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지역은 여름 휴가철이 되면 공연예술축제 시즌을 맞는다. 특히 밀양, 거창의 연극축제는 그 역사가 깊거니와, 내용도 알차기로 정평이 나있다. 금년에는 통영의 공연예술축제가 내부 사정으로 한해 휴식을 취하지만, 7월 26일 김천전국가족연극제를 시작으로, 7월 27일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29일 거창국제연극제, 8월 3일 포항바다국제연극제, 8월13일 영호남연극제, 8월19일 창원국제연극제가 연속적으로 개최된다.
| 김천전국가족연극제 (7.26~8.4)
김천시가 주최하고, 영남일보와 김천전국가족연극제추진위원회가 주관하는 김천전국가족연극제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의 원천은 가족이다’란 주제로, 7월 26일 개막되었다. 금년 참가 단체는 총 19개 팀으로 일반경연 5개 극단, 자유경연 9개 극단, 초청공연 5개 팀(해외 2, 국내 3)이다.
개막일 행사장을 찾았는데, 소극장에서 자유경연작품인 ‘왕자와 결혼한 이빨 없는 합죽이’(극단 빛누리)와 일반경연작품으로 극단 기린의 ‘달맞이 꽃을 찾아서’를 관람하였다. 이날 개막행사에서는 주최 측의 미숙한 행사 진행이 드러났는데, 식전행사가 오후 6시에 개최되고, 개막작품 공연은 인쇄물에는 오후 7시로 되어있었으나 6시 40분경 식전행사가 종료되자마자 막이 올라, 7시로 알고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이 항의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관객과의 약속된 시간을 주최 측이 파기한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주최 측의 잘못이다. 그러나 소극장과 대공연장에서 공연된 작품의 수준은 한차례 예선을 거친 것으로 기본 이상은 보여주었고, 무대세트나 소품 등에서도 공들인 흔적을 볼 수 있었다.
|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7.27~8.7)
'연극이 현실에게 질문을 던지다'를 주제로 열리는 금년 축제는 올해 창립 25주년을 맞는 연희단거리패 25주년 기념공연, 젊은 연출가전 10주년 특별공연, 대학극전, 해외교류기획전, 국내초청공연, 프린지공연 등 다양한 공연을 선보인다. 또 7박 8일(7월 29일~8월 5일)간 공개강좌 '이윤택 연기론- 영혼과 물질', 연희단거리패 25주년 기념세미나, 자료전시, 공연영상 DVD 등이 준비되어 있다.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 국고지원 공연예술행사 평가에서 매년 상위점수를 받고 있으며, 영남의 더 나아가 국내의 대표적 공연예술축제로 자리잡고 있다.(2007년 국고지원 공연예술행사 전체 37개 축제 중 평가 1위, 2009년 국고지원 공연예술행사 15개 연극축제 중 평가 1위,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국고지원 공연예술 평가 결과 1위)
개막일 밀양연극촌을 찾아, ‘오이디푸스왕’(극단 골목길,박근형연출)과 ‘방바닥 긁는 남자’ (연희단거리패, 이윤주 연출)를 관람하였다. ‘오이디푸스왕’은 그리스 비극의 대표작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생모와 결혼하며 신탁을 피하려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고전극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에서 이 작품을 거의 완벽한 비극으로 평하고 있다.
‘방바닥 긁는 남자’는 2010 동아연극상 3관왕(작품상, 신인연출상, 무대미술기술상) 수상작으로, 철거지역으로 밀려나 버린 네 명의 남자들이 벌이는 진지한 놀이극이다. 시시콜콜하게 간섭하고 억압하는 제도적 규범에서 일탈한 아웃사이더, 노동 중독에 걸린 사회에 저항이라도 하듯 게으름의 극한까지 자신을 방치하는 인간들, 이 하릴없는 사내들의 상상력이 펼치는 짓거리와 잡소리를 통해 한국사회를 해부한다. 독설, 궤변, 야유, 조롱이 무방비 상태로 쏟아진다. 홍민수, 김철영, 조승희, 김수웅, 김지현 등 연희단거리패의 주조연급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 작품을 감상할 때 앞자리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극단에서 미리 비닐을 준비해 주지만, 자장면이 언제 어떤 방향으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금년에 소개되는 작품 중 특히 2010년 경남지역 레지던스프로그램으로 본 웹진에서 한 차례 소개되었던 ‘맥베스’가 폐막작으로 준비되어 있다. 이 작품은 비록 밀양연극촌이 아닐지라도 서울에서든 부산에서든 반드시 관람하기를 권하는 작품이다. 영국 연출가 알렉산더 젤딘이 연출하고 연희단거리패 배우들이 협업한 작품으로 셰익스피어의 문학적인 언어들을 최대한 살려내면서도 현대 사회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다양한 이미지를 풀어내고 있다. '현대 중산층 가정의 비극적 러브스토리'라는 연출의 해석에 따라 광기와 불안을 오가는 심리연기가 돋보인다. 맥베스 역은 연희단거리패 4대 햄릿 윤정섭이, 맥베스 부인 역은 연희단거리패 대표 김소희가 맡았으며, 축제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 거창국제연극제(7.29~8.13)
거창국제연극제(Keochang International Festival of Theatre·KIFT)는 올해로 23회째를 맞는데, ‘연극이 내게로 온다’라는 주제로, 8개국 34개 단체가 참가해 자연 속에서 펼치는 축제 본연의 열정과 생명력, 연극적 상상력을 선사한다. 해외공식 초청작은 3편. 이미지 위주의 실험극인 벨기에 극단 베스프로스바니의 ‘프로메테우스’, 연극과 무용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도 다르파나컴퍼니의 ‘그때 지금 영원’, 동서양의 연극문법이 만난 일본 모즈기획의 ‘하녀들’로 다양한 무대양식을 만나볼 수 있다.
해외기획 초청 참가단체는 4곳. 독일의 ‘바람의 익살꾼’과 스페인의 ‘아-타-카’는 야외연극 퍼포먼스의 신선함과 드라마틱함을 보여준다. 물놀이를 즐기며 물속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무지개극장에서는 중국 상해서커스단의 공연과 러시아 현악4중주단 미에르바의 다이나믹한 연주가 펼쳐진다.
또 국내의 엄선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국내공식초청작에는 뮤지컬, 마당극, 악극, 타악 퍼포먼스에서부터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세익스피어 작품에 이르기까지 실험과 장르 간 혼용을 통해 무대언어의 확장을 모색한 작품들이 준비돼 있다.
개막공연인 극단목화의 2011년 에딘버러 페스티벌 공식초청작 ‘템페스트’를 시작으로 극단미학의 ‘말하라 사랑아’, 극단여행자의 ‘마릴린 먼로의 삶과 죽음’, 세종씨어터컴퍼니혼의 ‘세상이 화~안해요’, 극단몸꼴의 ‘리어카, 뒤집어지다’, 폐막공연인 서울예술단의 ‘청이야기’ 등 화제작들이 대거 참가한다.
창단 25주년을 맞은 연희단거리패의 뮤지컬 ‘천국과 지옥’, 경쾌한 템포의 전통연희극인 극단집현의 ‘골생원’, 대구시립극단의 로맨틱 코미디 ‘달콤 살벌한 프로포즈’, 마당극패우금치의 신명나는 마당극 ‘할머니가 들려주는 우리 신화 이야기’, 인천시립극단의 악극 ‘아빠의 청춘’, 문화마을들소리의 ‘월드비트 미나리’, 코미디 전문극단 수레무대의 ‘청혼&곰’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공식초청작 컬렉션은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이다.
올해 거창국제연극제 포스터가 화제가 되고 있다. 안경을 쓴 백발의 외국인 할머니가 강한 눈빛으로 혀를 쏘옥 내밀고 있다. 마치 ‘메~롱, 약오르지~’하는 표정 같기도 하고, 주관적인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혀’의 뜻은 연극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말’이므로, 혀를 내미는 행위를 통해 연극에 대해 같이 이야기해 보자는 의미와, 연극을 ‘맛보다’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또한 혀가 조롱 혹은 야유로 해석될 수도 있는데, 이는 현 문화적 세태를 풍자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사입력 : 2011.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