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허 휴정 淸虛 休靜(1520 ~1604)】 "편안한 때에도 지옥 고통 잊지 말라"
② 청허 휴정의 ‘수행인의 일상정검’
편안한 때에도 지옥고통 잊지말라
참선하는 사람은 네 가지 은혜가 깊고도 두터운 것을 알고 있는가? 사대의 더러운 이 몸이 순간순간 썩어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사람의 목숨이 숨 한번에 달려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부처와 조사를 만나고도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았는가? 위없는 법을 듣고 아주 드물고 진기한 마음을 냈는가?
수도자의 거처를 떠나지 않고 수도자다운 절개를 지키고 있는가? 이웃에 있는 사람과 잡담이나 하며 지내지 않는가? 화두는 항상 또렷이 들고 있는가? 남과 말을 할 때도 화두를 끊임없이 붙들고 있는가? 보거나 듣거나 느끼거나 아는 모든 것이 화두와 덩어리를 이루는가? 자신의 본래면목을 되돌아보아 부처와 조사를 붙잡을 만한가?
금생에 결정코 부처님의 지혜와 생명을 이을 수 있는가? 한 번 받은 이 몸으로 반드시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가? 팔풍의 지경을 당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가? 일어나거나 앉거나 하는 편안한 때도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는가?
이것이 바로 참선하는 사람이 일상생활 가운데 늘 점검해야 할 도리인 것이다. 옛 사람이 “이 몸을 이 생에서 건지지 못하면, 다시 어느 생에서 이 몸 건지기를 기다릴 것인가!”라고 하셨다.
앞서 말한 것은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실 때 차고 따뜻한 것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다. 총명으로 업을 막을 수 없고, 마른 지혜로써 고통의 수레바퀴를 면할 수 없는 것이니, 모름지기 저마다 살피고 헤아려 머뭇거리거나 스스로를 속이지 마라. 말만 배우는 무리는 말할 때에는 깨달은 듯하다가도 실제 경계에 당하게 되면 도리어 그만 미혹하게 되니, 이른바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긋난 사람이다.
깨달은 정도가 그다지 깊지 못한 사람은 비록 종일토록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더라도 항상 맑고 깨끗함에 걸리게 되며, 비록 사물의 허함을 보더라도 항상 경계에 얽매이게 된다. 이러한 사람의 병은 다만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見聞覺知)을 잘못 알아 공적영지(空寂靈知)한 것으로 알고 광영문(光影門) 끝에 앉을 뿐이다.
그러므로 만일 마음의 본체에 생각이 떠난 것을 깊이 알지 못하면, 마침내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의 유전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혹, 세간과 출세간에 선악의 인과가 모두 한 생각을 따라 일어남을 궁구하지 않는 사람은 평상시에 자신의 마음 다스리기를 가볍게 하여 성찰할 줄을 모른다. 이런 까닭에 비록 경전 공부와 선승의 게송에서 문득 깨달음을 얻는 때가 있더라도 단지 바로 잠시 기뻐할 뿐이고 그 뒤에는 가볍게 던져 버려 결정하지 못하고, 도리어 세속의 인연을 좇아 순간순간 흘러 옮겨 다니니, 어찌 이룩할 기약이 있겠는가. (청허 휴정의『선가귀감』(예문서원)서 발췌. 정리=채한기 기자
■ 청허 휴정(淸虛 休靜)은
영관대사(靈觀大師)의 설법을 듣고 불법(佛法)을 공부하기 시작해 교리를 탐구하던 중, 깨달은 바 있어 스스로 시를 짓고 삭발한 다음 숭인장로(崇仁長老)를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했다. 그 뒤 영관으로부터 인가를 받고 운수(雲水) 행각을 하며 공부에만 전념하다가 1549년(명종 4) 승과(僧科)에 급제했고, 대선(大選)을 거쳐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가 되었다.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 라는 시는 열반송 중 백미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