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지리적으로 한반도 정중앙은 화천 화악산이다.
화천신문, 김용식 기자, 2022. 06. 17
“지리적으로 한반도 정중앙은 화천 화악산이다.”
대한민국 표준시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국토자오선은 동경 127도 30분으로 평북 중강진에서 전남 여수까지 이어진다. 바로 이 자오선과 북위 38도선이 만나는 지점이 화악산 정상 부근이다. 또 한반도 가장 높은 산인 백두산에서 남쪽 최고봉인 제주 한라산을 잇는 선과 평북 삭주와 울산을 대각선으로 잇는 중앙점이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옛 풍수 전문가들은 화악산을 태극의 가운데로 해석하며 명당으로 보기도 했다. 그래서 선조들은 화악산을 신선봉으로 부르며 이곳에서 제사를 올렸던 것이다. 화악산은 삼국시대부터 등장한 명산이다. 옛날에는 화악산이 한반도의 중심이었다. 이 때문에 국가가 나라의 안녕을 위해 이곳에서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지금은 우리나라 영토의 개념이 한반도 주변의 섬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양구가 국토정중앙이다. 화악산의 정상인 신선봉(1,468m)과 서쪽의 중봉(1,450m), 동쪽의 응봉(1,436m)을 삼형제봉이라 부르고 있다.
화악산은 운악·관악·감악·송악과 함께 경기 5악에 속하는데 그중 가장 높다. 경기도에서 최고 높이를 자랑하며 남한에서는 12번째. 화악산이 현대 들어서 경기 5악 못지않게 의미 있는 내용은 정상 신선봉과 서쪽 중봉(1,450m)~동쪽 응봉(1,436m)의 삼형제봉이 한반도 정중앙에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정상 신선봉에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어 접근이 안 된다. 인근 중봉까지 오를 수 있다. 중봉 정상 안내판에는 ‘화악산은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정중앙에 위치한다. 현재 화악산 정상은 군사시설이 들어서 있으므로 이를 대신하는 중봉이 한반도의 중심이란 뜻이다’라고 알리고 있다.
이처럼 군 시설물이 들어앉음에따라 가평군이 새롭게 화악산 정상으로 지정한 중봉이 너무 처량하다. 산 정상이 화려할 것까지는 없지만 달랑 표지석 하나 세워져 있는 초라한 실정이다. 한반도의 중심이라는 위상을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물론 군부대가 위치, 어쩔 수 없는 상태라고는 하지만 지리적으로 한반도 정중앙으로서는 걸맞지 않은 형상이다.
화악산은 주변 봉우리들을 압도하며 홀로 우뚝 솟아 있어, 예로부터 세상을 등지고 은둔생활을 했던 선비들이 즐겨 찾았다. 김시습과 김수증·김수흥이 은거했던 산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욕심과 이익을 좇는 세상을 등지고 깊고 깊은 곳을 찾아 자발적 은둔생활을 즐겼다는 점이다. 5세부터 천자문을 통달하고 신동·천재란 말을 들으며 성장한 ‘오세동자’ 김시습은 세조가 단종을 유배 보내고 왕위를 찬탈하자 수락산·설악산·청량산 등 전국의 산천을 떠돌며 승려로서 무위자연의 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김수증도 동생 김수항이 송시열과 함께 유배되자 벼슬을 버리고 화악산 기슭에 있던 농수정사로 들어갔다. 지금의 화악산 응봉능선 북쪽 계곡으로 추정된다. 그는 그곳을 ‘곡운谷雲’이라 칭하고 주희처럼 곡운구곡을 지으며 여생을 보냈다. 곡운은 그의 호. 곡운구곡은 지금도 남아 그들의 자취를 전한다. 괴산의 화양구곡과 함께 한반도에서 유이하게 ‘실경實景’으로 남아 있는 명소다. 어쨌든 화악산은 김시습과 김수증이 세상을 등졌던 깊고 깊은 ‘은둔의 산’이다. 현대적인 의미로는 한반도 정중앙의 산이면서 6.25 때 격전을 치른 ‘아픔의 산’인 것이다.
화악산은 사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지명을 그대로 간직하고 사용하는 몇 안 되는 명산이다. 통일신라가 전국의 명산대천을 대사·중사·소사 삼산오악으로 나눌 때 화악은 소사로 지정돼 국가행사를 지냈다. <삼국사기>권32 잡지 제사조에 금강산, 설악산, 감악산, 월출산, 덕유산 등과 함께 ‘화악花岳’으로 소사小祀로 지정됐다고 나온다. 설악·화악만 지금과 같은 지명이고 나머지 산은 지명이 전부 다르다.
다만 한자를 ‘華岳’과 ‘花岳’으로 혼용해서 표기했지만 의미는 같다. 소사는 한반도를 몇 개 핵심권역으로 나눠 대표적인 명산에서 국토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서 국가에서 직접 산신제를 주관해서 지내도록 한 행사였다. 화악산은 고대부터 한반도의 정중앙과 높은 고도 때문에 군사전략적 위치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왔다고 볼 수 있다.
<고려사>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고려사지리지> 가평군조에 ‘본래 고구려의 근평군斤平郡(병평竝平이라고도 한다)으로, 신라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현종 9년(1018)에 춘주에 내속시켰다. 화악산花嶽山이 있다. 또 청평산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화악산은 경기권이라기보다는 강원권에 가깝다. 고려 때에도 춘천 청평산과 같이 소개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한때 춘천권에 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화악산 정상은 군사시설로 오를 수 없다. 6·25 전쟁 이후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 민간인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약 0.7㎞ 거리에 있는 중봉中峰이 화악산 정상을 대신하고 있다. 한반도의 중심산은 화천 화악산, 고로 화천은 한반도의 중심이다.
화천신문 김용식 기자의 기사 내용을 정리하여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