품도 일부챙겨 들고 길을 나섰습니다. 1호선 전철을 타고 세실리아 자매님이 알려준 대로 소사역에 내리니 개찰구 앞에 그 자매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함께 집으로 걸어가며 아이들이 뭘 잘먹느냐? 물었더니 삼겹살이면 최고라고 했습니다. 그래 집으로 들어가기전 동네에서 삼겹살도 세 근사고, 상추등도 준비해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둠컴컴한 지하실 입구를 통하여 방으로 들어서니 꼬맹이들 셋이서는 한참 텔레비젼에 빠져 있었습니다. 신랑은 기다려도 얼굴을 아니 보여주길래 물어보니 저쪽 방에서 자고있다 했습니다. 아내가 분명 들어갔다가 나온 것을 봤는데~~,? 삼겹살이 다 구워지고 상이 차려 졌는데도 남편이 안나오니 부인인 세실리아 자매님은 우리보기가 민망했었는지 그 마음이 안절부절하는 해 어쩔줄 몰라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신랑은 무슨 술을 좋아해?' 물었더니 남편은 항상 참이슬 파란뚜껑만 마신다고 귀띔해 주었습니다. 나는 슬그머니 나가 동네수퍼에서 소주 두 병을 사들고 왔습니다. 세실리아가 저에게 부탁했습니다. '오빠가 들어가 나오라고 해보세요.' 방에 들어가 살며시 그 마음을 노크했습니다. '은지아빠랑 술 한잔 하려구 몇년만에 찾아왔어요, 내가 지금 참이슬 파란뚜껑 사왔거든,' 하였더니 그는 겸면쩍은듯이 일어나 나왔습니다. 그는 자고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을 만큼 세상사에서 받은 상처가 워낙 컷기에 그를 스스로 외부와 단절시켰던 것 뿐이었습니다.
이럴 때 술은 참 좋습니다. 하느님은 이런 날을 고려해 술을 만들었나 봅니다. 마음의 빗장을 풀고 그가 술술 자신을 보여줬습니다. 얘기를 나누다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도리어 삶의 가치관이 뚜렷하고 생각도 바르며, 예의도 중시여기는 유교 도덕적인 성품의 소유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염되지 않은 맑은 영혼이니 혼탁한 세상에서 아귀다툼하며 생존경쟁에 살아 남고자 남을 이용하는 사람들 틈에서 실망도 많이 느꼈고, 상처 또한 많이 받았음을 실토했습니다. 반듯한 자존심에 남에 도움을 받거나 의존하는 그런 스타일도 아니니 처한 형편상 무엇하나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자신의 처지가 마냥 서러웠었나 봅니다. 그러니 타인과의 관계에는 스스로 견고한 담을 쌓아두고 어쩔 수 없는 고립된 삶을 하루하루 살아내며 속으론 많이 숨죽여 울었을 것이란 짐작이 들어 그가 매우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우린 소금창고에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늘상 일어나는 감동적인 사례를 들려주며 은지아빠와 급격히 친밀해 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첫 기적도 카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사건이 시초였는데, 우리 만남도 '맑은 물 파란 뚜껑'이 이집에서 작은 기적을 드러내는데 한 몫을 해냈습니다. 굳게 닫혔던 형제의 마음문을 활짝 열어졌혔으니 이제 그 가정에도 비로소 평화의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들이 어렵게 마주앉은 자리에서 점점 친숙한 대화로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곁에서 아이들은 어찌나 막달레나가 구워주는 삼겹살을 잘들 맛있게 먹는지, 보는 내 마음이 배불러 왔습니다. 아내 세실리아는 정말 살아 활동하는 성모님이셨습니다. 우리가 간 날도 세 아이들을 성당 미사를 다녀오게 하였고, 자신은 쉬는 날인데도 집에서 두 시간이나 넘게 걸리는 상계동까지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왔다합니다. 자신은 이렇게 힘겹게 열심히 살면서도 그녀는 항상 남들 걱정만하고 삽니다. 한 때는 병중에 있는 오빠 걱정에 늘 기도해 달라며 우리에게도 부탁을 했었는데, 지난 11월 달에도 잠깐 창고에 들려 십만원을 주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동안 후원회비를 오래도록 내지 못해 많이 밀렸다며, 그 후에 우린 그 돈이 어떤 것인지를 남을 통해 뒤늦게 알게 되어 마음이 숙연해 진 적도 있었습니다. 당시 삶이 너무 곤궁해져 아이들 준비물 값도 없어 애를 태우던 시절이었답니다. 할 수 없이 서울에 있는 오빠 집에 들려 입이 안 떨어지는 것을 억지로 상황을 이야기해서 오빠에게 이십 만원을 도움 받아 가는 길에 소금창고에 들려서 그 반이나 되는 십 만원을 놓고 간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작은 자, 그 한 사람에게 해 준것이 바로 당신에게 해 준 것이라고! 보십시요. 우리가 가장 가난하며 작은 자라고 여겼던 세실리아 자매님 가족들이 우리 소금창고를 살렸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죄를 대신 보속하고자 우리 대신 많이 아팠습니다. 생활비도 넉넉치 아니할 때 아이들은 저금통을 들고 창고를 왔었습니다. 그 엄마는 자신이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임에도 도리어 소금창고가 더 어렵다며 후원회를 자신이 먼저 만들어 저희에게 희망의 불을 지펴 줬습니다. 가장 고통스럽고 힘들 때 조차 그는 자기 가족의 생계보다는 소금창고를 더 걱정하여 오빠에게서 도움받아 얻어 온 것 중에서 기꺼이 반을 창고에 덜어주고 갔습니다. 이는 엘리야시대의 사렙타의 과부가 실천한 사랑과도 같습니다. 이제 이 가정에 쌀독도 바닥을 보이지 않을 것이며 기름병도 마르지 않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더구나 우리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알았습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 가장 가난하며 작은자인 세실리아와 세 아이들에게 도움을 입고 사는 창고지기들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이 가난하며 작은자에 지나지 않는 창고지기들입니다. 허니 우린 더 감사하는 마음을 지닐 수 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더 겸손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어제 찾아 간 그 지하실 방은 베들레헴의 마굿간과도 같습니다. 가장 아파하시는 예수님이 누워 계셨고, 그 곁에서는 모든 상황을 가슴 깊이 간직한 채 묵묵히 순명하시며 사랑을 실천하시는 성모님도 계셨습니다. 세 아이들은 천사였습니다. 우리 창고지기들은 새해 첫 지방 출장?을 베들레헴으로 멋지게 경배하고 왔습니다. 그곳에 계신 예수님 어서 일어 나십시요. 성모님 손을 붙잡고 세 천사를 앞장 세워 소금창고를 찾아 주십시요. 그날이 오기를 고대하며 저희들 깨어있겠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날, 당신을 부끄럽지 아니한 맘으로 모시도록 당신의 당부대로 창고로 들어오시는 모든 분들 뿐만이 아니라, 병든 이들, 감옥에 갇힌이들, 나그네들, 헐벗은 이들,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삶을 몸으로 실천하며 기다리고 있겠나이다.
위는 지난 2013년 소금창고
송년회 자리에서 꾸준히 저금통으로
용돈을 모아 기부해 온 세 아이들을
대표해서 큰 딸(당시 초등6년)에게
선행상장을 만들어 전달 했습니다.
아이들 대신 엄마 세실리나가 수상.
모든 봉사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창고지기 막달레나가 세 아이들의
선행해 온 아름다운 저금통 사연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날 창고에는
축하파티를 위해서
생활성가 가수 김정식로제리오
키보이스 원년멤버 차도균씨
뮤지칼스타이자 CCM가수 전향기씨가
참석해 자리를 귀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모든 일
하느님께는 영광이요.
이 세상에는 평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