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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검 세이버!! 한국전쟁에서 활약을 펼치다!!
1950년 소련의 스탈린의 지원을 받은 김일성 은 6월25일 새벽시간을 기해 일제히 남한을 침공합
니다. 바로 3년간의 긴 한국전쟁의 서곡을 알리는 순간이였습니다.
한국전쟁에는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군의 T-34/85 같은 전차가 지상에서 공중에서는 Yak-9
같은 왕복엔진을 장착한 전투기들이 밀려 오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계속 남으로 밀리던 남한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엔군의 지원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드디어 반격을 시작합니다.
특히 창공에서는 당시 최신 제트전투기인 P-80 슈팅스타 ,P-84 썬더제트 같은 새로운 전투기의
투입으로 소련군이 투입한 Yak-9 같은 구형 전투기를 일소하는 한편 지상군에 대한 공중지원임
무가 주어지면서 지상의 북한군 전차들은 거의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습니다.
여기에 미군은 2차대전에서 맹위를 떨쳤던 B-29 폭격기를 통한 북한의 중요시설을 융단폭격하게
되는데 이런 폭격인 피해도 막심했지만 전투에 중요한 사기저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에 김일성은 소련의 스타린에게 새로운 지원을 부탁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당시 소련이 비밀
리에 개발한 제트전투기인 미그-15 였습니다.
미그15는 당시 미공군이 운용하고 있던 어떤 제트기와도 비교해도 결코 성능이 떨어지지 않는
우수한 성능을 내는 제트전투기로 세이버와 비슷한 외형에 같은 후퇴익을 장착한, 기동성과 공격
력이 상당히 우수한 전투기 였습니다.
유엔군과 미공군의 P-80 이나 P-84 같은 직선익전투기들과 특히 움직임이 느린 B-29 들은 이
신형 전투기에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됩니다. 직선익에 800킬로 대의 낮은 속도를 가진 P-80, P-
84 로는 미그15의 빠른 기동력을 도저히 당한 재간이 없었습니다.
[미그-15의 건싸이트에 잡힌 B-29의 모습 미그-15는 고공으로 침투해 오는 폭격기를 요격하도록 설계된 고고도 전투기로 웬만한 4발 중폭격기도 몇발에 보낼수 있는 23밀리 와 37밀리 기관포로 무장하고 있었다]
후에 밝혀진 기록에 의하면 이들 미그15들의 조종에는 북한군 조종사를 비롯 교관으로 참전하고
있던 소련군 소속의 전투기 조종사와 중국의 조종사들도 일부 참전했던 것으로 밝혀졌는데
1950년 11월 1일, 중국공군의 도색을 한 미그-15가 갑자기 출현하여 미공군의 F-51 편대를
위협하는 것을 시작으로 미그-15기들은 점차 조직적으로 출현하기 시작하였고 은빛에 날카로운
화살형태를 한 신형 전투기의 존재는 바로 미공군에 보고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소련이 개발한 최신의 전투기인 미그15라는 것이 알려지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들 신형 전투기들은 비교적 속도가 낮고 운동성이 떨어지는 B-29 나 B-26 같은 폭격기를 주
로 노렸으며 고고도에서 매복하고 있다 목표물을 발견하면 급강하면서 공격하는 방법으로 유엔군
의 전투기들을 상대로 큰 피해를 입히게 됩니다.
미공군은 이들 미그15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미공군의 최신의 전투기의 투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고 생각하게 되었고 1950년 12월13일 드디어 한국에 최신의 F-86A형들이 제4전투요격 비
행단에 배치되게 됩니다. 새로 배치된 세이버들은 미그가 출몰하는 압록강 이남의 미그앨리 지역
으로 출동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한국전쟁은 이들 소련제 미그15와 미공군의 최신의 제트전투기인 F-86 세이버들간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곳이며 이는세계최초의 제트전투기간의 공중전을 알리는 서곡과 같았다]
이들은 일명 ‘미그앨리’ 라 부르는 미그기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에 투입하여 P-80 이나 P-51 같은아군의 지상공격기를 엄호하거나
B-29 같은 폭격기를 보호하는 임무에 투입되게 됩니다.
[압록강 이북부터 중국 국경까지 이르는 빨간 부분이 유명한 '미그앨리'로 구소련군과 종공군의 조종사들이 기량을 뽑내던 지역이다 1952년이후 최신의 F-86 세이버 전투기와 2차대전중의 에이스급 조종사들이 대거 투입되면서 이곳에서 미국은 1:80 이라는 대전을 기록하기도 한다]
수평미익을 개량한 F-86E 형의 등장!!
F-86A 형으로 충분할 줄 알았던 미군은 미그15들과 접해본 결과 초기형인 A형으로는 이들 미그
15들을 압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고 이어 개량형인 E형이 파견되기 시작합니다.
E형은 A형의 수평미익의 엘리베이터를 없애고 아예 수평미익 전체를 가동식으로 바꾼 것으로 이른 바 'all flying tail'이라고 불리는 설계방식을 도입한 것이 큰 특징입니다.
이는 고속 비행시에 기동성을 향상시키는 효과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세이버가 수직하강 혹은 가속이 붙어 일정속도 (마하를 돌파하는 순간)를 넘어서면 수평미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실속에 빠지는 사고 (이는 훗날 마하의 영역에 다다르면 생기는 초음속파의 영향으로 생기는 펄스로 인해 조종계통이 불능에 빠지는 문제로 밝혀졌다)가 빈번하게 일어나자 이를 해결하기 이해 고안된 개량중 하나였습니다.
[E형과 A형의 차이는 수평미익의 차이이다. 특히 E형은 A형의 후기생산형인 A-5형과 수평미익을 제외하고는 거의 같았다]
E형은 이 수평미익의 변화를 제외하고는 겉에서 볼 때 A형에(특히 F-86A-5와 구별하기 어려웠다) 비해서 별차이가 없는 것 같으나 내부적으로는 혁신적인 개량이 실시되었다.
[ 수원비행장에 주기중인 F-86E 세이버들의 모습이다. 1951년 E형은 A형을 대신해 한국에 바로 배치되었고 수많은 세
이버 에이스를 배출하는데 중요한 역활을 하게 된 기체이다 ]
그것은 E형에 기존에 사용되던 자이로식 조준장치를 대폭 개선하여 레이더와 컴퓨터를 이용한 거
리측정식 조준장치(AN/APG-30 시스템)를 장비한 것인데 이는 앞서 설명한 A-5 형에 장착된것
과 같은 장비였으며 최대 1,300m의 거리에서도 조준사격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F-86E형의 조종석의 모습 F-86 은 레이더로 작동되는 당시 어떤 전투기들도 갖지 못한 최첨단의 조준장비를 갖추고 있었으며 여전히 기총위주의 근전전투가 주인 전투에서 우위에 설수 있는 주된 이유가 되었다. F-86 의 조종석은 여압식이였으며 고속에서 조종사의 힘만으로는 조종면을 움직이기 어려웠으므로 조종면들은 유압으로 작동 되었되게 설계되었다.(현재 쓰이고 있는 차량의 파워핸들과 유사한 방식) ]
이것은 작은 개량에 불과했지만 미그-15와의 공중전에서 큰 이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 조준기의 등장으로 인해서 프로펠러기에 비할 수 없는 고속으로 공중전을 벌이는 제트시대에
의 공중전에서도 미공군 조종사들은 보다 먼거리에서 정확하게 적기를 조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전자장비를 제외한 기체 자체의 전반적인 비행성능에서는 여전히 미그-15쪽이 더
우위에 있었습니다.
[ F-86A-5는 레이더를 이용한 조준시스템(A-1B GPR 조준기와 AN/APG-5C 거리측정 레이더)이 탑재되어 고속으로 비행하는 제트전투기에 적합한 정교한 조준이 가능하였다 이는 E형에도 그대로 계승되었다]
[F-86 의 조종석 레이아웃... 피스톤 엔진을 이용하는 전투기보다 훨씬 복잡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현대의 제트전투기의 기본 레이아웃이 이때 디자인되었다]
미그-15는 9000미터 이하의 고도에서 F-86E보다 기동성이 약간 떨어지는 점 말고는 고고도에서
의 기동성과 상승력, 실용 상승한도에서 F-86E를 상회하는 성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F-86 조종사들은 2차대전을 경험한 베테랑이었던데다가 우수한 조준기를 사용
하여 미그-15에 대한 공중전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합니다.
[1952년 한국전선의 제51 전투요격 비행단 25 전투요격 비행대 소속의 F-86E형이다. 동체와 주
익의 노란색띠는 이 기체가 한국전선에서 활동중인 기체임을 의미한다. 한국전쟁에 참가한 기체에 주어진 이 노란띠는
북한군의 미그15나 아군의 세이버나 같은 은색 기체에 후퇴익을 한 디자인이라 피아식별을 위해 그려지기 시작했다]
궁극의 세이버 F형의 등장!!!
하지만 공중전에서 앞서고 있다고해도 이런 비행성능의 열세는 미공군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세이버가 우수한 성능을 가진 전투기이지만 전반적으로 소련의 미그15기에 뒤쳐진다는 보고서를
접한 노스아메리칸사는 즉시 개량작업에 들어갔으며, 미그-15를 확실하게 압도하기 위해서 엔진
을 더욱 강력한 J47-GE-27 으로 교체하는 개량을 가하게 됩니다.
1952년 J47-GE-27 엔진이 완성되었고, 이것을 단 첫 세이버, 즉 F-86F가 비행에 성공하게 됩
니다.
F-86F는 엔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스템이 E형과 동일했는데 F-86F는 E형보다 최대속도, 상승
고도, 상승률 등 많은 부분이 향상되었으며, 이로인해 F-86은 MIG-15와의 고고도 성능상의 격
차가 많이 줄어들게 되었다. 한편 J47-GE -27 엔진은 최대추력이 향상된 것뿐만 아니라, 엔진효
율도 약간 더 좋아졌고, 그 덕에 종전의 F-86F는 이전 모델 보다 같은 연료를 탑재하고도 조금
더 멀리 날 수 있게 되었다.
[세이버의 경우 엔진을 정비하거나 교체할때는 동체 후방을 분리하여 하는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미그15도 비슷한 형태로 정비를
할수밖에 없었다]
다만 미 공군은 이렇게 약간 늘어난 F-86F의 비행거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추가적인 개량을 시작
했다.
[F형으로 오면서 다양한 크기의 증가연료탱크를 장착할 수 있게 개량되어 있는데 이로인해 비행거리가 비약적으로 증대될 수 있
었다]
그 결과 탄생한 F-86F의 두 번째 생산 모델, F-86F-5(이전 것은 F-86F-1)는 주날개 밑에
760리터(200갤런) 보조 연료탱크를 탑재할 수 있게 되었다. F-86F는 본래 사용하던 460리터
(120갤런) 보조 연료탱크를 탑재할 경우 690km 정도의 행동반경을 가졌었는데, 이제 더 커진 연
료 탱크 덕에 750km 떨어진 곳 까지도 왕복비행이 가능해졌다.
[위장막을 씌여놓은 세이버의 모습 활주로에 주기해놓은 세이버들은 반짝이는 은빛이라 멀리서도 쉽게 파악이 되었고 야간을 이
용 구식 프로펠러 기체를 통해 수류탄등을 투척하는 북한군의 야간폭격을 피해기 위해 위장막의 설치는 필수장비중 하나였다]
F-86F는 곧이어 새로운 수술을 받았다. F-86F-5가 16대 만들어지자마자 다음 생산모델인 F-
86F-10이 생산되었는데, 여기에는 A-4 조준 시스템이 탑재되었다. 이것은 종전에 사용하던 A-
1CM 조준 시스템보다 조작이 쉬워졌고 정비하기도 편해진 모델이었다.
[한반도의 강력한 겨울추위는 기체나 조종사 모두에게 악명이 높았다. 빠른 출동을 위해 더운공기를 엔진에 불어넣어 예열하는
것은 빠른 출동을 위한 가장 쉽고 기본적인 조치중 하나였다]
F형 새로운 주익을 얻다!!
추진력이 증대된 엔진인 J47-GE-27 엔진으로 교체된 F형의 궁극의 세이버로 불리기에 충분했지
만 여기에 한가지 더 개량이 가해지게 됩니다. 바로 주익의 개량이 그것이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미 공군은 F-86을 순수 제공전투기 보다는 지상공
격 능력을 점차 강화시켜 전폭기로 바꾸어 나가려 했습니다.
지상공격 임무시 중요한 것은 전폭기가 한 번에 얼마나 많은 무장을 탑재하고 나갈 수 있는가와
얼마나 멀리(혹은 오랫동안) 날 수 있는가 였습니다.
원래 F-86은 좌우 날개 밑에 1발씩, 총 2발의 폭탄을 달 수 있었으나 문제는 이럴 경우 외부연
료탱크를 달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1953년 오산기지에서 찍힌 F-86F. 앞쪽에는 1000파운드 폭탄이 놓여 있다. 사진속의 F-86F는 신형날개를 달기 전의 것으로, 폭탄을 달게 되면 보조 연료탱크를 탑재할 수 없었다.] 노스 아메리칸사는 F-86의 이런 단점들을 해결하고자, 새로운 주날개 개발에 나섰다. 주 날개에 두 개의 파일런을 설치하여 날개 안쪽에는 폭탄을, 바깥쪽에는 연료탱크를 달도록 한 것이다. 물론 필요하다면 날개 안쪽에 폭탄 대신 연료탱크를 추가로 더 달수도 있었다. 이 새로운 날개는 날개뿌리부분의 앞뒤 폭이 6인치(15.2cm), 날개 끝부분의 앞뒤 폭이 3인치 (7.6cm) 늘어났으며 이 때문에 6-3날개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날개폭이 변경됨에 따라 후퇴각 도 0.7도 정도 더 커졌다). 한편 날개 앞전 쪽의 작동부인 슬랫이 없어지고 이 부분이 고정되었 는데, 이 때문에 일체형 6-3날개 (Solid 6-3 wing)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F-86F형에는 새로운 주익이 장착되었는데 이는 주 날개에 두 개의 파일런을 설치하여 날개 안쪽에는 폭탄을, 바깥쪽에는 연료 탱크를 달도록 한 것이다. 물론 필요하다면 날개 안쪽에 폭탄 대신 연료탱크를 추가로 더 달수도 있었다. 이 새로운 날개는 날개 뿌리부분의 앞뒤 폭이 6인치(15.2cm), 날개 끝부분의 앞뒤 폭이 3인치 (7.6cm) 늘어났으며 이 때문에 '6-3' 날개라는 별명이 붙었다 (날개폭이 변경됨에 따라 후퇴각도 0.7도 정도 더 커졌다). 한편 날개 앞전 쪽의 작동부인 슬랫이 없어지고 이 부분이 고 정되었 는데, 이 때문에 일체형 6-3날개 (Solid 6-3 wing)이라 불리기도 했다.] [F형은 신형 엔진과 6-3 주익으로 인해 어떤 타입보다 성능이 우수한 전투기로 재탄생했으며 이로서 세이버는 미그-15에 성능 적으로도 맞설수 있는 제트 전투기가 되었다]
[6-3 주익의 형태를 잘 볼수 있는 근접사진 주익의 넓이가 더 커짐으로 인해 F형은 다른 세이버들보다 우수한 비행성능 을 가진 기체가 되었다] 새로운 날개를 달자 F-86은 폭탄과 연료탱크를 동시에 탑재할 수 있게 된 것 이외에도, 많은 부 분이 개선되었습니다. 슬랫은 저속에서 날개의 성능을 높여주는 역할을 하는 대신, 고속 비행시 공기저항을 유발했는데, 이것이 없어진 일체형 6-3날개를 단 F-86은 종전보다 최대속도가 조금 더 향상되게됩니다. 또한 슬랫이 없어진 덕분에 내부 공간에 여유가 생겼고, 그 결과 날개 안 연료탱크가 약간 더 커 졌기 때문에 이 날개를 장착한 F-86은 비행거리가 약간 더 늘어났다.
[한국전쟁당시 F-86F 전폭기 임무를 수행 할 때는 위의 사진처럼 1000파운드 폭탄 2발과 120갤 런 연료탱크 두 개를 다는 경우가 많았다.] 이 외에도 급기동시, 혹은 음속에 가까운 고속 비행시 날개에서 생기는 진동문제가 해결됨에 따 라 일체형 6-3날개를 단 F-86은 좀 더 마음껏 급선회를 하거나 급기동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 다.
[6-3 주익은 비행성능의 강화와 더불어 무장과 증가연료탱크를 동시에 장착할 수있는 여유를 주어 보다 다양한 임무를 수행 할수 있게 되었다 4개의 증가연료탱크를 장착하고 있는 F-86F형의 모습] 하지만 이에 따른 단점도 있었는데 슬랫의 제거는 필연적으로 F-86의 저속비행성능 악화를 불러 왔습니다. 노스 아메리칸 개발자들은 본래 날개의 실속 문제, 특히 후퇴날개가 저속에서 자주 발생하는 특 유의 날개 끝 실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슬랫을 달았던 것이다. 일체형 날개에는 슬랫을 제거하는 대신 날개 위에 윙 펜스가 달렸지만, 이 날개 끝 실속 문제를 슬랫 만큼 확실히 해결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F형에 장착된 6-3날개는 장점도 있었지만 단점도 있었는데 바로 저속에서의 조종성이 나뻐진다는 문제점이였다. 이는 초기형의 세이버의 경우 슬랫을 통해 해결했지만 6-3 주익에서는 이 슬랫을 제거함으로서 본래의 문제점이 다시 재발하 였다. 결국 펜스를 추가함으로서 어느정도 해결은 되었지만 슬롯만큼의 성능을 주지는 못했다] 결국 일체형 6-3 날개를 단 F-86은 평소보다 25km/h 정도 더 빠른 속도로 이착륙해야 했으며 (이는 이착륙 활주거리의 증가의 원인도 됨) 만약 너무 저속에 돌입하면 슬랫이 있을 때에 비하 여 더욱 비행불능 상태에 빠지기 쉽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F형은 추력이 증대된 J47-GE-27 엔진과 새로운 설계의 주익장착으로 비로서 미그15를 능가하는 기체로 재탄생된 세이버는 곧장 한국전선으로 배치되어 F-86A와 E를 대체하고 미그 와의 대결을 위해서 미그앨리로 출격하게 됩니다. 신형 F형의 투입 이후의 전투는 거의 일방적으로 전개되었으며 미그-15에 대해서 거의 10:1의 격추교환비라는 놀라운 전과를 보여주게 됩니다.
[세이버는 F형에 이르러 비로서 라이벌 기체인 미그15를 성능적으로 능가하는 완벽한 기체가 되었다. 이로인해 한반도 에서의 공중전의 판세는 거의 세이버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물론 이 기록은 전적으로 미공군의 주장이며 최근에는 이것이 사실과 다르다는 러시아측의 반론 이 나오고 있지만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해볼 때 전반적으로 F-86이 미그-15에 대해서 압도적 인 전과를 올린 것은 분명하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F-86의 우수한 성능에 더해서 2차대전에서 풍부한 실전경험을 쌓은 우수한 조종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F형의 등장으로 미공군에서의 미그15를 상대로한 에이스의 등장도 그리 어려운일이 아니게 되었다. 한국전쟁에서 배 출된 많은수의 에이스는 주로 F형을 통해 완벽한 기량을 뽑냈다] F형 투입이후 북한공군은 세이버와의 전투를 가급적 회피했습니다. 이에 미공군은 새로운 작전을 세우게 되는데 바로 매복과 미끼작전 이였습니다. 이는 중고도에 P-80 이나 운동성이 떨어지는 F-51 ,FU-1 등의 공격기를 미끼로 두고 이보다 훨 씬 높은 고도에 F-86F 형들이 편대비행으로 매복하다 이들 공격기들의 통신을 듣고 몰려든 미그 15들을 고고도에서 급강하하면서 추격 격추하는 방식으로 이 방식으로 미공군 소속의 F-86F 형 들은 한국전쟁 중반부터 종전기간동안 많은 전과를 올리게 됩니다. 미공군은 미그기들이 자주 출몰하는 미그밸리 지역에 매복하고 있다고 급습하는 이 전술을 애용 했으며 세이버의 추격을 피해 중국국경을 넘는 기체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추격하여 격추시키곤 했습니다. F-86 세이버… 전폭기로 재탄생하다! 1952년 중반이후 북한군의 이렇다할 전차들이 모두 사라지고 북한공군기들도 괴멸에 가까운 피 해를 입고 전투를 피하게 되자 대부분의 세이버들은 지상근접지원 공격과 폭격들에 참가하게 되 며 적의 병력이동과 중요 물자생산기지 그리고 물자를 수송하는 열차들을 공중지원으로 파괴하는 임무에 투입되게 됩니다. [F형은 등장과 동시에 한반도에서 무적의 전투기가 되었다. 북한군의 미그15를 모두 잡아먹은 F형은 이어 공대지 임무에 투입되 어 북한군에서 하늘에서의 무서운 불의 비맛을 보여주게 되었다] 일부 기체는 B-29 폭격기의 엄호 임무에도 지원되기도 하는등 한국전쟁 동안 세이버 들은 대한 민국의 수호신 이자 미그기 킬러로 명성을 떨치게 됩니다. 한국전쟁동안 총 41명의 에이스 (* 5기 이상의 적기를 격추시진 조종사를 ACE 라 부른다)가 배 출되었는데 이중 39명이 F-86 조종사 라는 점에서도 세이버의 뛰어난 성능을 짐작케 합니다.
* 한국전쟁 공중전 에이스들 * 한국전쟁 중에 미 공군 F-86전투기 조종사들은 공산군 MIG-15전투기 792대를 격추하고 F-86전투기 78를 손실함으로써 10대1의 대승을 거두었다, 미 공군은 이와 같은 압도적인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던 것은 첫째 조종사들의 탁월한 전투경험과 조종기술, 둘째 적보다 우월한 공중전 전술적용, 셋째 우수한 항공기성능과 무기체계 등 3대 요소에 기인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많은 군사 전문가들은 한국전쟁 공중전의 승리는 무기체계보다 조종사의 전투경험과 기량에 의해 판가름 났다고 평가했다,
[세이버에 의해 격추되는 미그15의 모습 미그15는 세이버 보다 우수한 성능을 가진 전투기였지만 대부분 기량이 낮은 중국조종사들에 의해 조종되면서 제대로된 성능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기량이 우수한 소련의 조종사들에 의해 조종되는 미그15는 여전히 무서운 무기중 하나였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미 공군의 F-86전투기 편대장들은 풍부한 공중전 경험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불리한 지리적 여건과 F-86전투기특성을 감안하여 적절한 전술을 개발 적용한 반면에 공중전 경험과 기량이 부족한 공산군 MIG전투기 조종사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유리한 여건과 우수한 무기체계성능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그러나 일부 고도로 숙련된 편대장 급 MIG전투기 조종사들은 탁월한 공중전기량을 과시했다.
[세이버의 건카메라를 통해 격추되는 미그15의 모습을 연속사진을 찍은 스틸사진... 사출좌석으로 탈출하는 조종사의 모습이 선명하다] 미극동공군사령부정보참모부는 F-86전투기와의 공중전에서 탁월한 전투기량을 과시한 MIG전투기 조종사들은 2차 대전 참전경험이 있는 소련공군 조종사들이라고 판단했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는 여러 가지 정보보고와 F-86전투기 조종사들이 격추한 MIG전투기에서 탈출한 조종사가 금발의 백인임을 목격했다고 보고함으로써 입증되었으나 미 극동공군은 이를 대외비밀사항으로 유지했다, 폴란드에서 서유럽으로 망명한 한 조종사는 폴란드에 파견된 대부분의 소련공군비행교관들은 한국전에 참전경험이 있는 조종사들이라고 증언했다, 소련공군의 한국전참전은 구 소련정권이 붕괴된 후 러시아정부에 의해 공표된 기밀문서에서 확인된바 있다, [한국전쟁은 세계최초로 제트전투기와의 공중전이 일어났던 전쟁으로 그 주인공들은 세이버와 미그15였다] 그러나 소련공군 조종사로 추측되는 숙련된 조종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공산군 MIG전투기조종사들은 미 공군 F-86전투기의 공격을 받으면 금방 혼란에 빠졌다. 어떤 조종사는 공중전에 임하기 전에 보조연료탱크를 장탈 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허둥대는가 하면 어떤 조종사는 공격목표를 정확히 조준하지도 않고 기관포를 마구 발사했다. 또 어떤 조종사는 F-86전투기의 공격을 받았으나 항공기가 피격되지 않았음에도 항공기를 버리고 낙하산으로 탈출하기도 했다, MIG전투기 조종사들은 공중전에서 계속 패배하자 F-86전투기와 싸우기를 기피했으며 한국전쟁이 끝날 때까지 항공기와 조종사가 일체가 되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했다. [미공군은 초반 세이버 A형을 투입하였으나 미그15에 성능적으로 밀리자 개량형인 E형을 투입하게 된다 이때부터 세이버 에이스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게 된다] 한국전쟁에서 공중전승리요건은 조종사의 신체적 젊음보다 전투경험과 정확한 상황판단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1952년 3월에 발간된 미 공군통계분석자료에 의하면 한국전쟁에서 적기를 격추한 조종사의 68%가 28세 이상의 노련한 조종사들이었으며 적기를 1대도 격추하지 못한 조종사의 67%가 25세 미만의 젊은 조종사들이었다, 미 공군은 한국전쟁 중 39명의 에이스를 배출했으며F-86전투기가 격추한 MIG전투기 792대 중 305,5대가 나이 많은 에이스 조종사에 의해 이루어졌다. [한국전에서 제3위의 에이스인 Capt, Manuel J Fernandez 그는 한국전동안 총 14.5 기의 적기를 격추하면서 통산 3위의 에이스가 되었다] [Capt, Manuel J Fernandez 의 애기 ] [기수의 노즈아트로 쌈닭을 그려넣은 Capt, Manuel J Fernandez 의 퍼스널마킹] 공산군은 항상 수적으로 많은 전력을 투입해서 공중전의 주도권을 장악하려고 했으나 미 공군 F-86전투기조종사들은 한꺼번에 많은 전투기를 공중전에 투입하면 효과적으로 통제를 할 수 없어 비능률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통상 4대로 플루드 포(Fluid Four) 전투편대를 구성하고 4개 편대 총 16대로 편대군을 구성했다. F-86전투기들은 통상 압록강상공에서 초계비행을 하다가 MIG전투기들이 압록강을 넘어 북한상공으로 들어오면 압록강과 청천강 사이의 미그 엘리(MIG Ally)구역에서 공중전을 했다, [한국전에서 미공군은 독특한 4대편대를 이용한 전술을 즐겨사용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지만 중공군측의 미그15는 대부분 각개로 움직이는 바람에 많은 피해를 입었다] 미 공군은 한국전쟁에서 숙련된 F-86전투기 조종사확보 문제로 애를 먹었다, 초기에 한국전에 참전했던 F-86전투기 조종사들은 대부분 2차 세계대전 에이스들 있었으나 이들이 100회 출격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감에 따라 숙련된 F-86전투기 조종사확보에 차질이 생겼다. 미 공군본부는 수송기와 폭격기 조종사를 차출해서 한국으로 보냈으나 이들은 전투기조종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또 한국에 주둔하고 있던 F-86전투기 비행부대들은 전투임무를 수행하면서 이들의 기종전환훈련을 실시해야 했기 때문에 애로가 많았다. 미 제5공군은 숙련 급 조종사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0회 출격을 마친 조종사들의 귀국을 보류시켰으며 미 공군본부는 훈련사령부에 신속히 F-86조종사를 대량으로 양성해서 한국으로 보내라고 지시했다, F-86비행훈련을 마친 신임 조종사들은 한국에 도착한 후 공중전임무수행 전에 전투가능훈련을 받았으며 교관 조종사들은 신임조종사를 훈련시키는 것이 수송기나 폭격기 조종사를 훈련시키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고 말했다 F-86전투기 조종사들의 최대 애로사항은 초계비행시간제한 이었다. 그래서 미 제5공군은 서해 진남포 앞 초도에 방공감시레이더를 설치하고 적 MIG전투기활동을 감시하고 있다가 레이더에 적기 활동이 포착되면 지상에서 비상대기하고 있던 F-86전투기를 긴급출동 시키는 전술을 사용했다. 미 공군F-86전투기 조종사들은 여러 가지 불리한 여건하에서도 용감하게 싸워 공중전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쟁취했다, F-86전투기 조종사들이 공중전에서 승리함으로써 유엔군은 북한지역 공중우세를 계속 확보했으며 종국적으로 한국전쟁을 승리로 종결 지을 수 있었다. 한국전쟁 최초의 에이스는 제임스 자바라 대위였다, 그는 1951년 5월 20일 MIG전투기와의 공중전에서 한쪽 보조연료탱크가 장탈 되지 않았음에도 용감하게 싸워 MIG전투기 2대를 격추함으로써 세계 항공전사상 최초의 제트에이스가 되는 영광을 차지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적기 3,5대를 격추한 경험이 있는 제임스 자바라 대위는 에이스가 된 후 일단 본국으로 귀환했으나 MIG전투기와 공중전하기를 즐거워했던 그는 자원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전국전쟁에서 총 14,5대의 적기를 격추했다. [한국전쟁 최초의 에이스는 제임스 자바라 대위였다, 그는 1951년 5월 20일 MIG전투기와의 공중전에서 한쪽 보조연료탱크가 장탈 되지 않았음에도 용감하게 싸워 MIG전투기 2대를 격추함으로써 세계 항공전사상 최초의 제트에이스가 되는 영광을 차지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적기 3,5대를 격추한 경험이 있는 제임스 자바라 대위는 에이스가 된 후 일단 본국으로 귀환했으나 MIG전투기와 공중전하기를 즐거워했던 그는 자원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전국전쟁에서 총 14,5대의 적기를 격추했다.] [자바라의 애기의 일러스트]
[자바라는 증가연료탱크가 분리되지 않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용감히 싸워 2기의 적기를 갹추 미공군 최초의 제트전투기 에이스가 된다]
한국전쟁에서 가장 많은 적기를 격추한 조종사는 죠셉 멕코넬 대위였다. 그는 1952년 말에 수원기지에 주둔하고 있던 제51요격비행단 제16대대에 배속된 후 1953년 1월 14일에 최초로 MIG 전투기 1대를 격추했으며 2월 16일에 5번째 MIG전투기를 격추함으로써 한국전쟁 27번째 에이스가 되었다. [한국전쟁에서 가장 많은 적기를 격추한 조종사는 죠셉 멕코넬 대위였다. 그는 1952년 말에 수원기지에 주둔하고 있던 제51요격비행단 제16대대에 배속된 후 1953년 1월 14일에 최초로 MIG 전투기 1대를 격추했으며 2월 16일에 5번째 MIG전투기를 격추함으로써 한국전쟁 27번째 에이스가 되었다] [ 죠셉 멕코넬 대위의 애기 그는 한국전 동안 총 16기의 적기를 격추해 한국전 동안 가장 많은 적기를 격추한 에이스가 되었다] 메코넬 대위는 1953년 4월 12일 8번째 MIG전투기를 격추한 직후 MIG전투기에 피격되어 서해상에서 탈출한바 있으나 구조 헬리콥터에 의해 곧바로 구조되기도 했다. 그는 5월 18일에 MIG전투기 3대를 더 격추해서 총 16대의 MIG전투기를 격추함으로써 한국전쟁 에이스 선두주자가 되었다, 미 공군본부는 공중전영웅을 보호하기 위해 그를 본국으로 송환했으나 그는 1952년 8월 25일 에드워드 공군기지에서 F-86H전투기 시험비행 중에 비행사고로 순직했다. 한국전쟁 에이스 중 하루에 적기를 가장 많이 격추한 조종사는 조지 데이비스 소령이었다, 미 공군 제4비행단 제33비행대대장 직을 맡고 있던 죠지 데이비스 소령은 12월 13일 하루에 MIG전투기 4대를 격추했다. 하루에 MIG전투기 4대 격추기록은 대단한 전과였으며 미 공군참모총장 반덴버그 장군은 죠지 데이비스 소령의 공적을 높이 치하하고 특별표창 했다. [한국전쟁 에이스 중 하루에 적기를 가장 많이 격추한 조종사는 조지 데이비스 소령이었다, 미 공군 제4비행단 제33비행대대장 직을 맡고 있던 죠지 데이비스 소령은 12월 13일 하루에 MIG전투기 4대를 격추했다. 하루에 MIG전투기 4대 격추기록은 대단한 전과였으며 미 공군참모총장 반덴버그 장군은 죠지 데이비스 소령의 공적을 높이 치하하고 특별표창 했다. 아래는 그의 애기] 그러나 죠지 데이비스 소령은 1952년 2월 10일 군우리 상공에서 공중전 중 MIG전투기에 피격되어 전사했다. 그는 순직할 때까지 MIG전투기 12대와 YU-2폭격기 2대 도합 14대의 적기를 격추하여 에이스 선두주자였었다. 미국의회는 그의 용맹성과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명예훈장을 추서했다, 한국전쟁에서 배출된 미 공군 에이스 39명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번 이 름 한국전쟁 2차 대전 1 Capt, Joseph McConnell Jr 16 2 Lt Col, James Jabara 15 3,5 3 Capt, Manuel J Fernandez 14,5 4 Lt Col George A Davis 14 7 5 Col, Royal N Baker 13 3,5 6 Maj, Frederick C Blesse 10 7 Capt, Harold E Fischer 10 8 Col, James K Johnson 10 1 9 Lt Col, Vermont Garrison 10 11 10 maj, Lonnie R Moore 10 11 Capt, Ralph S Parr Jr 10 12 Lt, James F Low 9 13 Lt, Cecil G Foster 9 14 Lt Col, James P Hagerstrom 8,5 6 15 Maj, Robinson Risner 8 16 Col, George I Ruddell 8 17 Capt, Clifford D Jolley 7 18 Capt, Leonard W Lilley 7 19 Lt, Henry Buttelmann 7 20 Lt Col, Winton W Marshall 6,5 21 Col, Francis S Gabreski 6,5 31 22 Maj, Donald E Adams 6,5 4 23 Col, George L Jones 6,5 24 Capt, Robert J Love 6 25 Lt Col, John F Bolt 6 6 26 Lt, James H Kasler 6 27 Maj, William T Whisner 5,5 15,5 28 Capt, Richard S Beker 5 29 Capt, Ralph D Gibson 5 30 Lt Col, Richard D Creigton 5 2 31 Capt, Robert H Moore 5 32 Capt, Iven C Kinchloe Jr 5 33 Maj, William H Wescott 5 34 Capt, Robert T Latshaw Jr 5 35 Col, Harrison R Thyng 5 8 36 Capt, Dolphin D Overton lll 5 37 Capt, Clyde A Curtin 5 38 Maj, Stephen I Bettinger 5 1 39 Col, Robert P Baldwin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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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60년전 이땅에 에어리어 88 에서나 볼 만한 공중전이 있었군요...... 좋은 정보 감사히 얻고 갑니다~
멋진 기종인데, 이제야 한정판들이 나오는지... 계속계속 좋은 마킹으로 나와주면 좋겠습니다~~~~
한국전 에이스 전 기체가 나와주었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