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는말
한국의 현대건축을 정확히 진단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이는 서구사회에서 태동된 Modernity와 관련된 건축사조의 하나로 우리나라의 시회적 구조상황과는 매우 다른 상태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하나의 드러난 현상만을 갖고 당대에 나타나고 있는 건축현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현대건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구건축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념적 바탕을 이루고 있는 철학적 배경과 사회현상을 파악해야만이 가능하고 그것을 토대로 하였을때 미래에 대한 전망도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비추어 볼때 19세기말 서구모더니즘의 태동과 20세기초 현대건축을 전반적으로 다루어야 가능하나 그 범위를 1960년대 이후의 현대건축에 대한 경향과 의미로 한정하여 파악하고 한국적 현실과 비교, 검토하는 것이 무리가 없을 것이다.
1. 현대에 대한 용어 정의
현대란 영문 표기로 modern으로 되어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상황에따라 근대와 현대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관련되어 modernity (현대성), Modernism(모더니즘/현대주의 또는 근대주의)에 있어서도 이들 모두 상황에 따라 근대와 현대로 혼용하여 사용하기도 하며, 때로는 포스트 모더니즘(Post Modernism)을 현대로 또는 탈근대로(탈모더니즘) 해석하기도 한다. 때문에 현대건축 (Modernism Architecture)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통합적으로 파악하고 정의 내려야 한다. 문화적 측면에서 현대성이란 언어를 사용하게 된 것은 낭만주의적 속성을 극복하면서 나타나는 반낭만주의적 특성을 일컫는데, 건축이나 예술분야를 이야기 할 때는 사회적 현대성과 함께 미적 반응형식을 다루어야하는 시간개념을 포함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미적 모더니즘과 사회적 연 관성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서구 근대사회의 합리주의 사고를 공고히 하는 데는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에 근거한 데카르트의 인식론과 칸트의 인간중심주의가 크게 기여한다. 이는 중세까지는 종교적 문제가 사회질서의 중심에 있었으나 근대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이성중심의 인간중심 세계관이 정신적 지주로 등장하면서 이를 계몽사상으로 발전시킨다.(송두율, 21세기와의대 화 1998.) 즉 이성에 의해서 해명되지 못할 것이 없다는 계몽에 대한 확신이 팽배하게 되는데, 이른바 계몽합리성과 모더니즘의 관계에서 사회적 현대성을 계몽합리성이란 개념으로 보는 경우 (J.Habermas) 현대는 미완의 작업으로 지속된다고 보는 입장과, 다니엘벨(Daniel Bell)처럼 모더니즘을 계몽합리성의 분열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미셀푸코(Michel Foucault)와 같이 현대를 도구적 이성으로부터 새로운 떠남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S.Lash 포스트 모더니즘의 사회 P 123). 결국 미적 모더니즘은 모두 계몽합리성을 바탕으로 하되 심화나 해체를 통한 변형과 도구적 합리성을 새롭게 변화, 발전시킨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미적 현대성, 미적 모더니즘, 사회적 현대성의 관계는 매우 복잡한 문맥들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근대와 현대를 명확히 구분 짓기 는 더욱 더 어려워진다. 우리나라에서는 포스트 모더니즘 이전, 1960년대 이전까지를 근대로, 그 이후를 현대로 보는 경향이 지배적이나 우리의 경우 근대화의 시점이 서구와 다르고 현재까지도 모더니즘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구분보다는 현대라는 동의어 안에서 사조나 개념의 차이에 따라 시대를 구분한 영문 표기대로 사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으로 사료된다. 예를들어 Modern, Late-Modern, Post-Modern, Neo-Modern, New- Modern(Deconstructivism)등 현대의 양식을 표기하는 용어들을 그대로 적용(대문자 표기는 양식을, 소문자 표기는 시대를 의미)함으로써 시대 구분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2. 현대건축의 시기적 구분
현대건축의 사조를 논하려 할 때 직면하는 첫번째 과제중의 하나는 그 시대의 기점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이다. 서문에서 1960년대 이후의 건축으로 한정짖는 것을 전제로 하였으나 현대성 문제에 있어 기원은 항상 그 이전에 있으며, 시간적으로 중첩되어 있기 때문에 현대 건축운동의 전사적인 것을 포괄적으로 기술하여야 하나, 시대적으로 부각되어 나타나고 있는 흐름과 특성을 간명하게 기술하고 60년대 이후를 다루는 것이 현대건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 1920-1960년
아돌프 로스 로스 하우스(1909-11) modern(현대)이란 일반적으로 산업혁명 이후로부터 1950년대에 이르는 시대를 가르킨다. 따라서 현대 이전과 현대를 구별하는 것은 생산수단의 변화를 의미 하기도 한다. 즉 수공업에서 동력을 이용한 기계화로의 변화인데 건축에서는 1차세계대전 이후 기능주의의 입장을 확립하며 대량 생산체제와 관련한 국제주의 양식이 팽배하게 되는 시기를 일컫는다. 건축비평가 Charles Jencks는 Modernism 건축의 시기를 1920-1960년으로 정의하는데 근대건축의 이념을 국제주의양식과 이상주의, 엘리트주의, 과거양식으로 부터의 분리로 규정하고, 형식에 있어 단순성, 공간의 균질화, 추상적형태, 기계적미학, 기술과 구조, 앤티 메타포(anti metaphor), 탈상징성 등의 형식의 문제를 통해 그 이전과 다름을 구분짓고 있다. 소위 이 시대를 거장시대라 일컫는데 미스반데로에, 꼬르뷔제, 그로피우스, 아돌프 로스, 로스 하우스(1909-11) 라이트 등의 거장들이 활동하고 그들의 영향이 세계건축을 지배하던 시기를 말한다. 한편 K, Frampton은 현대건축이 등장한 문화적, 지역적, 그리고 기술적 변화를 취급하면서 동시에 형식적 분석을 통해 접근하기 때문에 훨씬 더 과거로 돌아가 1899년-1925년의 오거스트 뻬레의 고전적 합리주의로부터 시작, 독일공작연맹(1898-1927년), 바우하우스에 의한 이념의 진화(1919-1932년), 데스틸 운동(1917-1931)에 의한 신조형주의의 진화와 소멸. 1923-1933년 사이에 독일, 네델란드, 스위스에서 일어났던 신 즉물성(새로운 객관성), 1907-1931년 사이 Le Corbusier의 신정신, 그 이후 이념의 변화와 비판, 확장의 해석에 따라 1928년에서 1968년까지 확장하여 취급하고 있는데, 이는 건축의 개념을 일반 경제체제와의 상호관계를 포함 시키면서 인간의 근본적인 활동을 전제로 한 건축보다는 건물을 강조한 CIAM 운동과 이를 승계한 Team X의 이념이 소멸되기까지를 Modern으로 보고 있다.
■ 1960-현재
이 시기를 흔히 근대건축(Modern Architecture)과 현대건축으로 구분짓는 시기로 본다. 그것은 촬스 젠크스가 저술한 The New Modern, Architecture Today, Post Modern Architecture 3권의 저술에서 다룬 시기구분에 의한 것인데 그는 1960년 이후를 두가지로 분류하고있다. 하나는 Late Modern이고, 다른 하나는 Post Modern으로 이념과 양식의 차이에 의하여 구분짓고 있는데 레이트모던은 기술, 동선, 효율성 등의 근대적(모던) 가치들에 대하여 최우선권을 주면서 지역주의의 가치를 현대건축과 문화적 주체성의 관점에서 모더니즘을 과장하여 활성화 시키고 있는 부류로 보고 있으며 (이를 케네스 프램턴은 신합리주의와 비판적 지역주의(Critical regionalism)등으로 세분하면서 "비판적 지역주의는 전위적 의미에서 식별가능한 예술적 운동이라기 보다는 비판적 부류로 지역적으로 변형되었지만 비판적이고 수정론자적인 현대건축의 형태가 존재해 온 사실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반면에 포스트모던(탈근대-모던을 벗어난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나 재고할 필요가 있음)은 도시문맥과 사용자들의 가치, 그리고 장식과 같은 항속적인 건축표현 수단들의 사용을 강조하는 건축으로 다원적이고 모더니즘을 변곡하여 모던 이후의 과도적 양식을 창출해 내고 있는 건축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는데(Charles Jencks-The Language of Post-Modern Architecture 1978) 어떻튼 1960년대 이후를 모던의 시기와 구분짓는 것은 이념과 양식, 디자인 방법론의 차이를 나타내기 때문에 이 시점부터 탈근대(포스트모던)로 규정짓고 있다. 특히 1960년 영국의 아키그램 그룹의 첨단기술을 이용한 우주시대의 공상적인 건축은 실현에 목표를 두기보다는 공상과학 소설의 역설적 형태에 몰두하고 있는 이들의 Paper Architecture도 근대건축이념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지만, 탈근대라는 용어는 1980년 마이 클 그레이브스에 의해 설계된 포트랜드 시청사(1982년준공)와 1980년 Paolo Portoghesi에 의해 조직된 베니스 비엔날레 이후로 포스트 모더니즘이 전파되면서 "모더니즘과 비 모더니즘의 논쟁이 확산되었고 자연스럽게 시기적 구분이 다루어지게 된다".(Transaction 3,RIBA Publication, London,1983) 결국 현시대 건축에서 들어나고 있는 특징중의 하나는 과거에 대한 견해이다. 즉 과거를 새로운건축의 레퍼런스로 과거 전통과의 연속성으로 볼것인가 아니면 단절을 주장하는 분리적 경향으로 볼것인가의 두가지 상황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건축의 경향은 전통적 경향을 중시하는쪽 이 우세한 것 같다. 젠크스가 사용한 언어에서 보았듯이 모던앞에 New-, Post-, Neo-, Late-,라는 접두어를 사용한것을 보면 모던의 연장을 염두에 둔것같다. 그러나 1999년 현재에 이르면서 또 다른 변형과 형식(해체,에코로지, 접힘이론, 싸이버등)이 나타나고 있어 모던의 논쟁은 끊임없이 지속 될것이다. 마이클 그레이브스, Moorhead Cultural Center Bridge,1977 3. 60년대이후 건축의 경향들 1960년대 이후 가장 두드러진 건축사조는 신합리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비판적지역주의, 하이테크, 생산주의, 맥락주의, 해체주의 등 짧은 기간 내에 무수히 많은 경향들이 중첩되어 나타나고 소진되는 특징을 보이고있다.
마이클 그레이브스, Moorhead Cultural Center Bridge,1977 이것은 급속히 변화하는 다원화된 사회적 현상 때문이기도 하나 개인주의가 팽배하면서 하나의 이즘에 집착하기 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감성적 체험을 소중히 하는데서 오는 결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러한 경향들을 이념으로 보기보다는 한때 나타나는 경향으로 이해되기도 하였으나 결국은 과거의 연속선상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나타나는 흐름이기도하다.
■ 신-합리주의(Neo-Rationalism) :
적어도 그 기원은 이태리 합리주의운동과(Tendenza)과 관련된 것으로 거대도시의 소비경향이 지닌 폭넓은 힘에 의해 압도된 상태에서부터 건축과 모두를 구원하려는 시도(K, Frampton, 현대건축사2)로 알도로시의 "도시의 건축"에서 잘 설명되고 있다. Rossi는 가장 현대적인 프로그램은 건축을 위한 부적절한 수단이라고 인식하고 가능한 한 건축을 지지하는 대상과 요소들이 풍토로부터 추출될 수 있는 소위 유추적 건축에 의지하는 것을 의미하고 과거의 건물유형과 구축적 형태들 모두에로 복귀함으로써 현대성의 실증론적 논리성과 진보에 대한 맹목적 신념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시도하였다. 이러한 영향은 스위스 티치노 지방의 Bruno Reichlin 등의 건축가들로 하여금 작품을 만들어 내게 하고 스페인의 마드리드 학파와 연결 되면서 Alberto Campo와 같은 건축가들에 의해 신합리주의(Neo-Rationalism)와 접목되고 60년대말 유럽전역에 폭넓게 유행한다. 프랑스에서는 앙리 시리아니가, 독일에서는 O. M. Ungers가 1976년 베를린 호텔과 힐데스 하임 다목적 건물을 계획하면서 소도시 유형과 중세시장의 유형을 합리화하고 재해석 하고 있듯이 신합리주의자들은 역사를 해석함에 있어 과거는 미래를 기대하는 것과 똑같은 비중을 지니고 있다고 보며 건축형성의 원리를 역사적 변형에서 파악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알도루시,ModenaCemetery1972
■ 포스트모더니즘(Post-Mordernism) :
모더니즘을 대신하거나 반대하는 이론적 관점, 혹은 스타일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된 언어로 진화적이며 반은 모던적이면서 또 반은 그밖에 다른면을 갖는, 철학적으로 보면 종교적, 합리적 혹은 인본주의까지 거부하는 세계관으로 묘사되고 있으나 건축에서는 1970년대 중반부터 널리 사용 된 용어로 고전적 전통요소를 인용하는 절충주의적 양식을 묘사하는데 적용하면서 2중 코드화와 일련의 중요한 이중성의 연속이라고 볼수있다. 케 네스 프램턴은 이러한 경향을 Post Avant-Gardism 이라고 표현하면서 1980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포스트모더니즘 선언을 중시하면서 사회의 반 작용, 또는 양식의 의식적인 황폐화와 건축형태의 해체라고 하면서 필립존 슨의 AT&T , 마이클 그레이브스의 포트랜드 청사, 제임스 스털링의 슈튜 트가르트 국립미술관(고전적대중주의)등을 예로 들고있다. 그러면서 대중주의(Populism), 환원주의(Reductivism), 맥락주의(Contextualism)등을 나누어 정의하고 있으나, 젠 크스는 이들을 다 포함하고 있고 다시 급진적 절충주의와 포스트 모던 고전주의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어 명확한 구분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 나타난 포스트 모던형식은 이중 코드, 대중성, 전통과선택, 단편성을, 중성적형태의 개념에 상징, 은유, 역사적 요소인용, 재표현, 복합성, 공간의 다양성과 드라마, 관습적이고 추상적인 형태, 혼성적 표현의 형식을 지양하는 스타일이다. 필립 존슨 AT&T Buiding1984 제임스 스털링, 슈타츠 갈레리에 1977/83
■ 비판적 지역주의(Critical Regionalism):
이 용어는 단순히 지방적으로 생성된 토착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문화나 국가문화의 뿌리깊은 문화와 보편적인 문명사이에 반대가 존재하며 세계화가 그 힘을 증가시킬수록 역설적 명제가 대두되지만 지역문화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참된 문화를 유지하는 것은 문화나 문명의 단계에서 외래의 영향을 적절히 받아들이면서 지역문화의 활기찬 형태를 발생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케네스 프램턴은 그러한 관점에서 지역주의 작가들을 분석하고 비판적 지역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건축가로 네델란드의 Jorn Utzon이 1976년에 설계한 코펜하겐 근교의 Bagsvaerd 교회에서 보편적인 문명의 소산물인 콘크리트 프리캐스트 조합방식에서 그 지역의 특이한 문화의 가치를 옹호할 수 있는 규범적 기술의 합리성을 설정하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외 멕시코의 Luis Barragan(주택작품에서 지형에 따른 형태를 취하면서 신화적이고 뿌리깊은 기원에 관한 느낌을 자아냄), 이태리 밀라노의 비토리오 그레고티, 베니스의 카를로 스카르파(Carlo Scarpa), 특히 복잡한 언어학적 경계와 세계주의라는 전통을 갖고 있는 스위스는 강력한 지역주의적 전통을 나타내고 있다, 티치노 지방의 마리오보타가 1972년에 설계한 Riva San Vitale 주택은 티치노 경관의 문화를 우선적으로 참조하면서 유형학적 접근을 제기하고 있다. 한편 일본의 안도 다다오는 폐쇠된 현대건축을 통해서 선조들이 지니고 있던 인간과 자연의 친밀했던 문화를 회복하고 유지할 수 있는 벽으로 에워 쌓인 영역을 창조하려고 하고 있다.
안도 다다오 로코교회1985/86 이와같이 비판적 지역주의는 문화와 문명 사이의 분열을 반영하는 듯하나 이것은 하나의 양식이라기 보다는 항상 존재 하지 않는 일정한 공통적 특성을 지향한 비판적 부류이다. 비판적 지역주의자는 거대한 계획보다는 소규모 계획을 선호하는데, 현대건축 유산의 해방적이고 진보적인 측면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건축이 독립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역과 장소를 포함하거나 제공한다. 이들은 시각과 촉각을 강조 , 기후, 빛 등이 특수여건에 반응할 수 있고 열, 냉기, 습도 및 공기순환, 향기 소리등 보조적인 지각에 무의식적인 변화를 경험하도록 한다. 즉 현시대의 장소지향의 문화를 촉진하기 위해 재해석된 풍토적 요소를 전체내의 분리적 요소로서 삽입하고 있는 경향의 건축이다.(케네스 프램턴 현대건축사 2 1980 참조)
■ 해체주의(Deconstructivism)
피터 아이젠만, DAAP 대학 1988 1980년대 중반 이후 건축계에 가장 큰 충격으로 받아 들일 수 있는 해체주의 계열의 건축은 신세대 건축가 들의 적극적 호응을 받고있는 건축으로 촬스젠크스는 Neo-Modernism계열로 분류하고 있는데 이는 1988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해체주의 건축 (Deconstructivist Architecture) 전시회를 통하여 이 용어가 확산되기 시작 하였다. 이 전시회의 게스트 큐레이터인 건축가 필립 존슨이 7명의 건축가(Frank O, Gehry, Daniel Libeskind, Rem Koolhaas, Peter Eisenman, Zaha M, Hadid, Coop Himmelbl, Bernard Tschumi )를 초빙 1980년 이후의 작품을 모아 전시를 한 것으로 그것은 세계 여러 지역으로부터 유사한 경향을 연결시킨 전시회였다. 필립 존슨은 전 시회 행사를 위한 출판물에서 해체주의 건축은 새로운 양식은 아니며 근대건축의 구세주적인 열 정이나 천주교나 캘빈교와 같은 일종의 배타주의로서 그것의 발전을 횡탈하지 않으며 해체주의 건축은 어떠한 운동도 대표하지 않고 강령도 아니다. 그것은 추종해야될 어떠한 규칙도 없으며 7명의 건축가는 더욱 아니다 라고 말하고 있으며 부 큐레이터인 마크 위글리는 이 전시회에 초대 된 프로젝트들은 순수한 형태에 대한 꿈이 좌절된 색다른 감각을 특징으로 하고 있으나 그것은 해체주의(Deconstruction)라는 철학이론으로 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건축적 전통속에서 부터 나온 것으로 몇몇의 해체주의적 특성을 나타낸 것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존슨은 그것은 1920-30년대의 러시아 구성주의를 출발점으로 보고 말레비치(Malevich)에서 리씨츠키(Lissitzky)까지의 모든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작품과 이들과의 유사함을 연결시키고 있다. 이들 작품은 "침해된 완전성"으로 해체주의는 파괴나 위선이 아니라 구조에 대한 조화, 통일, 안전성에 대한 가치에 도전함으로서 그것의 모든 힘을 획득하게 된다. 따라서 은신되어 있는 전통의 순수한 형태를 꺼내어서 억압된 불순성의 징후를 부드럽게 달래거나 가칠게 다루어 표면으로 끌어내는데, 불순하고, 삐뚤어지고, 균열되고, 변곡되며, 부유하고 충돌하는 불규칙성의 집합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란은 깨지고 쪼개 지며 분쇄를 위한 것이 아니라 건축의 분열, 전위, 편향, 일탈 및 비틀림으로 구조속에 형상들을 교란시키면서 내적 구조와 구축물 속에 포함시키는 치환의 방법이다. 이러한 교란은 아직까지 근본적인 문화적 변천에서 나온 것도 아니며 또한 그것으로 귀착되는 것도 아니다. 그 동요는 한세 대의 새로운 정신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도 아니며, 불안정한 세계가 불안정된 건축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건축가는 무의식적인 순수한 형태속에 존재하면서 급진적인 다른 방식으로 형태를 전복 시키기 위해 전통적으로 억제된 것을 제거한다. 따라서 마침내는 형태가 새로운 것을 드러내기 위해 스스로를 찌그러트리게 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미 셀 푸코(Michel Foucault)의 "광기의 역사나" 자크 데리다(J, Derrida)의 해체주의(차연의 이론)에서 그 근거를 관련시켜 합리화 하고 있으며 츄미나 피터 아이젠만이 대표적인 예이다. 버나드 츄미 , 라빌레뜨 공원 1986/87
■ 생산주의(Productivism) / 하이테크(HighTech Architecture)
생산주의는, 가장 순수한 의미에서 참된 현대건축이란 우아한 공학기술, 혹은 거대한 규모의 공업디자인 산물에 불과할 수 있으며 또 불과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와 모더니즘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로 대별된다. 생산주의의 기본법칙에 따르면 ' 건설과제'는 실현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입체의 적합성은 동질적이고 통합된 써비스 시설(전력, 빛, 열, 환기 등)에 의해서 유지되어야 하고, 구조와 써비스를 분절하고 표현하는 필요성에 관련 되어야 한다. 즉 제공받는 공간과 제공하는 공간을 구분하 는 Kahn의 건축적 방법론을 따르고 있다(케네스 프램턴 현대건 축사 2). 더욱 중요한 것은 생산 그 자체의 순수한 형태를 방해 받지 않는 표현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 부류의 대표적인 작가로 영국의 노먼포 스터(Norman Foster)와 리차드 로저스(Richard Rogers)가 있는데 현대 물질세계의 언어인 공업 생산이나 소비가능한 재료의 언어를 취하고 있는데 포스터는 강구조로 나타낼 수 있는 외피에 매력을 가져졌다면 로저스는 구조표현에 중점을 두고 있다.(우경국, 강재시공사례집, 포스코 1996) 그러나 1970년대 부터는 High Tech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대체기술, 또는 적정기술이라고 하는 의미를 갖게 되는데 이는 공장생산제품을 사용한다는 생산주의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Colin Davies가 저술한 High Tech Architecture에서 "하이테크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고딕에는 하이테크가 없는 것인가?" 라는 의문을 제기하면 서철을 이용한 산업제품과 관련하여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1779년에 개통된 영국의 Iron Bridge와 1850년의 수정궁(Crystal Palace), 1910년대의 러시아 구성주의 작품, 1964년 아키그램에 의한 움직이는 도시 프로젝트 등을 거론하면서 현대건축으로 이어 지고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금속재와 유리제품을 사용하면서 재료의 성질을 표현하려는 점과 디테일 문제에 중점을 두면서 기계적미학을 확립하려는 특성으로 나타나고있다. 특히 구조와 써비스 체계, 공간의 가변성(유용성), 단위개체 끼우기 등을 설명하면서 벤 존슨 , Central Spane 1985 (생산주의와 동일한 개념) 좁고 긴 형태의 유형을 선호(주로 공장건축에서 많이 사용)하는 것이 하이테크 건축의 특성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의 고속철도 역사나 항공터미날, 체육시설 등에서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이제는 보편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3. 한국의 현대건축과 그 현상
한국건축에 있어 현대의 의미는 무엇인가? 서구에서 이야기하는 Modernism이 우리에게는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이러한 물음은 오늘의 현상이 지극히 혼란스럽고 서구사조의 표피적 현상만이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서구에서 말하는 Modern의 개념이 정립되기도 전인 1960년대를 전후하여 정부의 개발정책에 따라 본격적인 현대적 개념의 건설이 시작된다. 초기에는 자아적 건축이념에 의한 건축이라기 보다는 정치와 경제, 사회적 영향에 의한 귀속적 현상을 보이다가 해외로부터 건축을 공부하고 들어온 건축가(김중업, 김수근)들과 건축전문지에 의하여 새로운 정보를 제공 받으면서 급속한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대부분이 자생적이지 못 하고 서구건축을 피상적으로 복제하는 정도의 진부한 수준에 머물렀고 생존문제 또는 본능적 범주안에서 기본적인 조건만을 충족시키는 쉘타적 건축에 당위성을 두고 있었다. 이시대를 주도하 였던 (60대 후반 세대) 건축가들은 건축적 유토피아나 문화로서의 가치보다는 전쟁에 의한 피해 복구와 경제건설 이라는 사회적 리얼리즘에 기초를 둔 대중적 정주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양적 생산에 비중을 두었다. 대부분 획일적 유형의 주택단지, 조악한 일의성 상업건축, 군국주의적 공용건물등이 환경을 지배하였다. 그렇다고 이러한 현상을 1920년대 서구모더니즘의 이념과 동일한 것으로 보기 보다는 왜곡된 모더니즘으로 간주해야 할것이다. 그러한 상황속에서 건축가 김중업의 프랑스 대사관(1960), 제주대학본관(1964년)과 그 이후의 일련의 작품 그리고 김수근의 자유센타와 타워호텔(1963) 오사까 박람회 한국관(1967-70) 등은 한국건축의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할 수 있는 사건으 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작품이 동시대의 세계적인 작품은 아니더라도 김중업의 작품은 르꼬르뷔제의 언어가 한국적으로 재 번안된 것이고 김중업, 프랑스 대사관 1960 김수근의 자유센타도 꼬르뷔제가 인도 샹디가르에 지은 공공 건물과 형태상으로 맥을 같이한것을 보여준것은 모더니즘의 시발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건축을 기화로 모더니즘에 대한 건축적 담론이 활성화되기보다는 전통성에 대한 논란이 벌어진다. 그것은 김수근의 부여박물관(1965-68)과 강봉진의 구 중앙박물관(1966)에대한 전통성 시비인데 부여박물관은 현대건축과 전통성의 표현을 어떻게 결합시킬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형태가 지니는 일본적 분위기 때문에 왜색 시비에 머무르면서 본질을 잃어버리게 된다. 다만 김중업과 김수근의 논쟁중에서 '근대적 자아"에 대한 논쟁은 근대와 전통이 결합된 내용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전통건축의 여러사례(법주사 팔상전,불국사 기단(청운교,백운교)을 꼴라쥬하여 재조합한 사례로 건축가의 의지가 의지가 사라진 경우인데 이러한 현상은 다분히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김수근, 부여 박물관 1965/68 박정희정권 시대에 건설되었던 공공건축에는 한국전통의 표현이란 명제가 꼬리표를 달고 있었기 때문에 이 시대에 나타나는 현상은 두가지 부류로 과거의 양식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경우와 건축가의 자의적 해석에 따른 전통표현(몇 가지 모티브만 인용하는 경우도 있음)을 하는 경우인데 모더니티와 전통해석이 정의되지 못한 상황에서 두가지 명제가 복합되어 건축되는 양상은 70-80년대 초까지 이어지면서 기형아적 건축을 양산하게 된다. 이러한 논쟁이 80년대에는 한국성이라는 주제로 바뀌면서 전통 공간개념에 관심을 가지기도 하면서 합리주의적 건축을 지향하는 쪽으로 흘러간다. 한편 한국경제의 성장은 80년대 중반이후 건축을 질적 양적으로 증가시키면서 외국으로부터 들어오는 건축정보에 의해 우리나라도 소위 포스트모던건축 경향으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이들 탈근대적 건축은 콘크리트 상자나 기능주의적 건축에 무감각해진 일반대중으로부터 긍정적 반응을 얻기 시작하였고, 도시 경관을 변화시키는 큰 요소중의 하나로 자리하게 된다. 이와같은 변화는 한국건축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기 이전에 또 다른 서구이념의 유입현상으로 혼란은 더욱 가중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건축계 일각에서는 원초적 우려와 함께 한국현대건축의 좌표인식을 위한 문제와 포스트 모더니즘 건축에 대한 논의를 공간지(8905)를 비롯한 몇몇 건축잡지(플러스 8805-8809, 꾸밈 8512등)에서 시행한 바 있다. 이러한 논의에서 나타난 80년대 한국건축에 대한 시각은 긍정적인 것 보다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나타나는데, 주로 서구건축을 수용하는데 있어서 이념보다는 외형적 관심에 치우치고 있다는 것과 한국성(한국성에 대한 구체성을 이야기하지 않으면서)을 반영해야 된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루었다. 어떻든 우리의 도시경관을 지배하고 있는 대부분의 건축이 모더니즘이나 포스트 모더니즘에 의해 잉태된 반쪽의 외피 복사형 혼혈아적 건축과 천민 자본주의를 바탕으로한 상업주의 건축의 패션적 경향에 편승한 건축가들의 형태유희 놀이는 지속되고 있다. 이는 가치관이나 이념보다는 유행성 매너리즘 현상으로 걷치레성 과소비적 사회현상과도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수 있다. 건축은 그것이 지닌 사회적 속성 때문에 대중성을 외면할 수 없다하더라도 이와같은 사실들을 받아 들일 수 없는 것은 첫째, 한국건축이 도시문화적 맥락으로부터 유리됨으로 일관성있는 아이덴티티를 갖지 못하고 개체성만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 둘째 표현의 풍부성이 시간의 누적(역사성)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피상적인 외향성 지향의 사고체계 위에 무의식적 형태조작으로 이루어진 점, 셋째, 상실되어버린 우리의 과거 및 건축가들의 이런 부정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반대현상으로 새로운 그룹(4.3구룹)의 탄생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그들은 한국건축의 이중구조와 서구적 다원주의가 난무하는 현상을 역사의식의 상실과 자아의 빈곤에 의한 현대성 이념결핍현상이 건축가 스스로의 철학 내지 시대를 주도 할만한 건축적 이념을 발견하지 못한데서 오는 결과라 인식하고 과거와의 연결고리 탐구작업과 서구 근대건축이념이 우리의 건축과 접목됨에 있어 한계성이 무엇이고 과거에 대한 탐구가 감성위주의 사고체계를 극복 하고 현대적 논리체계속에서 새로운 이념을 발견해 냈을때 한국의 진정한 현대 건축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보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건축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비평문화 정착과 건축설계교육 에 관심을 갖고 실무현장과 학계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90년대는 해체주의적 경향과 하이테크의 변형된 건축이 우리의 건축계를 혼란스럽게 한다.(우경국, 관계 흐름 건축, 1988, 현대 건축사)
4. 한국의 현대건축은 수정되어야 한다.
이념과 건축 사이에는 항상 논란이 존재하며 그 둘 사이에는 변증적인 운동이 따르고 있다. 이념의 우위론이든 탈이념을 주장하든 서구건축은 이념과 건축과의 논쟁을 바탕으로 발전되어 왔고 현재에도 그 논쟁은 지속되어 오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인지하는 것은 양식을 지배하는 틀로서의 이념이었고, 그 양식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 것 또한 이념이라는 사실이다. 그러한 과정이 수세기동안 반복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다원주의 사회를 구성하기에 이르렀고 지금도 그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 이념에 대한 비판론자들은 이념의 틀이 건축의 다양성과 자유성을 구속하여 획일적이고 무생명적인 건축으로 유도한다는 이유로 탈 이념을 주장하기도 한다. 만프레도 타푸 리( Manfredo Tafuri)는 건축과 유토피아에서 이념적 이상향이 없는 형상, 숭고한 무용성으로 되돌아가야만하는 건축을 주장하면서 건축에 이데올로기라는 의상을 입히는 것은 기만적인 시도라고 비판한다. "현대건축의 위기는 권태나 방탕의 결과가 아니고 오히려 건축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의 위기이다."라고 현대 건축에서의 이념적 이상향의 무위론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촬스 젠 크스는 "포스트 모던 건축언어" 에서 오늘날과 같은 다원주의적 문화에서는 전통적 사회에서와 같이 건축가, 장인, 그리고 대중들과의 공통된 이해가 거의 불가능 하기 때문에 건축적 이데올로 기와 건축적 기술의 관계는 소위 하이테크 운동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데올로기가 기술의 보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이유로 건축가 자신들이 다양하게 변하는 이데올로와 기술들에 종속되어 있음을 부인할수 없다고 말한다. 특히 비평가들이나 역사를 정리하는 사학자들은 건축 가와 작품을 사조별로 분류하는 방법으로서 이념의 틀을 인정하고 있다. 비토리오 람뿌냐니 (Vittorio Magnago Lampugnani)는 "20세기 건축사조"에서 "건축적 산물의 중요성, 운동, 경향 등 의 표현상의 문제는 언어학적 분류와 명칭부여라는 부정확한 상황을 연출함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내용에 연유된 각 요소들의 복합성과 다양성을 어떤 테두리안에 넣을 수 밖에 없다."라고 주장한다. 이와같이 이념은 건축가를 한정된 틀로 구속하는 모순과 문제를 낳으면서도 또다른 이념을 추구하게하는 역설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이념은 이성으로부터 얻어낸 최고의 개념이기 때문에 건축행위를 통제하는 주체로서 양식의 줄기를 이루게 되었고, 타 예술분야에서도 공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수평적 현상으로 이시대 보편적 가치기준으로 평가할 수 밖 에 없는 것이다. 이들의 이와같은 이념놀이를 한국의 건축가들이 역사, 문화적 바탕을 고려치 않고 무비판적으로 인용함으로서 양식과 사상의 불완전한 편린들만이 난무한 건축을 낳게 하였다. 그로 인해 탄생한 건축은 본질에서 벗어난 감상적 분위기로 건축을 유도하고 있어 개개인의 이념적 탐구를 결여시키는 동기가 되었다. 즉 과거에 대한(전통건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 비판 이나 재해석 또는 새로운 논리와 이념적 체계를 정립할 수 있는 사유를 부족케 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서구건축의 외피 복사나 혼혈적 접근방식을 수정하고 전혀 다른 코드를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이미 모던건축의 모순이 건축의 자유를 구속하고 인간소외를 불러일으킨 이념적 한계를 인지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는 현실적으로 모더니즘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수정을 요구받고 있으며 수정하지 않고서는 혼란의 가중을 피할 수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2000년대를 열 한국건축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5. 한국건축에 대한 전망과 예측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이는 "현재적인 현대"를 어떤 각도로 보느냐에 따라 여러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 사회적 의미에서는 인간중심의 질서 속에서 인간 및 세계를 파악하고 그것에 따른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그 자체가 바로 현대의 산물이기 때문에 인간의 행동양식과 사회구조를 결정짓게 되는 것이다. 한편 예술적 측면에서는 앞 장에서 열거한 여러가지 현대의 새로운 미적 감정과 이것을 표현하는 형식을 만들어 내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현대의 다양한 현상을 긍정적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부정할 것인가? 또는 옹호나 비판에 따라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에 대한 이러한 흐름 을 송두율씨는 "21세기와의 대화"라는 저술에서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그 하나는 하버마스의 주장처럼 현대성의 기획은 전통에 대한 비판적인 기억이나 철학, 과학, 예술을 매개로 한 자기 정체 성과 연관된 체험을 떠날수 없기 때문에 넓은 의미의 "현대"는 "미완의 기획"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고 보는 입장과 둘째, 현대에 대해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는 전통적인 보수주의자 입장으로 현대의 학문, 도덕, 예술의 분화에서 현대가 맞고 있는 위기적 상황의 근본요인을 찾고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윤리적 질서의 회복을 통해 안정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류와(C,Schmitt, Joachim Ritter, Daniel Bell) 심미적, 감성적 체험으로부터 새로운 윤리를 정립하려한 푸코(M, Foucault)와 바타유(G, Bataille), 무주의적 윤리를 정립하려한 보러(K.H. Bohrer)는 기독교문화 이전에 있었던 본원적인 인간의 자유를 회복하고자 하는 동경이 바탕에 깔려있는 흐름이 있다. 이와같이 두가지의 양립된 사고의 세계적인 흐름이 한국사회에도 영향을 미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따라서 한동안은 서구사조를 인용하는 방법론이 지속할 것이나 그러면서도 우리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서구의 기술과 한국의 정신을 결합하는 소위 동도서기(東導西器) 또는 Cross Over) 적인 새로운 장르가 확대될 것이다. 단순히 기술과 정신이 결합되는 것 보다는 완전히 통합할 수 있는 도기합일의 예술이 탄생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미 음악가 윤이상씨나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 미술부분의 이응로씨의 경우와 같이 이성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동양의 정신을 합일시키는 작품이 나타날 것이며 한편 대중예술에서는 Cross Over적 음악과 미술이 보편화 될 것이다. 특히 건축에서는 동서양이 하나가 되는 도기합일의 작품은 물론 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로 접근해 지금까지 현대사상이 지니고 있었던 인간과 자연에 대한 관계, 즉 인간의 자연에 대한 지배적 관계에서 공생의 개념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생태개념의 건축이 보편적 언어로 등장할 것이다. 방법론적으로는 생태적 유형론을 주장 하기도 할 것이고 미니멀한 관점에 자연주의적 방법을 결합한 "탈인본주의"적 사조가 팽배할 것이다.
6. 맺는말
이상과 같이 분석해 본 결과 당분간 한국건축은 서구의 건축사조 변화를 그대로 차용하는 양상이 지속될 것이나 일부 엘리트 비판론자나 근본주의자들은 상대적으로 한국건축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도기합일(道器合一)의 비판적 지역주의의 견해를 확고히 할 것이다. 왜냐하면 21세기에는 세계화나, 지구화가 극대화 될수록 지역의 조그마한 문화적 가치가 더욱 소중해지는 시대가 되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 로는 과학기술의 문제, 생태계 위기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해결하기위한 탈현대건축적 생태건축과, 개인주의와 공동체를 결합하는 새로운 공동사회를 위한 도시개념이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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