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黃眞伊, 1506 ~ 1567)는 조선 중기의 시인, 기녀, 작가, 서예가, 음악가, 무희이다. 중종·명종 때(16세기 초, 중순경) 활동했던 기생으로, 다른 이름은 진랑(眞娘)이고 기생 이름인 명월(明月)로도 알려져 있다.
중종 때 개성의 황씨 성을 가진 진사의 서녀(庶女)로 태어났으며, 생부에 대해서는 전해지지 않는다. 시와 그림, 춤 외에도 성리학적 지식과 사서육경에도 해박하여 사대부, 은일사들과도 어울렸다. 성리학적 학문적 지식이 해박하였으며 시를 잘 지었고, 그림에도 능하였다.
많은 선비들과 이런 저런 인연과 관계를 맺으면서 전국을 유람하기도 하고 그 가운데 많은 시와 그림을 작품으로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으로 인해 대부분 실전되었고 남은 작품들도 그가 음란함의 대명사로 몰리면서 저평가되고 제대로 보존되지도 않아 대부분 인멸되었다.
👙황진이 팬티 누가 찢었나?
조선의 중종시대 황해도 개성땅에 미모의 기생 황진이가 있었다.
그는 기생이지만 양반과 사대부를 깔고 뭉겠으며 남자에게 노리개 감이 아니라 반대로 유명한 남자를 노리개 감으로 만든 기개 높은 멋진 여인이였다
기생으로 살면서 항상 남자를 가지고 노는 시인이며, 기개가 곧은 여인 이였다 그는 아버지 황진사와 종 어머니 천민의 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황진사가 길을 가다, 빨래하는 여인을 자빠뜨려 건드려 생긴게 황진이다. 황진이는 실록에 기록 된것은 없고 야사로 전해지는 것이다
어릴적에 천자문을 떼고 열살 때 부터 漢詩를 썼다. 황진사가 경제적으로 도와 준 것 옆집 총각이 상사병으로 죽자 상여가 황진이 집 앞에서 움직이지 않아서 황진이가 소복 차림으로 슬피울고 속치마를 관에 덮어주자 비로서 상여가 떠나갔다 이후로 황진이는 기생이 된다
세종의 증손자 벽계수가 황진이를 무시하고 앞 만 보고 가는데,
황진이가 시기하여 詩 한수를 읆는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다시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즉 ,청산에 흐르는 물은 자연스럽게 흐르는데 한번 바다에 닿으면 다시는 못 온다.
명월은 황진이를 말함. '나와 함께 놀다 가면 어떠하리!' 라는 詩를 노래한다
이에 벽계수가 황진이를 쳐다 보다가 말에서 떨어 졌다고 한다
이에 황진이는 별 볼일 없는 남자라 생각하고 돌아섰다고 함
삼십년간 道를 닦은 지족선사를 찾아가 유혹하여 파계승을 만들고, 천하의 학자 서경덕을 유혹 하였으나 실패하여 그의 제자가 되었고,
그래서 개경의 삼절은 황진이, 서경덕, 박연폭포라 한다
그는 기생 이였기에 유명한 사내들이 꼬였다 허나 그의 기개를 어떤 사대부도 꺽지 못했다. 황진이가 가지고 놀았을 뿐이다.
아랫 도리와 모든 것을 주고, 안주는건 황진이 마음 이였다. 사대부 집안 선전관 이었던 이사종과 6년간 계약 결혼을 한다
황진이 집에서 삼년을 살고, 삼년은 심산유곡을 찾아 멋진 유람생활을 한다. 그리고 깨끗이 헤어 지면서 詩 한수를 남긴다.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둘로 내어 춘풍 이불속에 서리 서리 넣었다가 그리운 님 오시는 날 밤에 굽이 굽이 펴리라!🍒
그후사대부 앙반만을 갖고 놀다가 말년에 대제학을 지낸 소세양이 내가 황진이를 딱 한 달만 데리고 놀다 헤어 진다며, 그러지 못하면 내 인간이 아니다 라고 친구들에게 맹세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소세양은 황진이 한 달간 동거한 후 헤어 지는데,
황진이가 詩 한수를 읆는다
🍒 달빛아래 오동잎 모두지고 찬서리 들국화는 노랗게 피여 있구나! 다락은 높고높아 하늘 만큼 닿았는데,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흐르는 물 소리는 차기가 비파소리 피리에 감겨드는 그윽한 매화 향기 내일 아침 눈물지며 이별하고 나면 님 그린 연모의 정 물거품이 되네!🍒
이 詩를 들은 소세양은 며칠을 더 머무르는데 친구들은 소세양을 사람이 아니라고 놀려댔다고 함
이후 황진이는 사십대 초반에 짧은 인생을 마감한다
유언에 깊은 산중에 묻으면 외로우니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가에 묻어 달라 한다, 그래서 길가에 그의 무덤을 만들었다
훗날 한양의 한량 임백호가 평양감사가 되어 부임하던 길에 황진이 묘를 지나다, 묘에 술잔을 재배하며 황진이를 그리며 詩 한수를 읆는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었난다 (자느냐 누웠느냐) 홍안은 어디두고 (너의 미모는 어델가고) 백골만 묻혔느냐 잔 잡아 권할이 없으니 (너와 한잔 술을 못하니) 이를 설워 (슬퍼) 하노라!
이 詩를 문제삼아 임백호는 파직 당한다
훗날 암행어사 이덕형이 '송도기 '라는 책에 ''황진이는 아리따운 외모를 지닌 선녀였고 천재 시인이였고 절창 이였다'' 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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