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를 1%내리면 누가 가장 이익일까? 빚많은 사람이다. 그러면 누가 가장 빚이 많을까? 대기업 들이다. 그러면 누가 이 금리를 결정할까? 현행법상 금융통화위원회의를 거쳐 한국은행총재가 결정한다. 이들에게 돈으로 인맥으로 각종 근거자료와 때론 여론몰이로 로비를 하는 압력단체가 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많은 경제정책들은 이렇게 결정되어 진다. 지금은 사라진 단어 이지만 과거 "정경유착"이란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여의도에 가면 전국경제인연합회 라고 하는 큰 건물을 지어놓고 대기업을 대변하고 여러가지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과 법률이 정해지도록 로비를 하는 곳이있다. 직원이 고작 150명에 불과하지만 사안에 따라서는 회원사로 부터 천문학적 숫자의 자금을 동원할수 있는 로비쪽에 가장 파워있는 단체이다. 나는 전경련에서 7년동안 근무한적 있는데 그때 있었던 일화 하나를 소개 하고자 한다.
입사한지 2년도 채 안된 신입직원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경제홍보부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연말연시 이때쯤 직원송년파티 날짜가 잡혔고 파티에 진행을 맡을 사회자를 찾고 있는중이라 했다. 점심시간 직장동료들과 밥 먹으며 얘기를 나누던중 내가 대학시절 축제때 어느 한 행사에 사회를 본 적 있었다고 그냥 가볍게 얘기하고 끝났다. 그리고 몇일후 총무부장이 전화로 나를 호출했다. 이번 송년파티에 나보고 사회를 보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사양하였으나 막대한 선물과 경품을 제공하고 인력까지 지원 해 줄테니 활용해서 잘 해보라는 것과 부회장이 참석하니 특별히 신경을 쓰라는 당부도 해 왔다. 못 이기는체 승낙을 하고 직원명단과 인사카드를 카피해 익히고 모의진행까지 해보는등 나름 준비를 철저히 했다.
파티 당일저녁 행사장엔 밴드까지 불려져 있었고 화려한 장식과 조명으로 분위기가 이미 달아올라 있었다. 파티가 시작되고 그날의 메인 호스트격인 부회장은 간단한 인사말만 하고 자리를 떠났고 실세인 전무가 호스트인 셈이되었다. 사회자인 내가 소개되자 직원들이 모르고 있었는지 "와"하는 소리도 들리고 의외라는듯 약간 웅성거렸다. 나의 컨셉은 최고높은 부회장을 가볍게 디스하며 시작하는 컨셉이었는데 꿩대신 전무를 내입담으로 가지고 놀았다. 또한 여직원은 노래를 시켜서 안나오면 "네에~오늘은 생리중이라 노래할 기분이 아니랍니다"등 즉석 에드립으로 모두가 뒤집어졌다. 2년차 새파란 신입이 최고권력 전무를 데꼬노는 분위기 부터가 이미 달아 올랐고 생각지도 못한 친구한테 에드립이 쏟아지니 파티내내 웃음바다로... 근엄하던 전무도 잘 받아주었고 나 또한 충분한 상품과 경품으로 호응도를 이끌어 내기가 아주 쉬운 그런 자리였다.
이튿날 출근하니 난 스타가 되어있었다. 사내에서 만큼은 유재석 안부러울 정도로... 한달내내 거의 매일 점심은 꽁짜 점심 약속 이었다. 그날 모두 전무에 대한 대리만족 이었는지 특히 부장급 간부들이 나를 많이 이뻐했다.
그렇게 몇달이 흐른 어느날 모 부장님 한테 전화가 왔는데 자기 자리로 오라는 거였다. 그리고 그 부장의 얘기는 이러했다. 내가 입사전부터 KBS.증권감독원 등과 직장 연합주택조합이 결성되어 서초구 양재동에 아파트가 건설되고 있었는데 여직원 하나가 퇴직하면서 결격사유가 발생하여 그자리를 승계할 1번타자로 나 를 생각 했었고 나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분양과 동시에 몇배의 프리미엄이 붙는 엄청난 특혜였고 입사후 대충 알고 있었지만 입사전 일이라 이미 날아간 기회에 아쉬워 하고 있었는데 그런 대박 이 없었다. 그 당시 그 부장이 조합장을 맡고 있었는데 그 부장은 왜 나에게 이런 행운을 주었을까?
그후에도 몇년간 그 부장과는 같은 아파트에서 살면서 훌라멤버로(포카드의 일종ㅋ) 막역한 사이로 지냈고 두고두고 잊지못하는 한사람이 되었다. 망년회 사회한번 봐주고 받은 개런티 치고는 세상에서 가장비싼 개런티가 아니었나 생각 되어지고 그 아파트는 나중에 내가 벌린 사업기반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주환이 끼와 재능이 많은 친구같어 평생에 몇번없는 운도 제대로 받아 디딤돌로 쓰고 니이야기 읽다보면 빨려 들어간다 새벽6시 알람과 동시에 영초카페 열어봤어ㅎ 너의 스토리에 읽고나서 속으로ㅋ 운좋은놈이네 하면서~ 아마도 영초카페에 너의 자서전 올리게 될것같다 머찐친구 오늘도 행복한 하루되길 바란데이^♥^
@김주환전직 선배분들이 몇 분 거기 입주하셨는데 그 당시 유행했던 직장주택조합 중에 대표적으로 성공한 케이스라고 들었네.
그리고, 내게도 소중한 추억이 있는 곳이기도 해. 첫 직장으로 현상논문 우수상 받은 인연으로 아메리카은행하고 합작한 한미(KOR AM)은행에 시험을 쳐서 입사했는데, 은행 일은 안 시키고 기획부서에서 경영목표 짜는 일만 시켜서 자원해서 나간 첫 점포가 우성아파트 인근 우면동 신설점포였고, 본부 생활만 한 초보책임자라 지점장이 발령을 반대했었는데 거기서 2년 동안 내리 1등 해서 삼성그룹 담당하는 심사역으로 영전하게 된.... 거기서 영업할 때 우성아파트 상가까지 매일 일수가방들고 적금 받으러 다녔어.
@김주환그 당시 은행첵임자들 자존심이 있어 그런 일 하기 쉽지 않았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다니니까 상인들이 입소문 많이 내줘서 좋은 결과를 얻었던 것 같어. 우성아파트 상가는 꽤 멀어서 힘들게 다녔던 기억이.... 그 당시 우면초등학교에 개설해 준 스쿨뱅킹이 우리나라 최초였을 거야. 그 공로로 상도 받았었어. 아파트 오른쪽으로 야산에 봄철에 개나리, 진달래가 좋았던 기억도 난다.
첫댓글 행운이었네
사람은 누구나 타고난 능력이 있는데
사회생활은 능력만으로 승승장구 할수 없는데 거기에 운이란놈도 나에게 따라줘야 앞길이 훤하게 열리는 계기가
되는경우도 있다 내가 봤을대 주환이 니는 그해 망년회가 너에게 행운이었는거 같네^^
오케이
앞으로 영초63모임 사회는 무조건 주환이다 아파트는 없데이 ㅋ
글고 훌라는 설명안해도 된다
영양이 더 활성화 되어있다 ㅎ
@내리총무신승배 헐~~우째 니는 글을 쓰면 쓸수록 짐을 한보따리씩 더 얹어 놓노?
이제부터 암말도 안하고 구석에 찌그러져 있을란다.
@김주환 그렇게는 안되지용 ㅎ
주화니 사회 보는거 기대됀다.
이젠 울 총무님 걱정하나는 업서졌네ㅎ
아파트는 업서도 차는 줄수있당
따뜻한 꿀 차♡♡
영초다방에서 배달하믄 되자너ㅎㅎ
주환이 끼와 재능이 많은 친구같어
평생에 몇번없는 운도 제대로
받아 디딤돌로 쓰고 니이야기 읽다보면
빨려 들어간다 새벽6시 알람과 동시에
영초카페 열어봤어ㅎ
너의 스토리에 읽고나서 속으로ㅋ
운좋은놈이네 하면서~
아마도 영초카페에 너의 자서전
올리게 될것같다
머찐친구 오늘도 행복한 하루되길
바란데이^♥^
희경이 재미 있게 읽었다니 다행이네. 계속 쓰다보면 전부 저런식인데 어떡하지? ㅋ
그만 쓸까 봐.
주환아 계속 보여줘 살아온 흔적들
나 읽는것 무지좋아해 굴곡도 파도도
지금의 행복도 너의 삶을 울친구들
에게 보여주는 아니 오랜세월 서로
다른세계에서 살아온 모든것들을
읽을수 있어 좋은것같어
글쓰는것도 프로급인것같다
멋있다 김주환^^
@양희경 헐~~나도 읽는거 좋아해. ㅋ
브라보~~~ ㅎ
기분 좋은 아침이다
주환이 글을 보니 내일처럼 기분 좋데
그림이 그려진다
주환이가 전경련 망년회를 주무르는 장면이 ㅎㅎ
멋쪄~~
동구도 참....그정도 까지야.....부끄럽그러....
악의소굴 ㅋ
전경련 근무했다니 의외네
89년돈가 아주옛날에 울 사장놈하고
한판 뜰려고 전경련8층에 비상장사 재무제표 띄러 간적이 있지
그때 거기 있었겠네
그러네 87년도에 12월 졸업도 하기전에 입사했으니...그러네
계산해보니 88년 2월졸업하고
그 망년회가 89년도 였네.
전화하고 오지 그랬노? ㅋㅋ
@김주환 글코보이 거서 본거같네 ㅋ
@김주환 글올리는것마다 소설읽는거같아 재주꾼이네~ㅎㅎ
허허 재밌는 얘기네. 혹 양재동 우성아파트 아니였을까 싶구나. ^^
헐 ...
봉진이가 그걸 어떻게 알어?
맞는데. 봉진이도 거기 살었나?
@김주환 전직 선배분들이 몇 분 거기 입주하셨는데 그 당시 유행했던 직장주택조합 중에 대표적으로 성공한 케이스라고 들었네.
그리고, 내게도 소중한 추억이 있는 곳이기도 해. 첫 직장으로 현상논문 우수상 받은 인연으로 아메리카은행하고 합작한 한미(KOR AM)은행에 시험을 쳐서 입사했는데, 은행 일은 안 시키고 기획부서에서 경영목표 짜는 일만 시켜서 자원해서 나간 첫 점포가 우성아파트 인근 우면동 신설점포였고, 본부 생활만 한 초보책임자라 지점장이 발령을 반대했었는데 거기서 2년 동안 내리 1등 해서 삼성그룹 담당하는 심사역으로 영전하게 된.... 거기서 영업할 때 우성아파트 상가까지 매일 일수가방들고 적금 받으러 다녔어.
@김주환 그 당시 은행첵임자들 자존심이 있어 그런 일 하기 쉽지 않았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다니니까 상인들이 입소문 많이 내줘서 좋은 결과를 얻었던 것 같어. 우성아파트 상가는 꽤 멀어서 힘들게 다녔던 기억이.... 그 당시 우면초등학교에 개설해 준 스쿨뱅킹이 우리나라 최초였을 거야. 그 공로로 상도 받았었어. 아파트 오른쪽으로 야산에 봄철에 개나리, 진달래가 좋았던 기억도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