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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류씨 - 뿌리 깊은 버드나무
 
 
 
카페 게시글
류-차 문제 차원부설원기의 위서 논의(연안차씨 종친회 중앙본부) 글에 대한 반박(2)
류병수 추천 0 조회 258 17.03.14 17:28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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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7.03.14 19:09

    첫댓글 차원부 교지 진위 여부를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전문기관 고문서 감정을 의뢰하면 그 진위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고 논쟁의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보인다. 교지가 진짜라면 차원부 설원기와는 별개로 차원부라는 인물의 실체가 최소한 역사적으로 검증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연안차씨종친회 중앙본부에서는 하루빨리 차원부 교지 에 대하여 공개 감정을 하여 그 결과를 문화류씨대종회에 알려 주기를 바란다.

  • 17.03.16 23:08

    차원부가 세조2년(1456년)에 교지를 받았다는데 일성록에 의하면 정조10년(1786) 9월7일과 정조11년(1787) 2월6일 그리고 정조12년(1788) 4월4일 세 번 증시(贈諡: 왕이 시호를 내려주는 일)를 요청하였는데 정조가 하락하지 않았고 정조가 죽자 정조 아들 순조가 11살(1800년 7월)에 왕위에 올랐는데 순조4년 1804년 문절이란 시호를 받은 잔치를 순천에서 합니다. 차원부가 1456년 위조된 증시를 받고 대대로 내려 오다가 1600년 이후 문절공 기록이 여러 문헌에 나오고 정조에게 3번 시호를 내려 줄 것을 거절 당하다가 차석주가 1788년 황윤석에게 차원부 증시관련 묘갈명을 부탁했다가 거절당하는 수모를 받게 됩니다.

  • 17.03.16 23:16

    순조 이후에 헌종, 철종 때 등에도 차원부 관련 서원들이 세워졌습니다. 당연히 벼슬아치들이 관여했을 터인데, 이때는 조정과 직접 관련이 없었는지 실록은 물론 “일성록”이나 “승정원일기”에는 기록이 없습니다.
    차씨 문중에서 1456년의 교지 조작을 하지 않고, 정조에게 차원부의 시호를 내려달라고 요청하지 않고,“승정원일기”에도 연시 기록이 없었다면 지금“설원기”를 주장하기에 훨씬 유리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후손들이 설원기와 차원부에 대해 더 확실하게 나라의 인정을 받으려고 무진 노력한 것이 오히려 차원부의 시호와 설원기를 명백히 부인되고 나아가서 차원부의 행적까지 부인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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