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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거인(El Coloso)》(1808~1812년작)
유럽에서 십자군전쟁과 그것의 실패가 생성시킨 본격적 왕권은 연발하는 수많은 전쟁 덕택에 강화되면서, 결정적으로는 왕권신수설의 등장으로 절정에 이른다. 신의 대리인으로서 교황은 중세를 거치면서 르네상스 시대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유럽에 행사했다. 하지만 그가 주관한 절대적 신법의 위력은 이름만 신의 권능이었지 실은 교황이라는 한 인간의 권력에 불과했다. 교황이 신의 이름으로 휘두른 막강한 권력의 절정이 바로 십자군전쟁으로 폭발된다. 그러나 십자군전쟁의 실패와 이른바 아비뇽 유수(幽囚, Avigion captivity: 1309~1377)사건은 이전부터 지속되던 왕들과 교황의 권력투쟁에서 왕권이 결정적 우세를 확보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때부터 신과 신법은 실질적 힘이 아니라 왕들의 권력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단순한 상징에 불과해진다. 바로 이 정당성의 주재자로서만 신은 실질적 권력투쟁에 개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기야 신이 과연 한 번이라도 인간권력투쟁에 간섭하여 실력을 행사해봤겠냐마는.
어쨌든 이런 교황권의 실추와 더불어 치열한 인간의 권력투쟁이 본격궤도에 오르면서, 르네상스와 자본주의 시대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무릇 권력투쟁이 격화되는 것은 바로 기존의 권력(power)의 정당성과 권력자의 능력(power of the powers)이 약화될 때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바로 이 아비뇽 유수사건 역시 절대적인 권력기관이었던 교회의 분열(Schism)과 타락이 가져온 신권(교황권)의 몰락을 반영한다. 이 시기부터 극단적으로 말하면 유럽에서 '신의 몰락'이 진행도기 시작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몰락의 여정은 동시에 종교개혁으로 촉발된 신의 세속화를 가속화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저 프랑스에서 발생한 대봉기로 완전한 세속화가 이루어지기까지 산산이 부서진 신의 잠행은 지속된다.
하지만 교황권의 실추는 권력의 새로운 형식과 가치, 즉 인간의 권력과 인간의 가치의 등장을 촉진했다. 그리하여 신이 부여하고 신의 이름 앞에 부복하던 권력의 정당성은 이제 인간의 힘과 능력, 곧 왕의 권력을 통해 획득되고 초빙되고 도입되는 상징이 된다. 즉 무력 ㅡ 칼과 술책과 전쟁 ㅡ 을 통해 획득된 권력과 그 정당성은 이제 신의 이름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왕의 권력을 통해 획득되고 그 권력이 뒷받침해야 했다. 즉, ‘인간으로서 왕’ 되기로, 그리고 ‘왕관과 칼’로 인세 다스리기로. 신의 권능은 이 왕관과 칼을 빛나게 하는 조명으로만 “도용”되는 허상의 힘만 지니게 되었다. 그럼에도 신의 권능은 이렇게나마 명맥을 유지하면서 인간의 권력의 고문, 실권 없는 명예직과 같은 소임을 맡게 된다.
그리하여 왕의 권력은 왕이 관장할 수 있는 물리적 힘의 양과 그 보존의 능력대로 정당성을 획득하고 유지할 수 있었다. 인간에게 무엇이 그것을 보존할 수 있는 실질적인 상징가치가 될 수 있었을까? 왕관과 칼과 혈통이 바로 상징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신에게 의존하는 정당성보다 왕관과 그 혈통에 의존하여 보장받는 정당성은 훨씬 더 취약했을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왕관 칼이라는 물건의 상징력(象徵力)은 저 신이라는 환상적인 상징력에 비하면 그 순도와 지속성이라는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때문에 왕권을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권력을 신의 반열에 올려놓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왕의 상징력을 유지하기 위한 끊임없는 권력의 과시, 즉 "권력의 신학"이 요구한다. 이러한 인간의 권력의 속성(지속적인 확인과 확장의 필요성)으로 인해서 인간적인 왕들은 다른 왕들뿐만 아니라 내부의 적들(특히 귀족들)과의 권력투쟁을 19세기까지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바로 이 권력투쟁이야말로 왕권이 자멸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신이란 이런 권력투쟁에서는 아무런 실질적인 의미를 지니지 못했으며, 단지 최종적인 승리나 패배의 장식물로 전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권력의 획득과 보존을 위해서는 보다 넓은 영토와 보다 많은 인구, 그리고 부를 요구한다. 바로 그 때문에 왕은 지속적으로 영토확장을 위한 전쟁과 주변에 대한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전쟁을 감행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나약해 보이는 왕은 그 즉시로 내외로부터의 공격에 직면해야만 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처럼 점점 더 늘어나는 전쟁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왕의 노력이 왕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귀족과 부르주아들의 부, 백성들의 노동력을 전쟁비용으로 조달하기 위해 왕은 그들에게 “대가성(代價性) 권력”의 표상을 지급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귀족과 부르주아들의 정치참여, 조세제도의 확장, 상비군의 구축 등의 일련의 근대 민족국가체제를 낳았고 그에 따라 수많은 왕국, 영지, 도시, 교황령 등으로 구성되어 있던 배아와 같던 유럽은 차츰 일정한 영토의 정복을 통한 중앙집권적 근대국가의 형태로 바뀌어간다.
찰스 틸리(Charles Tilly)가 잘 설명하듯이 14~5세기 이후 유럽국가체들의 끊임없는 전쟁 수행과정에서 승리한 것은 봉건 영주나 귀족이나 술탄 등의 지배자들과 벌인 투쟁에서 승리한 왕국들이었고, 그 국가의 왕권을 강화하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중앙집권화와 관료화의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틸리는 『990-1990년간 유럽에서 작동한 압박, 자본, 국가들 Coerion, Capital, and European States AD 990~1990』(1990)에서 근대 유럽 민족국가들을 군주들이 전쟁을 수행하다가 우연-필연적으로 탄생시킨 인간집적체들로 이해한다. 역사상 전쟁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국가형태로 여겨졌던 인민국가(national state)는 실제로도 엄청난 전쟁능력을 구함으로써 그것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대표적인 국가형태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동시에 전쟁이라는 것도 신권(종교)에 대한 왕권(정치)의 승리와 그렇게 유발된 권력투쟁의 대규모화와 형식화(하향평준화)과정에서 근대적인 형태(애국심에 기초한 정규전)를 갖췄다고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은 신권에 대한 왕권의 승리는 권력투쟁의 양상을 인간실력투쟁, 즉 지배자 개인과 개인의 투쟁으로 상징화되는 결과를 낳았으며, 동시에 그 과정에서 새로운 권력의 주체들의 등장을 확산시켰던 것이다.
이른바 '중세의 어둠'이 걷히는 유럽의 어슴푸레한 아침에『돈키호테』가 유럽인들에게 인간의 꿈과 동경이 인간으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관을 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듯이, 잦아드는 신의 권능은 이제 인간의 권력을 위한 후광에 불과해져 한 때 찬란히 빛날 절대군주의 옥좌에 성스러움을 더하는 조명의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신의 권능은 인간, 그 중에서도 오직 군주의 권력에 의해서만 그 위력과 빛을 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신의 존재는 인간의 존재에 좌우되고, 신의 권능은 인간의 권력을 치장하는 멋들어진 의상으로 실추해버린 것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신의 로고스 역시 저 합리적인(즉 계산적인) 계몽의 이성으로 탈바꿈한다. “신은 이렇게 죽은 것이다!” 인간의 권력이 신의 권능을 대신하고, 그것을 상징적으로 뒷받침하는 인간의 논리가 곧 저 왕권신수설이다. 바로 이 왕권신수설 속에서 신은 자신의 꺼져 가는 생명력을 마지막 타오르는 촛불처럼 불태우며 회광반조(回光反照)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왕권신수설이야말로 한편으로 인간권력의 절정을 반영했다. 왕권신수설은 신의 권능이 아니라, 르네상스 이래로 유럽에서 강대한 힘을 소유한 인간, 특히 군주나 왕이라면 누구나 신의 반열에서 인간의 권력의 특권과 혜택을 충분히 누릴 수 있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의 권력투쟁의 목표는 아직도 왕관과 혈통의 획득이었으며 그런 권력은 힘의 과시와 폭력으로써만 생성되었다. 그 과정에서 왕은 신의 사명이나 명령이나 예언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절대적인 권력을 가장 화려하고 신성하게 치장할 수 있는 최고의 로고스(Logo!)가 바로 신이었기 때문에 신의 반열에 오르고팠으리라.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위대한 로고스는 혁명 속에서 산화하여 부르주아들의 규방에서만 자신의 비애와 노스탤지어를 속삭이는 사교신(社交神)이 되어갈 것이다. 그런 신을 대신하여 군주의 입헌적 덕과 인민주권사상이 유사 이래 가장 거대한, 그러나 그 목적상 가장 유치하고 졸렬한 투쟁의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이다.
마키아벨리와 체사레 보르자가 편을 먹고 홉스, 로크, 루소가 편을 먹어 “주권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근대 서구인의 새로운, 그러나 보잘것없는 권력의 잔을 놓고 벌이는 패싸움...
아마도 차마 이토록 초라하고 보잘것없기에, 그래서 더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세계에 등을 돌리고 선 저 거인도 저 보이지 않는 손에는 권력의 독배를 든 채 ‘언제어디서나 보이는’ 이 손으로는 주먹을 움켜쥐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죽어서 부활하되, 자비와 사랑의 오러(Aura)를 흩뿌리며 눈멀기보다는, 지극히 어둡고 악마적인, 그리하여 이제야말로 자신의 진심에 충실하고 싶다는 듯이, 이 부정한 세계에 음침하고 싸늘한 미소를 머금고 눈흘기는 신의 그림자일까...
(2002년6월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