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색다른 비행기가 태어났다
헬리콥터와 일반 비행기의 장점을 결합한 '팬 윙'
연료 소비량 적고 이·착륙 공간 필요없는 새로운 항공 기술
로마 근교에 있는 패트릭 피블스(57)의 농장에는 희한하게 생긴 미래형 항공기의 나무 모형이 있다. 발사 목재로 만든 이 ‘팬 윙’이 볼품없게 생겼다는 점은 발명가조차 인정했다. 기본 설계를 보자. 날개는 보통 비행기처럼 끝으로 갈수록 폭과 두께가 가늘어지는 형태가 아니라 대형 회전깃이 여러개 달린 긴 원통형이다(이전의 시제품들은 한층 더 희한한 모양이었다). 발명가의 꿈을 안고 사는 미국인 피블스는 싹싹했다. “구식 잔디깎기나 추수용 콤바인처럼 생겼다. 이런 것이 하늘을 난다는 것은 말이 안되지만 실은 그게 된다.”
대단한 업적이다. 모양이야 어찌 생겼든 팬 윙은 항공업계에서는 모처럼 이뤄진 쾌거다. 완전히 색다른 비행기술인 것이다. 피블스가 지난 10년 세월 대부분을 투자한 이 볼품없는 물체는 헬리콥터와 고정익 비행기들의 최고 장점들을 한몸에 갖고 있다. 헬기나 재래식 비행기보다 연료를 덜 잡아먹고 이·착륙 공간이 거의 필요치 않다. 헬기보다 소음이 적고 제작이나 조작비용도 훨씬 덜 들 것이다.
개발비를 투자해 좀더 연구한다면 팬 윙은 항공기 산업의 새로운 틈새시장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저렴한 비용으로 저속 비행하는 하늘의 짐수레가 될 수 있다. 적어도 잠재력은 엄청나다. 영국 정부는 이미 이 운송수단을 시험하기 위해 재정지원에 나섰다. 피블스는 “세상일을 좀 색다른 방법으로 해보려는 욕망이 내가 기술혁신을 추구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재미가 있다. 이번에는 그 재미가 유익한 결과를 낳았다.”
팬 윙은 확실히 다르다. 재래식 비행기의 경우 프로펠러나 제트 엔진은 추력(推力)만 공급하고 양력(揚力)은 비행기 날개가 대기 속을 지나면서 얻는다. 팬 윙의 경우는 구식 잔디깎기의 날처럼 회전하는 나선 모양의 회전깃들이 각 날개의 끝까지 달려 있다. 그 깃들은 상당량의 공기를 양 날개 위쪽으로 밀어올리면서 기체가 움직이기도 전부터 양력을 만들어낸다. 깃들은 또 거대한 프로펠러 구실을 해서 팬 윙을 앞으로 밀어낸다. 별 차이가 아닌 것 같겠지만 그때문에 안정감과 소음 감소 및 높은 연료효율성을 얻을 수 있다. 팬 윙은 또 헬기가 상공에 떠 있도록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온갖 복잡한 장치들이 없어도 된다.
게다가 특이한 설계 덕분에 실속(失速) 현상(추락할 정도로 속도를 잃는 것)이 전혀 없다. 속도가 떨어질 경우 재래식 비행기처럼 갑자기 고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떨어지게 된다. 재래식 비행기는 날개에 부딪히는 공기의 각도가 조금만 달라져도 양력에 큰 영향을 미쳐 난기류 현상이 일어나고 승객들이 멀미를 하게 된다. 그러나 팬 윙은 날개의 표면 면적이 좁기 때문에 강한 바람에 그렇게 민감하지 않다. 기술자들이 1백년 세월에 걸쳐 헬기와 비행기의 합성품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도 못찾았던 항공 해법을 피블스는 찾아냈다. 최근 팬 윙의 공기터널 실험을 마친 임페리얼 칼리지(런던)의 마이크 그레이엄 항공학과장은 “이것은 분명 실용성이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종종 이 비슷한 기술에 대해 말해왔지만 성공한 경우는 처음이다.”
지금까지 피블스는 자신의 구상을 시험해보기 위해 무선조종하는 모형만 만들었지 사람을 태우는 실제 크기의 시제품은 만들지 못했다. 누가 만들었다 해도 엄청난 대성공이겠지만 하물며 기술공학 자격을 갖추지 않은 아마추어 발명가의 경우야 말할 것도 없다. 피블스의 정식 교육과정은 인류학과를 한 학기 들은 것이 끝이다. 그 뒤로 잡역부로, 버스 기사로 일하다 최근에는 맥도널드의 주방을 수리하는 애프터서비스 기사로 세계를 누볐다.
그러나 발명병에 걸린 것은 일찍부터였다. “태어날 때부터 발명병을 안고 나왔다”고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스파게티를 돌돌 감는 전기 포크, 정원의 두더지를 놀래켜서 쫓아내는 전기기구, 글라이더의 상승속도와 대기(大氣) 속도를 표시하는 장치(피블스는 노련한 글라이더 조종사다) 등 오만가지를 만들었다. 그것들은 천재적 아이디어에도 불구하고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팬 윙은 여러해 전부터 그의 머리 속에 있었다. 자신의 구상을 먼저 그림으로 그려보는 많은 발명가들과는 달리 피블스는 곧바로 시제품 제작에 들어간 뒤 테스트를 거치면서 오랜 세월에 걸쳐 설계를 보완했다. “나의 뇌는 제멋대로 굴러다닌다”고 그는 말했다. 행운도 따랐다. 런던의 대학교수인 매제가 다리를 놓아 임페리얼 칼리지의 그레이엄을 소개받은 것이다.
피블스에게 학위가 없다는 점이 투자열기가 뜨겁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비록 친구와 몇몇 투자자들을 통해 어느 정도 돈을 마련하기는 했지만 피블스는 팬 윙을 혼자 힘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부엌은 작업장으로도 쓰인다. 처음에 팬 윙을 무선조종할 때는 비밀 유지를 위해 날이 어두워진 후 로마의 한 슈퍼마켓 주차장에서 시험했다. 가족들만 지켜봤다. 이제는 기술특허를 받았기 때문에 집 뒤 공터에서 시험한다.
피블스는 팬 윙의 설계는 세밀하게 다듬을 부분이 많다는 점을 순순히 인정했다.
항공기 산업의 역사를 보면 시작은 잘하고도 망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전도유망한 많은 기술들이 자금부족이나 설계결함으로 좌초했다. 보잉社는 헬기 변종 수직 이·착륙기 오스프리를 완성하기 위해 30년 이상의 짜증스런 세월을 보내 왔다. 피블스는 팬 윙도 그런 신세가 될 수 있다고 시인했다. 예컨대 최근 모형들은 활공 능력이 없어 엔진이 꺼지면 땅으로 곤두박질치게 된다. 회전익 안으로 날아들어 기계를 망칠 수 있는 성가신 새들에 대한 대처방법도 아직 숙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블스는 앞만 보고 간다. 2004년에는 무인비행기를 시장에 내놓는다는 희망을 갖고 있는데 그 개발을 위해 정부 지원도 받을 예정이다. 유인비행기를 개발하려면 좀더 긴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조종사와 승객들의 안전문제가 관련되면 개발비는 치솟게 마련이다.피블스는 팬으로 동력을 얻는 항공기가 현재는 소음 문제로 헬기 비행이 금지된 도심 상공을 누비며 출퇴근자들을 실어나르는 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팬 윙은 농약 살포기나 화재진압기, 또는 수송기로도 쓰일 수 있을 것이다. 피블스는 초경량 모델을 만들어도 팬 윙의 속도가 고작 시속 1백km에 불과하다는 계산을 해냈다. 그러나 최근 시험들을 통해 1백마력의 엔진을 사용해도 2t 분량의 탑재가 가능해 효율성 면에서 헬기는 상대가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힘이 그렇게 좋을진대 좀 못생긴들 어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