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청주시 수암골 벽화마을
♠ 한결 같은 풍경으로 기억되는 골목
수암골은 한국사의 비극 속에서 생겨난 곳이다.피비린내 나는6·25전쟁이 끝난 후 울산의 한 육군병원 앞에 천막을 치고 고달프게 살아가던 피난민들이 청주 우암산 산자락으로 이주하면서 작은 달동네가 형성되었다.나날이 발전하는 도심과 달리 이곳은 그때나 지금이나 큰 변화 없이 예전 풍경과 골목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2007년 전까지는 청주 사람들조차 세상에 이런 동네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조용하고 소외된 마을이었다. 2007년 이후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이 추진되어 충북 민족미술인협회와 민예총의 작가들,청주대학교,서원대학교 학생들이 협력해서'추억의 골목여행'이라는 주제로 서민들의 일상을 담은 벽화를 수암골 곳곳에 그렸다.회색빛으로 음울하던 골목길은 온갖 다채롭고 재기발랄한 그림들로 가득 채워졌다.
그러자 사람들 사이에 예쁜 벽화마을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드라마<카인과 아벨>과<제빵왕 김탁구>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주말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카메라를 둘러멘 사진가들의 출사 장소요,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사랑을 받으면서 수암골은 전국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 수암상회,수암골을 떠올리는 빛바랜 장소
수암골의 입구에는'삼충상회'가 있다.파란 페인트로 칠해진 간판에는 투박한 글씨체로 삼충상회가 적혀 있다.그 옆 수도관에 방치된 화분에도 아기자기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수암골의 유일한 가게이자 동네 어른들의 사랑방이다.이제는 익숙한 듯 카메라를 둘러멘 내 모습도 그저 무심히 바라본다.감이 다 떨어진 한겨울인데도 감나무 아래 담벽에는 주홍빛 감이 수북히 열린 감나무가 있다.삼충상회 담벼락에는 숨바꼭질 술래가 된 소녀가'꼭꼭 숨어라.머리카락 보인다!'하며 소리치고 있었다.술래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소녀를 뒤로하고 살금살금 걸었다.
삼충상회에서부터 살짝 가파른 골목길이 요리조리 뻗어 있는데,그리 힘들이지 않고 돌아볼 수 있다.그 골목 한구석에 수암골15통 골목 지도가 그려져 있다.그 지도를 보면 수암골은 잘생긴 한 톨의 밤알이다.수십 년간 무채색이었던 골목이 그림들로 채워지면서 보는 풍경마다 한 폭의 그림이 되고,한 편의 시가 된다.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 낡은 벽에는 은은한 연꽃이 피었다.마치 탁류를 맑히는 연꽃처럼 그림 속 연꽃은 저 혼잡한 도시의 스트레스를 잊게 만든다.
한때 이 달동네에서 자취를 하며 작가의 삶을 꿈꿨던 솔뫼라는 이는 그 벽에다 낙서처럼 시를 남겼다.그는 수암골의'ㅁ자 집마당에 이어달리기로 꽃이 피던'자취집 달방을 깊은 산속 암자인 양 오세암이라 불렀다.그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이어달리기로 꽃이 피던 이 달방에서의 치열한 삶을 회한처럼 돌아본다.골목마다 이렇고 저런 삶의 사연이 가득하다.동네 위쪽에 있던 수암상회는 이제는 지붕도 무너지고 주인은 떠나 버린 폐허가 되었다.벽화만이 과거에 이곳이 수암상회였다는 기억을 떠올리게 할 뿐이다.곳곳에 무심히 지나치면 놓칠지도 모르는 그림들이 숨은그림찾기처럼 숨어 있다.
♠ 수암골의 담벼락에 깃든 또 다른 세상
이제 수암골 달동네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작은 샛길 한 곳에는 길게 피아노 건반을 그려 놓았다.그 위를 폴짝폴짝 뛰어다니면 마음속에는 아름다운 연주가 울려 퍼진다.발로 연주하고 마음으로 들리는 피아노 소리,수암골에는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피아노가 있다.진정한 사람의 대화가 마음으로 하는 대화이듯 진정으로 아름다운 음악은 마음으로 들린다.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대하고 삶을 살아가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을 것이다.
수암골 제일 위쪽에는'막다른 길'이라고 적혀 있는 막다른 골목이 있다.그 골목 벽화에는 지평선 너머 푸른 하늘로 이어지는 골목길 풍경이 그려져 있다.막다른 길은 그림을 통해 저 멀리 푸른 하늘까지 이어진다.이제 막다른 길은 더 이상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그곳에서 삶은 계속되고 길은 숨은 그림 너머로 이어진다.
막다른 길에서 옆길로 발걸음을 옮겼다.재봉틀 기능인 최원만 씨가 살고 있음에 틀림없는 재봉틀 그림 골목을 지나서 낡고 갈라진 시멘트 벽이 이어진 골목을 걸었다.그 골목 끝 시멘트 계단 옆 벽면에 우아한 발레 포즈로 춤을 추는 무희가 시선을 붙들었다.허름한 벽면,아무도 보아 주지 않는 달동네 한구석이지만,그림 속 그녀의 자세는 완벽했고,한 마리 백조처럼 아름다웠다.비록 유명화가의 그림은 아니지만 발레리나 벽화는 적어도 그 순간 내게는 아름다운 삶이자 질퍽한 인생길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나만의 춤을 춰야겠다는 꿈을 불어넣어 주었다.
모로코 대서양 해안의 작은 마을 아실라는 잘 보존된 구시가지 메디나로 유명한 곳이다.모로코 전통 주택들이 메디나 성벽 안에 잘 보존되어 있다.아실라의 벽화는 자칫 평범할 수 있는 메디나를 한층 아름답게 바꾸어 놓았다.벽화와 어우러진 메디나를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수십 년 동안 변함없이 이어져 온 수암골의 풍경도 벽화로 인해 매력적인 관광지로 탈바꿈하게 되었고,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공간이 되었다.벽화가 선사하는 예술적인 즐거움과 일상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아실라이고 수암골이다.
아기자기한 벽화마을을 생각하며 큰 기대 없이 찾아온 수암골은 평범한 벽화로 내게 꿈을 불어넣어 주었다.온통 개발 중독증에 걸린 우리나라에 적어도 수암골처럼 옛 골목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마을 하나쯤은 있는 게 좋지 않을까.숨가쁜 우리의 삶에 잠시나마 여유로운 호흡을 안겨 주는 작은 마음의 쉼표 말이다.
<여행 정보>
#도착하기대중교통-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로 청주에 도착한 후 시외버스터미널(고속버스터미널 옆에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다.)앞 시내버스 정류장에서105, 511, 517-1, 517-2, 747, 825, 913번 버스를 탄다.우암초등학교(방아다리)에서 내려 타고 온 버스의 반대편으로 조금 걸으면 수암골 안내표지판이 나온다.표지판을 따라 걷다 보면 드라마<제빵왕 김탁구>에 나왔던'팔봉제빵점'이 나오고 곧 수암골 벽화마을과 연결된다.
자가용- ➊ 중부고속도 오창IC로 나올 때:공군사관학교·청주 방면으로 우측 방향(17번 국도)▶좌회전(상당로218번길)▶우회전(수동로58번길)▶좌회전(수동로58번길)▶우회전(수동로42번길)▶좌회전(수동로)▶우회전▶수암골 ➋ 중부고속도로 서청주IC로 나올 때:서청주IC삼거리▶보은·청주공항·도청·시청·청주산업단지 방면으로 좌회전(직지대로)▶고가도로(직지대로)▶우암 사거리 도청·시청 방면 우측 방향▶좌회전(수동로)▶우회전▶수암골
#따라가기팔봉제빵점에서 주인공 탁구가 만들었던 빵을 구경하고 벽화마을 입구에서 지도를 얻어 골목골목 내키는 대로 걷는다.마을 위는 우암산을 휘도는 우회도로와 만나는데 청주의 대표 드라이브 코스로,봄이면 벚꽃 구경,가을에는 단풍 구경,해질 녘에는 청주시 야경을 즐길 수 있다.드라이브가 아니더라도 해질 녘이라면 잠깐 올라가 보자.드라마<제빵왕 김탁구>의 팬을 위해 여기서 차로 6분 거리인 내덕2동에 제빵왕김탁구전시관(www.kimtakku.co.kr)도 있으며,시간이 더 있다면 편안하고 정감 있는 상당산성 주변도 걸어 보자.
#먹어 보기시외버스터미널 뒤쪽의'도토리고을'에서 도토리묵과 쟁반국수 등이 나오는 도토리정식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청주 여행을 시작하면 좋다.벽화마을 입구'삼충상회'나 그 맞은편'먹거리 마당'에서 예쁜 골목을 내어 주는 주민을 위한 감사의 마음으로 간단한 간식도 사 먹는다.수암골에서 6km떨어져 있는 분평동의'순호황토마을'은 신선한 생고기와 음식궁합이 맞는 맛 좋은 반찬을 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