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5.02 주성철 기자
십자군이 이슬람 교도들뿐만 아니라 엄청난 수의 유대인까지 학살했다는 역사적 사실, 혹은 결국 재물과 영토를 노린 무의미한 전쟁이었다는 시선까지 담아낸다
리들리 스콧 감독과 올랜도 블룸의 만남은 성공적이다. 올랜도 블룸이 최초의 선택이건 차선의 선택이건 간에 그는 결국 <킹덤 오브 헤븐>에서 리들리 스콧이 원했던 바를 당당하게 성취해낸다. 거기엔 <글래디에이터>와 <킹덤 오브 헤븐> 사이에 놓여진 경계선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러셀 크로)는 처음부터 장군이었지만 반대로 <킹덤 오브 헤븐>의 발리안(올랜도 블룸)은 애초에 미천한 대장장이였다 졸지에 기사가 된 사람이다. 그래서 노예가 된 막시무스는 복수를 위해 계속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 하는 반면, 발리안은 영웅이 되고자 했던 꿈이 계속 깨져가면서 오히려 그 존재를 감추려 애쓴다. 막시무스와 비교하자면 발리안은 영화 속에서 질주하는 주인공이기보다 관조적인 관찰자의 성격이 짙다. 그리고 그것은 <킹덤 오브 헤븐>에서 리들리 스콧이 꿈꿨던 변화와 딱 들어맞는다.
대장장이 발리안 앞에 십자군 기사인 고프리(리암 니슨)가 찾아온다. 발리안의 숨겨진 아버지라고 밝힌 고프리는 십자군 전쟁에 동참, 자신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떠나자고 말한다. 우여곡절 끝에 함께 길을 떠나게 된 발리안은 고프리가 죽기 직전 수여한 작위를 받아 정식 기사가 돼 예루살렘의 국왕 볼드윈 4세(에드워드 노턴)에 대한 충성을 서약한다. 이후 발리안은 국왕의 신임을 한 몸에 받게 되고, 왕의 동생인 시빌라 공주(에바 그린)와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녀는 이슬람권과의 전쟁에 갈증을 느끼는, 교회 기사단의 우두머리 기 드 루지앵(마튼 초카시)과 정략 결혼을 한 상태다. 평소 고프리를 앙숙으로 여겨왔던 기 드 루지앵은 볼드윈 4세기 죽고 권력을 쥐게 되자, 예상대로 살라딘(가산 마수드)이 이끄는 아랍권을 자극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일으키고 만다.
<킹덤 오브 헤븐>의 군중 신은 압도적이다. 전투 신은 마치 <글래디에이터>와 <블랙 호크 다운>이 만난 것 같은 현실감을 더한다. <글래디에이터> 이후 할리우드 서사극의 하나의 기준점이 된 것 같은 ‘하드고어적인 중세 전투 신’ 역시 여전하다. 40여 분간 계속되는 라스트 전투 신에는 <글래디에이터> 이후 우리가 그에게 기대했던 여러 요소들이 집약돼 있다. 영화의 핵심 무대인 예루살렘에는 더욱 많은 노력이 덧붙여졌다. 2만8천 평방미터가 넘는 성벽 모형을 만들기 위해 무려 6천t의 석고가 소비됐다.
<킹덤 오브 헤븐>은 <글래디에이터>와 마찬가지로 영웅담이 분명하지만, 거기에는 현재 중동 지역의 현실 정치와 맞물리는 묘한 긴장감이 있다. 제작 전 스크립트를 읽었던 이슬람의 법, 역사 전문가인 UCLA의 칼레드 아부 엘-파들 교수는 “서구인 캐릭터들은 감정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 주는 반면, 이슬람권 쪽은 살라딘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생각 없는 기계로 묘사됐다”는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완성된 영화는 여러 조언들을 접수한 나머지 지나치리만큼 공정하려는 의지로 넘쳐난다. 살라딘은 모로코의 국민배우라 불리는 가산 마수드가 맡았으며, 살라딘의 부관으로는 엄정한 오디션 끝에 이집트 배우를 선발하기도 했다. 십자군이 이슬람 교도들뿐만 아니라 엄청난 수의 유대인까지 학살했다는 역사적 사실, 혹은 결국 재물과 영토를 노린 무의미한 전쟁이었다는 시선까지 담아낸다. 그 속에서 비록 올랜도 블룸이 러셀 크로보다 영웅적이지는 못할지라도 보다 입체적인 인물을 소화해냈다고 말할 순 있을 것이다. |
첫댓글 알리 악바르 십자군 전쟁기간중에 유일한 영웅이 살라딘이지요. 십자군의 기사들은 약탈자들