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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三國遺事)번역문
卷 第三 >제4 탑상(塔像第四) >대산오만진신(臺山五萬眞身) >자장법사가 원령사에서 문수보살을 뵈다
자장법사가 원령사에서 문수보살을 뵈다
법사는 정관 17년(643)에 이 산에 이르러 [문수보살]의 진신을 보려고 하였으나 3일 동안 날씨가 어두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와 다시 원령사(元寧寺)에 가서 살다가 문수보살을 뵈니 이르기를, “칡덩굴이 있는 곳으로 가라.”고 하였으니 지금의 정암사(淨嵓寺)註 481481 강원도 태백산에 있는 절로 속칭 갈래사(葛來寺)라고도 하며 자장법사가 세웠다.닫기가 이것이다. 역시 별전(別傳)에 실려 있다.
註 481
강원도 태백산에 있는 절로 속칭 갈래사(葛來寺)라고도 하며 자장법사가 세웠다.
주제분류
문화>사상>불교사상>승려생활
색인어
이름 : 법사
卷 第三 >제4 탑상(塔像第四) >대산오만진신(臺山五萬眞身) >자장법사가 원령사에서 문수보살을 뵈다
자장법사가 원령사에서 문수보살을 뵈다
법사는 정관 17년(643)에 이 산에 이르러 [문수보살]의 진신을 보려고 하였으나 3일 동안 날씨가 어두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와 다시 원령사(元寧寺)에 가서 살다가 문수보살을 뵈니 이르기를, “칡덩굴이 있는 곳으로 가라.”고 하였으니 지금의 정암사(淨嵓寺)註 481481 강원도 태백산에 있는 절로 속칭 갈래사(葛來寺)라고도 하며 자장법사가 세웠다.닫기가 이것이다. 역시 별전(別傳)에 실려 있다.
註 481
강원도 태백산에 있는 절로 속칭 갈래사(葛來寺)라고도 하며 자장법사가 세웠다.
주제분류
문화>사상>불교사상>승려생활
색인어
이름 : 법사
卷 第三 >제4 탑상(塔像第四) >대산오만진신(臺山五萬眞身) >두타와 신의가 암자를 지으니 지금의 월정사이다
두타와 신의가 암자를 지으니 지금의 월정사이다
그 후 두타(頭陁)註 482482 탁발하고 수행하는 중을 말한다.닫기신의(信義)註 483483 신라 문무왕 때의 고승이다.닫기는 곧 범일(梵日)의 문인이었던 사람인데 와서 자장법사가 쉬었던 자리를 찾아서 암자를 짓고 거처하였다. 신의가 죽은 뒤 암자 또한 오래도록 폐하였더니 수다사(水多寺)註 484484 강원도 강릉에 있던 절로 신라 때 자장법사가 세웠으며 말년에 거주했다고 한다.닫기의 장로(長老)註 485485 지혜와 덕이 높고 나이가 많은 비구의 통칭이다.닫기유연(有緣)이 [암자를] 다시 짓고 거처하였는데 지금의 월정사(月精寺)註 486486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에 있는 절로 현존한다.닫기가 이것이다.
註 482
탁발하고 수행하는 중을 말한다.
註 483
신라 문무왕 때의 고승이다.
註 484
강원도 강릉에 있던 절로 신라 때 자장법사가 세웠으며 말년에 거주했다고 한다.
註 485
지혜와 덕이 높고 나이가 많은 비구의 통칭이다.
註 486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에 있는 절로 현존한다.
주제분류
문화>사상>불교사상>사원·단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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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오만진신(臺山五萬眞身) >보천, 효명의 두 태자가 오대산으로 들어가다(648년 8월 (음))
보천, 효명의 두 태자가 오대산으로 들어가다 ( 648년 08월(음) )
자장법사가 신라로 돌아왔을 때 정신대왕(淨神大王) 태자 보천(寶川), 효명(孝明) 두 형제 ≪국사(國史)≫를 살피건대, 신라에는 정신·보천·효명 3 부자에 대한 글이 없다. 그러나 이 기록의 하문(下文)에 이르기를, 신룡(神龍)註 487487 당 중종의 연호로 705년~707년에 사용하였다.닫기 원년에 터를 닦고, 절을 세웠다고 하였는데, 곧 신룡은 성덕왕(聖德王) 즉위 4년 을사(乙巳)이다. 왕의 이름은 흥광(興光)이요, 본명은 융기(隆基)로 신문왕(神文)의 둘째 아들이다. 성덕왕의 형[孝照]은 이름이 이공(理恭)이며, [공(恭)을] 홍(洪)이라고도 썼는데, 역시 신문왕의 아들이다. 신문왕註 488488 신라의 제31대 왕이자 제30대 문무왕의 맏아들로 재위 기간은 681년~692년이다.닫기정명(政明)의 자는 일조(日照)이다. 정신은 아마도 정명·신문의 와전인 듯하다. 효명은 곧 효조의 [조(照)를] 소(昭)로 쓴 데서 온 와전인 듯하다. 기록에 이르기를, 효명이 즉위하고, 신룡 연간에 터를 닦고 절을 세웠다고 말한 것도 역시 분명치 못한 말이니, 신룡 연간에 절을 세운 이는 성덕왕이다.가 하서부(河西府) 지금의 명주(溟州)註 489489 오늘날의 강원도 강릉 일대를 가리킨다.닫기에 또한 하서군(河西郡)이 있으니 이곳이다. 혹은 하곡현(河曲縣)이라고 쓰는데, 지금의 울주(蔚州)는 이곳이 아니다.에 이르러, 세헌(世獻) 각간註 490490 신라의 경위(京位) 17관등 중 최상의 관등인 이벌찬(伊伐湌)의 다른 명칭으로 이벌간(伊伐干), 우벌찬(于伐湌), 각찬(角湌), 서발한(舒發翰), 서벌감(舒伐邯)이라고도 한다. 각간이라는 관등이 생기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삼국사기≫ 권1 지마이사금(祇摩尼師今)조에 기록되어 있다. 진골(眞骨)만이 오를 수 있는 관등으로 중대에 이르러 그 위에 대각간·태대각간 등의 상위 관등을 두어 김유신처럼 국가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주기도 하였다(서의식, ≪신라 상대(上代) ‘간(干)’층의 형성·분화와 중위제(重位制)≫, 서울대학교박사학위논문, 1994| 김철준, 「고구려 신라 관계조직의 성립과정」, ≪한국고대사회연구≫, 지식산업사, 1975).닫기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이튿날 큰 고개를 지나 각기 무리 천 명을 거느리고 성오평(省烏坪)에 이르러 여러 날을 유람하더니, 문득 하루 저녁은 형제 두 사람이 속세를 떠날 뜻을 은밀히 약속하고 아무도 모르게 도망하여 오대산에 들어가 숨었다. 고기(古記)註 491491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본문의 첫 머리에 나오는 '산중고전(山中古傳)'을 가리키는 것 같다. 또한 다음 편의 溟州五臺山 寶叱徒太子傳記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닫기에는 “태화(太和)註 492492 신라 진덕여왕의 연호이다. 원문의 태화 원년은 647년으로 정미년이다.닫기 원년 무신(戊申) 8월초에 왕이 산중에 숨었다.”고 하였으나, 아마 이 글은 크게 잘못된 듯하다. 살피건대, 효조[조(照)를]소(昭)로도 썼다. 천수(天授)註 493493 당 측천무후의 연호로 690년~692년에 사용하였다.닫기 3년 임진(壬辰 ; 692)에 즉위하였는데, 그때 나이 열 여섯 살이었다. 장안(長安)註 494494 당 측천무후의 연호로 701년~704년에 사용하였다.닫기 2년 임인(壬寅 ; 702)에 죽으니 그때 나이 스물 여섯 살이었다. 성덕왕이 이 해에 즉위하니 나이 스물 두 살이었다. 만약 태화 원년 무신이라면 효조가 즉위한 임진보다 이미 45년이나 앞섰으니, 곧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치세이다, 이로써 이 글이 잘못된 것을 알 수 있으므로 이를 취하지 않는다. 시위하던 자들이 돌아갈 바를 알지 못하여 이에 나라로 돌아갔다.
註 487
당 중종의 연호로 705년~707년에 사용하였다.
註 488
신라의 제31대 왕이자 제30대 문무왕의 맏아들로 재위 기간은 681년~692년이다.
註 489
오늘날의 강원도 강릉 일대를 가리킨다.
註 490
신라의 경위(京位) 17관등 중 최상의 관등인 이벌찬(伊伐湌)의 다른 명칭으로 이벌간(伊伐干), 우벌찬(于伐湌), 각찬(角湌), 서발한(舒發翰), 서벌감(舒伐邯)이라고도 한다. 각간이라는 관등이 생기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삼국사기≫ 권1 지마이사금(祇摩尼師今)조에 기록되어 있다. 진골(眞骨)만이 오를 수 있는 관등으로 중대에 이르러 그 위에 대각간·태대각간 등의 상위 관등을 두어 김유신처럼 국가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주기도 하였다(서의식, ≪신라 상대(上代) ‘간(干)’층의 형성·분화와 중위제(重位制)≫, 서울대학교박사학위논문, 1994| 김철준, 「고구려 신라 관계조직의 성립과정」, ≪한국고대사회연구≫, 지식산업사, 1975).
註 491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본문의 첫 머리에 나오는 '산중고전(山中古傳)'을 가리키는 것 같다. 또한 다음 편의 溟州五臺山 寶叱徒太子傳記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註 492
신라 진덕여왕의 연호이다. 원문의 태화 원년은 647년으로 정미년이다.
註 493
당 측천무후의 연호로 690년~692년에 사용하였다.
註 494
당 측천무후의 연호로 701년~704년에 사용하였다.
주제분류
문화>사상>불교사상>승려생활
색인어
이름 : 자장법사,정신대왕,보천,효명,성덕왕,흥광,융기,신문왕,성덕왕,이공,신문왕,신문왕,정명,일조,정신,정명,신문,효명,효조,효명,성덕왕
卷 第三 >제4 탑상(塔像第四) >대산오만진신(臺山五萬眞身) >보천 효명 두 태자가 산속에 머물며 정진하다
보천 효명 두 태자가 산속에 머물며 정진하다
두 태자가 산 속에 이르니 푸른 연꽃이 문득 땅 위에 피었다. 형 태자가 [그곳에] 암자를 짓고 머물러 살게 되면서 이를 보천암(寶川庵)이라고 하였다. 동북쪽을 향하여 6백여 보를 가니 북대(北臺)의 남쪽 기슭에 또한 푸른 연꽃이 핀 곳이 있었으므로 아우 태자 효명도 그곳에 암자를 짓고 머물면서 각기 부지런히 정업을 닦았다.
하루는 [형제가] 함께 다섯 봉우리에 올라가 우러러 배례하려고 하니, 동대(東臺)인 만월산(滿月山)에 1만 관음보살(觀音)의 진신(眞身)이 나타나 있고, 남대(南臺)인 기린산(麒麟山)에는 팔대보살(八大菩薩)을 수위로 한 1만 지장보살[地藏]註 495495 석가모니의 부탁을 받고 그가 세상을 떠난 후부터 미륵불의 출세까지 부처없는 세계에 머물러 있으면서 중생을 교화 인도한다는 보살이다.닫기, 서대(西臺)인 장령산(長嶺山)에는 무량수여래(無量壽如來)를 수위로 한 1만 대세지보살[大勢至]註 496496 서방 극락정토를 주재하는 아미타불의 협시보살로 오른쪽에 위치한다.닫기, 북대(北臺)인 상왕산(象王山)에는 석가여래(釋迦如來)를 수위로 한 5백 대아라한(大阿羅漢)註 497497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자를 말한다.닫기, 중대(中臺)인 풍로산(風盧山) 다른 이름으로 지로산(地盧山)에는 비로자나(毘盧遮那)註 498498 부처님의 진신을 나타내는 칭호이다.닫기를 수위로 한 1만 문수보살의 진신이 나타나 있었다.
註 495
석가모니의 부탁을 받고 그가 세상을 떠난 후부터 미륵불의 출세까지 부처없는 세계에 머물러 있으면서 중생을 교화 인도한다는 보살이다.
註 496
서방 극락정토를 주재하는 아미타불의 협시보살로 오른쪽에 위치한다.
註 497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자를 말한다.
註 498
부처님의 진신을 나타내는 칭호이다.
주제분류
문화>사상>불교사상>승려생활
문화>사상>불교사상>불보살상·불사리
정치>왕실>왕족>태자·태자비
색인어
이름 : 효명
대산오만진신(臺山五萬眞身) >문수보살이 진여원에 이르러 여러 모양으로 현신하다
문수보살이 진여원에 이르러 여러 모양으로 현신하다
이와 같은 오만(五萬) 진신에게 일일이 우러러 예배하였다. 매일 이른 새벽에 문수보살이 진여원(眞如院), 지금의 상원(上院)에 이르러 36가지 모양으로 변신하여 나타났다.
어떤 때는 부처의 얼굴 모양으로 나타나고, 혹은 보주 모양으로, 혹은 부처의 눈 모양으로, 혹은 부처의 손 모양으로, 혹은 보탑 모양으로, 혹은 수 없이 많은 부처의 머리 모양으로, 혹은 만등(萬燈) 모양으로, 혹은 금다리[金橋] 모양으로, 혹은 금북(金鼓) 모양으로, 혹은 금종(金鐘) 모양으로, 혹은 신통(神通) 모양으로, 혹은 금다락[金樓] 모양으로, 혹은 금륜(金輪)註 499499 전륜성왕이 지닌 7보의 하나이다.닫기 모양으로, 혹은 금강저(金剛杵)註 500500 승려들이 법을 닦을 때 쓰는 도구의 하나이다.닫기 모양으로, 혹은 금옹기[金甕] 모양으로, 혹은 금비녀[金細] 모양으로, 혹은 오색광명(五色光明)註 501501 부처나 보살의 몸에서 나오는 파랑, 노랑, 빨강, 하양, 검정의 광명을 말한다.닫기 모양으로, 혹은 오색원광(五色圓光) 모양으로, 혹은 길상초(吉祥草註 502502 박하와 비슷한 풀이다. 길상이란 이름은 석가모니가 이 풀을 깔고 성도한 데서 생겼다.닫기) 모양으로, 혹은 푸른 연꽃(靑蓮花) 모양으로, 혹은 금전(金田)註 503503 금지(金地)라고도 하는데 절의 또 다른 표현이다.닫기 모양으로, 혹은 은전(銀田)註 504504 은지(銀地)라고도 하며 도량의 총칭이다.닫기 모양으로, 혹은 부처의 발 모양으로, 혹은 뇌전(雷電) 모양으로, 혹은 여래가 솟아나는 모양으로, 혹은 지신(地神)이 솟아나는 모양으로, 혹은 금봉황[金鳳] 모양으로, 혹은 금까마귀[金烏] 모양으로, 혹은 말이 사자를 낳는 모양으로, 혹은 닭이 봉황을 낳는 모양으로, 혹은 청룡 모양으로, 혹은 흰코끼리 모양으로, 혹은 까치 모양으로, 혹은 소가 사자를 낳는 모양으로, 혹은 노는 멧돼지 모양으로, 혹은 푸른 뱀 모양으로 나타나 보였다.
註 499
전륜성왕이 지닌 7보의 하나이다.
註 500
승려들이 법을 닦을 때 쓰는 도구의 하나이다.
註 501
부처나 보살의 몸에서 나오는 파랑, 노랑, 빨강, 하양, 검정의 광명을 말한다.
註 502
박하와 비슷한 풀이다. 길상이란 이름은 석가모니가 이 풀을 깔고 성도한 데서 생겼다.
註 503
금지(金地)라고도 하는데 절의 또 다른 표현이다.
註 504
은지(銀地)라고도 하며 도량의 총칭이다.
주제분류
문화>사상>불교사상>불보살상·불사리
대산오만진신(臺山五萬眞身) >국인이 보천을 왕으로 추대하였으니 사양하므로 효명태자를 받들어 즉위하게 하다
국인이 보천을 왕으로 추대하였으니 사양하므로 효명태자를 받들어 즉위하게 하다
두 태자는 매번 골짜기의 물을 길어와 차를 다려서 공양하고, 밤이 되면 각각 암자에서 도를 닦았다. 그 무렵 정신왕의 아우가 왕과 왕위를 다투었는데, 나라사람들이 이를 폐하고 장군 네 사람을 산에 보내 두 왕자를 맞아오게 하였다. [그 사람들이] 먼저 효명의 암자 앞에 이르러 만세를 부르니, 그때 오색구름이 7일 동안이나 [그곳을] 드리워 덮었다. 나라 사람들이 그 구름을 쫓아 모두 와서 의장을 벌여 열을 짓고, 두 태자를 맞이하여 가려고 하였다. 보천은 울면서 굳이 사양하므로 효명을 받들어 돌아와 즉위하게 하였다.
주제분류
정치>왕실>국왕>즉위·책봉
정치>왕실>왕족>태자·태자비
정치>왕실>왕위계승>계승쟁탈전
색인어
제4 탑상(塔像第四) >대산오만진신(臺山五萬眞身) >진여원을 개창하고 문수보살의 상을 안치하고 화엄경을 강하다
진여원을 개창하고 문수보살의 상을 안치하고 화엄경을 강하다
[효명이] 나라를 다스린 지 몇 해가 지나 고기(古記)에 이르되, 재위 20여 년이라 하였음은 아마도 붕어할 때 나이 스물 여섯 살을 잘못 전한 것이리라. 재위는 다만 10년뿐이었다. 또 신문왕의 아우가 왕위를 다투었다는 일은 ≪국사≫에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신룡 원년 곧 당 중종(中宗)이 복위한 해로, [신라] 성덕왕 즉위 4년이다. 을사(乙巳) 3월 초 4일에 처음으로 진여원을 개창하니, 대왕이 친히 백료를 거느리고 산에 이르러 전당(殿堂)을 세우고, 아울러 문수보살의 소상(塑像)을 만들어 당 안에 모셨다. 지식(知識) 영변(靈卞) 등 다섯 명으로 ≪화엄경(華嚴經)≫을 오랫동안 전독註 505505 경문을 돌려가면서 읽는 것으로, 다 읽지 아니하고 요긴한 곳만 중간 중간 추려서 읽는다.닫기하여 화엄사(華嚴社)를 조직하고, 길이 공양할 비용을 매년 봄과 가을에 산에서 가까운 주·현으로부터 창조(倉租) 1백 석과 정유(淨油) 1석씩을 공급하는 것을 항상 규칙으로 삼고, [또] 진여원 서쪽으로 6천 보를 걸어서 모니점(牟尼岾)註 506506 오대산 중의 지명으로 생각되지만 상세히는 알 수 없다.닫기과 고이현(古伊峴)註 507507 오대산 중의 지명으로 생각되지만 상세히는 알 수 없다.닫기 밖에 이르는 땔나무 산판 15결, 밤나무 숲 6결, 전답 2결을 주어 처음으로 장사(莊舍)를 두었다.
註 505
경문을 돌려가면서 읽는 것으로, 다 읽지 아니하고 요긴한 곳만 중간 중간 추려서 읽는다.
註 506
오대산 중의 지명으로 생각되지만 상세히는 알 수 없다.
註 507
오대산 중의 지명으로 생각되지만 상세히는 알 수 없다.
문화>사상>불교사상>불교정책정치>왕실>궁궐>殿·門·閣·堂·樓·臺·亭·房문화>사상>불교사상>불보살상·불사리
이름 : 지식,영변지명 : 모니점,고이현서명 : 화엄경
대산오만진신(臺山五萬眞身) >보천은 정진하면서 도를 닦았는데 이후 국가에 이로운 일을 기록으로 남기다
보천은 정진하면서 도를 닦았는데 이후 국가에 이로운 일을 기록으로 남기다
보천은 항상 그 신령한 골짜기의 물을 길어 마셨으므로 만년에 육신이 허공을 날아 유사강(流沙江)註 508508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4, 영해도호부에 유사정(流沙亭)이 있으므로, 유사강은 그 부근에 있는 하천으로 추정된다. 영해는 현재 경상북도 영덕군에 해당한다.닫기 밖 울진국(蔚珍國) 장천굴(掌天窟)註 509509 울진군 소재 성류굴(聖留窟)의 옛이름이다.닫기에 이르러 [그곳에] 머물러 수구다라니(隨求陁羅尼)註 510510 당의 불공(不空)이 번역한 다라니 경전이다.닫기를 외우는 것을 낮과 밤의 과업으로 삼았더니, 굴의 신령이 몸을 나타내어 이르기를, “내가 굴의 신령이 된지 이미 2천 년이 되었으나, 오늘에야 비로써 수구다라니의 참 도리를 들었으니 보살계(菩薩戒)註 511511 대승의 보살들이 받아 지켜야 할 계율로 범망위종(梵網爲宗)과 유가품승(瑜伽稟承)의 두 종류가 있다. 범망위종은 ≪범망경≫에 의하여 계를 받는 것으로, 계상(戒相)은 그 경에 대한 10중대계와 48경계로서 삼취정계(三聚淨戒) 가운데의 섭률의계(攝律儀戒)에 해당한다. 유가품승(瑜伽稟承)은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의 보살지품(菩薩持品)인 ≪보살경≫에 의한 것으로 섭율의계는 소승의 비구가 받아 지니는 250계이다. 고려시대의 임금들은 정기적으로 이 보살계를 받았다고 한다.닫기를 받기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굴의 신이 보살계를] 받고 난 다음날 굴이 또한 형체가 없어졌다. 보천은 놀라고 이상하게 여겨 [그곳에] 20일을 머물고 나서 오대산신성굴(神聖窟)로 돌아갔다. 다시 50년 동안 도를 닦으니 도리천(忉利天)註 512512 불교의 우주관인 3계(界) 28천(天) 가운데 욕계(欲界) 6천(天) 중의 두 번째 천(天)으로, 세계의 중심에 위치하는 수미산(須彌山)의 꼭대기에 있다(定方晟, ≪佛敎にみる世界觀≫, 1980, 文明社).닫기의 신이 세 번 법을 듣고, 정거천(淨居天)註 513513 성인이 거주하는 하늘나라를 뜻한다.닫기의 무리가 차를 다려 공양하였고, 40명의 성중이 10척 상공을 날아 항상 호위하고, 가지고 있던 석장은 하루에 세 번 소리를 내며 방을 세 바퀴 돌아다녔으므로 이것으로써 종과 경쇠를 삼아 때를 쫓아 수업하였다.
어떤 때는 문수보살이 보천의 이마에 물을 붓고 성도기별(成道記莂)註 514514 부처가 제자에게 미래에 성불할 것을 일일이 구별하여 예언하는 일을 말한다.닫기을 주기도 하였다. 보천이 바야흐로 입적하는 날 후일 산중에서 행할 국가에 도움이 될 만한 일들을 기록으로 남겨 두었다. [기록은] 다음과 같다.
“이 산은 곧 백두산(白頭山)의 큰 줄기로서 각 대(臺)는 [불보살의] 진신이 항상 머무는 땅이다. 청색[방]은 동대의 북각 밑과 북대의 남쪽 기슭 끝에 있으니 마땅히 관음방을 두어, 원상(圓像)의 관음보살과 푸른 바탕에 1만 관음상을 그려서 봉안하고, 복전(福田) 다섯 명을 두어 낮에는 8권의 ≪금광명경[金經]≫註 515515 대승불교(大乘佛敎)가 전파된 지역에서 널리 영향을 끼친 중요한 경전으로 참회멸죄(懺悔滅罪)의 행동을 가르침과 아울러, 다른 면에서는 호국안민(護國安民)·왕도(王道)·자기희생·이타(利他) 등을 강조하여 전체적으로는 밀교(密敎)의 색채가 농후하다.닫기, ≪인왕경[仁王]≫註 516516 왕들에게 부처가 되는 지혜에 대하여 설교한 경전이다.닫기,≪반야경[般若]≫註 517517 모든 법의 실상은 반야에 의해 밝혀진다고 설명하는 경전이다.닫기, ≪천수주(千手呪)≫註 518518 천수다라니(千手陀羅尼)를 이르는 말로 천수관음의 공덕을 말한 경전이다.닫기를 읽고, 밤에는 관음예참(觀音禮懺)을 염송하게 하여 이름을 원통사(圓通社)로 하여라. 적색[방]인 남대 남면에 지장방을 두고, 원상의 지장보살과 붉은 바탕에 8대보살을 수위로 한 1만 지장보살상을 그려 봉안하고, 복전승 다섯 명이 낮에는 ≪지장경(地藏經)≫註 519519 지장보살의 공덕을 찬양한 경전이다.닫기과 ≪금강반야경[金剛般若]≫註 520520 제자 수보리를 위하여 설한 경전으로, 한곳에 집착하여 마음을 내지 말고 항상 머무르지 않는 마음을 일으키면 곧 진리인 여래를 보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닫기을 읽고, 밤에는 점찰예참(占察禮懺)을 [염송하되, 이름을] 금강사(金剛社)로 하여라.
백색[방]인 서대 남면에 미타방을 두고 원상의 무량수불[無量壽]註 521521 서방정토를 주재하는 부처의 이름이다. 아미타불 또는 무량광불이라고도 한다. 이 부처님은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의 감화를 받은 법장(法藏)이 이상국 건설을 기원하고 또 48원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장구한 수행 끝에 성불한 존재라고 한다.닫기과 흰 바탕에 무량수여래를 수위로 1만 대세지보살을 그려 봉안하고, 복전승 다섯 명이 낮에는 8권의 ≪법화경[法華]≫註 522522 ≪묘법연화경≫의 줄임말이다. 우리나라 천태종의 근본경전으로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기본사상으로 하고 있으며, 화엄경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사상의 확립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닫기을 읽고, 밤에는 미타예참(彌阤禮懺)을 염송하되, [이름을] 수정사(水精社)로 하여라. 흑색[방]인 북대 남면에 나한당(羅漢堂)을 두고 원상의 석가불[釋迦]과 검은 바탕에 석가여래를 수위로 5백 나한(羅漢)을 그려 봉안하고, 복전승 다섯 명이 낮에는 ≪불보은경(佛報恩經)≫註 523523 부처가 일찍이 부모의 은혜를 갚은 사실을 기록한 경전이다.닫기과 ≪열반경(涅槃經)≫註 524524 석가모니불의 열반을 중심으로 설한 경전이다.닫기을 읽고, 밤에는 열반예참(涅槃禮懺)을 염송하되, [이름을] 백련사(白蓮社)로 하여라. 황색[방]인 중대의 진여원 중앙에 진흙으로 빚은 문수보살의 부동상(不動)註 525525 수행자를 도와서 큰 지혜를 얻게 하여 성불하도록 돕는 부동명왕상(不動明王像)을 말한다.닫기을 봉안하고, 뒷벽에는 노란 바탕에 비로자나불을 수위로 한 36가지로 변화하는 모양을 그려 봉안하고, 복전승 다섯 명이 낮에는 ≪화엄경(華嚴經)≫註 526526 ≪대방광불화엄경≫의 줄임말로,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기본사상으로 하고 있다.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크게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닫기과 ≪육백반야경[六百般若]≫註 527527 반야를 설명한 여러 경전을 집성하였다.닫기을 읽고, 밤에는 문수예참(文殊禮懺)을 염송하되, [이름을] 화엄사(華嚴社)로 하여라. 보천암을 화장사(華藏社)로 고쳐 세우고, 원상의 비로자나 삼존과 ≪대장경(大藏經)을 봉안하고, 복전승 다섯 명이 ≪대장경≫을 항상 열람하고, 밤에는 화엄신중(華嚴神衆)을 염송하고, 매년 화엄회(華嚴會)를 1백일 동안 베풀되, 이름을 법륜사(法輪社)로 하여라.
이 화장사(華藏寺)註 528528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에 있었던 절이다.닫기를 오대사(五臺社)의 본사(本寺)로 삼아 굳게 보호하며 지키고, 행실이 정결한 복전승에게 명하여 길이 향화(香火)를 받들게 하면, 국왕이 천추를 누리고 백성은 평안하고 문무[文虎]註 529529 고려 2대 임금인 혜종(惠宗)의 이름인 武를 피휘하기 위하여 호(虎)로 썼다.닫기는 화평하고, 백곡이 풍요할 것이다. 또 하원(下院)의 문수갑사(文殊岬寺)註 530530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에 있었던 절이다.닫기를 더 배치하여 여러 사(社)들의 도회소(都會)로 삼고 복전승 일곱 명이 밤낮으로 늘 화엄신중예참을 행하고, 위의 37명의 재에 드는 경비와 의복의 비용은 하서부의 도 내 8주(州)의 세금으로 네 가지 일의 자금에 충당하게 하라. [이렇게 하는 것을]대대로 군왕은 잊지 않고 준행하면 다행이겠다.”라고 하였다.
註 508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4, 영해도호부에 유사정(流沙亭)이 있으므로, 유사강은 그 부근에 있는 하천으로 추정된다. 영해는 현재 경상북도 영덕군에 해당한다.
註 509
울진군 소재 성류굴(聖留窟)의 옛이름이다.
註 510
당의 불공(不空)이 번역한 다라니 경전이다.
註 511
대승의 보살들이 받아 지켜야 할 계율로 범망위종(梵網爲宗)과 유가품승(瑜伽稟承)의 두 종류가 있다. 범망위종은 ≪범망경≫에 의하여 계를 받는 것으로, 계상(戒相)은 그 경에 대한 10중대계와 48경계로서 삼취정계(三聚淨戒) 가운데의 섭률의계(攝律儀戒)에 해당한다. 유가품승(瑜伽稟承)은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의 보살지품(菩薩持品)인 ≪보살경≫에 의한 것으로 섭율의계는 소승의 비구가 받아 지니는 250계이다. 고려시대의 임금들은 정기적으로 이 보살계를 받았다고 한다.
註 512
불교의 우주관인 3계(界) 28천(天) 가운데 욕계(欲界) 6천(天) 중의 두 번째 천(天)으로, 세계의 중심에 위치하는 수미산(須彌山)의 꼭대기에 있다(定方晟, ≪佛敎にみる世界觀≫, 1980, 文明社).
註 513
성인이 거주하는 하늘나라를 뜻한다.
註 514
부처가 제자에게 미래에 성불할 것을 일일이 구별하여 예언하는 일을 말한다.
註 515
대승불교(大乘佛敎)가 전파된 지역에서 널리 영향을 끼친 중요한 경전으로 참회멸죄(懺悔滅罪)의 행동을 가르침과 아울러, 다른 면에서는 호국안민(護國安民)·왕도(王道)·자기희생·이타(利他) 등을 강조하여 전체적으로는 밀교(密敎)의 색채가 농후하다.
註 516
왕들에게 부처가 되는 지혜에 대하여 설교한 경전이다.
註 517
모든 법의 실상은 반야에 의해 밝혀진다고 설명하는 경전이다.
註 518
천수다라니(千手陀羅尼)를 이르는 말로 천수관음의 공덕을 말한 경전이다.
註 519
지장보살의 공덕을 찬양한 경전이다.
註 520
제자 수보리를 위하여 설한 경전으로, 한곳에 집착하여 마음을 내지 말고 항상 머무르지 않는 마음을 일으키면 곧 진리인 여래를 보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註 521
서방정토를 주재하는 부처의 이름이다. 아미타불 또는 무량광불이라고도 한다. 이 부처님은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의 감화를 받은 법장(法藏)이 이상국 건설을 기원하고 또 48원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장구한 수행 끝에 성불한 존재라고 한다.
註 522
≪묘법연화경≫의 줄임말이다. 우리나라 천태종의 근본경전으로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기본사상으로 하고 있으며, 화엄경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사상의 확립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註 523
부처가 일찍이 부모의 은혜를 갚은 사실을 기록한 경전이다.
註 524
석가모니불의 열반을 중심으로 설한 경전이다.
註 525
수행자를 도와서 큰 지혜를 얻게 하여 성불하도록 돕는 부동명왕상(不動明王像)을 말한다.
註 526
≪대방광불화엄경≫의 줄임말로,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기본사상으로 하고 있다.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크게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註 527
반야를 설명한 여러 경전을 집성하였다.
註 528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에 있었던 절이다.
註 529
고려 2대 임금인 혜종(惠宗)의 이름인 武를 피휘하기 위하여 호(虎)로 썼다.
註 530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에 있었던 절이다.
주제분류
문화>사상>불교사상>승려생활
문화>사상>불교사상>경논소
색인어
서명 : 금광명경,인왕경,반야경,천수주,지장경,금강반야경,법화경,불보은경,열반경,화엄경,육백반야경,대장경,대장경
국명 : 울진국
제4 탑상(塔像第四) >명주오대산보질도태자전기(溟州 五臺山寶叱徒太子傳記) >보질도태자가 오대산으로 들어가므로 모두 찾지 못하다
보질도태자가 오대산으로 들어가므로 모두 찾지 못하다
명주註 531531 강원도 강릉시 부근 일대를 가리킨다.닫기옛날의 하서부이다.오대산보질도태자전기(溟州(古河西府也) 五臺山寶叱徒太子傳記)
신라 정신태자(淨神太子) 보질도(寶叱徒)는 아우 효명태자(孝明太子)와 더불어 하서부(河西府) 세헌(世獻) 각간의 집에 도착하여 하루 밤을 자고 다음날 큰 고개를 넘어 각기 1천 명을 거느리고 성오평(省烏坪)에 도착하여 여러 날을 놀다가 태화(太和) 원년(647) 8월 5일 형제가 함께 오대산(五臺山)으로 숨어 들어갔다.
무리들 가운데 시위자들이 [태자 형제를] 옮겨가며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모두 함께 서울로 돌아갔다.
註 531
강원도 강릉시 부근 일대를 가리킨다.
주제분류
문화>사상>불교사상>승려생활정치>왕실>왕족>태자·태자비
색인어
이름 : 정신태자,보질도,효명태자,세헌지명 : 명주,오대산,하서부,성오평,오대산
卷 第三 >제4 탑상(塔像第四) >명주오대산보질도태자전기(溟州 五臺山寶叱徒太子傳記) >두 태자는 항상 염불하고 오대산 문수전에 예배하다
두 태자는 항상 염불하고 오대산 문수전에 예배하다
형 태자는 [오대산] 중대(中臺) 남쪽 아래 진여원(眞如院)터 아랫산 끝에 푸른 연꽃이 핀 곳을 보고 그곳에 풀로 암자를 짓고 살았다. 동생 효명은 북대(北臺) 남쪽 산 끝에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역시 풀로 암자를 짓고 살았다. 형제 두 사람이 예배하고 염불을 수행하고 오대(五臺)에 나아가 공경하여 예배하였다.
주제분류
문화>사상>불교사상>승려생활
정치>왕실>왕족>태자·태자비
색인어
이름 : 효명
지명 : 오대
명주오대산보질도태자전기(溟州 五臺山寶叱徒太子傳記) >오대산에는 항상 문수보살이 거처하며 36가지 형상으로 나타나다
오대산에는 항상 문수보살이 거처하며 36가지 형상으로 나타나다
청색방인 동대(東臺)의 만월 모양의 산에는 관음보살(觀音) 진신 1만이 항상 있었고, (적색방인) 남대(南臺)의 기린산(麒麟山)에는 8대 보살(八代菩薩)을 수위로 한 1만 지장보살(地藏菩薩)이 항상 있고, 백색방인 서대(西臺) 장령산(長嶺山)에는 무량수여래(無量壽如來)를 수위로 하여 1만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이 항상 거주하고, 흑색방인 북대(北臺)의 상왕산(相王山)에는 석가여래(釋迦如來)를 수위로 한 5백 대아라한(大阿羅漢)이 항상 있고, 황색방인 중대 풍로산(風爐山)은 또한 이름을 지로산(地爐山)이라고 하여 비로자나(毘盧遮那)를 수위로 한 1만 문수보살(文殊)이 항상 있고, 진여원 땅에는 문수보살이 날마다 이른 새벽에 36가지 모양으로 36가지 모양은 대산오만진신전(臺山五萬眞身傳)에 보인다.변화하여 나타났다.
주제분류
문화>사상>불교사상>불보살상·불사리
색인어
명주오대산보질도태자전기(溟州 五臺山寶叱徒太子傳記) >보질도 태자가 사양하므로 국인이 효명태자만 모시고 서울로 돌아와 왕위에 오르다
보질도 태자가 사양하므로 국인이 효명태자만 모시고 서울로 돌아와 왕위에 오르다
두 태자는 나란히 예배하고, 매일 이른 아침에 골짜기의 물을 길어와 차를 다려 1만 진신문수보살을 공양하였다. [이 무렵] 정신태자의 아우 부군(副君)이 신라에 있으며 왕위를 다투다가 죽음을 당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장군 네 사람을 보내 오대산에 이르러 효명태자 앞에서 만세를 부르니, 이에 오색 구름이 있어 오대에서부터 신라에까지 7일 7야 동안 빛이 비치었다. 나라사람들이 그 빛을 찾아 오대산에 이르러 두 태자를 모시고 서울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보질도태자는 눈물을 흘리며 돌아가지 않으므로, 효명태자만 모시고 서울로 돌아와 왕위에 올랐다. 재위 20여 년인 신룡(神龍)註 532532 당 중종의 연호로 705년~707년에 사용하였다.닫기 원년(705) 3월 8일 비로소 진여원을 세웠다. 고한다.보질도태자는 항상 골짜기의 신령한 물을 마시고, 육신이 하늘을 날아 유사강(流沙江)에 이르러 울진대국(蔚珍大國)의 장천굴(掌天窟)에 들어가 수도하고 다시 오대산신성굴(神聖窟)로 돌아와 50년 동안 수도하였다. 고 한다.오대산은 곧 백두산(白頭山)의 큰 줄기로 각 대에는 불보살의 진신이 항상 있었다. 고 한다.
註 532
당 중종의 연호로 705년~707년에 사용하였다.
주제분류
정치>왕실>국왕>즉위·책봉
정치>왕실>왕족>태자·태자비
정치>왕실>궁궐>殿·門·閣·堂·樓·臺·亭·房
색인어
이름 : 정신태자,부군,효명태자,보질도태자,효명태자,보질도태자
지명 : 오대산,오대,오대산,유사강,장천굴,오대산,신성굴,오대산,백두산
국명 : 울진대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