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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개요
ㅇ 언 제 : 2023. 3. 8(수) / 702차
ㅇ 누 가 : '계룡'수요산악회원 34명 / 50,000원
ㅇ 어 디 : 접도(전남 진도군 의신면 소재)
ㅇ 날 씨 : 맑음
ㅇ 코 스 : 여미재 - 쥐바위 – 솔섬바위 – 말똥바위 – 여미해안 – 수품포구 (11km/4시간)
트레킹앨범(여정)
진도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큰 섬 ‘진도(珍島)‘ -.
한반도 서/남해 바닷길에 230여개(유인도 45개, 무인도 185개) 섬들로 형성된 군도(群島)입니다.
옥도(玉島)라 불릴 정도로 토질이 비옥하여 '1년 농사로 3년을 먹고 산다'했던 섬이죠.
’보배의 섬‘이란 별칭답게 넓은 농경지에 해산물도 풍부한데요, 8경(울돌목, 신비의 바닷길, 관매도, 조도군도, 망월대, 운림산방, 용장산성, 금곡기암)과 3보(진돗개, 구기자, 돌미역)가 유명합니다.
그러나 한(恨) 많은 섬이었습니다.
몽골침략을 피해 강화도에서 항전하던 고려는 진도로 피해 결사항전 하지만, 결국 초토화되면서 텅 빈 공도(空島)가 되고 맙니다.
조선왕조실록에 166번 언급될 정도로 군사요충지였지만, 명나라 대명률(大明律)에 따라 중범에게 3,000리 유배형이 내려지던 시절엔 유배지이기도 했습니다.
땅덩어리가 작은 한반도라서 섬 하나를 건널 때마다 1,000리로 계산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아픔과 슬픔이 산자들의 유산으로 전승되면서 자연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한(恨)의 노래가 탄생된 섬입니다.
한국 3대 아리랑(밀양, 정선, 진도)의 공통점이 유배지와 관련 있지만, 그중 진도는 더욱 험지(險地)였습니다.
아리랑은 빈곤한 생활, 소외와 핍박, 통제와 차별, 이별의 고통 등 최하층으로 전락되어 인간적 서러움을 가장 많이 받고 있던 곳에서 나온 절규가 승화했을 것이라는 평입니다.
그래서 더 가고 싶은 섬인데요, 눈곱도 뗄 겨를 없이 새벽부터 설쳐댄 꾼들의 마음이 설레는 이유입니다.
엊그제가 경칩(驚蟄)이었으니, 어쩌면 봄이 상륙했을지도 모릅니다. (시청 앞 07:10시)
울돌목
’진도대교(484m)‘를 건넙니다.
쌍둥이 사장교(斜張橋)인데요, 1984년과 2005년에 개통되어 한(恨)의 섬에서 Wellbeing의 섬으로 탈바꿈케 한 다리입니다.
해남(문내면 학동)과 진도(군내면 녹진)의 경계인 ‘울돌목’에 놓였습니다.
‘바다가 우는 길목’이란 뜻인데요, ‘울다’와 ‘돌다’에 땅이름 ‘목’이 합쳐 생긴 이름입니다.
충무공 3대 해전중 하나인 명량대첩(鳴梁大捷) 현장으로 바다 폭이 300m 내외입니다.
마치 홍수를 만난 듯 물소리가 엄청난데요, 물살이 깊은 절벽으로 이루어진 좁은 해협에 부딪쳐 솟아오르는 소리입니다.
동양최대 유속(11knot)이라는데, 거품을 일으키며 물길이 소용돌이칠 땐 배가 거스르기도 힘들다죠.
그러나 낙조와 야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다리입니다.
다리가 놓이자 한반도 최남단이 해남에서 진도로 바뀌었는데, 이젠 외국인을 포함하여 연간 약 260여만이 찾을 정도로 국제적 관광명소가 되었다고 하네요.
아름다운 경관과 문화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고장으로 변신한 진도의 첫 관문을 통과합니다.
충무공의 후예로써 ‘울돌목에서 명량(鳴梁)의 감동’을 다시 한 번 찐하게 느낍니다.
접도
시름에 젖은 채 진도를 가로질러 ‘접도(接島)‘로 향합니다.
새끼(?) 섬이었기에 더욱더 혹독한 시련을 겪었을 것입니다.
원래 ‘금갑도(金甲島)‘라 불리던 섬이었습니다.
조선 영조 때 유배 온 이들이 너무 많아지자 ’먹여 살리기에 힘드니, 제발 다른 곳으로 옮겨 달라‘며 전라감사가 간곡하게 건의까지 했을 정도였답니다.
산길 따라 굽이굽이 휘돕니다.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구부야 눈물이 난다~♬]
서툰 솜씨로 한 구절 읊조립니다.
그런데 생뚱맞게 왜 경상도 ‘문경’이 진도아리랑 노래가사에 나오는 걸까요?
혹자는 문경(聞慶)이 아니라 문경(門景)을 의미하며, ‘문전세재’를 ‘문경새재’로 잘못 음역했다고 주장합니다.
진도 옛 성문 앞에 있는 3고개(‘남산’재, ‘연등’재, ‘굴’재)를 문전세재라 불렸으니, 문전(門前)에서 고개를 바라보며 아픔과 슬픔을 노래했다는 것입니다.
말 되네요. ㅎ
[♪~세월아 네월아 오가지를 마라, 아까운 청춘이 다 늙어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흥얼거리는 노인네의 어설픈 타령은 저 멀리 태평양까지 퍼질 기세입니다.
다시 접도대교(200m)를 건너, ‘섬 in 섬’으로 스며듭니다.
‘뉘라서 이곳을 유배지라 하리오!’
큰 여미재주차장
먼 길 달려온 가마가 접도 ‘큰 여미재주차장’에 털썩 주저앉아 꾼들을 토해냅니다. (11:30시)
습관적으로 두리번거리다가 보따리 둘러메고 신발 끈을 조입니다.
걸어낼 길이 기암절벽과 상록활엽수림이 펼쳐진 Wellbeing 등산코스라니 기대됩니다.
접도는 맑은 바다에 둘러싸여 선유(船遊)낚시로도 잘 알려진 섬입니다.
날씨가 좋으면 주봉에서 한라산까지 보인다는데, 오늘 볼 수 있을런가 모르겠네요.
커다란 돌에 새겨진 ‘체력은 정력’이라는 글귀가 눈에 거슬리지만(ㅋ), 산 높이(150m)가 부담스럽지 않다니 다행입니다.
대개의 꾼들이 이곳에 도착하면 진도의 상징인 진돗개가 꼬리를 흔들며 환영해준다는데, 둘러봐도 뵈질 않네요.
식용으로만 좋아하는 천적(天敵)들이 나타나서 그런 건 아닐까요? ㅋ
진돗개는 1962년부터 천연기념물(53호)로 보호되어 순수혈통을 잘 유지하고 있답니다.
테마파크까지 만들어 홍보하는데, 반드시 진도군수의 승인을 받아야 할 정도로 진출입이 엄격하다죠.
허나 차원이 다른 방식으로 개를 사랑하는 이들에겐 관심 밖 이야기입니다. ㅋ
산행
걸어내기 참 좋은 날씨입니다.
산이 높지 않아 산행보다는 트래킹에 가깝습니다.
사부작사부작... 금방 ‘쥐’바위(159m)를 터치합니다.
바위 생김새가 먹이를 앞에 두고 침 삼키는 쥐를 닮았다고 하네요.
북쪽에 보이는 남망산이 접도의 정수리라지만, 시간을 벌기 위해 다녀온 걸로 칩니다. ㅎ
바다에 둘러싸인 산골짜기들이 장엄합니다.
섬 in 섬 -.
주변이 몽땅 섬입니다.
동쪽으로 완도, 서쪽으로는 신안, 남쪽으로는 제주와 접합니다.
일찍부터 해남과 진도대교로 연결되어 사실상 육지가 된 진도는 남한에서 제일 북쪽인 고성통일전망대에서 육로로 이동할 수 있는 가장 먼 곳이라는데요, 직선거리로도 500km가 넘는답니다.
겨울에도 웬만해서는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지 않아 사철 농사가 가능하여 먹고 살기에 걱정이 없는데다가 유배된 선비들 영향으로 일찍부터 예향(藝鄕)의 섬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곳과 달리 독특한 자체 문화가 뚜렷하게 남아있는 섬이기도 합니다.
Wellbeing 등산로
‘쥐’바위에서 완만한 능선 타고 두리번거리며 걷습니다.
‘병풍’바위로 이르는 길목에 동백, 후박, 너도밤나무들이 군락을 이룹니다.
여자나무, 남자나무, 연리지나무도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윗부분이 붙어있는 여자나무와 가지를 잘라 만든 남자나무도 보입니다.
뿌리는 다른데도 자라면서 가지가 붙은 연리지(連理枝)가 눈길을 끕니다.
그래서 ‘부부나무’일까요?
덕지덕지 묻은 말 오줌 때문에 슬픈 나무도 있습니다.
나무 하러온 처녀총각이 사랑을 나눴다는 굴도 있는데, 19금이라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ㅋ
‘선달봉우리 전망 터’도 있습니다.
1430년 조선수군으로 근무하던 ‘선달’이 풍수(風水) 좋은 이곳을 묏자리로 잡았으나 후손이 문중 선산으로 이장(移葬)하여 지금은 터만 남았다는군요.
아래쪽 병풍바위 동백 숲은 망보기가 좋아 막사를 지어 군사시설로도 이용했답니다.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등산로이기에 지루하지 않아 더욱 좋습니다.
점심식사 -.
오면서 차내에서 잔뜩 채워넣은 우리 뱃속은 더이상 들어갈 공간이 없습니다. ㅎ
솔섬바위
병풍바위에서 동백오솔길 따라 삼림(森林)에 취해 걷다보면 ‘솔’섬 바위, ‘말똥’바위, 작은 여미계곡으로 갈라지는 산중삼거리에 이릅니다.
접도 끄트머리에 있는 ‘솔’섬 바위 조망대에 올라 가슴을 엽니다.
상록수들이 자리 잡은 작은 바위섬 너머로 수평선이 펼쳐지고, 확 트인 남해바다와 주변 경치가 너무 좋습니다.
힘껏 만세도 불렀습니다.
해변가에 유명한 명기(名妓)바위가 있는데, 안타깝게도 2019년도 태풍에 파손되었다죠.
등산대장의 겁박으로(^^) 그냥 패스해 많이 아쉽습니다.
한번 걸려들면 빠져나올 수 없는 ‘긴ㅇ꼬’바위라던데... ㅋ
콧구멍만 벌렁댑니다.
살랑살랑 봄바람에 실려 오는 진달래향이 더욱 야릇하게 느껴집니다.
여미해안
작은 여미해안으로 내려왔습니다.
부안 채석강(彩石江)을 닮았는데요, 해안 동굴도 보입니다.
사랑 나눌 장소가 곳곳에 널려있는 사랑의 섬입니다. ㅋ
이렇게 아름답거늘 어쩌다가 한(恨)의 섬이 되었을까요?
어쩌면 고려시대 ‘삼별초(三別抄)의 난(亂)‘이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고려시대엔 도둑을 단속키 위해 사병(私兵)으로 조직된 야별초(夜別抄)가 있었습니다.
점차 숫자가 많아지자 좌별초(左別抄)와 우별초(右別抄)로 구분했고, 이후엔 몽골로 잡혀갔다가 도망친 자들로 편성된 신의군(神義軍)을 합쳐 삼별초(三別抄)라 불렀습니다.
공적임무를 수행했다지만 군대에 준했는데, 고려중기 원종 11년(1270년)에 몽골이 침입하자 진도로 피신하여 ’용장‘을 도읍으로 정하고 저항합니다.
하지만 토벌 1년 만에 주민들이 몽골로 잡혀가면서 섬은 초토화됩니다.
몽골이 물러난 뒤에도 왜구침입이 심해지자 공도령(空島領)은 계속 유지됐는데, 내륙으로 피난 간 주민들이 돌아오지 못하면서 한 세기 가량 빈 섬이 됩니다.
따라서 토착문화도 사라지는 등 비운의 섬이 되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용장산성과 명량해전 격전지를 비롯해 신비의 바닷길 등 괜찮은 관광자원을 갖고 있지만, 크게 뜨지 못한 진도입니다.
게다가 ‘세월’호 여파로 이미지가 무거워지는 등 좀체 관광수요가 늘지 않았습니다.
태안기름유출사고 때처럼 사람들이 오히려 자주 들려주는 게 도와주는 것일 수도 있는데...
지금은 2019년 ‘미스트롯’으로 유명해진 ‘송가인’마을도 생겼다고 하네요.
가상(嘉尙)한데요, 끊임없이 도약을 시도하는 진도군민을 힘차게 응원합니다.
말똥바위
다시 작은 여미해안에서 말똥바위 쪽으로 올라갑니다.
우거진 동백나무숲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100년 전부터 이곳에서 구운 동백나무 숯을 싣고 목포로 운반하여 판매했는데, 화력 좋은 백탄(白炭)으로 인정받았다고 하네요.
아직도 곳곳에 숯가마 터가 남아있습니다.
동백이 터널을 이루는 고요하고 평온한 오솔길입니다.
깎아지른 절벽에 ‘말똥’바위가 버티고 있습니다.
바윗덩이가 말이 배설한 똥처럼 보여 그렇게 불린다죠.
전망대가 눈을 호강시키는데요, 바다절경을 보면서 등산할 수 있음은 축복입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솔’섬 바위와 작은 여미해안은 아름다운 산수화를 방불케 합니다.
한참을 머무르며, 커피 한 모금 입에 뭅니다.
해안으로 돌아볼까하고 눈을 두리번거리다가 금방 거둬들입니다. ㅎ
맨발체험로
산길을 내려오다가 여미해안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300m 정도의 백사장길인데요, 자그락자그락 상쾌합니다.
누군가 걷기를 일컬어 ‘나를 찾아 가는 가장 순수한 몸짓’이라 했습니다.
오늘도 걸음마를 통해 직립(直立)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산행 중 계속 따라다니던 광수수산 앞 ‘해안누리마당’에서 트레킹을 종료합니다.
서로 도와주고 격려하며 함께한 아기자기한 접도탐방이었습니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르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 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김영랑’/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봄이 저만치 와있습니다.
뿌연 공기마저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오후, 남녘 진도에서 다가오는 봄을 봅니다.
햇발이 남녘 섬마을 돌담까지 찾아와 살포시 속삭입니다.
에메랄드, 돌, 햇발, 풀, 볼 등의 시어(詩語)가 귀에 익은 음악처럼 친근하게 들립니다.
자꾸 못돼가는 내 심보도 저리 고왔으면 좋겠습니다. ㅎ
여태까지는 ‘하늘을 우러르는’ 그런 삶을 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시(詩)처럼 이런 곱디고운 봄 길이 내 생에 다시 올 수 있을까요?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을 눈부시게 쳐다보는 늙은이의 가슴에 춘심(春心)이 가득해집니다.
오는 봄을 맞이하며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나는 어쩌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수품마을
가마에 몸을 싣고 ‘수품’포구로 이동합니다.
비록 쥐不R(ㅋ) 만하지만, 방파제와 물량장 등이 설치되어 어항(漁港)의 면모를 갖췄습니다.
남도 가장 아래쪽에 위치하여 해안선 길이가 12km 남짓한 접도지만,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3개나 있다죠.
‘접도가든’에서 굴 요리로 뒤풀이를 합니다.
남도에서 서해안 굴을 대하니 무척 반갑네요.
진도는 바다와 육지에서 나는 풍부한 식재료로 음식 맛 좋기로 소문난 곳입니다.
남도밥상에 선명한 붉은 색이 인상적인 진도홍주가 빠지면 서운합니다.
민요, 서화와 함께 진도삼락(珍島三樂)중 하나인 홍주는 정력에도 효능이 탁월하다니 예사로 여길 일이 아닙니다. ㅋ
얼큰해지니 흥이 절로 생깁니다.
누구 말마따나 파도가 명창(名唱)이요, 바람이 고수(鼓手)입니다.
맛과 소리로 일깨운 감성을 석양으로 고조시키지 못해도 좋습니다.
섬들 사이로 저무는 해를 상상만 해도 행복합니다.
다음엔 필히 묵어가야할 일입니다.
에필로그
먼 길 되돌아갑니다.
Wellbeing Trekking course에 솔깃했는데, 알고 보니 한 시대를 풍미하던 이들이 다양한 사연을 품으며 거쳐 갔던 섬이었습니다.
고도(孤島)의 상징이던 그 접도가 이제는 다리로 연결되어 꾼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적거(謫居)의 한(恨)을 문화유산 관광콘텐츠로 결합하자는 섬사람들의 열의가 대단합니다.
계묘년도 어느새 3월입니다.
간혹 꽃샘바람이 심술을 부리지만, 얼굴에 와 닿는 바람은 간지러울 정도로 부드럽습니다.
멀리 진도에서 다가오는 봄과의 오붓한 만남을 가졌습니다.
제 오시는 봄 처녀를 만나진 못했지만, 시원한 조망으로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동백 숲에서 밀려오는 파도소리도 들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던 행복한 여정이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답니다.
타인을 위해 따뜻한 마음을 행동으로 나눈다면 스스로를 바꾸고, 이웃을 바꾸고, 나아가 세상까지도 바꿀 수 있답니다.
친절함이 돌고 도는 것처럼, 자그마한 선행은 또 다른 선행을 불러오게 마련입니다.
작지만 선한 행동 하나에서 희망을 봅니다.
꽃 한 송이로 봄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봄이 오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수고하신 임원진과 함께한 산우들께 감사드립니다.
목욜(3. 9) 아침에 갯바위가
첫댓글 와~~우 멋지다
잘 보구 갑니다. 갯바위님 figh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